씬스틸러가 되는 공간 기획법, 옛 것을 익히고 새 것을 알라

온고지신

2024.07.12

'온고지신(溫故知新)'


‘옛 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로운 것을 안다’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이 사자성어를 회사 이름으로 쓴 곳이 있어요. ‘온고지신’이라는 호텔 경영 전문 회사인데요. 일본 전역에 11개 호텔(2024년 7월 기준)을 운영 중이에요. 그런데 운영하는 호텔마다 이름도, 컨셉도, 디자인도 모두 제각각이에요.


자전거 경주인 ‘경륜’이 테마가 되기도 하고, ‘순교자’의 숭고함으로 휴양을 재해석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샴페인’을 소재로 호텔을 디자인하기도 해요. 호텔 간에 공통분모가 없기에 언뜻 보면 비효율적인 방식 같아 보여요. 하지만 알고 보면 효율적이면서도, 효과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어요.


이 회사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했어요. 소유주는 따로 있고 호텔 경영만 맡아 하죠. 그리고 그 호텔 혹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재해석해 호텔의 컨셉으로 개발해요. 해당 호텔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가치를 조명해 사람들이 기꺼이 호텔을 찾게 만드는 거예요. 이른바 여행의 목적지가 되는 호텔, ‘데스티네이션 호텔’이에요. 그렇다면 사람들이 찾게 만드는 공간 기획은 무엇이 다를까요?


온고지신 미리보기

 여행의 목적지가 되는 호텔, ‘데스티네이션 호텔’

 #1. 숙박객을 10번째 경륜 선수로 만든 이유

 #2. 지역의 역사를 은유한, 외딴 곳에서의 휴양

 #3. 세계 최초, 공식 샴페인 호텔이 오사카에?

 지방을 살리고, 사업을 살리는 비즈니스 모델




일본 홋카이도 나카토마무에는 명물이 하나 있어요. 끝없이 펼쳐진 운해를 볼 수 있는 ‘운카이 테라스(Unkai Terrace)’예요. 운해란 새벽 시간대에 안개와 층운이 바다처럼 넓은 지역에 보이는 자연 현상인데요. 봄부터 가을 사이, 특히 여름에 절정이죠.


해발 1,088m에 위치한 운카이 테라스는 운해를 즐길 수 있는 9가지 방법을 제안해요. 이름하여 ‘클라우드 나인(Cloud 9)’. 손에 닿을 듯 운해를 구경할 수 있는 전망대부터 공중 위에 그물을 쳐서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드는 ‘클라우드 풀(Cloud pool)’, 구름을 테마로 한 디저트를 판매하는 ‘구름 카페’ 등이 있죠.


ⓒHoshino Resort Tomamu


ⓒHoshino Resort Tomamu


ⓒHoshino Resort Tomamu


이 운카이 테라스는 ‘호시노 리조트 토마무(Hoshino Resort Tomamu)’에서 운영해요. 여름에는 운해를 보러 사람들이 오고, 겨울에는 스키 리조트로 운영해 스키를 타러 오는 사람들로 붐비죠. 계절에 상관 없이 늘 높은 예약률을 자랑하는 리조트예요. 


그런데 원래부터 이랬던 건 아니었어요. 여느 스키 리조트들과 마찬가지로 여름 비수기에 고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죠. 그러다 스키 리프트를 관리하는 직원이 고객들에게 운해를 보여주는 건 어떠냐고 제안한 것이 발단이 되어 운카이 테라스를 기획하게 된 거예요.


호시노 리조트 토마무는 잠시 두고, 이번에는 시즈오카현 이토시에 위치한 ‘카이 이토(KAI Ito)’로 가 볼게요. 카이 이토는 1912년에 창업한 전통 온센 료칸인 ‘이즈미소’를 리브랜딩한 온센 료칸이에요. 2005년에 카이 이토로 재탄생했죠. 당시 이즈미소는 40억엔(약 400억)에 달하는 부채를 안고 경영난을 겪고 있었어요.


