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원짜리 커피를, 1500만원에 파는 방법

시루카페

2023.02.10

브랜드도 진화합니다. 이번 도쿄 위크에서는 2017년에 출간한 <퇴사준비생의 도쿄>에서 소개했던 매장, 공간, 브랜드, 기업 등의 그동안의 변화를 업데이트 해봅니다. 오늘 업데이트 할 곳은 커피를 공짜로 파는 카페 ’시루카페‘입니다. 


시루카페에서는 커피를 공짜로 마실 수 있어요. 이용 시간에도 제한이 없죠. 대신 조건이 있어요. 학생증을 가진 30세 미만의 대학생, 대학원생만 출입할 수 있어요. 또한 시루카페의 서비스를 모든 대학생, 대학원생이 누릴 수도 없어요. 도쿄대, 와세다대, 게이오대, 도시샤대 등 일본 상위권 대학 앞에만 매장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시루카페는 돈을 어떻게 버는 걸까요?


시루카페 미리보기

 #1. 카페 사업을 안다

 #2. 기업 상황을 안다

 #3. 학생 니즈를 안다

 세상에 없던 카페의 성과

 세상에 없던 카페의 미래




공짜의 힘은 셉니다. 얼마나 강력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행동경제학자인 댄 애리얼리가 실험을 했어요. 그는 생 초콜릿으로 된 고급 초콜릿과 평범한 초콜릿을 준비했죠. 그리고는 두 초콜릿에 파격적인 가격을 매겼어요. 고급 초콜릿은 15센트, 평범한 초콜릿은 1센트로요. 그런 후 학생들에게 이 두 가지 초콜릿 중 하나를 고르게 했어요. 결과는 어땠을까요?


고급 초콜릿을 산 학생은 73%, 보통 초콜릿을 산 학생은 27%였어요. 절대 가격은 보통 초콜릿이 고급 초콜릿의 1/15 수준이지만, 15센트에 고급 초콜릿을 먹을 수 있으니 선택이 쏠렸죠. 댄 애리얼리는 실험을 이어갔어요. 이번에는 고급 초콜릿과 보통 초콜릿의 가격을 각각 1센트씩 낮췄어요. 고급 초콜릿은 14센트, 보통 초콜릿은 무료인 0센트에 판 거예요. 이번 실험의 결과는 달라졌을까요?


첫 번째 실험의 결과대로라면 고급 초콜릿을 선택한 비율이 높아야 해요. 이미 낮은 가격이 더 낮아지면서 가성비가 약간이더라도 더 높아졌으니까요. 하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왔어요. 고급 초콜릿을 산 학생은 31%, 보통 초콜릿을 고른 학생은 69%였죠. 이유는 보통 초콜릿이 공짜가 된 데에 있어요.


사람들은 제품을 구매할 때 가격이 붙어 있으면, 가치를 따지기 시작해요. 가격 대비 가치가 높은지를 판단하는 일은 괴로운 과정이죠. 그래서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지출의 고통’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무료인 제품의 경우 지출의 고통이 사라져요. 가격이 없으니 부담없이 선택해볼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공짜의 힘은 세요.


도쿄에 있는 시루카페도 이 공짜의 힘을 알고 있는 카페예요. 여기서는 커피를 공짜로 마실 수 있어요. 이용 시간에도 제한이 없죠. 대신 조건이 있어요. 학생증을 가진 30세 미만의 대학생, 대학원생만 출입할 수 있어요. 또한 시루카페의 서비스를 모든 대학생, 대학원생이 누릴 수도 없어요. 도쿄대, 와세다대, 게이오대, 도시샤대 등 일본 상위권 대학 앞에만 매장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시루카페는 돈을 어떻게 버는 걸까요?


카페를 방문하는 고객군을 선별하는 대가로 고객들이 마시는 커피값을 기업들에 청구해요. 시루카페는 일본뿐만 아니라 글로벌 주요 기업들로부터 연간 스폰서료를 받고 운영하는 카페예요. 회원사는 시루카페에 오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회사를 홍보하고, 채용 설명회나 제품 출시 등의 이벤트가 있을 경우 장소도 빌릴 수 있어요. 기존의 카페와는 비즈니스 모델이 다른 거죠. 그렇다면 시루카페는 어떻게 세상에 없던 카페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요?



시루카페 와세다 대학점 입구입니다. ‘알다’라는 뜻의 ‘시루(知る)’를 활용해 로고를 디자인했습니다. ⓒ시티호퍼스



학생들이 사용하기에 쾌적한 매장 내부입니다. ⓒ시티호퍼스



시루카페에서는 음료 메뉴가 모두 0엔입니다. ⓒ시티호퍼스



#1. 카페 사업을 안다

카페 사업은 목이 중요해요. 매장의 위치에 따라 매출이 달라지죠. 하지만 목 좋은 곳에 카페를 오픈하려면 임대료가 비싸지는 단점이 있어요. 임대료를 감당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에요. 경쟁 상황을 고려해야 해요. 매장 근처에 또 다른 카페가 들어서면 매출에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경쟁 업체의 등장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에요. 경쟁에서 견딘다 해도 문제가 또 있어요. 전염병, 사건·사고 등의 사회적 이슈가 발생하면 매출이 줄어들어요. 여기에다가 신제품 개발, 운영 인력 관리 등을 고려하면 난이도는 더 높아지죠.


