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도 작품이다, 아이디어를 전시하는 뮤지엄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

2022.06.04

‘좋아요‘에도 무게가 있어요. 인플루언서나 셀럽이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해 좋다고 하면 인기가 올라가죠. 여기에다가 명성까지 얹어주는 좋아요도 있어요. 미슐랭 가이드, 칸영화제, 노벨문학상 등 권위있는 기관에서 좋다고 평가한 경우예요. 그들이 인증하면 세상이 인정해요. 그래서 제품이나 작품은 바뀐 게 없는데, 수상을 하고나면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지죠. 


디자인 업계라고 예외는 아니에요. 미슐랭 가이드, 칸영화제, 노벨문학상 등과 같은 영향력은 아닐지 몰라도 디자인 제품의 인기와 명성을 올려주는 어워드가 있어요. ‘iF 디자인 어워드’, ‘IDEA’,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가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로 불리죠. 이중에서 싱가포르에 위치한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어요. 이곳에서는 미완성의 작품에도 상을 주거든요.


완성한 작품들만 대상으로 해도 출품작은 넘쳐날 텐데,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가 아이디어도 작품으로 인정해 수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 미리보기

• 오리지널이 된 2호점

• 상상을 자극하는 미완성의 힘

• 유료 전시를 공짜로 만드는 방법

• 고객 경험을 바꾸는 위치 디자인




집에서 가족만큼이나 자주 부르는 이름이 있어요. 스마트 스피커의 이름이죠. 스피커의 이름을 부르고 TV를 켜거나 끄는 것을 요청하기도 하고, 시간이나 날씨와 같이 간단한 정보에 대해 물어보기도 해요. 이처럼 스마트 스피커는 일상에 전에 없던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어요. 그뿐 아니에요. ‘살려줘’, ‘도와줘’ 등과 같은 특정 단어를 말하면 곧바로 보안 업체에 긴급 문자를 보내 소방서, 경찰서 등에 구조 요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긴급 SOS 기능까지 갖추고 있어요.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나 질환이 있는 환자들에게는 생명과 직결되는 도움을 주기도 하죠.


말만 하면 되니 자주 부르게 되죠. 그런데 이런 스마트 스피커의 편리함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현존하는 대부분의 스마트 스피커는 음성 인식 기반이기 때문에 장애가 있어 말을 하지 못하거나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스마트 스피커를 사용하기가 힘들어요.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넘어야 하는 문턱인 거죠 그래서 중국의 디자이너 ‘종 주오젱(Zhong Zuozheng)’은 언어 또는 청각 장애인들도 사용할 수 있는 가상 비서 ‘지니(Jinni)’를 만들었어요. 


지니는 수화를 이해하는 기능이 있어 수화로 질문을 던지거나 컨트롤이 가능해요. 지니에 탑재된 LiDAR(Light Detection And Ranging) 스캐너 덕분에 사용자의 제스처가 요구하는 명령을 인식 및 해석하고, 스크린에 요청을 띄우며 요청에 따라 반응해요. 어둠 속에서도 사용자의 수화를 이해할 수 있고요. 또한 헤드가 자동으로 회전해 사용자가 방의 어디에서나 스피커와 상호 작용할 수 있고, 사용자와의 거리에 따라 스크린 상의 콘텐츠 사이즈를 조절해 먼 곳에서도 사용자가 스크린 위의 정보를 볼 수 있어요. 여러모로 소리를 이용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가상 비서죠.



ⓒZhong Zuozheng


2021년에 종 주오젱은 수화 인식 스마트 스피커 컨셉으로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Red Dot Design Award)’의 ‘가사 도움 및 가전 제품(Domestic Aid & Home Appliances)’ 카테고리에서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Best of the best)’를 수상했어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지니에 담긴 디자인적, 사회적 가치를 인정한거죠. 레드닷 어워드는 독일의 ‘iF 디자인 어워드’, 미국의 ‘IDEA’와 함께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로 불리는 세계적인 디자인 어워드로, 매해 ‘제품 디자인’, ‘브랜드 &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디자인 컨셉’ 등 3개 종목에서 가치 있는 디자인들을 선정해요. 그리고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Red Dot Design Museum)’에서 누구나 매해 수상작들을 볼 수 있도록 전시를 해요.



오리지널이 된 2호점

레드닷 어워드는 1955년 독일 에쎈(Essen)에서 독일산 소비재의 디자인을 현대화하고 수출에 적합하게 만들고자 처음 시작되었어요. 그래서 첫 번째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도 에쎈에 세워졌죠. 그리고 아시아 지역으로 확장하면서 두 번째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을 싱가포르에 만들었어요. 그렇다고 에쎈에 있는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을 그대로 옮겨온 것은 아니에요. 싱가포르의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에서는 에쎈에서 볼 수 없는 수상작들을 전시해요. 그렇다면 싱가포르에서는 어떤 수상작들을 만날 수 있는 걸까요?



