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이 ‘얼굴 그림’의 정체

요지야

2023.03.22

교토에는 관광객들이 방문하면 필수 아이템처럼 사가는 선물이 있어요. 뷰티 브랜드 '요지야'의 제품이에요. 요지야는 게이코와 마이코들을 위한 화장품으로 출발했어요. 두꺼운 화장으로 늘 땀과 유분기가 많은 이들의 피부를 진정시키기 위해 만든 기름종이가 히트를 치면서, 천연 성분 화장품들도 덩달아 인기를 얻었죠. 그리고 다른 화장품 회사라면 사이드로 밀려나곤 하는 빗, 거울, 파우치 등의 잡화류와 피부 케어 제품들을 대표로 내걸면서 요지야만의 오리지널리티를 구축했어요.


어느덧 세상에 나온 지 119년. 그런데 이 오래된 화장품 브랜드의 입점 전략을 보면 흥미로운 구석이 있어요. 교토 안에만 7점의 매장을 두고, 밖에는 상설 매장을 내지 않고 있거든요. 그런데도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몰라요. 해외 여행 사이트에선 늘 교토에서 꼭 사야 하는 쇼핑 리스트 상위에 있죠. 특별히 뛰어난 색조 화장품을 출시하는 것도 아니고, 기술과 접목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에요.


도대체 요지야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길래, 전 세계의 방문객을 '여전히' 끌어당기고 있는 걸까요?


요지야 미리보기

 교토의 마스코트가 된, 게이샤의 추억

 여성의 얼굴이 커피컵에 둥둥 떠오른 이유

 관광에 의존하는 대신 점점 더 로컬로

 교토 태생 브랜드가 교토 안에서 확장하는 법




키엘, 바세린, 존슨즈 베이비, 로레알, 니베아, 폰즈, 겔랑, 시세이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제각각처럼 보이는 이 뷰티 브랜드들은 100년 기업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요. 이들의 특징을 간단히 훑어볼게요.


키엘은 해외 여행을 떠나면 약국에서 꼭 사야 하는 자연주의 화장품으로 유명해요. 존슨즈 베이비는 최초의 베이피 파우더를 시작으로, 아기가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순한 가족용 화장품의 대명사죠. 바세린, 니베아는 피부 보습과 부담이 되지 않는 가격으로 누구나 한번쯤 사용해본 화장품일 거예요. 로레알은 16개 럭셔리 브랜드의 갓파더이기 이전에 '염색 하면 로레알'이라는 공식이 떠오를 정도로 헤어 케어에 특화된 브랜드고요.


이 브랜드들은 현재 디지털화, 인수합병, 신선한 D2C 전략으로 새로운 100년을 맞이하고 있어요. 앞서 시세이도가 가상인간 앰배서더를 두고 매장에서 AR로 가상 메이크업 서비스를 시행한다면, 로레알은 랑콤, 비오템, 조르지오 아르마니, 입생로랑 등 꾸준하게 뷰티 브랜드들을 꿀꺽꿀꺽 삼키며 몸집을 키웠어요. 니베아와 바세린은 원브랜드숍, 백화점, 약국 등 고전적인 루트를 넘어 다이소 같은 균일가 숍으로도 활로를 넓히고 있고요.



요지야 킨카쿠지점 ⓒ요지야


여기에다가 한 곳도 소개하자면 교토에서 시작한 브랜드 ‘요지야’가 있어요. 그런데 이 기업들과는 다른 면이 있죠.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불리지도, 디지털을 두 팔 벌려 환영하지도, 매장을 확장하지도 않거든요. 오직 교토에만 7개 매장을 두고, 애써 교토 밖으로 매장을 내려 하지 않아요. 한때 도쿄 시부야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긴 했지만 2017년 폐점했어요. 다만 나리타와 하네다 공항, 해외 백화점, 박람회, 편집숍 등에서 특설 매장을 열긴 해요.


성장할 만한 시도는 쏙쏙 피해 갔는데, 119년 동안 살아남았어요. 그냥 살아남기만 한 게 아니라, 교토 하면 떠오르는 지역 명물로 자리매김했죠. 비결은 무엇일까요? 다른 100년 뷰티 거인들과 요지야의 공통점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어요. 이들 모두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처럼 요지야에게도 특별한 꼬리표가 있거든요. 요지야의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 바로 게이샤예요.



