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걸이를 연구하는 뷰티 회사가, 요즘 세대에 전하는 미의 패러다임

시세이도 에스파크

2023.10.25

‘연구소’라는 단어에서는 베일에 가려진 듯한 비밀스런 분위기가 풍겨요. 도시 외곽의 건물 속 실험실에서 미래의 히트작을 개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연구원이 떠오르죠.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문을 닫고 홀로 혁신을 만드는 시대는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는 걸요.


일본의 뷰티 기업 ‘시세이도’는 새로운 시대의 선봉에 서 있어요. 요코하마에 도시형 오픈 랩 ‘시세이도 에스파크(Shiseido S/PARK)’를 열었거든요. 이곳에서 시세이도가 뒤엎은 건 연구소의 인상만이 아니에요. 본업인 뷰티 비즈니스를 바라보는 관점부터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까지 전부 바꿨죠.


궁금한 분들에게 힌트를 드리자면, 표정을 관찰하고, 걷는 방법을 연구하며, 이야기를 들려주죠. 그리고 이곳에서 연구원들은 매일 매일 여행을 떠나요. 뷰티 회사와는 상관 없어 보이는 일들이 진지하게 펼쳐지는 곳. 지금부터 스파크(S/Park) 튀는 공간인 시세이도 에스파크로 함께 떠나볼게요.


시세이도 에스파크 미리보기

 #1. ‘뷰티 바’의 바텐더가 된 연구원

 #2. 실험실에서 카페로 나온 식물

 #3. 걸음걸이를 연구하는 뷰티 기업

 #4. 가르치지 않고 느끼게 하는 뮤지엄

 #5. 연구소의 ‘공기감’을 전하는 팟캐스트

 #6. 실험 장소가 된 생활 공간

 여행하듯 일하는 연구원이 만드는 미래




피부 관리에 진지해졌다면 한번쯤 백화점 화장품 코너나 피부과를 기웃거려 봤을 거예요. 고민이 무엇이든 이곳에 가면 해결의 실마리를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이 전문가들은 가장 먼저 육안이나 전문 의료 기기로 현재 피부 상태를 진단한 후, 지금 꼭 필요한 처방을 내려주죠.


그런데 만약 이때 피부 진단이 아니라 표정 진단을 받는다면 어떨까요? 표정은 전문가가 아니어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어요. 굳이 진단까지 받아야 하는지 아리송하죠. 그런데 요코하마에는 실제로 표정 진단을 해주는 뷰티 기업이 있어요. 역사가 무려 150년이 넘는 ‘시세이도’예요. 2019년 4월에 투자금 400억엔(약 4천억 원)을 들여 에스파크(S/PARK)라는 이름의 글로벌 혁신 센터를 만들었는데, 여기서 진행하는 ‘미활 체육관’ 클래스에서 표정을 진단하는 거예요.



ⓒShiseido S/PARK



ⓒShiseido S/PARK


‘미활’은 아름다워지기 위해 하는 각종 활동을 뜻해요. 화장품을 바르거나, 이너 뷰티에 신경 쓰는 것처럼요. 미활 체육관 클래스는 그중에서도 미소에 웃음에 맞췄어요. 연구원들이 사람들의 미소부터 측정하죠. 직접 개발한 앱을 통해서 얼마나 잘 웃는지, 좌우 균형이 얼마나 잘 맞는지 전문적으로 진단하는데요.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피부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표정’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참가자들의 진지한 표정과 웃는 표정을 측정한 뒤에는 셀프 에스테틱 방법과 얼굴 근육 운동법을 알려줘요. 누구나 집으로 돌아가서도 스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연구원들이 세심하게 강의하죠. 수업이 마무리되는 시점에는 다시 한번 표정을 측정해서 수업의 효과가 얼마나 큰지 수치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어요.


