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병에 차를 담아, 없던 시장을 연 티하우스

로열블루티

2022.10.12

로열블루티는 고급 차를 우려내 플라스틱병이 아니라 와인병에 담아서 판매해요. 병만 달라진 게 아니에요. 가격대도 높아졌죠. 로열블루티에서 파는 차 중에서 가장 저렴한 차는 3,800엔(약 3만 8천원)이고 가장 비싼 차는 60만엔(약 600만원)이에요. 와인병 용량이 750ml로, 500ml인 보통의 플라스틱병보다 1.5배 큰 것을 감안하더라도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병에 담긴 차 대비 15배 이상 가격 차이가 나요.


차를 와인병에 담은 것만으로 이렇게 가격이 비싸질 수 있냐고요? 그럴 수 있다면 누구나 그랬겠죠.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차를 와인병에 담기 위해 로열블루티가 바꾼 다른 요소들을 살펴봐야 해요. 차를 우려내는 방식, 차를 판매하는 장소, 그리고 차를 음미하는 문화를 새롭게 해 그동안 없던 시장을 연 거니까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했길래, 로열블루티는 이미 우려내 식어버린 차를 600만원에 팔 수 있는 걸까요?


로열블루티 미리보기

 있을 법한데 없는 것에서 기회를 발견한다

 #1. 차를 우려내는 온도를 바꾼다

 #2. 낯선 고급 제품에는 날선 고객 접점이 필요하다

 #3. 병은 거들 뿐, 즐기는 문화를 접목한다

 공통점을 접목하면 차별점이 생긴다




일본 어느 작은 마을의 농가에 고민이 하나 있었어요. 나가노현의 시모조촌에 있는 이 농가에서는 ‘무라노코메’라는 이름으로 쌀을 재배하여 판매했는데, 이 쌀로 지은 밥은 식어도 맛있을 정도로 참 좋지만 이를 잘 표현할 방법이 없었던 거죠.


‘어떻게 하면 무라노코메로 지은 밥은 식어도 맛있다는 것을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쉬운 방법으로는 쌀 패키지에 식어도 맛있다는 문구를 넣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해서는 수많은 쌀 브랜드들과의 경쟁에서 눈에 띄기 쉽지 않죠. 메시지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어렵고요. 문구로 무라노코메의 장점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까요?


때로는 말보다 이미지가 더 직관적입니다. 그래서 식어도 맛있는 쌀이라는 컨셉을 은유적으로 표현할 메타포를 찾기 시작했죠. 그렇게 찾은 메타포가 ‘오니기리’예요. 일본식 주먹밥이자 일본의 국민 도시락 메뉴인 오니기리는 만들어 놓고 나중에 먹는 음식이라 식은 밥도 맛있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는 쌀을 담는 패키지를 오니기리 모양으로 디자인했어요. 구체적이면서 익숙한 음식에 연결시켜 식어도 맛있는 쌀임을 연상하도록 한 거예요. 또한 패키지를 투명한 비닐로 제작했어요. 덕분에 백미, 현미, 찹쌀 등 세 종류의 쌀을 눈으로 직접 비교해 볼 수 있죠. 여기에다가 각 종류의 쌀마다 서로 다른 오니기리 캐릭터를 일러스트로 넣어 포인트를 줬어요. 캐릭터로 귀여움을 더하자 먹기 위해 사야 하는 쌀을 넘어 갖고 싶은 쌀이 되었죠.



무라노코메의 패키지는 일본의 오니기리를 주제로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는 디자이너 '하루크아트(HARUKart)'가 디자인했습니다. ⓒ무라노코메


무라노코메 사례는 패키지 디자인을 얼마나 감각적으로 디자인했느냐와는 차원이 다른 접근이에요. 제품을 있어 보이게 만드는 것 이상으로, 무언가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차용해 제품을 새롭게 포지셔닝시킨 거니까요. 이처럼 똑같은 제품이라도 어떻게 담느냐에 따라 제품의 가치가 달라지는데, 무라노코메만 그러라는 법은 없죠. 지금부터 소개할 ‘로열블루티(Royal Blue Tea)’는 차(Tea)를 와인병에 담아 차에 대한 인식을 바꿨어요. 



