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여행의 끝에선 없던 행동이 피어납니다

퇴사준비생의 도쿄 2 프롤로그

2023.01.20

여행이 우리를 떠났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우리는 여행을 떠날 수 없었죠. 그렇게 돈, 시간 그리고 마음만 있으면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상식이 무너졌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어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여행에서 멀어지자 여행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 거죠. 마치 집을 떠나야 비로소 집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듯이요.


기서

복할 것.


언젠가 김민철 작가의 《모든 요일의 여행》을 읽다가 마음이 쿵, 머리가 쾅 거리면서 수집한 문구입니다. 와, 여행은 ‘여기서 행복할 것’의 준말이라뇨. 여행이 떠나버린 상황에서, 이보다 적절할 수 없는 정의를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주문처럼 되뇌었죠. 여행이 별거 있냐고.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여기서 행복하자고. 그게 바로 여행이라고. 하지만 이내 여행이 그리워졌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 하나는 그 책을 읽었을 때와 전제가 달라졌습니다.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는 상황에서 어디에 있건 여기서 행복하자는 것과, 어느 곳도 갈 수 없으니 여기서 행복하자는 건 차이가 있었죠. 또 다른 하나는 행복에도 종류가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하나로 정의된 감정이 아닙니다. 그래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다양한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상실한 행복이 생겨났죠. 그렇다면 여행이 우리를 떠난 시기에 퇴사준비생들은 어떤 행복을 잃어버렸고, 또 찾고 싶었던 걸까요?




일상과 멀어지는 행복을 찾아서

일상은 소중합니다. 먹고사는 일, 사회적 관계 등의 일상이 없다면 행복에 구멍이 날 수도 있죠. 하지만 때로는 쳇바퀴 도는 듯한 그 일과 관계가 일상을 압박해 오기도 합니다. ‘테트리스’의 블록을 없애는 것처럼 계속되는 일과 관계를 해결해야 하는데 몇 개를 삐끗할 경우 게임과 마찬가지로 운신의 폭이 좁아지니까요. 이럴 때 필요한 게 정지 버튼입니다. 일상을 잠깐 멈추고 한 발짝 떨어져 보는 거죠.


여행은 이러한 일상과의 거리를 만들어 줍니다. 일상에서 멀어진 덕분에 시간의, 생각의, 그리고 마음의 숨 쉴 틈이 열립니다. 물론 언제 어디서든 연결될 수 있는 통신 기술로 인해 완전히 단절되기는 어렵죠. 하지만 여행을 떠나면 시간의 용도와 밀도 그리고 속도마저 달라져 여기서 행복할 수 있을 여지가 생깁니다. 또한 일상과의 거리를 두게 되니 일상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을 수도 있고요.



우연과 마주치는 행복을 찾아서

돌이켜보면 여행의 묘미는 늘 계획에 없던 순간에 찾아왔습니다. 뜻대로 짠 일정을 숙제하듯 소화할 때가 아니라, 뜻밖의 상황을 느닷없이 마주칠 때였죠. 예정에 없던 대화, 있는지도 몰랐던 공간, 상상하지 못했던 이미지, 들어본 적 없는 메시지 등 여행에서 우연이 끼어들 때 여기서 행복하다는 감정이 반짝였습니다. 여행이 주는 선물이자, 계획할 수 없었기에 더 소중한 여행의 조각들입니다.


물론 일상에서도 우연이 끼어들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행을 떠나면 우연을 마주칠 확률이 더 올라갑니다. 특히 떠나는 곳이 해외라면 더 그렇죠. 도시마다 생활 방식, 소비문화, 소득 수준 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해외 도시에 가보면 뻔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뻔하지 않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렇게 공간이 바뀌면 ‘평소와의 다름’을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할 수 있기에 여행에서 우연과 마주칠 가능성이 높아지는 거죠.



