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의 철학이 기획한 사우나, ‘계획적인 비집중’을 권하다

시부야 사우나스

2024.10.04




한 중년 남성이 사우나 여행을 떠납니다. 일본 전역, 나아가 고장인 핀란드의 사우나까지 사우나 하나만을 위해 전세계를 누비죠. 만화가 타나카 카츠키의 작품 <사도(サ道)>의 내용이에요. <사도>는 만화의 인기에 힘입어 2019년과 2021년에 드라마화됐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일본 전국에 ‘사우나 열풍’을 일으켰어요. 특히 중장년층의 전유물이었던 사우나를 MZ들이 찾기 시작했죠.


일본 사우나 열풍의 주역, 타나카 카츠키는 직접 사우나를 만들기에 이르러요. 2022년 12월 오픈한 ‘시부야 사우나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죠. 시부야역에서 3분 거리에 위치한 이 사우나는 일본의 사우나 문화를 ‘뇌의 회복’으로 정의하며 말 그대로 뇌가 회복할 수 있는 환경과 시설을 조성했어요.


그런데 그 방식이 남달라요. 사우나용 스피커를 개발해 사우나실에 음악을 울려 퍼지도록 하고, 이용객들의 불편에도 불구하고 글자로 된 안내문을 없애기도 했죠. 단순히 사우나를 특이하게 운영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에요. 사우나란 ‘계획적인 비집중’이라는 생각으로 철저히 계산된 장치들이죠. 계획적인 비집중이란 무엇이고, 또 시부야 사우나스는 어떻게 계획적인 비집중을 구현했을까요?


시부야 사우나스 미리보기

 만능 크리에이터가 ‘사우나’ 만화를 그린 이유

 만화가의 사우나, 겉멋이 아니라 철학으로 기획하다

 ‘계획적인 비집중’을 위한 설계, 글자를 없애다

 이번엔 사우나용 샌들까지? 진정한 사우나 덕후의 길




지금 일본은 ‘사우나 열풍’입니다. 일본에 핀란드식 사우나가 처음 도입된 건 1957년, 인기를 끌기 시작한 건 1964년 도쿄 올림픽 때예요. 당시, 야근이나 출장이 있는 직장인들 사이에서 사우나가 인기였죠. 심지어 접대 문화에도 사우나가 이용됐어요. ‘남자라면 사우나에서 우정을 쌓는다’는 말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통용되는 문화예요.


일본의 사우나 전성기는 1960~1970년대였어요. 일본 ‘전국 공중욕장업 생활위생 동업조합 연합회’에 따르면 이 시기 일본 대중 목욕탕은 전국에 최대 17,999곳에 이르렀다고 하죠. 사우나와 대중 목욕탕이 발전한 형태인 ‘건강랜드’도 인기였어요. 1980년대, 목욕이나 사우나뿐 아니라 연극, 노래방, 마사지를 하루 종일 즐길 수 있는 형태의 대형 목욕 시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경제가 성장하며 집집마다 개인 목욕탕이 생겼고, 1990년대에 들어서 목욕 산업은 하향세에 접어들었어요. 꾸준히 대중 목욕탕의 수가 줄어들다가 끝내 2019년 팬데믹이 찾아오며 일본의 전국 대중탕 수는 1,755곳으로 하락했죠.


그랬던 사우나에 2020년대에 들어 다시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어요. 심지어 중년들의 문화라고 여겨지던 사우나에, 젊은 사람들이 입장하기 시작했어요. 특히 교토에서는 사우나 이용객의 거의 절반이 20대일 정도예요. 일본 최대의 온라인 사우나 커뮤니티 ‘사우나 이키타이(サウナイキタイ)’는 월간 약 150만 명이 이용하고 있어요.


어떻게 된 일일까요? 돌아온 사우나 유행의 중심에는 타나카 카츠키(タナカカツキ)의 만화 <사도(サ道)>가 있었어요. 이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사도>가 2019년, 2021년에 방영되며 큰 인기를 끌었거든요. 이를 계기로 젊은 사람들이 사우나를 찾기 시작한 거예요.


