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의 봉이 김선달이 '물' 하나로 찐팬을 만드는 방법

리퀴드 데스

2022.08.16

‘리퀴드 데스’는 생수 브랜드예요. 생수인데, 죽음의 액체라니. 악동 이미지를 표방하는 에너지 드링크나 주류 브랜드도 쓰기 어려운 이름을 파격적으로 붙인 거예요. 이름부터 이미 반전이죠. 디자인은 또 어떻고요. 이름에 걸맞게 어둠을 연상시키는 검은색을 메인 색상으로 사용하고, 강렬한 느낌의 해골 로고를 넣었어요. 생수 업계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접근이지요.


죽음의 액체를 누가 마실까 싶지만, 팬덤이 강력해요. 이 또한 반전이죠. 단순히 파격적인 이름이나 컨셉으로 얻은 일시적 팬덤이 아니에요. 리퀴드 데스가 팬덤이 생길만한 마케팅을 일관된 철학과 컨셉으로 물흐르듯 전개해서 얻은 팬심이죠. 도대체 마케팅을 어떻게 했길래 생수 브랜드에 팬덤이 생기냐고요?


일단 키워드만 몇개 공유드릴게요. 악플 음반, 영혼 매매 계약서, 빨간 괴물 저격, 귀여운 오염동물들 등 정체를 알고나면 탄성이 나올 사례들이에요. 컨셉과 아이디어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 수 있어도, 그들이 추구하는 철학엔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걸요?



리퀴드 데스 미리보기

 알프스에서 온 죽음의 액체

 1번 트랙. 어느 생수 회사의 영혼 매매 계약

 2번 트랙. 팬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철학

 3번 트랙. 맹물같은 굿즈는 이제 그만

 보너스 트랙. 물에는 문제가 없다, 상상력의 문제일 뿐






마케팅 담당자를 당장 해고해 (Fire your marketing guy)

사업이 망하길 바랄게 (Go Out Of Business)

관계자들은 생각이란 것이 없나? (Huge tools, Every single person involved)


한 앨범에 수록된 노래 제목들이에요. 노래 제목이라고 하기에는 비난에 더 가까워 보이는 이 문구들의 정체는 사실 악플이에요. 미국의 한 음료 업체가 본인의 SNS 계정에 달린 악플을 가사로 만들어 앨범을 낸 것이죠.


보통의 경우라면 악플에 노심초사하며 조심스러워 하거나 법적으로 강경하게 대응하는 방법을 택했을 텐데, 이 음료 회사는 쿨하게 노래로 만들어버려요. 그것도 무려 10곡, 총 22분짜리 앨범을 출시하면서요. 앨범 제목도 최고의 노래들만 모아놓은 '최고의 음반(Greatest Hits)'을 패러디해 '최고의 증오(Greatest Hates)'로 지었죠.



2020년 발매된 리퀴드 데스의 곡 ‘Fire Your Marketing Guy’예요. ⓒSpotify


컨셉만으로도 바이럴이 되기 충분한데 이 회사는 음악에도 진심으로 다가갑니다. 실력 있는 메탈 음악 뮤지션들을 직접 모셔와 앨범을 제작했거든요. 그루섬(Gruesome) 밴드의 드러머 거스 리오스(Gus Rios), 아르시스(Arsis) 밴드의 기타리스트 제임스 말론(James Malone) 등 업계에서 내로라하는 쟁쟁한 아티스트들이 앨범에 참여했어요.



리퀴드 데스의 첫 번째 앨범에 있는 곡 ‘Go Out of Business’ 예요. ⓒLiquid Death


이들의 참여만으로 이미 관련 커뮤니티에서는 반응이 뜨거웠어요. 악플을 모아 만든 혁신적인 컨셉에 음악마저 손색없자 빠르게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해요. 스포티파티에서는 총 20만회 이상 재생됐고, 기념으로 제작한 한 개당 20달러의 한정판 LP 1,000장은 모두 매진되었죠.


