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없이 젤리처럼 생겼어요. 그런데 비타민이래요. 조금 더 들여다보면, 7층으로 겹겹이 쌓아올린 듯한 모양이에요. 다채롭게 하려는 디자인인가 했더니, 개인의 영양 상태에 따라 층마다 필요한 비타민을 쌓아서 맞춤화한 거래요. 기왕 보는 거 더 살펴봤어요. 흰색 가루가 젤리 위에 뿌려져 있어요. 아니나 다를까 단맛, 신맛 등을 내는 코팅이 되어 있대요. 바로 비타민 브랜드 ‘너리시드’ 이야기예요.
‘너리시드(Nourished)’를 한마디로 말하면 ‘3D 프린팅 기술 기반의 맞춤형 비타민 젤리’라 정의할 수 있어요. 이 설명만 읽어 보아도 혁신과 기술, 재미와 아이디어까지 모두 들어있는 것 같죠? 마치 좋은 것만 모아 놓은 럭키 박스처럼요. 게다가 23세부터 쭉 사업에 도전해 온 젊은 여성 기업인의 화려한 성공 스토리와 팬시하고 재미있는 브랜드 이미지까지 겹치며 세상의 호기심을 자극해요.
하지만 이러한 컨셉과 이미지보다 중요한 핵심 가치는 따로 있어요. 바로 ‘왜 비타민의 개인화가 필요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치열한 고민이죠. 그렇다면 너리시드는 이러한 고민 후에, 문제의식을 어떻게 비즈니스로 구현했을까요?
너리시드 미리보기
• 모두를 위한 ‘만능 비타민’이라는, 그럴 듯한 함정
• 문제의식이 있으면 ‘기술의 쓸모’가 보인다
• 의무적 반복이 아니라 ‘즐거운 루틴’으로
• 너리시드가 스스로의 건강을 위해 챙기는 ‘미래 먹거리’
• ‘불편한 익숙함’에 숨어 있는 기회를 찾아서
2018년의 어느 날이었어요. 멜리사 스노버(Melissa Snover)는 출장길에 여러 개의 비타민 통을 한가득 챙겼어요. 부피가 부담됐지만 늘 먹던 비타민을 포기할 수 없었죠. 그런데 그 정성이 화근이었을까요? 공항 검색대에서 가방 안의 비타민 통들이 우르르 쏟아진 거예요. 정장에 하이힐까지 신은 그녀는 굴러가는 통들을 잡으려 급기야 무릎으로 바닥을 기어 다니기까지 했죠. 여간 민망한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 일을 겪은 후 Melissa는 ‘불편한 익숙함’에 주목했어요. ‘어쩌면 우린 모두 여러 개의 비타민 통이 주는 불편함에 익숙해져 있던 것은 아닐까? 간편하게 그 모두를 하나로 합칠 수는 없을까?’ 하고요. 그녀는 그렇게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개인 맞춤형 비타민’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불특정 다수를 위한 대량생산 비타민이 아니라, 개개인의 건강에 맞는 처방 개념을 적용한 거죠. 수준 높은 영국 비타민 시장 내에서도 선두 그룹에 진입한 스타트 업 ‘레미디 헬스(Remedy Health)’는 그렇게 시작되었어요.
모두를 위한 ‘만능 비타민’이라는, 그럴 듯한 함정
레미디 헬스의 이러한 아이디어가 함축된 비타민 브랜드 ‘너리시드(Nourished)’는 ‘3D 프린팅 기술 기반의 맞춤형 비타민 젤리’라 정의할 수 있어요. 문장만 읽어 보아도 혁신과 기술, 재미와 아이디어까지 모두 들어있는 것 같죠? 마치 좋은 것만 모아 놓은 럭키 박스처럼요.
게다가 23세부터 쭉 사업에 도전해 온 젊은 여성 기업인의 화려한 성공 스토리와 팬시하고 재미있는 브랜드 이미지까지 겹치며 세상의 호기심을 자극해요. 하지만 이러한 컨셉과 이미지보다 중요한 핵심 가치는 따로 있어요. 바로 ‘왜 비타민의 개인화가 필요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치열한 고민이죠.
ⓒNourished
영양학 관련 배경과 지식을 가진 멜리사 대표에게 시중의 건강 보조제들은 ‘one size fits all’, 즉, 하나의 솔루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사람은 각기 다른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는데 말이죠. ‘각기 다른 신체 조건’. 네, 바로 이것이 비타민 개인화의 필요성에 대한 근거이자 시작점이었어요.