ⓒサ道



만능 크리에이터가 ‘사우나’ 만화를 그린 이유


<사도>는 중년 남성 주인공이 다양한 사우나를 방문하면서 제목 그대로 ‘사우나의 길’을 찾아나서는 내용이에요. 100년 전통의 사우나부터 북유럽식 목욕탕 등, 다양한 사우나를 찾아 여행해요. 그러면서 ‘토토노우(ととのう)’의 순간을 맞죠. 직역하면 ‘필요한 것이 갖추어지다, 정돈되다’라는 뜻의 이 말은, 극 중에서 ‘시원하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어요. 뜨거운 탕에 들어가 노곤해지는 그 순간 느껴지는 평화로움. 그게 바로 ‘토토노우’예요. 이 ‘토토노우’라는 말은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일본에서 유행어처럼 쓰이기 시작했어요.


드라마 <사도>의 원작인 타나카 카츠키(タナカカツキ)의 일러스트 에세이는 2009년부터 연재되었어요. 2016년부터는 만화로 출간되기 시작했죠. 만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타나카 본인이에요. 그는 창작에 집중하기 위해 사우나에 가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사우나만 전문적으로 다루기 시작했어요.


“1993년부터 2008년까지 CG 비디오 작품을 만들었어요. 정말 재밌었지만, 컴퓨터 앞에 졸면서 앉아 있으니 계속 몸이 안 좋았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체육관에서 운동을 한 뒤 사우나에 갔어요. 당시 사우나는 그다지 주목 받지 못했습니다. 막차를 놓쳤을 때나 가는 곳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밖에 없었죠. 또 여성 이용객도 매우 적었기 때문에 만화의 제목에 ‘사우나’라는 단어를 일부러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가 되었죠.”

-타나카 카츠키, 카라반 인터뷰에서


ⓒPARCO Publishing


<사도>를 시작으로 타나카는 ‘사우나 전도사’로 불리고 있어요. 일본에서 사우나가 재유행하게 된 계기에는, 타나카 카츠키 한 사람의 힘이 가장 컸던 거예요. 그는 일본의 대표적인 사우나 전문가로 여겨지죠. 실제로 공익 사단법인 일본 사우나·스파 협회의 공인 사우나 대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타나카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 볼게요. 타나카는 1966년 오사카에서 태어나, 1985년 만화가로 데뷔했어요. 아마쿠 세이이치와 공동 집필한 <바카드릴(バカドリル)>, <오스! 돈코짱(オッス!トン子ちゃん)>과 같은 대표 작품이 있죠.


또 캡슐 토이 ‘컵의 후치코(コップのフチ子)’를 기획한 사람이기도 해요. 2012년 출시된 이 캡슐 토이는 2021년 기준 누적 2,000만 개 판매를 기록할 정도로 히트 상품이었어요. 숫자로 계산하면 일본 인구의 6명 중 1명이 후치코를 가지고 있다는 거죠. 한국에서도 후치코 가챠 머신을 종종 발견할 수 있어요.


ⓒコップのフチ子


이렇듯 타나카 카츠키의 직업은 만화가로 한정되지 않아요. 캡슐 토이 기획, 영화 제작, 작곡 등을 모두 아우르는 ‘멀티 크리에이터’에 가깝죠. 대학 졸업 후 연극 배우, 극단 단장으로 활동했던 경험도 있고, 전국 버라이어티 쇼였던 <웃어도 괜찮아!(笑っていいとも!)>의 프로그램 구성을 맡기도 했고요.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근원에는 ‘만화’가 있었다고 그는 말해요.


“만화는 먼저 이야기를 생각한 다음 그림으로 만드는 표현법입니다. 저는 그림의 감독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될 수도 있죠. 생각해보면 만화는 영화 감독을 시뮬레이션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디어나 이야기를 구체화하는 연습을 어렸을 때부터 해왔던 거죠. 그래서 이와 비슷한 일은 모두 할 수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았어요. 나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스킬을 사용하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죠. 어떤 사람들은 저를 ‘컵의 후치코’를 만든 캡슐 토이 기획자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에 따라서 저에 대한 이미지가 완전히 다른 게 흥미로워요. 제게 중요한 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것뿐입니다.”

-타나카 카츠키, 카라반 인터뷰에서


타나카는 <사도>의 인기로 전성기를 맞이했어요. 사우나를 향한 그의 아이디어가, 일본 전국의 트렌드를 만들어낼 정도니까요. 타나카는 처음 사우나에 갔을 때를 이렇게 회상해요.


