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가격이 365일 동일한 이유, 고객 관점에서 경험을 설계하라

무지 호텔

2023.03.13

호텔 가격은 어떻게 정해질까요? 위치, 브랜드, 호텔 등급, 서비스, 방 타입, 투숙 시기, 예약 시점, 예약율 등 호텔 가격을 결정하는 변수는 다양해요. 그런데 이를 크게 구분해보자면 상수적 요소와 변수적 요소로 나눌 수 있어요.


상수적 요소는 위치, 브랜드, 호텔 등급, 서비스, 방 타입 등을 말해요. 이런 요소는 잘 바뀌지 않죠. 그래서 상수적 요소가 호텔의 가격대를 결정해요. 물론 상권의 트렌드에 따라 위치의 가치가 달라지고, 브랜드도 가치가 올라가거나 내려갈 수 있고, 서비스 퀄리티도 바뀔 수 있어요. 하지만 변하더라도 시간이 걸리죠.


변수적 요소는 투숙 시기, 예약 시점, 예약율 등이에요. 수요의 증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거예요. 이러한 요소를 고려해 가격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수익성이 크게 달라져요. 호텔은 고정비가 큰 비즈니스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객실 가동률을 높일수록 수익이 크게 증가하니까요.


그런데 여기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가격 체계를 바꾼 호텔이 있어요. 바로 ‘무지 호텔’이에요. 이곳에서는 투숙 시기, 예약 시점, 예약율 등에 관계없이 가격이 동일해요. 이유가 뭘까요? 힌트는 고객 관점에서 고객 경험을 설계한 데 있어요. 그리고 이 고객 중심의 고객 경험을 호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죠. 하나씩 살펴볼까요?


무지 호텔 미리보기

 호텔 가격이 365일 동일한 이유

 웰컴 키트에 호루라기가 들어 있는 이유

 카드키에 지도가 그려져 있는 이유

 콘센트를 지그재그로 배치한 이유

 조식 뷔페 그릇 크기가 제각각인 이유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도쿄에 갈 때마다 들렀던 곳이 있었어요. 무인양품 유라쿠초점이에요. 서울에도 무인양품 매장이 여기저기 있는데, 굳이 도쿄까지 가서 무인양품 유라쿠초점을 찾아간 이유가 뭘까요? 전 세계에 있는 무인양품 매장 중에 최대의 플래그십 스토어여서예요. 단순히 규모만 컸다면, 매번 찾아갈 필요까진 없었을 거예요. 하지만 이곳에선 무인양품의 최신 시도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죠.


한 번은 무인양품 유라쿠초점에 갔더니 진풍경이 펼쳐져 있었어요. 계산대 앞에 줄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죠. 20~30%의 깜짝 할인 행사를 했기 때문이에요. 물론 무인양품이 일시적인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 전례를 찾기 어려운 세일 행사를 했을 리 만무해요. 유라쿠초점의 문을 닫고 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동안의 성원에 대한 고마움과 영업 종료로 인한 미안함을 전하면서 재고 소진을 하기 위해 파격적인 할인을 한 거예요.



ⓒ시티호퍼스


2018년 11월에 문을 닫았던 무인양품 유라쿠초점은, 약속했던 대로 2019년 4월에 무인양품 긴자점으로 돌아왔어요. 새롭게 오픈한 플래그십 스토어는 더 탄탄해진 모습이었어요. 우선 매장 규모를 확장했어요. 긴자점 연면적은 4000m2 정도인데, 이는 유라쿠초점 대비 15% 가량 커요.


구성도 달라졌어요. 층당 면적이 넓고 3층으로 구성되어 있던 유라쿠초점과 달리 긴자점은 층당 면적이 상대적으로 좁아 총 6개 층을 사용하고 있었어요. 특히, 1층을 식료품 중심으로 구성해 마트처럼 꾸몄고, 지하 1층은 식사를 할 수 있는 'Muji diner'로 채웠어요. 먹거리로 잦은 방문을 유도하겠다는 뜻이에요.



