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지 않은 속도가 경쟁력인 자전거가 있습니다. 도쿄 외곽의 야나카(Yanaka)에서 시작한 자전거 브랜드, '도쿄바이크(Tokyobike)'입니다. 자전거를 '이동 수단'으로 정의한다면 빠른 속도가 자전거의 주요 기능일 것입니다. 하지만 도쿄바이크는 자전거를 '사색의 도구'로 재정의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목적지까지 빠르게 이동하는 것보다 자전거를 타고 주위의 풍경을 감상하고, 원하는 타이밍에 멈춰 꽃 향기를 맡는 등 자전거를 타고 누릴 수 있는 순간들이 진정한 자전거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도쿄를 달릴 때 최적인 자전거, 도쿄바이크입니다. ⓒTokyobike
산을 달릴 때 최적인 자전거를 산악 자전거라고 부르듯, 도쿄바이크는 도쿄를 달릴 때 최적인 자전거를 만듭니다. 도쿄는 신호와 비탈길이 많아 자전거로 속도를 내는 데 적합한 환경이 아닙니다. 그래서 도쿄바이크는 속도감보다는 '편안함'에 초점을 맞춥니다. 마치 자전거를 타지 않은 듯 도쿄의 풍경을 누릴 수 있도록 자전거를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도쿄바이크는 런던, 베를린, 밀라노, 타이베이 등 9개 도시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 만큼 도쿄뿐만 아니라 도시를 달리는 데 최적화된 자전거입니다.
'편안함'이 강점인 도쿄바이크는 사용하지 않을 때에도 편안합니다. 집 안에 들여 놓아도 내부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스며 들고, 오래 보아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Tokyobike
도쿄바이크는 자전거를 의식하지 않고도 풍경과 바람을 즐길 수 있는 디자인을 '도쿄 슬로우(Tokyo Slow)'라고 부릅니다. 도쿄바이크의 모든 자전거는 도쿄 슬로우의 컨셉에 따라 디자인되었습니다. 도쿄바이크 렌탈스 야나카점에서는 누구나 도쿄 슬로우를 즐길 수 있도록 도쿄바이크를 대여해 줍니다. 단순히 자전거만 대여해주는 것이 아니라 동네에 가볼 만한 곳들을 소개한 지도도 함께 내어 줍니다. 자전거를 매개로 타지 누구나 일상의 여행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Tokyobike
도쿄바이크는 자전거의 가치를 재정의해 자전거의 새로운 컨셉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컨셉에 기반해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이나 카페를 같이 운영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더 '빠른' 혹은 더 '기능이 좋은' 자전거가 아니라도, 자전거의 가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차별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도쿄에 편안함을 중심으로 자전거의 새로운 쓸모를 찾은 도쿄바이크가 있다면, 대만 타이베이에는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으로 자전거의 활용도를 높인 브랜드, '슬라이더스'가 있습니다. 슬라이더스는 누구나 복장이나 용도에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탈 수 있는 자전거를 만듭니다. 자전거를 사용하는 데에 장애물이었던 요소들을 제거하고,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자 자전거를 구매하는 고객층이 넓어집니다.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는 디자인
자전거를 타려면 꼭 편한 바지를 입어야 할까요? 주말에 취미로 자전거를 탄다면 운동복을 갖춰 입을 수 있겠지만, 친구를 만나러 가거나 출퇴근할 때에는 자전거 타기에 편한 복장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슬라이더스는 치마를 입고도, 스타일을 포기하지 않고도 탈 수 있는 자전거를 만듭니다. 자전거에 사용자의 복장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복장에 맞춰 자전거를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슬라이더스의 베스트 셀러, 폴딩 바이크입니다. ⓒSliders
슬라이더스 최초의 자전거이자 대표 제품인 '폴딩 바이크(Folding bike)'는 기존 자전거보다 프레임의 높이가 낮습니다. 킥 스쿠터의 낮은 프레임을 자전거에 적용한 것인데, 프레임의 높이가 낮으니 다리를 높게 들지 않고도 페달을 밟을 수 있어 치마나 드레스를 입고도 탈 수 있습니다. 복장에 구애 받지 않고 탈 수 있는 자전거를 만드니 기존에는 자전거를 타지 않았을 사람들이나 경우에도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폴딩 바이크는 프레임의 높이가 낮아 치마를 입고도 탈 수 있습니다. ⓒSliders
여기에 중력을 활용해 자전거를 2초면 접을 수 있도록 디자인해 휴대성까지 높였습니다. 옷차림과 상관없이 자전거를 타다 마치 가방을 들듯 자전거를 들고 다닐 수 있으니 대중교통을 타기에는 애매하고 걷기에는 먼 거리를 다닐 때에 자전거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집에서 지하철역 또는 버스 정류장까지, 혹은 교통수단과 교통수단 사이 등의 거리에 자전거를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제품의 기능보다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한 결과 자전거의 활용도가 높아졌습니다.
