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G. 하이에크 센터는 시계 전문 회사인 ‘스와치(Swatch)’ 그룹의 건물이에요. 14층짜리 건물인데 통로에 가까운 모습이죠. 건물 앞면 도로와 뒷면 도로로 사람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4개 층이 통째로 뚫려 있어서예요.
이 거대한 통로에 브레게(Breguet), 블랑팡(Blancpain), 오메가(OMEGA), 자케 드로(Jacquet Droz) 등 스와치 그룹 산하의 고급 시계 브랜드 쇼룸을 곳곳에 배치했어요. 1평 남짓한 쇼룸이지만 각 브랜드의 핵심을 담아 인테리어를 구성했고, 대표 시계들을 전시해 두었죠.
공시지가만 평당 10억 원이 넘는 긴자의 노른자 땅인데 4개 층을 비우다뇨. 게다가 1층에 있는 쇼룸들도 듬성듬성 배치해서 공간을 여유있게 구성했어요. 그렇다면 4개 층을 비우고 1층에만 쇼룸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생각 없이 공간을 활용했다고 보기엔 니콜라스 G. 하이에크 센터의 쇼룸에는 심오한 비밀이 숨겨져 있어요.
니콜라스 G. 하이에크 센터 미리보기
• 비밀을 숨겨둔 수상한 쇼룸
• #1. 매장이 숨어 있다
• #2. 디테일이 숨어 있다
• #3. 잠재고객이 숨어 있다
• 숨길수록 드러나는 브랜딩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로고에 공개적으로 숨길 수 있을까요?‘
어떤 회사의 대표가 이런 주문을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아마 로고를 디자인하는 팀은 현타가 올지 몰라요. 이 짧은 질문에는 뚱딴지 같은 소리가 두 가지나 있으니까요. 하나는 숨기려면 보이는 것이어야 하는데,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아요. 또 다른 하나는 숨기려면 보이지 않게 해야하는데 공개적으로 하라뇨. 차라리 화려하면서도 심플하게 디자인해달라는 게 나을 거예요.
그런데 이 어려운 일을 로고로 구현한 회사가 있어요. 바로 글로벌 물류 전문 기업인 ‘페덱스(Fedex)’예요. 페덱스의 로고는 신속함과 정확함이라는 업의 핵심을 창의적으로 표현한 로고로 평가받아요. 비즈니스의 특성을 군더더기 없이 드러내 디자인 상을 수십 차례 수상하기도 했을 정도죠. 하지만 페덱스의 로고를 보면 타이포만 가지고 평범하게 디자인한 것처럼 보여요. 도대체 업의 핵심은 어디에 표현된 걸까요?
ⓒFedex
우선 신속함과 정확함이라는 가치를 화살표로 상징화했어요. 그리고는 로고에서 E와 X 사이에다가 이 화살표를 숨겨두었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화살표가 눈에 보이는 이유는 그래픽 디자인에 ‘양’의 영역과 ‘음’의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양의 영역은 글자나 이미자가 표현된 부분을 뜻하고 음의 영역은 그 외의 여백을 의미하는데요. 페덱스처럼 음의 영역을 의도적으로 활용하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은연 중에 전달할 수 있는 거죠.
ⓒFedex
이번에는 비슷한 주문을 공간 디자인에 해볼게요.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담은 매장을 공개적으로 숨길 수 있을까요? 역시 뚱딴지 같은 질문이지만, 도쿄의 긴자 거리에 있는 시계 매장인 ‘니콜라스 G. 하이에크 센터’는 기발한 방식으로 이 어려운 일을 공간에다가 구현해 냈어요.
비밀을 숨겨둔 수상한 쇼룸
니콜라스 G. 하이에크 센터는 시계 전문 회사인 ‘스와치(Swatch)’ 그룹의 건물이에요. 14층짜리 건물인데 통로에 가까운 모습이죠. 건물 앞면 도로와 뒷면 도로로 사람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4개 층이 통째로 뚫려 있어서예요.
이 거대한 통로에 브레게(Breguet), 블랑팡(Blancpain), 오메가(OMEGA), 자케 드로(Jacquet Droz) 등 스와치 그룹 산하의 고급 시계 브랜드 쇼룸을 곳곳에 배치했어요. 1평 남짓한 쇼룸이지만 각 브랜드의 핵심을 담아 인테리어를 구성했고, 대표 시계들을 전시해 두었어요.
