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사려면 면접을 봐야 한다? 루머까지 돌게 만든 일본의 롤스로이스

토요타 센추리

2024.09.26




‘토요타의 프리미엄 브랜드’하면 어떤 이름이 떠오르나요? ‘렉서스’라는 이름이 생각날 거예요. 그런데 토요타에는 렉서스보다 한 수 더 위인 브랜드가 있어요. 바로 ‘토요타 센추리’예요. 대중에게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일본 천황의 의전 차량으로 쓰일 정도로 클래식하고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 브랜드예요.


‘토요타’하면 사실 원가 절감을 극대화하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생산 방식으로 잘 알려져 있어요. 가성비가 좋은 양산형 자동차들을 생산해 세계에서 자동차를 가장 많이 판매하는 회사이기도 해요. 반면 토요타 센추리는 기존 토요타와는 완전히 반대의 가치를 추구하는데요. 장인 정신, 전통 방식, 수작업 등 효율과는 거리가 먼 방법으로 자동차를 만들죠.


토요타가 이런 차를, 이런 방식으로 만드는 것도 의문스럽지만, 무엇보다 토요타 센추리에 대한 시장 반응은 더 의외예요. 해외에서는 ‘재패니즈 롤스로이스’,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다는 의미에서 ‘선악과’ 등으로 칭송하거든요. 첨단 기술을 도입하거나, 최신식 외관을 갖춘 것도 아닌데 말이죠. 토요타 센추리는 어떤 자동차고, 자동차 마니아들은 왜 토요타 센추리를 추앙하는 것일까요?


토요타 센추리 미리보기

 원가 절감의 신이 선택한 단 하나의 예외

 자동차 어벤져스가 빚어내는 클래식의 기품

 바뀌지 않는 디자인? 오히려 좋아!

 변화에도 클래스가 있다




요즘 차를 고를 때 ‘승차감’ 못지 않게 중요한 게 있어요. 바로 ‘하차감’이에요. 승차감과 반대로 자동차를 탈 때가 아니라 자동차에서 내릴 때 운전자가 얼마나 만족스러운지를 뜻하는 말이죠. 그런데 차에서 내릴 때의 만족감이라니, 어떤 걸 말하는 걸까요? 차가 제공하는 물리적인 만족감이 아니라, 운전자가 내릴 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주목되는 데에서 오는 심리적 만족감을 의미해요. 비싼 차, 고급 차를 탈 수록 이런 하차감이 높기 마련이에요.


그렇다면 하차감이 좋은 고급 차라는 건 어떤 걸까요? 차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어떤 고객’을 고려하는지를 이해하면 고급 차를 이해할 수 있어요. 보통의 경우, 차를 구매하려고 하는 고객은 운전자의 관점에서 차를 골라요. 운전에 재미를 줄 수 있는 조향감은 어떤지, 공조 장치나 편의 시설은 괜찮은지, 연비가 좋은지 등 직접 차를 몰 때 얼마나 편하고 운전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지 고려하죠.


이런 고객들을 타겟으로 만든 차를 ’오너 드리븐(Owner-driven)‘이라고 해요. 운전석에 앉는 운전자를 타깃으로 만든 차죠. 예를 들자면 제네시스에서 생산하는 G70 같은 차량이 고급 차 중에서 오너 드리븐 차량이라고 할 수 있어요.


ⓒGenesis


그런데 차는 운전자만 타는 게 아니에요. 반대로 설계 과정에서부터 운전석이 아니라 뒷좌석에 앉는 사람만을 고려하는 차가 있어요. 주로 의전을 위한 차량이거나 일명 ’회장님‘들을 위해서 설계되는 차량이죠. 운전을 직접 하지 않고 전문 기사를 고용하는 고객들을 위해 뒷좌석의 편안함을 1순위로 생각하는 거예요. 주로 편안한 승차감을 위해 후륜 구동을 채택하고, 노면 영향을 덜 받을 수 있게 차의 길이도 길어요. 그리고 많은 편의시설이 운전석이 아닌 뒷좌석에 집중되어 있어요.


