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에는 YTM이 있어요. ATM이 현금 자동 인출기라면 YTM은 케이크 자동 인출기에요. 자판기 형태의 YTM 덕분에 케이크 매장까지 가지 않고도 케이크를 구매할 수 있죠. 그렇다고 저렴한 맛에 먹는 케이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YTM은 일본 홋카이도에서 공수한 최상급 크림으로 당일에 만든 생크림 롤 케이크를 판매하죠. 종류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만, 가장 저렴한 오리지널 생크림 롤 케이크의 가격만 해도 15,000원이 넘어요.
과연 15,000원이 넘는 케이크가 자판기에서 팔릴까요? 게다가 쉽게 상하는 생크림의 특성상 품질 관리도 어려울 것 같고요. 언뜻 생각해 봐도 여러 가지 난관이 예상되는 가운데, YTM은 맛있는 디저트가 주는 행복을 널리 퍼뜨리겠다는 일념으로 YTM을 타이베이 곳곳에 퍼뜨리고 있어요. 타이베이에만 50개 이상의 YTM이 설치되어 있고, 저녁 시간대에 가면 케이크가 품절되어 구매하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하죠.
YTM은 어떻게 여러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매장까지 가지 않아도 케이크를 구매할 수 있는 케이크 자동 인출기를 히트시킨 걸까요?
YTM 미리보기
• ATM에서 다시 디저트 자판기로
• 미션1. 고객이 있는 곳으로 찾아간다
• 미션2. 자판기와 고급 롤케이크 사이의 간극을 줄인다
• 미션3. 새로운 메뉴로 지루함을 방지한다
• 오늘도 얀닉은 미션 수행 중
지하철역, 편의점, 주요 빌딩 등 가까운 곳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ATM이지만, 약 50년 전 ATM이 처음 등장했을 때 ATM은 은행업계의 혁신 그 자체였어요. 그 전에는 돈을 입금하거나 출금하기 위해 은행 직원이 있는 창구에서 업무를 처리해야 했어요. 이 간단한 업무를 위해서 줄을 서야 했던 것은 물론, 당연히 모바일 뱅킹도 없었던 시절이니 은행 업무 시간 외에는 입금, 출금, 송금 등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죠.
현금 입출금 기능을 갖춘 최초의 ATM은 1967년 영국 런던에서 등장했어요. 은행권 인쇄 장비 전문 회사 ‘드 라 뤼(De La Rue)’의 엔지니어 팀이 ATM을 발명하면서 런던에 있는 ‘바클레이즈(Barclays)’ 은행의 한 지점에 처음으로 ATM을 설치한 거예요. 이 혁신적인 기계에 사람들이 열광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팀을 이끌었던 존 셰퍼드 바론(John Shepherd-Barron)은 ATM을 발명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영제국훈장을 받기도 했죠. 그는 2007년에 BBC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 때 간략하게 당시 ATM을 발명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어요.
“전 세계 또는 영국 어디서든 내 돈을 바로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초콜릿 바 디스펜서를 떠올렸고, 초콜릿을 현금으로 대체했을 뿐이에요.(It struck me there must be a way I could get my own money, anywhere in the world or the UK. I hit upon the idea of a chocolate bar dispenser, but replacing chocolate with cash.)”
ATM의 모티브가 초콜릿 바 자판기였대요. 그 전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누르면 나온다는 본질적이면서도 그럴 듯한 연결고리에서 ATM을 떠올린 거죠. 그는 초콜릿 자판기가 초콜릿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 것처럼 현금도 누구나 쉽고 빠르게 찾을 수 있도록 ATM을 고안해 세상에 선보였어요. 그가 초콜릿 자판기에서 초콜릿을 뽑을 때, 영감도 같이 나왔나봐요.
ATM에서 다시 디저트 자판기로
초콜릿 자판기에서 영감을 얻어 ATM이 발명된지 약 50년이 흐른 지금, ATM이 다시 디저트 브랜드에 영감이 된 사례가 있어요. 대만 타이베이의 케이크 전문 브랜드 ‘얀닉(Yannick)’에서 개발한 ‘YTM(Yannick To-go Machine)’이에요. 얀닉은 누구나 한 번쯤 써 봤을 ATM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았죠. 존이 흔한 초콜릿 자판기에서 ATM을 떠올렸던 것처럼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ATM이 현금 자동 인출기라면 YTM은 케이크 자동 인출기에요. 케이크 매장에 줄을 서지 않고도 쉽고 빠르게 케이크를 구매할 수 있죠. 그렇다고 저렴한 맛에 먹는 케이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에요. YTM은 일본 홋카이도에서 공수한 최상급 크림으로 당일에 만든 생크림 롤 케이크를 판매하죠. 종류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만, 가장 저렴한 오리지널 생크림 롤 케이크의 가격만 해도 380대만달러로, 한화로 15,000원이 넘어요.
