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도의 경계를 깬 도자기로, 새로운 문화를 굽는 법

무자기

2024.07.09

새하얀 꽃잎을 닮은 그릇. 뉴욕의 유명 페이스트리 부티크 ‘리제’에서 사용하는 이 그릇. 국립현대미술관, 스타벅스 등 국가 기관에서도, 글로벌 기업에서도 협업하고 싶어하는 이 그릇! 바로 ‘무자기(MUJAGI)’가 만드는 도자기 그릇이에요.


무자기의 인기 비결은 브랜드 이름에 있어요. 무자기는 일부러 꾸미거나 뜻을 더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무작위’에서 따온 말이에요. 그래서 인위적이지 않은 순백의 아름다움으로 시선을 사로잡죠. 그뿐 아니라 제품명에도 ‘찬기’, ‘종기’ 등의 쓰임새를 포함하지 않아요. 정해진 용도에 따라서 쓰는 게 아니라 취향껏 쓰라는 의도에서요.   


그러니 무자기라는 이름에는 도자기를 쓰는 문화까지 새로 굽겠다는 포부가 담겼다고 볼 수 있어요. 도자기가 장식품이 아니라 주방에서 부담없이 쓸 수 있는 제품이 되길 바라는 거죠. 그렇다면 이러한 문화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무자기는 어떤 변화를 줬을까요?


무자기 미리보기

• #1. 브랜딩은 모든 요소에서 한 목소리를 내는 것

• #2. 고급화는 가격이 아니라 취향에서 나온다

• #3. 경험을 판매하면 문화를 만들 수 있다 

• 27살 청년이 만든 브랜드가 싹을 틔우기까지




굿즈 맛집이 된 박물관이 있어요. 바로 ‘국립중앙박물관’이에요. 금동대향로 미니어처부터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취객선비 변색 잔세트까지… 출시했다 하면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죠. ‘전통성’과 ‘트렌드’를 조화롭게 버무려서예요. 오래 전부터 해리티지를 트렌디하게 풀어낸 브랜드들은 늘 호평을 받아왔죠. 


그런 국립중앙박물관이 2023년 말에 내놓은 또 다른 히트 상품이 있어요. 이번엔 ‘청자 잔세트’예요. 고려청자를 본뜬 술잔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세 종류 들어가 있는 세트죠. 각각 고려 12세기 때 제작된 ‘청자 꽃모양 사발’, ‘청자 참외 모양 병’, 고려 11세기 때 만들어진 ‘청자 음각 연꽃잎무늬 대접’을 본떠서 만든 술잔이에요.


‘청자 잔세트’는 출시하자마자 약 3억원 어치의 판매고를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어요. 그러니 이 잔세트를 만든 우리나라 도예 브랜드, ‘무자기(MUJAGI)’에도 관심이 갈 수밖에요. 무자기는 2019년, 당시 27세였던 젊은 도예가 심보근 작가가 만든 브랜드예요.


그렇다면 신생 브랜드에 가까운 무자기는 무엇이 다르길래, 국립중앙박물관의 선택을 받은 것도 모자라 젊은층의 지갑을 열게 만든 걸까요? 비결이 궁금해 용산 해방촌에 있는 무자기 쇼룸으로 직접 심보근 작가를 만나러 가봤어요. 건물 지하로 내려가자, 흙을 떠오르게 하는 주황색 벽과 한국식 ‘여백의 미’를 알리는 듯한 새하얀 도예 제품들이 마치 갤러리처럼 전시되어 있었죠. 


ⓒ국립중앙박물관



#1. 브랜딩은 모든 요소에서 한 목소리를 내는 것


심 작가는 어려서부터 디자인을 하고 싶었어요. 어린 나이에 그림 그리기, 만들기를 좋아하는 학생이었죠. 두 분 모두 화가가 꿈이었던 부모님의 영향도 있었어요. 그래서 미술고등학교에 지원했는데, 5지망이었던 도예학과에 붙고 맙니다. 디자인을 하고 싶었지만 도예를 전공하고 싶었던 건 아니어서, 초반에는 자퇴하겠다며 어머니랑 싸우기 일쑤였죠.


