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예요. 그런데 그는 이제 직업으로서 소설을 쓰는 것을 넘어 소설가로서 전설을 쓰고 있어요. 책의 인기, 문학상 수상 등은 전설의 시작일 뿐이에요. 2021년 가을, 그의 모교에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가 생기면서 살아있는 전설의 반열에 올라섰죠.
그냥 라이브러리에 그의 이름만 가져다 붙인 정도가 아니에요. 캠퍼스 한 동을 그를 위한 공간으로 통째로 리모델링 했어요. 여기에다가 다른 분야의 전설들의 참여하며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의 가치를 한껏 더 빛냈죠.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을 디자인한 세계적인 건축가 ‘구마 겐고’가 리모델링 디자인을 맡았고, 12억엔(약 120억원)원 정도의 리모델링 비용을 유니클로의 회장인 ‘야나이 다다시’가 냈거든요.
이렇게 오픈한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는 외관부터 파격이에요. 건물에 터널을 설치했죠. 구마 겐고가 아무 이유 없이 터널을 설치하진 않았을텐데, 그렇다면 책과 터널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 걸까요?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 미리보기
• 세계적인 건축가가 건물 안팎으로 터널을 설치한 이유
• 작품을 넘어 작가의 취향까지도 전시한다
• 아는 만큼 혹은 알고 싶은 만큼 보이는 공간의 요소
• 오래된 어제는 새로운 오늘의 씨앗
세계에서 이용객이 가장 많은 지하철역은 어디일까요? 도쿄에 있는 신주쿠역이에요. 하루 승하차 인원만 약 380만명. 약 900만명의 사람들이 매일 도쿄 지하철을 이용하니, 이용객의 40%는 신주쿠역을 들르는 셈이에요. 참고로 서울에서 이용객수가 가장 많은 지하철 2호선 전체 역의 하루 이용객수인 222만명보다 많죠.
사람들의 발길이 모이는 곳이니, 자연히 광고의 격전지이기도 해요. 여기저기서 옥외 광고를 만날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광고가 있어요. 지하 통로를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걸려 있는 도쿄에 대한 광고 포스터예요. 세로로 이분할 된 레이아웃에는 위아래로 다른 이미지가 들어있어요. 마네키네코(복고양이)와 헬로키티, 화려한 머리 장신구를 얹은 여인을 그린 유키요에(일본풍의 목판화)와 하츠네 미쿠(가상의 가수 캐릭터) 등 종류가 다양해요. 이미지는 다르지만 가운데 쓰여 있는 문구는 모두 같아요. 큰 글씨는 ‘Tokyo. Tokyo’, 작은 글씨는 ‘Old meets New’ 로요.
‘Tokyo. Tokyo’는 같은 단어가 빨간 점을 가운데 두고 각각 굵은 붓글씨와 반듯한 고딕체로 쓰여 있어요. 그리고 빨간색 점으로 되어 있는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시부야 크로싱의 건널목이 그려져 있죠. 전통과 혁신을 잇는다는 뜻이에요. 이는 슬로건 ‘Old meets New’로 한 번 더 강조되고요.
이 로고와 슬로건은 도쿄가 관광객 대상으로 기획한 브랜딩 사업의 일환이에요. 2018년부터는 에도에서 도쿄로 개칭한 지 150년 된 기념으로 지역 곳곳에서 행사를 개최하거나 포스터 등 PR 자료를 설치했어요. ‘행운의 고양이’의 계보가 앞발을 번쩍 든 마네키네코에서 한쪽 귀에 리본을 단 헬로키티로 이어져 온 것처럼, 도쿄는 에도 시대의 전통이 현재까지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해요.
ⓒTokyo Tokyo
그리고 ‘Old meets New’의 관점으로 도쿄를 들여다보면 곳곳에서 과거를 재해석해 현재와 이어지는 공간들을 만날 수 있어요. 이번에 소개할 ’와세다대학 국제문학관‘도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 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곳이죠. 1969년에 지어진 건물을 리모델링해 2021년 가을에 개관했는데요. 와세다대생이 아닌 외부인에겐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이하 하루키 라이브러리)로 더 잘 알려져 있어요.
일본의 ‘국민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기증한 친필 원고와 서적, 음반 등 1만여 점의 자료를 모아놓은 곳이거든요. 유니클로 회장 야나이 다다시가 모든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하고, 2021 도쿄 올림픽 스타디움 건축물을 총지휘한 구마 겐고가 리모델링 설계를 맡으며 더욱 주목받게 됐고요.
세계적인 건축가가 건물 안팎으로 터널을 설치한 이유
세계적인 건축가의 솜씨는 외관에서부터 눈길을 사로잡아요. 새하얀 직육면체 건물과 대조되는 입구 쪽의 구불구불한 터널 때문인데요. 올림픽 스타디움과 마찬가지로 삼나무를 사용했고 여기에 철골을 더해 흐르는 듯한 곡선을 연출했어요.