열광적인 반응에 힘입어 6개월 만에 두 번째 앨범을 발매했어요. 그동안 쌓인 악플 덕분에 구성은 더욱 알차졌고요. 수록곡이 14개로 늘어났고, 로렌스 암스(Lawrence Arms), 라이즈 어게인스트(Rise Against) 등 참여한 밴드의 라인업도 화려해지니 팬들의 귀도 더욱 즐거워졌죠.


이렇게 파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음료 업체라면, 틀을 깨는 광고에 열려 있는 맥주 회사나 대기권에서 스카이다이빙을 시도하는 에너지 드링크 회사 등을 떠올리실 거예요. 하지만 이 업체, 생수 회사예요. 그것도 청정 알프스에서 생수를 가져와 파는 회사죠.



알프스에서 온 죽음의 액체

'리퀴드 데스(Liquid Death)'는 2019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한, 생수를 알루미늄 캔에 담아 판매하는 음료 회사에요. 이름부터 이미 반전이죠. '죽음의 액체'라는 뜻의 브랜드 네이밍은 생수는 물론이고, 심지어 악동 이미지를 표방하는 에너지 드링크나 주류 등의 회사라도 사용을 고민할 만큼 파격적이니까요.


디자인에도 반전이 있어요. 어둠을 연상시키는 검은색을 메인 색상으로 사용하고, 강렬한 느낌의 해골 로고를 넣었어요. 겉모습만 봐서는 도무지 생수라고 생각하기 어렵죠. 보통의 생수 브랜드가 청량함을 강조하기 위해 투명 플라스틱 병을 사용하고, 깨끗한 느낌을 주는 흰색과 하늘색 디자인을 선택하는 것을 떠올리면, 리퀴드 데스의 디자인은 결코 생수 브랜드답지 않다는 반전이 있어요.



리퀴드 데스의 제품 디자인. 일반적인 생수 브랜드들과 달리 캔맥주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을 띠고 있어요. ⓒ시티호퍼스



생수 브랜드 아쿠아피나의 제품 디자인. ⓒAquafina


제품을 알리는 방법도 그래요. 생수 회사에서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은 마케팅만을 모아서 하거든요. 실제 주술사를 고용해 제품에 저주를 걸고 이를 판매하는 이벤트를 여는가 하면, CEO가 가장 주문량이 많은 한 팬의 얼굴을 자신의 몸에 문신으로 새기기도 해요. 리퀴드 데스의 유튜브에는 악마, 지옥을 모티브로 한 광고가 넘쳐나고요. 자식에게 악마의 이름을 지어주는 온라인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하죠.



리퀴드 데스의 광고. 아이들과 임산부가 맥주 파티를 벌이듯 리퀴드 데스를 마시고 있어요. ‘Don’t be scared. It’s just water’라는 문구와 함께 ‘수분 흡수는 임산부에게 더욱 중요합니다’라는 재치 있는 메시지도 덧붙여요. ⓒLiquid Death



아기에게 악마의 이름을 지어주는 온라인 캠페인 ‘The Killer Baby Namer’의 한 장면이에요. ⓒLiquid Death


유일하게 반전이 없는 건 퀄리티예요. 아쿠아피나(Aquafina), 스마트워터(smartwater) 등 미국 내에서 유통되는 많은 생수가 수돗물을 처리해 만드는 반면, 리퀴드 데스는 알프스 산맥에 흐르는 청정수를 운송해 100% 자연수 그대로 판매해요. 평범함을 찾을 수 없는 제품과 프로모션에, 완벽을 기하는 퀄리티라니, 소비자에게 이보다 더 구미가 당기는 생수 브랜드는 이제껏 없었죠.