ⓒSliders
한편 출퇴근 전용으로 출시한 '스마트 E바이크(Smart Ebike)'는 직장인 남성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디자인되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것 중의 하나가 땀에 옷이 젖는 것인데, 전기로 움직이는 자전거를 만들어 자전거를 타는 상쾌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땀이 많이 나지 않도록 설계한 자전거입니다. 동시에 전기 자전거를 위한 배터리, 케이블, 센서 등을 프레임 안에 숨겨 현대적인 기능과 함께 클래식한 디자인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바구니, 컵홀더, 짐칸 등 언제든 필요한 확장 기능을 탈부착할 수 있도록 듀얼 트랙 프레임을 개발해 사용자의 니즈를 반영했습니다. 제품 디자인의 출발점이 자전거의 기능이 아니라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이기에 가능한 디테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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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E바이크 뒤에는 짐칸을, 앞에는 바구니를 연결해 기능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Sliders
틈새의 문제를 해결하는 제품 컨셉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인정받는 미국의 디자인 이노베이션 회사, IDEO의 의장인 팀 브라운(Tim Brown)이 HBR에 '디자인적 사고(Design Thinking)'를 소개한 이래로 디자인적 사고는 많은 회사들의 핵심 전략이 되었습니다. 디자인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를 바꿔나가는 것'이라면, 디자인적 사고는 이러한 사고 방식을 비즈니스의 전반적인 문제 해결 과정에 도입하는 것을 말합니다. 디자인적 사고는 고객의 문제에 공감하는 것으로 출발하여 문제를 정의하고, 아이디어를 도출한 후 시제작한 제품을 테스트하며 문제를 해결합니다.
슬라이더스는 디자인적 사고에 기반해 새로운 컨셉의 자전거를 출시합니다. 사용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는 디자인은 기본, 사용자가 자전거를 탈 때 느끼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자전거를 개발합니다. '미니 로켓(Mini rocket)'은 소형 전기 자전거로, 팔 힘이 약한 사람들이나 여자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기 전에 겪는 불편함에 착안해 개발된 자전거입니다. 자전거의 프레임을 낮게 만들고, 폴딩(folding)이 가능하게 디자인했지만 여전히 여성들이 자전거의 무게 때문에 이동이나 조작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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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슬라이더스는 자전거의 크기를 줄이고, 더 빠르고 쉬운 폴딩 시스템을 개발해 자전거의 휴대성을 개선했습니다. 덕분에 차에 싣거나 엘레베이터, 지하철 등을 탈 때에 힘이 세지 않은 사람들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쉽게 자전거를 조작하고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접었을 때 폭이 얇게 디자인된 미니 로켓은 보관도 용이해 회사나 학교에서 책상 바로 옆에 세워 두기에도 좋습니다. 게다가 탈부착이 가능한 리튬 배터리는 휴대용 핸드폰 충전기로도 쓸 수 있어 여러 모로 용이합니다. 사용자가 느끼는 문제에 공감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제품 컨셉을 개발한 결과, 빠른 속도를 내지 않아도 소비자들이 원하는 자전거를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Sli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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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함께 하는 아이디어
혁신적인 디자인을 만드는 슬라이더스는 혁신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고객과 함께 합니다. 고객과의 소통을 통해 기획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동시에 슬라이더스의 디자인에 대한 공감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기도 합니다. 10여 년간 혁신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방법을 연구한 터크 경영대학원의 비제이 고빈다라잔(Vijay Govindarajan) 교수와 크리스 트림블(Chris Trimble) 교수의 저서인 <퍼펙트 이노베이션>에서도 혁신 프로젝트와 관련있는 사람들이 해당 프로젝트에 공감도가 높을 수록 혁신이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고객들이 내부 직원은 아니지만, 혁신을 만드는 과정에 함께 해 슬라이더스와의 연결감과 공감도를 높이는 것은 유의미해 보입니다.