교토의 마스코트가 된, 게이샤의 추억

영화 '게이샤의 추억'에는 소녀 치요가 아무것도 모른 채 어딘가로 실려가 게이샤가 되는 과정이 그려져요. 치요에게 게이샤의 꿈을 안긴 장소는 교토예요. 교토는 예부터 공연 예술이 유독 번성했었죠. 그중에서도 교토의 번화가 기온은 일본에서 손꼽히는 화류계 거리예요. 게이샤로 데뷔하기 위해 5년 정도 수련하는 소녀를 마이코라고 부르는데요. 기온은 이 마이코와 게이샤들이 밀집해 활동하는 거리로, 지금까지도 명성을 유지하고 있어요.



ⓒPixabay


게이샤에게도 일종의 유파가 있어요. 교토에만 5가지가 있죠. 이들의 진수를 가리는 대회 '미야코오도리'와 '가모가와오도리'도 매년 봄 교토에서 열려요. 참고로 교토에선 게이샤를 게이코라 불러요. 이름만 다를 뿐 하는 일은 같아요.


요지야는 이 게이코들을 위한 화장품에서 출발했어요. 시작은 1904년. 손수레에 무대용 화장품을 싣고 다니며 행상을 하던 구니에다 시게오가 극장가 인근에 '구니에다 상점'을 열었어요. 연극 배우들을 위한 무대용 루즈, 파우더, 거울 등의 잡화를 판매했는데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은 건 1920년대 '아부라토리가미'를 출시하면서예요.



아부라토리가미 ⓒ요지야


아부라토리가미는 일본 특수 종이를 반복적으로 두드려, 종이의 섬유 결을 살린 덕에 높은 흡수력을 자랑하는 기름종이에요. 배우들과 더불어 짙은 화장 때문에 땀과 유분기가 많았던 교토 게이코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죠. 이후 요지야는 교토의 독특한 화장 문화를 배경으로 입소문이 나며 기온 거리에 두 번째 매장을 내요.



요지야 기온점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기름종이와 몇 가지 제품으로 유명해졌지만 거의 100년 동안 요지야의 주력 사업은 오더 메이드였어요. 시세이도, 코바야시 언리미티드 파트너십(코세의 전신), 미쯔요시, 가네보 같은 일본 주류 화장품 고객사가 원하는 대로 제품을 만들어줬어요. 그러다 1990년대 대대적인 변화를 감행했죠. 오리지널 제품을 개발한 거예요.



ⓒ요지야


어떤 제품을 만들었을까요? 배우와 게이코를 위한 화장품에서 출발한 만큼, 모든 제품이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는 천연 성분을 고집했어요. 자극성 불순물을 제거한 세정제, 천연 보습 성분 세라신을 배합한 크림, 일본 전통 색조를 활용한 루즈, 붓으로 화장품을 찍어 바르는 게이코들의 전통 화장법을 고려한 다양한 브러쉬 제품들.



요지야 기온점 ⓒ시티호퍼스


그 외에도 고급 플로럴 향수, 손거울, 참빗, 손수건, 파우치를 대표 상품으로 내걸었어요. 다른 화장품 회사라면 사이드 제품군에 가깝지만, 요지야에선 이런 기초 제품과 잡화류가 마스코트가 됐어요. 누구보다 가장 두꺼운 화장을 해야 하는 게이코들에게 필요한 건, 피부를 보호할 가장 순한 화장품이었으니까요.



여성의 얼굴이 커피컵에 둥둥 떠오른 이유

초기에 판매 대상을 배우, 게이코로 한정했기 때문에 대중에게까지 사업을 확장하지는 않았어요. 게다가 상당수 제품이 수작업으로 만들어져서 빠른 확장을 꾀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죠(수작업은 현재도 진행 중이에요). 하지만 곧 요지야는 지역 특산물처럼 교토에 가면 반드시 사야 하는 선물로 자리 잡게 돼요. 요지야의 얼굴 로고가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해줬기 때문이죠. 먼저 이 얼굴을 좀 볼게요.



