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잘 배달하기’에 진심인 영국의 한 플랫폼이 있습니다. 더 완벽한 배달을 하기 위해 항공기와 선박에 쓰는 기술을 적용한 바이크까지 제작했죠. 그것도 머나먼 일본까지 날아가서요. 음식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배달 컨테이너도 만들었어요. 식은 음식은 맛이 없잖아요?
그뿐 아니에요. 정확한 배달을 위해 GPS 스타트업과 손잡기도 했어요. 드넓은 공원에서도 위치를 찾기 쉽거든요. 배달 기사들을 위해서도 세심히 신경 씁니다. 보험 등 각종 혜택은 물론, 심지어 정신 건강과 심리 케어까지 해주죠. 수많은 고객들과 만나며 감정 노동으로 스트레스가 쌓일 수 있으니까요.
런던의 고급 레스토랑과 리테일 브랜드 음식을 배달해주는 플랫폼 ‘서퍼 런던’은 배달에 이토록 진심입니다. 대부분 ‘우리가 더 빠르다’고 할 때, ‘우린 다르다’고 하죠. 더 많은 돈을 내고 시켜 먹는 음식이라면 배달 과정까지 남달라야 하니까요.
수많은 경쟁자들과 비슷한 컨셉으로 정면승부를 하기보다, 작을지는 몰라도 남들과는 다르게 틈새시장의 최고가 되겠다는 브랜드. 그리고 그곳에서 만큼은 독보적인 배달 진심러! 서퍼의 분명 다른 배달에 대한 이야기는 창업자의 개인적인 경험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서퍼 런던 미리보기
• 망친 경험에서, 미친 도전으로
• #1. 첨단 기술을 동원한 배달의 혁신
• #2. 주소가 없는 곳에 정확히 배달하는 방법
• #3. 배달 지역을 제한하는 이유
• #4. 식사의 격을 높이는 소통
• 오리지널의 숙명, 카피캣과의 경쟁
망친 경험에서, 미친 도전으로
뉴욕에서 돌아온 2014년의 어느 날이었어요. 갑자기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야 할 상황이 된 피터 조르지우(Peter Georgiou)는, 오래 전에 예약한 유명 일식 레스토랑 ‘노부(Nobu)’에 가지 못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곳의 흑대구 요리를 꼭 먹고 싶었죠.
결국 피터는 테이크아웃 서비스가 없다는 레스토랑과 협상 아닌 협상을 했어요. 바로 ‘택시 배달’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배달되어 온 음식은 엉망이었습니다. 택시 안에서 흔들리며 음식이 튄 것은 물론, 차갑게 식어 있었죠. 음식 배달 서비스가 발달한 뉴욕과 비교된 것은 당연했어요.
이 일을 겪은 후 그는 자신처럼 고급 레스토랑의 음식을 배달로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곧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했죠. 서퍼 런던(SUPPER London, 이하 서퍼)이 탄생한 순간이었어요.
애플리케이션©SUPPER London
웹사이트©SUPPER London
#1. 첨단 기술을 동원한 배달의 혁신
사업 구상을 하고 피터가 파트너 레스토랑 위시 리스트 중 가장 처음 만난 곳은 역시, 아이디어의 시작점이었던 ‘노부’였어요. 반응도 긍정적이었어요. 하지만 배달 서비스가 레스토랑의 기존 가치와 잘 조화될 수 있을지 우려 또한 내비쳤죠. 그 순간 피터는 ‘배달의 퀄리티’, ‘일본’, 그리고 ‘바이크’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떠올렸습니다.
미팅을 하고 딱 1주일 후, 그는 일본으로 날아갔어요. 그리고 8대의 바이크를 구입했죠. 지금도 사용하는 바이크와 같은 모델입니다. 바이크에는 브랜드의 궁극적 지향점인 배달의 퀄리티를 위해 ‘자이로스코프(Gyroscope)’라는 특별한 기술을 적용했어요. 서퍼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아이디어인 커스텀 바이크의 핵심이죠.
자이로스코프는 항공기, 선박 등의 평형 상태 측정 시 사용하는 기구인데요. 음식이 바이크의 기울어짐이나 흔들림, 방지턱이나 웅덩이를 지날 때의 출렁거림 등에도 평형을 유지하며 안전하게 배달되도록 도와주죠. 일반 바이크의 바퀴가 두 개인 것과 달리 세 개인 것도 안정감을 높여주고요. 택시 배달에서 경험했던 문제를 기술로 해결한 거예요.
