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의 어매니티에도 변화가 일고 있어요.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유명 글로벌 브랜드의 제품들을 욕실 어매니티로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럭셔리한 경험을 내세우면서요. 그런데 최근에는 유명한 브랜드보다 그 여행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로컬 브랜드들이 어매니티로 제공되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죠.
타이베이의 호텔들도 예외가 아니예요. 특히 트렌디한 부티크 호텔들을 중심으로 로컬 퍼스널 케어 브랜드를 어매니티로 선보여요. 그 중에는 몇 가지 눈에 띄는 브랜드들이 있어요. 전통 판화 기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패키지를 디자인한 ‘차쯔탕’, 대만산 생강을 퍼스널 케어 제품의 원료로 재해석한 ‘장신비신’, 70년 역사의 비누를 리브랜딩한 ‘다춘 솝’이에요.
이 브랜드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모두 자연친화적이면서, 동시에 지역적, 문화적 맥락을 브랜드 정체성에 녹여내고 있다는 점이에요. 덕분에 국가대표급 브랜드로 포지셔닝할 수 있었죠. 대만의 로컬을 담고 있는 뷰티 브랜드들을 하나씩 알아볼까요?
차쯔탕 • 장신비신 • 다춘 솝 미리보기
• #1. 동백유도 힙하게 만드는 패키지 디자인의 힘 - 차쯔탕
• #2. 심신을 따뜻하게 만드는 ‘생강’의 재발견 - 장신비신
• #3. 녹아 사라지는 비누에도 디자인이 필요한 이유 - 다춘 솝
• 로컬을 품은 브랜드의 글로벌한 쓰임
‘동남아 기후에 살면서 중국어를 쓰는 일본인’이라는 말이 있어요. 대만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에요. 언어는 중국어를 사용하지만 일본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아열대 기후를 가진 섬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죠. 그만큼 대만은 복합적인 문화가 어우러진 나라예요.
기후를 좀 더 자세히 볼까요? 대만은 땅이 세로로 길기 때문에 북부와 남부가 다른 기후에 속해요. 북부는 온난 습윤하고, 남부는 열대 사바나 또는 열대 몬순 기후에 속해요. 기후가 따뜻한 만큼 풍토가 비옥하고, 여러 기후에 걸쳐 있는 만큼 지역에 따라 자연환경이 다양하죠. 각종 과일, 식물 등도 풍부하고요.
대만의 이러한 자연환경은 농업뿐만 아니라 자연에서 난 재료를 원료로 하는 산업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그 중 하나가 뷰티, 특히 원료와 효능이 강조되는 퍼스널 케어(Personal care) 산업이에요.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가 풍부하다보니, 그만큼 유효 성분을 가진 원료들도 많고 연구가 활발히 진행된 덕분이죠.
그런데 로컬, 자연 등의 키워드를 가지고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에요. 자칫하면 당연해 보이거나 고루해 보일 수 있거든요. 그럼에도 대만의 자연에서 조달한 재료에서 브랜드의 정체성을 찾고, 제품력을 선보이며 오래 가는 퍼스널 케어 브랜드가 된 곳들이 있어요. 자연의 은혜를 이어받아 지혜롭게 사업을 성장시킨 퍼스널 케어 브랜드 3곳을 소개할게요.
#1. 동백유도 힙하게 만드는 패키지 디자인의 힘 - 차쯔탕
타이베이의 ‘융캉제(永康街)’는 타이베이에서 가장 감도 높은 카페 거리, 가장 대표적인 맛집 거리 중 하나로 손꼽혀요. 그런데 융캉제에서 먹고 마시기만 하고 돌아온다면 아쉬울 거예요. 융캉제에는 먹거리 못지 않게 바를 거리, 즐길 거리들로 가득하거든요. 그 중 하나가 ‘차쯔탕(茶籽堂, Cha Tzu Tang)’의 브랜드 컨셉 스토어예요.