이 새로운 형태의 뷰티 레슨은 에스파크에서 일하고 있는 연구원들이 사내 제도를 통해 자발적으로 제안한 프로젝트예요. 사방이 막힌 연구실에서 실험 결과와 씨름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사람들을 만나 실제적인 증거와 정보를 얻는 거죠. 전형적인 연구소와는 한참 동떨어진 이런 모습은 미활 체육관 클래스뿐만 아니라 에스파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요. 직접 개발한 폰트, 제공하는 서비스, 일하는 방식, 공간 디자인까지 상식을 뒤집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죠. 볼거리가 많아도 너무 많은 시세이도 혁신의 현장으로 지금 떠나볼까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1. ‘뷰티 바’의 바텐더가 된 연구원

에스파크의 정문으로 들어서면 바로 앞에 ‘뷰티 바(Beauty Bar)’가 자리하고 있어요. 테이블 위에는 시세이도의 화장품들이 진열되어 있죠. 자연주의 스킨케어 브랜드 ‘바움’, 남성을 위한 브랜드 ‘시세이도 맨’ 등 다양한 시세이도의 화장품 라인을 전부 만나볼 수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고객 체험을 위해 디스플레이 되어 있어서 방문한 고객들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여러 제품을 체험할 수 있죠.


여기까지는 전형적인 코스메틱 기업의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뷰티 바의 정수는 바로 ‘맞춤형 스킨케어 서비스’예요. 마치 칵테일 바에서 바텐더가 고객 개개인의 취향에 맞춰 맛과 향을 조합해 술을 제조하듯이, 뷰티 바에서도 사람들의 피부 타입이나 상태에 맞춰 딱 맞는 스킨케어를 만들죠. 그렇다면 뷰티 바의 바텐더는 누구냐고요? 화장품을 잘 아는 뷰티 전문가 정도가 아니에요. 에스파크의 상층부에 있는 연구실 소속의 연구원이죠.



ⓒ시티호퍼스


이 서비스는 13,200엔(약 13만 2천원)에 120분 간 진행돼요. 예약을 한 뒤 뷰티 바를 찾아가면 메이크업을 지운 뒤 여러 질문을 받게 되죠. 이때 연구원은 시세이도 전용 기구로 피부를 측정하고 얼굴을 촬영해요. 정량적, 정성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고객의 현재 상황과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거죠. 분석을 마치면 연구원이 ‘보습 유지’, ‘보습 보호’, ‘탄력’ 3가지 카테고리에 맞춰 고객에게 결과를 공유하고요. 


담당 연구원은 고객의 상태와 선호에 따라 최종적으로 뷰티 처방전을 완성해요. 이제 남은 단계는 하나. 처방전에 맞춰 단 하나뿐인 스킨과 로션을 만드는 건데요. 이 작업은 뷰티 바 바로 옆에 있는 ‘뷰티 바 랩(Beauty Bar Lab)’에서 진행돼요. 유리벽으로 된 연구실 속에서 연구원들이 맞춤형 스킨과 로션을 만드는 모습을 누구나 볼 수 있죠. 이전까지는 진열대 위의 판매용 화장품만 봐 왔던 고객들이 처음으로 진단과 제조 과정을 볼 수 있게 된 거예요.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에스 파크 1층에서는 랩실 속 연구원의 일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요. ⓒ시티호퍼스



연구원은 ‘뷰티 바’에서 내린 처방에 따라 직접 스킨과 로션을 개인별 맞춤형으로 제작해요. ⓒ시티호퍼스


오직 고객을 위한 공간처럼 보이는 뷰티 바에는 한 가지 비밀이 있어요. 사실 이곳은 연구원들 또한 영감을 받을 수 있는 장소라는 거예요. 이곳은 연구실 바깥을 벗어난 적 없던 연구원이 직접 고객을 만나며 영감을 얻는 공간이 돼요. 마치 의사처럼 고객의 고민을 듣고,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는 모든 과정은 고스란히 연구원의 자산이 되죠. 그 연구원은 시세이도의 인적 자산이 되고요. 뷰티 바에서 누적되는 연구원의 경험은 화장품 제작 시 영점을 조절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어요.



최종적으로 완성된 단 하나뿐인 스킨과 로션은 약 7일~10일 후 고객에게 배송돼요. ⓒ시티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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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실험실에서 카페로 나온 식물

뷰티 바를 걸어나오자 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건 ‘에스파크 카페(S/PARK Cafe)’예요.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을 맞으며 자연의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곳이죠. 이 카페에서는 햇빛뿐만 아니라 제철 식재료를 통해서도 건강한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어요. ‘야채 중심(Veggie-Centric)’을 컨셉으로 한 식사 메뉴는 물론 건강한 스무디, 자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디저트 등을 제공하죠.