이런 차는 ’쇼퍼 드리븐(Chauffeur-driven)‘ 자동차라고 해요. ‘쇼퍼(Chauffeur)’는 영국 왕실의 마부를 칭하던 말로 오늘 날에는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운전기사를 뜻해요. 즉, 전문기사가 운전해주는 자동차인거죠. 쇼퍼 드리븐 자동차 중 단연 끝판왕이라 불리는 브랜드가 있어요. ‘어센틱 럭셔리(Authentic Luxury)’를 추구하는 초호화 브랜드, ‘롤스로이스’예요. 심지어 많은 자동차 브랜드가 반자율주행 기술을 연구할 때, 어차피 자신들의 고객은 운전을 직접 하지 않기 때문에 반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할 정도죠.


롤스로이스의 시그니처 코치 도어. 뒷좌석에 타는 승객의 편리한 탑승을 위해 만들어졌어요. ⓒRolls-Royce


그런데 이런 쇼퍼 드리븐 차량을 만드는 건 롤스로이스 같은 초호화 자동차 회사 뿐만이 아니에요. 일본의 국가대표 자동차 회사, ‘토요타’에서도 만들죠. 토요타가 보유하고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 ‘렉서스(Lexus)’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렉서스는 대부분 오너 드리븐 자동차를 만들거든요.


오늘 소개할 브랜드는 대중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토요타 센추리(Toyota Century, 이하 센추리)’예요. 토요타 센추리는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기만의 아이덴티티를 지키며,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오직 쇼퍼 드리븐 차량만을 생산하고 있어요. 특유의 장인정신과 전통을 담은 토요타만의 럭셔리, 센추리를 알아볼까요?


ⓒToyota



원가 절감의 신이 선택한 단 하나의 예외


일본 기업들에게는 자원 절약을 위한 ‘5S 운동’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5S는 정리(Seiri)·정돈(Seiton)·청결(Seiketu)·청소(Seisou)·시쓰케(Situke)를 의미하는 일본어 발음의 머리글자를 딴 표어예요. 시쓰케(躾)의 경우 앞의 네 가지 S를 잘 지키기 위한 습관과 마음가짐을 일컫는 일본어죠. 우리나라에선 익숙하지 않은 이 표현은 ‘몸을 올바르게 유지하는 태도나 규율’이라는 뜻으로, 일본에서 만들어낸 한자예요.


토요타는 이 5S 정신을 넘어 절약을 위해 자신들만의 생산 방식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원가 절감에 진심인 기업이에요. 토요타가 직접 만들어낸 생산 방식인 ‘TPS(Toyota Production System)’가 대표적이죠. TPS는 생산, 시간, 운송, 재고 등 모든 방면에서 낭비를 줄이기 위한 시스템으로 크게 JIT(Just In Time)와 자동화로 구성되어요.


JIT란 필요한 것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만큼 생산한다는 원칙이에요. 공정과 공정 사이에 필요한 부품의 수를 도면화해서 노동자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했죠. 이 방법으로 불필요한 잉여 부품과 재고를 줄인 무재고 생산 방식이에요.


여기에 최대한 공정을 자동화하고 인력을 최소화하는 노력 끝에 원가를 대폭 절감하는 데에 성공했죠. 토요타는 이 방식으로 가격우위와 뛰어난 품질로 완성차 시장에서 입지를 다졌어요. 덕분에 소비자들에게 질 좋은 자동차를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가성비 좋은 브랜드로 유명해질 수 있었죠.


토요타가 이런 생산방식을 도입한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보통 기업이 프라이싱을 할 때 원가에 목표 이윤을 가산하는 것과 다르게, 토요타는 가격을 철저히 시장 경제에 따라 소비자가 결정하는 고정된 상수라고 인식해요. 그렇기 때문에 이윤을 높이기 위해 생산 원가를 최대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했죠. 그 결과 개발한 시스템이 바로 TPS였어요.