ⓒ시티호퍼스



호텔 가격이 365일 동일한 이유

가장 큰 변화는 6층에 있었어요. 무지 호텔이 들어섰거든요. 중국의 선전과 베이징에 이어 전 세계 세 번째이자 일본 최초예요.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졌듯 무지 호텔은 의, 식, 주의 총체적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호텔이에요. 무인양품 제품으로 채워진 호텔 방에서 숙박을 하면서 무인양품의 제품을 직접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전략적 의미가 있죠. 그래서 호텔의 컨셉을 잡을 때도 무인양품의 제품을 기획할 때처럼 접근했어요.



ⓒ시티호퍼스


“너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호텔을 생각했어요. 중국 출장을 갈 때마다 지나치게 넓은 방에 묵었는데, 썩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직원에게 좀더 작은 방은 없느냐고 물었지만 그런 방은 없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죠. 방이 넓고 고급스러워 부담스럽거나, 면적이 마음에 들면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뿐이었어요.적당하고 담백한 호텔을 떠올리게 됐죠.”

-가나이 마사아키, 무인양품 회장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도출한 컨셉이 ‘Anti-gorgeous, Anti-cheap (너무 화려하지 않은, 너무 저렴하지도 않은)’이에요. 그래서 무지 호텔은 이것으로 충분한 공간을 구성하고, 이것으로 충분한 가격을 설정했죠. 그런데 무지 호텔의 호텔 가격을 살펴보면 또 다른 무지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어요.


보통의 경우 호텔 가격은 시즌의 수요에 따라 달라져요. 어쩌면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인데, 무인양품은 여기에 문제의식을 가졌어요. 수요에 따라 무인양품 제품의 가격이 실시간으로 바뀌는 게 아니듯이, 호텔도 하나의 상품이니 가격이 달라져선 안된다는 거예요. 고객 관점으로 보면 그게 더 설득력 있는 방식이죠. 그래서 무지 호텔은 성수기건 비수기건 관계없이 같은 룸타입이라면 가격이 동일해요.


하지만 이런 특징으로 무지 호텔을 설명하기엔 불충분해요. 무지 호텔에서의 고객 감동은 전략적 의미가 아니라 고객 경험 설계에서 나오니까요. 어떤 점이 무지 호텔을 무인양품스럽게 하는지 무지 호텔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씩 설명 드릴게요.



웰컴 키트에 호루라기가 들어 있는 이유

우선 체크인을 하면 웰컴 키트를 제공해줘요. 어떤 기념품일지 기대를 하면서 키트를 열어보니 의외의 물건이 들어있었어요. 호루라기와 지도예요. '왜 호루라기를 웰컴키트로 주지?'라는 의문을 가지고 지도를 펼쳤는데, 지도를 보면서 금세 이유를 알 수 있었죠.



ⓒ시티호퍼스


호텔 주변에 방문할 만한 곳들을 추천해주는 지도가 아니었어요. 병원, 경찰서, 재해발생시 피신할 수 있는 화장실 등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필요한 곳들을 표시해 둔 지도였죠. 지도 하단엔 이름, 혈액형, 연락처 등을 기재할 수 있는 칸을 마련해두어, 혹시라도 정신을 잃은 채 발견되었을 때 발견자가 기본 정보를 알 수 있게 만들었어요.


안전제일을 외치는 지도와 함께 있으니 호루라기의 역할도 분명해 보여요. 호신을 해야할 일이 있거나 위험을 알려야 할 때 사용하라는 뜻이에요. 물론 여행자들에게 지역의 명소를 추천해주는 것도 도움이 되는 일이에요. 하지만, 무지 호텔은 그것보다 안전을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안전이라는 기본적인 요소가 충족될 때 여행의 가치도 높아질 수 있으니까요.



카드키에 지도가 그려져 있는 이유

웰컴 키트를 받고난 후, 호텔 방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어요. 방을 찾기 위해 복도를 지나다가 무지 호텔의 고객 중심적인 접근에 또 한 번 감탄하게 되죠.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방 번호가 문 앞이 아니라 문 옆면에 표시되어 있어요. 이렇게 방 번호가 보이게 하니 문 앞까지 가지 않고도 복도를 걸으면서도 찾는 방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어요.



ⓒ시티호퍼스


호텔 방을 찾은 후 문을 열기 위해 키카드를 꺼냈다가 또 다른 특징적인 점을 발견했어요. 보통의 키카드와 달리 키카드에 무지 호텔 위치가 표시된 지도가 있었어요. 심플함을 강조하는 무인양품인데 어떤 이유에서 키카드에 지도를 그려놓았을까요?