라이프스타일과 건강 상태에 따라 필요한 영양 성분과 비타민의 종류는 달라요. 같은 성인용 비타민을 50대 남성도 20대 여성도 구입하지만, 사실 다른 점이 많죠. 게다가 같은 사람이라도 그때그때의 필요 성분이 달라요. 다시 말해 비타민의 성분 조합은 개인화는 물론, 때와 상황에 따른 변주도 함께 되어야 해요.
이러한 이유들로 레미디 헬스는 결론을 내렸어요. 모든 사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마법 같은 비타민은 ‘없다’고요. 그리고 그 결론을 바탕으로 개인화의 필요성을 확인하고, ‘맞춤형 성분 조합’이라는 최적의 실행 방향을 찾았죠.
문제의식이 있으면 ‘기술의 쓸모’가 보인다
방향은 찾았지만 구체적인 방법을 고민하던 그들은 결국 ‘옵션’과 ‘기술’에서 열쇠를 찾았어요. 너리시드는 지금까지 많이 보아온 일반적인 형태의 영양제가 아니에요. 알약도, 가루도 아니죠. 무지개처럼 7겹의 레이어를 가진 젤리에요. 그런데 이 형태는 단순히 차별화를 위한 컨셉이나 디자인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요. 물론 시각적으로도 새롭고 예쁘지만, 나름의 기능과 이유가 있는 비주얼 요소이죠.
먼저 7겹의 레이어는 총 7가지의 선택 옵션을 의미해요. 너리시드의 맞춤형 비타민 젤리는 웹사이트를 통해 주문할 수 있는데요. 주문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요. 하나는 퀴즈 형식의 설문, 다른 하나는 제공되는 전체 성분 중 7가지를 직접 선택하는 것이에요. 전문적인 추천을 원할 땐 퀴즈 형식을, 증상과 복용 목적이 명확할 땐 직접 선택하는 형식을 활용하면 효과적이죠.
이중 알고리즘 기반의 퀴즈 형식 주문 절차를 알아보면 너리시드 비타민의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어요. 먼저 이름, 성별, 나이, 인종을 선택한 후, 현재의 건강 상태, 운동과 생활 습관, 여행 주기 등을 입력해요. 그 다음 다이어트 여부와 종류, 음주 습관, 영양제 복용 여부, 눈 건강 상태, 심리적 문제와 진료 현황, 가장 개선을 원하는 신체적 문제, 단맛과 신맛 중 선호하는 맛 등을 상세히 체크하죠. 그렇게 설문이 완료되고 나면, 나에게 가장 필요한 7가지의 추천 고영양 영양제, 슈퍼 푸드, 영양소 등이 이름과 함께 비주얼로 출력돼요. 상세한 성분 안내도 함께 제공되고요.
퀴즈 설문 형식 결과 ©Nourished
성분 직접 선택 형식 결과 ©Nourished
7가지의 옵션은 총 35가지로 구성된 성분 리스트 중에서 선택돼요. 경우의 수를 고려하면 무려 420가지가 훌쩍 넘는 조합이 가능하죠. 5-HTP, 베타 글루칸, 인삼, 생강, 비트 뿌리, 밀크 시슬 등이 포함되며 모두 자연에서 온 비건 재료예요. 유전자 변형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알레르기에도 안전해요. EU표준에 따라 승인된 맞춤형 식품 등급도 받았고요. 설탕 함유량이 적어 더욱 건강해요. 즉, 자연에서 온 좋은 원료로만 만든 ‘진정한 종합 비타민’인 셈이죠.
그렇다면 7겹의 레이어를 어떻게 쌓아 하나의 젤리로 만드는지 알아볼게요. 앞서 찾았다는 두 가지 열쇠 중 나머지 하나인 ‘기술’이 그 문제를 해결해요. 너리시드가 선택한 기술은 비건 캡슐화 공식을 적용하여 8개 이상의 특허까지 받은 ‘3D 프린팅’이에요.
3D 프린팅 기술은 푸드 분야에서도 이미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식물성 단백질을 원료로 하는 대체육 제조가 있어요. 3D 프린터로 진짜 고기 덩어리 같은 색감, 모양, 질감을 구현하죠. 재료를 으깨어 주로 패티 형태로 맛과 질감만 구현하던 것에서 발전해, 정육점에서 파는 고기 덩어리 같은 식물성 대체육을 만들어 비주얼적 경험까지 주는 단계에 이르렀어요.
