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프스톡 도쿄는 수프 전문점이에요. 1999년에 도쿄 오다이바 지역에 있는 쇼핑몰에서 시작했죠. 그 이후 25여 년간 도쿄, 오사카, 삿포로 등 일본 전역에 63개의 지점으로 확장했어요. 매장이 평균적으로 연간 2.5개 정도씩 늘어난 거니 확장 속도가 빠르다고 하긴 어려워요.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확장의 방향이에요. 63개의 지점은 전부 지하철역과 붙어 있거나 인근에 있거든요. 어느정도냐면, 63개 매장 중 54개, 다시 말해 85% 이상은 일본의 철도 회사중 하나인 JR이 운영하는 지하철 역 내에 있거나 지하철 역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요.
상황적인 이유로 혹은 전략적인 이유로 지하철 역에 입점하지 못한 매장들도 역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자리 잡았어요. 9개 지점 중 역에서 가장 먼 매장도 거리가 400m를 넘지 않아요. 사실상 모든 매장이 지하철 역과 붙어있어요. 도쿄에는 655개의 JR선 역이 있는데 주요 상권을 포함해 약 10%의 역에는 수프스톡 도쿄가 있는 셈이죠.
그렇다면 쇼핑몰에서 시작한 수프 전문점은 어쩌다 혹은 어째서 지하철 역에 자리를 잡게 된 걸까요?
수프스톡 도쿄 미리보기
• #1. 수프스톡 도쿄가 지하철 역으로 들어간 이유
• #2. 수프로 고객의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방법
• #3. 수프 전문점에서 스푼을 개발하게 된 사연
• 보이지 않는 곳에 담긴 진심
1년에 하루만 여는 매장이 있어요. 바로 ‘카레스톡 도쿄’예요. 2016년부터 매년 6월에 하루 동안 60개가 넘는 점포에서 동시에 운영해요. 아무리 팝업 매장의 시대라지만, 1년에 하루만 팔아서 남는 게 있을까요? 물론 카레스톡 도쿄를 단독 브랜드로 보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겠지만, 서브 브랜드로 보면 사업적으로 의미있는 시도가 될 수 있어요.
ⓒSoup Stock Tokyo
카레스톡 도쿄는 ‘수프스톡 도쿄’가 만든 이벤트용 브랜드예요. 수프스톡 도쿄는 1999년에 도쿄에서 시작한 수프 전문점인데요. ‘세상의 온도를 올리자’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화학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은 수프를 팔아요. 지금까지 개발한 수프의 종류를 합하면 200종도 넘을 정도로 다양한 수프를 판매해왔죠.
수프 전문점이긴 하지만 카레도 함께 판매해요. 수프 그 자체에 목적이 있다기 보다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가벼운 한 끼를 제공하는 데 그 목표가 있기 때문이에요. 매장에서는 평균적으로 10개 정도의 수프와 5개 정도의 카레 메뉴를 선보이는데요. 메뉴 구성을 보면 여전히 수프에 무게중심이 있어요.
이런 수프스톡 도쿄가 매년 6월(2020년에는 7월)이 되면, 하루 동안(해에 따라서는 며칠 동안) 돌연 매장 이름을 바꿔요. 카레스톡 도쿄로요. 그리고는 수프 메뉴는 없애고 카레의 종류를 늘려 카레만 판매해요. 그러고는 다음 날부터는 간판을 다시 수프스톡 도쿄로 돌려놓고, 수프 메뉴도 복원시키죠. 대신 이때부터 몇 주간은 카레 종류를 10~20여가지로 늘려서 판매해요.
ⓒSoup Stock Tokyo
또한 이 기간동안 ‘썸씽 옐로(Something yellow)’ 이벤트를 여는데요. 노란색이 카레를 연상시키기 때문이에요. 양말, 손수건, 모자, 옷, 소지품, 꽃 등 뭔가 노란색을 가져오면 음료를 공짜로 제공하거나 경품을 추첨해 주는 식이에요. 여기에다가 2019년부터는 ‘패스포트’ 제도를 도입해 해당 기간동안 출시된 카레를 먹고 패스포트에 도장을 다 찍은 고객에게 오리지널 노란 손수건을 제공하고 있어요.