구마 겐고는 무라카미의 작품을 ‘입구를 지나면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구조’라고 봤어요. 삼나무 터널은 외부에서 작가의 세계관이 응축된 공간으로 인도하는 요소인 거죠. 그는 방문객들의 하루키 라이브러리에서의 경험이 이 터널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에 매우 공들여 설계했어요. 어느 정도로 신경을 썼는지 건설 현장 매니저의 이야기를 들어볼게요.
“자세히 보면 터널의 곡선들은 두께가 조금씩 달라요. 처음 설계했을 때는 다 같았는데, 터널을 지탱하는 철근이 너무 잘 보이는 것 같아 수정했죠.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부분의 두께를 넓게 만들었어요. 철근도 어두운색을 쓰지 않고 최대한 터널의 곡선을 따라 디자인했고요.”
ⓒKengo Kuma & Associates
건물 외관부터 이렇게 세심한 파격을 준 데는 이유가 있어요. 이 건물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와세다대 재학 중에 자주 오갔다는 연극박물관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그에 따르면 원래 “너무 평범해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이에 대해 구마 겐고는 “평범함을 끄집어내어 스타일리쉬하게 만드는 게 이번 건축의 주제이자 무라카미 문학의 주제”라고 이야기했어요.
50년이 넘은 평범한 건물에 구마 겐고가 덧입힌 특별함은 내부로도 이어져요. 입장하자마자 지하 1층부터 2층 천장까지 이어져 있는 거대한 책장을 마주하게 되거든요. 하루키 라이브러리의 상징인 ‘계단 서가(Stair Bookshelf)’는 계단을 중간에 두고 양쪽에 벽 대신 책꽂이가 위치한 공간이에요. 한쪽엔 무라카미 작품과 작가의 세계관을 느낄 수 있는 비슷한 테마의 책들이 꽂혀 있어요. 다른 쪽에서는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세계 문학’을 주제로 큐레이션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죠.
ⓒKengo Kuma & Associates
주제는 주기적으로 바뀔 예정이지만, 개관 이래로 지금까지는 ‘당신에게 세계 문학이란?’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여러 작가와 영화 감독들이 큐레이션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어요. ‘세계’ 문학을 다루는 만큼 큐레이터들은 국적도, 활동 영역도 다양해요.
예를 들어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밀양’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이창동 감독도 5권의 책으로 계단 서가의 한 구역을 차지하고 있어요. 그가 추천한 작품은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나인 스토리즈>, 레이몬드 카버의 <대성당>,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예요. 큐레이터와 작품 설명은 일본어와 영어 두 가지로 간결하게 쓰여 있어 해외 관광객도 큰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어요. 방문객들은 계단 서가에서 원하는 작품을 뽑아 층마다 있는 소파에서 편히 읽을 수 있고요.
외부의 터널과 마찬가지로, 계단 서가의 아치형 터널 역시 섬세한 설계를 거쳤어요. 여러 층을 아우를 정도로 크고 경사진 공간이 부드럽고 우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자재와 마감 때문이에요. 외부의 터널에 자연광과 어우러지는 밝은색의 목재와 철근을 사용했다면, 내부의 터널에는 따뜻한 색의 조명과 어울리는 보다 차분한 색의 자재를 사용했어요. 따라서 색감이 쨍하거나 구조가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죠.
이음새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것도 한몫해요. 작은 나사까지도 목재와 같은 색으로 맞추거든요. 공간의 바닥을 담당하는 계단도 모두 나무판으로 만들어졌어요. 특이한 점은 판이 얇아 세련되게 보인다는 건데요. 그렇다면 오르내리는 사람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요? 무게를 견디기엔 얇아 보이는 이 계단의 비밀은 계단 아래에 철근이 든든히 받치고 있다는 거예요.
ⓒWaseda University
계단 서가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관에 입성하게 돼요. 구마 겐고의 건축 디자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와 그의 작품 세계로 집중력이 옮겨가는 느낌인데요. 그 전에, 마지막으로 터널의 의미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고자 해요.
구마 겐고는 가장 최근 저서, <구마 겐고, 나의 모든 일>에서 하루키 문학관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터널을 수차례 강조했어요. 그가 처음으로 구멍을 뚫은 건축을 디자인 한 건 ‘히로시게 미술관’이었어요. 뒷산 위에 세워져 있던 건물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미술관을 방문한 사람들이 산의 푸르름과 전시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했죠. 이유는 터널이 주는 본질적 매력에 있어요.