이즈미소는 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료칸의 컨셉을 정하기로 해요. 주 고객이 ‘중년 여성’이라는 점에 착안, ‘중년 여성의 안식처로서의 온센 료칸’이라는 컨셉을 잡았어요. 그리고 이 컨셉에 맞춰 음식과 접객을 업그레이드 하기 시작했죠. 이토 시의 특산물 중 하나인 ‘동백꽃’을 활용해 중년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인테리어, 액티비티 등을 준비하기도 했고요. 덕분에 이즈미소는 카이 이토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지금까지도 성황리에 영업을 이어가고 있어요.


ⓒKAI Ito


호시노 리조트 토마무와 카이 이토, 두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어요. 바로 위기를 겪고 있던 숙박 시설이었고, 가지고 있던 지역성과 세심한 접객으로 경영난을 극복한 ‘재생 경영’의 정석이라는 점이에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숨은 공통점은 재생 경영의 주체가 바로 ‘호시노 리조트 그룹’이라는 점이죠. 호시노 리조트 그룹은 ‘리조트 재생공장’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망해가는 호텔들의 구원투수로 유명해요.


사실 유명한 정도가 아니라, 재생 경영 노하우로 호텔을 되살리는 ‘서비스업’이 호시노 리조트 그룹의 주요 사업 영역이에요. 호시노 리조트는 현재 럭셔리 브랜드인 ‘호시노야’, 료칸 브랜드 ‘카이’, 리조트 브랜드 ‘리조나레’, 시티 호텔 ‘OMO’, 캐주얼 호텔 ‘베브’ 등을 운영하고 있어요. 부동산을 직접 보유하고 운영 중인 호텔들도 있지만, 부동산을 소유하지 않고 운영을 위탁 받아 경영만 대신하는 곳들도 있고요.


호시노 리조트는 호텔업을 부동산업이 아니라 서비스업으로 재정의해 일본 호스피탤리티 업계에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어요. 특히 오래된 료칸부터 새로 생기는 호텔까지, 호텔이 공급 과잉인 상황에서 재생 경영 노하우는 호텔이 가진 부동산 가치 이상의 가치를 가지죠.


호시노 리조트는 호텔만 재생한 게 아니에요. 재생 경영의 노하우를 가진 인재들도 많이 배출했는데요. 그 중 한 명이 ‘마츠야마 토모키’예요. 그는 2005년에 호시노 리조트 그룹에 입사해 2007년부터 이사 직함을 달고 호시노 리조트 그룹의 재생 사업에서 활약했어요. 그러다 그는 2011년에 뜻을 품고 퇴사한 후 호시노 리조트에서의 경험을 살려 ‘온고지신(温故知新)’이라는 호텔 운영 전문 회사를 창업했죠.



여행의 목적지가 되는 호텔, ‘데스티네이션 호텔’


온고지신은 현재 11개 호텔을 운영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역도, 이름도, 컨셉도 각기 달라요. 그 중 온고지신이 소유하고 있는 호텔은 단 1개, ‘미쓰이 칸코 호텔’이에요. 그나마도 2023년에 처음 소유한 호텔이고, 나머지 10개 호텔은 모두 소유주가 따로 있어요. 온고지신은 위탁 경영을 하고 있죠. 온고지신도 보유한 부동산이 아니라 호텔 경영 노하우가 회사의 주요 자산인 거예요.


ⓒOnkochishin


온고지신은 그들이 짓는 호텔을 ‘데스티네이션 호텔’이라고 말해요. 호텔 자체가 여행의 목적지가 되는 호텔이죠. 온고지신은 캐주얼한 호텔부터 최고급 호텔, 전통 료칸에서 최신식 호텔, 도심에서 섬까지 성급, 형태, 지역을 가리지 않고 호텔을 운영하는데요. 모두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어 그 호텔을 가기 위해 해당 지역을 방문할 정도의 파워를 가지고 있어요.


“호텔을 짓는 것은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출발점이죠. 서비스와 공간 디자인은 사람에 의해 완성됩니다. 좋은 숙소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아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합니다. 우리는 ‘호텔에서의 경험을 계속해서 개선하는 팀’입니다.”

- 온고지신 공식 웹사이트에서


온고지신이 기획한 호텔들은 호텔 경영을 부활시킬 뿐만 아니라, 호텔이 있는 지역까지 살린다는 평가를 받아요. 그렇다면 온고지신 팀은 과연 어떤 호텔 경험을, 어떻게 바꿔 나가고 있는 것일까요? 