Gyroscope©gyroscope.com
또한 바이크의 배달 컨테이너에는 온도 유지 시스템을 적용했어요. 고온과 저온 중 필요한 옵션으로 설정 가능하죠. 온도는 음식 컨디션을 유지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니까요. 이처럼 커스텀 바이크는 ‘잘 배달하기’에 대한 의지를 ‘안정’, ‘안전’, ‘온도’ 세 가지 측면에서 실현시킨 첫 번째 솔루션이 되었어요.
커스텀 바이크©SUPPER London
아무리 커스텀 바이크의 기술력이 높다고 해도, 결국 이러한 커스텀 바이크의 가치를 완성시키는 마지막 퍼즐은 바이크를 직접 몰고 다니는 배달 기사들입니다. 서퍼는 안정적인 고용과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잘 배달하기’를 실현하죠.
우선 소속감을 가지는데 도움을 주는 유니폼과 헬멧이 기본으로 제공돼요. 고용한지 3개월이 지나면 연금 시스템도 바로 적용되고요. 배송 중 받는 팁이 온전히 인정되는 것은 물론, 초과 근무 수당과 각종 휴가, 경력 개발 훈련도 지원되죠. 만약 사고가 발생하면 하루 40파운드의 보조금을 지급해 돕기도 해요. 하지만 그 어떤 것보다 세심한 부분은 정신 건강 케어 지원이에요. 파트너사와 고객들을 직접 대면하며 쌓인 스트레스를 관리해주죠. 사람으로 인한 감정 노동의 고충을 모른척하지 않는 거예요.
이처럼 서퍼는 전문적인 기술과 인력 관리의 조화를 중심으로 퀄리티 높은 배달을 완성해 가고 있어요.
배달 기사©SUPPER London
#2. 주소가 없는 곳에 정확히 배달하는 방법
서퍼는 ‘배달의 방법’을 통해 스스로의 차별점을 만들고자 해요. 하지만 ‘빠르고 정확한 배달’ 자체도 놓쳐선 안 될 미덕이죠. 그런데 가끔은 프로 기사조차 주소만으로 목적지를 찾기 어려운 때가 있어요. 내비게이션에서는 분명 도착했다는데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죠. 출입구가 많고 넓은 장소라 고객과의 약속 장소를 못 찾을 때도 있고요. 이럴 경우 브랜드 이미지에 안 좋은 고객 경험을 남겨요. 심지어 기대감 높은 고급 레스토랑 음식을 배달시켰다면 더욱 그렇겠죠.
그래서 서퍼는 2013년에 창업한 영국의 GPS 스타트업 ‘왓3워즈(What3words)’와 협업을 맺었어요. 회사가 개발한 ‘what3words(이하 ‘W3W’)’는 일종의 지리 코드 시스템인데요. 지구상의 모든 위치를 3m×3m로 바둑판처럼 나눈 뒤, 단어 3개를 이용해 고유 코드를 부여하는 방식이죠. 예를 들어 ‘여의도 공원 남문 근처 농구대 옆의 벤치’를 설명한다면, ‘///여의도공원남문.농구대.벤치’와 같이 표기하는 거예요.
W3W시스템©SUPPER London
서퍼는 빠르고 정확한 배달을 위해 W3W 시스템을 적용했어요. 커스텀 바이크에 이은 또 다른 솔루션이죠. W3W는 특히 ‘공원 배달(Park Delivery)’ 서비스에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어요. 현재 런던 내 배달이 가능한 24곳의 공원은 입구도 여러 개고, 면적도 매우 넓은데요. 그렇다 보니 고객과의 약속 장소를 찾기 힘든 경우가 있습니다. 고객 또한 위치를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고요. 이러한 상황에서 고객이 ‘W3W’을 이용하여 위치를 기입하면 도움이 되는 거죠. 잘 배달해온 음식을 정확히 전달하게 해주는 ‘스피드 부스터’이자 ‘배달 안전장치’라 할 수 있어요.
Park Delivery서비스©SUPPER London, W3W
현재 공원 배달 서비스는 딜리버루(Deliveroo), 우버이츠(UberEats), 저스트잇(Just Eat) 같은 여타의 플랫폼에서도 이용은 가능해요. 공원으로 배달 가능한 레스토랑 리스트가 서퍼에 비해 적긴 하지만요. 그들도 광활한 공원에서 고객을 찾아 음식을 전할 때 많은 변수를 감수해야 해요. 불편함은 배달 기사와 고객의 몫으로 남곤 하죠. 그에 비해 서퍼는 W3W와 기술 협업의 형식으로 문제 해결에 적극 맞선 거예요. 이 작지만 큰 적극성이 서퍼의 차별점이자 강점이 됐고요.