있을 법한데 없는 것에서 기회를 발견한다

차 시장을 가만히 보면 흥미로운 점이 있어요. 보급형 차 브랜드만큼이나 고급 차 브랜드가 많고, 고급 차 브랜드 중에는 직접 차를 우려주는 티하우스를 운영하는 곳들도 있어요. 그런데 고급 차 브랜드의 차를 우려서 병에 담아 파는 경우는 보기 어려워요.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찻잎을 파는 것보다는 부가가치가 높고 매장에서 직접 차를 우리는 것보다는 확장성이 큰데도, 병에 담긴 차 중에서 고급 차 브랜드는 찾기가 쉽지 않죠.


대체로 병에 담긴 차는 보급형 브랜드의 영역이에요. 그리고 대부분은 플라스틱병에 담아 편의점 등에서 판매해요.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갈증이 있어요. 고급 차를 직접 우려 마시자니 번거롭고, 그렇다고 티하우스에 갈 상황은 아닌 경우가 있잖아요. 이럴 때 이미 우려낸 차를 마시고 싶은데 그런 고급 차는 없단 말이죠.


로열블루티는 이 지점을 파고 들었어요. 언제 어디서든 간편하게 고급 차를 즐길 수 있게 한 거예요. 어떻게냐고요? 로열블루티는 고급 차를 우려내 플라스틱병이 아니라 와인병에 담아서 판매해요. 무라노코메처럼 제품을 담는 방식을 바꿔 병에 담긴 차도 고급 차라는 것을 은유했어요.



Royal Blue Tea


병만 달라진 게 아니에요. 가격대도 높아졌죠. 로열블루티에서 파는 차 중에서 가장 저렴한 차는 3,800엔(약 3만 8천원)이고 가장 비싼 차는 60만엔(약 600만원)이에요. 와인병 용량이 750ml로, 500ml인 보통의 플라스틱병보다 1.5배 큰 것을 감안하더라도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병에 담긴 차 대비 15배 이상 가격 차이가 나요.



ⓒRoyal Blue Tea


차를 와인병에 담은 것만으로 이렇게 가격이 비싸질 수 있냐고요? 그럴 수 있다면 누구나 그랬겠죠. 이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차를 와인병에 담기 위해 로열블루티가 바꾼 다른 요소들을 살펴봐야 해요. 차를 우려내는 방식, 차를 판매하는 장소, 그리고 차를 음미하는 문화를 새롭게 해 그동안 없던 시장을 연 거니까요.



#1. 차를 우려내는 온도를 바꾼다

로열블루티는 차를 직접 재배하지 않아요. 일본을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서 최고급 품질을 자랑하는 차 산지의 차를 공수하죠. 최고의 찻잎 중에서도 손으로 딴 잎만 사용해요. 찻잎의 크기, 모양 등을 보고 적합한 찻잎만 따기 위해서예요. 여기까지야 고급 차 브랜드가 되기 위한 기본이자, 여러 고급 차 브랜드에서도 하는 일이죠. 로열블루티를 특별하게 하는 건 차 그 자체가 아니라 차를 우려내는 방식에 있어요.


우선 공수한 찻잎을 차가운 물에 3~7일 정도 우려요. 참고로 녹차Green tea, 홍차Black tea, 자스민차Jasmine tea는 3일, 우롱차Blue tea는 7일이 걸려요. 이렇게 우려낸 차를 가열하지 않고 멸균 용법을 이용해 걸러내죠. 그리고는 어떤 화학 첨가물이나 방부제를 넣지 않고 병에 담는 거예요. 이 모든 과정은 수작업으로 이뤄지고요.


별 거 아니 것처럼 보이지만, 로열블루티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혁신적인 프로세스예요. 이 프로세스를 ‘미즈다시Mizudashi’라고 부르죠. 이처럼 가열 없이 살균하고 화학 첨가물이나 방부제를 넣지 않은 덕분에 차를 우려낸 후에도 고급 차의 맛을 보존할 수 있게 됐어요. 그동안 고급 차 브랜드가 하지 못했던, 병에 담은 차를 내놓을 수 있는 거고요. 