#1. 숙박객을 10번째 경륜 선수로 만든 이유


경륜은 사이클의 세부 종목 중 하나인 스포츠로, 자전거를 타고 벨로드롬*에서 경주하는 스포츠예요. 기록이 아닌 순위로 승부를 가르는 경주로, 우리 나라뿐만 아니라 덴마크, 미국, 일본, 이탈리아 등에서 경륜 경기가 진행되고 있어요. 경륜의 특징 중 하나는 선수들의 기량, 컨디션, 작전 등을 분석해 우승 선수를 예상한 뒤 경주권을 구입해 베팅할 수 있어요. 국가가 사업 주체가 되어 경륜 경기 수익금의 일부를 스포츠, 사회복지 등의 분야에 환원하고 있는 거예요. 


*벨로드롬: 벨로드롬은 트랙 자전거를 위한 경기장을 말해요. 자전거가 달리는 힘에 따라 원심력으로 튕겨져 나가지 않게 경주로가 안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요.


현대적 경륜의 시초가 바로 일본이에요. 세계 2차 대전 이후 폐허가 된 도시를 재건하고, 국민들의 패배감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게 바로 경륜 사업이었죠. 일본의 경륜 경기는 한 때 전국민의 흥미를 이끌어 국가 재건에 큰 힘이 되었지만, 점차 인기가 시들해졌어요. 아무리 국가가 공인한 것이라 할지라도 본질적으로는 도박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부정적인 인식을 갖기 시작했죠. 경륜의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경륜 경기장 또한 발걸음이 찾는 사람들이 줄어 들었어요.


일본 오카야마현 타마노시에 위치한 ‘타마노 경륜장’도 마찬가지였어요. 1950년에 문을 연 이 경륜장은 경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에 더해 시설까지 낙후되어 설상가상의 위기에 놓여 있었죠. 이에 타마노 경륜장을 소유하고 있는 경륜 관리 회사 ‘차리로토(チャリ・ロト)’는 경륜장 재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해요.


재건축 전 타마노 경륜장 ⓒOkayama Prefecture Tourism Federation


ⓒOkayama Prefecture Tourism Federation


재건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숙박 시설을 포함하는 계획이 세워졌어요. 그리고 이 호텔의 기획을 온고지신이 맡게 되었죠. 온고지신은 처음 건축, 설계 단계부터 기획해, 2022년 3월에 ‘일본 최초의 경륜 스타디움 호텔’인 ‘케이린 호텔 10(Keirin Hotel 10)’을 개장해요. 경륜장과 붙어 있는 호텔로 149개 객실 중 126개 객실이 경륜장을 향하고 있어 객실에서 경륜 경기를 직관할 수 있어요. 경륜장 너머 세토내해의 아름다운 경치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건 덤이고요.


ⓒKeirin Hotel 10


ⓒKeirin Hotel 10


“당신이 10번째 선수입니다.(You are the 10th racer)”


케이린 호텔 10의 컨셉이에요. 원래 경륜은 9명의 선수가 경주를 하는데, 고객이 10번째 선수라는 말이에요. 말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객실을 경륜 선수 락커룸 컨셉으로 디자인했어요. 유니폼 스타일의 나이트 웨어, 바퀴를 본 뜬 옷걸이 등 곳곳에서 경륜 모티브를 발견할 수 있죠.


ⓒKeirin Hotel 10


ⓒKeirin Hotel 10


ⓒKeirin Hotel 10


ⓒKeirin Hotel 10


객실뿐만 아니라 호텔 전체를 경륜을 테마로 디자인했어요. 경륜장을 재건축하는 과정에서 나온 폐자재를 실내 장식의 아트워크로 업사이클링했거든요. 입구의 간판은 경륜장의 의자를 조합해 만들고, 조명은 바퀴나 핸들 등 자전거 부품으로 장식했죠. 호텔의 디자인은 도쿄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팀 ‘&Supply’가 맡았어요. 호텔 전반적인 분위기를 즐겁게 이끌며 디자인을 통해 숙박객들이 경륜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죠.