그런데 이렇게 원가 절감을 강조하는 토요타가, 어떻게 일본 최고의 쇼퍼 드리븐 자동차를 만들게 되었을까요? 센추리는 일단 원가 절감과는 거리가 멀어요. 모든 조립 과정을 장인들이 직접 수작업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인건비도 높고, 부품도 최상급만 고집해요. 그 결과 센추리는 1대에 최소 2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가격이 높죠. 저렴한 가격과 좋은 품질로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토요타는 왜 센추리라를 만들게 되었을까요?


그 계기를 찾기 위해 토요타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 볼게요. 토요타는 원래 자동차 회사가 아니었어요. 일본 산업 혁명이 시작되던 메이지 시대 때 처음으로 방직기를 만들던 회사였죠. 방직기를 생산하면서 얻은 노하우로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토요타 자동차의 시작이었어요. 이후 1967년, 토요타 그룹의 창립자인 토요타 사키치의 출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고급 세단을 출시했어요. 이게 바로 100년을 뜻하는 이름의 ‘센추리’예요.


당시 토요타는 창립자를 기리는 이 자동차를 해외에서 제작되던 고급 세단들과 경쟁할 수 있는 일본만의 최고급 세단으로 만드는 걸 목표로 했어요. 토요타가 가지고 있는 기술력과 디자인을 총 동원해서 클래식한 세단을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어요. 출시 후 6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처음 출시했던 당시의 디자인을 계승하면서 우아한 자태를 지키고 있죠.


1세대 센추리 ⓒToyota



자동차 어벤져스가 빚어내는 클래식의 기품


모든 센추리 자동차들은 타하라 시에 위치한 토요타 타하라 공장에서 만들어져요. 1,500명 정도의 노동자가 근무하는 이 공장에서 센추리 조립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은 단 40명에 불과하죠. 모두 토요타 사내에서 실시하는 실기, 필기 시험을 통과한 프로 중 프로들이에요. 1960년대 출시 당시의 공정대로 모든 조립 과정을 사람의 손으로 하기 때문에 장인들이 필요한 거죠. 조립 실력과 관련 지식은 기본, 센추리의 역사까지 빠삭하게 알고 있는 토요타 최고의 직원들만 센추리를 만들 수 있어요. 오직 센추리만을 위해 선발된 자동차 어벤져스죠.


타하라에 위치한 센추리 공장에 걸린 명패. ‘센추리의 자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말 아래 ‘세계 최고의 차’라는 자부심 넘치는 문구가 함께 적혀있어요. ⓒToyota


이렇게 전문적인 직원들이 모여 하나하나 손으로 제작하는 센추리는 직원 선발 과정보다 더 엄격한 기준으로 만들어져요. 예를 들어, 일반 라인 공정에서 생산되는 차들의 경우 볼트 하나를 조이는 데 걸리는 시간은 5초, 허용되는 토크 렌치 오차 범위도 20% 내외예요. 하지만 센추리의 경우 오차 범위 5% 이내의 정확한 힘으로 볼트 하나하나 정밀하게 작업해야 해요. 그래서 숙련된 조립공도 볼트 하나를 조이는 데에 1분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을 정도죠.


ⓒToyota


이런 숙련공들은 센추리를 어떻게 만드는 걸까요? 먼저 차의 기본적인 뼈대, 섀시(Chassis)가 공장에서 생산되면, 섀시에 여러 부품들을 전문가들이 손으로 직접 조립해요. 그리고 차체(Body)의 외형도 전문가들이 전부 손으로 깎아내요. 거울처럼 매끄러운 표면과 센추리 특유의 유려한 사이드 라인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죠. 