공시지가만 평당 10억 원이 넘는 긴자의 노른자 땅인데 4개 층을 비우다뇨. 게다가 1층에 있는 쇼룸들도 듬성듬성 배치해서 공간을 여유있게 구성했어요. 그렇다면 4개 층을 비우고 1층에만 쇼룸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생각 없이 공간을 활용했다고 보기엔 니콜라스 G. 하이에크 센터의 쇼룸에는 심오한 비밀이 숨겨져 있어요.
스와치 그룹 창업자의 이름을 딴 니콜라스 G. 하이에크 센터는 건물의 4개 층을 터놓았습니다. ⓒ시티호퍼스
#1. 매장이 숨어 있다
모르고 보면 평범한 쇼룸처럼 보여요. 하지만 알고 보면 쇼룸은 매장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예요. 쇼룸에 들어서서 한쪽 벽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문이 닫히고 해당 브랜드 매장으로 쇼룸이 이동해요. 쇼룸의 움직임에 따라 그 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2층, 3층, 4층에 있는 고급 시계 브랜드 매장들이 눈에 들어와요. 1층만 놓고 보는 게 아니라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쇼룸은 각 층 매장의 일부를 떼어내 1층으로 내려놓은 공간인 셈이죠.
각 브랜드 입장에서 매장별로 쇼룸이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건 비효율적인 방식이에요. 하지만 스와치 그룹 전체의 관점에서는 효율적인 접근일 수 있어요. 2층 이상에 위치한 매장은 모객이 불리하기 때문이죠. 특히 고급 시계 브랜드라면 층수에 더 민감해요. 층의 위치에 따라 브랜드의 가치가 서로 비교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니콜라스 G. 하이에크 센터는 1층에다가 특정 매장을 넣는 것을 과감하게 내려놓았어요. 대신 1층을 모두의 공간으로 만들어, 키오스크 쇼룸 방식으로 7개 브랜드 매장이 모두 1층에 자리 잡을 수 있게 한 거예요. 이렇게 하니 매장의 층수가 달라도, 고객은 동등한 위치에서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고 각 브랜드는 동등한 자격으로 경쟁할 수 있죠. 부분 최적화가 아니라 전체 최적화를 추구한 거예요.
이러한 공간 활용에 대한 발상의 전환은 긴자 거리의 문화적 맥락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전통적으로 긴자는 여러 상점을 둘러볼 수 있는 거리였는데요. 마찬가지로 고객들이 4개 층을 뚫어놓은 통로를 거닐면서 여러 쇼룸을 둘러볼 수 있게 했어요. 그리고 시계 회사답게 ‘시간의 거리(Avenue du Temps)’라고 이름을 붙였죠. 긴자의 거리에 있는 시간의 거리. 공간을 낭비하는 듯한 이질적인 모습이지만 빈틈없이 빼곡한 긴자 거리와 어울리는 이유예요.
#2. 디테일이 숨어 있다
모르는 사람들에겐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쇼룸처럼 보이도록 디테일을 숨겨 놓았어요. 각 브랜드 매장과 같은 컨셉으로 디자인해 짧은 시간 안에 좁은 공간에서 각 브랜드의 정수를 경험할 수 있도록 꾸민 거예요. 게다가 바닥을 보면 1층 통로와 같은 바닥재를 사용하여 통로와 쇼룸 간의 경계를 없앴기도 했고요.
엘리베이터처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한 정수는 외관에 있어요. 엘리베이터에서 상하 이동의 핵심 역할을 하는 와이어를 숨겼죠. 와이어가 없는데 어떻게 엘리베이터가 올라갔다가 내려오냐고요? 쇼룸을 위에서 와이어로 당기는 것이 아니라 바닥 아래에서 위로 밀어 올려요. 또는 벽면에 레일을 설치해, 레일을 따라 움직일 수 있게 했죠.
쇼룸처럼 보이는 통유리로 된 공간은 각 브랜드의 매장으로 통하는 엘리베이터입니다. ⓒ시티호퍼스
반면 엘리베이터의 정체가 드러나 엘리베이터 기능을 할 때는 매장까지 이동하는 동안 쇼룸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속도를 조절한 거예요. 아파트 엘리베이터의 경우 일반적으로 15층까지는 분당 60미터, 20층까지는 분당 90미터, 그 이상은 분당 105미터의 속도로 올라가요. 하지만 니콜라스 G. 하이에크 센터의 엘리베이터는 4배 이 느린 분당 15미터의 속도를 유지해요. 고객들에게 엘리베이터 내에 구현된 쇼룸을 충분히 경험하게 하려는 의도예요.