고수와 공명하는 행복을 찾아서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행은 떠나는 게 아니라 돌아오는 겁니다. 그래야 여행이 성립하죠. 결과적으로 제자리로 온 건데, 신기하게도 여행을 떠나기 전과 다녀온 후의 자신은 달라져 있습니다. 한 뼘쯤 더 성장해 있다고나 할까요. 이유가 뭘까요?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은데, 여행을 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이 고수들과 공명하기 때문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슬램덩크》를 예로 들어 볼게요. 주인공 ‘강백호’가 속한 ‘북산고’만 나올 때는 이 팀이 최고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지역 예선, 전국 대회 등으로 무대가 커질수록 강호들이 계속 등장합니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은 선의의 경쟁을 통해 성장하죠. 마찬가지로 여행을 가면 더 큰 세상을 만납니다. 자기 분야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고수들이 만든 결과물들을 보면서 영감과 자극을 받죠. 성장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건 물론이고요.


기서‘도’ 

복할 것.


코로나19 팬데믹 시대, 여행이 우리를 떠난 후 퇴사준비생의 관점에서 업데이트한 여행의 정의입니다. 여전히 여기서 행복한 것이 여행이지만, 행복의 상실감을 줄이기 위해선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여기서‘도’ 행복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다행히도 점진적으로 국경 간 빗장이 풀리며 여행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으니 여기서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


한 가지 전제가 더 필요합니다. 어떤 전제가 있어야 하는지 알기 위해 JR(Japan Railway)이 과거에 했던 광고를 한번 살펴볼게요. JR은 철도 회사로, 우리나라로 말하면 코레일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죠. 그렇다면 JR이 광고를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기차 이용객을 늘리기 위함입니다. 방법은 둘 중 하나. 다른 교통수단의 승객을 빼앗거나, 여행을 가는 수요 자체를 늘리거나.


JR은 후자를 택합니다. 국내 여행을 할 때 사람들이 교통수단으로 활용하는 건 크게 비행기, 기차, 자동차 등 세 가지입니다. 그런데 어지간해서는 기존에 즐겨 타던 교통수단을 바꾸게 하기 어렵습니다. 행동패턴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아서죠. 그래서 JR은 기차가 더 빨라요, 더 편해요, 더 싸요 등을 강조하면서 시장 파이를 빼앗기보다 여행을 자극하는 광고를 제작합니다. 여행이 늘어나면 시장 점유율만큼 기차 이용객이 늘 테니까요.


이때도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여행지의 멋진 풍경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겁니다. 이미지로 여행을 떠나고 싶게끔 하는 방식이죠. 또 다른 하나는 마음을 울리는 문구로 여행을 자극하는 겁니다. 텍스트를 통해 여행할 결심이 서게 하는 방식입니다. JR은 여기서도 후자를 택합니다. 그리고는 다양한 광고 시리즈를 선보이며 주옥같은 카피들을 쏟아냅니다. 그중에서 퇴사준비생에게 필요한 하나를 꼽아볼게요.


‘모험이 부족하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없어.’


좋은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다고 좋은 어른이 되는 건 아닙니다. 다양한 세상과 만나며 더 넓게 생각하고 더 깊게 고민하면서, 외부와 유연하게 소통할 수 있는 자기다움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 광고 카피는 여행이라는 모험을 부족함 없이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죠. 그리고 이 문구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퇴사준비생의 관점으로 여행할 때의 전제가 담겨 있습니다.


기서

‘동’할 것.


물론 전제가 없어도 여행 그 자체로 여기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퇴사준비생이 여행을 할 때, 여기서 행복하기 위해선 여기서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행동이라고 해서 대단한 걸 말하는 게 아닙니다. 현상의 뒷모습을 보기 위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여행을 하자는 뜻이죠. 퇴사준비생 시리즈를 통해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듯이, 무엇을 보는지보다 어떻게 보는지가 중요하고, 고민의 결과가 아니라 고민의 과정을 벤치마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머릿속에만 넣어둘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성장에, 그리고 미래에 응용할 수 있도록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퇴사준비생의 관점으로 여행을 할 때 들고 다니는 7가지 렌즈입니다. 여행에서 방문하는 곳의 특성에 맞게 필요에 따라 이 렌즈들을 번갈아 끼면서 현상의 뒷모습을, 그리고 고민의 과정을 벤치마킹하려 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퇴사준비생의 첫 여행지는 도쿄입니다. 이유는 에필로그에서 설명할게요. 그렇다면 지금부터 도쿄로 모험을 떠나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