그래서 푸드 분야의 전문가들은 3D 프린팅 기술이 ‘푸드의 개인화’를 가능하게 했다고 하죠. 즉, 너리시드는 이러한 기존 기술에 자신들만의 기술적 아이디어를 더해 ‘비타민의 개인화’를 실현하고 있어요. 특히 7겹의 레이어가 층층이 쌓여 포도 알갱이만 한 하나의 더미를 만드는 과정은 레미디 헬스 버밍엄 본사의 인하우스 연구소에서 직접 진행하고요. 주문이 들어오면 5분 만에 단 한 명을 위한 영양제가 제조되는 것이죠.
3D 프린팅 기술을 통한 제작 과정 ©Nourished
결과적으로 3D 프린팅 기술은 너리시드로 하여금 총 3가지를 고객에게 제공 가능하도록 해주었어요. 개인 맞춤형이라는 새로운 ‘경험’, 젤리 형태가 주는 감각적 ‘유희’, 그리고 7가지 옵션을 all-in-one 컨셉으로 조합함으로써 끌어올린 ‘편의’ 예요. 기술 자체의 역할을 넘어 전에 없던 경험과 감성적 만족까지 제공하는 거예요.
의무적 반복이 아니라 ‘즐거운 루틴’으로
그동안 의식하지 못했던 불편한 익숙함에서 시작된 아이디어를 혁신적인 기술로 구현했어요. 그리고 너리시드는 자기만의 차별성을 강화하며 시장 내 존재감까지 키워가고 있죠.
우선 ‘주문형 맞춤 비타민’이라는 컨셉은 지속적으로 복용하는 비타민의 특성을 ‘구독’ 컨셉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시켰어요. 1개월, 3개월, 연간 구독과 1회 주문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장기적인 구매와 브랜드 인지도 상승을 유도하죠. 구독 서비스를 통해 제품 컨셉을 강화함과 동시에 차별되는 마케팅 활동을 전개하는 거예요.
다음으로 젤리 타입은 건강 보조제의 기능과 더불어 그 자체를 즐길 수 있게 해 주었어요. 키즈 비타민에서나 주로 볼 수 있던 젤리형이 주는 유희를 성인들에게도 선물한 거지요. 또한 오리지널, 신맛, 단맛 등 표면 코팅 옵션을 통해 취향까지 존중받도록 해주고요. 이는 대량 생산 시스템에서 나온 비타민에서는 찾기 힘든 맞춤형만의 옵션이죠. 덕분에 귀찮음을 동반하던 매일의 ‘비타민 타임’이 취향저격 ‘디저트 타임’이 됐어요. 캡슐이나 플라스틱 통에서 일일이 꺼내어 한 주먹 가득 삼키던 ‘치료’의 느낌도 ‘치유’의 느낌으로 바꿔주었고요.
7겹의 레이어로 쌓인 7가지 성분 ©Nourished
또다른 차별점으로는 주문 직후 직접 제조하는 인하우스 시스템을 꼽을 수 있어요. 시장 내 상당수의 경쟁 브랜드들이 한 번에 대량 제조하여 긴 유통과정을 거쳐 소비자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따라요. 그런데 너리시드는 그때그때 소량을 직접 생산하는 Short Supply Chain 시스템을 적용해서, 많은 것이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요. 유통 과정이 긴 영양제의 경우 효능이 이미 상당히 저하된 상태로 복용되는 반면, 너리시드는 효능이 99% 이상 유지되죠. 비타민의 또 다른 주요 조건인 흡수율도 전자의 경우 대비 약 70%가량 높고요. 직접 만들어 빨리 전하는 단순한 변화가 중요한 차이를 만들어 브랜드 신뢰도까지 높여주죠.
연구소 및 인하우스 시스템 ©Nourished
그뿐 아니라 3D 프린팅 기술이 구현하는 비주얼적 새로움과 아름다움도 상징적인 차별점이에요. 심지어 ’미래 비타민 모델의 시각화’라는 의미를 선점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죠. 실제로 너리시드는 2020년 4월부터 지속적으로 영국 내 비타민 회사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어요. 2019년에 런칭한 것을 고려하면 매우 빠른 속도로 시장 내 루키가 된 것이죠.