위생이 걱정된다고요? 안심하셔도 괜찮아요. 내부적으로 555개의 관리 기준을 통과해야만 판매를 하니까요. 여기에다가 미즈다시 프로세스는 일본 후생 노동성으로부터 안전함을 승인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식품 안전 관리 인증 제도인 SGS-HACCP 인증도 취득했죠. 안전성을 이중, 삼중으로 확인한 거예요.


이렇게 우려낸 차를 와인병에 담아요. 고급 차라는 이미지를 은유하려는 목적이 크지만, 차의 풍미를 유지하려는 실용적인 목적도 있어요. 녹차 성분인 카테킨은 빛에 민감해서 와인병처럼 빛을 차단할 수 있는 용기가 제격이기 때문이죠. 또한 맛을 유지하려면 산소가 들어가지 않도록 밀폐해야 하는데, 코르크 마개로는 공기를 완전히 차단할 수 없어 마개는 유리로 바꿨죠. 


차를 우려내는 혁신적인 프로세스로 로열블루티는 새로운 시장을 열었어요. 하지만 초기 반응은 뜨뜻미지근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낯설었어요. 미리 우려내 병에 담은 차가 고급 차라는 것도, 차를 와인병에 담아 판매하는 것도 소비자들에겐 생소했으니까요. 게다가 가격 역시도 소비자들의 기존 인식과 거리가 있는 수준이었죠. 로열블루티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2. 낯선 고급 제품에는 날선 고객 접점이 필요하다

로열블루티는 그들의 차를 접할 수 있는 장소를 전략적으로 선택했어요.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고급 호텔 파인 다이닝, 비행기 일등석 등 구매력이 높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 중심으로 납품하기로 한 거예요. 또한 일반 소비자 대상의 판매도 긴자 미츠코시 백화점 등 고급 백화점으로 한정했어요. 이렇게 입소문이 나다가 2016년 G7 이세시마 정상 회담, 2019년 G20 오사카 정상 회의에 로열블루티가 제공되면서 유명세를 탔죠.


이처럼 로열블루티는 고급 레스토랑, 비행기 일등석, 정상 회담 등을 등에 업고 이름을 알렸어요. 이런 곳들은 로열블루티를 경험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지만 동시에 한계도 가지고 있었죠. 로열블루티를 마시기 위해 매번 고급 레스토랑에 가거나, 비행기 일등석을 탈 수는 없으니까요. 물론 일부 고급 백화점에서 판매하지만 독립 매장이 아니고 주류 편집숍 등에서 파는 형태라 로열블루티를 구매할 수는 있어도 경험해보긴 어려웠어요. 고객 접점을 늘리려면 다른 방법이 필요했죠. 



ⓒ시티호퍼스


그래서 로열블루티는 2016년에 가나가와현 지가사키에, 그리고 2017년에 도쿄 롯폰기에 로열블루티의 플래그십이자 부티크 매장인 ‘더 티 바(The Tea Bar, 이하 T bar)’를 오픈했어요. 이곳에선 로열블루티 병 제품을 구매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잔 단위로 마셔볼 수 있어요. 비싼 식사를 하지 않고도, 비행기 일등석을 타지 않고도 로열블루티를 음미해볼 수 있는 공간인 거예요. 이 중에서 시티호퍼스가 다녀온 롯폰기 T bar를 중심으로 설명해 볼게요.