ⓒ시티호퍼스
차쯔탕은 2004년부터 대만산 동백나무 씨앗을 주재료로 퍼스널 케어 제품을 만들어 온 브랜드예요. 자연의 순수함을 제품에 담으면서 동시에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어요. 이런 컨셉은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데, 차쯔탕은 제품과 디자인을 통해 컨셉을 고객에게 구체적으로 전달해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판매하는 제품들은 식용 오일, 헤어, 바디, 홈, 세레모니 등 5가지 카테고리예요. 인간의 삶에 필수적이거나 풍요롭게 만드는 제품군으로, ‘휴머니즘’에 기반해 카테고리를 구성한 거죠. 차쯔탕의 모든 제품에는 동백유가 공통적으로 들어가고 효능에 따라 수련, 삼나무잎, 오이, 연잎 등의 부재료를 블렌딩해요. 동백나무뿐만 아니라 모든 재료들을 대만 각지에서 조달하고요. 좋은 품질의 대만산 농산물을 활용해 제품력을 높이는 동시에, 대만의 농업을 살리려는 목적을 갖고 있죠.
먹는 동백유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차쯔탕은 자연의 힘으로 퍼스널 케어 제품들을 만드는 만큼, 자연과 사람 사이의 조화를 패키지 디자인에 반영해요. 그래서 대만의 젊은 판화가 ‘무란(沐冉)’과 함께 요즘 세대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동백나무를 패키지의 모티브로 삼았어요. 그리고 패키지 디자인의 전반적인 톤앤매너는 전통적인 흑백 판화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죠. 판화 특유의 질감으로 무성한 동백나무를 표현했는데, 동백나무 사이로 사슴, 호랑이, 두루미, 까치가 등장해요. 중화권에서 장수, 행복, 번영, 축복을 가져다 준다고 여기는 4가지 동물을 자연과 사람을 연결하는 소재로 활용한 거예요.
ⓒ茶籽堂
모던한 감각으로 재해석한 전통적인 모티브는 차쯔탕만의 개성이 됐어요. 덕분에 대만의 많은 호텔에서 차쯔탕 제품을 어메니티로 쓰기도 하고, 중화권에서 가장 오래된 영화제인 '금마장(金馬奬)'에서는 차쯔탕 제품 세트를 공식 선물로 선정하기도 했어요. 지역적 정체성을 세련된 감각으로 표현하고 싶은 파트너들이 차쯔탕과 함께 하고 있죠.
#2. 심신을 따뜻하게 만드는 ‘생강’의 재발견 - 장신비신
차쯔탕 컨셉 스토어에서 나와 융캉제를 따라 걷다 보면 약 200m 거리에 또 하나의 퍼스널 케어 브랜드 매장이 눈에 띄어요. 밝은 조명과 나무 소재가 어우러진 매장은 제품을 직접 테스트해 보는 손님들로 북적이죠. 유난히 따뜻하고 포근한 무드 덕분에 주위 길거리마저 환해지는 듯해요. 이 매장의 이름은 ‘장신비신(薑心比心)’으로, ‘생강’을 원료로 퍼스널 케어 제품을 만들어요.
ⓒ薑心比心
‘생강으로 퍼스널 케어 제품을?’이란 의문이 드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워요. 생강은 알싸하고 매운 맛을 내는 식재료니까요. 요리뿐만 아니라 차, 빵, 과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죠. 또한 생강은 감기와 피로 회복에 효능이 있어 약재처럼 쓰이기도 해요. 장신비신은 생강의 맛이 아니라 생강의 효능에 착안, 생강을 퍼스널 케어 제품의 원료로 재해석했어요. 매장의 따뜻한 분위기는 몸을 따뜻하게 하는 생강의 효능을 반영한 연출이기도 하고요.
