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시대에 독립 서점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더 라스트 북스토어

2022.08.10

미국의 독립 서점 입장에서는 아마존이 얼마나 얄미울까요. 온라인 배송으로 시장을 독식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아마존 북스'를 런칭해 오프라인까지 영역을 확장했으니까요. 여기에다가 아마존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면 경쟁이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색해질 정도로 막강해지죠.


그렇다면 지역의 독립 서점은 무기력하게 설자리를 잃게 될까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마지막 서점'으로 남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LA에서 존재감을 지키고 있는 '더 라스트 북스토어'를 들여다보면 아마존의 시대에 독립 서점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힌트는 ‘테크’에 있지 않고, ‘아트’에 있어요. 테크로 고도화시키는 것만큼이나 아트로 고급화시키는 것도 가치를 높이는 방법이니까요. 서점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 해당되는 거 아시죠?



더 라스트 북스토어 미리보기

 #1. 읽지 않고 감상하는 책

 #2. 무계획을 계획한 공간

 #3. 신간을 줄여 새로워지는 제품 구성

 오프라인 서점의 마지막을 지킨다는 꿈






논란이 없었을 리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쿄의 긴자에 있는 ‘긴자식스’는 지하 식품관에 음식의 재료를 예술의 소재로 활용해 작품을 전시해 두었어요. 음식을 가지고 장난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음식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지가 담긴 듯합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 식품관에 내려서면 가장 먼저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음식으로 만든 예술 작품 공간이에요. 일회성 전시가 아니라 상설 전시 공간으로 사용되는 이 곳에선 시즌에 따라 다른 작품을 소개하죠. 예를 들면 사탕, 숟가락, 포크 등으로 표현한 벚꽃을 전시하며 봄 시즌을 맞이한다던가, 파스타, 스파게티, 토마토 소스 등으로 제작한 흉상이나 비너스 등을 전시하며 식품관을 새롭게 환기시키는 식이에요.



ⓒ시티호퍼스


이 공간은 계절을 환기시킬 뿐만 아니라, 지하 식품관의 클래스를 한차원 끌어올리는 데 보이지 않는 역할을 해요. 지하 식품관을 들어설 때 넌지시 갤러리에 온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죠. 이와 같은 작은 전시 공간 하나가 은연 중에 이 브랜드들을 고급스러워 보이게 만드는 거예요.


긴자식스 식품관의 이러한 시도에서 F&B 비즈니스의 가치를 높이려는 또다른 방법을 감지할 수 있어요. 테크(Tech)로 산업을 고도화시키는 것도 방법이지만, '아트'로 새롭게 접근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는 거죠. 똑같은 맛과 칼로리를 가진 음식이라도, 그것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릴 수 있으면 가격이 달라집니다. 음식의 재료를 예술의 소재로 활용하는 긴자식스 식품관의 시도가 음식으로 장난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는 이유예요.


도쿄에 있는 긴자식스 식품관이 음식으로 예술 작품을 만들면서 식품관의 차별화를 시도했다면, LA에 있는 '더 라스트 북스토어'는 책을 예술 작품의 소재로 활용하면서 서점의 변신을 꾀합니다.



#1. 읽지 않고 감상하는 책


"서점의 아름다움은 '책을 어떤 배경과 액자로 보여주느냐'를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죠."


더 라스트 북스토어 창업자인 조시 스펜서의 말이에요. 이러한 생각으로 서점을 꾸몄으니, 이 서점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 하나로 손꼽히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죠. 물론 아름다운 서점을 만들자고 오페라 극장, 성당 등 웅장한 건물을 리모델링하거나, 대규모 자본을 투자해 번쩍거리는 서점을 짓거나, 혹은 고급스럽고 세련된 인테리어로 공간을 디자인한 건 아니에요. 그렇다면 더 라스트 북스토어는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걸까요?


더 라스트 북스토어는 건축이나 인테리어 등이 아니라 책 그 자체에서 아름다움을 찾았어요. 책을 진열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책을 가지고 다양한 예술 작품을 만들어 서점 곳곳에 무심한 듯 위치시켜 둔 거예요.


