같은 자리에 매일 다른 가게가? 모빌리티 스토어의 미래

멜로우

모빌리티 스토어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에요. 푸드 트럭이나 차량에 제품을 싣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이동형 점포를 뜻하는 거니까요.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틈새 리테일의 방식이었죠.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틈새 리테일에 불과했던 모빌리티 스토어의 존재감이 커졌어요. 꼬박 꼬박 월세 내는 매장이 무서워졌달까요?


그런데 모빌리티 스토어에는 역설이 있어요. 지자체 등에서 정해준 장소에서 운영해야 해요. 또한 고객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선 같은 자리를 지킬 필요도 있어요. 정작 핵심역량인 ‘이동성’의 가치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거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모빌리티 스토어의 차별적 경쟁력이 높아질까요?


팔리는 때에 팔리는 장소로 이동할 수 있어야 해요. 모빌리티 스토어에게 ‘이 시간엔 여기서 장사해야 대박’하고 알려주는 스타트업이 있다면 어떨까요? 반대로 잠재 고객에겐 ‘오늘은 어떤 가게를 열까요?’라고 물어본다면요? 틈새 공간의 수요와 공급을 족집게처럼 연결해주는 스타트업, 멜로우를 소개할게요.         


오늘의 스토리는 글로벌 트렌드 유료 구독 서비스, ‘데일리트렌드’와 함께 하는 콘텐츠예요.


멜로우 미리보기

 매일 새로운 가게가 도착하는 정류장

 정해진 곳이 아니라 ‘팔리는 곳’으로 이동한다

 이동형 점포의 다른 이름, ‘트래블링 쇼룸’ 또는 ‘새틀라이트 스토어’

 틈나는 공간을 매칭해 만든 탐나는 성과




최근 10년 동안 공간을 매칭하는 사업은 무서울 정도로 세분화되어 왔어요. 과거엔 남는 공간과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가 '부동산'밖에 없었지요? 공간이 필요한 사람은 '정해진 유닛'을 '정해진 기간'만큼 사용해야 했어요. 부동산들이 하는 일이란, 이 조건에 맞는 공간들을 수요자에게 매칭시켜 주는 거였죠.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우리는 '유휴 공간'을 '팝업 수요자'와 매칭하는 시대를 맞이하기 시작했어요. 이제 꼭 정해진 유닛 단위의 공간을 정해진 기간만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온 거예요. 이때부터는 부동산들 말고도 새로운 매개체가 탄생했는데요. 바로 '팝업 에이전시'란 곳들이 유휴 공간 매칭을 하기 시작해요. 이들은 잠시 비어있는 점포나, 건물의 비어있는 로비, 혹은 지자체 공간들을 2~3개월짜리 팝업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들과 연결하는 일을 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더 쪼개진 거래도 가능할까요? '유휴 공간'이란 게 로비나 단기 공실 같은 게 아니라 더 작은 '틈새 공간'이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빌리는 기간도 2~3주나 2~3개월 연속으로 빌리는 거 말고, 1주일에 1번, 뭐 이런 식으로는 빌릴 수는 없을까요?


상상이 안되실 거예요. 아니 그렇게 빌리는 사람 맘대로 빌려주면, 빌려주는 사람은 뭐 먹고 살라고요? 하지만 이 말 안 되는 얘기를 말 되게 푸는 스타트업이 있었으니. 바로 ‘멜로우(Mellow)’예요. 과연 이 스타트업은 무슨 사업을 어떻게 하고 있는 걸까요? 



매일 새로운 가게가 도착하는 정류장

어느 날 회사 정문 입구에 버스 주차장처럼 아래와 같은 표시가 생겼다고 생각해 보세요.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정류장은 버스가 정류하는 Bus Stop이 아니라, 숍이 정류하는 ‘Shop Stop’이라고 쓰여있어요.



