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저트를 공짜로 대접해, 구경꾼을 구매자로 바꾸는 기술

써니힐즈

2024.01.04

대만에는 국민과자가 있어요. '펑리수'예요. 반죽 안에 파인애플 소를 넣어 네모난 모양으로 구운 과자죠. 대만 여행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대만 여행 다녀오실 때 기념품으로도 많이 사오시는 디저트예요. 국민 과자이다보니 펑리수를 만드는 브랜드가 여러 개 있는데, 이중에서도 인기가 있는 브랜드가 '써니힐즈'예요.


이 써니힐즈 매장에선 다른 매장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어요. 펑리수와 음료를 마시기 위해 계산대에 가서 주문하고 계산을 할 필요가 없어요. 펑리수와 음료를 공짜로 주거든요. 해피 아워처럼 일정 시간만 그러느냐, 그렇지 않아요. 언제 방문하더라도 펑리수와 음료를 무료로 나눠줘요. 일종의 시식 매장인 셈이죠.


시식이라고 해서 펑리수의 일부만 잘라주거나 작은 종이컵에 음료를 주느냐, 그렇지도 않아요. 온전한 펑리수 하나를 우롱차 한 잔과 함께 정성스럽게 내줘요. 시식이니까 서서 먹느냐, 그렇지도 않아요. 모든 손님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심지어 매장도 고급스럽게 꾸며놓았어요. 고급스러운 매장에서 펑리수와 음료를 공짜로 먹을 수 있으니까 손님 입장에서야 당연히 좋죠. 그렇다면 써니힐즈는 어떻게 돈을 버는 걸까요?


써니힐즈 미리보기

 모객의 기본 - 제품을 먼저 경험하게 한다

 제품의 기본 - 재료를 아낌없이 충실하게 쓴다

 거래의 기본 - 상대를 공정하게 대한다

 매장의 기본 - 고객의 시간을 디자인한다




버블티라고 불리는 ‘쩐주나이차(珍珠奶茶)’의 원조가 어딘지 아시나요? 누군가는 버블티를 유명하게 만들었고, 누군가는 더 큰 규모의 프랜차이즈가 되었지만 버블티를 최초로 개발한 브랜드는 대만의 ‘춘수이탕(春水堂)’이에요. 1983년에 문을 연 춘수이탕은 대만 타이중에서 밀크티에 타피오카로 만든 버블을 넣은 버블티를 처음 개발했어요.


춘수이탕의 버블티는 대만의 차 문화에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어요. 달콤하면서도 깊은 풍미의 밀크티에 버블의 쫄깃쫄깃한 식감이 더해져,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대만 전역에서 인기를 끌며 급속도로 국민 음료로 자리 잡았죠. 춘수이탕은 현재 대만 전역에 약 50개, 타이베이에 10개 남짓한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국민 음료의 원조치고는 사세가 극적이지는 않아요. ‘코코(Coco)’, ‘우스란(50嵐)’ 등 유명 버블티 브랜드들이 거리마다 자리하며 타이베이에만 수십 개 매장을 운영하는 것과 다른 행보예요.


여기에는 이유가 있어요. 춘수이탕은 버블티의 원조이기도 하지만 대만의 버블티 브랜드 중 가장 고급 브랜드거든요. 그만큼 품질을 지키려니 공격적으로 확장하지 않는 거죠. 대신 여유롭고 고급스러운 매장은 물론이고,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전문가 과정을 통해 자격을 인정받은 사람만을 채용하여 차의 품격을 높여요.


대만을 대표하는 음료에 버블티가 있다면, 대만을 대표하는 과자에는 펑리수(鳳梨酥)가 있어요. 펑리수는 버터, 달걀 등을 섞어 만든 밀가루 반죽 안에 파인애플 소를 넣어 구운 과자예요. 대만의 펑리수 브랜드에는 쇼우신팡(手信坊), 치아더펑리수(佳德鳳梨酥), 슌청땅까오(順成蛋糕), 썬메리(Sunmerry), 이즈쉬엔(一之軒) 등 유명한 브랜드만 해도 수두룩해요. 브랜드마다 파인애플 소의 구성 요소와 파인애플 함량이 다르고, 반죽에도 차이가 있어 사람들의 선호가 달라요. 어떤 브랜드들은 파인애플 외에도 크랜베리, 계란 노른자 등을 활용해 색다른 맛의 펑리수를 선보이기도 해요.


