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트 체크아웃을 모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호텔

시퀀스 미야시타 파크

2022.10.31

호텔에서 시간에 쫓기듯 체크아웃한 경험 있으시죠? 보통의 경우 호텔 체크인 시간은 15시, 체크아웃 시간은 10~12시 사이에요. 호텔은 여행을 가서 잠을 자는 곳이니 잠자고 일어나는 시간대에 체크아웃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죠. 하지만 10~12시에 체크아웃하려면 생각보다 시간이 빠듯해요. 아침 일찍부터 나가야할 상황이라면 문제 없을지 몰라도, 호텔에서 여유를 즐기는 걸 선호한다면 체크아웃 시간이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요. 


이런 사람들을 위해 ‘시퀀스 미야시타 파크’ 호텔은 체크인, 체크아웃 시간을 전체적으로 늦췄어요. 체크인은 17시부터, 체크아웃은 14시까지 할 수 있게 조정했죠. 이에 맞춰서 호텔 조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에서도 12시까지 조식을 먹을 수 있게 했어요. VIP 고객이나 추가 비용을 낸 고객에게만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에요. 레이트 체크아웃을 모든 고객에게 기본값으로 제공하는 셈이에요.


시퀀스 미야시타 파크 호텔은 어떤 이유에서 체크아웃 시간을 늦춘 걸까요? 호텔 이름에 힌트가 숨어 있어요.


시퀀스 미야시타 파크 미리보기

 시부야 여행의 시퀀스를 연출한다

 Scene #1. 공원과 호텔의 경계를 없앤다

 Scene #2. 체크아웃 시간을 늦춘다

 Scene #3. 시부야를 담는 색다른 방을 만든다

 시퀀스의 완성은 고객 몫으로 남겨둔다




이것만 알아도 영화를 보는 눈이 달라져요. 바로 영화를 구성하는 단위예요. 한 편의 영화는 쇼트Shot, 씬Scene, 시퀀스Sequence로 구분해볼 수 있어요. 이렇게 영화를 쪼개서 보는 건 영화를 분석하고 디코딩Decoding하는 출발점이 되죠. 반대로, 이 구성 단위를 알면 누구나 영화를 제작할 수 있어요. 물론 영화를 상업성이나 예술성 있게 만드는 건 또 다른 이야기겠지만요.


우선 쇼트. 쇼트는 촬영을 시작해서 멈출 때까지 찍은 영상을 말해요. 컷을 외칠 때까지 한 번에 촬영한 부분이자, 움직임을 표현하는 최소 단위인 거죠. 쇼트는 피사체와의 거리에 따라 클로즈 업, 미디엄 쇼트, 롱 쇼트 등으로 나눠져요. 이렇게 찍은 쇼트들을 이어 붙여 영화를 만드는데, 100분짜리 영화 기준으로 대략 1,000개의 쇼트가 들어가요. 박진감이 넘치고 전개가 빠른 영화일수록 쇼트가 늘어나죠. 책에 비유하자면 문장과 같은 단위예요.


다음은 씬. 씬은 장소, 시간, 맥락이 이어지는 묶음이에요. 보통의 경우 여러 쇼트가 모여서 씬을 이루죠.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영화 속 명장면은 대체로 씬에 해당해요. ‘러브 액츄얼리’의 스케치북 고백 씬, ‘매트릭스’의 총알 피하기 씬 등이 대표적이에요. 캡쳐한 이미지나 동영상 짤을 보면 쇼트처럼 보이지만, 씬 중에서 핵심이 되는 장면을 잘라내서 그런 거예요. 물론 하나의 쇼트가 하나의 씬이 되는 경우도 있고요. 책으로 말하자면 문단인 셈이에요. 


마지막으로 시퀀스. 시퀀스는 씬들이 이어져 만드는 하나의 독립된 이야기예요. 에피소드와 유사한 개념이죠. 이 시퀀스들이 기승전결을 이루면서 영화의 스토리와 메시지가 전달되는 거예요. 사랑에 관한 영화를 예로 들어 볼게요. 만남, 고백, 연애, 이별 등으로 스토리가 전개된다고 했을 때, 각 단계가 하나의 시퀀스라고 볼 수 있어요. 보통의 경우 한 편의 영화는 8~10개의 시퀀스로 구성되죠. 책이라면 하나의 챕터에 해당하는 단위예요. 