“수욕장에 발을 담그고 추워지면 사우나실에 들어가 몸을 녹였습니다. 그러다 서서히 배까지 차가운 목욕을 하기 시작했죠. 그러자 정말 기분이 좋아졌어요. 가벼운 황홀경 같았죠.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점심으로 먹었던 카레 스튜였습니다. 스튜의 효과일까 생각했지만, 다음 날 다시 사우나에 갔을 때도 역시 기분이 좋더군요. ‘이게 뭐지?’ 생각했어요. 사우나와 냉탕을 왕복하는 것만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타나카 카츠키, 맨스 논노 인터뷰에서


타나카는 집으로 돌아가 조사 해봤지만 당시 사우나에 관한 기사가 거의 없었다고 해요. 대신 당시 진행 중이던 건강 관련 라디오 쇼에서 청취자의 입장으로 음이온 전문가인 스가와라 아키코 선생에게 물어봤죠. 그는 ‘혈관이 뛰고 있기 때문에 기분이 좋은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사우나에서 몸을 데우면 혈관이 열리고, 냉탕에서 몸을 식히면 혈관이 수축되면서, 혈류량이 평소보다 2배 정도 높아지기 때문이라고요. 이를 바탕으로, 2009년 웹 매거진에 <사도>의 연재를 시작한 게, 현재 일본 사우나 붐의 시초가 되었죠.


<사도>는 주인공이 사우나를 모험하는 에피소드 만화일 뿐 아니라, 실제 존재하는 사우나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정보 서적이기도 해요. 본편에 등장하는 사우나의 특징이나 입욕 시 주의사항 등을 공유하죠. 드라마에서는 사우나에서 일하는 경영자나 직원도 종종 등장해요. 때문에 <사도>는 일본에서 사우나 마니아들의 ‘교과서’로 여겨지죠.


제 4화, 삿포로 스스키노에 있는 남성 전용 사우나 ‘니코 리후레ニコーリフレ’의 열파사 와타라이(エレガント渡会) ⓒサ道



만화가의 사우나, 겉멋이 아니라 철학으로 기획하다


그런 타나카 카츠키가 이번에는 직접 사우나를 기획했어요. 진정한 사우나 전문가로 거듭난 거죠. 그가 2022년 12월 오픈한 시부야의 ‘시부야 사우나스(渋谷SAUNAS)’의 디렉터를 맡게 된 거예요. 시부야 사우나스는 ‘사우나 대사’ 타나카가 만들었다는 점만으로도 주목을 받았어요. 특히 도심 속 사우나라는 이점 때문에 일본인뿐 아니라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트렌디한 사우나’로 유명해지고 있어요.


타나카가 만든 사우나는 뭐가 다를까요? 그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일본만의 사우나 문화를 ‘뇌의 회복’으로 정의했어요. 그래서 시부야 사우나스에는 사우나실과 냉탕 외에도 뇌를 회복시키고, 다시 머리를 굴릴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있죠. 독특하게 업무 공간과 회의실까지 갖추고 있어요. 


“사실 일본은 다른 나라에 비해 사우나가 많습니다. 골프 코스, 체육관, 온천, 대중 목욕탕 및 호텔에도 사우나가 있죠. 그러나 사우나를 바라보는 시각은 해외와 다릅니다. 해외에서는 사우나가 건강과 미용의 수단이기 때문에, 사우나에 여성이 많아요. 그러나 일본 대부분의 사우나는 ‘여유로움’을 중시합니다. 식사 가능하고, 안락 의자에서 느긋하게 즐기며 만화를 읽고, 원하는 만큼 TV도 볼 수 있죠. 모두 해외에는 없는 사우나 문화입니다. 일본에서는 사우나가 뇌를 쉴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타나카 카츠키, 카라반 인터뷰에서


시부야 사우나스는 8종류, 9개의 사우나실과 2종류, 4개의 물욕장이 있어요. 특히 ‘사우나(고온)→냉탕(저온)→외기욕(상온)’의 정석적인 사이클을 중요하게 생각해, 이를 순서대로 체험할 수 있도록 구조화했죠. 그래서 건물 3층에서는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외기욕장이 있어요. 넓은 공간의 천장에서는 빛과 바람이 들어오고, 군데군데 나무가 심어져 있어요.