리퀴드 데스는 아마존에서 리뷰 1만개 이상, 평균 별점 4.6점(5점 만점)을 달성하며 입소문이 나요. 오프라인에서는 입점 조건이 까다롭다고 알려진 프리미엄 식료품점 홀푸드 마켓에도 입점하고요. 여기에 편의점(세븐일레븐), 대형마트(샘스 클럽), 식료품 체인점(스프라우츠 파머스 마켓) 등 다양한 형태의 매장에 진출하면서 소비자와 접점을 계속 늘려가죠.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성장한 덕분에 런칭 이후 3년 만에 회사 가치는 5억 2천 5백만달러(약 6,800억)원을 기록해요. 누적 투자금액도 1억 2천 5백만달러(약 1,600억원)을 달성했고요. 2022년에는 대기업도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광고계의 끝판왕 미국 슈퍼볼에 30초짜리 광고를 내보냈어요. 생수 회사가 이처럼 반전 있는 제품과 마케팅을 선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창업자 마이크 세사리오(Mike Cessario)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어요.


‘가장 지루한 제품을 가장 재밌는 방법으로.'


그는 원래 광고 기획자였어요. 넷플릭스 '기묘한 이야기', '나르코스', '하우스 오브 카드' 등의 바이럴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한 이력이 있죠. 창업 아이템으로 생수를 선택한 뒤, 그는 의문을 던졌어요. 모든 재밌는 기획과 광고들은 맥주나 에너지 드링크와 같이 일탈이 허용되는 브랜드에서만 나오고 생수 제품들은 안정적이고 재미없는 브랜딩만 하는 것이 이상했던 거죠. 


그리고는 생수를 힙하게 만들기 위해 생수에 파격을 입혔어요. 바로 강렬하고 파격적인 메탈, 펑크의 이미지를 말이에요. 메탈과 펑크는 카운터컬처*의 일종이에요. 카운터컬처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는 어렵지만 매니아적인 광팬이 있는 분야예요. 100명의 애매한 관심보다 1명의 매니아적인 팬심이 저력 있으니 리퀴드 데스는 메탈, 펑크를 통해 강렬한 이미지는 물론 두둑한 팬심을 쌓아나가기 시작해요. 물론, 파격적인 방법으로요.


*카운터컬처: 반문화 또는 대항문화. 1960년대 미국 히피들의 생활방식에서 처음 시작된 말로, 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에 반대하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문화.



1번 트랙. 어느 생수 회사의 영혼 매매 계약




리퀴드 데스의 홈페이지에는 다른 곳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메뉴가 있어요. ‘Sell your soul.' '영혼을 파세요'라니, 호기심에 클릭해보면 ‘한 인간의 영혼을 파는 계약’이라는 제목의 계약서와 함께 실제 계약을 하는 것과 같이 이름을 쓰고 서명할 수 있는 지면이 나타나요. 서명하는 순간부터 영혼은 리퀴드 데스의 소유가 된다고 명시되어 있기도 하죠.


리퀴드 데스 CEO에 따르면 2022년 1월 기준으로 영혼을 판 사람의 수가 20만명에 달한다고 해요. 얼핏 보면 무서운 계약서의 정체는 사실 리퀴드 데스의 커뮤니티인 컨트리 클럽 멤버십 가입 신청서이면서 뉴스레터 구독 동의서예요. 영혼 계약서를 통해 리퀴드 데스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팬을 모으고, 팬들은 영혼을 파는 듯한 재미를 경험할 수 있어요.



‘Sell your soul’ 링크 하단의 ‘Pay cash instead’를 누르면 약 1억 5천만원을 내고 커뮤니티 클럽에 가입할 수 있는 화면이 나타나요. ⓒLiquid Death


영혼을 팔고 들어온 팬들에게는 더 큰 혜택이 주어져요. 멤버십 가입 후 리퀴드 데스 제품을 구입하면 티셔츠 굿즈를 무료로 주기도 하고 한정판 굿즈를 남들보다 미리 만나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해요. 리퀴드 데스가 주최하는 프라이빗 파티와 이벤트에도 초대받을 수 있죠. 멤버십 비용이 무료임을 생각해보면 가입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물론 영혼을 팔지 않고 클럽에 가입하는 방법도 있어요. 12만 5,000달러(약 1억 5천만원)를 내는 결제 버튼을 누르는 거예요. 결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궁금해서 클릭해볼 그 한 명의 팬을 위해 실제 결제 페이지까지 연동해놓은 리퀴드 데스의 디테일이 돋보여요.



