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생활하는 인간, ‘호모 세덴스’를 위한 워크웨어

테아토라

2023.07.20

‘호모 세덴스 (Homo Sedens)’


앉아서 생활하는 인간이라는 뜻이에요. 현대인들을 지칭하는 용어죠. 선사시대부터 이어져온 진화 과정과는 상반되게 점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어요. 의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점점 더 길어지고 있기 때문에 생긴 말이에요.


실제로 2022년 북미 기준으로 20세에서 75세 연령 성인들은 하루 평균 9.5시간을 앉아서 생활해요. 하루의 3분의 1 이상을 앉아서 보내는 셈이죠. 심지어 성인 4명 중 1명은 하루에 12시간이 넘는 시간을 앉아있을 정도예요. 이정도면 자는 시간보다 앉아있는 시간이 더 긴 셈이에요.


워크웨어 브랜드 ‘테아토라’의 디렉터 카미데 다이스케도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 생활하는 호모 세덴스 중 한 명이었어요. 그래서 카미데는 ‘앉아있는 상태’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현대인들을 위한 워크웨어라면 앉아있는 상태에 최적화되어야 한다고 판단했죠. 사무실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옷을 입고 있는 시간이 제일 길테니까요.


‘키보드 셔츠’, ‘워크 체어 팬츠’, ‘디바이스 코트’ 등 테아토라에서 출시한 제품들은 이름부터 앉아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옷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이름은 시작일 뿐, 디테일의 레벨이 감탄을 자아내요. 차마 인지하지 못했던 불편함까지 고려해 옷을 디자인했어요. 책상에 앉아 일하는 현대인이라면 테아토라에 대한 구매욕을 참기 힘들걸요?


테아토라 미리보기

• 현대의 새로운 인류, 좌식 라이프스타일의 호모 세덴스

• 호모 세덴스를 위한 새로운 워크웨어, 테아토라

• 기본템에 담긴 기능의 미학

• 온라인 스토어를 불친절하게 운영하는 이유

• 궁극의 워크웨어를 꿈꾸다




옷 좀 입는다 하는 여성분들 사이에서 한 가지 아이템이 유행했어요. 바로 디키즈 바지예요. 이 바지는 누구나 봤을 법한 평범한 바지예요. 하지만 셀럽들 사이에서 바지의 허리 부분을 뒤집어 입는 로우라이즈 스타일로 입기 시작하면서 한때 거리에서도 심심찮게 이런 스타일을 볼 수 있었죠. 사실 디키즈라는 브랜드는 스트릿 패션 씬(Scene)에서 핫한 브랜드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거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위한 옷을 만드는 ‘워크웨어’ 브랜드로 시작했죠.



디키즈의 874 워크팬츠를 로우라이즈로 연출 ©Dickies


‘워크웨어’. 말 그대로 일할 때 입는 옷이에요. 주로 블루 칼라 노동자들이 입죠. 거친 환경에서 오래 입을 수 있도록 오염에 강하고 질긴 소재로 옷을 만들면서도 움직임이 편하게 디자인했으니까요. 목적이 뚜렷한 옷이지만 요즘은 작업복을 넘어서 디키즈처럼 패셔너블한 옷으로 찾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어요.


이처럼 워크웨어가 패션의 영역에 들어오는 데에는 ‘칼하트’가 큰 역할을 했어요. 국내에서도 유명한 칼하트는 1889년부터 무려 14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워크웨어를 만들고 있는 미국 브랜드예요. 철도 노동자들을 위해 하의와 상의가 붙어있는 오버롤을 만들면서 비즈니스를 시작했죠. 그러고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당시 미군에 군복을 납품하면서 몸집을 불렸어요. 


이후 초어 코트, 액티브 자켓, 디트로이트 자켓 같은 다양한 레전드 제품들을 선보였어요. 그러면서 워크웨어계의 대장으로 자리매김했죠. 질긴 립 원단을 사용하고 짧은 자켓 기장으로 움직임을 편안하게 하며, 공구나 도구들을 잘 넣어다닐 수 있는 디테일한 바지 포켓으로 노동자들에게 호평을 얻었거든요.



