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대만, 중국 등의 동양 문화권에서만 통용되는 기호 식품이 아니에요.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도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문화의 한 축이죠. 스미스 앤 슈는 이 점에 착안하여 차를 대만의 전통문화가 아니라 동서양을 잇는 매개체로 재해석해요.
여기에 상호가 스미스로 시작하는 이유가 있어요. 스미스는 영국에서 가장 흔한 성씨 중의 하나이고, 슈는 대만의 대표적인 성씨예요. '앤(&)'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위치한 두 성씨는 동양과 서양을, 전통과 현대를, 유산과 혁신을 잇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차를 공통분모로 동양의 차 문화와 서양의 차 문화를 융합하겠다는 의도예요.
물론 매장 이름만 그렇게 짓는다고 동양의 차 문화와 서양의 차 문화가 어우러지는 건 아니에요. 스미스 앤 슈는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있는 동서양의 차문화를 참신하게 조화시키는데요.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차를 바라보는 관점과 차를 전달하는 방법에 힌트가 있어요.
스미스 앤 슈 미리보기
• 단순하게 구분하면 문턱이 낮아진다
• 공통분모로 연결하면 시장이 넓어진다
• 디테일에도 컨셉을 반영하면 정체성이 단단해진다
• 예술 작품으로 보편적 감정을 자극한다
대만의 우롱차 중에는 '동방미인차(東方美人茶)'라고 불리는 차가 있어요. 홍차 소비 강국인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대만의 우롱차를 맛보고는 동방의 미인이 연상된다고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에요. 영국 왕실에서는 아직도 이 동방미인차를 매해 구입하고 있어요. 최고급 동방미인차의 경우 글로벌 경매 시장에서 600g이 수천만 원에 거래되기도 할 정도죠. 동방미인차가 영국 여왕이 눈에 띄어 유명해진 건 우연이지만, 대만에서 차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면 없었을 결과이기도 해요.
대만에는 차에 대한 수요가 많은 만큼 차 판매점도 많아요. 대만의 수많은 차 판매점 중에서도 '린 마오 센(林茂森)'은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해요. 1883년에 시작해 5대 째 운영하고 있는 린 마오 센은 우직하게 전통을 고수하고 있어요. 2013년에 오픈한 컨셉 스토어도 린 마오 센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감각 있게 풀어내면서도 위엄을 뿜어내죠.
ⓒ시티호퍼스
린 마오 센의 매장 안에 들어서면 수십 개의 커다란 배럴들이 손님을 맞이해요. 각 배럴에는 대만을 포함한 다양한 국가에서 재배한 찻잎이 담겨 있어요. 차의 가격은 매입가, 유통구조, 구매량 등에 따라 정해지지 않고 오로지 차의 품질에 따라 결정되어요. 도소매 가격의 차이가 없을 뿐만 아니라, 모객을 위해 여행사 등의 에이전시에 수수료를 지급하는 일도 없어요. 가격에 불필요한 거품이 끼는 것을 방지하고, 가격을 책정할 때 품질만을 고려 요소로 삼고자 했던 선대의 철학을 이어받은 거예요.
게다가 찻잎은 판매하지만, 우린 차를 판매하는 공간은 없어요. 현대의 차 문화에 맞춰 테이크아웃 서비스라도 운영할 법한데도 말이죠. 찻잎이 아닌 우려낸 차를 판매하는 것은 다른 비즈니스라고 인식하고 전통 티 하우스의 면모를 고집하는 거예요. 오랜 시간 동안의 전통과 평판이 없는 찻집이라면 갖기 힘든 자신감이에요.