토니 호크의 피와 빨간 페이트가 섞인 한정판 스케이트보드. ⓒLiquid Death


그런데 리퀴드 데스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요. 계약에 서명하는 것을 넘어, 계약을 실행해 버리죠. 2021년에 리퀴드 데스는 전설적인 스케이트보드 선수 토니 호크(Tony Hawk)와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토니 호크가 영혼 계약서에 서명을 했고, 리퀴드 데스가 토니 호크의 육체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죠. 그리고는 토니 호크의 피를 뽑아 페인트와 섞은 뒤 이것으로 한정판 스케이트 보드를 제작했어요.


누군가에게는 고개를 저을 일이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지고 싶은 한정판이었어요. 토니 호크의 DNA가 섞인 500달러짜리 한정판 스케이트보드 100개는 20분도 안 되어 매진돼버려요. 영혼까지 디테일을 끌어모은 마케팅이었죠.



2번 트랙. 팬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철학

메탈, 펑크 등의 반항적이고 파괴적인 이미지를 컨셉으로 삼았으니 영혼이라거나 악마와 같은 요소를 브랜딩, 마케팅에 사용하는 게 이해가 돼요. 하지만 그저 컨셉으로만 승부하는 브랜드였다면, 소비자들이 이만큼의 호응을 보내지는 않았겠죠. 겨우 3년밖에 안 된 리퀴드 데스가 많은 사랑을 얻고, 1,700억 원에 달하는 투자금을 받으며, 슈퍼볼 광고까지 내보낼 수 있었던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어요. 바로 컨셉만큼이나 파격적이고 공격적이며 섬뜩하기까지 한 그들의 철학 때문이에요.


'플라스틱 병을 고향으로 (Loving Homes for Plastic)'



2021년에 리퀴드 데스에서 진행한 친환경 캠페인이에요. 그런데 이 캠페인, 일반적이지 않아요. 도발적이고 아슬아슬하죠. 캠페인 기간 내에 12캔 세트를 구매한 고객들은, 선결제된 택배 송장 스티커를 무료로 제공받아요. 물론 별도의 비용으로도 구매가 가능해요. 택배 송장에는 받는 사람의 이름과 받는 주소가 적혀 있어요. 수취인은 거대한 빨간 괴물(Giant Red Corp), 주소는 코카콜라 본사죠.


이 캠페인은 환경 오염의 주범인 플라스틱 병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거대한 빨간 괴물, 코카콜라를 저격한 캠페인이에요. 다 마신 코카콜라 병을 깨끗하게 씻어서 송장 스티커를 붙여 우편함에 넣으면 되니 간편하고, 코카콜라를 공격하는 느낌도 들어 재미있죠. 하지만 자칫 코카콜라와의 시비로도 번질 수도 있을 텐데 왜 이런 캠페인을 진행했을까요?



‘Loving Homes for Plastic’ 캠페인에 사용된 택배 송장 스티커. ⓒLiquid Death


음료 용기로 쓰이는 PET병은 2021년 기준으로 미국 내에서 약 26.6%만 재활용된다고 해요. 심지어 재활용률도 해마다 줄어 2020년에 28.9%, 2019년에 27.9% 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죠. 재활용률이 감소하는 이유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PET병을 수거해 다시 쓰는 비용보다, 새로 만드는 비용이 더 저렴해서 기업 입장에서 플라스틱을 재활용할 요인이 없어져요. 그렇게 재활용되지 않은 플라스틱 병은 그대로 매립되거나 자연을 떠돌아다니며 환경 오염의 주범이 되죠.


리퀴드 데스는 이 사실을 알고 소비자들에게 환경 오염의 경각심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리퀴드 데스답게, 착하기만 한 일반적인 캠페인은 사양했죠. 코카콜라라는 대기업을 저격하는 것이라 리스크를 감수한 캠페인이었지만, 이러한 리스크 덕분에 리퀴드 데스의 악동 이미지가 강화된 것은 물론이에요.