칼하트의 시그니처 디트로이트 자켓과 워크 팬츠. 자켓은 편한 움직임을 위해 일자로 떨어진 핏과 허리춤에서 끝나는 짧은 기장이 포인트. 워크 팬츠는 다양한 공구를 넣거나 걸어둘 수 있는 디테일로 인기를 끌었다. ©Carhartt


히트 제품을 연달아 낸 후 칼하트는 고객군을 넓히기 위해 힙합 뮤지션들과 손을 잡았어요. 쿨리오, 데 라 소울 등이 속한 힙합 그룹 토미보이레코즈가 칼하트의 워크웨어를 일상에서도 입기 시작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죠. 또한 투팍, 칸예 같은 레전드 래퍼들도 칼하트의 옷을 입었고, 워크웨어 특유의 넉넉한 핏과 힙합 뮤지션들의 프리스타일의 조화는 소울풀한 마케팅이 됐어요.



칼하트 데님 자켓을 입고 있는 투팍과 칼하트 더블니 워크 팬츠를 입은 칸예 ©Pinterest


칼하트가 점점 유명해지자 유럽에서도 반응이 왔어요. 스위스에서 의류 사업을 하던 에드윈 파에는 워크웨어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그는 칼하트를 눈여겨보다 칼하트가 100주년이 되던 해, 미국으로 건너가 칼하트 대표인 마크 발라데를 찾아갔죠. 유럽 판권을 따기 위해서요. 그의 팬심을 알아본 대표와의 대화는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결국 에드윈은 칼하트 유럽 독점 판권을 확보했어요. 


에드윈은 부인이자 패션 디자이너인 살로메와 함께 본격적으로 칼하트 유럽 진출을 진행했어요. 두 사람은 유럽에서 칼하트 제품을 단순히 유통하는 것보다 더 큰 그림을 그렸죠. 워크웨어를 더 패셔너블하게 만들고 싶었던 거예요. 그래서 에드윈은 ‘칼하트 유럽’이 아니라 ‘칼하트 Work In Progress’라는 독자적인 이름으로 비즈니스를 펼쳐갔어요.



칼하트 WIP를 세운 에드윈 파에와 살로메 ©Sleek Magazine


칼하트 WIP는 기존 칼하트와 사뭇 다른 방식으로 워크웨어를 디자인했어요. 다양한 색상을 사용한 컬러플레이를 시작으로 펑퍼짐한 실루엣을 스트릿 패션 트렌드에 맞게 슬림하면서도 유려하게 바꿨죠. 또한 여성 라인업도 만들었어요. 이후에 BMX와 스케이트보드 팁까지 만들면서 칼하트 WIP는 스트릿 패션 씬에서 한 가닥하는 워크웨어 브랜드로 거듭났어요. 요즘은 오리지널 칼하트보다 칼하트 WIP가 더 유명할 정도예요.



기존 OG 칼하트보다 더 화려한 패턴과 색상을 사용한 WIP라인. 타 브랜드와의 콜라보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Carhartt


칼하트 WIP 덕분에 워크웨어는 유니크한 패션 장르가 됐어요. 특유의 스타일과 기능성으로 사람들에게 매력을 어필했고 지금은 단단한 매니아층이 생겼죠. 그러다보니 새로운 브랜드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그중 하나가 ‘테아토라’예요. 테아토라는 워크웨어를 사무실까지 끌고 들어왔어요. 워크웨어는 튼튼하고 무거운 원단을 사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매일같이 사무실에서 고군분투하는 직장인들을 위한 워크웨어를 탄생시켰어요. 그렇다면 테아토라의 워크웨어는 무엇이 어떻게 다르고 왜 매력적인 걸까요?



현대의 새로운 인류, 좌식 라이프스타일의 호모 세덴스

1976년, 현대인들을 지칭하는 새로운 용어가 발표됐어요. 덴마크에서 열린 의료학회에서 오 크레스텐 만델은 오늘날 인류가 진화를 역행하고 있다고 봤어요. 선사시대부터 이어져온 진화 과정과는 상반되게 점점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그러고는 ‘호모 세덴스 (Homo Sedens)’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죠. 호모 세덴스는 앉아서 생활하는 인간이라는 뜻이에요. 현대인들이 의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고 점점 더 길어지고 있기 때문에 생긴 말이죠.


