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도 진화합니다. 이번 도쿄 위크에서는 2017년에 출간한 <퇴사준비생의 도쿄>에서 소개했던 매장, 공간, 브랜드, 기업 등의 그동안의 변화를 업데이트 해봅니다. 오늘 업데이트 할 브랜드는 조깅족을 위한 식당 ’도쿄 애슬리트 레스토랑‘입니다. <퇴사준비생의 도쿄>에서 소개할 때는 카노야 애슬리트 레스토랑이었는데 그 사이에 이름이 바뀌었어요.
도쿄 애슬리트 레스토랑은 조깅족을 위한 식당이에요. 런큐브를 갖춰 조깅하는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그들이 운동한 후에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구성했죠. 반응이 좋았어요. 운동하는 사람들이 찾는 식당이라면 뭔가 건강한 식단처럼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조깅족이 아니라 일반 직장인들도 이 식당을 찾기 시작했죠. 그렇게 웰빙 식당으로 진화하면서 런큐브 없이 오피스 빌딩에도 매장을 열면서 성장해 나갔어요.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의 타격을 크게 받았어요. 핵심이 되는 매장 3곳을 남기고 나머지 매장은 다 문을 닫았죠. 그럼에도 도쿄 애슬리트 레스토랑의 시도는 여전히 참고해볼 만해요. 고군분투하고 있는 도쿄 애슬리트 레스토랑을 다시 한 번 찾아가 볼까요?
도쿄 애슬리트 레스토랑 미리보기
• 애슬리트를 위한 레스토랑의 탄생
• 조깅족을 위한 도심 속 런베이스
• 웰빙족을 위한 더 큰 레스토랑으로
• 대중을 이끄는 마니아의 힘
‘건강을 측정한다.’
최초로 체지방계를 만든 ‘타니타’의 슬로건이에요. 측정기기 전문 기업답게 식사, 운동, 휴식, 질병 등 건강과 관련된 모든 것을 측정해요. 이 헬스케어 기업이 정작 자사 직원들의 건강에는 소홀했음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야심 차게 사내 식당을 열었죠. 500kcal의 저칼로리에 3g의 저염분 식단이 특징인데, 맛과 포만감도 놓치지 않았어요. 균형 잡힌 사내 식당의 식사 덕분에 타니타에는 과체중인 직원이 줄어들었고요. 1년 만에 무려 21kg을 감량한 직원도 있을 정도예요.
그저 직원 복지로 끝난 것이 아니에요. 타니타 사내 식당의 레시피를 모아 요리책을 출간했는데요. 이 책은 500일 연속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했고,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했어요. 숱한 화제를 뿌리던 타니타 사내 식당은 급기야 2012년에 마루노우치 지역에 일반인을 위한 ‘타니타 식당’을 오픈했죠.
사내 식당의 식단을 그대로 적용할 건 기본이에요. 여기에다가 타니타의 제품도 곳곳에 두어 타니타 브랜드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죠. 고객들에게 무료로 체지방을 측정해주고 상담도 해주며, 식사량을 조절할 수 있는 그릇과 체지방계 등의 상품도 팔아요. 또한 테이블마다 칼로리 측정계와 식사시간을 재는 타이머를 비치하고 있어요. 적당한 에너지를 적절한 시간 동안 섭취할 수 있도록 돕는 거예요.
오픈한 지 10년이 지난 2022년, 타니타 식당은 리뉴얼을 단행해요. 오피스가 밀집한 마루노우치 지역의 특성을 반영해 ‘일하는 사람의 건강’이라는 컨셉을 내세우죠. 기존과 달라진 점은 크게 두 가지예요. 하나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추가했어요. 이곳의 개인실에서는 타니타 식당의 식사를 먹으면서 일을 할 수도 있어요. 또 다른 하나는 자판기에서 도시락 구매를 해서 테이크 아웃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일반인을 위한 타니타 식당은 제휴 점포를 포함해 현재까지 7개 지점으로 늘었죠.
점심시간에 남녀노소로 붐비는 타니타 식당입니다. 오른편에 체지방 측정 상담 코너도 운영합니다. ⓒ타니타 식당
타니타 식당은 ‘건강을 측정한다’는 본업에 기반을 두고 웰빙 식당으로 포지셔닝하는 데 성공한 사례예요. 한편 같은 건물에 남다른 타기팅을 통해 웰빙 식당으로 자리 잡은 곳도 있어요. 매장 안에서는 정장 차림의 오피스족들만 눈에 띄는데도, ‘도쿄 애슬리트 레스토랑’이라는 이름을 버젓이 내건 곳이었죠. 애슬리트(Athlete, 운동선수) 없는 애슬리트 레스토랑의 사연이 궁금하다면, 1호점으로 시선을 돌려볼 필요가 있어요.