ⓒToyota


센추리의 사이드 라인 형태는 1세대 센추리부터 이어져오는 클래식한 직선의 디자인을 현대의 곡선과 절충한 시그니처 디자인이에요. 이 라인을 만들기 위해 장인들은 일본 전통 목공예 방식인 키쵸멘 (几帳面)을 참고한 공법을 사용하는데요. 일본 헤이안 시대부터 쓰였던 이 목공예 방식은 귀족들이 쓰던 칸막이를 조각하던 방식이죠. 모서리를 둥글게 만들면서도 모서리의 직선적인 각이 죽지 않도록 도드라지게 깎는 방식이에요. ‘키쵸멘’이라는 말이 오늘날 세심함, 꼼꼼함을 뜻하는 표현으로 쓰일 정도로 굉장히 어렵고 섬세한 작업이죠.


차체 라인을 담당하는 기술자들이 사용하는 맞춤 연장 ⓒToyota


차체의 도장 과정도 남다른데요. 보통 양산차 도장은 4겹으로 이루어지지만, 센추리는 무려 7겹의 도장을 통해 특유의 짙은 검정색을 만들어요. 이 과정에서 일본 전통 옻칠 방식에서 빌려온 방식을 사용해요. 도장 한 겹을 칠할 때마다 물을 사용해서 도장면을 최대한 매끄럽게 만드는 방법이죠. 게다가 플라스틱으로 제작하는 범퍼까지도 사포질로 0.02미리의 표면 두께를 0.002미리까지 갈아내요. 최대한 매끄럽게 만들고 도장을 하기 위한 거예요. 로봇이나 첨단 기술보다 더 섬세한 손길이 모여 센추리만의 깊은 색감과 거울처럼 매끄러운 표면이 완성돼요.


ⓒToyota


여기에 센추리의 엠블럼은 화룡점정이에요. 센추리는 ‘봉황’ 엠블럼을 사용하는데요. 봉황은 일본 왕실의 상징으로 왕실의 공식 의전차량을 만드는 센추리의 자부심을 담았어요. 조각 장인이 서른 개가 넘는 조각칼을 활용해 에도 시대부터 가구나 도검을 만들던 ‘에도 초킨’ 방식으로 엠블럼을 빚어내요.봉황의 깃털 한 올까지 디테일하게 살아있죠.


ⓒToyota


이번에는 차 내부 디자인을 볼까요? 100% 일본 생산 프리미엄 세단이라는 수식어답게 센추리의 내부 공간도 일본의 문화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문과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패턴은 일본 건축물에 쓰였던 문양이 쓰였고, 일본 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목재 가공 기술도 들어갔어요. 야마하 피아노에서 사용하는 원목 가공 기술까지 적용했죠.


ⓒToyota


ⓒToyota


이렇게 어벤져스 제작자들의 손에서 한 대의 센추리가 완성되어요. 그런데 여기에 센추리만의 과정이 하나 더 있어요. 바로 ‘센추리 히스토리 북’을 만드는 일이에요. 생산된 차 별로 모든 생산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공장에 보관해요. 어떤 차량이 어떤 장인의 손을 통해 어떻게 제작되었는지 기록해, 장인들이 세대 교체가 되어도 차량 관리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에요. 양산형 자동차가 아니고 수공으로 소량 생산하는 자동차이다 보니 차마다 부품의 사이즈나 종류 등이 다를 수 있거든요. 이 편차를 기록해 사후 관리까지 완벽을 기울이고 있어요.


ⓒToyota


센추리 공장에서 보관중인 히스토리 북 ⓒToyota



바뀌지 않는 디자인? 오히려 좋아!


센추리가 클래식이 된 데에는 거의 변하지 않는 디자인도 큰 역할을 해요. 출시 이후, 6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딱 2번의 풀 체인지(Full change)*를 진행했고 현재 생산되고 있는 센추리가 3세대에 불과하죠. 한국의 제네시스에서 2015년에 출시한 쇼퍼 드리븐 세단인 G90이 벌써 3번의 풀체인지를 통해 4세대를 생산하고 있어요. 이에 비하면 센추리가 얼마나 변화에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어요.


*풀 체인지: 기존에 모델의 디자인, 상품성, 성능 등 차량의 전반적인 사항을 변경해서 세대를 바꾸는 것을 의미해요.


