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샴푸 공방

미스터 헤어

2022.05.23


비스포크(Bespoke)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요? 원래는 맞춤 수트에 한정돼 쓰이던 용어였지만, 구두, 안경, 시계, 자동차 등 경계를 모르고 비스포크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비스포크 영역에서 확장된 패션 관련 제품이나 최고급 자동차까지도 비스포크 서비스가 어색하지 않은데, 마트에서 몇 천원이면 구매할 수 있는 샴푸에 비스포크 서비스를 더한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하지만 타이베이에는 이 어색한 이 영역에서 기회를 찾고, 10년이 넘게 비즈니스를 이어 온 '미스터 헤어(Mr.hair)'가 있습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뉴욕의 니치 향수 브랜드 르 라보(Le labo)는 '여전히' 니치합니다. 브랜드가 생긴지 10년이 훌쩍 넘었어도, 글로벌 코스메틱 그룹 에스티 로더(Estee Lauder)에 인수되어 덩치가 커졌어도, 니치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습니다. 수많은 니치 브랜드들이 사업 규모가 확대되면서 고급 기성품의 길을 걷는 행보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르 라보는 시간이 지나도, 규모가 커져도 '희소성'이라는 컬트 브랜드의 본원적 가치를 지켜냈습니다. 완벽한 제품보다 고유한 경험에 집중한 덕분입니다.


르 라보의 매장은 '실험실'이라는 의미의 브랜드 이름처럼 향수를 실험하는 공간입니다. 고객들이 완제품을 구매하는 기존의 향수 매장과 달리, 르 라보의 퍼퓸 랩(Perfume lab)에서는 고객들이 직접 고른 재료들로 조향을 해줍니다. 물론 즉석 조향이 어려운 일부 매장에서는 미리 블렌딩한 향수를 판매하지만, 이마저도 퍼퓸 랩에서 주문량만큼만 만들어 즉시 배송하는 식입니다. 조향된 향수가 담긴 향수병에는 향수 이름, 용량, 구입 장소와 날짜 등이 적힌 라벨을 붙여 주는데, 이 라벨에는 고객이 쓰고 싶은 메시지를 함께 기록할 수도 있습니다. 향수와 함께 향수가 제조되는 과정을 파는 것입니다. 장인이 만드는 완벽한 향수의 틀을 깨고, 조향 과정에 고객을 참여시켰습니다. 그 결과 르 라보는 언제나 고유한 향수와 고유한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한 명의 고객을 위한 맞춤 제품과 고유한 경험은 그 제품의 경쟁력이 됩니다. 특히 취향이 뚜렷하거나 원하는 바에 대해 명확한 인지가 있는 고객들에게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르는 고객들에게는 문턱이 되기도 합니다. 제품이 아무리 고유해도, 고객이 어떤 고유한 제품이 갖고 싶은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면 맞춤 서비스의 시작점을 찾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타이베이의 맞춤 샴푸 가게 '미스터 헤어(Mr.hair)'는 맞춤 서비스에 대한 문턱을 낮추고, 더 많은 사람들이 맞춤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돕습니다. 게다가 기성품의 영역에 있던 샴푸를 맞춤 서비스의 영역으로 가져와 샴푸의 가치를 재조명했습니다. 미스터 헤어는 과연 어떻게 맞춤 샴푸에 대한 기준을 찾고, 이미 만들어진 샴푸가 아닌 맞춤 제작 샴푸를 제안하는 것일까요?





미스터 헤어 매장 입구입니다.



맞춤 샴푸 전문점 미스터 헤어의 소개영상입니다. 유튜브 영상 보러가기



#1. 고객에서 기준 세우기

샴푸 춘추 전국 시대입니다. 수많은 샴푸 브랜드들이 탈모 샴푸, 손상 모발용 샴푸, 두피 샴푸, 한방 샴푸 등 각자의 특성을 무기로 각축전을 벌입니다. 소비자들의 샴푸 사용 행태도 변했습니다. 온 가족이 함께 1가지 샴푸를 쓰는 다(多)인 1샴푸 시대가 지나고, 두피, 모발 상태, 기분 등에 따라 개인이 다양한 샴푸를 사용하는 1인 다샴푸가 점점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미스터 헤어처럼 개인을 위한 맞춤형 샴푸까지 등장했습니다. 공산품이었던 샴푸가 점점 개인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선택지가 늘어나고, 개인의 니즈를 반영할 여지가 생기면서 과거에 비해 어떤 샴푸를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소비자들의 고민은 더 깊어졌습니다.