ⓒ시티호퍼스


이 또한 고객 입장에서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이에요. 왜 해외 여행할 때 그런 경험 한 번쯤 있잖아요. 호텔 이름이 뭔지 잘 기억이 안나 호텔로 복귀할 때 애를 먹었던 경험 말이에요. 그런데 키카드에 호텔 위치를 표시해 두면 귀가할 때 길을 잃을 가능성이 줄어들어요. 키카드는 호텔 방을 나설 때 반드시 챙기는 물건이니까요.


구글 지도 등이 있는데 카드 위에 약식으로 그려진 지도를 볼 일이 있냐고요? 물론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보는 게 더 정확해요. 하지만 스마트폰 배터리가 없을 때 키카드 위의 지도가 제역할을 할 수 있어요. 또한 연세가 높은 분들 중에는 구글 지도를 못쓰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들에게는 키카드 위의 지도가 유용할 수 있고요.



콘센트를 지그재그로 배치한 이유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니 무인양품에서 판매하는 물과 차는 물론이고, 과자 등의 간식류도 탁자 위에 놓여 있었어요. 모두 무료예요. 무인양품에서는 제품만 사봤지 음료나 과자를 구매한다는 생각을 못해봤는데, 무료로 제공해준 덕분에 무인양품의 음료와 과자를 처음으로 먹어봤어요.


그뿐 아니라 면도기, 슬리퍼, 노트, 볼펜 등 호텔에서 가져가도 괜찮은 것들을 리스트로 적어두었어요. 덕분에 호텔 물품인지 무료 제공 어매니티인지를 고민하거나 가져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사이에서 갈등할 필요가 없어져요. 사진에서 보듯이 공짜로 가져가도 되는 것들이 한가득이에요. 선물을 받은 듯 괜히 기분이 좋아지죠.


ⓒ시티호퍼스


방 안을 둘러보다가 고객 입장에서 생각한 또다른 결과물을 마주칩니다. 책상에서 노트북 등으로 작업을 할 때 충전을 위해 콘센트를 꽂을 일이 있잖아요. 그런데 콘센트 부분을 덮개가 있는 홈으로 파 놓아 어댑터나 선정리 등을 깔끔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시티호퍼스


이 때 무지 호텔은 한 번 더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요. 콘센트의 접속 부분이 어댑터 등과 일체형으로 되어 있는 경우 얕은 홈 때문에 콘센트에 코드를 꽂기 어려워지는데요. 이를 고려해 콘센트를 가로형 하나와 세로형 하나로 구성해 두었어요.



조식 뷔페 그릇 크기가 제각각인 이유

이정도로 충분할 법한데, 무지 호텔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아침에 조식을 먹으러 식당에 갔다가 고객 중심적인 무지 호텔의 배려에 또 한번 감탄하게 되죠. 뷔페식으로 음식을 덜어먹는 방식이야 다르지 않았지만, 음식을 담는 그릇이 달랐어요.



ⓒ시티호퍼스


보통은 하나의 큰 접시에 여러 음식을 담잖아요. 그런데 무지 호텔에서는 크기가 다른 여러 그릇에 음식을 담을 수 있게 했어요. 하나의 큰 접시에 여러 음식을 담으면 음식이 섞여 제맛을 느끼기 어려우니까요. 물론 이렇게 하면 구비하고 관리해야 할 접시가 늘어나요. 그 뿐만 아니라 설거지 양도 늘어 운영의 복잡성이 높아지죠. 하지만 무지 호텔은 운영 난이도보다 고객의 온전한 경험을 택한 거예요.


여러 매체를 통해 알려졌듯 무지 호텔은 의, 식, 주의 총체적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호텔이에요. 무인양품 제품으로 채워진 호텔 방에서 숙박을 하면서 무인양품의 제품을 직접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전략적 의미도 있고요. 


이러한 전략적 의미도 중요하지만, 결국 무지 호텔을 무지 호텔답게 혹은 무인양품스럽게 만드는 건 고객 입장에서 생각한 고객 경험 설계였어요. 화려하지 않아도, 고급스럽지 않아도, 스케일이 크지 않아도 무지 호텔이 돋보이는 이유예요.

나머지 스토리가 궁금하신가요?

시티호퍼스 멤버십을 시작하고
모든 콘텐츠를 자유롭게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