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쓴 메모지에서 '이것'이 드러나자, 평생을 간직할 예술품이 된다

오모시로이 블록

시티호퍼스

2024.04.11

150매 내외로 구성된 메모장 한 개의 가격이 1만 엔(약 10만 원)이 넘어요. 신소재로 만든 메모장도, 타제품 대비 크기가 큰 것도 아니에요. 겉으로 보면 평범한 사각형의 메모장일 뿐이죠.

그런데 이 평범한 메모장은 출시 직후 매진 행렬을 불러일으켰어요. 매장에 입고되는 족족 품절되는 것은 물론, 기업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였죠. 하물며 메모장 구매에 실패한 외국인은 오사카에 있는 기업 본사에까지 찾아올 정도였어요. 이 메모장은 무엇이 특별하길래, 상식을 벗어나는 가격에도 사람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요?

비밀은 메모장의 내부에 있어요. 메모장을 한 장, 한 장 뜯을 수록 메모장 안에 갇혀 있던 일본의 건축물들이 드러나거든요. 얼마나 정교한지, 실제 건축물과의 매우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하죠. 이 메모장, 누가, 왜, 어떻게 만든 것일까요?

오모시로이 블록 미리보기

• #1. 문구계로 눈을 돌린 건축 모형 회사

• #2. 쌓지 않고 떼어내야 완성되는 건축물

• #3. 주체, 소재, 용도를 축으로 확장의 한계를 극복하다

• 업의 확장이 아니라 원점으로의 회귀

오사카에는 독보적인 요리법으로 화제가 된 요리사가 있어요. 지금까지 만든 요리의 가짓수만 750개가 넘는 이 요리사는 그 예술성을 인정받아 매년 전시회를 열 정도예요. TV, 신문 등 매체의 인터뷰도 끊이지 않고요. 대체 얼마나 맛있고 아름다운 음식들을 만들길래 사람들이 이 요리사를 주목하는 걸까요?

ⓒメガネのおじいちゃん Instagram

요리사의 닉네임은 ‘안경 할아버지(メガネのおじいちゃん)’. 이름마저 정겨운 요리사가 만든 음식은 의외로 일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뉴들이에요. 나베, 오므라이스, 고등어구이, 타코야키처럼 말이죠. 그런데 이 음식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모두 먹을 수도, 먹어서도 안된다는 거죠. 그 이유는 안경 할아버지가 사용하는 음식 재료 때문이에요. 안경 할아버지는 종이로 음식을 만들거든요.

이 음식들은 종이로 만들어졌지만 실제 음식과 싱크로율이 꽤 높아요. 자칫하면 속아버릴 정도죠. 안경 할아버지가 처음 종이 음식을 만든 건 은퇴 이후부터인데요. 58세에 회사에서 퇴직한 후로 소일거리 삼아 골판지로 비행기나 저금통을 만들곤 했죠. 아내가 회사에 가져가려고 챙겨둔 쿠키 사이에 골판지로 만든 가짜 쿠키를 몰래 넣어두는 장난도 치면서요.

그러다 70대가 되었을 무렵, 치기리에(ちぎり絵)*를 그리는 누나가 안경 할아버지에게 일본 전통 종이들을 대량으로 건네줬어요. 일본에 다양한 종류의 전통 종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안경 할아버지는 본격적으로 종이 음식을 만들기 시작하죠. 처음에는 완성한 모형을 가족들에게 보여준 뒤 곧장 버렸었는데, 이를 안타까워한 아들이 사진을 찍어 2019년부터 사진을 온라인에 업로드했어요. 그 후 SNS에서 작품 사진들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전시까지 열게 됐죠.

*치기리에: 일본 종이를 찢어서 그림을 그리는 일본 예술 중 하나예요.

안경 할아버지는 사람들의 놀라운 반응은 모두 우수한 일본 전통 종이 덕분이라며 공을 돌렸어요. 집에 있는 70가지가 넘는 일본 종이들이 종이로 만든 음식의 싱크로율을 높이는 데 한몫했다며 말이죠. 취미로 시작했던 ‘페이크 푸드(Fake food)’는 어느새 ‘페이퍼 아트(Paper art)’가 되어 일본 종이의 잠재력을 보여주는 매개체로 활약 중이에요.

