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맛 또는 단맛이라고 다 같은 맛이 아닙니다. 맛을 보면 다릅니다. 알고 보면 더 다릅니다. ‘solco’는 소금을, ‘100% 초콜릿 카페’는 초콜릿을 세분화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감각적 디자인으로 시각까지 자극하는 맛입니다.
solco, 100% 초콜릿 카페 미리보기
• 전문가가 전문가인 이유
• 전문가가 취향을 존중하는 방법
• 전문가가 전문성을 채우는 방법
• 취향에 담긴 기회
“취향은 구분하고, 분류하는 자를 분류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의 서문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개인이 가지는 취향이 개인이 속한 계급을 규정하고, 상위 계급으로 분류된 개인들은 아름다움과 추함을 구별함으로써 다른 계급과 자신을 구분한다는 뜻입니다. 자본이 주도하는 산업사회에서는 돈과 권력이 다른 배경을 만들고, 다른 배경이 개인의 다른 취향을 낳습니다. 즉, 개인이 가지는 문화 취향은 개인의 고유한 것이 아니라 개인이 속한 계급의 문화적 취향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자본보다 지식이 사회를 주도하는 시대입니다. 지식은 자본과 달리 계급을 구별하기보다는 모든 사람이 다양한 문화를 접할 기회를 만들어냅니다. 이제 개인의 취향은 돈과 권력에 의해 규정되는 계급의 취향이 아니라, 개인의 의지에 따라 고유한 것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취향의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전문가들입니다.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은 문화를 ‘접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 사이의 격차를 좁히면서 일반인이 가질 수 있는 취향의 저변을 넓힙니다.
취향의 도시 도쿄에는 제과업체 메이지가 운영하는 ‘100% 초콜릿 카페’와 소금 전문가가 운영하는 ‘solco’가 있습니다. 단순히 여러 종류의 초콜릿과 소금을 판매하는 보통의 상점과 달리, 100% 초콜릿 카페와 solco는 단맛과 짠맛에 종류와 기준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00% 초콜릿 카페와 solco는 단맛과 짠맛의 세분화를 통해 고객들이 느낄 수 있는 단맛과 짠맛을 수십 가지로 확장합니다. 체계적인 경험이 반복되면 이해가 되고, 이해가 깊어지면 취향이 생깁니다. 100% 초콜릿 카페와 solco는 널리 알려졌지만, 깊이 알려지지 않은 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전문성으로 취향에 밀도를 더합니다.
매장은 작지만 전문성만큼은 탄탄한 solco 매장입니다. ⓒ시티호퍼스
전문가가 전문가인 이유
전문가들만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은 비즈니스로 발전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전문가의 지식이 대중에게 인정받을 때 사업적 가치를 갖습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대중이 이해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정리가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일반인의 시선으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분야를 세분화하고 체계화하는 것은 그 분야에 대해서 넓고 깊게 알아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전문가가 전문가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신의 분야를 ‘세분화하여 정리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100% 초콜릿 카페는 초콜릿에 대한 전문성을 매출액이 아니라 상품을 구성하고 제공하는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메이지 본사 1층에 있는 100% 초콜릿 카페는 56가지 초콜릿과 초콜릿을 베이스로 만든 메뉴를 판매합니다. 1번부터 56번까지 넘버링이 되어 있는 56개 초콜릿은 6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집니다. 6개 카테고리는 싱글빈 시리즈, 설탕의 종류를 달리한 시리즈, 우유의 종류를 달리한 시리즈, 일본 식재료를 살린 시리즈, 초콜릿의 본고장인 유럽 스타일의 시리즈, 전통적인 제조 방식의 초콜릿을 맛볼 수 있는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6가지 카테고리는 초콜릿의 풍미를 내는 방식을 기준으로 구분한 것입니다. 초콜릿을 이해할 수 있는 기준이기도 합니다.