센추리는 1967년 처음 출시될 당시 토요타의 기존 라인업에 있던 세단 ‘크라운’을 기반으로 했어요. 크라운을 업그레이드한 고급 세단으로 출발한 센추리 1세대는 이후 1997년까지 디자인을 유지했어요.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엔진 업그레이드와 사소한 외관 업데이트를 제외하고는 큰 변화없이 계속 만들어졌죠.


1세대 센추리 ⓒToyota


30년이 지나서야 센추리는 처음으로 풀 체인지를 감행했어요. 풀 체인지이긴 하지만 외관상으로는 큰 변화 없이 기존의 클래식한 무드를 고수했어요. 하지만 엔진에서 큰 차이가 생겼죠. 토요타는 12기통 엔진을 개발해 2세대 센추리에 사용했어요. 일본 최초로 12기통 엔진을 장착한 차량이었죠. 이 엔진은 기존 토요타 차량에 쓰였던 직렬 6기통 엔진 두개를 V자로 배열해 만들어요. 6+6의 독립적인 형태로 만들어져 한 쪽이 고장나더라도 반대쪽 6기통의 동력으로 계속 운행이 가능해요.


이후 3세대 센추리가 다시 V8 엔진으로 돌아가면서, 2세대 센추리를 추앙하는 마니아들을 만들어 냈어요. 특히 센추리 매물을 찾기 어려운 일본 이외 국가에서는 2세대 센추리를 ’선악과(Forbidden Fruit)‘에 비유한다고 해요. 클래식하고 멋진 차이지만, 가질 수 없다는 의미에서요.


2세대 센추리 ⓒToyota


토요타의 기술력을 보여준 2세대 센추리도 21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유지됐어요. 이후 2018년부터 생산되고 있는 3세대 센추리는 한 가지 의아한 선택을 해요. 2007년에 개발된 V8 하이브리드 엔진을 사용한 거예요. 토요타가 최신 하이브리드 엔진 기술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개발된 지 10년도 넘은 하이브리드 엔진을 센추리에 사용했다는 게 의문이 들어요.


하지만 이는 센추리의 정체성을 위한 토요타의 의도적인 선택이었어요. 센추리 담당 개발 부서는 ‘센추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망가지지 않는다’는 원칙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요. 그래서 매번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기 보다는 오랫 동안 성능이 검증된 기술만을 적용해 고장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고자 했어요.


3세대 센추리 ⓒToyota



센추리의 클래식함과 신뢰성, 그리고 그 상징성에 힘을 실어주는 사실이 하나 더 있어요. 바로 일본 천황의 공식 의전 차량으로 쓰이고 있다는 건데요. 천황의 차이기 때문에 센추리의 의미가 더 견고해지기도 하지만, 반대로 센추리이기 때문에 일본 황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죠. 특히 천황이 공식 행사 때만 타는 센추리는 ‘센추리 로얄’이라고 불려요. 일반 센추리보다 전체적인 길이도 더 길고, 방탄 기능까지 탑재했죠. 이 밖에도 해외에 거주 중인 일본의 외교관들에게도 센추리가 제공되기도 해요. 해외에서 ‘재패니즈 롤스로이스’, ‘열도의 롤스로이스’ 등의 수식어를 얻는 데에 한 몫을 했죠.


일본 황실이 선택한 자동차이기 때문일까요? 일본에서는 센추리와 관련된 일종의 ‘도시 전설’이 있어요. ‘센추리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절대 판매하지 않는다’, ‘일반인들은 센추리 카탈로그조차 받을 수 없다’, ‘센추리를 사려면 면접을 봐야한다’ 등의 이야기가 돌죠. 하지만 이런 말들은 소문일 뿐이에요. 일반 소비자들도 구매가 가능하죠.