ⓒ시티호퍼스


친환경 철학은 제품에도 고스란히 드러나요. 리퀴드 데스는 모든 제품을 500ml 알루미늄 캔에 담겨 판매해요. 캔맥주 사이즈와 동일해 맥주를 마시는 느낌도 나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앞서 언급한 플라스틱 병과 달리 알루미늄 캔은 재활용률이 월등해요. PET병의 약 3배인 70% 가량이 재활용 되고 있고, 1888년에 처음 선보인 알루미늄 캔의 75%가 현재까지도 사용되고 있을 정도죠. 알루미늄 원료로 쓰이는 보크사이트를 제련하는 비용보다, 폐알루미늄을 재활용하는 방법이 비용과 에너지 면에서 효율적이기 때문이에요.


여기에다가 리퀴드 데스는 환경을 보호하는 단체까지 지원해요. 1개의 리퀴드 데스가 판매될 때마다 수익의 10%씩을 파이브가이어스(5Gyres), 썰스트 프로젝트(Thirst Project)와 같은 환경 단체에 기부해요. 리퀴드 데스를 마실 이유가 더욱 늘어나는 셈이죠. 이러한 리퀴드 데스의 철학에 공감하는 팬들이기에, 리퀴드 데스가 어떤 일탈 행동을 하더라도 호응해주고 따라주고 있어요.



3번 트랙. 맹물같은 굿즈는 이제 그만

뮤지션에게는 굿즈 판매도 중요한 수입원이에요. 1973년에 결성돼 40여년 활동한 미국 록밴드 키스(KISS)는 1억장이 넘는 음반을 판매했지만, 음반 수익보다 콘서트 등에서 판매한 굿즈 수익이 더 많다고 하죠. 


굿즈 판매가 아티스트에게 수익의 원천이라면 소비자에게는 아티스티와의 유대감을 보여주는 연결고리예요. 굿즈를 소유한 것만으로 아티스트와 더 친해진 기분이 들고, 아티스트의 자산을 개인적으로 갖게 된 느낌이 들거든요. 이제는 커뮤니티나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한정판 굿즈를 웃돈을 주고 사려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이죠. 직접 펑크 록과 데스 메탈을 연주하며 밴드 활동을 했던 리퀴드 데스의 CEO도, 팬을 위한 굿즈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어요.



밴드 KISS의 히트곡을 모아놓은 트랙리스트. ⓒHARD ROCK COLLECTION on YouTube


2022년 3월 기준, 리퀴드 데스의 굿즈 종류는 무려 92가지예요. 한달에 약 3개에서 5개의 굿즈 제품을 새롭게 출시하는데, 생수와 탄산수 등 제품 라인업은 전체 종류를 다 합쳐도 5가지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굿즈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어요. 


종류도 다양해요. 굿즈의 기본인 의류부터 패치, 포스터, 심지어 6,000달러짜리 음료 자판기 등 기상천외한 굿즈도 판매하고 있어요. 자체 굿즈들뿐만 아니라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도 활발히 해요. 의류 업체인 어반 아웃피터스(Urban Outfitters)와 의류를 출시하기도 하고, 시계 브랜드 닉슨(Nixon)과 한정판 시계를 내놓으며 그 영역을 확장해 가죠.



Urban Outfitters와 협업한 의류 굿즈. ⓒLiquid Death



Nixon과 함께 출시한 한정판 시계. 컨트리 클럽 멤버십 회원들만 살 수 있으며, 가격은 225달러에 판매됐어요. ⓒLiquid Death


가장 리퀴드 데스스러운 굿즈는 '귀여운 오염동물들(Cuties Polluties)'이라는 이름의 인형 시리즈예요. 이름만 들으면 귀여운 인형 동물들이 떠오르지만, 실제로는 환경 오염으로 고통받는 동물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굿즈죠.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박힌 쓰레기 거북이(Trashey the Turtle), 쓰레기 봉투로 고통받는 바다표범(Surfers the Seal), 그리고 플라스틱 병이 배에 박힌 쓰레기 고래(Wastey the Whale)가 그 주인공이에요.