100% 초콜릿 카페는 56가지 초콜릿들의 색상, 향기, 감촉을 즐기며 ‘초콜릿 여행’을 떠나보라고 권유합니다. ⓒ시티호퍼스
도쿄의 중심 마루노우치에 초콜릿 전문점인 100% 초콜릿 카페가 있다면, 도쿄의 한적한 주택가인 시나가와 구에는 소금 전문점 solco가 있습니다. solco는 국내외 400여 종의 소금 중에 임의로 약 40종류의 소금을 선별하여 각각의 소금에 고유 번호를 붙여 판매합니다. 소금에 부여하는 번호는 소금의 산지, 제조 방법, 원천에 따라 7개 카테고리로 나누어집니다. 000~199번은 일본 천일염, 200번대는 해외 천일염, 300번대는 염천, 400번대는 암염 등을 뜻합니다. 도서관과 같은 분류체계를 통해 solco의 고객들은 소금의 종류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소금통 밑에 배치되어 있는 작은 카드들은 각 소금의 산지, 특성, 맛 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전문가가 취향을 존중하는 방법
보급형부터 전문가용 카메라까지 패권을 놓지 않는 카메라회사 캐논이 꾸준히 일반인을 위한 사진 클래스를 열고, 150년 전통의 시세이도가 긴자 한복판에 화장품을 테스트해볼 수 있는 파우더룸을 오픈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연매출 조 단위의 회사에 아카데미나 파우더룸은 추가 수익원으로서 의미를 갖진 못합니다. 대신 자신들의 분야를 보다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전달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초보자들이 취향을 찾을 기회를 제공하고, 자신의 취향을 계속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고객들의 취향을 존중하는 방법입니다. 100% 초콜릿 카페와 solco 매장에서도 취향 발굴의 기회를 제공하려는 노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00% 초콜릿 카페는 방문하는 고객이 다양한 초콜릿을 맛보고, 체계적인 기준에 따라 비교해볼 기회를 제공합니다. 먼저 바 초콜릿인 ‘THE Chocolate’의 맛을 레이더 차트를 통해 보여줍니다. 레이더 차트의 7가지 기준은 초콜릿의 맛을 구성하는 풍미들인 꽃맛, 과일맛, 견과류맛, 우유맛, 신맛, 단맛, 쓴맛입니다. 고객들은 직접 먹어보지 않고도 레이더 차트를 통해 각 초콜릿의 맛을 상상하면서 선택의 기준을 찾게 됩니다. 레이더 차트를 기준으로 초콜릿을 구매한 고객들은 그 초콜릿을 구성하는 각각의 풍미를 음미하며 자신에게 맞는 초콜릿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객들은 THE Chocolate을 구매하기 전, 레이더 차트, 카카오 함유량, 상품 이름 등을 통해 각 초콜릿의 맛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100% 초콜릿 카페가 고객의 취향을 존중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시그니처 메뉴인 ‘샘플러’에 있습니다. 100% 초콜릿 카페는 기원전부터 약 4000년의 세월 동안 초콜릿이 ‘마시는’ 형태였다는 점에 착안하여, 56가지의 초콜릿을 음료의 형태로도 제공합니다. 그중 3가지를 무작위로 선정하여 내주는 것이 샘플러입니다. 샘플러를 주문하면 각 초콜릿의 맛을 5가지 기준으로 묘사한 레이더 차트를 함께 내줍니다. 고객들은 샘플러 메뉴와 레이더 차트를 통해 다양한 초콜릿들을 일관적인 기준에 따라 비교하고, 취향을 찾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샘플러 메뉴를 주문하면 맛을 묘사하는 레이더 차트뿐만 아니라, 초콜릿 번호, 원산지 등 각 샘플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함께 제공됩니다. ⓒ시티호퍼스
반면 소금 전문점 solco에서는 고객이 소금을 구매하지 않아도, 단돈 90엔에 판매하는 오니기리만 구입하면 매장 안의 모든 소금을 맛볼 수 있습니다. 백미 또는 현미만으로 만든 무미無味의 오니기리를 구매한 고객들은 매장 내에 비치된 소금들의 고유번호와 원산지를 보고 원하는 소금을 선택해 오니기리에 뿌려 시식해봅니다. 각각의 소금과 잘 어울리는 식재료, 요리 등이 함께 기재되어 있어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염두에 두고 소금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solco의 오니기리는 소금의 맛과 고객을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고객이 소금에 대한 취향을 찾는 출발점입니다.
solco의 오프라인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들은 오니기리를 통해 소금 맛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solco에서 소금을 시식하는 다른 방법은 각종 소금을 이용한 델리 메뉴를 맛보는 것입니다. 소금의 맛은 소금만 맛볼 때와 재료랑 함께 맛볼 때 다르고, 같은 소금이라도 어떤 재료와 함께 어우러지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오니기리로 다양한 소금을 맛보았다면, 각각의 메뉴에 다른 종류의 소금을 사용한 델리 메뉴를 통해 음식과 소금의 조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델리 메뉴에는 고로케, 야채포타주, 도시락 같은 식사류뿐만 아니라 사탕, 캐러멜 케이크, 쿠키, 바나나빵 등 디저트 메뉴도 준비되어 있어 보다 다양한 소금의 매력을 알 수 있습니다. solco의 고객들은 델리 메뉴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저격하는 조합을 발견하게 됩니다.
solco의 소금과 유기농 재료로 만든 건강한 델리 메뉴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풍부한 단맛을 이끌어 내는 소금의 특징을 이용한 디저트류는 solco 매장에서 만날 수 있는 별미입니다. ⓒ시티호퍼스
홋카이도 지방의 하코다테에는 150년 전통의 일본 과자 명가 ‘센슈안’ 본점이 있습니다. 맛의 미묘한 차이도 용납하지 않는 센슈안은 재료 준비부터 제작, 포장까지 철저한 원칙에 따라 완수하여 디테일을 사수합니다. 한편으론 다양한 맛과 모양의 화과자를 개발하기 위해 서양과자에도 도전하고, 매월 새로운 디자인의 화과자를 출시하기도 합니다. 지속적인 연구와 디테일에 대한 고집이 센슈안의 150년 역사를 지켜냈습니다. 100% 초콜릿 카페와 solco도 꾸준한 연구로 기본을 다지고, 디테일의 영역을 고객과의 접점인 매장 전체로 확장합니다. 그들의 전문성이 완결성을 가지는 이유입니다.