ⓒKeirin Hotel 10


ⓒKeirin Hotel 10


ⓒKeirin Hotel 10


ⓒKeirin Hotel 10


“인구 감소의 시대에 있어서, 모든 지역이 이대로 남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독특한 개성이나 남겨야 할 문화가 있는 지역을 제대로 남겨가는 것이, 우리들의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 마츠야마 토모키 대표, 닛케이 크로스 트렌드에서


케이린 호텔 10은 타마노 경륜장이 쌓아온 70년 이상의 역사와 일본의 경륜 문화를 계승하고 있어요. 그간 수많은 경기와 팬, 지역 사람들의 추억이 축적되어 있는 곳이거든요. 케이린 호텔 10은 이런 무형의 기억들을 미래에도 이어 나가기 위해 경륜의 새로운 입구가 되는 장소를 목표로 해요. 새로운 경륜 팬층을 확보하기 위해 젊은 사람들을 타깃했죠. 


게다가 호텔이 위치한 타마노는 예술의 섬으로 유명한 나오시마나 세토내해의 섬으로 향하는 항구와 가까워요. 조선업이 발달해 업무 목적으로 방문하는 인구도 많고요. 그동안은 마땅한 숙박시설들이 없어 이런 수요들이 인근 도시로 흩어졌었는데, 이제는 케이린 호텔 10으로 모이고 있어요. 평일은 출장 목적의 숙박객들이, 주말에는 감도 높은 젊은 고객들의 발길이 이어지죠. 이처럼 케이린 호텔 10은 지역의 스포츠 문화를 활용해 산업과 관광 거점으로서 타마노시의 가치를 높였어요.



#2. 지역의 역사를 은유한, 외딴 곳에서의 휴양


온고지신이 운영하는 호텔들은 생소한 지역에 있는 경우가 많아요. 대부분 주요 관광지가 아니라, 일부러 숙소를 위해 그 지역을 방문해야 하는 곳에 있죠.


"불편한 곳에 짓고 싶은 건 아니지만, 가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강한 곳을 선호하는 건 사실이에요. 교토처럼 눈에 잘 띄는 관광지에는 많은 대기업이 호텔을 두고 있어요. 그러니까 자본력 싸움이 되는 거죠. 하지만 경쟁사가 없고, 대기업들이 망설이는 곳에는 과감하게 접근할 거예요. 그건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 마츠야마 토모키 대표, 닛케이 크로스 트렌드에서


그런데 이렇게 외딴 곳에 사람들이 찾아갈 이유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온고지신은 그에 대한 답을 단절에 의한 ‘휴양’에서 찾았어요. 그래서 온고지신의 호텔 리스트에 보면 ‘조용한 곳’, ‘휴양지’라는 의미의 ‘리트리트(Retreat)’라는 이름이 들어간 호텔들이 눈에 띄어요. ‘세토우치 리트리트 아오나기(이하 세토우치 리트리트)’, ’이키 리트리트 카이리무라카미(이하 이키 리트리트)’, ‘고토 리트리트 레이(이하 고토 리트리트)’ 등이 있죠.


휴양의 컨셉을 살려 외딴 지역에 있는 호텔을 운영하는 것까지는 그럴 듯 해요. 심지어 고토 리트리트 레이와 이키 리트리트는 각각 고토 섬과 이키 섬에 위치해 있죠. 하지만 외딴 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는 차별화하기 어려워요. 섬나라인 일본에는 섬만 1만 4천 개가 넘으니까요. 온고지신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각 지역이 가진 역사, 문화적 자산과 자연을 활용해 기꺼이 가고 싶고, 숨고 싶은 호텔을 만들어요.


“불필요한 것을 벗겨내고 진정한 자아를 되찾고, 끊임없이 변하는 풍경을 바라보며 고요함 속의 고요함을 이해합니다. '미니멀 럭셔리.'”


온고지신의 초기작 중 하나인 세토우치 리트리트의 컨셉이에요. 에히메현 마쓰야마시에 위치해 있는 이 호텔은 객실 7개의 프라이빗한 호텔로, 숲에 파묻혀 있으면서 세토 내해가 내려다 보이는 절경을 보유하고 있어 마치 별장처럼 보여요. 게다가 프랭크 스텔라, 카와베 리에코, 유타카 오노 등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들도 수두룩해 전시 관람과 숙박을 함께 할 수 있죠.