그런데 돈만 있다고 아무나 살 수 있는 건 또 아니에요. 실제로 센추리는 잠재 구매자를 검증해요. 한 때 센추리는 야쿠자가 많이 타는 차라는 불명예스러운 소문이 있었어요. 이후 센추리는 구매하는 사람이 반사회적 인사거나, 불법적인 일에 연루되진 않았는지, 혹은 리셀을 목적으로 구매하는지 등을 검증한다고 해요. 자동차의 품격을 지키기 위해 과감히 매출을 포기하는 셈이에요. 전설 다운 선택이에요.



변화에도 클래스가 있다


그런데 최근 럭셔리 자동차 시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어요. 세단이나 스포츠카를 주로 출시하던 럭셔리 브랜드들이 SUV를 생산하기 시작한 거예요. 콧대 높은 슈퍼카 브랜드인 페라리에서도 역사상 최초의 SUV인 ‘페라리 푸로산게’를 출시했어요. 롤스로이스마저 ‘컬리넌’을 출시하면서 변화의 바람에 탑승했죠.


푸로산게 ⓒFerrari


컬리넌 ⓒRolls-Royce


2023년, 센추리도 이러한 흐름에 발맞추는 듯한 행보를 보였어요. ‘토요타 센추리 SUV’를 출시한 거예요. 하지만 이는 단순히 SUV를 선호하는 트렌드에 휩쓸린 게 아니에요. 기존 고객들의 니즈를 반영한 결과죠. 토요타는 센추리의 고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 새로운 시대의 리더들은 어떤 자동차를 원하는지 조사했어요. 고객들은 코로나19 이후, 화상 회의, 글로벌 미팅들이 많아져 차 안에서도 회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더 큰 실내공간과 디스플레이, 그리고 정숙성이 필요하다고 답했어요.


토요타는 이러한 고객들의 니즈를 반영하여 SUV를 만들게 된 거예요. 그리고 쇼퍼 드리븐 자동차 브랜드답게 뒷좌석에 앉을 고객의 편의성을 극대화하는 ‘센추리다움’에 더 집중한 결과물을 선보였죠. 즉, 트렌드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센추리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선택인 셈이에요.


ⓒToyota


ⓒToyota


앞으로는 내수용으로만 생산하던 방침에도 변화를 고려하고 있어요. 지속적인 요청으로 해외 수출도 검토 중이라고 해요. 재밌는 점은 이들이 내건 목표 판매량은 하루 3대 기준, 월 30대, 연간 360대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2023년 기준, 센추리보다 가격이 두 배 가량 비싼 롤스로이스도 6천 대 이상 팔린 것을 감안하면 매우 낮은 목표임을 알 수 있어요. 이는 한정된 인원이 수작업으로 공들여 만드는 센추리의 생산량을 반영한 목표치일 거예요. 센추리에게 매출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센추리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클래식한 멋과 자국의 문화를 담아낸 센추리의 자부심을 더 많은 국가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요?






Reference

Toyota Rolls Out First Fully Redesigned Century in 21 Years

토요타 홈페이지

A Century for the Next Century--Evolving Alongside Diversifying Values

The master craftsmanship of the Century, Japan's only chauffeur-driven car

This is No SUV--Developer's Vision Behind the New Century

#14 Tsubasa Yamanaka, the Master Plastics Polisher Behind Toyota's Stunning Finishes

#16 Master Inspector Moriaki Higa, the Last Line of Defense Upholding the Century's High Standards

#17 Tatsuya Kaneko, the Sumikake Master with an Eye for Beautiful Wood Finishes: Part 1

#17 Hikaru Ubukata, a Master of Decorative Engineering who Gives Shape to Designers' Ideas

컨버터블로 변신한, 토요타 센추리 SUV

단 40명, 볼트 체결만 1분. 복잡하고 까다로운 토요타 센추리 생산 과정

토요타 센추리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The Best Car In The World: Building The Toyota Century

Modern Classic: Toyota Century

[르포] ‘53초마다 車 1대 뚝딱’…그랜저ㆍ쏘나타 생산기지 현대차 아산공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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