그러다 변화의 계기가 생겼어요. 심 작가의 재능을 먼저 알아본 학교 선생님 덕분에 대회 준비 반에 들어갔거든요.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수업을 듣지 않고 내내 물레실에서 살 정도였죠. 아침에 등교하자마자 물레실에서 연습을 시작해, 밤 9시까지 작업에 열중했어요.


그 결과로 고등학생 시절부터 꽤 많은 수상 기록이 있어요. 18살의 나이로 도자기 장인들이 참가하는 대회에서 2등상을 거머쥐기도 했죠. 학생 시절 심 작가가 키워낸 능력은 창의력보다, 기술력이었어요. 대부분의 대회가 얼마나 도면을 정확하게 재현하는지 평가하는 대회였거든요.


어린 나이에 기술력을 완성할 수 있었던 비결이 뭐냐고 묻자, 심 작가는 “꾸준히 한 것밖에 없다”고 말해요. 심 작가에게 도예는 엄청난 창의력을 동반한 예술 활동이 아니라, 남들이 입시를 하듯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할 자신의 과업이었던 거예요.


ⓒ심보근


그렇게 대학교 도예학과로 진학한 뒤에는 남들이 기술을 배울 시간에 자신만의 작품에 더 몰두할 수 있었죠. 기술력이 뒷받침되어 있으니까요. 특히 심 작가가 대학 시절 가장 좋아했던 일은 ‘일 벌이기’, 즉 ‘브랜드 만들기’였어요.


“대학 1학년 다니다가 휴학하고 브랜드 만든다고 까불면서 사업자 등록하고, 블로그 만들어서 팔고, 이랬어요. 친구랑 같이 삼청동에서 돗자리 펴고 팔아보기도 했고요. 하루에 8만원 정도 팔았으니까 교통비랑 식비 하면 다 끝났죠. 열정이 대단했던 거냐고 남들은 묻지만, 사실 그냥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어요. 과연 내가 도자기로 돈 벌 수 있을까, 하는.”


지식이 부족한 채로 무작정 시도했던 브랜드들은 연이어 실패했어요. ‘이번에도 안 되면 취직하자’는 마음으로 대학교 4학년, 마지막 브랜드를 론칭했죠. 그게 바로 지금의 무자기입니다.


무자기는 이전 시도들과 달랐어요. 심기일전이었던 심 작가가, 디자인이며 브랜딩을 모두 공부한 뒤 새로이 만든 브랜드였거든요.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지점을 ‘브랜딩이 되는가’로 봤죠. 그래서 심 작가는 무자기를 만들 때 로고, 패키지, SNS 포스팅까지 모든 브랜딩을 직접 했습니다.


“브랜딩이란 모든 요소가 한 목소리를 내는 거예요. 그래야 그 브랜드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를 보는 사람이 직감적으로 파악할 수 있죠. 무자기는 어느 곳에 두어도 어울리는, ‘주인공이 되지 않는 도자기’인 게 중요했어요.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 쓰면 내용물이 음식을 주인공으로 만들고, 공간을 꾸미는 오브제로 쓰면 공간이 주인공이 되도록 하는,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도자기를 컨셉으로 잡았죠.”


ⓒ무자기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그래서 이름도 무자기로 지었습니다. 일부러 꾸미거나 뜻을 더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무작위’에서 따온 말이에요. ‘무작위로 만들어 팔겠다’는 심 작가의 포부도 들어있는 네이밍이죠. 로고 역시 흰색 배경에 심플하게 영어로 ‘MUJAGI’라고 적힌 게 다예요. 순백의 제품들은 ‘여백의 미’를 담은 한국의 백자, 청자와 닮아 있기도 하죠. 


어디에 두어도, 어떤 용도로 써도 어울리는 무자기를 코엑스에서 열린 테이블웨어 박람회에서 론칭했어요. 그런데 초반에는 ‘또 실패했다’는 절망감에 빠져야 했죠. 