실제로 현대인들은 과거의 인류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긴 시간을 앉아서 생활해요. 문명이 제대로 자리잡기 이전의 인류는 수렵과 채집으로 하루 평균 15km, 길게는 30km 까지도 뛰어다니면서 생활했어요. 하지만 정착생활이 시작되고 여러 차례의 과학 혁명으로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인간은 더 이상 산과 들을 뛰어다지 않게 됐죠. 대신 일을 한다는 이유로 사무실에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점차 길어지고 있어요.


2022년 북미 기준으로 20세에서 75세 연령 성인들은 하루 평균 9.5시간을 앉아서 생활해요. 하루의 3분의 1 이상을 앉아서 보내는 셈이죠. 심지어 성인 4명 중 1명은 하루에 12시간이 넘는 시간을 앉아있을 정도예요. 이정도면 자는 시간보다 앉아있는 시간이 더 긴 셈이에요.


워크웨어 브랜드 ‘테아토라’의 디렉터 카미데 다이스케도 오랜 시간 의자에 앉아 생활하는 호모 세덴스 중 한 명이었어요. 그래서 카미데는 ‘앉아있는 상태’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현대인들을 위한 워크웨어라면 블루 컬러보다 화이트 컬러에 최적화된 패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죠. 사무실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옷을 입고 있는 시간이 제일 길테니까요.



호모 세덴스를 위한 새로운 워크웨어, 테아토라

트로브(Trove)’라는 스트릿 패션 브랜드의 디자이너로 일하던 카미데는 자신의 철학을 담은 브랜드를 만들고자 퇴사를 결심했어요. 그는 기능성을 가진 의류를 만들고 싶었는데요. 시장에 나와있는 기능성 의류는 등산, 러닝처럼 운동이나 아웃도어 취미를 위한 제품들이었죠. 카미데는 주말에 가끔 입는 기능성 의류보다는 아직 시장에 없는, 일상을 쾌적하게 해주는 기능성 의류를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그의 설명을 들어볼게요. 



테아토라 디렉터 카미데 다이스케 ©Evermade


“저는 등산이나 다른 스포츠를 즐기지 않고 비가 내리는 곳을 구태여 찾아갈 마음도 없어요. 하지만 시장에는 저와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기능성 의류는 없었어요. 그래서 어떠한 비즈니스 상황에서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기능성 수트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 덴마크 편집숍 Norse Store와의 인터뷰 중 


그래서 그는 ’사무실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기능성 의류‘를 목표로 워크웨어를 만들기로 했어요. 기존의 동적인 워크웨어를 해체해서 현대 사회에 맞는 정적인 워크웨어를 꿈꾼 거죠. 그래서 이 옷을 입을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신체 구조에 대해서 연구를 했어요. 그렇게 그는 앉아있는 상태의 사람을 ‘현대적인 신체’로 정의하고 4개의 중심축을 세웠죠. 


첫 번째 축은 천장을 향해 있는 머리와 몸통,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바닥에 닿아있는 두 다리, 마지막 중심축은 사람의 엉덩이부터 바닥을 이어주는 의자예요. 카미데는 이 4개의 중심축을 위한 패션 브랜드가 되겠다는 의미에서 그리스어로 4를 뜻하는 Tetra와 브랜드의 첫 제품으로 디자인한 바지를 의미하는 영어 Trouser를 섞어 ‘테아토라 (Teatora)’라고 이름 지었어요.


2013년, 테아토라가 첫 번째 시즌에 출시한 제품은 두 종류의 바지였어요. ‘워크 체어 팬츠’와 ‘라운지 체어 팬츠’로, 두 바지는 직장인들이 마주하는 상황들에 최적화된 바지였어요. 사무실에서 일하거나 잠시 앉아서 쉴 때, 그리고 출장이나 휴가로 비행기에서 오래 앉아있는 시간까지. 다양한 상황에서 최고의 착용감과 실용성을 보여주려고 했죠. 그렇다면 앉아 있는 상황을 위한 바지는 도대체 무엇이 다른 걸까요?


서있는 상황을 기본으로 설계된 기존의 워크웨어 바지들은 앉아있는 상황에서는 불편한 점이 많았어요. 무언가를 넣기 위해 만든 뒷주머니는 앉았을 때 착용감을 떨어뜨리고, 앞주머니들도 앉았을 때는 고관절에 접히면서 물건을 쉽게 꺼내거나 넣을 수 없죠. 테아토라는 이런 불편함을 고쳤어요. 과감하게 뒷주머니를 없애 앉았을 때 착용감을 올렸어요. 그리고 앞주머니를 L자 모양으로 만들고 각도를 틀어서 앉아서도 문제없이 물건을 넣고 뺄 수 있게 했죠.