ⓒ요지야


왼쪽은 1945년 광대에서 영감을 받아 그려진 그림이에요. 당시엔 요지야 간판, 아부라토리가미, 광고에만 사용됐어요. 20년쯤 지나 손거울로 자신을 바라보는 게이코를 표현한 지금의 얼굴이 완성됐지만, 쓰임새는 같았어요. 이 디자인이 브랜딩으로 본격 승격된 건 오리지널 제품을 개발한 90년대부터예요. 브랜드 로고로 채택된 뒤, 손거울에 비친 이 여성은 게이코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교토 여성을 나타내는 징표로 자리 잡았죠.



교토역 지하상가 포르타점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어떻게냐요? 이 로고는 화장품에만 사용된 게 아니었거든요. 2003년 요지야는 카페를 열었어요. 손님들로 가게가 북적이자 편히 쉬어 갈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생각으로 카페 운영에 나섰죠. 일부 화장품 매장에 병설로 들어가 있고, 아라시야마, 교토역 지하상가 포르타에는 카페 단독 매장도 있어요. 그리고 지금, 이 요지야 카페는 꽤 상징적인 ‘교토 게이샤 커피숍’으로 통해요.


말차와 홍차 카페라떼, 티소다, 컵 스위트, 아이스크림, 쿠키. 기본적인 메뉴는 다 갖추고 있어요. 이 카페가 특별히 '교토스러운' 이유는 거의 전 메뉴에 요지야의 얼굴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에요. 교토 우지시의 말차로 만든 말차 크레페, 후쿠오카의 브랜드 딸기 아마오를 사용한 쇼트케이크 파르페를 주문하면 요지야의 얼굴 로고가 둥둥 떠 있는 메뉴가 도착해요.



ⓒ시티호퍼스


화장품 브랜드가 카페를 내는 것. 각지 특산물을 이용해 디저트를 선보이는 건 사실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에요. 그래서 어쩌면 요지야 카페도 다소 무딘, 화장품 회사의 신사업 분야 정도로 남을 수도 있었죠. 하지만 직관적인 로고 이미지를 음료와 디저트에 넣어버리니, 화장품 고객보다 수요층이 훨씬 넓은 카페 고객들에게도 '교토=게이샤'라는 이미지가 딱 박혀버리는 게 아니겠어요? 거울 속 여성은 교토를 찾는 관광객만이 아니라 로컬 사람들의 관심까지 사로잡는 데 신의 한 수가 된 거예요.



관광에 의존하는 대신 점점 더 로컬로


관광업을 등에 업고 계속 성장한다. vs. 가까운 사람에게 선물해줄 수 있는 기업이 된다.


2020년 교토 기념품의 정석이 된 요지야에게 닥친 난제예요. 요지야는 잘나갔어요. 교토를 찾는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거나 없어지지 않는 이상, 현상 유지만 해도 매출이 크게 떨어질 일은 없었죠. 그런데 코로나가 상황을 확 바꿨어요. 2020년 연말부터 이듬해 연초 사이에 요지야의 매출이 전자상거래를 포함해도 전년 대비 80%나 감소했어요. 이후에도 상황은 쉽게 바뀌지 않았죠. 창업 이후 100년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위기였어요.


여러분이라면 기업의 미래가 걸린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어디에 초점을 맞추실 건가요? 요지야는 후자를 선택해요. 관광객에게 편승했던 방식에서 벗어나, 시대에 맞춘 새로운 매출 형태를 고민하기 시작하죠. 그들이 찾은 답은 '현지 고객에게도 사랑받는 기업이 되겠다!'예요. 그 첫걸음으로 내놓은 게 요지야의 얼굴이 들어간 신상품 크레페였어요.



후쿠부쿠로 세트 ⓒ요지야


화장품으로는 어떤 노력을 했냐면요. 우선 이동 판매차 '요지야 카'를 운행했어요. 이동 도서관과 유사하게 요지야 제품을 트럭에 싣고 고객이 있는 교토의 대형 슈퍼 등을 직접 찾아간 거예요. 2023년 초에는 10,000엔(약 10만원)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모르는 복주머니 '후쿠부쿠로'를 출시했어요. 매일 사용하는 세안용, 스킨 케어용 제품과 선크림, 립스틱, 브러쉬, 파우더 등으로 세트를 꾸렸죠. 각각을 숍에서 따로 구매하면 약 16,000엔. 6,000엔이나 저렴한 가격으로 천연 성분이 강점인 요지야의 기초 제품을 써보도록 유도한 거예요.