“준비하는 데에만 1년이 걸렸고, 800만원을 넘게 들였는데 박람회 매출이 400만원도 안 됐으니까요. 그때 대학 앞의 반지하 방에서 살았는데, 가만히 누워 있으니까 침대가 점점 지하 2층, 지하 3층으로 끝도 없이 꺼지는 기분이었어요. 내가 안 되는 걸 붙잡고 있었구나, 생각했죠.”


하지만, 심 작가의 진심은 어디 가지 않고 그대로 돌아왔어요. 박람회가 끝나고 다시 아르바이트 인생을 전전했던 심 작가에게 한 두 곳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거래처가 생기고, 숍들에 입점을 하기 시작했죠. 1년 째에 4,000만원이었던 매출은 2년 째에 3억원이 됐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리빙 제품에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2023년에는 20억원의 매출을 웃돌았죠. 2024년 매출은 30억원을 예상하고 있어요.


해방촌 무자기 쇼룸 ⓒ시티호퍼스


해방촌 무자기 쇼룸 ⓒ시티호퍼스



#2. 고급화는 가격이 아니라 취향에서 나온다


무자기는 다른 도예 브랜드와 무엇이 달랐을까요? 처음 박람회에 나갔을 때 심 작가가 느꼈던 것은 ‘젊은 도예 브랜드가 없다’는 거였어요. 도자 문화 자체가 생소한 때였죠.


“사실 한국의 도자 문화는 이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도자기 하면 청자나 백자 같은 전통 공예만 생각나지, 주방에서 도자기 제품을 사용하게 된 지 얼마 안 됐죠. 제가 성장하며 경험해온 문화도 ‘한국도자기’같은 큰 도자기 회사에서 결혼할 때 신혼 부부 세트 맞춰서 평생을 갖고 사는 문화가 전부였어요. 저는 학생 때부터 늘 어떻게 하면 도자기 문화를 더 대중적으로 알릴 수 있을까 고민했죠.”


도자기 문화를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 도자기 제품을 주방에서 쓰도록 해야 한다. 이게 바로 무자기의 첫 번째 미션이었어요. 그래서 ‘수제품은 비싸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났죠. 무자기의 제품은 1만원대에서부터 시작해요. 근본적으로 수공예품이지만, 숙련된 작업장과의 협업으로 일주일에 약 4,000개 제품을 생산해내고 있어요. 현재 경기도 여주와 이천 소재의 작업장에서 제품을 만들고 있죠. 심 작가 역시 여전히 직접 제품을 생산하고요.


ⓒ무자기


이천 작업장 ⓒ무자기


하지만 대중적이라고 해서 디테일을 놓쳐서는 안 돼요. 심 작가가 대중에 알리고 싶었던 도자 문화는 ‘양산형 도자기 제품을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여유 있는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도자기 제품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판매 방식과 디자인에서 그 의미를 알 수 있어요.


“단적으로, 저희는 ‘세트 상품’을 만들지 않아요. 1인 세트가 전부죠. 보통의 테이블 웨어 브랜드에서는 밥그릇, 굿그릇, 수저세트, 찬기. 이런 구성으로 2인 세트~4인 세트를 만들어 팔아요. 수익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더 나은 판매 방식이죠. 하지만 저희는 수익적인 면은 포기하더라도, 세트 문화로 인해 라이프스타일이 획일화되는 걸 지양하고 싶었어요. 나만의 취향대로 그릇을 모으고, 나만의 용도로 사용하는 ‘취향 문화’야 말로 고급화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봤거든요.”


또한 무자기는 제품명에도 쓰임새를 포함하지 않아요. 보통은 ‘찬기’, ‘종기’ 등의 쓰임새가 이름에 붙기 마련이지만, 그 대신 무자기의 제품에는 넘버링이 붙죠. ‘플라워 19’ 등으로요. 사이즈 역시 S, M, L로 표현하고요. 