수프 전문점이니 수프에만 집중해도 될 텐데 수프스톡 도쿄는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요? 고객의 마음 속에, 그리고 일상 속에 녹아들고 싶기 때문이에요. 커리스톡 도쿄는 그 일부일 뿐이죠. 그렇다면 수프스톡 도쿄는 어떻게 애피타이저인 수프를 한 끼의 식사로 만들었을까요?
#1. 수프스톡 도쿄가 지하철 역으로 들어간 이유
수프스톡 도쿄는 1999년에 런칭했어요. 첫 번째 매장은 오다이바 지역의 지하철 역 근처에 비너스 쇼핑몰에 냈어요. 그 이후에 도쿄는 물론이고 오사카, 삿포로 등 일본 전역에 63개의 지점으로 확장했죠. 평균적으로 연간 2.5개 정도씩 늘어난 거니 매장 확장 속도가 빠르다고 하긴 어려워요.
그런데 인상적인 것은 확장의 방향이에요. 63개의 지점은 전부 지하철역과 붙어 있거나 인근에 있거든요. 어느정도냐면, 63개 매장 중 54개, 다시말해 85% 이상은 일본의 철도 회사중 하나인 JR이 운영하는 지하철 역 내에 있거나 지하철 역 출구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요.
나카메구로역 수프스톡 도쿄 지점이에요. 매장 바로 위로 기차가 다니는 철로죠. ⓒ시티호퍼스
상황적인 이유로 혹은 전략적인 이유로 지하철역과 바로 붙어 입점하지 못한 매장들도 역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에 자리 잡았어요. 9개 지점 중 역에서 가장 먼 매장도 거리가 400m를 넘지 않아요. 사실상 63개의 모든 매장이 지하철역과 붙어있는 상황이에요. 도쿄에는 655개의 JR선 역이 있는데 약 10%의 역에는 수프스톡 도쿄가 있는 셈이죠. 신주쿠, 시부야, 긴자, 오모테산도 등 주요 상권을 포함해서요.
ⓒSoup Stock Tokyo
물론 역에 입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보니 경쟁률이 높은데, 그걸 제외한다 하더라도 지하철이라는 특수한 시설과 연관되어 있으니 여러가지 제약 조건이 있죠.
"지하철역에 있는 매장은 임대료도, 공사비도 높아요. 게다가 공사를 할 수 있는 업자도 정해져있고,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대도 한정되어 있죠. 지하철 시설 안정상의 이유로 배관 등을 비효율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경우도 생겨요."
-토야마 마사미치 스마일즈 사장, Bunshun 인터뷰 중
그럼에도 수프스톡 도쿄가 이러한 선택을 한 이유는 분명해요. 확실한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서예요. 우선 지하철 매장은 작은 크기의 매장으로 많은 유동인구에 노출되니 매장 내 고객의 밀도가 높아져요. 특히 수프스톡 도쿄처럼 음식을 새롭게 포지셔닝할 때는 고객의 인식을 바꿔 수요를 일으키기가 쉽지 않은데, 지하철역에 있는 매장이 이런 문제점을 보완해줄 수 있죠.
게다가 지하철이라는 대중교통의 특성상 노출의 강도와 이용의 빈도가 높아요. 고객은 직장이나 집이 바뀌지 않는 이상 같은 노선을 계속적 이용할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서 꾸준하게 수프스톡 도쿄를 이용하는 고정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죠. 물론 고객들이 반복적으로 오는 것은 반길 일이지만, 아무리 가벼운 수프라고 하더라도 매일 같이 수프를 먹는 고객들은 질리지 않을까요?
#2. 수프로 고객의 일상을 특별하게 만드는 방법
수프스톡 도쿄는 지하철 역에 입점하며 자연스럽게 고객들의 일상에 스며들었어요. 그러면서도 특별함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요. 우선 수프 메뉴를 볼까요. 매장마다 조금씩 종류나 숫자를 다를 수 있지만 통상적으로 10개 정도의 수프와 5개 정도의 카레를 판매하고 있어요. 그런데 저번 주에 먹었던 메뉴를 이번 주에 먹을 수 없어요. 매주 메뉴를 바꾸기 때문이에요.