ⓒ渋谷SAUNAS


마치 편백나무 숲과 같은 인상의 외기욕장에서 알 수 있듯, 시부야 사우나스 공간의 중요한 테마는 ‘자연’이에요. 건물의 구역 역시 동쪽은 ‘숲(WOODS)’, 서쪽은 ‘연못(LAMPI)’이란 이름으로 나뉘어요. 침대에 누워 잠들 수 있는 사우나가 있는가 하면, 핀란드로부터 400~500년 된 고목 ‘케로(ケロ)’을 수입해 만든 사우나실도 있죠. ‘테타(テータ, 차)’ 실은 다실을 이미지화해 사우나로 만든 사우나실이에요. 


ⓒ渋谷SAUNAS


ⓒ渋谷SAUNAS


ⓒ渋谷SAUNAS


ⓒ渋谷SAUNAS


특히 독특한 공간은 사우나를 하면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사운드 사우나’ 실이에요. 작곡가 토쿠사시 켄고(とくさしけんご)와 음향 스튜디오 화이트라이트(WHITELIGHT)가 공동 개발한 음악을 사우나실에 틀어두었어요. 이를 위해 ‘사운드 사우나’ 실에는 열과 소리의 퍼짐을 고려해 설계된 원추형의 반사판이 있어요. 스피커도 사우나 용으로 만들었죠.


음악과 사우나에는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타나카가 ‘알몸’에 집중해 고안해낸 아이디어예요.


“사우나는 ‘알몸’이 가장 특징적인 활동입니다. 피부는 상당히 섬세하게 환경을 감지하고, 온도와 습도를 알 수 있죠. 마음이 모르는 정보도 피부가 잡아냅니다. 피부는 고급 센서예요. 피부는 향기와 색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피부로 음악을 듣는다’고 하는 것은, 원시 시대에는 알몸으로 소리를 들었던 것의 연장선입니다. 원시인들은 숲 속에서 알몸으로 위험을 포착했죠. 


그런데 지금은 음악을 듣는 게 귀의 일이 됐습니다. 모처럼 사우나실에서 알몸이 됐을 때 음악을 ‘체험’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콘서트 홀에서, 라이브 회장에서 알몸으로 음악을 듣는 건 무리지만, 사우나스에서는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소리의 야생적인 경험인 거죠.”

-타나카 카츠키, 굿 사이클 프로젝트 인터뷰에서


ⓒ渋谷SAUNAS


자연과 야생. 그게 바로 타나카가 시부야 사우나스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사우나의 본질이기도 해요. 그는 사우나가 역사적으로 ‘자연에만 있는 곳’이라고 말하죠. 자연 속에서, 열과 물이라는 자연의 힘으로 몸의 피로를 푸는 방식이 바로 사우나이니까요.


도심 속 라이프스타일이 주류가 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자연’에 대해 더 많이 갈망하게 됐어요. 캠핑 붐, 러닝 붐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나타난 트렌드죠. 그게 바로 타나카가 도시에 사우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예요.


“사람들은 인공물에 둘러싸여, 시종일관 인공적인 빛을 보고, 식물과 흙과는 멀리 떨어져서 살죠. 이런 시대는 과거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몸은 피곤하지 않더라도 뇌가 피곤하다는 현대의 병이 생겼습니다. 책상 작업으로 운동 부족이나 혈류에 문제가 생기죠. 에어컨 속에서 땀을 흘리는 일도 별로 없어졌습니다. 옛날에는 더울 때 땀을 흘리면서 몸의 체온을 조절할 수 있었죠. 자율 신경이 자연적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타나카 카츠키, 굿 사이클 프로젝트 인터뷰에서


그런 의미에서 시부야 사우나스는 자연으로의 회귀, 일종의 ‘야생 체험’을 가능하게 해요. 마치 공원에서 잠깐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뇌가 휴식을 취할 수 있듯, 사우나를 통해 몸의 감각을 회복하는 거예요. 그저 자연을 걷는 것과 사우나의 다른 점은 ‘인간의 본질’까지도 되돌릴 수 있다는 거죠.