용도를 정해두지 않는 철학은 제품 디자인으로 이어져요. 대표 제품인 ‘플라워 19’는 19잎의 국화꽃 모양을 한 꽃접시예요. 반찬을 담아도 좋고, 앞접시로 사용해도 괜찮죠. 한국의 우수문화상품으로 지정된 ‘무자기 부채 접시’와 ‘무자기 부채 스푼’은 합쳐 놓으면 한국 전통 부채 모양이 돼요. 스푼은 정말 스푼으로 써도 되지만, 수저 받침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어요.


‘플라워 19’ ⓒ무자기


‘무자기 부채 접시’와 ‘무자기 부채 스푼’ ⓒ무자기



용도를 정해두지 않아도 무자기의 그릇이 감도 높아 보이는 이유는 디테일에 있어요. 무자기라는 브랜드는 90%가 도예 문화를 알리기 위한 대중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나머지 10%는 예술품으로서의 작가성으로 채워져 있죠.


“이 10%를 놓치지 않아야 무자기의 감도를 지킬 수 있어요. 가령, ‘무자기 라이스 볼’은 고객 분들이 크기를 헷갈려 하셔서 유일하게 쓰임새를 이름으로 표기한 제품인데요. 디자인은 대중적이지 않죠. 안쪽은 코팅이 되어서 유광인 반면, 겉면은 코팅 없이 무광이에요. 도자기의 질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죠. 이렇게 만들면 공정이 어렵기 때문에 수익성도 안 좋고, 사용할 때에도 이염을 조심하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디자인은 세상에 꼭 내놓아야 한다’는 마음이 드는 제품이라면 반드시 제작해요. 그 고집이 무자기만의 감도를 만들기 때문이에요.”


그 외에도 바닥 부분만 살짝 둥그스럼한 컵, 실제 꽃잎의 거친 질감까지 표현해낸 꽃잎접시, 문창살 모양의 손잡이를 한 머그 컵… 무자기의 제품들은 얼핏 보면 단순하지만 가까이서 들여다 보면 하나하나 공정이 까다로운 디테일이 숨어 있어요. 그게 바로 무자기 제품의 매력을 만드는 디테일이죠.


‘무자기 라이스 볼’ ⓒ시티호퍼스


‘무자기 꽃잎접시’ ⓒ무자기


‘무자기 머그컵’ ⓒ무자기


디테일은 각 제품만의 매력을 만들고, 이 매력은 그릇을 하나하나 수집하는 취향으로 이어져요. 그게 바로 무자기가 의도했던, ‘취향의 고급화’ 문화로 연결되고요. 


“저희 제품은 하이엔드의 미쉐린 레스토랑에서도 사용하고, 그냥 동네 식당에서도 사용해요. 그 모습을 볼 때가 제일 뿌듯하죠. 비싼 그릇이 제일 좋다, 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우리 메뉴가 돋보이려면 이 제품이 좋아’, ‘우리 집 김치볶음밥에는 이게 딱 맞아’, 하는 마음으로 취향껏 도자기 그릇을 모으는 문화가 생기고 있는 거니까요.”


취향을 통한 고급화 전략은 컬래버레이션에도 녹아있어요. 국립중앙박물관과의 ‘청자 잔세트’ 협업에서는 각기 다른 모양의 청자를 본뜬 술잔 세 개를 제작했고, 2024년 2월에 있었던 막걸리 브랜드 ‘복순도가’와의 협업에서 역시 모양이 다른 두 개의 술잔이 세트로 판매됐어요.


“사실 전혀 다른 모양의 제품을 세트로 구성하는 건 위험해요. 소비자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두 배로 늘어나는 거니까요. 그럼에도 이런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취향이 우선이 되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서예요. 복순도가와의 협업 역시 ‘막걸리 잔의 고급화’를 노렸죠. 보통 막걸리 잔이라고 하면 양철로 된 잔만 떠올라요. 저희는 조금 더 우리 것인 막걸리 술 문화를 고급화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에 없던 도자기 막걸리 잔을 선보였어요.”