미스터 헤어는 고객들의 이런 고민에서 맞춤형 샴푸의 출발점이자 기준을 찾았습니다. 미스터 헤어는 누구나 자신에게 필요한 성분의 샴푸를 찾을 수 있도록 고객들에게 모발 측정 테스트를 무료로 지원합니다. 무료라고 해서 대충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객의 상태를 측정하기 위해 자리로 안내하고, 매장 직원이 두피 측정 기계로 고객의 두피를 확대하여 살핍니다. 고객은 태블릿 PC로 자신의 두피와 모발을 확대한 화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으며, 매장 직원은 두피를 앞, 옆, 뒤 등으로 부위를 나누어 살피며 현재 상태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줍니다. 두피나 모발이 많이 손상된 고객에게는 현재 상태를 기록한 테스트 결과를 보여주며 전문적인 피부과 치료를 권하기도 합니다.





고객의 두피와 모발을 진단하는 공간입니다. 고객은 앞에 놓인 태블릿 PC로 확대된 자신의 두피와 모발을 보며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결과가 나왔으니, 그에 따른 샴푸 추천이 남았습니다. 미스터 헤어에는 4가지 베이스 샴푸가 있습니다. 모발 타입을 손상 모발(Damaged hair), 보통 모발(Normal hair), 부서지기 쉬운 모발(Fragile hair), 지성 모발(Oily hair)로 분류하고, 각 모발의 취약한 부분을 보완해줄 성분으로 구성된 샴푸를 추천합니다. 두피 진단 카메라로 눈 앞에서 두피와 모발의 상태를 파악한 고객들은 미스터 헤어가 제안하는 기능성 샴푸를 마다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함께 사용하면 좋을 트리트먼트나 헤어 케어 제품에 대한 설명도 곁들입니다. 고객 한 명을 위한 샴푸이기 때문에, 고객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미스터 헤어의 4가지 베이스 샴푸입니다.



#2. 고객의 기호 맞추기

4가지 기능성 샴푸 중 고객에게 맞는 샴푸를 추천하는 것만으로 충분할 리 없습니다. 미스터 헤어는 샴푸를 만드는 과정에 고객을 참여시켜 맞춤 샴푸를 완성합니다. 모발 진단으로 샴푸의 기능을 선택했다면, 샴푸의 향과 색으로 취향을 반영합니다. 고객은 4가지 베이스 샴푸 중 자신에게 맞는 샴푸를 고르고, 그 샴푸에 직접 원하는 향과 염료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선택한 옵션들로 완성되는 샴푸는 고객에게 고유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나만을 위해 만들어 가는 샴푸에는 모두를 위해 만들어진 샴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애착마저 느낄 수 있습니다.





미스터 헤어의 고객은 매장 중앙의 타원형 테이블에서 자기만의 샴푸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베이스 샴푸를 선택한 고객은 매장 중앙의 타원형 테이블로 이동합니다. 타원형 테이블의 한 쪽에서는 샴푸에 첨가할 수 있는 32가지 오일의 향기를 시향할 수 있습니다. 모든 오일은 작은 유리병 안에 뿌려져 있어 궁금한 향이 담긴 병의 뚜껑을 열어 향을 맡아볼 수 있습니다. 각 향을 발향 단계에 따라 탑 노트(Top note), 미들 노트(Middle note), 베이스 노트(Base note)로 구분하여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향이 남아 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향에 대한 체계적인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향을 구분하여 누구나 취향에 맞는 향을 찾는 여정을 기꺼이 즐길 수 있습니다. 수십 가지의 향기들 사이에서 길을 잃었거나, 대세에 따르고 싶은 고객들이 선택 장애에 빠지지 않도록 가장 인기가 좋은 5가지 향을 추천하는 것도 잊지 않습니다.