ⓒSetouchi Retreat Aonagi


ⓒSetouchi Retreat Aonagi


그도 그럴 것이 이 호텔 건물은 원래 일본 제지 회사 다이오 제지의 영빈관이었다가, 이후에는 미술관으로 사용되던 개인 시설이었거든요. 건축은 무려 안도 다다오가 맡았죠. 2015년에는 온고지신에 위탁 운영을 맡겨 호텔로 한 번 더 변화를 꾀했어요. 지역의 자연과 섞이는 안도 다다오 특유의 설계로 세토내해의 고요함 속에 파묻혀 진정한 휴식이 가능한 곳이에요.


ⓒSetouchi Retreat Aonagi


이번에는 섬으로 가 볼까요? 나가사키현 고토 섬에 위치한 고토 리트리트는 섬의 역사와 문화를 휴양에 녹여 냈어요. 고토 리트리트도 소유주는 ‘소지츠고토카이하츠’라는 호텔을 중심으로 하는 관광·지역 개발 회사예요. 온고지신은 운영을 맡았고요. 고토 섬은 기독교 탄압 시대, 기독교 선교사들이 순교한 지역으로 아직도 당시의 교회나 교회 장식에 쓰이던 스테인드 글라스 공예 등의 문화가 남아 있어요. 온고지신은 이런 숭고한 역사를 계승해 ‘기도의 섬’, ‘빛의 오아시스’으로 고토 섬을 마케팅해요.


ⓒNacasa & Partners


그리고 호텔의 건축, 디자인, 액티비티 등에 고토 섬의 문화와 역사를 반영했어요. 건물 전체에 바다의 반짝임이 내부로 투영될 수 있도록 설계했죠. 현지에서 활동하는 스테인드 글라스 스튜디오 ‘루리안 글라스(Rurian Glass)’와 하시모토 유키오의 결과물이에요. 자연의 빛과 바다, 바람 등을 빌려 숭고한 분위기를 연출한 거예요. 스테인드 글라스 아트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호텔 어메니티도 셰이커 교도들이 사용하는 상자인 셰이커 박스에 담아 제공하는 등 디테일에도 성스러운 요소를 포함시켰죠. 


ⓒNacasa & Partners


ⓒNacasa & Partners


이처럼 온고지신은 휴양이라는 개념을 각 호텔이 위치한 지리적 특성, 역사와 문화로 재해석해 그 호텔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디자인했어요. 그 곳에서만 가능한 휴양이기에, 기꺼이 쉬러 가고 싶은 호텔이 될 수 있도록 말이죠.



#3. 세계 최초, 공식 샴페인 호텔이 오사카에?


온고지신은 주로 소도시나 섬에 있는 호텔들을 위탁 운영해 왔어요. 그런데 2022년 9월에 오픈한 교토의 ‘무니 교토(Muni Kyoto)’를 시작으로 대도시에 있는 호텔도 위탁 경영을 하기 시작했죠. 사업이 커져서 대도시에서 대기업과 경쟁할 만한 자본력이 생긴 덕분일까요?


그보다는 ‘데스티네이션 호텔’을 기획하며 쌓아온 노하우에 자신감이 붙은 덕분이에요. 무니 교토는 교토 아라시야마에 위치해 있는데요. 아라시야마는 대나무 숲을 비롯해 고즈넉한 산기슭, 고요한 가쓰라 강 등 평화로운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이죠. 무니 교토도 ‘유일무이한 경관’을 컨셉으로 아라시야마의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호텔로 자리 잡고 있어요.


2024년 1월, 온고지신이 또 한 번 대도시에 호텔을 열었어요. 이번에는 일본 제 2의 도시, 오사카였어요. 그런데 이 호텔이 위치한 오사카 신사이바시는 뛰어난 자연 경관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도심 한복판이에요. 오사카를 대표하는 번화가로, 이미 수많은 호텔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죠. 오사카 시내 중심지에서, 온고지신은 어떤 호텔로, 어떻게 경쟁력을 확보했을까요?