오사카에는 이처럼 고품질 종이의 표현력을 이용해 문구를 예술 작품으로 만든 기업이 있어요. 이름은 ‘트라이어드(Triad)’. 이번에는 종이로 음식이 아니라 건축물을 만들죠. 그런데 이 건축물들은 안경 할아버지의 음식처럼 종이를 하나하나 덧붙여 만든 모형이 아니에요. 이와 반대로 건축물을 종이 더미 속에 숨겨뒀죠. 안에 어떤 건축물이 들어있는지 알고 싶다면 소비자가 직접 종이 더미 속에서 찾아내야 해요. 어떻게냐고요? 지금부터 그 방법을 알아볼게요.

#1. 문구계로 눈을 돌린 건축 모형 회사

메모장 한 개의 가격이 1만 엔(약 10만 원)을 넘어요. IT 기술을 접목한 신소재 제품도, 타 제품 대비 크기가 큰 것도 아닌데 말이죠. 대체 뭐가 그리 특별할까 싶은데 겉만 보면 그저 한 장씩 뜯어 쓰는 평범한 메모장이에요. 이 메모장을 이렇게까지 비싼 값에 살 사람이 있나 싶죠. 그런데 이 제품, 가게에 입고만 됐다 하면 매진 행렬이에요. 한때 매장에서 제품을 구하지 못한 외국인이 본사까지 찾아왔을 정도죠. 국적을 막론하고 모두가 좋아하는 이 메모장의 숨겨진 매력은 무엇일까요?

이 메모장에는 비밀이 하나 있어요. 평범해 보이지만 안에 건축물이 들어있거든요. 이 건축물들은 모두 일본의 대도시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들이에요. 교토의 기요미즈데라, 도쿄의 도쿄타워, 오사카의 오사카성처럼요. 제품을 처음 샀을 때만 해도 자취를 감추고 있던 이 건축물은 메모장을 한 장, 한 장 뜯어 사용하다 보면 천천히 그 외관을 드러내요. 비록 종이로 만들어졌지만 제품의 정교함과 섬세함은 일본 건축의 미학을 드러내기에 충분하죠.

ⓒTRIAD Inc.

메모장은 2017년 12월에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어요. 기업 홈페이지에는 접속자가 폭주하며 서버가 다운될 정도였죠. 그야말로 히트 상품이 탄생한 것인데요. 놀랍게도 이 상품을 기획, 제작한 것은 문구 기업이 아니었어요. 건축 모형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트라이어드’였죠. 문구류와는 조금도 접점이 없던 기업이 고급 메모장을 만들어서 새로운 유형의 문구 시장을 개척한 거예요.

본업의 경쟁력이 떨어져서 새로운 활로를 찾은 게 아니에요. 트라이어드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주최한 ‘건축 모형 왕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한 이력이 있을 정도로 내로라하는 실력자였죠. 1999년에 창업한 이래로 트라이어드의 관심사는 언제나 ‘공간’이었어요. 일본의 맨션이나 거리 풍경들을 모형으로 표현함으로써 공간의 매력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 유용성을 검증하는 것을 사명으로 여겨왔죠.

그 정도면 강점을 키우는 게 더 유리해 보여요. 그런데 왜 갑자기 문구류 제품을 만들기로 한 걸까요? 그 이유는 트라이어드가 제작하는 건축 모형의 도달률과 노출도에 있었어요. 건축 모형은 주로 기업을 위해 제작되다 보니 일반 대중에게는 닿기가 어려웠던 거죠. 즉 한정된 사람들만 이 건축 모형을 볼 수 있었어요. 그래서 트라이어드는 전시회에 출전하거나 디자인 콘테스트에 응모하면서 일반인에게도 모형 제작 기술을 보여주기 위해 애썼어요. 그러다 어느 날, 평면도를 3D화하는 트라이어드의 입체 조형 기술을 적용해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보기로 했죠.

트라이어드는 다양한 제품군 중에서 ‘메모장’에 주목했어요. 메모장은 어느 사무실에나 있는 사무 용품이었으니까요. 그 후 2017년 11월, 드디어 첫 제품이 완성됐어요. 그런데 뜻밖의 복병을 만나죠. 지금까지 B2B 비즈니스에 주력해 온 결과 일반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판매 루트가 아예 없었던 거예요. 아쉽지만 트라이어드는 오사카 상공 회의소에서 주최하는 상담회에 참여해 바이어들을 만났어요. 그리고 유일하게 적극적인 반응을 보여준 도큐핸즈(Tokyu Hands) 우메다점에서 판매를 개시했죠.