ⓒ시티호퍼스


에쎈에서는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의 3개 종목 중 ‘제품 디자인’, ‘브랜드 &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위너들의 제품을 전시하는 반면, 싱가포르에서는 ‘디자인 컨셉’에서 수상한 제품들만 전시해요. 디자인 컨셉 종목은 상용화 또는 양산되기 이전의 제품 컨셉이나 프로토타입만으로 상을 수여해요. 모종의 이유로 아직 상품화되지 못한 아이디어라도, 그 안에는 세상을 바꾸는 디자인의 힘과 가치가 있다고 인정하기 때문이에요. 위에서 소개한 종 주오젱의 지니도 디자인 컨셉 종목에서 수상한 사례로, 싱가포르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에서 만날 수 있어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원래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는 종목 구분없이 어워드를 개최하다가 1993년, 브랜드 &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종목의 모태가 되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종목이 처음으로 분리되었어요. 이후 2005년에 싱가포르에서 제 1회 ‘레드닷 어워드: 디자인 컨셉’을 개최하면서 지금의 3개 종목이 자라잡았죠. 디자인 컨셉 종목의 취지는 제품을 양산할 기술과 자본력이 있는 기업뿐만 아니라, 제품 양산보다 혁신적인 디자인을 연구하는 데에 목적이 있는 대학교나 신진 디자이너들도 참여해 수상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덕분에 레드닷 어워드는 아이디어와 프로토타입까지 디자인으로 인정하고 상을 수여하는 유일한 국제 디자인 대회로 손꼽히죠. 디자인 어워드의 문턱을 낮춰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설 자리를 넓힌 셈이에요.



상상을 자극하는 미완성의 힘

에쎈 전시관과 싱가포르 전시관은 각기 다른 종목의 수상작들을 전시하는 만큼 제품을 전시하는 방식도 달라요. 에쎈에서는 전시된 디자인 제품들을 눈으로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디자인의 실용적인 특징을 전달하기 위해 관람객들이 직접 만져보고 체험할 수 있어요. 반면 제품의 컨셉이나 프로토타입을 중심으로 한 싱가포르 전시관에는 제품보다 프린팅된 제품 사진과 소개글이 주로 전시되어 있어요. 몇 가지 프로토타입을 투명한 상자 안에 넣어 전시해 두었고요. 다소 심심한 풍경일지 모르지만, 디자인을 만드는 아이디어에 방점을 둔 전시라는 배경을 이해하고나면 오히려 아이디어를 소개하는 글과 사진을 보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죠.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전시장은 전년도 수상작과 영구 콜렉션(Permanent collection)을 전시하는 코너로 나뉘어져요. 전시장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상작 전시 코너에는 디자인 컨셉 종목에서 전년도에 수상한 제품들을 전시해 놓았는데, 2022년 4월 기준으로 32개국에서 온 319개 디자인 컨셉 또는 프로토타입들이 진열되어 있어요. 디자인 컨셉은 건축, 가구, 공공장소, 인터렉션 & UX,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등의 하위 분야로 나뉘죠. 큐브를 모티브로 한 철제 구조물을 프레임삼아 분야별로 각 디자인 컨셉과 프로토타입을 텍스트와 이미지를 통해 소개하고 있어요.



전시장 내부 모습이에요. ⓒ시티호퍼스


한편 영구 콜렉션에는 종목에 상관 없이 레드닷에서 수상한 디자인 작품들을 영구 콜렉션으로 수집해 전시해요. 영구 콜렉션에는 애플의 에어팟, 펠로우 스태그의 전기 주전자 등과 같이 이미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의 일상을 업그레이드한 제품들뿐만 아니라 유리바닥이 산처럼 솟아오른 듯한 어항, 유려한 디자인의 전기 바이올린 등 상상력과 위트가 돋보이는 제품들도 있어요. 



영구 콜렉션의 일부예요. ⓒ시티호퍼스


2011년 수상작인 미국 디자인 에이전시 Aruliden의 ‘Fishscape’ 어항이에요. ⓒRed Dot Design Award

2017년 수상작인 일본 YAMAHA 사의 YEV 전기 바이올린이에요. ⓒRed Dot Design Award



유료 전시를 공짜로 만드는 방법

싱가포르에 있는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은 2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전시 공간은 2층에 위치해 있어 10 싱가포르 달러(약 9,000원)의 티켓을 구매해야 입장이 가능해요. 그런데 전시 티켓을 구매하면 1층에 위치한 ‘디자인 뮤지엄 숍’이나 ‘뮤지엄 카페 바’에서 10 싱가포르 달러를 쓸 수 있는 바우처를 제공해요. 바꾸어 말하면 1층에서 10 싱가포르 달러 이상의 식음료를 소비하거나 디자인 제품을 구매할 예정이라면, 전시 티켓을 사서 전시도 구경하는 게 더 이득인 셈이죠. 유료 전시에 대한 문턱을 낮춰 전시 관람을 유도하는 장치이기도 하고요.