ⓒRoyal Blue Tea


우선 입구 쪽에는 로열블루티 병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요. 이곳에는 로열블루티에서 판매하는 20여 종의 티가 진열되어 있어요. 그 옆에는 제품을 구매할 때 포장해주는 나무 박스와 함께 병을 진열해 놓았죠. 그리고 진열장 앞에는 로열블루티를 대표하는 차 4병을 따로 빼서 소개하고 있어요. 하나는 2021년에 세계 녹차 콘테스트에서 금상을 수상한 차이고, 나머지 3개는 G20 오사카 정상 회의에서 제공되었던 차예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로열블루티를 판매하는 공간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잔 단위로 마셔볼 수 있는 바 테이블이 있어요. 바 테이블에는 10개의 좌석이 있는데, 1시간 단위로 이용 가능해요. 테이블에 앉으면 540엔(약 5,400원)의 테이블 차지가 발생하고, 1시간이 넘으면 추가 비용을 내야 하죠. 물론 자리에 앉는다고 그냥 돈을 받는 건 아니고, 차와 함께 먹을 수 있는 간단한 다과를 내줘요. 



ⓒRoyal Blue Tea


이제 자리에 앉았으니, 차를 고를 차례예요. 선택은 둘 중 하나. 한 종류의 차를 120ml 정도의 한 잔으로 마시거나, 세 종류의 차를 70ml씩 세 잔으로 구성한 테이스팅 세트로 마시거나예요. 가격은 차 종류에 따라 다른데요. 가장 저렴한 ‘리얼 허니 디럭스(Real Honey Delux)’의 경우, 120ml 한 잔이 1,485엔(약 1만 5천원), 70ml씩 세트로 마실 경우엔 한 잔이 660엔(약 6,600원)이에요. 참고로 G20 오사카 정상 회의에 제공되었던 차 ‘더 우지(The Uji)’, ‘이리카(Irika)’, ‘카호(Kaho)’를 세트로 마실 경우, 2,640엔(약 2만 6천원)이 나와요.



ⓒ시티호퍼스


주문을 하면 티 소믈리에가 와인병에 담긴 녹차를 따라줘요. 그런데 여기에 또 주목해야 할 포인트가 있어요. 차를 일반적인 찻잔이 아니라 와인잔에 서빙하는 거예요. 와인병에는 와인잔이 어울리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매칭이라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로열블루티가 차를 와인잔에 제공하는 데는 또 다른 심오한 이유가 있어요.



#3. 병은 거들 뿐, 즐기는 문화를 접목한다

와인이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페어링’이에요. 다양한 안주와 페어링하는 건 물론이고 식사와 함께 페어링하기도 하죠. 파인 다이닝에서 코스 요리로 먹는다면 식사를 기준으로 식전주와 식후주를 순서대로 페어링하기도 하고요. 로열블루티는 차의 세계에 와인병을 끌어들이는 것을 넘어, 와인을 즐기는 문화를 접목해 차를 경험하는 방식을 끌어올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들이 새롭게 제안하고 싶은 차 문화에 ‘차엔Chaen’이란 이름을 붙였어요. 차엔은 와인처럼, 코스 요리와 차를 페어링해 즐기는 방식을 뜻해요. 차를 와인병에 담을 뿐만 아니라 와인잔에 따라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코스 요리에 음료를 페어링할 때 와인잔이 익숙하니까요. 병, 잔, 페어링 등의 기본적인 세팅은 와인의 도구와 문화를 차용하고, 내용물만 차로 바꿔 자연스럽게 새로운 문화를 즐길 수 있게 한 거예요.



ⓒRoyal Blue Tea


차엔은 식전차 1잔, 식중차 3잔, 식후차 1잔으로 이뤄져요.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에요. 스타터 요리와 어울리는 녹차인 ‘King of Green RIICHI’를 식전차로 시작하고요. 메인 요리로 이어지면서 조금 더 무게감이 있는 ‘Queen of Blue’나 ‘Fall in Love’와 같은 우롱차, 혹은 ‘KAHO’와 같이 맛이 풍부한 호지차를 페어링해요. 마지막으로 향이 좋은 자스민차인 ‘Jewel of Flowers HANA’를 식후차로 마시며 식사를 마무리하는 게 대표적인 코스죠. 


한가지 더. 로열블루티가 차엔을 통해 와인의 자리를 대체하려는 또 다른 이유도 있어요. 술을 마시지 않거나 마실 수 없는 사람들도 고급 요리에 어울리는 음료가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고급 요리에는 와인이 어울린다는, 어쩌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상식에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거죠. 건강상의 문제나 종교적인 이유 혹은 나이가 어려 와인을 즐길 수 없는 사람들도 분명 있으니까요. 지금의 논알콜 트렌드에 편승한 게 아니라, 이미 몇 년 전에 차엔을 시작할 때부터 대외적으로 표방했던 철학적 배경이에요. 