카페 사업은 언뜻 보면 쉬운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운영하기가 만만치 않은 사업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시루카페의 접근은 단순히 고객을 기업으로 바꾼 것 이상의 의미를 갖죠. 커피가 공짜라는 점에서 여러 문제가 풀리거든요.


우선 커피값이 공짜라 학생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매장의 위치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져요. 그래서 시루카페는 캠퍼스에서 가까운 곳일 경우 대개 2~3층에 있으며, 1층에 자리할 경우는 캠퍼스와 약간의 거리가 있어요. 그런데 시루카페의 인기가 높아지자 학교와의 협업을 통해 대학교 캠퍼스 안에다가 오픈하는 경우도 생겼어요. ‘시루카페 플러스’라는 이름으로요. 심지어 위치 경쟁력까지 갖추게 된 거예요.


또한 커피가 무료이기 때문에 가격 경쟁에서 밀릴 수가 없어요. 게다가 커피 품질, 서비스에 대한 기대 수준도 낮아요. 품질 개선이나 신제품 개발을 위한 별도의 노력이 필요 없고, 운영 인력 관리 부담도 적다는 뜻이죠. 게다가 기업과의 스폰서십을 연 단위로 갱신하기 때문에 일시적인 이슈에 둔감해질 수 있고요. 커피를 개인이 아니라 기업에 판매한 덕분이에요.



#2. 기업 상황을 안다

학생들이 마시는 커피값에 대해 기업들은 연간 140만 엔(약 1500만 원)을 지불해요. 그렇다면 기업들이 내는 이 스폰서십 비용은 합리적인 것일까요? 광고비로 보면 비싸다고 볼 수 있어요. 하나의 지점에 일평균 250명의 학생이 방문해요. 연 단위로 환산하면 약 9만 명 수준이죠. 기업 입장에선 1인당 167원의 광고비가 드는 셈이에요. 노출로만 보자면 온라인상에서 집행하는 광고비와 비교하면 비싸다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광고비가 아니라 인재채용비라면 상황이 달라져요. 한국의 대기업이 한 명의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200만 원이에요. 채용 규모에 따라 연간 수억에서 수십억 원을 지출하죠. 일본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가 아닌 상위권 대학의 인재 약 9만 명에게 평소에 기업을 노출하고, 리쿠르팅 시즌에 시루카페를 대관해 채용 기회를 갖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1인당 연간 167원은 비싼 비용이 아닐 수 있어요.



후원사들은 시루카페에서 채용을 위한 회사 설명회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시루카페 홈페이지


특히, 학교에 따라 서열이 갈리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학교의 전체적 순위와는 별개로 간판 학과 또는 특성화 학과가 인정받아요. 따라서 특정 분야에서 우수한 인재를 채용하고 싶은 기업 입장에서는 시루카페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요. 공대가 대표적이에요. 시루카페는 공대 인력에 대한 수요가 높은 기업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공대 중 두각을 나타내는 교토대, 오사카대, 나고야대 앞에서도 시루카페를 운영하죠.


또한 시루카페는 1개 매장당 60개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후원사의 수를 제한하고 있어요. 후원사로는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JP모건, BCG 등의 글로벌 강호들뿐만 아니라 소프트뱅크, 라쿠텐, 노무라, 닛케이 등 일본의 대표 기업들이 있어요. 따라서 그들과 함께 후원사가 된다면 일류 기업 이미지를 강화하고, 학생들이 가고 싶어 하는 회사로 포지셔닝할 가능성이 높아져요. 비용을 1인당 167원으로 보기에는 숨어 있는 의미가 크죠.



글로벌 기업 및 일본 대표 기업들이 시루카페를 후원하고 있습니다. ⓒ시루카페 홈페이지



#3. 학생 니즈를 안다

시루카페는 기업 스폰서십으로 운영해요. 하지만, 카페 내부에 기업 홍보물이나 채용 공고가 빼곡하게 붙어 있지는 않아요. 오히려 보통의 카페보다 여백의 미가 넘치죠. 공짜로 커피를 마신다고 해서 학생들이 광고로 도배된 카페를 선호할 리는 없기 때문이에요. 후원사 기업의 로고 노출은 시루카페 내부에 있는 모니터와 테이크아웃용 컵을 통해서 해요. 학생들이 카페의 쾌적함을 즐길 수 있도록 적절한 홍보 수준을 유지하는 거예요.


여기에다가 편의 시설도 충분하게 갖추었어요. 학생들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만 카페를 이용하지 않으니까요. 카페라는 공간에서 과제도 하고, 공부도 하며, 모임도 해요. 그래서 시루카페에서는 자유롭게 노트북을 이용할 수 있도록 무료 와이파이를 제공하고 콘센트도 충분하게 설치해두었어요. 그뿐 아니라 공짜로 제공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성에 차지 않는 메뉴 구성을 보완하기 위해 외부 음식물도 가지고 들어올 수 있도록 했고요.