전시 티켓을 구매하면 주는 입장 카드(왼쪽)와 1층의 카페, 숍에서 사용할 수 있는 10 싱가포르 달러의 바우처(오른쪽)예요. ⓒ시티호퍼스


디자인 뮤지엄이지만 전시관은 2층에 두고, 1층 전체를 라이프스타일 편집숍과 카페 & 바를 겸하는 공간으로 할애한 것은 디자인 뮤지엄에 대한 심리적 허들을 낮추고 사람들의 일상에 더 가까워지고자 하는 의지예요. 카페 & 바 공간은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한 가구와 디자인 제품으로 꾸며져 있어 이용객들이 자연스럽게 어워드 수상작들을 경험할 수 있어요. 게다가 야외에도 좌석을 넉넉히 두어 뮤지엄을 방문한 사람이 아니라도 일반적인 카페처럼 누구나 거리감없이 드나들 수 있죠. 또한 편집숍에는 상용화된 레드닷 수상작 외에도 전 세계의 다양한 디자인 오브제들을 큐레이션해 판매해요. 2층 전시의 확장판으로서 전시에서의 디자인 경험을 보완하는 셈이에요. 기발하거나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제품들이 많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죠.




ⓒ시티호퍼스


전시를 관람하듯, 쇼핑을 하듯 디자인 편집숍을 둘러 보다 보면 바로 옆의 ‘프라이탁 아카이브 전시(Freitag Archive Exhibition)’ 공간이 눈에 띄어요. 1층 한 켠에 위치한 프라이탁 무료 전시 공간으로, 프라이탁의 스토리와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이에요. 1993년, 프라이탁 형제가 트럭 방수포와 버려진 자전거 튜브, 자동차 안전 벨트 등으로 디자인한 첫 번째 메신저 백을 시작으로 오늘날의 컬트 디자인 브랜드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어요. 프라이탁 역사의 디딤돌이자 스냅샷과 같은 제품들도 만나볼 수 있고요. 사람들이 익숙한 브랜드이자 디자인에 한 획을 그은 브랜드의 이야기를 전시로 풀어냄으로써 디자인과 우리의 삶이 멀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 해요.



ⓒ시티호퍼스



고객 경험을 바꾸는 위치 디자인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은 싱가포르를 상징하는 지역인 마리나 베이(Marina Bay)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요. 마리나 베이는 멋진 바다 뷰는 기본이고,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Marina Bay Sands Hotel)과 같은 호화로운 숙박 시설, 대형 쇼핑몰 등이 밀집한 관광지로 전 세계에서 모인 여행객들이 한 번쯤 꼭 들르는 지역이에요. 게다가 마리나 베이를 따라 조성된 3.5km의 마리나 베이 워터프론트 산책로(Marina Bay Waterfront Promenade)는 현지인들도 조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러 많이 찾는 곳이죠. 여행객과 현지인을 가리지 않고 접근성이 좋은 지역에 위치해 마음 먹고 찾아 가지 않아도 일상 속에 겸사 겸사 들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어요.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의 탁월한 입지 선정은 세 번째 박물관에서도 이어져요. 세 번째 뮤지엄은 중국 해안 도시 샤먼에 있는데, 이번에는 샤먼의 가오치(Gaoqi) 공항에 자리를 잡았어요. 샤먼에 들어 오거나 샤먼을 떠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통과할 수 밖에 없는 장소죠. 특히 공항에서는 유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시간도 보낼 겸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을 둘러볼 확률이 높죠. 사람들을 오게 만드는 것이 어렵다면, 사람들이 올 수 밖에 없는 입지를 확보하는 것도 유효한 전략이에요.


2018년에 문을 연 샤먼 전시관은 가장 최근에 문을 연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답게 종목에 대한 제한없이 제품 디자인, 브랜드 &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디자인 컨셉 등 3개 종목에서 수상한 작품들을 모두 만날 수 있어요. 전에는 에쎈 전시관과 싱가포르 전시관 모두 다녀와야 가능했던 경험이 샤먼 전시관 한 곳에서 가능해진 거죠. 게다가 샤먼 전시관의 상설 전시인 ‘성공의 형태(Form of Success)’는 레드닷 어워드의 창립자이자 의장인 ‘피터 젝(Peter Zec)’ 박사가 큐레이션했어요. 이렇게 구성까지 차별화하니 샤먼 공항을 거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밖에요.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은 개관할 때마다 기존 박물관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컨셉, 입지, 큐레이션 등에서 점진적인 진화를 이끌어 내면서 일상과 더 가까워 지고 있어요. 마치 디자인이 조금씩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더 나은 내일로 이끄는 것처럼 말이죠.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뿐만 아니라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의 미래까지도 기대되는 이유예요.




Reference

레드닷 디자인 뮤지엄 싱가포르 공식 웹사이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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