린 마오 센과 같은 전통의 강호들을 비롯해 변화하는 차 문화에 맞춘 신생 찻집까지 더하면 대만의 차 시장은 그야말로 레드오션이에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업력이 짧은 티 하우스들은 전통도, 고객 기반도 없기에 터줏대감들과는 차별화된 방법을 택해야 하죠. 그래서 신생 브랜드를 중심으로 새로운 시도가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주목해 볼 매장은 '스미스 앤 슈(Smith & Hsu)'예요. '대만산' 차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대만 차 시장에서 상호에 '스미스'라는 영어 이름을 버젓이 내건 것부터 눈에 띄죠. 이국적 정체성이 물씬 묻어나는 스미스 앤 슈는 어떤 점이 남다르길래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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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구분하면 문턱이 낮아진다
차도 아는 만큼 보이는 분야예요. 종류도 많고, 같은 종류라도 찻잎과 첨가물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져요. 초보자들이 차의 종류와 차이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밖에요. 하지만 스미스 앤 슈는 차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고객이 될 수 있도록 친절한 안내자 역할을 자처해요. 어떻게냐고요?
스미스 앤 슈는 차의 종류와 차를 즐기는 순서를 단순하게 구분했어요. 누구나 스미스 앤 슈에서 판매하는 100여 가지 차의 차이를 이해하고 비교하며 취향대로 고를 수 있도록이요. 먼저 스미스 앤 슈는 메뉴판을 활용했어요. 판매하는 모든 차에는 고유한 번호가 매겨져 있어요. 숫자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차 메뉴를 넘버링하니 생소한 차 이름을 숫자로 대체할 수 있죠.
그런데 이 번호가 쓰인 동그라미 색깔이 차의 종류에 따라 달라요. '색상 코드(Color Codes)'라고 불리는 이 색깔은 해당 차의 종류를 나타내요. 스미스 앤 슈가 취급하는 모든 차는 홍차(Black), 우롱차(Oolong), 가향차(Scented), 허브차(Herbal), 혼합차(Blended), 과일차(Fruit), 녹차(Green), 보이차(Pu erh) 등 8가지로 나뉘는데, 각 종류마다 고유한 컬러를 부여했어요. 예를 들어 허브차에 속하는 캐러멜 루이보스 티 앞에는 허브차를 의미하는 보라색 동그라미 안에 ‘33’ 숫자를 표시하는 식이에요. 메뉴판의 색상 코드만 봐도 그 차가 어떤 계열인지 알 수 있죠.
ⓒSmith & H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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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차에 부여된 숫자가 차를 쉽게 구분하는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진짜 목적은 메뉴판의 이름과 실물 찻잎을 매칭하는 데에 있어요. 스미스 앤 슈에서는 메뉴판과 함께 수십 가지 찻잎 샘플이 담긴 작은 유리병들을 한 판에 가져다줘요. 고객은 서빙된 유리병의 뚜껑을 열어 찻잎을 시향할 수 있는데, 각 유리병 뚜껑에 메뉴판의 숫자가 표기되어 있어 매칭할 수 있어요. 메뉴판에서 42번에 해당하는 계절 우롱차(Season Oolong)를 시향해 보고 싶은 경우, 유리병 중에 42번이라고 쓰여 있는 뚜껑을 열어 시향해 보면 되는 거예요.
ⓒ시티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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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판과 찻잎 샘플러를 연동시킨 체계 덕분에 차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자기의 취향을 쉽게 찾을 수 있어요. 게다가 차 샘플을 서빙하는 나무판을 통해서는 '말린 찻잎을 보고', '우린 찻물의 색깔을 보고', '차의 향을 맡고', '차 맛을 음미하고', '차를 평가'하는 5단계에 따라 차를 즐기라고 알려 줘요. 차를 맛보는 방법까지 단계별로 알려주니 차를 접하는 초보자의 부담이 한결 줄어들어요.
공통분모로 연결하면 시장이 넓어진다
차는 대만, 중국 등의 동양 문화권에서만 통용되는 기호 식품이 아니에요.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도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문화의 한 축이죠. 스미스 앤 슈는 이 점에 착안하여 차를 대만의 전통문화가 아니라 동서양을 잇는 매개체로 재해석해요.