그중에서도 최고급 펑리수로 인정받는 브랜드는 ‘써니힐즈(SunnyHills)’예요. 타이베이에는 5개 매장이 있는데, 1개의 매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테이크아웃 전용으로 운영 중이에요. 그런데 테이크아웃 전용이 아닌 매장은 오전 10시에 문을 여는데 오픈 시간부터 긴 줄이 늘어서요. 이런 현상은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아요. 



ⓒSunny Hills


이런 써니힐즈의 인기는 써니힐즈의 역사나 규모, 가격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어요. 써니힐즈는 펑리수를 최초로 개발한 곳도 아니고, 가장 규모가 큰 브랜드도 아니에요. 게다가 다른 브랜드들에 비해 많게는 가격이 3배 이상 비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펑리수의 대표 브랜드이자, 펑리수계에서는 국가대표급으로 자리 잡았어요. 이러한 써니힐즈의 인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써니힐즈의 기본기를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어요.



모객의 기본 - 제품을 먼저 경험하게 한다

써니힐즈의 매장은 ‘시식하는 매장’이에요. 시식이라고 해서 대형 마트나 여느 매장처럼 판매하는 제품의 일부를 잘라서 맛보라고 권하는 것이 아니에요. 고객이 매장에 들어서면 앉을 자리를 안내하고, 포장도 벗기지 않은 온전한 펑리수 한 개를 따뜻하게 우린 우롱차 한 잔과 함께 나무 쟁반 위에 서빙해 주거든요. 물론 시식이기 때문에 고객들은 돈을 내지 않아도 되고요.



ⓒ시티호퍼스


고객을 무료로 대접하는 것도 모자라, 머무르는 공간에도 신경을 썼어요. 우선 입장하는 인원수를 제한해 고객들이 쾌적하고 여유롭게 써니힐즈의 펑리수를 맛볼 수 있게 배려해요. 또한, 나무 소재를 중심으로 매장 인테리어를 꾸며 편안한 느낌을 주고요.



ⓒ시티호퍼스


게다가 매장 곳곳에 예술 작품과 분재까지 비치해 도심 속 휴식 공간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요. 제품을 공짜로 나눠주기에 급급한 게 아니라, 돈 주고도 살 수 없을 만한 경험으로 만들어 주는 거예요. 그렇다면 써니힐즈는 어떻게 돈을 벌까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매장에서 공짜 같지 않은 공들인 대접을 받고 나면 빈손으로 나가기 어려워요. 심리학적으로 받은 대로 갚아야 한다는 ‘상호성의 원칙’이 작동하거니와, 입 안을 맴도는 달콤한 펑리수가 머릿속에서도 맴돌기 때문이죠. 매장을 떠나서도 펑리수를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펑리수를 구매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고객의 선택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가는 길에 마련되어 있는 펑리수 매대를 그냥 지나치지 않아요.


구매의 순간 써니힐즈는 또 한 번 지혜를 발휘해요. 펑리수를 10개입, 16개입 등 세트로만 판매하고 낱개로는 팔지 않아 객단가를 높여요. 고객이 10개입 상자를 구매할 경우, 써니힐즈 입장에서는 고객에게 무료로 제공한 펑리수 1개를 포함해 펑리수 11개를 10개 가격에 파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결과적으로 약 10%의 할인을 해주는 셈이죠. 하지만 단순히 가격을 10% 할인해 판매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고객 만족이나 구매 전환 측면에서 더 효과적인 판매 방식이에요.


고객에게 제품을 구매하라고 소리치기보다, 먼저 다가가 제품을 공짜로 나눠주는 건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한 방식이에요. 시식을 위한 매장을 운영할 정도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써니힐즈가 펑리수를 만드는 과정을 살펴보면, 그들의 배짱을 이해할 수 있어요.



제품의 기본 - 재료를 아낌없이 충실하게 쓴다


‘화려하고 복잡한 걸작을 요리할 필요는 없다. 다만 신선한 재료로 좋은 음식을 요리하라.’