테아토라 팬츠의 시그니처인 L자 형태의 주머니를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밴딩이 들어간 편한 바지이지만 필요한 경우엔 벨트를 할 수 있게 벨트 고리 디테일도 보인다. 입고 앉아도 주머니 입구 각도가 직각으로 열려있어서 쉽게 물건을 넣고 뺄 수 있다. ©TEATORA


편한 옷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면서도 동시에 사무실이라는 환경도 놓치지 않았어요. 기본적으로 밴딩이 들어가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바지인데, 중요한 미팅이나 격식을 차려야하는 상황에는 벨트를 착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평소에는 편하게 입다가 필요시에는 정장처럼 입을 수 있게 한 거죠. 사무실에서 일할 때 어던 불편함이 있는지, 그리고 어떤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예요.


또한 그는 출장을 떠나는 상황도 고려했어요. 바지 안에 지퍼가 달린 주머니를 만들어서 여권 같은 귀중품을 잃어버리지 않게 했어요. 그리고 여권을 넣어도 옷의 실루엣이 크게 변하지 않게 설계해서 단정한 스타일을 유지하도록 했죠. 이 주머니에는 여권도 넣을 수 있지만 옷 자체를 밀어넣을 수 있어요. 주머니 속에 옷을 잘 접어서 넣으면 작은 사이즈로 정리가 돼서 트렁크에 차곡차곡 넣을 수 있거든요. 이렇게 기능성을 극대화했어요.



팬츠를 패킹하는 방법 ©TEATORA


이 두 바지는 카미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두 의자를 모티브로 디자인 했어요. 일할 때 주로 앉아있는 허먼밀러의 에어론 의자를 모티브로 워크 체어 팬츠를 만들었고, 라운지 체어 팬츠의 경우에는 휴식할 때 사용하는 임스의 라운지 체어 & 오토만을 모티브로 제작했죠. 각각의 의자에 앉아서 자신이 하루종일 겪는 일들을 분석한 후, 상황에 따라 최적의 퍼포먼스를 내는 바지를 선보인 거예요.



처음 출시 당시 두 가지 팬츠를 디스플레이한 매장. 앞 쪽에 있는 의자가 임스의 라운지 페어 & 오토만. 그 옆에 있는 팬츠가 라운지 체어 팬츠다. 뒤 쪽에 있는 의자는 허먼 밀러의 에어론, 그 옆에는 워크 체어 팬츠가 걸려있다. ©FASHIONSNAP


카미데는 디자인 과정에서 이 두 의자를 판매하는 허먼 밀러 재팬에게 자문을 구했어요. 의자를 개발한 기업의 입장을 듣고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를 파악해서 그 의자를 사용할 때 가장 편한 디자인을 개발한 거죠. 이런 접근은 제품의 퀄리티를 높이는데도 도움되었을 뿐만 아니라, 매력도를 높여주는 마케팅 요소로도 작용했어요. 실제로 테아토라 공식 홈페이지의 제품 설명을 보면 협력 기업에 허먼 밀러 재팬이 들어가 있는데요. 테아토라가 얼마나 앉아있는 상태에 진심인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에요.



설명란에 협력 기업으로 허먼 밀러 재팬이 적혀있다. 옆에 있는 의자는 카미데가 가장 좋아하는 허먼 밀러의 에어론 ©TEATORA


첫 선을 보인 두 바지는 큰 인기를 끌었어요. 바지의 디자인, 소재, 팩커블 기능 같은 디테일들은 테아토라의 중심 컨셉으로 자리잡았죠. 이후에는 오피스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직장인과 업무 환경이 자유로운 프리랜서, 디지털 노마드들을 위한 다양한 의류를 만들기 시작했고요. TPO가 중요한 사무실에서도 입을 수 있는 단정한 자켓과 셔츠, 바지를 기본으로 캐주얼한 느낌을 살짝 섞은 실루엣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장식이나 디자인적 요소를 최소화하고 주로 무채색을 쓰면서 직장에서 부담없이 입을 수 있도록 했죠.