여기에 상호가 스미스로 시작하는 이유가 있어요. 스미스는 영국에서 가장 흔한 성씨 중의 하나이고, 슈는 대만의 대표적인 성씨예요. '앤(&)'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위치한 두 성씨는 동양과 서양을, 전통과 현대를, 유산과 혁신을 잇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차를 공통분모로 동양의 차 문화와 서양의 차 문화를 융합하겠다는 의도예요. 또한 서양 문화에 익숙한 젊은 세대, 서양 문화가 궁금한 기존 세대, 동양 문화를 경험하고 싶은 외국인 관광객 등 문화권과 세대를 막론하고 더 다양한 고객들에게 다가가겠다는 의지이기도 해요.
스미스 앤 슈에서는 대만뿐만 아니라 영국, 독일 등 전 세계의 유명한 원산지에서 수입한 차를 취급해요. 대만 찻집이라고 특별하게 대만산 차를 많이 취급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 원산지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일도 없어요. 원산지에 대한 편견 없이 다양한 차의 매력을 소개하고자 하는 목적이에요.
게다가 우유, 설탕, 꿀, 레몬, 얼음 등을 첨가한 변형 메뉴로 차의 경계를 확장해요. 오히려 이런 변형 메뉴들을 ‘시그니처 티’로 내세워요. 전통적인 티 하우스에서 정통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과는 다른 행보예요.
“'변화'가 가져다주는 경이로움을 즐겨보세요! 양, 끓이는 방법, 물의 온도, 끓이는 시간에 따라 같은 차라도 예상치 못한 놀라운 맛과 향을 선사해요. 여러가지 재료가 더해지면서 차가 차 그 이상으로 변하는 맛이 신기하네요.”
스미스 앤 슈가 시그니처 티를 소개하며 덧붙인 말이에요. 차에 대한 편견 없는 접근과 현대적인 재해석 덕분에 고객 기반이 넓어져요.
차 메뉴뿐만 아니라 음식 메뉴에서도 동서양을 연결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어요. 메뉴 중에는 핑거 푸드와 티를 함께 즐기는 애프터눈티 세트가 있는데요. 애프터눈티 문화는 출출한 오후에 홍차와 간단한 음식을 곁들여 먹는 영국의 차 문화예요. 애프터눈티 세트를 주문하면 마음에 드는 차 한 가지와 2단 트레이에 놓인 샌드위치, 스콘, 케이크 등 서양식 핑거 푸드를 함께 먹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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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눈티 세트라고 해서 함께 마시는 차가 꼭 홍차일 필요는 없어요. 기호에 따라 대만산 우롱차를 마셔도 좋아요. 세트가 부담스럽다면 샌드위치, 샐러드, 쿠키, 케이크, 스콘 등 서양식 단품 음식 메뉴도 준비되어 있고요. 차를 공통분모로 함께 먹는 음식을 서양식으로 갖추니, 차를 경험하는 방식이 다채로워져요.
디테일에도 컨셉을 반영하면 정체성이 단단해진다
스미스 앤 슈의 대표 푸드 메뉴인 스콘은 영국식 애프터눈 티 문화의 영혼이라 할 수 있어요. 차를 매개로 동서양의 문화를 잇는 스미스 앤 슈에게 스콘이 갖는 의미는 다른 푸드 메뉴와 달라요. 그만큼 스콘 레시피 개발에 공을 들이죠. 스미스 앤 슈의 스콘은 재료를 나누고, 섞고, 반죽하는 등 30가지 이상의 과정을 거쳐 고유한 레시피로 만들어져요. 덕분에 겉은 바삭, 속은 부드러우면서 고소한 우유의 풍미가 퍼지는 클래식 스콘을 개발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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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호불호 없이 즐길 수 있는 클래식 스콘뿐만 아니라 계절에 따라 어울리는 신메뉴도 개발해요. 2023년 가을, 겨울 시즌에는 ‘흑설탕 시나몬 스콘’과 ‘모카 크리스프 스콘’을 론칭했어요. 추운 계절과 잘 어울리는 식재료들을 사용해 스콘에 베리에이션을 더했어요.