마지막으로 젤리 하나하나를 따로 포장하는 패키징 방식은 크게 두 가지 역할을 하며 너리시드만의 정체성을 완성해요. 먼저 패키지에 새겨진 고객의 이름은 맞춤형 비타민이라는 컨셉을 충실하고 명확하게 표현해 주죠. 진정한 나만의 건강 솔루션임을 나타내니까요. 다른 한 가지는 환경에 대한 고려를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플라스틱이나 비닐 같은 쓰레기를 계속 배출하는 비타민 업체들과 차별되는 거예요. 100% 플라스틱 프리 소재에, 일반 가정에서도 단 32주 만에 퇴비화 되어 내 건강 챙기려고 지구 건강은 해친다는 죄책감에서도 자유롭게 하죠.
개별 포장 방식의 너리시드 패키지 ©Nourished
너리시드가 스스로의 건강을 위해 챙기는 ‘미래 먹거리’
너리시드는 성인용 비타민을 시작으로 키즈 라인, 그리고 최근 단백질 프로틴 바까지 출시했어요. 그런데 너리시드를 즐기는 또다른 방법도 있어요. 브랜드가 추천하는 일종의 ‘Ready To Eat’ 멀티 비타민인 ‘Life Stacks’ 라인을 선택하면 돼요. 근육 건강을 올리고 싶을 때, 걱정을 줄이고 싶을 때, 면역력을 높이고 싶을 때, 이너 뷰티를 위해, 마음의 평화를 위해, 건강한 출산을 위해 전문가의 제안을 받는 것이죠.
프로틴 바 ©Nourished
Life Stack 라인 ©Nourished
한편 영국의 국민 치약으로 자리잡은 ‘콜게이트(Colgate)’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치아 건강을 위한 비타민 젤리 라인도 제작하고 있어요. 기존의 다른 두 가지 제품이 섞이니,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속성의 제품으로 발전하여 컬래버레이션의 진정한 의미가 생기죠.
Colgate X Nourished 라인 ©Nourished
하지만 이 시점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런칭을 계획 중인 프로바이오틱스 제품과 애완동물 관련 제품이에요. 소비자 입장에서 보기엔 그저 또 하나의 신제품 라인으로 여겨질 수 있지만, 회사의 입장에서는 전체적인 수익 구조는 물론, 회사가 지향하는 방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미래 먹거리’로서의 가치를 담고 있으니까요.
너리시드는 출시와 거의 동시에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복병을 만났어요. 그 당시의 코로나는 전세계 브랜드들의 희비를 나누었죠. 하지만 유연한 사고를 할 줄 아는 레미디 헬스는 비타민을 위한 R&D 시설을 손 소독제 제작에 활용하며 마케팅 측면의 활동을 펼쳤어요. 그리고 이러한 아이디어는 빠른 전환을 가능하게 하며 위기 극복의 열쇠가 되었지요. 신생 브랜드가 시작과 동시에 겪은 커다란 위기는 오히려 내공과 함께 소비자 및 시대를 읽는 사업적 센스를 선물했어요.
그리고 그 시간과 경험이 프로바이오틱스와 애완동물 관련 라인으로 발전된 것이에요.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면역력을 더욱 중시하게 되자 프로바이오틱스 관련 제품을 기획하고, 건강을 넘어 라이프스타일의 측면까지 시각을 넓힌 결과 반려동물 관련 제품까지 런칭했죠. ‘건강은 과연 어디까지 영향을 주고받는가’라는 철학적인 고찰이 바탕에 깔려 있기도 하고요. 너리시드는 ‘비타민 브랜드’로 시작했으나 점차 ‘건강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형태로 확대, 발전되고 있음을 포착할 수 있어요.
‘불편한 익숙함’에 숨어 있는 기회를 찾아서
절정으로 치닫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너리시드의 매출은 오히려 6배 이상 증가했어요. 또한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자리 잡으며 미래의 대표적인 비타민 모델로도 꼽혔고요. 새롭고 차별적인 맞춤형 개인화 컨셉이 성장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죠.
그러한 측면에서 너리시드의 시작점이었던 ‘불편한 익숙함’을 발굴해보는 것은 다른 분야에서도 고려해 볼만한 접근법이라 할 수 있어요. 불편함은 줄여주고, 솔루션은 찾아주는 것이 아이디어의 전부 같지만, 사실 그 이전에 익숙해져 버려서 미처 보지 못했던 불편함에도 눈을 돌려보는 거예요. 그곳에 모두가 놓쳐 온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숨어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 불편한 익숙함에 소비자들이 공감하게 된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너리시드와 같은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지속적으로 탄생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