테아토라의 다른 제품을 살펴보면 이 브랜드의 정체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요. 키보드 셔츠의 경우에는 하루종일 키보드를 두드리는 직장인들을 위해 만든 셔츠에요. 빳빳하고 움직임이 제한적인 기존의 와이셔츠를 개선한 제품이죠. 얇고 가벼운 소재로 착용감을 챙기면서도 셔츠의 앞부분을 2중으로 만들어서 안에 따로 옷을 받쳐 입지 않아도 돼요. 그리고 키보드를 사용할 때 거슬리는 소매 단추를 제거하고 스웻셔츠처럼 늘어나는 소재로 소매를 처리해서 쉽게 걷어올릴 수 있게 했어요.



테아토라 키보드 셔츠. 차분한 무드의 디자인과 단추가 없어 쉽게 걷을 수 있는 소매 디테일이 포인트 ©MAW Sapporo


이후에는 아우터 제품들도 만들기 시작했어요. 테아토라의 시그니처 아우터인 디바이스 코트와 수베니어 헌터 자켓은 수납 기능을 극대화한 옷이에요. 자켓 안쪽에 큰 주머니에는 아이패드 프로까지도 넣을 수 있죠. 이외에도 곳곳에 위치한 포켓 덕분에 가방을 메지 않고도 업무에 필요한 대부분의 물건을 챙길 수 있어요. 그러면서도 착용감과 실루엣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 이 자켓의 장점이에요. 자켓의 수납 기능에 대해 카미데는 이렇게 말해요. 




디바이스 코트와 수베니어 헌터 자켓에 있는 다양한 포켓 디테일. 아이패드까지도 수월하게 들어간다. ©TEATORA


"인터넷과 와이파이는 지난 10년간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송두리째 변화시켰어요. 그리고 애플의 아이폰처럼 작은 디바이스로 다양한 일들을 처리할 수 있게 됐죠. 이런 변화들로 직장인들이 들고다니는 물건들의 크기는 대폭 줄어들었어요. 하지만 이어폰이나 충전기처럼 업무를 위해 들고다녀야하는 사소한 물건의 갯수는 늘어났죠. 현대 직장인들이 겪는 새로운 불편함을 위해 수납이 편리한 옷을 만들었어요.“

- 에버메이드 인터뷰 중


테아토라의 디테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아요. 카미데는 자신이 사무실에 가는 과정과 도착 후에 하는 행동들까지 고려했어요. 살짝 그의 일상을 따라가 볼게요. 그는 집에서 업무에 필요한 모든 물건을 자켓에 챙겨 가방 없이 홀가분하게 출근을 해요. 


따뜻한 사무실에 도착해서 자켓을 벗어요. 벽에 걸어야하는데 물건이 들어있다보니 자켓이 무거워요. 그리고 무게가 있어 벽걸이 옷걸이에 그냥 자켓을 걸면 옷이 늘어나고 무리가 가요. 그래서 카미데는 옷의 뒤쪽에 고리를 부착했어요. 평소에는 옷에 붙어있어 티가 나지 않다가 벽에 걸면 강력한 내구성으로 무거운 자켓의 무게를 버텨줘요. 자켓과 가방 두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한 거예요. 이처럼 디바이스 코트와 수베니어 헌터 자켓의 디테일을 이해하게 되면 테아토라의 정수를 느낄 수 있죠.



후드 뒤쪽에 달린 가먼트 행어. 옷걸이 없이도 물건이 담긴 옷을 걸어둘 수 있다. ©TEATORA



기본템에 담긴 기능의 미학

트렌드에 발맞춰 빠르게 움직이는 패스트 패션의 흐름은 언제부턴가 패션계의 불문율이 됐어요.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매 시즌마다 수십 가지의 신상품을 쏟아내고 있죠. 테아토라를 운영하기 전, 디자이너로 일하던 카미데는 6개월마다 계절에 맞춰 수십 가지의 제품을 출시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테아토라에서는 정반대의 행보를 보여주죠. 