애슬리트를 위한 레스토랑의 탄생
타니타 식당만큼이나 도쿄 애슬리트 레스토랑(카노야 애슬리트 레스토랑으로 시작했으나 브랜드를 변경)의 시작 역시 남달라요. ‘체대 학생’들을 위한 식당으로 문을 열었거든요. 사연은 이래요.
카노야 국립체육대학에는 스포츠 영양학과 교수 나가시마 미오코가 있었는데요. 그녀는 학생들이 늦게까지 훈련한 후에 식사를 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 늘 안타까웠어요. 운동능력 향상을 위해서는 훈련 후 적절한 영양섭취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죠.
때마침 2020년 올림픽 개최지로 도쿄가 선정됐어요. 일본 전역에 스포츠에 대한 관심과 운동선수 후원 바람이 불기 시작했죠. 나가시마 미오코 교수는 이 기세를 몰아 학교, 지자체, 기업에 협력을 요청해요. 이에 일본 유일의 4년제 국립체육대학인 카노야 대학, 농산물이 풍부해 일본의 플로리다라 불리는 가고시마 현 카노야 시, 그리고 관동·관서 지방에서 40여 개 음식점 체인을 운영 중인 바르니바비가 힘을 모았어요. 이 산학관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2014년 4월에 카노야체대 앞에 오픈한 도쿄 애슬리트 레스토랑 1호점이에요.
카노야 애슬리트 레스토랑은 어느 식당보다 타깃 고객이 명확해요. 올림픽 꿈나무들인 카노야체대 학생들이죠. 설립 취지에 걸맞게 카노야체대 학생들은 단돈 500엔(일반인은 850엔)에 식사할 수 있어요. 싼 맛에 먹는 음식이 아니라 미오코 교수가 스포츠 영양학에 기반을 두고 고안한 검증된 식단이에요. 운동능력 향상에 주안점을 두었기에 다이어트나 단순 건강 식단과는 차별화되고요.
카노야 시의 제철 재료로 만든 밥, 국, 3가지 반찬을 한 세트로 구성하는데요. 밥은 2종류에서, 반찬은 15종류에서 고를 수 있어요. 15가지 반찬마다 영양성분과 함께 고열량, 고단백, 비타민, 저염분, 고칼슘, 섬유질 등을 구분해놓아 각자 필요에 맞게 선택할 수 있고요.
카노야 애슬리트 레스토랑의 메뉴입니다. 밥, 국, 3가지 반찬이 기본 구성입니다.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또한 훈련 후에도 마음 놓고 올 수 있도록 밤 10시 30분까지 운영해요. ‘10 over 9’(9를 넘어 10이 된다는 뜻으로, 현재의 나를 뛰어넘기 위해 특별한 시간을 가지자는 모토) 캠페인을 열어 레스토랑 이용액의 1%를 유망한 운동선수에게 후원하기도 하죠. 기부할 선수를 직접 선택할 수 있으며, 많이 기부한 사람들은 후원한 선수들과 친목회도 가질 수 있어요.
이렇듯 타기팅이 분명하니 포지셔닝은 자연히 따라와요. 그간 대부분 웰빙 식당은 다이어트, 유기농 등 ‘식단’만 강조했어요. 이와 달리 도쿄 애슬리트 레스토랑은 ‘운동’을 브랜드 정체성의 주요한 한 축으로 삼죠.
조깅족을 위한 도심 속 런베이스
카노야 시와 바르니바비는 프로젝트 시작 단계부터 더 큰 포부를 안고 있었어요. 카노야 시는 지역 농산물을 일본 전역에 알리고 싶었고, 바르니바비 역시 도쿄 진출에 야심이 있었죠. 하지만 전국구로 나가려니 전문 운동선수만 타깃으로 하기에는 시장 수요가 충분하지 않아요. 마냥 체대 앞에서만 점포를 열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리하여 도심 속 생활체육인 ‘조깅족’이라는 보다 현실적인 타깃으로 범위를 넓혔어요. 카노야점을 통해 검증된 시스템은 유지하되, 전략을 수정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했죠.