입구 쪽의 카운터 하단부를 책을 쌓아서 만든다거나, 책이 쌓여 있는 곳에 군인 그림을 그려 위트를 더한다거나, 벽면 상단에 책을 이어 붙여 조형물처럼 걸어둔 작품들은 에피타이저에 가까워요. 2층으로 올라가면 더 라스트 북스토어가 책으로 만든 메인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시티호퍼스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은 책으로 만든 프레임과 터널입니다. 책으로 만든 프레임은 가운데에 원형의 구멍을 남겨둔 채로 책장에 책을 쌓아 만들어서 그 구멍 사이로 책장 너머를 볼 수 있어요. 구멍이 하나의 프레임처럼 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곳에서 꽃밭이 아니라 책밭에 둘러 싸인 듯 사진을 찍죠. 



ⓒ시티호퍼스


또다른 예술 작품은 책을 아치형으로 쌓아 만든 터널. 이 터널을 지나야 다음 공간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마치 책이 길을 인도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 터널도 책으로 만든 프레임과 마찬가지로 포토 스팟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에 하나에 왔다는 걸 기념하거나 증명하는 데 딱인 곳이죠.



ⓒ시티호퍼스


그 뿐 아니에요. 책을 펼쳐 새처럼 만든 작품도 있고, 책에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등의 색을 칠해 같은 색끼리 모아둔 책장도 있으며, 책으로 작품같은 진열대를 만들어 책을 진열하기도 해요. 어쩌면 책으로 장난친다는 생각이 들지도 몰라요. 하지만 팔리지 않는 책을 버리는 것보다 그 책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키고, 그 작품으로 서점의 공간을 빛내는 편이 오히려 책을 위하는 일일 수도 있어요.



#2. 무계획을 계획한 공간

서점은 2개층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런데 2개 층은 서로 대비2층 공간은 1층 공간과 대비돼요. 예술 작품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점도 차이가 있지만, 더 큰 차이는 공간 구성에 있어요.



ⓒ시티호퍼스


1층은 보통의 서점과 책 진열 방식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카테고리별로 구분하여 책장에 꽂아두거나, 더 라스트 북스토어 직원들이 추천하는 책을 특별 매대에 진열해두는 식이에요. 천장도 트여 있고, 책장 사이의 공간도 널직할 뿐만 아니라 책장도 반듯하게 배치되어 있어 공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죠.


이렇게 1층에서 익숙한 방식으로 책을 구경하다가 2층으로 올라가면 상황이 달라져요. 같은 서점인가 싶을 정도예요. 책장이 지그 재그 또는 굽이 굽이 놓여 있어 2층을 한 눈에 이해하기 어려울 뿐더러 책장 사이의 간격도 좁아 여러 사람이 동시에 책장 앞에 서있기 힘든 구조죠. 설명만 들으면 2층이라고 대충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지도 몰라요. 하지만 2층 공간을 경험해보면 1층과는 또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어요. 계획없이 책을 우겨 넣은 공간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디자인한 공간이기 때문이에요.



ⓒ시티호퍼스


더 라스트 북스토어 매니저인 케이티 오판에 따르면 2층은 '미로'와 같은 느낌으로 사람들에게 책 세계에 갇힌 느낌을 주도록 설계했다고 해요. 더 라스트 북스토어의 의도처럼 실제로 2층에선 책과의 거리가 좁혀지고, 책으로 사방이 둘러싸여 있어 책 세상에 들어온 착각이 들어요.


복잡해보일 수는 있지만 휴먼 스케일로 꾸며진 공간이라 포근하고 정겨운 분위기가 나요. 여기에다가 중간 중간에 책을 읽을 수 있는 낡을 소파가 놓여 있어 편안하게 책을 볼 수도 있으니 애서가들에게는 길도 잃어버리고, 시간도 잃어버리고 싶은 공간이 되는 거죠.



#3. 신간을 줄여 새로워지는 제품 구성

더 라스트 북스토어에서는 비즈니스, 문학, 철학, 역사 등 카테고리 구분뿐만 아니라 책의 가격을 기준으로 분류하기도 해요. 명시적으로 가격대별로 책을 구분해 놓고 있지는 않지만, 더 라스트 북스토어에서 판매하는 책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크게 4가지 단계로 나누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시티호퍼스


첫번째는 정가보다 할인된 중고책.

두번째는 정가에 판매하는 새책.

세번째는 1달러의 균일가에 판매하는 헌책. 

네번째는 희소성이 있어 가격대가 높은 예술책과 희귀본. 