바지 두 개로 시작한 테아토라는 벌써 10년이 되어가지만 지금까지 테아토라에서 만드는 옷의 종류는 10여 종에 불과해요. 신상품의 갯수를 채우고 구색을 맞추기 위해 들이는 노력을 되려 하나의 제품에 집중시켜 고객에게 ‘압도’하는 경험을 주겠다는 카미데의 철학이 낳은 결과예요.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생겨요. 카미데의 철학도 멋지고 테아토라의 타깃 고객의 성향을 감안하더라도 10여 종은 소비자들의 니즈를 모두 충족하기에는 역부족 아닐까요. 그렇다면 테아토라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테아토라는 다양한 소재와 디테일의 변주로 부족한 라인업을 보완하고 있어요. 10여종의 기본적인 틀을 베이스로 디테일에서 차이를 주고 다양한 상황에 맞는 소재를 적용해 각기 다른 분위기와 기능성을 보여주죠. 테아토라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바지에서도 이러한 접근을 볼 수 있어요. 팩커블 기능과 특유의 주머니가 있는 월렛 팬츠는 총 다섯 가지 핏으로 디자인했는데요. 직장인이 마주할 상황을 다섯 가지로 분류해서 기본 월렛 팬츠, 오피스, 리조트, 호텔, 포레스트라는 이름으로 각 상황에 맞는 핏을 적용한 거예요. 


기본 월렛 팬츠는 가장 무난한 레귤러 테이퍼드 핏으로 어떤 상황에서 입어도 편한 바지에요. 오피스의 경우에는 보다 정장 느낌을 낼 수 있도록 내로우 스트레이트 핏으로 만들었죠. 휴가를 즐기는 리조트에서 입을 월렛 팬츠 리조트는 하늘하늘한 와이드 테이퍼드 핏, 출장에서 방문한 호텔에서 입을 월렛 팬츠 호텔은 편하면서도 각을 잃지 않은 와이드 스트레이트 핏이에요. 마지막으로 포레스트는 가장 편한 상황에서 입는 바지로 설정하고 테아토라 바지 중 가장 통이 큰 와이드 버기 핏으로 디자인했어요. 상황과 장소에 따라서 직장인들이 어떤 니즈를 가지고 있는지 예리하게 파악한 결과물이죠.



왼쪽부터 기본, 오피스, 리조트, 호텔, 포레스트. 조금씩 다른 핏을 볼 수 있다. ©도쿄 페블즈


소재의 변화도 주목할 만해요. 팩커블 기능으로 출장이 잦은 사람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던 팩커블 시리즈. 여기에 솔로텍스 소재를 적용한 ‘솔로스케이프(Soloscape)’ 라인을 보면 테아토라의 디테일을 발견할 수 있어요. 솔로텍스 원단은 주름이 잘 지지 않는 부드러운 소재로, 팩킹을 위해 접거나 구기더라도 다시 입었을 때 빳빳한 상태로 입을 수 있어요. 그만큼 부드럽기 때문에 착용감도 좋고요. 


더 중요한 포인트는 속건성 소재라는 점이에요. 한여름에도 통풍성이 좋아서 쾌적하고, 미팅 전 날 빨래를 해도 다음날 일어나면 건조돼서 바로 입고 나갈 수 있어요. 게다가 ‘항공기의 비즈니스 클래스 드레스 코드’를 컨셉으로 한 디자인이어서 일정 수준의 격식도 챙겼어요. 그래서 솔로텍스를 사용한 테아토라 수트만 챙겨가면 옷을 많이 가져가지 않아도 찝찝한 여름 출장을 쾌적하게 마무리할 수 있죠. 자연스럽게 짐도 줄어들어서 출장 전체의 효율을 높일 건 덤이고요.




출장에 용이하게 패킹되어 트렁크 공간에 딱 맞게 들어가는 모습 ©TEATORA


테아토라의 솔로스케이프 라인은 직장인들에게 인기를 끌었어요. 굳이 출장을 위한 용도가 아니더라도 여름이 유난히 덥고 습한 도쿄의 환경에 딱 맞는 옷이었기 때문이에요. 이 소재를 사용한 여행용 기능성 수트가 저가형 브랜드에서도 출시됐을 만큼 직장인들의 니즈를 정확하게 꿰뚫은 제품이에요.


아우터의 경우에는 포켓의 형태와 단추의 개수를 바꿔가면서 디자인에 변주를 주고 있어요. 그리고 간절기와 극동계에 맞는 소재를 각각 사용했죠. 간절기의 경우에는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아우터를 입었다 벗었다 해야해서 불편한데요. 테아토라에서는 ‘팩커블(Packable)’이라는 소재로 이 불편함을 해결했어요. 