샴푸에 첨가할 수 있는 수십 가지 오일의 향을 맡아보고, 원하는 향을 고를 수 있습니다. 각 향의 아래에는 탑 노트, 미들 노트, 베이스 노트에 대한 설명이 함께 적혀 있습니다.



각 오일의 향을 2X2 차트 위에 위치시켜 기호에 따라 향을 고를 수 있도록 돕고, 여러 가지 향을 섞은 조합을 추천하기도 합니다.



신선한 과일향이 인기가 가장 좋습니다.


각 향에 대한 정보를 참고하여 시향해 보고 샴푸에 들어갈 향을 고른 후, 테이블의 반대편으로 이동해 고른 오일을 실제로 샴푸에 첨가합니다. 각 에센셜 오일은 투명하고 긴 시험관에 담겨 있어 즉석에서 샴푸에 혼합이 가능한데, 직원이 대신해 줄 수도 있고 고객이 직접 섞을 수도 있습니다. 32가지의 오일 중 24가지는 향료가 포함되어 있는 에션셜 오일로 추가 금액없이 샴푸에 첨가할 수 있고, 나머지 8가지는 향료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자연 성분의 에센셜 오일로 샴푸의 용량에 따라 약 1천 원 내외의 금액을 추가하여 혼합할 수 있습니다. 샴푸에 들어가는 재료를 눈으로 보고, 직접 제조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 샴푸에 대한 신뢰감과 재미를 더합니다.





향을 고른 후 타원형 테이블의 맞은 편으로 가서 선택한 오일을 얇은 시험관에 담고, 직접 샴푸에 섞을 수 있습니다.


향을 골랐다면 다음은 색깔 차례입니다. 미스터 헤어에서는 가능한 모든 색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정해진 색깔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삼원색을 적절히 배합해 고객이 원하는 색깔을 구현해 내기 때문입니다. 투명한 시험관에 담긴 10여 가지 샘플 색상들 중에서 선택해도 되고, 샘플들을 기준으로 원하는 색을 점원에게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색을 말하면, 점원은 고객이 보는 앞에서 둥근 시험관 3개에 담긴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염료를 적절히 배합하기 시작합니다. 염료를 조금씩 섞어가며 샴푸의 발색을 지켜 보는데, 약간의 염료로도 색이 변하는 샴푸의 모습에서 예술적인 아름다움마저 느낄 수 있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세심하게 염료를 배합해 주는 점원 덕분에 고객의 기분까지 즐거워집니다.



샘플 색상들입니다. 샘플대로 색상을 선택해도 좋고, 샘플을 기준으로 적절히 채도를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3개의 둥근 시험관에는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 염료가 각각 담겨 있고, 삼원색을 적절히 배합해 고객이 원하는 색을 샴푸에 표현합니다.



#3. 고객을 위한 기본 갖추기

한 때 '노푸(No Poo)' 열풍이 불었습니다. 노푸는 샴푸를 쓰지 않고 물이나 베이킹 소다, 식초 등으로 머리를 감는 방법입니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노푸를 실천하기도 했고, 일본 최고의 안티에이징 전문 의사로 알려진 우츠기 류이치(宇津木龍一)가 그의 저서 《물로만 머리감기 놀라운 기적》에서 노푸 노하우를 소개하면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여러 국가에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노푸는 샴푸의 화학 성분이 인체에 가져 오는 유해성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현상입니다. 샴푸의 성분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도와 민감도가 올라간 것입니다.