요지야 카는 손수레에 무대 화장 도구를 팔고 다녔던 초창기 요지야를 연상시켰어요. 자연스럽게 브랜드 스토리를 접목시키며 스스로 다리가 되어 고객에게 걸어나갔죠. 한편 후쿠부쿠로처럼 평상시 사용하는 기초 제품은 한번 정착하면 바꾸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어요. 요지야는 이렇게 자신의 강점을 한데 모아 저렴한 가격에, 뭐가 나올지 모르는 재미와 두근거림까지 곁들이면서, 잠재 고객에게 직접 찾아가 소개하고 판매하는 방식을 취했어요. 


또한 카페와 화장품 밖으로도 눈을 돌렸어요. 2022년 6월, 요지야에서 만들었지만 브랜드 이름을 내걸지 않은 소바점 ‘十割蕎麦専門店 10そば’이 오픈했어요. 요지야라는 전통 브랜드는 전통 브랜드대로 키우면서, 벤처 정신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겠다는 전략이에요. 그들의 새로운 전략은 어떤 결과를 불러올까요? 판단하긴 이르지만 119년 전통 기업의 새로운 한 걸음에는 그들이 걸어온 세월 만큼의 기대가 실려 있어요.



교토 태생 브랜드가 교토 안에서 확장하는 법

호시노는 일본, 대만, 발리 등에 40개 이상의 숙박 시설을 운영하는 일본의 호텔 및 리조트 기업이에요. 산하에 4개 브랜드를 두고 있는데, 그중 OMO5는 '자는 것만이 전부가 아닌 여행의 텐션을 끌어올리는 도시 관광 호텔'을 컨셉으로 해요. 이 호시노의 OMO5와 요지야가 2023년에 콜라보레이션을 했어요.



ⓒOMO5



ⓒOMO5


위의 사진은 OMO5 교토 기온점의 요지야 룸스테이예요. 객실에 구비된 요지야의 각종 제품을 경험할 수 있죠. 기초 화장품부터 욕실의 비누, 샴푸, 바디 제품까지 모두 요지야의 제품들로 구성돼 있어요. 요지야 카페의 음료와 디저트로 객실 내에서 티타임도 즐길 수 있고요. 호텔에서 2분 거리인 요지야 기온점에 가면 맞춤형 스킨 케어 강좌도 들을 수 있죠. 교토 신사인 야사카진자를 투어하는 테마 가이드도 이 콜라보 프로그램의 일부예요.



ⓒ시티호퍼스


그리고 이 이미지는 교토 여행의 출발지인 교토역에 자리한 요지야 매장이에요. 이 매장은 크게 화장품, 카페, 그리고 기차역 관광 정보 코너로 나뉘어요. 앞에 두 개는 알겠는데 마지막은 무슨 소리냐 싶죠? 요지야는 교토역 세 군데에 1평 남짓한 매장을 두고 있는데, 여기서는 화장품만 파는 게 아니라 교토의 교통 정보와 추천 관광지도 안내해줘요. 교토역 1층 개찰구 매장 옆에 투어리즘 회사가 붙어 있는 걸 보면 그 의도를 여실히 알 수 있죠.


요지야는 교토 밖으로 일부러 매장을 내지 않아요. 오히려 지역에 더 단단히 뿌리를 두고, 교토 문화를 알리는 데 앞장서죠. 다른 100년 뷰티 기업들이 디지털화로, 새로운 매장 전략으로 확장해나가는 것과 비교하면 다소 의아한 행보예요. 하지만 요지야는 굳이 대세를 따를 필요가 없어요. 관광객에게는 교토에서만 구할 수 있는 희소한 브랜드로, 현지인에게는 교토 문화를 알리는 사절단으로 생활 속에 점점 더 강력히 스며들고 있으니까요.


이런 고집스러움을 가져도 여전히 매력적이고 성공적일 수 있는 건, 교토 그리고 게이코 문화라는 독보적인 정체성을 가졌기 때문일 거예요. 요지야의 모든 것을 관통하는 바로 그 핵심 키워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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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요지야 공식 웹사이트

 요지야 카페 공식 웹사이트

 OMO5 공식 웹사이트

 京の老舗、コロナ下に攻める よーじや社長・國枝昂さん, 産経ニュー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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