“구멍을 뚫어 탄생한 공간은 외부도 아니고 내부도 아닌, 지나치게 열려 있는 것도 아니고 지나치게 닫혀 있는 것도 아닌, 지켜지고 있는 느낌이 드는 한편 완전히 자유로운 분위기를 안겨주었다.”
-<구마 겐고, 나의 모든 일> 중
이후 그는 프랑스의 ‘브장송 예술문화센터’에도, 스코틀랜드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도 거리와 자연을 오갈 수 있는 커다란 구멍을 만들었어요. 하루키 문학관의 터널도 그 연장선 위에서 탄생했죠. 구마 겐고가 바라보는 ‘하루키 세계관’은 거리 한 모퉁이에서도 입구를 열면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다른 세상으로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니, 터널 구조를 한 건축물이야말로 이를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여기에다가 하루키 라이브러리의 사회적 역할도 담았는데요. 그의 설명을 들어볼게요.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구멍을 중심으로 20세기의 전형적인 콘크리트 상자였던 4호관을 캠퍼스 안의 오아시스로 재탄생시켰다. 코로나가 막을 내린 뒤에 대학의 캠퍼스가 지역과 사회에 개방되어 일, 공부, 생활의 경계가 사라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구마 겐고, 나의 모든 일> 중
ⓒKengo Kuma & Associates
작품을 넘어 작가의 취향까지도 전시한다
드디어 설계자의 기획 의도에 따라 ‘하루키 월드’에 입성했어요. 하루키 라이브러리는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있고, 일반인에게는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무료로 개방하고 있어요. 위에서부터 한 층씩 차례로 둘러볼까요?
2층은 크게 두 공간으로 나뉘어 있어요. 워크샵을 기획하거나 방송을 송출할 수 있는 연구실 겸 스튜디오(Lab/Studio), 그리고 다양한 주제로 전시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Exhibition Room)으로요. 개관 초기에는 ‘구마 겐고의 건축전’이 열렸어요. 건축 모형도, 설계 당시의 스케치, 그리고 건축 과정을 담은 사진들이 차례로 전시되었고요.
작년 10월부터는 ‘영어권과 그 너머를 위해 재출간된 현대 일본 문학(Contemporary Japanese Literature Repackaged for the Anglosphere and Beyond)’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요. 하루키를 비롯해 무라카미 류, 요시모토 바나나, 나카무라 후미노 등 일본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한 구역씩 차지하고 있죠. 각 작가의 작품들이 일본어 원문과 영어 번역본 버전으로 나란히 진열되어 있는데, 언어뿐만 아니라 책 크기와 표지 디자인 등의 시각적인 요소도 제각각이라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해요.
ⓒ이재인
1층도 두 공간으로 나뉘어 있는데, 갤러리(Gallery)와 오디오룸(Audio Room)이에요. 갤러리에는 하루키의 1979년 데뷔작부터 최신작까지 일본어 포함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작품들이 도서관처럼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어요. 연도별로 팻말이 붙어 있는 데다 대부분이 초판이기에 박물관의 작은 기획 전시를 보는 듯해요.
벽 한쪽에는 하루키의 작품을 발행 연대별로 정리해놓은 일람도 있어요. 또, 앞서 언급한 전시에서처럼 하나의 작품인데 국가별로 표지 디자인이 다른 버전을 모아놓은 구역도 있고요. 예를 들면, 입구 쪽에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6개국 버전으로 선반에 세워 놓았죠. 박물관처럼 작품 연대기를 따라 한 바퀴 둘러보고 난 뒤에는 도서관처럼 원하는 책을 뽑아 가운데에 있는 책상에서 읽으면 돼요.
ⓒKengo Kuma & Associates
책 읽는 라이브러리에 오디오룸이 있는 건 낯설어 보일 수 있어요. 그렇지만 구성을 보면 생각이 달라져요. 오디오룸에서는 빌리 홀리데이, 냇 킹 콜 등 작품에도 언급할 만큼 하루키가 즐겨 들었던 재즈 피아니스트나 가수의 음반이 전시되어 있거든요. 재즈 애호가인 하루키는 이십 대 중반부터 재즈바 ‘피터 캣(Peter Cat)’을 운영했고, 작년 초에는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라는 60년 가까이 수집한 클래식 음반과 100여곡의 작품을 소개한 책을 냈을 정도예요.
오디오룸에서는 하루키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들을 수 있고, 선반에서 각 아티스트에 대한 책을 꺼내와 소파에서 읽을 수도 있어요. 글을 쓰는 사람의 작품을 넘어 취향까지 공유할 수 있도록 구성했죠. 하루키가 팬층이 두꺼운 이유 중 하나는 위스키, 여행, 달리기, 티셔츠, 그리고 음악에 대한 그만의 취향을 글로도 풀어내어 많은 이들이 함께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인데요. 하루키 라이브러리는 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거예요.