Mellow의 Shop Stop 서비스


이 정류장에는 말 그대로 매일 새로운 가게가 도착해요. 오늘 아침에는 갓 구운 빵을 싣고 빵 가게가 올 수도 있고, 내일은 서점, 모레는 뭉친 근육을 풀어줄 마사지 가게, 또 그 다음 날에는 신선한 스시 도시락이 올 지도 몰라요. '가게에 가는 게 아니라 가게가 온다'는 개념, 그건 '모빌리티형 숍'들이 찾아온다는 뜻이랍니다. 이렇게 말이죠. 



Mellow의 Shop Stop 서비스


재미있지요? 이 사업은 멜로우가 최근 런칭한 Shop Stop이란 서비스예요. 이 멜로우는 '푸드 트럭'을 '틈새 공간'과 매칭하는 비즈니스로 시작했어요. 즉, 푸드 트럭들이 오늘 어디 가서 장사하면 좋을 지를 멜로우에 들어와서 찾아보고 정하는 거죠.


이 비즈니스가 흥하면서 현재 멜로우는 푸드를 넘어서는 다양한 모빌리티 숍들과 틈새 공간을 연결하는 사업으로 성장하고 있는데요. 이들의 성장은 달라지고 있는 유통 현황에 대해 여러모로 곱씹어 볼 중요한 포인트들을 제공한답니다. 먼저 왜 이 플랫폼이 흥하게 되었는 지부터 살펴보자고요.



정해진 곳이 아니라 ‘팔리는 곳’으로 이동한다

아마 푸드 트럭 사업을 좀 아시는 분이라면, 처음 멜로우의 비즈니스 모델을 들었을 때 왜 굳이 이런 플랫폼이 필요한지 의문스러우셨을 거예요.


대부분의 나라에서 푸드 트럭은 신고제거든요. 즉, 지자체가 정한 공간에서 영업을 하겠다고 신고하고 요건을 갖추면 장사를 할 수 있는 것이죠. 이렇게 내가 나 혼자 신고만 하면 되는데 굳이 틈새 공간을 매칭하는 플랫폼을 찾아간다? 대체 왜죠?


그건 장사를 그냥 할 건지, 알짜로 할 건지에 따라 다른 거예요. 멜로우는 지자체 유휴 공간 외에도 어떤 공간들을 보유하고 있냐면요. 일반 상업시설이나 병원, 빌딩들의 유휴 공간들도 풍부하게 확보해놓고 있어요. 내가 도시락 장사를 한다고 쳐요. 병원 앞에 1주일에 1번 가서 파는 게 잘 팔릴까요, 지자체 유휴 공간에서 파는 게 잘 팔릴까요?


얼핏 봐도 병원이 잘 팔릴 것 같지만, 이런 느낌적 느낌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요. 멜로우처럼 여러 공간들을 여러 푸드 트럭에게 대여하는 기업에겐 황금 같은 데이터가 쌓여있거든요. 데이터를 들여다보면 답이 나와요. 어디 가서 파는 게 잘 팔릴지.



ⓒMellow


여러분이 푸드 트럭 주인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내가 내 트럭 몰고 가서 공원이나 어디나 나라가 정한 데서 할 수 있기는 해요. 그런데 그 장소가 과연 장사가 잘 되는 장소일까요? 나는 떡볶이를 하는데 혹시 그 공원은 커피만 잘 팔리는 공원인 것은 아닐까요?


멜로우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아, 떡볶이예요? 그럼 A공원이나 B 빌딩 앞이 끝장나게 잘돼요.' 내지는 '떡볶이라면 화, 목은 C 아파트에서 하시구요. 주말은 D 공원에서 하시면 좋아요' 등등의 '유효한 매칭'을 해준답니다.


이 매칭 파워는 정말로 중요한 것이, 기업들이 최근 들어선 너도나도 모빌리티를 하려고 하거든요. 보험사도 좀 가망 고객이 많은 데 찾아가서 팔아보고 싶어하고, 안경도 그렇고, 특산품, 빵 가릴 것 없이 뭔가 해보려고 하거든요. 이런 기업들은 기존에 모빌리티 사업에 경험이 없지요? 당연히 뭐라도 해보려면 데이터가 필요할 수밖에요.