영화를 구성하는 단위는 영화를 이해하고 제작할 때만 필요한 개념이 아니에요.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등의 영상 콘텐츠는 물론이고, 책 같은 텍스트 콘텐츠에도 적용할 수 있어요. 결국 콘텐츠는 장면을 연출해, 그것들을 이어가면서 메시지가 담긴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제 공간도 콘텐츠화되고 있으니, 콘텐츠뿐만 아니라 공간을 기획하고 디자인하는 데도 이 구성 단위를 고려할 필요가 있죠. 도쿄 시부야에 있는 ‘시퀀스 미야시타 파크(sequence MIYASHITA PARK, 이하 시퀀스 호텔)’ 호텔 처럼요.



시부야 여행의 시퀀스를 연출한다

시퀀스 호텔은 미야시타 파크를 재개발하면서 2020년에 공원의 한쪽 끝에 들어선 호텔이에요. 330m가량 쭉 뻗어 있는 공원을 앞마당 삼은, 도쿄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형태의 호텔이죠. 이 호텔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객에게 시퀀스를 제공하고 싶어 해요. 이곳에서 다양한 씬들을 경험하면서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편집해, 호텔에 머무르는 동안 저마다의 시퀀스를 만들어 가기를 바라는 거예요.



ⓒ시티호퍼스


시퀀스 호텔에서 펼쳐지는 시퀀스는 주인공이 누구냐에 따라 제각각일 수밖에 없어요. 각자가 경험하는 씬들이 다르고, 그 씬들을 어떻게 이어가는지에 따라 시퀀스가 바뀌니까요. 그럼에도 모든 시퀀스를 관통하는 공통 주제는 ‘시부야 여행’이에요. 시퀀스 호텔에 머물면서 시부야를 여행할 때 생기는 에피소드를 하나씩 만들어보라는 뜻이죠. 


그리고는 시부야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각자의 시퀀스를 만들 수 있도록 호텔을 설계했어요. 공간, 아트, 사운드 등 각 분야에서 앞서가는 크리에이터들과 연계해 호텔의 모든 구성요소를 연출한 거예요. 그렇다면 시퀀스 호텔에선 씬들이 어떻게 바뀌기에 시부야를 여행하는 시퀀스가 달라지는 걸까요?



Scene #1. 공원과 호텔의 경계를 없앤다

시퀀스 호텔의 로비는 4층에 위치해 있어요. 미야시타 파크 편에서 설명했듯이, 공중 공원인 미야시타 파크가 위치한 층이기도 하죠. 층만 같은 게 아니라 이 둘 사이는 이어져 있어요. 공원에서 로비로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공원 전망을 가지고 있는 여느 호텔들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포인트이기도 하고요.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문 구조를 시퀀스 호텔 기획자인 ‘오가와 히로즈미’가 놓칠 리 없어요. 그래서 그는 4층을 이렇게 설계했죠.


공원과 맞닿은 공간을 카페이자 바인 ‘밸리 파크 스탠드(Valley Park Stand)’로 구성했어요. 이어 안쪽을 호텔 로비로 꾸몄죠. 밸리 파크 스탠드는 공원에서 보면 산책하다 들를 수 있는 공원시설이고, 로비에서 보면 호텔에 있는 부대시설이에요. 공원과 호텔을 잇는 가교이자, 둘 사이를 구분 짓는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어요. 단순히 공간 구분만 그렇게 한 게 아니에요. 로비의 인테리어와 카페의 역할에도 공원과 연결되는 특징을 반영했죠.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그는 공원의 본질적인 속성을 ‘자유로움’이라고 봤어요. 공원은 의자가 아닌 곳에 사람이 앉기도 하는 등 공원에 온 사람이 마음대로 사용법을 정하는 곳이니까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호텔 로비에는 의자나 테이블 대신 콘크리트로 단을 만들어 화단인지, 벤치인지, 아니면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곳인지 모호하게 디자인했죠. 공원과 같이 각자가 해석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남긴 거예요. 또한 카페의 역할에도 상상력을 담았죠. 그의 설명을 직접 들어볼게요. 