ⓒ시티호퍼스
수프스톡 도쿄에서는 ‘주간 메뉴’를 운영해요.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이번 주에 어느 매장에서 어떠한 수프를 판매하는지 알 수 있죠. 이를테면 3월 마지막 주는 새우 비스크, 발사믹 양파수프, 칠리 콩 수프, 토마토 죽, 고등어 카레, 시금치 카레, 보르시(우크라이나에서 먹는 비트 수프)인데 매장마다 금주의 메뉴가 조금씩 달라요. 매주 메뉴를 변경하므로써 질리지 않게 해요. 지금까지 개발한 수프 종류만 200개가 넘어요.
ⓒSoup Stock Tokyo
수프마다 맛이 제각각인데, 고르기가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아요. 수프별로 가격이 같아, 가격에 대한 고민 없이 맛만 보고 선택하면 돼서죠. 물론 들어가는 재료가 다르니 가격이 다른 게 보통의 경우예요. 하지만 수프스톡 도쿄는 수익성보다는 회전율을 택했어요. 가격에 차등을 둬 선택하는 시간을 길게 할 게 아니라, 가격만큼은 고려 요소에서 빼 좀 더 빠르게 주문할 수 있도록 한 거예요. 매장 체류시간이 20분이라 가정했을 때, 평균 10초씩만 고르는 시간을 줄여도 120명당 1명의 손님을 더 받을 수 있게 돼요. 매출이 1% 가량 늘어나는 셈이죠.
ⓒ시티호퍼스
가격에 차이가 있는 건 2가지. 하나는 수프 그릇 크기에 따라 가격이 달라져요. 또다른 하나가 흥미로운 포인트인데요. 세트로 구성할 때 가격이 달라져요. 그런데 이 세트에는 사이드 메뉴로 밥 또는 빵을 선택할 수가 있어요. 한 끼의 식사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밥을 추가할 수 있게 한 거예요. 밥과 국을 먹는 개념이라 볼 수 있죠. 밥은 고시히카리로 만든 밥과, 참깨의 식감이 수프와 어울리는 것이 특징인 오리지널 밥으로 구성돼 있어요. 밸런스를 고려해 약간의 짠맛으로 해바라기 기름과 올리브기름을 섞어 조리해요.
ⓒSoup Stock Tokyo
수프스톡 도쿄는 주간 메뉴에서 더 나아가 특정 기간에만 먹을 수 있는 한정 메뉴도 선보여요. 계절 한정으로 여름에 먹을 수 있는 ‘콜드 카레’를 개발했어요. 여름에는 차가운 걸 찾게 되니까요. 심지어 겨울에는 1년에 하루만 먹을 수 있는 메뉴도 있어요. 12월 22일 동지를 맞아 수프스톡 도쿄에서는 팥이 들어 있는 ‘동지 죽’을 팔죠. 그리고 매년 1월 7일에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7가지 나물을 넣은 국물인 나나쿠사가유를 제공해요.
여기에다가 앞서 언급했던 카레스톡 도쿄까지 운영하면서 수프스톡 도쿄는 메뉴의 다양한 변주를 통해 고객이 다시 올 수 있게 하고 있어요. 그런데 수프스톡 도쿄는 이정도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봤는지, 고객의 마음에 파고 들기 위한 세심한 배려를 매장 곳곳에 펼쳐내요.
#3. 수프 전문점에서 스푼을 개발하게 된 사연
수프스톡 도쿄 나카메구로역점에 가서 메뉴를 시킨 후 수프를 떠먹기 위해 스푼을 들어보면 미묘한 차이가 감지돼요. 우선 손잡이 부분을 원래 무게보다 가볍게 들리도록 설계했어요. 또한 국물을 떠먹는 부분의 크기와 깊이에도 신경을 썼어요. 적당량이 떠지면서 동시에 입가에 걸리지 않게 디자인한 거예요. 스푼으로 밥을 뜰 때야 밥을 볼록하게 만들어 원하는 만큼 먹을 수 있지만, 수프는 액체라 스푼에 깊이감이 없으면 용량을 조절하기 어렵죠.