서점에서 신간과 중고책을 파는 건 새롭지 않을 수 있어요. 하지만 1달러에 헌책을 판매하는 코너가 따로 있고 그 규모가 10만권 정도 된다는 점과 예술책과 희귀본을 파는 코너는 카테고리로 구분해둔 것이 아니라 'Annex'라는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구성했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물론 책의 내용이 책 선택기준의 최우선 순위이겠지만, 가격의 범위를 다양하게 해 책 선택의 폭을 늘리고 재미를 더한 거죠.



ⓒ시티호퍼스


그 뿐 아니라 책 이외의 제품들도 판매해요. 1층에 위치한 바이닐 레코드를 판매하는 코너가 대표적이에요. 이 곳에서는 중고 LP판과 패키지 디자인을 새롭게 한 LP판을 판매하는데, 더 라스트 북스토어의 아날로그적 분위기를 한층 더해주는 역할도 합니다.


또한 1층 카운터 근처에서는 더 라스트 북스토어의 PB 상품인 티셔츠, 토트백, 지도 등을 팔아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점을 방문한 팬들이 기념품으로 사갈 수 있는 제품들이죠. 그리고 1층의 중앙 공간에서는 매일같이 저자와의 만남, 토론회, 음악회 등의 이벤트가 열려요. 지역 서점으로서 커뮤니티의 기능을 하는 공간이에요.



ⓒ시티호퍼스


지역 서점으로서의 기능은 2층으로도 이어집니다. 2층의 한 쪽 편에는 지역 예술가들이 그림, 제품 등을 만들어 전시, 판매할 수 있는 스튜디오 겸 편집숍이 있어요. 고객과 지역 예술가들이 만날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거예요. 이처럼 책 판매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이벤트를 여는 건 온라인 서점과 전자책의 시대에 지역 서점이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죠.



오프라인 서점의 마지막을 지킨다는 꿈



ⓒ시티호퍼스


LA에는 더 라스트 북스토어와 대척점에 있는 서점도 있습니다. 바로 '아마존 북스'예요. 아마존에서 운영하는 오프라인 서점이죠. 아마존 때문에 오프라인 서점들이 타격을 받고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아마존은 오프라인 서점을 확장하고 있어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유기적으로 연계하면 시너지가 날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에요.



ⓒ시티호퍼스


아마존 북스에 들어가면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을 오프라인에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아마존의 데이터를 활용해 책을 추천하고 진열하고 있어서죠.


기본적으로 아마존 북스에서 판매하는 모든 책들은 평점 4점 이상이에요. 그리고 중앙 매대는 'LA 지역에서 가장 인기있는 소설', '10,000개 이상의 리뷰가 있는 책', '킨들에서 독자들이 3일 안에 완독한 책', '당신이 이 책을 좋아한다면 좋아할 법한 책' 등 데이터가 없다면 엄두도 못 낼 방식으로 구분되어 있어요.


또한 책을 추천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온라인 서점의 리뷰 중 가장 임팩트 있는 내용을 적어둔다거나, 90% 이상의 리뷰어가 5점 만점을 줬다고 설명하는 식이에요. 보통의 서점이라면 흉내조차 내기 어려운 차별적 경쟁력이죠.


그렇다면 지역 서점은 이러한 아마존 북스와 경쟁하기 위해 테크적인 부분을 보강하면 될까요? 모르긴 몰라도 그렇게 해서 아마존의 기술력과 정보력을 따라잡는 건 요원한 일일 거예요. 아마존 북스와 같은 방식으로는 세계 최강 아마존을 넘어서기 어려우니까요.


오히려 다른 방향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더 라스트 북스토어가 책을 테크적인 관점이 아니라 예술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처럼요. 물론 더 라스트 북스토어가 아마존 북스와 차별화하려는 목적으로 서점을 예술적으로 구성한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렇게 했기에 아마존 북스의 등장에도 차별적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거죠.


테크가 비즈니스의 가치를 높이는 건 맞지만, 테크만 그런 역할을 하란 법은 없어요. 아트도 비즈니스의 가치를 높여주는 건 마찬가지죠. 오프라인을 지키는 '마지막 서점(더 라스트 북스토어)'이 되겠다는 더 라스트 북스토어의 포부가 허황된 외침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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