이 호텔의 이름은 ‘뀌베 J2(Cuvée J2)’예요. ‘뀌베’란 프랑스 와인 업계에서 쓰는 말로, 보통 특정 블렌드 혹은 배치의 와인을 일컫는 말이에요. 샴페인에서는  최상의 포도에서 압착하여 얻어낸 고품질의 포도즙이라는 의미가 있죠.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호텔은 와인, 그 중에서도 ‘샴페인’을 소재로 한 호텔인데요. 각 객실마다 찰스 하이직, 볼랭저, 레어, 떼땅저, 니콜라스 푸이야트 등 각기 다른 샴페인 메종과 협업해 객실을 꾸몄어요. 세계 최초의 ‘공식’ 샴페인 호텔이죠.


ⓒCuvée J2


각 샴페인 메종의 특색을 살릴 수 있는 인테리어로 꾸민 것은 물론이고 객실마다 해당 샴페인 메종의 라인업이 완비된 와인 셀러가 있어요. 시중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뀌베들도 있죠. 여기에 샴페인이 포함된 객실 패키지를 선택하면 해당 샴페인 메종의 최상위 샴페인까지 제공해요.


ⓒCuvée J2


ⓒCuvée J2


ⓒCuvée J2


이 호텔의 객실에서 샴페인을 마실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더 있는데요. 객실의 전화기에 있는 ‘샴페인 플리즈!(Champagne Please!)’ 버튼을 누르는 거예요. 이 버튼을 누르면 시원하게 칠링된 3~5종의 샴페인이 객실까지 배달되는데, 이 샴페인들을 잔 단위로 마실 수 있어요. 1병은 부담스럽고, 잔 단위로 샴페인을 마시고 싶은 고객들의 니즈를 세련된 방식으로 충족시킨 거예요.


ⓒCuvée J2


‘순백으로 감싸진 럭셔리’


뀌베 J2의 슬로건인데요. 뀌베 J2는 공간을 구현한 방식도 럭셔리해요. 1개 층에 1개 객실을 원칙으로, 4~14층에 걸쳐 총 11개 객실을 운영하고 있거든요. 한 층에 객실 1개라니, 호텔에서 제공할 수 있는 극강의 사치예요. 최대한 많은 객실을 만들어 공간의 효율을 높이는 게 매출 관점에서는 이득이니까요.


ⓒCuvée J2


하지만 뀌베 J2는 효율성 대신 모든 객실의 프라이버시를 강화해 ‘어른을 위한 은신처’를 자처해요. 여기에 모든 객실에 항상 따뜻한 물이 채워져 있는 ‘애니타임 배스(Anytime bath)’를 설치했어요. 심지어 오사카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유리벽과 붙어 있는 ‘반노천’의 형태예요. 시원한 샴페인 한 잔에 도시 풍경을 내려다 보며 즐기는 따뜻한 목욕이라니, 상상만 해도 호화로운 경험이죠.


ⓒCuvée J2


호텔이 가진 ‘순백’의 디자인 또한 샴페인을 컨셉으로 한 호텔의 정체성을 강화하는데요. 미니멀한 건축으로 유명한 일본의 국가대표급 건축가인 오가와 신이치의 작품이에요. 건물 소유주가 오가와 신이치의 심플하고 모던한 건축 스타일에 매료되어 의뢰하게 됐어요. 건물 설계 단계부터 오가와 신이치와 온고지신이 협력하여 디자인을 진행했기에, 호텔의 컨셉이 건축 디자인까지 세심하게 연결될 수 있었어요.


‘오사카’라는 도시는 온고지신에게 양날의 검이었어요. 오사카는 내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유동 인구도 많고 번화한 지역이죠. 하지만 그만큼 호텔들도 많고, 웬만한 글로벌 호텔 프랜차이즈들은 다 들어와 있어요. 저가 호텔부터 럭셔리한 5성급 호텔까지 경쟁이 치열하고요. 공급과 수요가 모두 많은 지역이기 때문에 독보적인 컨셉 없이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려웠어요.


이에 온고지신은 ‘럭셔리’라는 가치를 ‘샴페인’이라는 독창적인 소재를 활용해 구현했어요. 덕분에 오사카에 와서 숙박을 하기 위해 호텔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뀌베 J2에서 숙박을 하기 위해 오사카에 오는 ‘데스티네이션 호텔’로서의 존재감을 또 한 번 선보였죠. 대도시에서도 온고지신의 전략과 역량을 증명해 비즈니스적으로 한 단계 더 확장한 셈이에요.