“사우나에 가면 우리는 거기서 옷도 벗고, 직함도 내려놓습니다. 완전히 알몸의 인간으로서 다시 태어나는 겁니다. 주위를 바라보면 물의 변동, 빛, 바람이 보이죠. 거기에는 어떤 의미도, 의식도, 정보도 없습니다. 오로지 몸이 뜨겁고 차가운 오감만이 존재해요. 정보로서 단절된 ‘야생 체험’인 셈이에요.”

-타나카 카츠키, 굿 사이클 프로젝트 인터뷰에서


공사 현장에서 사우나스의 기획을 설명하는 타나카 카츠키. ⓒ渋谷SAUNAS



‘계획적인 비집중’을 위한 설계, 글자를 없애다


사우나가 단순히 ‘휴식’을 위해서 찾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타나카는 사우나란 오히려 휴식보다 ‘계획적인 비집중’에 가깝다고 말하죠. 그게 어떤 뜻일까요?


타나카의 본래 직업은 만화가예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일이죠. 많은 만화가들이 낮과 밤이 뒤바뀐 삶을 살고 있어요. 타나카 역시 만 37세가 될 때까지 줄곧 야행성으로 살았어요. 대체로 새벽 4시에 잠에 들곤 했죠. 그는 밤이야 말로 ‘창작의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런 생활은 건강을 해쳐요. 타나카는 종종 동료 만화가들과 ‘장수하는 만화가의 비결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요. 그렇게 찾은 답은 산책을 자주 하거나, 골프나 야구 같은 스포츠를 즐기는 등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타나카는 창작의 시간도 지키고, 건강도 지키기 위해 ‘밤을 앞당기기로’ 해요. 새벽 4시에 잠에 드는 대신 새벽 4시에 기상하는 거예요. 해가 뜨는 시간이 아침 7시라고 치면, 3시간 동안은 남들보다 밤을 먼저 맞이할 수 있는 거죠. 실제로 타나카는 4시에 기상해 정오에 일을 마치고, 밤 9시에 취침하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어요. 이를 통해 하루에 완성하는 원고 수도 늘어났다고 해요. 


요점은 몇 시에 일어나고 몇 시에 자느냐가 아니에요. 비단 만화가뿐 아니라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겐 ‘집중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집중의 시간을 위해서는 분명, 머리를 비우는 시간도 필연적으로 필요해요. 뇌에 과부화가 가지 않도록요. 이는 연습이 필요한 일이에요. 그리고 사우나는 머리 비우기 연습에 최적화된 공간이죠.


“사우나는 몹시 덥습니다. 더운데다 피가 돌아서 생각을 할 수가 없죠. ‘덥다’, ‘냉탕에 가고 싶다’ 이런 생각밖엔 안 듭니다. 냉탕에 들어가면 처음엔 기분 좋지만 점점 ‘이제 나가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느껴지고, 외기욕을 합니다. 그러면 피가 돌면서 다시 생각이 멈추죠. 천천히 원래 상태로 돌아가야만 드디어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우나는 반강제적으로 사고를 정지해주는 것입니다. 강제로 정보와 생각으로부터 차단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죠.”

-타나카 카츠키, 아트오빌라 인터뷰에서


조명을 줄이고 차분한 공간에서 셀프 로우를 즐길 수 있는 무스타(어둠) 사우나실. ⓒ渋谷SAUNAS


1층 라운지 및 워킹 스페이스. 사우나에서 리프레시한 상태로 쾌적하게 일을 할 수 있게 한다. ⓒ渋谷SAUNAS


그래서 시부야 사우나스에는 글자 정보가 거의 없어요. ‘정보의 차단’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죠. 서비스 안내, 광고 포스터가 전혀 붙어 있지 않을 뿐더러, 샴푸와 컨디셔너의 문자도 매우 작게 만들어 문자 정보가 눈에 띄지 않게 만들었어요. 때문에 처음 사용하는 사람들은 불편을 겪는다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자 정보를 최소화하는 이유는, 뇌를 사용하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예요. 사우나스에 익숙해지면 차차 몸이 알아서 샴푸와 컨디셔너를 찾아요. 원래라면 뇌가 글자를 보고 찾아야 하는 일을, 몸이 대신 행동하기 때문에 뇌를 비울 수 있는 거죠.