엘리베이터들은 각 브랜드의 컨셉에 어울리는 인테리어로 꾸며져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니콜라스 G. 하이에크 센터는 틀을 깨는 방법으로 2층 이상에 있는 매장들을 1층에 내려놓았어요. 이런 방식으로 고급 시계 브랜드로서 동등한 자격을 부여했죠. 동시에 쇼룸의 디자인과 엘리베이터 설계의 디테일을 통해 고객들이 브랜딩을 매장 안이 아니라 매장 밖에서부터 경험할 수 있게 했어요. 각 브랜드들이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각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고심한 흔적이 엿보이는 대목이에요.
#3. 잠재고객이 숨어 있다
영업시간이 끝나면 필로티 양식으로 뚫어놓은 공간에 유리 셔터가 내려와요. 공공 통로가 아니라 사유 건물이라는 뜻이에요. 그렇다면 건물을 유리벽으로 구성하고 출입문을 달아도 지금과 유사한 효과를 볼 수 있었을 텐데, 유리 셔터로 만들어 영업시간 동안에는 공공 통로처럼 활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고객 동선을 만들기 위해서예요. 유리벽이 있으면 지나가다 쇼윈도를 통해 시계 브랜드 매장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는 있겠지만, 시계를 사려는 고객들만 쇼룸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아요. 아무래도 문을 열고 들어가야하니 심리적 진입장벽이 생길 수밖에 없죠.
하지만 열려 있으면 시계를 사려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지나다니며 쇼룸을 구경할 수 있어요. 특히 긴자처럼 건물이 빽빽하게 들어선 곳에서는 건물 뒤편 거리로 이동하기가 쉽지 않아 자연스럽게 동선이 생겨요. 그뿐 아니라 한쪽 벽을 ‘시간의 낙원’이라는 컨셉으로 수직정원처럼 꾸며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공원 분위기를 연출했어요. 문턱을 낮춰 견물생심을 유도하고 잠재고객을 늘리는 거예요.
거리를 잇는 통로를 만들고 수직 정원을 꾸며 잠재 고객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유도하였습니다. ⓒ시티호퍼스
이러한 방식은 잠재고객을 만들 때 한 번 더 빛을 발해요. 보통의 경우는 잠재고객이 매장에 들어서면 운영이 번거로워져요. 고객이 실제로 구매를 하지 않더라도 응대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1층에 매장과 별도로 쇼룸을 만들어둔다면 고객이 들어올 때마다 신경 쓸 필요가 없어요. 사려는 마음이 있거나 시계를 더 보려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고객들만 맞이하면 되죠. 잠재고객을 늘리면서 동시에 매장 운영의 효율성이 높아져요.
숨길수록 드러나는 브랜딩
긴자 거리에서는 주차장을 찾기가 어려워요. 오래된 건물들은 지을 당시 주차장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주차장을 만들지 않았고, 비교적 최근에 지은 건물들은 비싼 땅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주차장을 최소화했죠. 니콜라스 G. 하이에크 센터도 언뜻 보면 여느 긴자 거리의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주차장이 없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매장이 숨어 있듯이, 주차장도 숨어 있지요.
니콜라스 G. 하이에크 센터의 숨어 있는 주차장 ⓒ시티호퍼스
쇼룸과 일관성 있게 꾸며 놓아서 모르고 보면 차를 위한 공간인지 알기 어려워요. 하지만 건물 뒤편에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어요. 그곳에 차를 세우면 자동차 엘리베이터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요. 이 엘리베이터를 통해 지하 주차장에 주차를 할 수 있어요. 긴자 거리의 보통 건물과는 다른 행보라 볼 수 있죠.
매장 배치에 이유가 있는 것처럼 주차장 설치에도 물론 이유가 있어요. 니콜라스 G. 하이에크 센터의 주차장도 브랜딩을 위한 하나의 요소로 볼 수 있어요. 고객들이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 브랜드 시계를 사러 대중교통을 타고 오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그래서 고객의 소비 패턴에 걸맞게 시설을 갖추고 공간 활용을 하는 거예요.
이처럼 니콜라스 G. 하이에크 센터는 매장도 주차장도 공개적으로 숨겨두었어요. 고객들이 7가지 브랜드를 동등하게 경험할 수 있게 하고, 고객 경험이 각 브랜드의 정체성과 포지셔닝에 어울리도록 비밀스럽게 구성한 거예요. 이곳의 비밀은 역설적이게도 설립 후 수년에 걸쳐 여러 언론을 통해, 그리고 각종 건축 관련 시상식을 통해 세상에 드러나요. 이처럼 깊이 있는 고민으로 본질을 꿰뚫는다면 숨겨두어도 드러나는 법이에요.
Reference
• 第1回 スウォッチ グループの新たな拠点、東京・銀座に堂々オープン. Open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