ⓒWaseda University
아는 만큼 혹은 알고 싶은 만큼 보이는 공간의 요소
하루키의 취향을 담은 공간은 지하 1층에서도 만날 수 있어요. ‘오렌지 캣(Orange Cat)’이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거든요. 위에서 언급한 ‘피터 캣’과 이름도 비슷한데다, 하루키가 학창 시절에 재즈바를 운영했던 것처럼 와세다대 학생들끼리 운영하는 카페예요. 카페 안쪽의 기다란 나무 테이블과 검은색 시트의 의자들은 실제로 하루키의 자택에서 사용되고 있던 거고요. 또한, 메뉴 역시 하루키 작품에서 종종 등장하는 카레와 도넛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카페 옆에는 하루키의 서재를 재현해놓은 ‘작가의 작업실(Author’s Study)’이 있어요. 가구는 비슷한 것으로, 오디오 시스템은 하루키의 애장품과 동일한 기종으로 들여놓았어요. 입실은 불가하지만, 유리창 너머로 하루키의 집필 공간을 볼 수 있는 거죠. 1978년부터 쉼 없이 글을 써온 하루키는 생업으로서의 소설가는 어떻게 일하는지에 대한 답으로 2016년에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출간했어요.
그는 이 에세이에서 꾸준히 소설을 써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그만의 방법과 습관을 소개하는데요. 독자라면 이렇게나 규칙적인 루틴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를 구현해놓은 작업실은 작지만 일부 방문객에게는 어떤 공간보다도 특별하게 느껴져요.
“나는 매일매일 20매의 원고를 씁니다. 아주 담담하게. (중략)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 책상을 마주합니다. 하루에 20매의 원고를 쓰면 한 달에 600매를 쓸 수 있습니다. 단순 계산하면 반년에 3,600매를 쓰게 됩니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
하루키 라이브러리는 공간뿐만 아니라 소품에도 많은 공을 들였어요. 지하 1층에는 토성 모양의 커다란 네온 사인이 설치되어 있는데, 바로 <해변의 카프카>를 무대화한 연극에서 사용된 소품이에요. 카페에 있는 그랜드 피아노는 피터 캣에서 라이브 공연을 할 때 실제로 연주하던 거예요. 1층 갤러리의 한쪽 벽에는 <양을 쫓는 모험>에 등장하는, 양가죽을 뒤집어쓴 채 돌아다니는 ‘양 사나이’를 묘사한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어요. 다른 쪽에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티셔츠 삽화가 그려져 있고요.
그래서 하루키 라이브러리를 둘러보다 보면 ‘공간의 목적’과는 다른 모습으로 행동하는 방문객들이 많아요. 책이 전시된 곳인데 벽이나 의자 등의 소품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든가, 노래를 듣는 곳인데 노트와 펜을 꺼내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다든가 하는 모습으로요.
ⓒ이재인
오래된 어제는 새로운 오늘의 씨앗
세계적인 여행 잡지 ‘콘데 나스트 트래블러(Conde Nast Traveler)’는 2021년, 미국판과 영국판 모두에서 도쿄를 ‘세계 최고의 대도시(The Best Big Cities in the Worlds)’ 부문 1위로 선정했어요.** 참고로 미국판에서는 미국을, 영국판에서는 영국을 제외한 국가들의 도시가 후보였어요. 선정 이유로는 ‘전통적인 차분함과 강렬한 모던함’의 공존을 공통으로 꼽았어요.
이는 도쿄의 슬로건인 ‘Old meets New’와 일맥상통하는 내용이에요. 내부에서 기획한 도시의 이미지가 외부에 잘 전달되며 브랜딩에 성공한 거죠. 실제로 도시 곳곳에 전통을 품은 채 시대에 맞게 혁신을 거친 요소들이 많았기에 가능했고요.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도 그러한 건축물 중 하나예요. 건축 디자인의 측면에서는 낡고 평범한 건물에 터널이라는 요소를 더해 독특한 아름다움을 새롭게 입혔어요. 공간 기획의 측면에서는 도서관처럼 책을 편하게 구경하고 읽을 수 있게도, 박물관처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작품을 촘촘히 전시해놓기도, 테마파크처럼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카페와 소소한 포토스팟을 마련해놓기도 했죠.
‘강의’라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던 ‘Old’한 캠퍼스 내의 건물이 외부인들도 드나들 수 있는 ‘New’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이 사례 덕분에 도쿄의 브랜딩이 조금 더 단단해지지 않을까요.
Reference
• 도쿄 새 관광 브랜드 ‘Tokyo Tokyo Old meets New’ 발표, 동아닷컴
•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관 문 연다…동문 유니클로 회장 130억 기부, 한국경제
• <구마 겐고, 나의 모든 일>, 구마 겐고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