이 소재는 나일론과 면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만들어서 통기성이 높아요. 그리고 지퍼로 열고 닫을 수 있는 벤틸레이션이 있어서 환경에 따라 공기가 통하는 정도를 조절할 수 있고요. 이처럼 사용자의 기호와 상황에 따라 통기성을 조절할 수 있는 아우터를 제작해서 실외에서는 따뜻하고 실내에 들어오면 덥지 않은 마술 같은 자켓을 완성했죠. 극동계에는 ‘에바포드(Evapod)’라는 초경량 다운을 사용해서 롱패딩도 750그램이라는 놀랍게 가벼운 무게를 자랑해요. 무게는 가볍지만 보온성은 두터워요.



지퍼로 여닫을 수 있는 벤틸레이션. 간절기에 온도 조절에 용이하다. ©TEATORA


테아토라는 기본 디자인에다 깊은 고민을 통해 파악한 직장인들의 여러 불편함을 해결하면서 제품을 다양화했어요. 바쁜 일상 때문에 옷에 제대로 신경을 쓰기 힘든 직장인들에게 계절이나 환경이 변해도 기능적으로나 디자인적으로나 문제 없이 입을 수 있는 옷은 확실한 매력을 뽐내고 있어요. 제품의 종류는 10여 종 뿐이지만 테아토라가 계속해서 사랑 받을 수 있는 이유예요.



온라인 스토어를 불친절하게 운영하는 이유

테아토라는 옷만큼이나 홈페이지도 독특해요.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옷은 볼 수도 없고 오프라인 매장 사진만 덩그러니 있어서 옷을 파는 브랜드의 홈페이지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차갑고 어두운 배경의 홈페이지 디자인과 기계적인 UX/UI는 옷이 아니라 전자제품을 파는 브랜드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하죠. 


옷을 판매하는 페이지에서 홈페이지를 채우고 있는 건 테아토라의 옷들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이에요. 어떤 소재를 사용했고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지 나와있어요. 이 밖에도 여행이나 출장을 위해 제품을 패킹할 때 어떤 방식으로 정리해야 하는지 등 모든 과정을 사진으로 보여주죠.



시그니처 아우터인 디바이스 코트를 패킹하는 방법 ©TEATORA


이렇게 특이한 테아토라의 홈페이지에서도 가장 특별한 것은 바로 카탈로그에요. 옷 브랜드에는 다소 생소해보이는 ‘사용 설명서(User Manua)l’ 꼭지를 클릭하면 테아토라에서 시즌별로 판매하는 모든 제품을 한 페이지에 도식화한 카탈로그가 나와요. 카탈로그의 이름도 ‘장비 목록(Gear Chart)’이죠. 이런 네이밍에서도 테아토라의 정체성이 워크웨어라는 점을 느끼게 해줘요.



23S/S 시즌 기어 차트. 테아토라에서 판매하는 모든 제품이 정리되어 있다. ©TEATORA


카탈로그를 보면 가로축과 세로축이 있어요. 가로축은 TPO, 세로축은 업무 스타일이죠. TPO에서는 다양한 상황에 맞는 소재들을 나열해뒀어요. 소재별로 로고가 있어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죠. 세로축은 노마드 워커를 위한 핸즈프리, 출장이 잦은 여행가들을 위한 시큐리티, 그리고 평상시에 입기 편한 옷인 플러스 원으로 분류되어 있어요. 간결하게 표현된 가로축과 세로축에서 니즈를 매칭시켜보면 각자에게 딱 맞는 제품을 찾을 수 있죠.


제품 각각에는 어떤 소재가 쓰였는지를 약어로 적어 놓았어요. 같은 모델명과 디자인의 제품이더라도 소재에 따라 기능이 달라지는 테아토라의 제품을 분류해 놓은 거에요. 그리고 각 제품마다 출시되는 컬러도 도식으로 표현해서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죠. 테아토라에서 어떤 제품을 만들고 있고 각 제품이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 깊게 살펴볼 시간이 없는 직장인들을 위해서 최대한 간결하게 리스트를 만든 거예요. 제품을 소개하는 방식에서도 직장인들을 고려하는 테아토라의 면모를 볼 수 있는 부분이에요. 