타나카는 ‘정보로부터의 분리’라는 관점에서 시부야 사우나스와 예술의 공통점을 강조해요. 그는 예술 역시 사회의 정보로부터 차단되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하죠. ‘창이 없는 방에 하나의 풍경화를 걸어두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처럼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면 기분이 좋죠.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깨끗한 바닥과 높은 천장 등, 기분 좋은 구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공간에서 그림과 마주 보면 사람의 마음은 풍부해져요. 미술관뿐만 아니라 신사도 마음와 몸을 풍요롭게 만드는 장소입니다.”

-타나카 카츠키, 아트오빌라 인터뷰에서


시부야 사우나스는 이런 식으로 예술의 역할까지 수행해요. 이를 위해 타나카는 사우나스의 건물 구조를 긴장감 있고 미니멀하게 구성하고, 라운지에는 상당 수의 현대 미술 작품을 전시했죠. 미술관이나 신사에 갈 때처럼 사우나에 와서 ‘마음이 조용히 퍼져나가는 체험’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실제로 사우나는 미술관, 신사보다 우리의 일상 속에 더 가까이 있는 장소예요. 타나카는 우리의 일상 속에 예술이 더 친밀하게 닿아 있길 바랐던 거예요. 궁극적으로 사우나에 들른 고객이 갤러리에 걸린 그림을 보고 ‘아, 예술은 사우나만큼이나 기분 좋은 거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를 꿈꾸죠. 


라운지의 아트 작품들. ⓒ渋谷SAUNAS


다양한 크리에이터와 협업한 사우나스 오리지널 상품이 있는 상점. ⓒ渋谷SAUNAS



이번엔 사우나용 샌들까지? 진정한 사우나 덕후의 길


타나카 카츠키의 사우나 사랑은 멈추지 않아요. 사우나 만화를 그리고, 사우나를 아예 만드는 데에서 나아가, 이제는 사우나 용품을 제작하고 있어요. 2024년 6월, 사우나용 샌들을 출시해 판매했죠.


사우나 샌들은 주식회사 허스키가 운영하는 신발 브랜드 ‘도쿄 캠프고(TOKYO★CAMPGO)’와의 협업 결과물이에요. 도쿄 캠프고가 제작을 맡고, 타나카 카츠키가 기획했어요. 이 샌들은 일본의 클라우드 펀딩 사이트 마쿠아케(Makake)에서 사우나의 날인 3월 7일 선행 판매를 했는데요. 당시 무려 목표액의 1,183%를 달성하며 많은 관심을 끌었어요.


ⓒ株式会社ハスキー


ⓒ株式会社ハスキー


샌들에는 타나카의 정체성이 군데군데 들어가요. 벨트 부분에는 타나카가 그린 자작나무 잎이 실로 짜여져 있어요. 인솔의 발 뒤꿈치 부분에는 타나카가 사우나의 김, 버킷과 자작나무 잎을 그려 넣었죠.  


만화, 캡슐 토이, 사우나에 이어 이제 신발까지. 타나카 카츠키의 도전은 멈추지 않아요. 그는 이제 만화가에서 넘어선, ‘트렌드 메이커’에 가까워지고 있어요. ‘아이디어’를 향한 그의 강한 신념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 아이디어를 돕는 게 바로 사우나이고요. ‘컵의 후치코’ 역시 그가 사우나에서 떠올린 아이디어 중 하나였죠.


“과거에 비슷한 사례가 없더라도, 내 마음이 떨리는 기획이라면 해낼 수 있어요. 이게 바로 저의 신념입니다.”

-타나카 카츠키, 소쿄테초 인터뷰에서


타나카는 일본에, 특히 도시에 더 많은 사우나가 생겨나길 바라요. 그 마음을 담아 시부야 사우나스의 이름을 단수형인 ‘사우나(Sauna)’가 아니라 복수형인 ‘사우나스(Saunas)’로 지었죠. 그의 바람대로, 일본의 사우나 열풍은 단순한 ‘유행’으로 그칠 것 같지 않아요. 현대 사회의 맥락,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본질과 아주 깊게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渋谷SAUNAS






Reference

시부야 사우나스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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