ⓒ시티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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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크 카페는 ‘시세이도 팔러’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운영하고 있어요. 시세이도 팔러는 시세이도에서 운영하는 F&B 매장인데요. 11층 규모의 건물 안에 디저트 숍, 이탈리안 음식점, 프렌치 레스토랑, 고급 살롱 카페, 파르페 카페 등이 전부 들어서 있어 ‘긴자의 등대’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죠. 이곳에서 경험을 쌓은 노련한 셰프가 에스 파크 카페의 메뉴를 개발했어요.


시세이도 팔러는 에스파크 카페의 메뉴를 개발할 때 사람들의 일상 속 기분과 신체 상태에 맞는 균형 잡힌 식사를 제공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고 밝혔어요. 1902년 오픈 후 지난 120년 간 쌓아온 관록을 활용하면서도 슈퍼 푸드, 향신료 등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시작했죠. 백설탕 대신 사탕수수 설탕을 사용하거나, 인공색소 대신 과일과 채소의 천연색소를 사용하는 등 자연의 신선함을 음식으로 바로 섭취할 수 있도록 했어요. 



ⓒ시티호퍼스


에스파크 카페의 테이블 조명과 각종 식기류는 연구소에 있는 카페답게 실험실을 연상시켜요. 비커에 담긴 갓 만든 제철 스무디는 음식의 과학적 효능을 암시하죠. 근데 진짜 놀라운 점은 따로 있어요. 실제로도 카페가 연구실과 긴밀한 관계가 있거든요. 예를 들어 에스파크 연구실에서 화장품 개발에 사용하는 식물 중에 갯기름 나물이 있는데요. 이 식물은 천연 미백 효과가 있어서 스킨 케어 제품으로도 사용할 수 있지만 맛도 좋아요. 그래서 연구실에서 재배하고 있는 이 식물을 활용한 메뉴 개발을 하기도 했죠. 카페의 식재료를 연구실에서 공급받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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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seido S/PARK


에스파크 카페에서 볼 수 있듯이, 시세이도는 아름다움을 화장품이라는 하나의 렌즈로만 바라보지 않아요.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레이어 간의 상관 관계를 연구한 뒤 이를 고객에게 직접 보여주죠. 게다가 에스파크 카페에서는 고객들의 최근 관심사와 고민, 트렌드까지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 아닐까요?



#3. 걸음걸이를 연구하는 뷰티 기업

바르는 아름다움과 먹는 아름다움. ‘미’를 바라보는 시세이도의 렌즈는 여기서 그치지 않아요. 흔히 사람들이 코스메틱 기업에 기대하는 건 스킨 케어나 메이크업을 통한 아름다움의 개선인데요. 시세이도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자신의 역할을 ‘정지 화면의 아름다움’에 한정하지 않았어요. 1950년부터 미용 체조를 개발하면서 움직임과 몸짓까지 아름다운 건강미를 실현하는 걸 목표로 했죠. ‘미’를 바라보는 축을 길게 늘려 ‘동적인 아름다움’까지 확장시킨 거예요. 그리고 이를 ‘액티브 뷰티’라 이름 붙였죠.


그중에서 시세이도가 파고든 영역은 바로 ‘보행’이에요.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뷰티와는 어떤 상관 관계가 있을까요? 시세이도가 집중한 것은 걷기라는 단순 행위가 아니라 ‘걸음걸이’라는 태도와 자세였어요. 몸짓과 행동에서의 아름다움을 발굴하기 위해 다도, 고전 무용, 운동 전문가를 만나 기본 동작부터 연구했죠. 이어 ‘움직임의 속도, 부드러움, 스트레칭 정도’라는 3가지 지표에 따라 걸음걸이에서 파생되는 아름다움을 분석했어요.



ⓒ시티호퍼스


그 결과 시세이도는 한 가지 발견을 하게 돼요. 걸을 때 하체에서 발생하는 활력은 사람의 마음과 깊게 연관되어 있어서 기분을 긍정적으로 바꿔줬죠. 또 하체의 큰 근육을 움직이면 혈액 순환과 신진대사가 원활해져서 피부 세포가 활발해졌어요. 걸음걸이와 피부 간의 상관 관계를 밝혀낸 시세이도는 동작 개선 프로그램 ‘모션 뷰티 메소드’의 프로토 타입을 개발했죠. 4주 간의 프로그램을 운영한 결과 골격근 지수 증가, 체지방률 감소, 심리 상태 개선, 표정 개선 등의 효과를 증명해냈어요.