먼저 이름난 조깅 코스를 중심으로 점포를 확장하기 시작했어요. 2호점은 조깅족의 성지라 불리는 황궁 입구에 자리해요. 왼편에 고즈넉한 황궁과 연못을, 오른편에 고층 글래스 빌딩을 두고 달리는 천혜의 조깅 코스죠. 이 외에 3.5헥타르의 광활한 녹지에 자리한 시나가와점, 스미다 강을 끼고 16개의 다리를 지나는 료고쿠점 등 공공의 조깅 코스를 매장의 일부처럼 활용할 수 있는 곳에 점포를 열었어요.
조깅족의 성지인 황궁 코스 입구에 자리한 카노야 애슬리트 레스토랑 2호점입니다. ⓒ시티호퍼스
하지만 뛰는 길목에 있다고 조깅족이 절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에요. 그래서 더 강력한 유인을 위해 레스토랑과 함께 조깅족을 위한 런베이스 ‘런큐브’를 만들어요. 로커(Locker)나 운동복과 운동화 등을 대여해주고 샤워실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등 조깅 전후로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에요. 여기에 루프톱 라운지와 바비큐 설비도 이용할 수 있어 커뮤니티 이벤트까지 수용하는 복합 공간으로 거듭났죠. 런큐브에서 가볍게 준비하고, 조깅을 하고 돌아와 산뜻하게 샤워를 하고, 레스토랑에서 영양 만점 식사를 하고, 심신이 건강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이만한 풀코스가 또 있을까요?
1층은 레스토랑, 2~5층은 런큐브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티호퍼스
기존 시스템에도 디테일을 보강했어요. 도쿄 애슬리트 레스토랑은 밥 2종류에 밥의 양도 3단계로 나뉘며, 반찬도 15가지 중 3가지를 선택하게 해요. 조합에 따라 매일 새로운 식사를 할 수 있죠. 조깅은 기본적으로 매일 하는 운동이에요. 매일 와도 식사가 지겹지 않아야 하고, 지루한 식단으로 운동할 마음이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카노야 애슬리트 레스토랑의 철칙이에요. 이에 점포를 확장하면서 모듈화된 식단의 특성을 살려 주문 방식과 정보 안내 방식을 바꿨어요. 주문대에서 일일이 말할 것 없이 주문서에 체크해 제출하면, 천장의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순서대로 주문서가 접수돼요. 주문한 음식과 함께 칼로리와 영양성분이 기재된 영수증도 받아볼 수 있고요.
모듈화된 식당의 특성을 살린 주문서, 컨베이어 벨트를 활용한 주문 방식 등을 통해 운영 효율성을 높입니다. ⓒ시티호퍼스
운동선수 후원 캠페인 ‘10 over 9’도 보다 정교하게 설계해요. 런큐브, 그리고 식당의 운영과 유기적으로 연계한 거예요. 런큐브를 이용하려면 TEONA(TEn Over Nine cArd) 멤버십에 가입해야 하는데요. 이 멤버십을 ‘10 over 9’ 캠페인과 연계해 식당에서 지출한 금액의 1%를 기부할 수 있어요. 기부액과 후원하는 선수 등의 후원 상황은 앱에서 확인할 수 있고요.
그런데 이 앱은 개인의 건강관리 용도로도 그만이에요. 우선 카노야 애슬리트 레스토랑에서 실제 식사한 메뉴의 칼로리 및 영양성분을 확인할 수 있거든요. 또한 식당 메뉴 포함 10만 가지 이상의 음식에 대한 영양정보가 등록되어 있는데, 이는 업계 최고 수준이에요. 이렇듯 런큐브, 식단 관리 등 실용적인 용도로 앱을 사용하도록 유도하면서 캠페인을 적극적으로 노출해요.
웰빙족을 위한 더 큰 레스토랑으로
도쿄 애슬리트 레스토랑은 더 이상 운동선수나 조깅족의 전유물이 아니에요. 웰빙족들도 믿고 찾는 곳이 되었죠. 운동선수, 조깅족 등 비교적 높은 기준의 고객을 만족시킨 저력은 그대로 대중의 신뢰로 이어져요. 타깃을 좁혀야 타깃이 넓어지는 역설이에요. 그래서 이후에는 마루노우치점처럼 오피스 빌딩 내에 런큐브가 없는 매장도 냈어요.