“시부야 전체를 가상의 국립공원이라고 한다면, 밸리 파크 스탠드는 방문자 센터와 같은 곳이에요. 약간의 휴식이나 간단한 정보 수집 등을 할 수 있죠. 그리고 이곳에서 파는 음식이나 음료는 공원에서 먹을 수 있어요. 또한 피크닉에 필요한 레저 시트나 레인코트 같은 제품도 팔고요.”

- 미야시타 파크 홈페이지 ‘TOPICS’ 인터뷰 중



ⓒ시티호퍼스


그의 말처럼 밸리 파크 스탠드는 단순히 호텔에 있는 카페가 아니에요. 공원 이용자뿐만 아니라 시부야라는 ‘가상의 국립공원’을 찾은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방문자 센터인 거죠. 이렇게 역할을 정의하니 자연스럽게 이곳을 경험하는 씬이 달라져요. 다양한 분위기가 연출되니까요.



Scene #2. 체크아웃 시간을 늦춘다

보통의 경우 호텔 체크인 시간은 15시, 체크아웃 시간은 10~12시 사이에요. 호텔은 여행을 가서 자기 위해 머무르는 곳이니 잠자고 일어나는 오전 시간대에 체크아웃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죠. 하지만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체크아웃하려면 생각보다 시간이 빠듯해요. 아침 일찍부터 나가야 할 상황이라면 문제 없을지 몰라도, 호텔에서 여유를 즐기는 걸 선호한다면 체크아웃 시간이 아쉽게 느껴질 수밖에요. 


이런 사람들을 위해 시퀀스 호텔은 체크인, 체크아웃 시간을 전체적으로 2시간가량 늦췄어요. 체크인은 17시부터, 체크아웃은 14시까지 할 수 있게 조정했죠. 이에 맞춰서 호텔 조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인 ‘동시(Dongxi)’에서도 12시까지 브런치처럼 식사를 할 수 있게 했어요. 호텔의 VIP 고객이나 추가 비용을 낸 고객에게만 제공하는 레이트 체크아웃을 모든 고객에게 기본값으로 제공하는 셈이에요. 


이렇게 하니 여행자의 행동 패턴이 바뀌어요. 불야성의 동네인 시부야에서 다음 날에 대한 부담 없이 밤 늦게까지 즐길 수 있어요. 또는 그냥 집에서 보내는 주말처럼 아침에 느즈막히 일어나서 조식을 먹고 산책을 하는 등 시간을 느긋하게 보낼 수도 있죠. 체크인, 체크아웃 시간을 시프트했을 뿐인데, 시부야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씬이 달라지는 거죠. 



ⓒ시티호퍼스


Scene #3. 시부야를 담는 색다른 방을 만든다

시퀀스 호텔의 6층은 다른 층 대비 층고가 높아요. 공조, 배전 등 건물에 필요한 시설이 들어 있기 때문이죠. 그냥 여느 층처럼 구성해도 될 텐데, 시퀀스 호텔 기획자인 오가와 히로즈미는 6층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가 생각했던 문제의식은 이랬어요.


“시부야는 한계가 없는 자유로운 동네예요. 여러 사람이 방문하는 시부야에 보통의 객실만 만들어도 좋은 것일까요?”

- 미야시타 파크 홈페이지 ‘TOPICS’ 인터뷰 중


그래서 층고가 높은 6층 전체를 호스텔에서나 볼 법한 ‘벙커룸’으로 만들기로 했어요. 벙커룸은 2층 침대가 있는, 2인, 3인, 4인, 6인 등 여러 명이 투숙할 수 있는 방이에요. 호스텔과 다른 점은 침대 단위가 아니라 방 단위로 이용할 수 있다는 거예요. 개인 말고 그룹을 대상으로 한다는 뜻이죠. 가격은 4인 벙커룸이 2인이 쓸 수 있는 일반 룸보다 약간 더 비싼 수준이에요. 둘 사이의 가격 차이가 2배가 아니라 4인 벙커룸을 이용할 경우, 인당 가격이 확 줄어들죠.  