결과는 예상 밖이었어요. 판매 수가 저조해서가 아니에요. 제품이 매진되는 것은 물론, 기업 홈페이지 서버까지 마비됐죠. 트라이어드의 메모장이 X(옛 트위터)에서 폭발적으로 리트윗 되며 나타난 현상이었어요. 건축 모형을 만드는 기업의 기술이 집약 메모장은 일본 국내는 물론 외국인의 취향까지 저격했어요. 지금까지의 메모장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아름다움과 의외성을 비(非) 문구회사가 창조해낸 거죠.

그야말로 성공적인 시작이었어요. 이제 판매량을 대폭 늘려 수익성을 높일 일만 남아있었죠. 그런데 이 메모장에는 한 가지 비밀이 더 있었어요. 메모장을 전부 수작업으로 제작하고 있었거든요. 레이저 커터에 종이를 하나씩 넣어 모양을 만드는 것도, 종이를 쌓는 순서가 바뀌지 않도록 최대 150매를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것도 전부 사람이 직접 하고 있었죠. 하물며 제품을 감싸는 아크릴판을 가공하거나 포장하는 것까지도요.

수익성을 생각하면 수작업을 포기하는 게 훨씬 유리했어요. 해외에 위탁 생산을 맡기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었고요. 하지만 트라이어드는 직접 자신들의 손으로 고품질의 상품을 만들어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을 지키는 것을 택했어요. 그래야 트라이어드의 기술력을 사람들에게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에요. 지금도 트라이어드는 상품 기획부터 개발, 시제품 제작, 생산, 패키지 디자인, 판매까지 전부 자사에서 직접 도맡고 있어요.

#2. 쌓지 않고 떼어내야 완성되는 건축물

트라이어드가 제작한 오리지널 메모장의 이름은 ‘오모시로이 블록(Omoshiroi Block)’이에요. 트라이어드는 오모시로이 블록을 ‘기억, 순간, 조각’의 결정체로 만들었어요. 우선 기억은 여행지에서의 추억을 의미해요. 순간은 사용자가 메모장을 한 장씩 떼어내는 순간을 뜻하고요. 마지막으로 조각은 메모장을 다 사용하고 나면 드러나는 건축물 조각을 의미하죠. 사람들이 메모를 할 때만 제 기능을 하는 평범한 메모장과 달리, 오모시로이 블록은 사용 전후의 모든 과정에서 빛을 발하도록 의도한 거예요.

그렇다면 트라이어드의 첫 번째 제품인 교토의 기요미즈데라 메모장을 자세히 볼게요. 맨 위에 있는 메모장을 한 장씩 떼어내다 보면 어느 날 눈앞에 기요미즈데라의 전면이 드러나요. 이때 눈에 띄는 것은 실제 건축물과의 높은 싱크로율이죠. 이와 같은 정교함과 섬세함에는 이유가 있어요. 트라이어드가 마치 실제 건축 모형을 만들듯 메모장을 개발했거든요.

ⓒTRIAD Inc.

개발 부서는 메모장을 만들기 위해 기요미즈데라 본당의 기둥 수 하나하나까지 직접 세어가며 평면도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이 리얼한 평면도를 바탕으로 3D 메모장을 구현해냈죠. 트라이어드가 건축 모형을 만들 때의 업무 프로세스와 세공 기술을 메모장에 적용한 거예요. 그 결과 오모시로이 블록은 단순 문구류보다는 하나의 페이퍼 아트에 가까워졌죠.

메모지의 소재도 고심해서 선정했어요. 고품질의 종이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종이를 한 장씩 떼어낼 때 기분 좋은 촉감이 느껴지도록 재질과 두께까지 섬세하게 골랐죠. 마치 실제로 건축가들이 건축물을 지을 때 엄격한 기준으로 소재를 선택하듯 말이에요. 또 메모지의 색깔은 일본의 건축미가 돋보일 수 있게 일본다운 색조를 채택했어요. 그래서 오모시로이 블록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메모를 ‘쓰는 순간’은 물론 ‘떼는 순간’까지 집중력을 발휘하게 되죠.