이렇게 테아토라의 홈페이지는 판매보다 테아토라가 어떤 브랜드이고 어떤 제품을 만들고 있는지 볼 수 있는 간략한 설명서 용도로 쓰이고 있어요. 홈페이지에 소개된 상품 중 많은 제품들이 온라인에서 구매가 불가해요. 대신 갖고 재고가 있는 오프라인 매장에 가서 구매해야 해요.


물론 일부 제품은 테아토라가 입점된 편집숍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몰이나 홈페이지와 별도로 테아토라가 운영하는 온라인 스토어에서 가능하긴 해요. 이 온라인 스토어마저도 2020년 8월에 들어서야 겨우 생겼어요. 브랜드를 시작한지 7~8년이 지난 시점이에요. 요즘 패션 브랜드들이 브랜드 런칭부터 온라인 판매를 적극적으로 하거나, 오프라인 매장 없이 온라인 판매로 시작하는 것과는 대비되는 행보예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용자가 압도적인 편리함을 경험한 순간, 더 이상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아이폰이 없는 세계를 상상할 수 있나요? 테아토라의 제품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이 이 옷을 입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전혀 없었어요. 모두 제가 사무실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불편함과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작해요. 테아토라의 옷을 직접 경험해본 사람만 이 매력을 알 수 있죠.”


카미데가 일본의 원단 회사, ‘솔로텍스(Solotex)’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에요. 직접 경험해본 사람만이 테아토라의 가치를 알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온라인 판매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거예요. 온라인으로는 테아토라의 기능성을 충분히 전달하기에 한계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매장에 직접 찾아와 제품을 입어본 사람들은 테아토라의 팬이 되어서 계속해서 테아토라를 찾게 돼요.


카미데는 테아토라를 꾸준히 찾는 마니아들을 ‘테아토라 지니어스’ 라고 불러요. 테아토라 의류를 일상 속에서 자주 입으면서 온라인으로 봤을 때는 알 수 없는 다양한 기능들과 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죠. 카미데는 테아토라가 테아토라 지니어스들의 입소문으로 성장했다고 말해요. 직접 경험한 편리함에 애정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팬들이 온라인 매장 대신 브랜드 홍보를 해주고 있는 셈이죠.




도쿄 센다가야에 위치한 테아토라 브랜드 스토어 ©Evermade



궁극의 워크웨어를 꿈꾸다

‘더 이상 개선점을 찾을 수 없는 워크웨어’


테아토라의 궁극적인 목표예요. 극단적으로는 테아토라만 있으면 다른 옷은 필요 없을 정도의 완벽한 워크웨어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죠. 가능한 일일까요?


카미데는 옷의 기능을 A 사이드와 B 사이드로 나눠서 설명해요. 테아토라가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건 A 사이드, ‘실용성’이에요. 사무실, 업무 환경에 맞는 디자인으로 다양한 상황에서 유연하게 편리함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반면 사람들이 쉽게 주목하고 궁금해 하는 소재의 기능성과 멋을 위한 요소들은 화려해 보일 수는 있지만 결국 우리의 일상에서 큰 의미가 없어요. 부차적인 B 사이드에 불과한거죠. 카미데는 이런 철학을 여전히 자신의 삶 속에 녹여내고 있어요. 자신이 디자인한 옷들만 입고 생활하면서 찾아낸 불편함을 하나씩 해결하다보면 궁극의 워크웨어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해요.


누군가는 카미데가 느끼는 불편을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익숙함에 속아 불편함을 모르는 거죠. 하지만 온라인에서 테아토라의 가치를 충분히 느낄 수 없듯이, 카미데의 말이나 스토리만으로는 테아토라의 매력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거예요. 도쿄에 가서 테아토라 매장에 들러 직접 경험해 본다면, 카미데가 말하는 궁극의 워크웨어를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Reference

• 테아토라 공식 홈페이지

• 테아토라 온라인 스토어

• 적당히를 몰랐던 상승곡선 - 칼하트 [CARHARTT] + [WIP], Youtube, 404PF

• 제니·설현이 입고 더 핫해졌다는 캐주얼룩, 소화하는 노하우, 다음 뉴스에이드

• Teätora store, Tokyo – Japan, Retail Design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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