시루카페는 무료 음료, 무료 와이파이, 콘센트 등의 편의를 제공하며, 단순한 메뉴 구성을 보완하기 위해 외부 음식과 음료를 허용합니다. ⓒ시티호퍼스


시루카페는 커피가 무료라고 학생들에게 불편함을 강요하지 않아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고민하죠. 학생들의 니즈를 반영해 지속적인 방문을 유도해야 기업들에 커피값을 청구할 명분이 생기기 때문이에요. 이러한 노력으로 시루카페가 지점이 있는 상위권 대학교의 재학생 중 70%가 시루카페의 멤버예요.



세상에 없던 카페의 성과

학생들에게 커피를 공짜로 팔면서 시루카페가 버는 돈은 어느 정도 될까요? 기업당 140만 엔(약 1500만 원)을 스폰서십 비용으로 받지만, 여러 지점에 중복 후원할 때 할인해주는 점을 고려해서 평균 90만 엔(약 1000만 원) 정도로 가정할 수 있어요. 지점당 평균 50여 개의 후원사 수가 있으므로 연매출 5억 원가량이 발생해요.


매출에서 비용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원재료비, 임대료, 인건비 등을 제외하면 대략적인 수익을 알 수 있어요. 원재료비는 인당 1000원이라 가정했을 때 9만 명이 방문하므로 연간 약 9000만 원, 임대료는 30평 남짓 하는 매장 크기를 고려했을 때 평당 월 15만 원으로 계산하여 연간 4500만 원, 인건비도 인당 월 300만 원씩 5명의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다면 연 1억 8000만 원이에요. 기타 비용을 월평균 150만 원씩 잡으면 연 1800만 원의 비용이 나가고요. 보수적으로 봐도 매장당 연간 1억 5천만 원 넘는 수익이 나는 구조예요.


여기에다 일본 전역에 22개의 매장이 있으니 33억 원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요. 하지만 상위권 대학 앞에만 매장을 낸다는 시루카페의 전략을 보면 매장을 늘리는 건 한계가 있어 보여요. 상위권 대학이 무한정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더욱이 주 수익원인 후원사의 수도 제한하고 있죠. 그렇다면 시루카페는 성장 가능한 모델일까요?



세상에 없던 카페의 미래

성장은 2가지 축으로 가능해요. 하나는 스폰서비를 높이는 거예요. 후원사의 개수를 제한해두었기 때문에 기업의 수요가 늘어날 경우 스폰서비를 상향 조정할 수 있어요. 실제로 도시샤대학교 1호점의 경우, 2013년 오픈 당시 스폰서비가 90만 엔이었는데 2014년에는 140만 엔으로 50% 이상 올랐어요. 제한된 자리를 두고 후원사 간에 경쟁이 벌어진다면 스폰서십을 통한 매출 증대를 기대할 수 있죠.


또 다른 하나는 해외 진출이에요. 일본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에 상위권 대학이 있고 글로벌 기업들은 전 세계에서 우수 인재를 스카우트하고 싶어 해요. 시루카페의 글로벌 진출이 당위성을 갖는 이유예요. 이미 시루카페는 2016년에 인도공과대학 앞에 해외 1호점을 오픈하면서 인도 시장에 진출했어요. 7개 매장까지 확장했다가 코로나로 인해 현재는 4개 지점으로 줄였죠.


인도 진출의 배경엔 일본 기업들의 요청이 있었어요. 인도에 있는 인재가 필요한데, 리쿠르팅만을 위해 해외 지사를 설립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거든요. 그래서 스폰서비도 더 높아요. 시루카페는 지역 확장 및 객단가 상승의 효과를 얻고, 해외 우수 인재를 필요로 하는 일본 기업들은 해외 직접 채용보다 비용을 적게 들이는 장점이 있어요. 모두에게 득이에요. 반면 2017년도에는 미국에도 진출해서 매장을 3개까지 늘렸는데, 코로나로 문을 다 닫았어요.



인도공과대학에 오픈한 시루카페의 첫 번째 해외 지점입니다. ⓒWikimedia Commons


시루카페를 보면 비즈니스 모델이 간단하고 수익성도 괜찮아 벤치마킹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몰라요. 하지만 벤치마킹을 하려면 성과와 미래 등의 숫자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탄생의 철학적인 측면도 고려할 필요가 있어요.


시루카페는 온라인 리쿠르팅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어요. 창업자 유스케 카키모토는 채용의 온라인화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채용 과정에서는 신속함보다 정확함이 더 중요한데 온라인 채용에서는 그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러한 온라인 채용의 부작용을 덜고, 기업의 수요와 인재의 공급 간 불일치를 해소하고자 시루카페를 만든 거예요. 어쩌면 ‘알다’라는 뜻을 가진 ‘시루’카페의 숨은 의미는 기업과 인재가 서로를 알아보는 장소가 아닐까요. 




Reference

 대학생은 공짜! 게이오 대학교 앞 ‘시루카페’를 가다, 영삼성 블로그

 시루카페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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