ⓒ시티호퍼스
제품군도 다양해요. 헤어케어, 바디케어, 페이셜케어 등 신체를 씻고 바르는 데 쓰는 제품들 뿐만 아니라 치약, 입욕제, 에센셜 오일, 디퓨저, 세제 등 웬만한 퍼스널 케어 제품군들은 다 준비되어 있어요. 제품을 개발할 때에는 생강 향을 그대로 살리기도 하지만, 귤, 라벤더, 자스민 등 사람들에게 익숙한 향을 배합해 낯선 생강 향을 중화하기도 해요. 모든 일상을 커버하는 방대한 제품군과 사람들에게 익숙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이 더해져 생강의 에너지가 일상과 더 가까워지죠.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그런데 장신비신은 어쩌다 생강에 주목하게 되었을까요? 장신비신의 탄생 스토리는 브랜드의 컨셉에 진정성을 실어줘요. 장신비신은 창업자인 주지아린(朱嘉琳)이 우연히 생강의 효능을 발견하면서 시작됐어요. 그녀는 유통기한이 지난 생강즙이 아까워 욕조에 넣고 목욕을 했는데, 피로가 눈에 띄게 사라지는 경험을 했어요. 퍼스널 케어 제품의 원료로서 생강의 가능성을 발견한 거죠.
주지아린은 생강의 효능을 주위에 알리고 연구하던 중, 대만 타이동의 생강 농가들을 알게 됐어요. 타이동의 생강 농가들은 고품질의 생강을 재배하고 있었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어요. 당시만 해도 생강이 식재료로만 사용되어 그 수요가 점점 줄어들었거든요. 주지아린은 타이동의 생강 농가들과 손을 잡고 식료품이 아닌 퍼스널 케어 원료로서 생강을 개발하기 시작했어요. 힌트는 우연히 얻었지만, 새로이 찾은 생강의 쓸모는 우연이 아니었어요.
장신비신의 제품을 만드는 데 쓰이는 생강은 해발 800m에서 유기농법으로 재배돼요. 더불어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한 번 재배한 생강 밭은 3년의 휴지기를 두죠. 자연에서 난 생강이 브랜드의 근간이기에, 자연을 지키는 것 또한 장신비신의 몫인 거예요.
ⓒ시티호퍼스
장신비신이라는 이름에도 농부와 자연을 배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마음에서 마음으로’라는 뜻을 가진 ‘장신비신(將心比心)'을 응용한 이름이거든요. 2001년에 처음 생강의 효능을 경험한 이후 지금까지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장신비신이 전하는 생강의 온기는 여전히 따뜻해요.
ⓒ시티호퍼스
#3. 녹아 사라지는 비누에도 디자인이 필요한 이유 - 다춘 솝
이번에는 융캉제를 떠나 다다오청(大稻珵)의 디화제(迪化街)로 가볼게요. 다다오청은 19세기 타이베이의 주요 무역항으로,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래된 상점가 중 하나예요. 그 중 디화제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메인 거리고요. 디화제를 따라 긴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데요. 이 곳에는 약재상, 차 도매상 등 몇 세대를 걸쳐 영업해 온 가게들과 문을 연지 몇 년 되지 않은 젊은 가게들이 한 데 어우러져 있어요. 그야말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에요.
디화제의 오래된 가게 중 하나는 2022년에 70주년을 맞이한 비누 가게, ‘다춘 솝(大春煉皂, Dachun Soap)’이에요. 70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대만이 1912년에 출범한 국가임을 감안하면 국가 탄생 직후에 생겨난 가게임을 알 수 있어요. 심지어 다춘 솝의 전신인 ‘다춘시지안(大春石鹼)’은 1923년부터 디화제에서 사업을 시작했어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현재 다춘 솝은 창업자의 3대손, ‘리궈전(李國禎)’, ‘리옌후이(李妍慧)’, ‘리궈룽(李國榮)’ 삼남매가 운영하고 있어요. 이들은 다춘 솝 브랜드를 모던한 감각으로 이끌면서 동시에 선대의 철학을 존중해요. 다춘 솝의 창업자인 ‘리수이투(李水土)’는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 가족이 안심하고 쓸 수 있는 비누를 만들고자 했어요. 다춘 솝은 창업자의 뜻을 이어받아 여전히 환경이나 사람에 해로운 재료는 사용하지 않아요. 덕분에 다춘 솝의 비누를 사용하고 난 비눗물은 생분해되어 강물에 흡수되죠.