#3. 배달 지역을 제한하는 이유
이렇듯 서퍼는 기술 개발과 협업까지 하며 배달 방법과 과정에 공을 들여요. 배달에 이토록 진심인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배달하는 음식이 고급 레스토랑과 리테일 브랜드 중심이기 때문이죠.
현재 파트너 리스트에는 Nobu, China Tang, Roka Aldwych, Park Chinois, Harrods Food Hall, Fortnum & Mason 등 100군데 이상의 하이 엔드 레스토랑과 브랜드들이 포진해 있어요. 그중에는 10곳가량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과 15곳가량의 미쉐린 스타 셰프 레스토랑이 포함되어 있고요. 이러한 고가의 음식은 배달 수준 또한 높아야 한다고 본 거죠. 그래야 특별한 음식의 온전한 경험이 가능하니까요.
SUPPER London의 주요 파트너들©SUPPER London
또한 배달의 방법과 과정에 공을 들였다 하더라도, 물리적으로 거리가 멀면 고급 레스토랑의 음식을 온전하게 배달하는 게 어려워져요. 그래서 서퍼가 소화하는 배달 영역도 다른 배달 브랜드들보다 상대적으로 좁아요. 런던, 그것도 1 zone과 2 zone*의 일부까지만 가능하죠. 이러한 거리 제한은 음식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는데 필수적이에요. 욕심을 부려 멀리 배달하는 것은 결국 배달은 물론 음식의 퀄리티까지 떨어뜨리니까요.
* 런던은 시내 중앙에서부터 바깥으로 반경을 그리며 1 ~ 6 zone까지 지역이 나뉘어짐
한편 고급 레스토랑의 음식을 건강 상태, 선호, 신념 등에 맞춰 경험할 수 있도록 서퍼는 서비스 카테고리와 정보 제공도 세심하게 신경 씁니다. 퀄리티 높은 이미지와 현재의 주문 가능성, 사용된 식재료, 알레르기 정보 등을 상세히 제공하죠. 특히 알레르기 정보는 체질적으로 동양인보다 많은 알레르기를 가진 서양인들에게 매우 중요해요. 일상화된 채식 문화,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의 도시인 것도 그 이유고요.
SUPPER London의 메뉴 정보©SUPPER London
마지막으로 코로나19 팬데믹 또한 수준 높은 배달에 계속 공을 들이게 하는 이유가 되었어요. 코로나로 인해 런던 시민들은 락다운이라는 비현실적 경험까지 했어요. 그 후에도 외식은 고민이 따르는 일이 되었고요. 그렇다 보니 사람들은 서퍼가 몇 년 전부터 이미 제공해온 서비스를 다시 보기 시작했어요. 평소라면 햄버거 몇 번 사 먹을 돈을 고급스러운 한 끼에 투자하기도 하죠. 고급 음식이 선사하는 비일상적인 특별함은 스트레스를 푸는데도 어느정도 도움이 되니까요. 그렇게 서퍼가 쌓아온 ‘잘 배달하기’에 대한 노력은 사업의 성장으로 이어지고 있죠.
#4. 식사의 격을 높이는 소통
서퍼는 고객들이 최상의 음식과 배달을 경험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콘텐츠를 활용해요. 그 중심에는 ‘서퍼 블로그(SUPPER BLOG)’가 있어요. 주로 새 소식 전달과 커뮤니케이션의 용도로 활용되고요. 그중 독특한 방식의 콘텐츠 ‘서퍼 이스케이프(SUPPER ESCAPES)’ 시리즈를 살펴볼까요?
SUPPER BLOG©SUPPER London
이 시리즈는 서퍼에서 판매 중인 세계 음식들을 ‘버추얼 투어(Virtual Tour)’ 컨셉으로 다루고 있는데요. 예를 들어 ‘SUPPER ESCAPES to Spain’이라는 포스트를 클릭하면 스페인 요리에 대한 내용이 소개돼요. 그리고 포스트에서 거론된 메뉴 명칭을 클릭하면 해당 음식 주문 페이지로 연결되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링크 기반의 버추얼 투어로 컨셉화하고 있어요. 노골적이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 매우 직접적인 접근이죠.