ⓒSequence miyashita park



ⓒSequence miyashita park


이렇게 하니 시퀀스 호텔을 이용하는 고객군이 다양해져요. 시부야를 여행하는 가족 고객이 벙커룸을 찾기도 하고, 여러 친구들이 시부야를 여행할 때 벙커룸을 이용하기도 하며, 때로는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가 집에 가기 귀찮으니 친구들끼리 벙커룸을 잡기도 해요. 고객군이 바뀌니 시퀀스 호텔에서 경험할 수 있는 씬도 다채로워질 수밖에요.


또한 스위트룸도 특별한 씬을 경험할 수 있게 꾸몄어요. 빌린 소리라는 뜻의 ‘샤쿠온(Shakuon)’을 통해서죠. 사운드 크리에이터 ‘오코치 야스하루’가 시부야 거리의 소리를 녹음하고, 이를 소파 아래의 스피커에서 재생할 수 있게 한 거예요. 시부야의 풍경과 소리를 방으로 끌어들이니, 호텔 방 안에서도 시부야 거리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죠.  


ⓒ시티호퍼스


시퀀스의 완성은 고객 몫으로 남겨둔다

시퀀스 호텔처럼 고객의 발길을 불러 모으기 위해선 오프라인 공간도 콘텐츠화해야 하는 시대예요. 그래서 공간을 기획할 때 인스타그래머블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것을 넘어 쇼트, 씬, 시퀀스 등을 그려가면서 사람들이 어떻게 그 장소과 시간을 소비할지를 상상해봐야 하죠. 하지만 공간의 콘텐츠화에는 영화나 드라마와 다른 점이 있어요. 등장 인물의 자기표현과 자유의지를 남겨두는 거예요. 


영화나 드라마 등의 콘텐츠는 스토리보드에 따라서 쇼트, 씬, 시퀀스를 연출할 수 있어요. 일부 애드립과 현장 상황을 반영한 조정이 있지만, 대체로 스토리보드를 재현하면서 짜여진 각본대로 콘텐츠를 만들죠. 반면 공간을 콘텐츠화할 때는 쇼트, 씬, 시퀀스 등을 원하는 그림으로 나올 수 있게 넛지할 수는 있어도, 사람들을 계획한대로 움직이게 강요할 수는 없어요. 결국 현장에서 쇼트, 씬, 시퀀스를 완성하는 건 공간에 온 사람들이니까요.


시퀀스 호텔에서의 경험도 마찬가지예요. 각자만의 시퀀스를 연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씬을 즐길 수 있는 장치들이 있을 뿐, 호텔에서 먼저 나서서 고객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진 않아요. 체크인, 체크아웃도 무인 키오스크에서 진행하니, 경우에 따라서는 직원들과 말을 한 마디도 안 섞을 수 있죠. 고객과 거리를 두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의도된 거리감이에요. 고객들이 이곳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각자의 시퀀스를 만들어 가게 하기 위함이죠.


시퀀스 호텔은 호텔 이름에 영화에서 주로 쓰는 용어를 가져다 붙일 만큼, 공간의 콘텐츠화에 진심이에요. 이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할 때,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으로 여행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혹은 여행하는 동안 쌓았던 추억의 씬들이 하나의 시퀀스로 남겨진다면 시퀀스 호텔의 진심이 통한 게 아닐까요?




Reference

 sequence MIYTASHITA PARK 홈페이지

 동진의 영화학 개론, 유튜브

『sequence MIYASHITA PARK』の特長, 三井不動産

• 景色と音でまちとつながる都市型ホテル, Tecture Mag

• 街と“つながる”渋谷のホテル〈sequence MIYASHITA PARK〉を徹底紹介, Casa Brutus

• 宿泊事業という異分野にチャレンジ。「世界で一番おもしろいホテルをつくる」, Motake

• PARK MINDで紡ぐホテルの新しいカタチ, MIYASHITA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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