이 프로그램은 2019년부터 에스파크 스튜디오(S/PARK Studio)에서 제공되고 있어요. 에스파크 스튜디오는 시세이도가 동적인 아름다움을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 만든 시설이에요. 몸이야말로 아름다움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시세이도가 직접 개발한 오리지널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죠. 단순한 운동 스튜디오가 아니라 연구원이 아름다움을 위해 요즘 어떤 연구를 하고 있는지 고객에게 알리고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시티호퍼스


특히 이곳에서는 ORPHE와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보다 전문적인 걸음걸이 분석이 가능해요. 센서가 내장된 스마트 슈즈와 촬영 영상을 통해 걸음걸이를 분석하는 ORPHE의 ‘동작 분석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고 있죠. 이외에도 1회 기준 880엔(약 8800원)에 라커룸, 샤워실, 파우더룸 등을 전부 사용할 수 있는 러닝 스테이션으로서 사람들에게 움직임의 아름다움을 제시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연구의 공간이자 실증의 공간인 에스파크 스튜디오에서 몸은 물론 마음과 태도까지 가꿔나가는 중이죠.



#4. 가르치지 않고 느끼게 하는 뮤지엄

이제 1층에서 시세이도의 ‘S’를 표현한 계단을 따라 2층으로 걸어 올라가면 에스파크 뮤지엄(S/PARK Museum)이 나와요. 이곳은 1872년 창업 후 지금까지 시세이도가 선보인 ‘미의 발자취’가 담긴 곳이에요. 시세이도의 과거뿐만 아니라 지금 만들어나가고 있는 혁신, 미래에 선보일 아름다움 등 시대별 미 의식을 전시하고 있죠. 150년 넘게 아름다움에 대해 연구해 온 시세이도가 내린 ‘아름다움의 정의’는 과연 무엇일까요?



ⓒ시티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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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답은 의외였어요. 아름다움에 정해진 단 하나의 답은 없으며, 아름다움은 무한하고 다채로운 가능성이 있다’라는 게 시세이도가 찾은 답이었거든요. 그래서 에스파크 뮤지엄에서는 아름다움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 않아요. 대신 질문을 던지죠. 에스파크 뮤지엄은 곳곳에 적혀 있는 ‘미에 대한 질문’을 통해 고객들이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나가도록 했어요. 어디까지나 힌트를 전할 뿐, 결론은 고객이 내리도록 한 거예요.


뮤지엄의 각 섹션에는 체험형 실험 장비가 마련되어 있어서 고객들이 직접 ‘아름다움’에 관한 영감을 보고, 만지고, 배울 수 있어요. ‘SCIENCE × ART’ 섹션을 예로 들어 볼게요. 시세이도는 화장품을 과학과 예술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제품의 패키지 디자인 또한 과학과 예술이라는 두 개의 축을 바탕으로 완성시켰죠. 이곳에는 역대 시세이도의 디자인을 마치 ‘현대 아트’처럼 전시해 놓았는데요. 코스메틱 기업이 ‘형태’와 ‘색’을 활용하는 예술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어요. 고객들도 디지털 터치 패드를 통해 나만의 패키지를 디자인해볼 수 있죠.



ⓒ시티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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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세안, 스킨케어, 선 케어, 파운데이션, 메이크업, 향수 등 총 6가지의 카테고리로 나뉘어진 ‘과학 테이블’에서는 시세이도의 화장품이 어떤 과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탄생했는지 실험해 볼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선 케어 코너에서는 직접 코팅된 접시 위에 물을 떨어뜨려보며 방수 기능의 효과를 체감할 수 있죠. 이외에도 향수 코너에서는 자몽, 베리, 장미, 은방울꽃, 꿀 등 다양한 향을 취향대로 섞어보며 나만의 향기를 만들어 볼 수 있고요.



ⓒ시티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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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에스파크 뮤지엄은 가르치지 않는 뮤지엄이에요. 답을 일러주기보다 생각할 것을, 생각하기 전에 느낄 것을 권하죠. 그 태도에 매료되기라도 한 듯 뮤지엄 오픈 후 4개월도 되지 않아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이들은 답을 주지 않는 뮤지엄에서 역설적으로 신뢰감을 찾아 돌아갔죠.



