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포가토(Wineffogato)’를 아시나요? 젤라토에 어울리는 술을 부어 마시는 디저트예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에스프레소를 부어 마시는 이태리 디저트 ‘아포가토’를 모티브로 만든 메뉴죠. 아포가토가 하나의 장르가 되어 여러 곳에서 먹을 수 있다면, 와인포가토는 아직까지는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자이트x린크(Zeit X Linck, 이하 자이트 린크)’에서만 맛볼 수 있어요. 이곳에서 개발한 메뉴거든요.
자이트 린크에는 6가지 젤라토가 있는데, 이중에서 원하는 젤라토를 선택하면 그 젤라토에 어울리는 술을 함께 내줘요. 페어링하는 술 종류도 각 젤라토의 맛에 따라 각양각색이에요. 아마란스 젤라토에는 셰리 와인을, 망고 젤라토에는 진을, 헤이즐넛 젤라토에는 럼을 페어링하는 식이죠.
와인포가토를 히트친 이후에, 와인포가토를 확장한 ‘아포쇼토(Affoshoto)’를 선보였어요. 이건 또 뭐냐고요?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하면서 디저트 업계의 신세계를 여는 자이트 린크를 소개할게요.
자이트 린크 미리보기
• 아포가토가 아니라 와인포가토다
• 토핑이 아니라 페어링이다
• 진열이 아니라 보존이다
• 젤라토와 함께 녹는 마음
‘사과와 함께 사고, 치즈와 함께 팔아라(Buy on an apple and sell on cheese).’
유럽 와인 상인들 사이에서 전해져 내려 오는 이야기에요. 와인 상인이 아니라면 이해가 살짝 어려울 수 있으니 풀어서 설명해 볼게요. 사과와 함께 산다는 건 와이너리에서 사과를 먹으면서 와인을 고른다는 뜻이에요. 사과의 높은 산도와 당도는 미각을 더 날카롭게 만들어 와인의 타닌과 산도를 정확하게 느끼고 짚어낼 수 있도록 도와줘요. 와인의 맛을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좋은 와인을 선별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반면 치즈와 함께 팔아라는 고객들에게 와인을 판매할 때 치즈와 페어링하라는 의미예요. 치즈의 단백질과 지방, 젖산 등은 미뢰를 자극해 와인을 더 부드럽게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와인의 안 좋은 맛을 덮어 버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요. 와인 안주로 치즈를 많이 먹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다시 말해 치즈와 함께 와인을 마시면 웬만한 와인이 다 맛있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이용해 와인을 팔라는 거죠. 와이너리에서 좋은 와인을 감별해 매입하고, 고객들에게 잘 팔아야 하는 와인 상인들에게는 유용한 팁이에요.
이처럼 와인은 어떤 음식과 페어링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져요. 그렇기 때문에 와인 바 혹은 레스토랑에서는 판매하는 각 와인과 마리아주(Mariage)가 좋은 음식을 추천하는 데에 공을 들이죠. 최근에는 와인이나 음식의 단일 카테고리보다 페어링에 강점을 가진 와인 바들이 주목을 받는 추세이기도 하고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작지만 존재감을 강하게 드러내는 매장이 있어요.
바로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자이트x린크(Zeit X Linck, 이하 자이트 린크)’예요. 이곳에선 와인 페어링의 틀을 깨고 젤라토에 와인을 페어링해요. 심지어 술도 와인뿐만 아니라 럼, 진 등 종류가 다양하죠. 아이스크림과 술의 조합이라니요,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요. 지금부터 자이트 린크가 제안하는 달콤한 페어링의 세계로 들어가 볼게요.
ⓒ시티호퍼스
아포가토가 아니라 와인포가토다
자이트 린크는 기본적으로 젤라토 가게예요. 젤라토는 이탈리아 전통 아이스크림으로, 일반적인 아이스크림과 달리 공기 함유량이 35% 미만으로 적은 편이고 맛의 중심이 되는 식재료의 비율이 높아 진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죠. 자이트 린크는 젤라토를 이탈리아의 정통의 제법으로 만들어요. 여기에다가 시칠리아 피스타치오, 피에톤테 헤이즐넛 등 전통적인 이탈리아의 식재료가 들어간 젤라토뿐만 아니라 대만 각자의 작은 농장들과 협업해 땅콩, 복숭아, 녹차 등 대만 식재료를 활용한 젤라토를 개발하기도 하죠.
젤라토가 수준급이지만, 자이트 린크의 대표 메뉴는 젤라토가 아니라 젤라토가 들어간 ‘와인포가토(Wineffogato)’예요.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에스프레소를 부어 마시는 이태리 디저트 ‘아포가토’를 모티브로 만든 메뉴로, 젤라토에 어울리는 술을 부어 마시는 디저트예요. 자이트 린크에는 6가지 젤라토가 있는데, 이중에서 원하는 젤라토를 선택하면 그 젤라토에 어울리는 술을 함께 내어주죠. 페어링하는 술 종류도 각 젤라토의 맛에 따라 각양각색이에요. 아마란스 젤라토에는 셰리 와인을, 망고 젤라토에는 진을, 헤이즐넛 젤라토에는 럼을 페어링하는 식이에요. 이처럼 유럽식 디저트를 새롭게 재해석한 덕분에 젤라토의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되죠.