‘스타 셰프’, ‘쿡방’의 원조로 불리는 미국의 요리 연구가 줄리아 차일드(Julia Child)가 남긴 명언이에요. 그만큼 음식에 있어서 좋은 재료와 알맞은 요리 방법이 중요하다는 의미예요. 최고의 펑리수라고 평가 받는 써니힐즈 또한 식재료와 레시피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아요. 최고급 재료로 펑리수의 본질을 살린 요리법을 따르자, 최고급 펑리수의 필요조건이 충족되죠.


먼저 펑리수 맛의 핵심 요소인 파인애플 필링은 팔괘산 지역의 파인애플로만 만들어요. 여타 펑리수 가게에서 파인애플보다 저렴한 박이나 동아를 섞어 만드는 것과는 재료에서부터 차이가 있죠. 게다가 써니힐즈의 펑리수는 계절마다 맛이 조금씩 다른데요. 여름에 더 달고, 겨울에 더 신맛이 나는 팔괘산의 파인애플 맛을 펑리수에 고스란히 반영하기 때문이에요. 첨가물로 일정한 맛을 유지하기보다는 자연이 낳은 맛의 차이를 살려 사람들이 진짜 파인애플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계절에 따른 맛의 변화는 써니힐즈가 순수하게 파인애플만을 쓴다는 사실을 방증해요.


‘펑리수’의 ‘펑리(鳳梨)’는 중국어로 ‘파인애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어요. 써니힐즈는 펑리수의 본질에 집중해 브랜드 런칭 이래 파인애플 외에 다른 맛의 펑리수를 취급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2019년부터 파인애플 외의 과일들을 탐구하기 시작했어요. 이름하여 ‘글로벌 과일 프로젝트’. 써니힐즈 월드 프로젝트는 대만뿐만 아니라 해외의 맛 좋은 지역 특산 과일을 알리는 프로젝트예요. 써니힐즈의 디저트를 만드는 기술, 인프라 등을 활용해 조명 받지 못하는 지역 과일들을 발굴하는 거죠.


일본 아오모리현의 ‘루비애플’, 말레이시아의 ‘두리안’ 등이 써니힐즈 월드 프로젝트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어요. 루비애플은 산도와 당도의 밸런스가 좋은 것은 물론, 구운 후에도 섬세한 맛이 유지되는 특성이 있어 펑리수의 필링으로 활용하기도 했어요. 파인애플 필링 대신 루비애플 필링이 들어간 펑리수는 ‘핑궈수(蘋果酥)’라는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어요.


써니힐즈는 과일 필링에 쓰이는 과일뿐만 아니라  필링 외의 부재료도 최고급으로 선별해요. 뉴질랜드의 청정 지역에서 생산한 버터와 일본산 특제 밀가루를 사용해 반죽을 만들거든요. 또한 소비자가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도록 TAP(Traceable Agricultural Products)가 공인한 재료가 아니면 취급하지 않고요. 또한 최고급 재료가 내는 맛의 조화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방부제나 감미료도 첨가하지 않아요.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풍부한 맛의 파인애플 필링과 부드러운 버터 향이 나는 크러스트가 서로 어우러지며 가장 펑리수다운 펑리수가 만들어져요.


그렇다면 다른 브랜드들도 팔괘산에서 재배한 파인애플로만 펑리수의 소를 채울 순 없는 걸까요? 써니힐즈가 원재료를 조달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보면 경쟁 업체들이 따라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어요.



거래의 기본 - 상대를 공정하게 대한다

거래의 기본은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당사자들이 합당한 이익을 얻는 거예요. B2C 거래에서뿐만 아니라 B2B 거래도 마찬가지예요. 판매자는 물건을 팔아 이득을 얻고, 매입자는 물건을 사서 효용을 얻죠. 당연한 듯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기본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공정무역’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고 전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이유예요.


공정무역은 경쟁에서 뒤처진 생산자들과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 공정한 가격과 조건 하에 이루어지는 거래를 의미해요. 약자를 보호하려는 선의를 가지고 있지만, 공정무역 역시 ‘거래’의 일종이기 때문에 판매자와 매입자 모두 이득을 얻어야만 지속 가능해요.