#5. 연구소의 ‘공기감’을 전하는 팟캐스트

이제 대중에게 오픈된 공간을 떠나 좀 더 상층부로 올라가 볼까요? 업무 시간에는 정적, 동적인 아름다움을 연구하느라 열성인 에스파크의 직원들은 퇴근 후에도 바빠요. ‘미’에 관한 생각을 틔워주기 위해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거든요. 에스파크에서 일하는 연구원과 뷰티 컨설턴트는 2021년 10월부터 팟캐스트를 제작했어요. 프로그램의 이름은 ‘미의 영감과 만나는 장소’예요. 에스파크의 컨셉이 그대로 프로그램명에 반영됐죠.



ⓒShiseido S/PARK


에스파크의 이름을 걸고 만드는 팟캐스트이니만큼 당연히 회사에서 시킨 업무 같지만, 현실은 정반대예요. 팟캐스트의 기획부터 녹화, 출연, 편집, 공개까지 모든 작업을 에스파크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하고 있거든요. 팟캐스트 제작을 전업으로 하는 직원은 한 명도 없어요. 모두 본업을 마치고 사이드 프로젝트로 하고 있죠. 일주일에 1회 씩 배포되는 팟캐스트는 벌써 116회가 업로드 됐어요.


누가 시킨 적도 없는데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팟캐스트를 제작한 이유가 뭐냐고요? 이들은 무엇보다 연구소의 ‘공기감’을 회사 안팎에 전달하고 싶었어요. 직원들이 부서의 경계를 넘어 대화하고 토론한다면 개개인의 창의성이 극대화될 수 있을거라 생각했죠. 또 대중들이 이 라디오를 듣고 연구소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면, 에스파크 방문으로 이어질 거라 믿었고요. 연구원 스스로 ‘도시형 오픈 랩’이라는 에스파크의 정체성을 강화시키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한 가지 반전이 있어요. 이들이 팟캐스트에서 자사 제품을 홍보하는 일은 드물거든요. 오히려 ‘요즘 취미’, ‘꽃꽂이를 통해 느끼는 아름다움’, ‘디저트와 화장품의 공통점’ 등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바탕으로 자유롭게 대화를 나눠요. 매일의 업무에서 벗어나 편안한 분위기에서 나누는 대화는 ‘지성의 융합’을 탄생시키죠. 직원들은 팟캐스트를 통해 사적인 관심사와 생활 속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며 영감을 발견하고 공유해요. 



ⓒShiseido S/PARK


이처럼 평소에는 알기 어려운 회사 분위기나 직원 개개인의 깊은 생각을 전달하기에는 ‘음성’이 적격이에요. 음성 콘텐츠는 직원들을 영상보다 더 솔직하게, 텍스트보다 더 감정적으로 만들죠. 지금까지 참여한 게스트 직원만 누적 60명에 달하는 팟캐스트는 사내 구성원만 사로잡은 게 아니에요. 2023년 1월 기준 청취자는 누적 2만명을 돌파했어요. 게다가 재생 횟수는 1만 회를 달성하는 속도에 비해 2만 회를 돌파하는 속도가 2.8배나 증가했죠. 기업형 콘텐츠임에도 불구하고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이야기가 연구소의 킬링 콘텐츠가 된 거예요.



#6. 실험 장소가 된 생활 공간

에스파크에는 독특한 연구원만큼이나 이색적인 공간이 있어요. 바로 에스파크 11층이죠. 시세이도의 연구원은 이곳에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고객을 만나요. 고객의 생활을 엿볼 수 있도록 회사 안에 아파트를 만들었거든요. 이 아파트는 독립된 방 하나와 거실, 다이닝 룸, 부엌으로 구성되어있는 65제곱미터 크키의 1LDK 구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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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기서 고객이 진짜 살기라도 하는 걸까요? 그렇진 않아요. 이곳의 이름은 에스파크 리빙 랩(S/PARK Living Lab)이에요. 말 그대로 에스파크의 실험실인 거죠. 일반적으로 실험실을 생각하면 새하얀 백지 같은 공간과 연구복을 입고 있는 직원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올라요. 그런데 시세이도는 실제로 생활하는 사람이 어떤 환경과 맥락 속에서 화장품을 사용하는지 알기 위해 생활 자체를 구현하는 실험실을 만들었어요.


당장이라도 고객이 문을 열고 나올 것만 같은 리얼한 실험실이 진짜 집과 다른 점은 딱 하나예요. 천장에 카메라가 붙어있다는 거죠. 이는 고객이 생활 공간 속에서 화장품과 미용 기기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니터링하기 위해서인데요. 피실험자가 어쩔 수없이 긴장하게 되는 딱딱한 실험실과는 달리 생생한 반응을 포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덕분에 화장실, 침실, 거실 등 각각의 장소와 연계된 사용 장면 실험을 하고 있죠.