국립중앙박물관과 협업한 ‘청자 잔세트’ ⓒ무자기


복순도가와 협업한 막걸리잔 세트 ⓒ무자기


민화 작가 ‘퍼민’, 스타벅스와 협업한 머그잔 ⓒ스타벅스


국립중앙박물관, 복순도가뿐 아니라 무자기는 다양한 협업을 통해 ‘취향에서 시작되는 고급화’ 문화를 퍼트리고 있어요. 국립현대미술관, 아모레뮤지엄, 지난 5월에는 글로벌 브랜드인 스타벅스와도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죠.


“무자기를 오픈할 때만 해도 ‘영(young)’한 도자기 브랜드는 찾기 힘들었어요. 지금은 많은 브랜드가 생겨나고 있죠. 그들을 꺾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젊은 도자기 브랜드가 더 많이 생겨나야 한다고 보죠. 물론 도자기 브랜드를 운영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도자기를 더 많이 알려야 가정집 주방에서도 도자기 제품을 흔하게 볼 수 있는 문화가 생겨날 테니까요.”



#3. 경험을 판매하면 문화를 만들 수 있다


취향으로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무자기. 하지만, 취향을 만드는 게 어디 쉽나요. 초기에만 해도 고객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이건 어디에 쓰는 그릇이에요?”였어요. 고객들이 쓰임새보다는 취향에 따라 그릇을 구매하길 바랐지만, 이미 고착화되어 있는 테이블 웨어 문화를 바꾸기란 쉽지 않았죠.


“지금도 백화점에 입점 하면 항상 이런 얘기를 들어요. ‘대표님, 세트 만드셔야 해요. 한국 사람들은 정해주는 거 좋아하지, 아직 하나하나 골라서 쓰는 문화는 한국에서 어려워요’.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무자기만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요. 수익보다 브랜드 코어를 지켜내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땐 더 이득이기 때문이에요. 결국 우리가 하려는 건 문화를 만드는 거니까요.”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품을 판매하기 이전에, 그 제품을 사용하는 방식과 철학을 알려야 했어요. 그래서 론칭하고 1년 가량 지난 2020년부터 해방촌 쇼룸 한 쪽에서 ‘무자기 카페’를 운영했죠. 무자기의 제품을 체험할 수 있도록, 모든 메뉴가 무자기 그릇, 잔에 담겨 나와요.


그렇게 시작한 무자기 카페를 2023년에 본격화했어요. 무자기 카페의 문을 잠시 닫고 카페 브랜드 ‘카페 무원’을 오픈한 거예요. 무원은 현재 역삼점과 서울역점, 두 곳이 운영되고 있는데요. 무원에서는 무자기를 더욱 또렷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무원에서만 사용하는 식기 제품을 따로 만들고, 메뉴 역시 무자기의 제품과 결이 맞도록 ‘약과모나카’ 등 한국 전통 다과를 베이스로 한 디저트를 판매하죠. 물론 아메리카노같은 기본 메뉴도 도자기 잔 제공하고요. 


ⓒ무원


ⓒ무원


ⓒ무원


특징적인 점은 매장 한 편에 자리 잡고 있는 전시 공간이에요. 마치 도예 작품을 전시해 놓은 갤러리 같은 모습이죠. 역삼점의 경우 45평 크기에 50석 정도의 자리가 놓여 있는데요. 전시 공간만 줄여도 20석이 더 나올 텐데, ‘무자기 카페’ 때와 마찬가지로 매출을 포기하고 경험을 선택한 결과죠.


“카페를 매출의 공간으로 본 적은 없어요. 무자기 카페를 운영할 때에도 수익은 전혀 안 나오는, 유지만 되는 정도였죠. 수익성보다 도자 문화를 경험하도록 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역시, 건물 관리단과의 갈등은 어쩔 수 없어요. 이들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좌석을 더 많이 놔서, 매출을 올려야 하니까요. 그래서 심 작가는 늘 수익성과 철학 사이에서 고민하는 중이죠. 아직까지는 철학에 한 표를 더 얹고 있지만, 언제까지 가능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요.


ⓒ무원


ⓒ무원


그럼에도 무자기가 여전히 세트 상품을 만들지 않고, 카페 공간에다가 갤러리를 만드는 이유는 하나예요. 무자기는 제품을 판매하기 이전에 무자기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전파하는 게 가장 큰 미션이기 때문이죠.