때로는 공정무역을 합당한 대가 없이 무조건 높은 가격에 원재료를 사들이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해요. 하지만 이런 구조는 매입자가 자선 사업가나 비영리 단체가 아닌 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요. 써니힐즈는 공정무역의 취지에 공감하고 공정무역의 본질에서 영감을 받아, 그 원리를 활용하여 또 다른 의미의 공정무역 구조를 만들었어요.


써니힐즈가 파인애플을 조달하는 팔괘산 지역은, 과거 지형과 기후가 파인애플을 생산하기에 적합해 많은 농가들이 파인애플을 재배했던 곳이었어요. 하지만 파인애플이 제 값을 받지 못하자 농가들이 수익성이 높은 생강 등으로 재배하는 종목을 바꾸기 시작했죠.


써니힐즈는 농가들이 다시 파인애플을 재배할 수 있도록 기존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했어요. 써니힐즈가 공정한 가격을 보장하자 자연스레 많은 농가들이 다시 파인애플을 재배했고요. 이렇게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파인애플은 써니힐즈 펑리수의 토대가 되었어요. 파인애플 농가는 합당한 이득을, 써니힐즈는 건강한 파인애플을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는 선순환 구조가 생겨난 거예요.


써니힐즈의 이런 접근은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었어요. 팔괘산 지역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지역 경제를 키우기 위해 서로 도와야 한다는 사회 인식이 퍼지기 시작한 건 덤이에요. 이에 써니힐즈는 또 한 번 화답을 해요. 지역 주민들의 의지에 힘을 보태고, 이런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팔괘산 지역의 써니힐즈 매장 바로 옆에 주민들이 지역 특산물을 팔 수 있는 공간을 선뜻 내어준 거예요.


거래의 방식으로 지속 가능한 공정무역을 실현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을 위한 새로운 공정무역의 장을 마련한 셈이죠. 써니힐즈가 만든 선순환 구조 덕분에 써니힐즈의 펑리수가 더 많이 팔릴수록 써니힐즈의 토대는 더욱 단단해져요.



매장의 기본 - 고객의 시간을 디자인한다

써니힐즈는 대만을 시작으로 싱가포르, 중국, 일본, 홍콩 등에 걸쳐 10여 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에요. 대부분의 매장은 바다, 숲 등의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어요. 어디에서나 써니힐즈의 매장을 방문한 고객들이 써니힐즈 펑리수에 담긴 자연의 기운을 느낄 수 있도록 의도한 거예요. 고객들이 머무르는 공간인 매장은 고객들의 시간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에요.


써니힐즈의 여러 매장 중에서 공간에 대한 써니힐즈의 철학이 여실히 드러나는 곳이 2013년에 오픈한 도쿄 아오야마점이에요. 일본의 국가대표 건축가 구마 겐고가 설계한 이 매장은 일본의 전통 목조 건축 기법인 ‘지고쿠구미’를 활용해 지었어요.


보통의 경우 지고쿠구미는 목재를 2차원으로 교차시킬 때 사용하는 방법이에요. 하지만 구마 겐고는 30도의 각을 세워 3차원으로 연결해 새 둥지 같은 구조체로 만들었죠. 입체적으로 결합된 각재들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오는데, 시간대에 따라 빛이 달라져 매장 내의 분위기도 변화해요. 매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각자가 좋아하는 시간대를 찾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설계한 거예요. 2018년에는 루비사과로 만든 핑궈수의 런칭을 기념해 매장 앞에 사과 조형물을 추가하기도 했죠.



ⓒKengo Kuma & Associates


써니힐즈는 2008년에 경쟁 브랜드 대비 후발 주자로 출발했어요 하지만 제품 경쟁력을 강화하고 매장을 중심으로 전에 없던 고객 경험을 디자인하면서 대만 펑리수의 기준이 되었어요. 써니힐즈처럼 기본기만 충실해도 역사와 전통을 가진 브랜드를 넘어설 수 있어요. 기본기를 닦는 일은 누구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나 잘 해낼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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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써니힐즈 홈페이지

 춘수당 홈페이지

 펑리수

 Sunnyhills - The king of pineapple cakes

 Sunnyhills - Gourmet Taiwanese pineapple cakes

 Spotify's revenues from 2012 to 2018, by seg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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