흔히 ‘자판기’하면 저렴하고 간편하며 유통 기한이 긴 제품을 판매하는 기계라는 인식이 일반적인데, 과연 15,000원이 넘는 케이크가 자판기에서 팔릴까요? 게다가 쉽게 상하는 생크림의 특성상 품질 관리도 어려울 것 같고요. 언뜻 생각해 봐도 여러 가지 난관이 예상되는 가운데, YTM은 맛있는 디저트가 주는 행복을 널리 퍼뜨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YTM을 타이베이 곳곳에 퍼뜨리고 있어요. 타이베이에만 무려 54개의 YTM이 설치되어 있고, 저녁 시간대에 가면 케이크가 품절되어 구매하지 못하는 경우도 빈번하죠. YTM은 어떻게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타이베이 사람들의 마음을 달콤하게 물들이고 있을까요?
미션1. 고객이 있는 곳으로 찾아간다
얀닉은 ‘케이크를 공유해 마음을 녹인다’는 미션을 가지고 타이베이에 7개, 그 외 대만의 주요 도시에 15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 정도 매장 수로는 고객 접점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기 위해서는 매장 수와 판매량을 늘려야 해요. 그래야 미션이 의미를 가지고, 규모의 경제가 생겨 비용 구조도 개선되니까요. 그런데 매장 오픈을 통해서 성장을 추구하면 그만큼 비용과 리스크가 높아지는 문제가 있어요. 얀닉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동시에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방안으로 간이 매장 역할을 하는 YTM을 생각해 냈죠.
YTM의 컨셉도 놀랍지만, YTM의 위치는 더 예상 밖이에요. 50개가 넘는 YTM은 모두 타이베이의 ‘지하철역’에 설치되어 있어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죠. 타이베이 내 지하철역이 110여개인 것을 감안하면 지하철역 2개 중 1개에서 YTM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에요. 엄청난 접근성이죠. 게다가 타이베이의 지하철은 하루 평균 이용 횟수가 200만 회가 넘어요. 30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타이베이 인구를 고려하면 이용률이 매우 높은 대중교통임을 알 수 있죠.
YTM은 물리적인 위치로 접근성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이용 방식이나 결제 수단도 편리하게 만들어 YTM 이용률을 높였어요. YTM의 터치 패드에서 원하는 롤케이크를 고르고, 결제만 하면 냉장 상태의 신선한 롤 케이크를 챙겨갈 수 있어요. 이 때 지하철 역사에 설치되어 있는 기계인 만큼, 신용카드나 YTM 전용 선불카드 외에도 타이베이 교통 카드인 '이지카드(Easycard)'로도 결제가 가능해요. 만약 품절이 걱정된다면 YTM 웹사이트에서 사전 구매를 통해 롤 케이크를 미리 선점할 수도 있고요. 롤 케이크를 수령할 지하철 역을 선택하고 결제하면 주문 30분 이후부터 수령이 가능해요.
미션2. 자판기와 고급 롤케이크 사이의 간극을 줄인다
접근성을 높였으니 사람들의 구미를 당길 차례에요. 얀닉은 좋은 음식은 좋은 식재료로부터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브랜드를 시작할 때부터 케이크에 들어가는 계란, 밀가루, 과일 등은 가격이 비싸더라도 신선하고 고품질의 식재료를 사용하는 원칙을 고수해 왔어요. 대신 식재료를 농장과 대량으로 직거래해 불필요한 유통 비용을 없앴죠. 특히 YTM에서 쓰는 크림은 일본 홋카이도의 생산자들과 함께 개발한 크림으로, 동물성 크림과 식물성 크림의 장점을 결합해 유지방 함량이 낮으면서도 고소하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에요. 시장에 나와 있는 다른 생크림과 차별화되는 지점이죠. 얀닉은 이렇게 좋은 식재료로 밤 12시부터 생크림 롤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해 매일 이른 아침에 YTM에 채워 놓아요.
여기에다가 YTM은 포장 패키지를 통해 생크림 롤 케이크의 편의와 품격을 높이는 것도 잊지 않아요. 롤 케이크를 담은 상자와 쇼핑백은 젖소의 얼룩 무늬를 형상화한 패키지로 디자인되었어요. 롤 케이크에 들어간 크림의 신선도를 연상하게 하죠. 상자 안쪽에는 얀닉의 홋카이도 크림에 대한 설명이 적혀 있고요. 구매한 롤 케이크를 바로 선물하거나 쉽게 들고 이동할 수 있도록 견고한 재질의 쇼핑백을 함께 제공하는 것은 덤이에요. 또한 보통의 자판기처럼 상품이 출구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케이크가 망가지지 않도록 자판기 내부에서도 기계가 조심스럽게 케이크를 상품 출구로 옮겨 줘요. YTM 내부에서 상품 출구까지 케이크가 나오는 모습도 영상으로 볼 수 있죠.