스콘을 매장에서 주문하면 크림과 잼이 함께 제공되어요. 스미스 앤 슈에게 차만큼이나 중요한 메뉴이니, 스콘과 함께 할 짝꿍도 허투루 매칭하지 않아요. 스콘하면 빠질 수 없는 클로티드 크림과 과일 잼은 모두 영국에서 수입해 와요. 클로티드 크림은 영국 데본 지역에서 만들어진 제품으로, 가장 클래식한 영국의 맛을 재현했고요. 잼도 40년 넘는 역사를 가진 영국의 잼 브랜드 ‘Cottage Delight’의 제품을 써요. 오리지널 레시피와 전통 방식을 따라 여전히 사람 손으로 잼을 만드는 곳이죠.
ⓒSmith & Hsu
ⓒSmith & Hsu
사실 잼이든 클로티드 크림이든 직접 만들 수도 있었을 거예요. 가정에서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난이도가 높지 않은 것들이니까요. 비용 측면에서도 영국제 제품을 수입하는 것보다 훨씬 더 경제적이었을 것이고요. 하지만 스미스 앤 슈는 기꺼이 그들이 큐레이션한 파트너들의 제품을 수입해 타이베이에 소개하는 쪽을 선택했어요. 동서양의 조화를 이렇게 한 번 더 실천하는 셈이에요.
여기에 하나 더. 스콘에 잼이나 크림만 매칭하라는 법 있을까요? 전형적인 영국 스타일을 구현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고객이 고를 수 있는 잼 메뉴 중 하나를 ‘대만 리치 꿀(Taiwan Litchi* Honey)’로 구성했어요. 영국식 쇼트 브레드인 스콘과 대만 국민 과일 중 하나인 리치향이 은은하게 나는 꿀의 조화로 새로운 티 푸드 문화를 제안해요.
*영문 표기는 Lycee이나 대만에서는 중국어 발음인 '리즈[lìzhī]'를 영어식으로 옮긴 ‘Litchi’를 쓰기도 해요.
ⓒSmith & Hsu
예술 작품으로 보편적 감정을 자극한다
"예술은 사람들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수단의 하나이다."
《예술이란 무엇인가》의 저자 ‘레프 톨스토이’는 훌륭한 예술의 특성 중 하나로 만인에게 받아들여지는 감정을 전하는 보편성을 이야기해요. 그의 말처럼 예술은 감정을 소통하기 위한 매개이며, 예술이 보편적 감정을 건드릴수록 소통에 따른 감염력이 강해져요. 그런 의미에서 스미스 앤 슈 매장은 감염력을 가진 하나의 예술이에요. 공간 구성이나 매장의 조명, 장식품 등이 예사롭지 않거든요.
예술적인 ‘느낌’뿐만 아니라 실제로 매장 곳곳에서 자연을 주제로 한 예술 작품을 찾아볼 수 있어요. 구름을 형상화한 천장의 조명은 대만 디자이너의 작품이에요. 하얗고 커다란 조명의 듬성듬성한 직물 사이로 새어 나오는 은은한 빛 덕분에 마치 집 밖의 뜰에 앉아 차를 마시는 기분이 들며 보편적 감정을 자극받아요.
ⓒ시티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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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대만의 숲에서 가져온 나무로 제작한 오브제들도 있어요. 공중에 매달린 나무통 위에 차를 상징하는 이끼와 꽃들이 피어있어요. 찻잎의 상징적 요소를 평면, 직선 등의 인공적인 패턴으로 배치하여 차로 대표되는 자연과 인류 문명 간의 조화를 표현한 작품이에요. 거창해 보일 수 있지만, 예술적 의도를 가진 오브제들이 은연중에 본연적 감정을 일깨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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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매장 안 아트 피스들은 동서양을 잇고자 하는 스미스 앤 슈의 컨셉에 힘을 실어줘요. 예술적 요소들이 언어적, 문화적 차이를 뛰어넘는 바탕을 만들어주기 때문이에요. 이름에 함축하고, 차와 푸드 메뉴에 적용하며, 매장에 담아낸 고민 덕분에 스미스 앤 슈에서는 여느 찻집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맛이 우러나요.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