ⓒShiseido S/PARK


리빙 랩에서는 단순히 화장품 유저의 무의식적인 행동이나 심층적인 심리만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기본적으로 고객의 생활 공간을 본 뜬 실험실이지만 연구원의 일하는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죠.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한 분위기의 실험실에서 면담을 하거나 신제품 개발 미팅을 하는 등 사내 커뮤니케이션에도 한몫하고 있어요.


이는 시세이도가 에스파크의 사무 공간을 새롭게 설계하며 처음부터 의도했던 바예요. 연구의 스타일을 바꿔 혁신이 탄생할 수 있는 워크 씬(Work Scene)을 만들고자 했죠. 강화하고자 하는 행동을 만들어내기 위한 철저한 기획 작품이었던 셈이에요. 에스파크는 유연하고 다양한 작업 방식으로 연구원의 자유롭고 새로운 발상을 촉진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어요. 제32회 닛케이 뉴오피스상 ‘경제산업대신상’까지 거머쥐었죠.



여행하듯 일하는 연구원이 만드는 미래

시세이도 에스파크는 건물 전체가 전형적인 연구소의 틀을 깨고 나온 ‘도시형 오픈 랩’이에요. 폐쇄적이었던 연구소의 문을 열어젖힌 결과, 건물 전 층에서 영감의 스파크가 튀죠. 이런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건물 곳곳의 인테리어 디자인이에요. 특히 세계적인 디자인 오피스 넨도(nendo)의 CEO 사토 오오키가 디자인한 1층과 2층은 에스파크가 작동하는 매커니즘을 그대로 보여줘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1층에 놓여 있는 벤치는 포스트잇 묶음에서 영감을 얻은 거예요. 이 포스트잇 메모지는 단순히 쌓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에스파크의 넓은 공간을 가로질러 천장까지 날아가는데요. 이는 아이디어가 적힌 포스트잇이 연구실 위층으로 날아가 상품화 되고,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가 고객을 만난다는 ‘아이디어의 순환’을 상징해요.



ⓒ시티호퍼스


에스파크를 누비는 건 포스트잇만이 아니에요.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도 마찬가지죠. 시세이도는 에스파크를 설계하며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을 ‘Journey Style’로 정했어요. 마치 여행을 하듯이 사내 안팎을 오가며 일하도록 공간과 동선을 설계했죠. 그래서 보통 교외에 위치한 연구소가 가로로 긴 건물 형태를 띄고 있는 것과 달리, 에스파크의 일부 연구층은 복층 구조예요. 이밖에도 일부러 책상을 엇비슷하게 두거나, 쓰레기통을 줄여서 쓰레기를 버리려면 한참이나 걸어야 하는 등 우연한 만남을 의도했어요. 디자인으로 직원들의 행동을 변화시킨 거죠.


“연구원은 밖에 나가지 않고 자기 실험실에 틀어박히기 쉽거든요. 뭐든지 손이 닿는 범위에 두고, 그 안에서 완결되어 자신의 연구를 하고 있으면 행복하다는 사람이 많아요. ‘물론 연구에 몰두하는 시간은 중요하지만,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연구원들끼리나 외부인과의 소통도 필요해요. 그래서 ‘더 돌아다니자’는 컨셉이 연구원들로부터 나왔어요.”

- 쿠시로 테츠유키 S/PARK 프로젝트 리더, ‘모두의 사무실’ 인터뷰 중



ⓒShiseido S/PARK


시세이도는 앞으로 뷰티 비즈니스 연구에 있어서 과학뿐만 아니라 실제 사람과의 정서적인 접근이 필수라고 말했어요. 이제 연구원도 폐쇄된 실험실을 떠나 시대와 도시의 바람을 피부로 느끼고,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직접 목격하며, 감성을 닦아야 하는 시대가 온 거죠. 이 취지에 적격인 문화 교차점,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에서 오늘도 에스파크의 연구원들은 일하며 여행하는 중이에요. 그들이 선사할 새로운 뷰티 비즈니스의 미래, 벌써부터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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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S/Park 공식 홈페이지

 グローバルなビューティーカンパニーを目指す 体験施設(前編), KDDI

 資生堂研究所「fibona(フィボナ)」、スタートアップ企業と美しい歩行の新たな評価法基盤を確立, Shisei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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