그렇게 메모지를 떼어내다 보면 조금씩 건축물이 드러나요. 트라이어드가 오모시로이 블록 안에 숨겨둔 건축물은 메모지를 다 사용해야만 완성되죠. 그래서 이 메모장을 구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끝까지 메모장을 사용할 수밖에 없어요.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채 방치되기 십상이던 메모장의 쓸모와 수명을 늘려주는 효과가 있죠.

메모장의 수명을 늘리는 장치는 하나 더 있어요. 트라이어드는 메모장을 아크릴 케이스에 담아서 판매하고 있는데요. 이는 최종적으로 완성된 건축 모형을 실내 오브제로 활용하기 위한 거예요. 메모장으로서의 역할을 마친 뒤에는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서 두 번째 기능을 수행하는 거죠.

트라이어드는 일본 각 도시의 대표적인 건축물을 모티브로 삼아 다양한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는데요. 장소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제품마다 색조에 차이를 주어 계절감을 표현해요. 또 건축물의 형태와 특성에 따라 메모장을 떼어내는 방향을 바꾸기도 하죠. 예를 들어 도쿄 타워 메모장은 위로 잡아당기는 방식을 이용했어요.

ⓒTRIAD Inc.

이렇게 3D 건물을 주축으로 하는 ‘Shape’ 카테고리 외에도, 거리의 정경을 표현하는 ‘풍경(Scenery)’ 카테고리도 있어요. 벚꽃이 피어있거나, 단풍이 진 모습, 눈 덮인 모습 등을 볼 수 있게 만들었죠. 종이로 건축물이 아닌 거리는 어떻게 표현했을까요? 섬세한 시공 기술로 건축물과의 높은 싱크로율을 선보인 트라이어드는, 풍경을 표현할 때는 원근감을 활용했어요. 그리고 소비자가 메모지를 떼어낼 때 도시의 상징적인 거리가 계절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볼 수 있게 했죠. 시간의 흐름이나 속도까지 소비자가 조절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만든 거예요.

ⓒTRIAD Inc.

#3. 주체, 소재, 용도를 축으로 확장의 한계를 극복하다

문구와 예술 사이를 넘나드는 오모시로이 블록은 첫 등장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겼어요. 메모장의 틀을 깬 제품의 등장에 모두가 주목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의문을 품을 수 있어요. 이런 관심도 결국 초반에만 반짝할 뿐 금방 사그라드는 것 아니냐고요. 특히 트라이어드가 주로 일본의 유명 건축물을 중심으로 메모장을 개발해온 만큼, 제품 확장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가능했죠.

하지만 이런 생각은 기우였어요. 오모시로이 블록의 제품 확장성은 나날이 커져가고 있거든요. 특히 최근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는 상품은 주로 일본 국내외 지자체 및 기업들과 함께 협업해서 만드는 맞춤 상품이에요. 오모시로이 블록의 아름다움과 트라이어드의 기술력에 반한 사람들이 직접 제작의 주체가 되어 메모장을 제작하고 싶어 했거든요.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스타벅스 재팬’과의 컬래버레이션 상품이에요. 스타벅스 재팬은 도쿄 소재의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Starbucks Reserve Roastery)’를 오모시로이 블록으로 만들어 판매하기로 했죠. 일본 최고의 건축가 중 한 명인 구마 겐고가 작업한 건축물을 살 수는 없지만, 종이 건축물로나마 소유할 수 있게 한 거예요. 아무것도 없는 흰 배경에서 시작해 종이를 한 장씩 떼어내다 보면 조금씩 스타벅스의 건물이 나타나요. 마치 건축가가 건물을 짓는 단계를 밟아나가듯, 소비자도 손으로 이 과정을 경험해 볼 수 있죠.

ⓒ스타벅스 커피 재팬 주식회사

ⓒ시티호퍼스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서 건축물이 꼭 실존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콘텐츠 IP 속 가상의 공간도 얼마든지 제품으로 구현할 수 있으니까요. 트라이어드는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 속 주요 배경인 호그와트 성이나 다이애건 앨리는 물론, 호그와트로 향하는 기차인 호그와트 익스프레스까지 메모장으로 출시했어요. 사람들은 직접 방문했던 도시의 건축물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며 간접적으로 가본 상상의 장소까지 페이퍼 아트 실물로 간직할 수 있게 됐죠.