그렇다면 다춘 솝에는 어떤 비누들이 있을까요? 다춘 솝의 비누는 크게 2가지 기준으로 나눌 수 있어요. 하나는 페이스, 바디, 헤어, 세탁 등 용도에 따라 나뉘고, 또 하나는 건성, 민감성, 중성, 지성 등 피부 타입에 따라 구분돼요. 각각의 효능은 자연에서 조달한 쌀, 우롱차, 숯 등의 재료로 구현하고 있고요. 시간과 지혜를 축적한 제품력을 바탕으로 자연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비누를 만들고 있는 거예요.
숯(좌)과 참깨(우)로 만든 머리카락 전용 비누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동시에 다춘 솝은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디자인으로 헤리티지를 지키면서 지금의 시대와 호흡해요. 각 비누의 재료, 타이베의 옛 풍경, 전통 패턴 등을 모던한 감각으로 디자인해 패키지를 구성했죠. 녹아 사라질 비누임에도 패키지와 비누의 디자인이 세련되고 정교해요.
빨래 비누 ⓒ시티호퍼스
여기에는 이유가 있어요. 다춘 솝의 매장이 위치한 다다오청은 타이베이의 관광 명소 중 하나예요. 다춘 솝은 이 곳을 찾는 여행자들이 필수적으로 기념품을 사간다는 사실에 착안, ‘선물’을 전체 디자인 컨셉의 출발점으로 삼았어요. 다춘 솝을 매개체로 다다오청의 역사와 문화가 전 세계에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거예요. 덕분에 다춘 솝의 비누는 소모품 혹은 생필품 이상의 가치를 가진 비누로 자리매김했어요.
ⓒ大春煉皂
다춘 솝은 패키지 디자인뿐만 아니라 매장 디자인으로도 브랜드 컨셉을 전달해요. 2021년 말에 리뉴얼한 다다오청 매장은 ‘포레스트 - 도시가 숲일 때(FoRest 森跡 — 當城市是一座森林)’라는 컨셉을 갖고 있어요. 회색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자유, 호흡, 희망을 찾을 수 있는다는 의미예요. 곳곳에 놓인 녹색 식물들을 보고 자연 재료들로 만든 다춘 솝의 비누들을 체험하면서 힐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로컬을 품은 브랜드의 글로벌한 쓰임
차쯔탕, 장신비신, 다춘 솝의 매장에는 공통점이 있어요. 플래그십 매장이 타이베이의 내로라하는 번화가이자 관광지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에요. 물론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을 선택한 당연한 이치인 것 같지만, 그럴 만한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대만 혹은 타이베이의 문화적, 지역적 정체성이 브랜드에 녹아 들자 대만을 찾은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좋아요. 현지인들에게는 익숙해도 외국인의 눈에는 이국적이거든요. 타이베이 여행을 추억할 만한 브랜드로도 손색이 없고요. 관광 명소에 매장을 낼 만 하죠.
여행객들을 타깃하기 좋은 포지셔닝이 되자 여행 업계의 파트너들과도 협업이 쉬워져요. 대만에서 내로라하는 호텔의 어매니티로 쓰이거나 관광객을 타깃한 면세점에 입점하기도 하죠. 특히 차쯔탕과 다춘 솝은 디자인에 대만의 문화와 역사를 반영하고 있기에 해외 여행객들이 출국하는 공항 게이트에까지 전시되어 있어요. 마치 자신들과 함께 타이베이 여행을 추억하라고 배웅해주는 것처럼요.
로얄 호텔 그룹 어매니티 ⓒChaTzuTang
Reference
• 70 年歷史大稻埕製皂廠微笑品牌「大春煉皂」翻轉!全新空間以「FoRest 森跡—當城市是一座森林」為主題再出發, Da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