SUPPER ESCAPES©SUPPER London
ESCAPES 시리즈가 더 의미 있는 이유는 음식에 스토리로 맥락과 의미를 부여한다는 점이에요. 같은 음식도 관련된 사연이나 이야기가 있으면 더 맛있게 느껴지곤 하죠. 기억과 경험은 그 음식이나 음식점을 다시 찾게도 하고요. 그저 음식의 맛과 정보만 알 때와는 차원 다른 미식 경험을 하게 되는 거예요.
서퍼 블로그가 정보를 제공하면서 고객과 소통한다면, ‘Magic Breakfast’는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고객과 소통을 추구해요. 앱이나 웹사이트를 통해 메뉴를 고르고 주문 버튼을 누르면, 결제 화면에 앞서 기부 참여 여부를 묻는 팝업이 먼저 뜨는데요. 바로 자선 기금 단체인 Magic Breakfast를 통해 밥을 먹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기부 프로그램이에요. ‘Two / Five / Ten Pound Donation’이라는 세 가지 옵션이 있는데, 기부 시 각각 3명, 9명, 18명의 어린이에게 아침 식사를 제공할 수 있어요. 그중 한 가지를 선택하여 결제할 때 추가 비용으로 내면 돼요.
어린이 아침식사 기부 콘텐츠©SUPPER London, Magic Breakfast
이 아이디어는 플랫폼 이용 고객들에게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느낌과 경험을 제공해요. 서퍼와 고객 모두가 선하고 긍정적인 경험을 하며 브랜드 이미지도 상승되죠. 또한 고객으로 하여금 마치 퀄리티 좋은 서비스에 대해 팁을 선물하는 느낌도 들게 해 줘요. 요란하지 않되 격조 있죠. 수준 높은 음식과 배달의 방법을 핵심 속성으로 하는 브랜드에 잘 어울리는 아이디어예요.
오리지널의 숙명, 카피캣과의 경쟁
서퍼는 2015년에 런칭한 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며, 니치 마켓의 선두자리를 지켜왔어요.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20년부터는 오히려 더 큰 성장을 이뤘죠. 그 해 11월엔 전년 대비 무려 1200% 정도, 2021년에는 2015년 런칭 시점보다 4배가량 성장한 것으로 파악됐으니까요. 하지만 이러한 성장은 ‘yolk delivery’와 같은 후발주자의 출현 또한 야기시켰어요. 소위 ‘장사가 된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죠.
yolk delivery 애플리케이션 ©yolk delivery
‘기술을 기반으로 한 런던의 핫한 레스토랑 음식 배달’을 표방하는 이 브랜드는 2021년에 런칭했어요. 많은 면에서 서퍼와 유사하죠. 배달 지역도 런던 중심가인 Berkeley Square에서부터 반경 5마일로, 상당히 겹쳐요. 특히 서퍼의 커스텀 바이크에 적용된 온도 유지 기능 또한 똑같이 적용했죠.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바이크 외에도 차량 배달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과 온도 유지 기능에 최고 온도 60도, 최저 온도 15도라는 구체적인 기준을 적용한 거예요.
물론 아직은 상대적 존재감이 크지 않아요. 곳곳에서 관리가 필요한 부분도 보이고요. 하지만 서퍼의 차별점이자 강점인 기술력과 컨셉이 유사한 플랫폼이 등장했다는 것은 서퍼에게 잠재적인 위협이 될 수 있어요. 이밖에도 Deliveroo와 같이 타깃층과 컨셉이 다른 배달 플랫폼들도 하이 엔드 레스토랑들을 파트너로 늘려가는 추세예요. 파트너로 섭외만 된다면 기존 시스템을 활용하여 해당 섹션을 추가하는 식으로 충분히 확장 가능하니까요.
yolk delivey 배달 기사 및 차량©yolk delivery
시장 환경도 변하고 경쟁자도 늘어난 지금. 서퍼는 시즌 2를 어떻게 펼쳐나갈까요? 니치 마켓의 선구자가 항상 선두주자를 유지하란 법은 없는데, 이 변곡점에서 서퍼는 자이로스코프를 단 것처럼 흔들림없이 니치 마켓의 선두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요? 서퍼가 펼쳐나갈 배달의 여정이 궁금해집니다.
References
• Ex-trader launches Michelin star take-out service, Kalyeena Makortoff, CNBC
• The High-End Food Delivery Service That Has Increased Its Business By 1,200 Percent, Bridget Arsenault, Forbes
• Supper London: The trader-turned-food entrepreneur delivering takeaways to rock stars and royalty, Lucy Tobin, Evening Stand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