ⓒTRIAD Inc.

소재도 점점 더 다양해졌어요. 트라이어드가 출시한 신상품 중에는 건물이나 풍경이 아닌 ‘타코야키’ 메모장도 있었어요. 종이로 표현한 타코야키는 위에 올라간 가쓰오부시 하나하나까지 표현할 정도로 정밀함의 수준이 높았죠. 그런데 이쯤 되면 한 가지 의문이 들어요. 그토록 공간을 중요시했던 트라이어드가 왜 음식과 관련한 메모장을 개발했냐는 거죠. 이는 지역성 때문이에요. 트라이어드가 오사카시에 본사를 두고 있는 만큼, 오사카의 명물인 타코야키를 활용하기로 한 거예요. 이처럼 지역성도 하나의 축이 되어 소재를 넓히는 계기가 되고 있어요.

ⓒTRIAD Inc.

또 다른 비슷한 사례는 벚꽃 잎 메모장이에요. 트라이어드는 일본의 국화인 벚꽃을 독특한 방식으로 제품화했어요. 벚꽃의 꽃잎을 하나씩 잡아당기면 꽃잎이 떨어지고, 그 잎을 펼치면 꽃이 만개하며 안에 있던 내용이 드러나게끔 한 거죠. 매년 봄이 되면 만개했다가 일 년이 지나서야 재회하게 되는 벚꽃의 특성을 제품에 담고자 했어요. 이렇게 디자인 포맷의 제한 없이 참신한 제품들을 계속 개발하고 있죠.

ⓒTRIAD Inc.

그런가 하면 제품의 용도도 확장되고 있어요. 메모장처럼 필요할 때마다 종이를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한 장씩 떼어내 1년 뒤 작품을 완성시키는 캘린더를 제작했죠. 요즘 누가 종이 달력을 보느냐고요? 트라이어드가 주목한 게 바로 이 지점이에요. 요즘은 사 놓고도 보지 않는 실물 달력들이 많아요. 휴대폰, 컴퓨터로 얼마든지 편하고 쉽게 날짜를 확인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모시로이 블록을 캘린더로 개발하면, 누구나 완성된 형태를 보기 위해서라도 매일 종이를 떼어내게 돼요.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아날로그 달력이죠.

ⓒTRIAD Inc.

업의 확장이 아니라 원점으로의 회귀

이전까지 기업을 대상으로 건축 모형을 만들었던 트라이어드는 오모시로이 블록을 통해 더 많은 소비자를 만날 수 있게 됐어요. 제품을 출시하는 과정에서 각종 컬래버레이션을 펼쳐 나가며 콘텐츠 기업, 지자체 등 다양한 고객군을 발굴하기도 했죠. 덕분에 트라이어드의 본업인 건축 모형 설계 관련 기술력을 이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게 됐어요. 일본의 아름다움을 대표해서 홍보하는 것은 덤이었죠.

그런데 트라이어드는 왜 메모장의 이름을 ‘오모시로이 블록’으로 지었을까요? 오모시로이는 일본어로 ‘재미있는’이라는 뜻이에요. 그 어원을 파헤쳐 보면 ‘빛이 꽂히며 눈앞에 환하게 밝아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즉, 제품을 통해 미래를 밝히고 풍부하게 하겠다는 각오가 담겨 있었던 거예요.

트라이어드는 이름에 담은 각오에 걸맞게 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여러 곳에 조명을 비추는 중이에요. 건축 모형 설계라는 본업에 갇히지 않고 다른 장르에 도전하며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죠. 덕분에 사람들은 책상 위에 놓인 작은 메모지를 떼어내며 자신들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어요.

“모형도 최초의 시작은 종이였어요. 그런 의미로 이 상품은 원점 회귀입니다.”

-호리구치 히데토 TRIAD 대표이사, MOOV Press 인터뷰 중

그런데 정작 트라이어드는 이 과정이 본질로 돌아가는 과정이나 다름없다고 말해요. 바깥에서 보면 마치 업에서 탈피한 것 같지만, 당사자는 기초와 기본을 되새기는 중이었던 거죠. 알고 보면 스스로를 비추고 있었던 트라이어드의 다음 제품은 무엇이 될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