멜로우는 여기 한발 더 나아가서, 아예 트럭도 제공해 줍니다. 이제 처음 푸드 트럭을 해보려는 창업자들은 물론 잠깐 팝업 트럭을 해보려고 하는 기업들에게도 적당한 솔루션을 제공해요. 무조건 트럭 한 대 뽑아야 하냐구요? 창업자가 그럴 돈이 있음 뭐하러 멜로우를 찾아오겠어요? 일단 푸드 트럭의 경우 Food Truck One이란 월 구독 서비스가 따로 있어요.


흥미로운 건 이 구독 서비스 파트너가 누구게요? 차량 섭스크립션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는 도요타의 ‘킨토(Kinto)’예요. 이건 뭐, 혁신적인 친구들은 결국 다들 연결되는 셈이죠.



화장품 기업 Orbis 트럭도 멜로우가 만들어줬어요. ⓒMellow



Food Truck One이란 푸드 트럭 구독 서비스예요. ⓒMellow


이 구독 옵션은 도요타 그룹과 토론을 거듭해서 도요타가 아예 멜로우 사양의 키친카를 개발해준 거라고 해요. 가격은 5년 리스 후 매입하는 기준으로 초기 비용이 96만엔(약 960만원)이고요. 차량 검사 비용과 보험료를 더하면 월 8.5만엔(약 85만원) 정도가 들죠. 괜찮지요? 괜찮은 자리에 월세 85만원짜리 매장을 요즘 어디서 구해요?



이동형 점포의 다른 이름, ‘트래블링 쇼룸’ 또는 ‘새틀라이트 스토어’

사실 푸드 트럭이나 차량에 제품을 싣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모빌리티 스토어는 처음 듣는 개념이 아니에요. 옛날부터 존재했던 틈새 리테일의 방식이었지만, 최근 코로나라는 역대급 변수는 이 틈새 리테일에 불과했던 이동형 스토어들에게 엄청난 존재감을 불어 넣었어요. 너무 혹독한 시기를 겪고 났더니, 꼬박 꼬박 월세 내는 매장이 무서워졌달까요?


요즘 명품들은 미국에서 맨해튼 5번가에 플래그십을 세우기보다는, 인근 휴양지에 여름 한철 팝업을 열고 싶어한답니다. 겨울엔 또 스키 휴양지에서 팝업을 여는 거죠. 해보니 연간 운영비 대비 실적이나 바이럴 효과가 그게 더 나은 거예요. 바야흐로 '리조트 리테일'의 전성시대가 펼쳐지고 있어요.


팔리는 때에 팔리는 장소에 가게를 열고 싶은 마음. 바로 이 니즈를 구현할 수 있는 최적의 방식이 모빌리티 스토어인 거예요. '트래블링 쇼룸'이라고도 불리는 이 신종 점포 시장은 지금 도요타를 비롯한 여러 기업들이 뛰어들고 있어요. 그런데 일본에선 또 다른 이유로 이 모빌리티 스토어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어요.


첫째는 발길이 뜸해진 전통 시장과 여행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고사되고 있는 재래시장들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역할이에요. 예를 들어 도쿄에는 2개의 유명한 시장이 있어요. 하나는 츠키치 수산시장이고, 인근에 토요스 수산시장이란 곳이 하나 더 있죠. 한국의 노량진 수산시장도 마찬가지였지만, 코로나는 수산시장으로 향하던 손님들의 발길을 뚝 끊어지게 하고 말았어요.


한국의 노량진 수산시장은 '드라이브 스루'를 통해 손실을 상쇄하는 방식을 썼어요. 토요스 수산시장은 반대로 생각했어요. ‘만약 이럴 때 싱싱한 해산물을 들고 도쿄의 주요 아파트들을 찾아가면 어떨까?’하고요.