이렇게 불편한 비주얼의 굿즈를 출시한 건, 환경 오염의 경각심을 충격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예요. 그동안 수많은 기업에서 진행한 자연 보호 캠페인은 사람들에게 각인되기나 바이럴되기 어려웠어요. 환경 오염의 심각성에 비해 메시지 자체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도 평범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리퀴드 데스는 충격요법을 도입해요. 이처럼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에 파격적인 비주얼을 입힌 덕분에 75달러의 한정판 인형들은 모두 매진되었고, 그중 50%의 수익은 바다를 정화할 수 있도록 기부했어요. 이 인형들을 100% 친환경 재료로 만든 것은 물론이구요. 



‘Cuties Polluties’ 인형 굿즈들. ⓒLiquid Death


리퀴드 데스의 굿즈 판매는 사업적으로도 의미가 있어요. 보통의 경우 굿즈는 마케팅용이에요. 매출을 발생시키기 보다는 비용을 쓰는 영역에 가깝죠. 하지만 2021년, 4천5백만달러(약 538억원)의 리퀴드 데스 수익에서 굿즈 판매 수익은 3백만 달러(약 40억원)에 달해요. 이쯤 되면 굿즈 판매가 하나의 비즈니스 모델로도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생수를 구매하는 사람들 중 50% 이상이 결제를 하면서 굿즈를 함께 구입한다고 하니 객단가를 높여주는 효과는 덤이에요.



보너스 트랙. 물에는 문제가 없다, 상상력의 문제일 뿐

리퀴드 데스의 창업자 마이크 세사리오는 광고를 기획하는 광고인이면서, 동시에 헤비 메탈과 펑크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의 멤버이기도 해요. 그래서 공연장을 자주 찾아다녔는데, 2008년에 미국의 음악 축제 중 하나인 랩드 투어(Wraped Tour)에 참여한 그는 재밌는 광경을 목격해요. 축제에 참여한 한 밴드 멤버가 에너지 드링크 캔에 담긴 내용물을 버리고, 빈 캔에 다시 물을 채워 마시면서 공연을 하는 모습이었어요.


그는 이유를 물어봤어요. 공연할 때는 갈증 해소를 위해 에너지 드링크보다 물이 더 필요한데, 이러한 뮤직 페스티벌을 후원하는 스폰서는 대부분 에너지 드링크 또는 맥주 회사라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을 듣게 되죠. 공연의 완성도를 위해선 물을 마셔야 하지만, 공연을 힙해 보이게 하기 위해서도 후원해주는 스폰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도 힙한 이미지의 스폰서 제품을 마셔야 한다는 거예요. 


이 이야기를 들은 마이크 세사리오는 뮤직 페스티벌에서 생수를 들고 있어도 힙해 보일 수 있고, 물 마시는 행위 자체를 힙하게 만들 수 있는 제품을 생각해내요. 그게 리퀴드 데스의 시작이었죠.


리퀴드 데스는 모두가 자신의 제품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자신의 기획과 철학에 공감하는 팬들에게 집중하죠.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려고 컨셉을 포기하기보다, 팬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컨셉을 공고하게 쌓아나가요.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강렬한 음악의 록 뮤직 페스티벌에서 모두가 리퀴드 데스의 생수를 마시며 공연을 즐기는 날이 올지도 몰라요. 물론, 죽음의 액체가 더 범람할수록 지구도 더 살기 좋은 곳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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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리퀴드 데스 공식 홈페이지

 Liquid Death, Spotify

 The Cult of Liquid Death, Eater

 ‘Cult following’: How Liquid Death sold $3M worth of merch last year, Modern Retail

 US PET bottle recycling rate continues to sink, Plastics Recycling Update

 티셔츠·콘돔·관…록밴드 키스의 가외수입, 이데일리

 The Genius Way Liquid Death Sells Canned Water, The Hustle

 Liquid Death taps Fiji Water alum as new chief operating offic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