100% 초콜릿 카페는 카카오의 향미를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카카오를 연구해왔습니다.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소규모 생산을 하고 있어 매장을 직접 방문해야만 고유의 메뉴를 맛볼 수 있습니다. 신메뉴 개발에도 적극적입니다. 최근에는 두유·요구르트·피스타치오 등의 새로운 초콜릿을 개발했고, 계절별로 시즌 한정판 메뉴도 출시합니다. 새로운 메뉴를 런칭할 때에는 베이스가 되는 카카오의 특성과 맛을 고려해 새로운 재료와의 조화에 초점을 맞춥니다. 카카오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는 진부하지 않으면서도 기시감이 살아 있는 제품을 만들어내는 기반입니다.
100% 초콜릿 카페의 디테일은 매장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매장의 직사각형 외관은 초콜릿을 연상시킵니다. 특히 밤에는 은은한 외장 조명이 100% 초콜릿 카페의 지향점인 ‘초콜릿 원더랜드’에 걸맞은 따스한 느낌을 주어 고객의 발걸음을 매장으로 이끕니다. 매장에 들어서면 바 초콜릿 모양의 천장으로 인해 동화 속 초콜릿 집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듭니다. 좁은 매장에서 고객들이 보다 편히 초콜릿을 즐길 수 있도록 테이블에 이동식 가방걸이를 배치한 것도 눈에 띕니다. 100% 초콜릿 카페의 디테일은 초콜릿 원더랜드를 완성하는 정점입니다.
초콜릿 모양의 천장 인테리어는 ‘초콜릿 원더랜드’라는 매장 이미지를 강화합니다. ⓒ시티호퍼스
한편 solco의 전문성은 오너인 다나카의 노력에 기반을 둡니다. 미식의 나라답게 일본에는 소금 코디네이터 협회가 있습니다. 이 협회의 인증을 받은 수석 코디네이터는 일본 전체에서 네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solco의 오너인 다나카는 그중 한 명으로, 소금에 대해 수년간 공부한 전문가입니다.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파악한 각 소금의 특징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각 소금을 사용하는 최적의 방법을 찾기 위한 연구도 병행합니다. 소금 코디네이터들의 미각 데이터에 대한 분석은 물론 각 소금과 궁합이 좋은 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일본과 세계의 소금 도감》 제작에도 참여하고, 다양한 소금 산지를 직접 방문하기도 합니다. 다나카의 다방면에 걸친 연구 활동은 작은 소금 가게가 전문성을 가질 수 있는 초석입니다.
solco는 오너의 전문성만큼이나 디테일이 강한 매장입니다. solco의 소금병은 실제 배양연구소에서 쓰이는 시험관으로 열과 산에 강해 소금의 맛을 오랫동안 보존합니다. 종류에 따라 넘버링된 소금들은 모두 같은 모양의 투명한 시험관에 담겨 있습니다. 소금병을 진열해둔 선반을 포함한 모든 가구는 검은색 계통으로, 하얀 벽과 대비를 이루어 소금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동일한 디자인의 소금병과 흑백의 인테리어는 고객들이 소금을 접할 때 각 소금의 개성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한 디테일입니다.
군더더기 없는 흑백의 대비 효과로 인해 소금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집니다. ⓒ시티호퍼스
기능성과 디자인을 모두 갖춘 solco의 소금병은 각 소금의 특징을 강조하고, 소금을 보존하는 역할을 합니다. ⓒ시티호퍼스
취향에 담긴 기회
“너무나 좋아해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몰두하게 하는 뭔가가 있다면, 젊은이들은 그것을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일로 삼는 프로가 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인 무라카미 류의 저서 《무취미의 권유》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무취미의 권유》는 취미가 없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몰두하고 싶은 일을 깊게 파고들어 업業으로 삼을 만큼 전문가가 되라는 뜻입니다. 취미에 그친다면 시간을 세련되게 보낼 순 있어도 삶을 요동치게 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휴식은 권장하지만, 취미는 권장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취미는 취향으로, 취향은 개인의 업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취향은 그 분야에 대한 애착을 갖게 하고, 고민의 깊이를 더하게 합니다. 영국 왕실을 비롯해 전 세계 셀러브리티들의 주목을 받았던 플라워숍 제인 패커, 라이프 스타일 비즈니스의 상징이 된 마사 스튜어트 리빙 역시 개인의 취향에서 시작된 비즈니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객들이 취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100% 초콜릿 카페와 solco는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확장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가집니다. 고객의 취향을 존중하는 일은 누군가가 개인의 취향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또 하나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