런큐브가 없는 매장에서는 바쁜 직장인들을 위한 테이크아웃 메뉴도 곁들여요. 예를 들어 오사카점에서는 밸런스, 리커버리, 파워 등 5가지 컨셉의 세트메뉴와 단품 요리 메뉴도 판매해요. 오픈 테라스와 함께 공간이 구성되어 잇으니 흡사 브런치 레스토랑 같아요. 지금의 모습만 보아서는 애슬리트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지만, 그간 쌓아온 브랜드로 그 간극을 메우는 거죠.
오피스 빌딩 지하에 위치한 카노야 애슬리트 레스토랑 마루노우치점입니다. ⓒ시티호퍼스
이 외에도 도쿄 애슬리트 레스토랑은 디저트 카페, 헬스펍 등 여러 포맷으로 다양화하며 고객과의 접점을 늘려가고 있었어요. 2020년까지 레스토랑을 100개까지 오픈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속도는 계획보다 더뎠어요.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게 되죠. 바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경영 상의 심각한 타격을 받은 거예요. 이에 연구개발센터인 본점, 2호점인 칸다 니시키 지점과 런큐브가 없는 마루노우치 지점을 두고 나머지 매장은 폐업을 했어요.
대신 레스토랑에서 식사 판매 외의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한 몇가지 시도를 했어요. 하나는 쌀 판매예요. 도쿄 애슬리트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밥은 자체 개발한 ‘아스미’ 쌀로 지은 거예요. 퀴노아, 보리쌀 등 4가지 종류의 배아미와 가고시마현산 이쿠히카리를 블렌딩해 영양 만점이죠. 이를 레스토랑과 온라인에서 판매하고 있어요. 또 다른 하나는 매장 밖에서도 식사를 할 수 있게 테이크 아웃용 도시락도 만들어서 팔기 시작했고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도쿄 애슬리트 레스토랑은 과거에 목표했던 것처럼 다시 달려나갈 수 있을까요?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에요. 하지만 연구개발센터인 본점, 런큐브를 갖춘 2호점, 런큐브가 없는 마루노우치점 등 핵심 모델의 레스토랑들은 아직 남아 있으니 재기를 기대해볼 수도 있어요. 행여 과거처럼 달려나가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도쿄 애슬리트 레스토랑의 컨셉과 전략적 확장은 참고해볼 만해요. 전문성을 유지하면서 대중성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거니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 신발 시장의 사례를 들어 볼게요.
대중을 이끄는 마니아의 힘
캐주얼 스니커즈의 대표주자 ‘컨버스’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농구화 전문 브랜드였어요. 텐트에 사용되는 질긴 천과 마찰이 강한 고무바닥은 농구 코트 위에서 제격이었어요. 하지만 1980년대 들어 후발주자인 나이키 등이 고급 제품을 내놓을 때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고, 캐주얼 스니커즈로 방향을 선회하며 전문 스포츠화 시장에서 밀려나게 돼요. 컨버스화가 농구화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지금은 패션화의 모습만 남았죠.
한편, 나이키는 고기능성 러닝화로 출발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집에 나이키 제품 하나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중화의 길을 걷고 있죠. 그러면서도 세계 최고의 퀄리티를 지켜내요. NBA 선수들 발목에서 빛나는 나이키 로고를 보면서 나이키의 농구화를 산 고객도, 캐주얼화를 산 고객도 흐뭇해지죠. 나이키가 전문성과 대중성을 모두 지켜낼 수 있었던 이유는 제품 혁신과 제품 확장을 게을리하지 않은 데 있어요.
대중화라는 결과만 놓고 보면 같지만, 한쪽은 전문성을 내주었고 한쪽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어요. 전문성을 잃지 않으면서 대중화되기는 어려워요. 바꿔 말하면, 전문성에 기반을 둔 대중성은 막강하죠. 도쿄 애슬리트 레스토랑이 오피스 빌딩에서도 ‘애슬리트’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예요.
Reference
• 건강한 식사도 하고 체지방도 측정해보고, 체중계 회사의 직원식당 타니타 식당, 도쿄동경 베쯔니 블로그
• アスリートを食から応援する「鹿屋アスリート食堂」1号店が鹿屋にオープン, Cyclowird
• 食と運動の融合施設「10 over 9」誕生東京・神田に「鹿屋アスリート食堂」オープン 一汁、一飯、三主菜のバランス食を提供, Cyc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