“무자기는 경험과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하고 싶어요. 여유 있는 삶과, 일상의 순간순간 아름다운 포인트를 알아가는 라이프스타일이요. 직원들에게 늘 하는 얘기가 있어요. 인생은 ‘구슬꿰기’라고요. 살면서 행복을 찾는 순간들은 대단한 게 아니라 비 오는 날 방에 앉아서 따뜻한 커피 한 잔 먹고, 영화 한 편 보는 순간이거든요. 그런 순간들을 구슬처럼 하나하나 꿰어서 만들어지는 게 ‘행복한 삶’이고요. 우리가 인생을 다 살았을 때 구슬 목걸이의 크기가 얼마나 크냐에 따라 그 사람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 정해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무자기는 구슬을 꿰기 위한 매개체의 역할로서 존재해야 하죠. 예쁜 그릇을 보면 사람들을 초대해서 음식을 해먹고 싶고, 예쁜 컵을 보면 차라도 한 잔 내려 마시고 싶잖아요. 그런 일상의 구슬들을 만들고 싶어지는 매개체가 되는 게 무자기의 목표예요.”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기 위해, 무자기는 영역을 넓히고 있어요. 2024년 1월, 스타필드 수원점에 두 번째 매장을 오픈하면서 ‘무자기 홈’으로 브랜드를 확장했죠. 처음으로 도자 제품이 아닌, 유리 컵을 출시했고요. 앞으로는 주방 세제, 수세미 같은 주방 용품도 출시할 예정이라고 해요. 무자기가 단순히 ‘도자기 그릇 브랜드’에서 벗어나, 실제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되어가고 있는 거죠.


스타필드 수원점에 입점한 무자기 홈 ⓒ무자기


스타필드 수원점에 입점한 무자기 홈 ⓒ무자기



27살 청년이 만든 브랜드가 싹을 틔우기까지


2019년에는 심 작가 혼자 제품도 만들고, 주문도 받고, 택배도 쌌던 무자기가, 이제는 카페 직원들까지 약 25명 이상이 일하는 어엿한 회사가 됐어요. 이제 무자기는 한국에 도자기 문화를 알리는 데에서 나아가, 해외를 바라보고 있죠. 우선 오는 2024년 9월 열리는 세계 최대 실내 장식 박람회 프랑스 메종&오브제에 참가를 준비 중에 있어요.


“헤리티지 있는 국내 브랜드가 해외에 나가서 자리를 잡은 사례는 많지 않아요. 특히 도자기 브랜드는 더욱 그렇고요. 이번 메종 박람회에서 해외에 발을 뻗어보고, 글로벌 브랜드로서 이름을 알리고 싶은 게 지금의 욕심이에요.”


다만, 심 작가는 무자기를 아직 새싹 같은 브랜드라고 말해요. 갈 길이 멀다는 뜻이죠.


“2024년에 들어서야 무자기가 조금씩 브랜드로서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5년이 걸려, 드디어 싹을 틔운 거예요. 사실 가장 위험한 시기이기도 해요. 이 싹이 바로 썩어버릴지, 뿌리를 잡고 잘 자랄지 결정되는 시기이니까요. 이 중요한 시기에, 제대로 싹이 뿌리를 내리려면 무자기가 갖고 있는 가치관을 내려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계속 수익성과 가치관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하겠죠. 어렵지만, 뿌듯해요.”


심 작가는 “세상에 없던 걸 만들어내는 일”을 사랑한다고 해요. 흙을 손으로 빚어서 아름다운 그릇으로 만드는 일, 세상에 없던 브랜드를 만드는 일이 모두 그렇죠. 그래서 심 작가는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계속 그릇을 만들고 있을 것 같다고 말해요. 한 청년이 27살의 나이로 만든 이 도자기 브랜드는 가까운 미래에 한국을 대표하는 리빙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요? 앞날이 더 기대되는 브랜드예요.


ⓒ시티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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