그렇게 시작된 멜로우의 모빌리티 트럭 숍 서비스. 의외로 반응은 꽤 좋았다는군요. 수치는 정확히 밝히지 않았는데 8개월 운영 후 현재 차량을 늘렸을 뿐 아니라, 6개월 차에는 해산물을 스시로 요리해 판매할 수 있도록 푸드 트럭 설비까지 갖추기 시작했다고 해요.



ⓒMellow


둘째, 고사되어 가는 지방 점포들의 외화벌이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일본에서 외화벌이라는 건 달라(Dollar) 벌이란 소리가 아니구요. 우리 지역 바깥의 고객에게 팔아서 번 돈을 뜻해요. 즉 강원도 기업이 서울 사람한테 팔았으면 외화벌이 한 거죠.


예를 들어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고요. 강원도 사람이 고향에 카레집을 열었어요. 카레집이 맛있다고 소문이 났지만 강원도에선 벌어봐야 매출이 빤한 거예요. 이럴 땐 사업자들이 과감하게 고향을 떠나 더 큰 도시로 갈 것인지를 고민하게 돼요. 그런데 이런 실력 있는 사업자들이 다 강원도를 떠나면 강원도는 어디서 세수를 거둘까요?


바로 이럴 때 모빌리티 스토어가 모든 문제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데요. 예를 들어 카레집 주인이 기존 점포를 이동형 점포로 전환하면, 주중에 한 3일은 서울 가서 장사를 하고, 나머진 고향에서 장사를 할 수 있어요. 고향을 안 떠나도 되지요?


이렇게 하면 또 강원도는 강원도대로 엄청 큰 이득을 봐요. 여행이 끊겨서 외지 사람들이 와주지 않았지만, 우리 강원도 사업자들이 차를 몰고 나가 외화벌이를 해오는 거니까요. 또 이 방식이 성공한다면 실력 있는 사업자들이 자기 고향을 떠나는 일이 줄어들 거예요.


바로 이 때문에 최근 멜로우는 지자체들에게 이쁨을 받는 스타트업이 되어가고 있답니다. 우리 특산물도 도쿄에 팔아주고, 우리 지역 외화벌이도 도와주는 기업이니까요.



틈나는 공간을 매칭해 만든 탐나는 성과

멜로우가 그래서 얼마나 성장했는지 한번 볼까요? 멜로우는 2016년 2월에 설립됐어요. 2021년 11월 말 기준으로 모빌리티 트럭 등록 대수가 1400대, 출점 장소는 600곳을 넘었어요. 등록 점포 수가 코로나 이전인 2019년 12월에 비해 41%나 증가한 거예요.



ⓒMellow


현재 이 Shop Stop은 일본의 스마트 시티 계획에도 슬쩍하니 발을 담그고 있는데요. 도쿄 토요스 스마트 시티 계획에 이들의 Shop Stop 정류장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요. 맛있는 푸드 트럭이 붙박이로 있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그래도 매일 매일 다른 가게가 오는 것도 재미나지 않을까요? 어떤 날은 아래와 같은 꽃 트럭도 오고 말이에요.



ⓒMellow


흥미로운 모델이지요? 일전에 틈새 백화점 자판기에 대해 소개한 적 있었는데요. 이제 1평짜리 틈새라도 자판기 사업을 하는 누군가를 위해 빌려줄 수도 있는 시대예요. 또 구찌는 전 세계의 Gucci Wall을 보유하고 있잖아요? 어쩌면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빌딩의 벽을 누군가에게 빌려줄 수 있을 지도요. 


우리도 더 유연한 공간 매칭이 있으면 좋겠어요. 팝업도 비용이 만만치 않던데, 조금 더 허들이 낮은 개념이 필요하달까요?




Reference

 코로나 이후의 점포 리조트 리테일의 부상, 김소희, 데일리트렌드

 토요타가 부추기는 트래블링 쇼룸 트렌드, 김소희, 데일리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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