ⓒSoup Stock Tokyo
이 스푼은 수프스톡 도쿄에서 직접 개발한 스푼이에요. 니가타 현 쓰바메 산조에서 만들었는데, 에도 시대부터 일본의 금속 가공 산업을 담당했던 곳이에요. 이곳에서 스푼을 밀리미터 단위로 반복해서 수정하고 테스트하면서 장인의 기술로 약 30개의 공정을 통해 스푼을 완성했어요. 왜 이렇게까지 할까 싶지만, 이유는 간단해요. 수프 전문점으로서 누구나 쉽게 수프를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러한 시도에서 수프스톡 도쿄의 지향점을 엿볼 수 있어요. 수프스톡 도쿄의 80%는 여성 고객이에요. 하지만 수프스톡 도쿄는 이들을 타깃 고객으로 삼은 게 아니에요. 또한 이들에게 집중하는 전략을 취하지도 않아요. 수프스톡 도쿄가 추구하는 건 0세~100세까지 모두가 안심하고 즐길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수프’예요. 구호로만 외치는 건 아니에요. 작지만 나름의 실천을 하나씩 해나가고 있죠.
ⓒSoup Stock Tokyo
예를 들어 볼게요. 모든 점포는 아니지만 많은 점포에서 엄마와 함께 먹을 수 있는 무료 이유식을 제공해요. 이유식도 요리라는 접근으로 아이들이 이유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개발한 메뉴예요. 또한 루미네 타치가와점은 씹는 것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수프만을 모아 놓았어요. 이 매장은 예외적으로 주간 메뉴 없이 고정 메뉴로 운영해요. 새로운 맛보다 씹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수프가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씹는 게 더 어려운 고객들을 위해서 으깨먹을 수 있는 조리 도구들을 빌려주기도 해요.
ⓒ시티호퍼스
또한 수프스톡 도쿄 매장에선 집에서도 따뜻한 수프나 카레를 즐길 수 있도록 HMR로 판매하기도 해요. 물론 매출을 늘리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누구나 쉽게 수프로 한끼를 먹을 수 있게 만들려는 노력으로도 볼 수 있어요.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 레시피를 책이나 PDF 등의 형태로 공개하는 걸 보면요. 이처럼 수프스톡 도쿄는 모두를 위한 수프를 만드는 데 진심인 거예요.
보이지 않는 곳에 담긴 진심
수프스톡 도쿄의 공식 홈페이지에 가보면 흥미로운 제목의 콘텐츠를 발견할 수 있어요. 바로 ‘수프스톡 도쿄 즐길거리 100가지‘예요. 이 콘텐츠에서 몰라도 수프를 먹는데 아무 지장 없지만, 알고 먹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내용들을 소개하고 있어요. 그 중에서도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2가지 꼽아볼게요.
앞서 수프스톡 도쿄에서 스푼을 직접 개발했다고 설명했는데요. 스푼 말고도 직접 개발한 것이 또 있어요. 바로 의자와 음악이에요.
수프스톡 도쿄의 의자는 홋카이도의 가구 장인이 제작했어요. 단순히 장인의 실력에 맡긴 게 아니라, 장인에게 교회 의자를 기반으로 고객이 오랫동안 앉을 수 있도록 주문한 거예요. 지하철 역에서 한끼를 짧은 시간동안 가볍게 먹더라도, 그 시간만큼은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게 했죠. 여기에다가 매장에서 흘러나오는 연주는 수프스톡 도쿄이 제작한 오리지널 음악이에요. 아침, 점심, 밤마다 그 시간대에 어울리게 바뀌는데요. 수프스톡 도쿄에서 수프를 먹을 때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는 숨은 공신이죠.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신경을 쓰는 걸 보면, 수프스톡 도쿄의 수프는 애피타이저가 아니라 식사로서의 자격을 가질만 하겠죠?
Reference
• JR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