로열블루티 T Bar에서도 사전 예약을 하면 점심 시간에 차엔을 경험할 수 있어요. 3가지 종류가 있는데 가격은 7,700~11,000엔약 7만 7천~11만원 정도예요. 하지만 이곳에서 꼭 식사까지 하진 않아도 괜찮아요. 티 소믈리에가 와인잔에 따라 주는 차를 마셔보는 것만으로 차를 즐기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서죠. 차를 우려내는 시간을 재지 않아도, 물의 온도를 맞추지 않아도, 차를 마시는 예절을 몰라도 고급 차 한 잔을 근사하게 마실 수 있는 거예요.



공통점을 접목하면 차별점이 생긴다

로열블루티는 단순히 와인병에 차를 담아 히트를 친 게 아니에요. 제조 과정, 유통 방식, 소비문화 등 와인병에는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와인병에 적합한 혹은 어울리는 가치 제안을 했기에 고객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죠. 그렇다면 로열블루티처럼 혁신적인 프로세스를 개발할 수 없고, 럭셔리 제품군이 아닌 경우에는 적용하기 어려운 걸까요? 이런 의문을 갖는 분들을 위해 ‘코타키 라이스 앤 퓨처(Kotaki Rice & Future, 이하 코타키 라이스)’ 사례를 설명드리고 마칠게요. 


코타키 라이스는 나가노현의 코타키 마을에서 생산하는 쌀이에요. 그런데 쌀을 쌀 포대가 아니라 와인병에 담아서 판매해요. 이유가 뭘까요? 와인은 포도를 수확한 산지의 그 해 작황, 기후 등에 따라 맛과 품질이 달라져요. 그래서 와인의 생산년도를 의미하는 ‘빈티지(Vintage)’라는 개념이 있죠. 쌀도 마찬가지로 해마다 맛과 품질이 달라요. 이러한 공통점에서 착안해 코타키 지역의 백미를 와인병에 넣어 ‘코타키 화이트(Kotaki White)’라는 이름을 붙이고, 라벨에는 와인의 빈티지처럼 쌀을 생산한 연도를 새겨서 파는 거죠.


그뿐 아니에요. 와인업계에서 통용되는 개념을 쌀에 차용하기도 해요. 프랑스에서는 매년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라는 와인을 생산하는데요. 보졸레 지방에서 매년 그 해 9~10월에 수확한 포도로 만든 햇와인을 보졸레 누보라고 부르죠. 코타키 라이스는 이를 쌀에 적용해 매해 ‘코타키 누보(Kotaki Nouveau)’를 출시해요. 코타키 누보에는 그 해 코타키에서 갓 재배한 햅쌀을 담아, 햅쌀이 나온 시즌에만 한정판매하는 거예요.



왼쪽은 2015년, 오른쪽은 2016년도에 생산된 코타키 누보입니다. ⓒKotaki Rice & Future


이처럼 와인과 쌀 사이의 공통분모를 예리하게 포착해서 고객이 공감할 만한 포인트와 의미를 찾아냈어요. 그랬더니 마트나 식료품 매장뿐만 아니라, 도쿄의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에서도 판매할 수 있게 됐어요. 혁신적인 프로세스를 개발한 것도 아니고, 쌀 자체가 럭셔리 제품군도 아닌데 쌀을 와인병에 담아 히트시킨 거예요. 여기서도 주목할 점은 쌀을 와인병에 담은 게 아니에요. 그 너머에 숨어 있는 의미를 봐야 하죠. 달을 가리킬 때, 달이 아니라 손가락을 보면 안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Reference

Royal Blue Tea 홈페이지

 Kotaki Rice & Future 홈페이지

 무라노코메 홈페이지

 わが社のお茶が1本30万円でも売れる理由 (祥伝社, 吉本 桂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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