슬라이더스는 대중이 가진 생각의 힘을 믿습니다. 그래서 슬라이더스의 홈페이지에 '집단 아이디어(Crowd-idea)' 코너를 마련하고, 사용자 중심의 제품 디자인을 위해 고객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합니다. 신제품을 출시할 때에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슬라이더스의 5가지 자전거 모델 모두 대만 최대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젝젝(zeczec)'을 통해 선보였습니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서는 제품을 시장에 본격적으로 출시하기 전 소비자들의 반응과 의견을 알 수 있고, 무엇보다 소비자 이상의 서포터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입니다.
반대로 이미 개발된 제품의 컨셉을 고객들이 완성하기도 합니다. '카고 바이크(Cargo bike)'가 대표적인 예인데, 카고 바이크는 원래 반려동물이나 아이를 자전거에 태울 수 있도록 자전거 앞부분에 커다란 짐칸을 설치한 자전거입니다. 짐칸의 내구성이 높고 변형이 가능한 것이 특징인데 이 자전거의 새로운 용도를 발견하고, 제품 개발 시 고려하지 않았던 컨셉으로 발전시킨 것은 다름 아닌 고객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짐칸을 활용해 이동식 카페 등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덕분에 카고 바이크는 '사업을 더 쉽고 더 저렴하게 시작하기 위한 자전거', '꿈을 이루기 위한 자전거'라는 컨셉을 얻었습니다. 이처럼 혁신의 과정에 고객을 참여시키니 새로운 컨셉에 대한 수용도가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Sli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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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만드는 디자인 회사
슬라이더스를 만든 하오팅 테크놀로지(Haoting Technology)는 스스로를 자전거 회사가 아닌 '디자인 회사'로 정의합니다. 그래서 자전거 매장을 운영하는 대신 디자인에 집중하고, 온라인 몰과 협력 매장을 통해 자전거를 판매합니다. 디자인 역량을 발휘하는 데에 집중한 결과, 슬라이더스는 자전거 디자인 하나로 이탈리아 'A' 디자인 어워드', '골든 핀 디자인 어워드' 등 디자인 관련 어워드에서 10회 이상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쯤 되니 하오팅 테크놀로지가 자전거 디자인 외에도 디자인 에이전시로서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 낯설지 않습니다. 산업 디자인, 브랜드 매니지먼트 등의 분야에서 디자인 솔루션을 제공하고, 성공적으로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실행했던 경험과 온라인 몰을 운영한 경험에 기반하여 온라인 마케팅까지 컨설팅을 진행합니다. 문제 해결과 혁신의 DNA가 있는 자체 브랜드를 갖고 제품을 양산, 온라인 판매까지 해본 경험이 있는 회사이기에 프로젝트 결과물에 더 믿음이 갑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장인 집단'
일본을 대표하는 디자인 회사이자 일본 산업 디자인이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 데에 큰 역할을 한 'GK 디자인 그룹'이 정의한 '디자인 회사'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디자인으로 구현하고, 제품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슬라이더스의 모습과 맞닿아 있습니다. 창의적인 자전거 회사를 넘어, 창의적인 디자인 회사이기에 슬라이더스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더욱 궁금해 집니다.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