지방을 살리고, 사업을 살리는 비즈니스 모델


데스티네이션 호텔을 추구하는 온고지신이 운영하는 호텔들은 지역마다 컨셉이 모두 달라요. 하지만 이 호텔들을 관통하는 가치들이 몇 가지 있어요. 하나는 ‘장인에 대한 존경’이에요. 지역에 기반을 둔 기획자, 크리에이터, 셰프 등의 전문가들과 협업을 통해 현장 중심의 스토리를 전달하고 있어요.


다른 하나는 ‘로컬 커뮤니티에 기여하는 쇼케이스’라는 점이에요. 지역 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 숙박 시설은 여행객들이 해당 지역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쇼케이스로 기능해요. 지역 내 자본을 유입시키고, 고용 기회를 창출하죠. 지역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하는 거예요.


지역을 알리고, 살리는 온고지신의 비즈니스는 일본의 지방 정부들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어요. 일본의 버블 경제 시기에는 ‘고향 창생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각 지자체마다 1억엔(약 10억원)을 정부에서 지원,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용도로 사용하게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 돈을 주민 보조금으로 사용하는 일도 많았고, 개발한 관광 상품도 성공적인 사례가 드물었죠. 1988년에 시작한 이 사업은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 받으며 1989년에 종료됐어요.


이후에도 로컬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이렇다 할 뾰족한 수가 나오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지방의 인구 감소 현상이 가속화되고, 노령화되면서 문제가 더 심각해졌죠. 여기에 온고지신의 비즈니스 모델은 하나의 해결책이 되었어요. 지역에 숙박 시설을 신설해 외부 자본을 유치하고, 지역색을 살린 기획으로 인구 유입을 이끌어 내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된 거예요.


온고지신의 데스티네이션 호텔은 지역을 살린 것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적으로도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었는데요. 2011년, 대표 1명으로 시작했던 사업이 2024년 5월 기준, 400명이 넘는 규모로 성장했거든요. 매출과 당기순이익도 코로나19 팬데믹 때 잠시 추춤했던 이후, 지속적으로 성장해 2023년에는 23억2,870만엔(약 230억원)의 매출과 1억5870만엔(약 15억6천만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어요.


사실 액수 자체보다 더 대단한 건 사업을 시작한 이래, 당기순이익이 마이너스였던 해가 단 3번 뿐이었다는 점이에요. 첫 해 년도와 코로나19가 한창이었던 시기를 고려하면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어요. 위탁 경영의 특성상 부동산과 관련한 초기 자본 투자나 고정비용이 적고, 손실이나더라도 하방 이익을 소유주로부터 보장 받는 경우가 많아 가능한 일이에요.


온고지신은 앞으로 운영하는 숙박 시설을 연 3개씩 추가할 계획이에요. 향후 5년 내 매출 8배, 순이익 30배를 목표로 하고 있죠. 지금까지의 추이를 봤을 때 다소 공격적인 목표이기는 해요. 하지만 ‘옛 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 새로운 것을 알다’라는 뜻의 이름처럼, 온고지신은 과거에서 미래의 방향을 찾는 회사예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온고지신의 과거에서 미래의 실마리를 찾아나갈 것이기에, 원대한 목표를 실현해 나갈 앞으로를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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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온고지신 공식 웹사이트

호시노 리조트 그룹 공식 웹사이트

[일본 기업을 unboxing하다] 호시노리조트 ① ‘위기’라 쓰고 ‘기회’라 읽는다, KMAC

케이린 호텔 10 공식 웹사이트

河村 優, 岡山「競輪ホテル」宿泊ルポ 元星野リゾート取締役の非効率発想, 日経クロストレンド

瀬戸内の「泊まれる競輪場」スタジアム一体型ホテル 『KEIRIN HOTEL 10』の宿泊予約開始, @Press

세토우리 리트리트 아오나기 공식 웹사이트

고토 리트리트 레이 공식 웹사이트

뀌베 J2 공식 웹사이트

大阪・心斎橋に世界初の‶シャンパン・ホテル“が誕生!「Cuvée J2 Hôtel Osaka by 温故知新」2024年1月13日(土)開業, PR Times

世界初のシャンパン・ホテル「Cuvee J2 Hotel Osaka by 温故知新」が大阪に誕生!日常を彩る新たなホテル体験を, Rakuten 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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