미션3. 새로운 메뉴로 지루함을 방지한다
2022년 3월에는 대만의 유명 점성술사 Jesse Tang과 콜라보해 타로와 와라비모찌가 들어간 보랏빛 롤 케이크를 한정 판매했어요. ⓒYannick
얀닉의 변주는 생크림 롤 케이크의 맛을 다채롭게 하는 데에 그치지 않아요.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고 마음을 녹이는 매개체가 꼭 케이크에 한정될 필요는 없으니까요. 이번에는 케이크가 아닌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YTM을 개발했어요. 생크림으로 유명한 얀닉답게 소프트 아이스크림으로요. 게다가 YTM을 한층 업그레이드해 로봇 팔을 탑재했죠. 이 로봇 팔은 마치 사람이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것처럼 아이스크림 기계에서 즉석으로 아이스크림을 내려 콘이나 컵 위에 담아 줘요.
YTM의 아이스크림 역시 높은 수준의 맛과 품질을 자랑해요. 홋카이도의 청정지역에서 자란 행복한 소로부터 짜낸 우유는 풍성한 아로마와 신선한 맛을 품고 있어요. 최상급 우유를 YTM만의 추출 방식으로 가공해 마치 우유 한 잔을 마시는 것과 같이 부드럽고 풍부한 질감의 아이스크림을 구현해 냈죠.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담는 콘 과자의 상태도 꼼꼼히 체크하고, 위생과 안전 관리를 위해 표준작업지침(SOP)에 따라 아이스크림 기계를 매일 청소하고 방역하는 것은 기본이에요. 아직 아이스크림 YTM은 얀닉 브랜드가 탄생한 신베이 완리(萬里)에서 1대만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케이크 YTM만큼이나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늘도 얀닉은 미션 수행 중
얀닉은 2021년 한 해 동안 생크림 롤 케이크만 188만개를 판매했어요. 매해 신기록 갱신 중이죠. 가장 저렴한 오리지널 맛 가격을 기준으로 매출을 계산하면 7억 1,400만 대만달러(약 286억 원)예요. 22개의 오프라인 매장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웠을 금액이죠. 지하철역에 설치한 YTM과 온라인 배송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덕분이에요. 성과를 숫자로 보고 나니, 현금 인출기를 보고 케이크 인출기를 떠올린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현실로 구현한 추진력이 보통 내공은 아닌 것 같아요.
이제는 어느 덧 중년이 된 얀닉의 창업자 우종겐(吳宗恩)은 10대 때부터 제과제빵 업계에서 혹독한 견습생 시절을 보냈어요. 저렴한 빵 가게부터 5성급 호텔에 있는 베이커리까지, 제과제빵 업계에서 두루 경험을 쌓았죠. 그는 경험을 쌓으면 쌓을 수록 오히려 배움에 대한 갈증을 더 느꼈고, 프랑스까지 건너가 ‘에꼴 르노트르(École Lenôtre)’에서 제과를 배우기도 했어요. 그리고 그 곳에서 단순히 기술만 배워온 것이 아니라, 사업으로서의 제과제빵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죠. 베이커리가 제과제빵 학교와 공장을 운영하고, 심지어 해외까지 진출하는 것을 보면서 우종겐도 자기만의 사업을 꿈꾸기 시작했어요. 언젠가 대만에서 고품질의 케이크 전문점을 만들겠다는 꿈을 말이죠.
학교와 업장을 오가며 경험을 쌓은 우종겐은 2000년에 대만 신베이시 완리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비즈니스를 시작했어요. 당시 스타벅스가 막 대만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애프터눈 티 문화가 퍼지기 시작하던 시절이었어요. 이런 카페에 케이크를 납품하는 OEM 사업을 시작한거죠. 그가 처음부터 케이크 전문점을 열지 않고 OEM 비즈니스부터 시작한 데에는 이유가 있어요. 당시 대만에는 케이크다운 케이크를 파는 전문점이 없었기 때문에 바로 케이크 전문점을 열기에는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대신 그는 그가 납품하는 커피 전문점을 통해 시장과 소비자를 파악하고, 가까운 제과 선진국인 일본으로 현지 조사를 다녔죠. 이런 경험들은 지금의 얀닉을 만드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어요.
우종겐은 지금의 규모와 성과가 그간 쌓아온 경험과 감각, 그리고 아이디어 덕분이라고 말해요. 특히 아이디어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시작점이 된다는 걸 강조하죠. 마치 프랑스와 일본에서 본 디저트 매장을 보며 대만의 케이크 전문점을 꿈꾸고, 현금 인출기를 보며 케이크 자동 판매기를 떠올렸던 것처럼요. 그래서 그는 오늘도 얀닉의 성공에 머무르기 보다는 그저 모든 과정에서 계속해서 경험을 축적하고, 더 강해지고, 근육을 키워가는 중이에요.
Reference
• Automated teller machine, Wikipedia
• The man who invented the cash machine, Brian Milligan, BBC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