고객들의 두피와 모발 상태를 진단하기 위해 테스트를 진행하고,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샴푸를 추천해 주는 미스터 헤어가 샴푸의 성분을 간과할 리 없습니다. 미스터 헤어의 샴푸에는 기성품 샴푸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합성 계면활성제나 안정제는 물론, 화학 첨가물도 일체 들어가지 않습니다. 대신 식물에서 유래한 자연 성분들로 샴푸의 효과를 냅니다. 샴푸에 들어가는 모든 성분은 미국 FDA가 제정 및 공표한 우수 의약품 제조·관리 기준(Good Manufacturing Practice), 국제 표준화 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 유럽의 화장품 안전성 평가(EU Cosmetics Safety Assessment)에서 인증을 받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인체에 무해한 자연 성분만으로도 뛰어난 기능을 가진 샴푸를 만들기 위해 매년 약 1만 5천 회 이상의 테스트를 진행하고, 꾸준히 기술을 연구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샴푸에 첨가되는 오일 또한 프랑스, 스위스, 스페인 등 유럽에서 공수된 것으로, 고객이 오일을 선택할 때 원산지가 함께 표시되어 있어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믿을 만한 생산업체로부터 직접 수입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게다가 모든 염료는 영국산으로, 사탕, 와인 등의 음식에 들어가는 식용 색소를 사용합니다. 먹을 수 있는 색소들이니,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것은 당연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색이 변하거나 오일이나 성분들이 분리되어 층을 이루기도 하는데, 이는 재료를 잘 섞기 위한 안정제나 샴푸를 오랫 동안 보존하기 위한 보존제 등이 들어 있지 않다는 반증입니다. 성분이나 기능에는 전혀 이상이 없으므로 매장에서 처음 샴푸를 만들 때처럼 흔들어 섞어서 사용하면 됩니다. 약간의 번거로움이 순한 성분을 입증해 주는 격이니, 고객의 불만이 아닌 고객의 안심을 삽니다.



각 오일의 이름, 특징, 노트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는 이름표 우측 상단에는 국기 아이콘이 그려져 있어 원산지를 알 수 있습니다.



기호에 맞춘 샴푸의 미래

프랑스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1970년에 발표한 그의 저서 《소비의 사회(La Société de consommation)》에서 사람들이 소비하는 것은 물건이 아니라 기호(記號)라고 했습니다. 물건 자체의 기능이 필요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상적인 집단으로 인정받는 집단에 소속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자신의 권위와 경제력을 나타내는 기호로서 제품을 소비한다는 의미입니다. 커피를 마셔도 몇백원짜리 자판기 커피가 아니라 몇천원짜리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스타벅스 커피가 더 고급스러운 집단의 사람들이 마신다는 기호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기호(記號) 소비가 아닌 기호(嗜好) 소비의 시대입니다. 자신을 타인과 구별하는 기준이 개인이 속한 사회경제적 집단에서 개인의 취향으로 점차 옮겨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부를 나타내는 기호(記號)로서 제품을 소비하기보다는 자신의 기호(嗜好)를 반영한 제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 나고 있습니다. 특히 2013년, 《타임(Time)》지에서 'The Me Me Me Generation(나나나 세대)'로 명명한 밀레니얼 세대들이 주요 소비 계층으로 부상하면서 제품과 서비스에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는 비즈니스들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위한 소비, 타인과 나를 구분하기 위한 소비보다 나를 위한 소비, 나를 표현하는 소비를 지향하는 소비자들이 점차 더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미스터 헤어가 처음으로 맞춤 샴푸를 출시한 것은 2006년의 일입니다. 밀레니얼 세대나 취향, 맞춤화 등의 키워드가 화두가 되기 전의 일이었습니다. 미스터 헤어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순한 성분으로 만들어진 맞춤 샴푸의 가치에 대한 믿음과 함께 자기 진화를 거듭해 왔고, 여전히 그 진화는 매장과 제품에 변화를 주며 진행 중입니다. 새로운 기호(嗜好) 소비 사회는 샴푸의 기능은 개인의 상태에 맞추고, 샴푸의 특성은 개인의 취향에 맞춘 미스터 헤어의 편입니다. 시대의 흐름 때문이 아니라 제품의 가치에 대한 믿음으로 자신의 길을 닦아 온 미스터 헤어는 시대의 흐름을 타고 미래를 꿈꿀 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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