자이트 린크의 믹스 앤 매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아요. 와인포가토를 확장해 조합의 끝판왕인 ‘아포쇼토(Affoshoto)’를 선보이죠. 아포쇼토는 젤라토와 에스프레소 그리고 2가지 럼이 함께 제공되는 메뉴에요. 와인포가토와 마찬가지로 한 가지 메뉴로도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어요. 보통의 경우 녹은 젤라토를 먹는 건 좋은 경험이 아니지만, 이렇게 녹여 먹는 젤라토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에요. 젤라토와 술을 섞기 전 각각 본연의 맛을 본 후, 젤라토에 술을 부어서 녹여 마시면 술과 젤라토의 조화를 더 확실히 느낄 수 있죠.
토핑이 아니라 페어링이다
‘자이트(Zeit)’는 독일어로 ‘시간’, ‘시대’라는 뜻으로, 이 시대에 재미있는 일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회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린크(Linck)’는 2016년에 대만 타오위안에서 시작한 정통 이탈리안 젤라토 가게고요. 자이트 린크는 자이트와 린크가 협업해 선보인 창의적인 젤라토 가게라고 할 수 있죠. 특히 자이트는 ‘디자인 랩’, 더 정확히는 ‘크리에이티브 컴퍼니’라는 말로 스스로를 소개하는데 창의성을 강조하는 그들의 아이덴티티는 메뉴 구성에도 반영되어 있어요.
‘와인포가토 = 젤라토 x 술’
‘아포쇼토 = 젤라토 x 럼 1 x 럼 2 x 에스프레소’
자이트 린크의 대표 메뉴들은 마치 함수의 결괏값 같아요. 함수는 공식처럼 정해져 있지만, 창의성을 내세우는 팀 답게 메뉴를 구성하는 요소들 중 에스프레소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다 변수로 남겨뒀죠. 각 변수를 통해 자이트 린크의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는 의미에요. 젤라토의 가짓 수가 6개로 고정일 뿐, 6가지 젤라토의 종류는 계속 바뀌어요. 심지어는 그 변화의 주기가 3일이 채 되지 않을 때도 있어요. 변하는 젤라토의 맛에 따라 페어링되는 술의 종류가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요. 술도 프랑스 소테른, 헝가리 토카이, 포르투갈 포트 와인, 스페인 셰리 와인 등 전 세계 각지의 독특한 술을 끊임없이 큐레이션해요.
각기 다른 2개 이상의 요소를 조합해 메뉴를 구성하니, 메뉴를 일관성 있게 유지하면서도 꾸준히 새로운 맛을 선보일 수 있어요. 다양한 메뉴 개발이 용이해 지는 거죠. 과거에 방문했던 고객이 자이트 린크를 재방문해 또 다시 와인포가토를 주문해도, 과거에 방문했을 때와 다른 맛의 디저트를 맛볼 수 있는 셈이에요. 다음 메뉴에 대한 호기심은 재방문으로 이어지고, 브랜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효과를 내요.
‘젤라토 x 케이크’
‘젤라토 x 젤리’
자이트 린크의 창의력은 또한번 진화해요. 이번에는 린크의 젤라토에 술 외에 다른 디저트를 페어링하는 거예요. 최근에는 젤라토와 케이크를 페어링하는 ‘케이크라토’를 신메뉴로 추가했어요. 신메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자이트 린크는 외부의 창의성을 끌어들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아요. 젤라토와 어울리는 젤리, 케이크 등 다양한 맛의 디저트를 탐구하기 위해 해외에서 셰프를 초청하기도 해요. 일본인 셰프 마에다 히카루는 자이트 린크의 마카롱 젤라토와 말차 젤라토에 어울리는 일본식 커피 젤리를 개발하기도 했죠. 이처럼 조합을 조화로 만드는 노력 덕분에 자이트 린크의 디저트 세계는 계속해서 확장 중이에요.
진열이 아니라 보존이다
자이트 린크의 원류인 린크는 ‘이탈리안 장인정신’과 ‘현지 식재료’ 간의 조화를 중요시 해요. 린크의 창업자 닉(Nick)은 ‘젤라토 대학교’로 알려진 이탈리아 ‘칼피지아니 젤라토 대학교(Carpigiani Gelato University)’에서 정통 젤라토를 공부하기도 했어요. 그는 린크에서 젤라토를 만드는 방식은 이탈리아의 것을 따르되, 젤라토를 통해 대만의 맛을 표현하고자 해요. 그래서 인공 감미료는 일체 사용하지 않고 대만 현지 농가에서 조달한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려 수제로 젤라토를 만들어요. 조합을 조화로 만드는 자이트 린크의 DNA는 린크에서부터 이어진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이렇게 공들여 만든 알록달록하고 쫀득한 젤라토를 매장에서는 쉽게 볼 수 없어요. 젤라토가 뚜껑이 있는 스테인리스 통에 담겨 있기 때문이에요. 6가지 젤라토들이 각각의 통에 저장되어 있어, 고객이 주문한 젤라토를 서빙하기 위해 뚜껑을 열 때만 겨우 젤라토를 눈으로 볼 수 있을 뿐이죠. 보통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고객의 구미를 당기기 위해 여러 가지 아이스크림을 뷔페식으로 먹음직스럽게 늘어놓고 유리를 통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에요. 다채로운 식재료가 들어간 수제 젤라토는 비주얼이 예뻐서 매장을 방문한 고객에게 자랑할 만도 한데, 이렇게 젤라토를 꽁꼼 숨겨두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이트 린크가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품질 유지를 더 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일반적인 아이스크림 가게처럼 뷔페식으로 아이스크림을 보관하면 아이스크림이 늘 공기에 노출되어 있고, 습도나 온도에 영향을 받아 아이스크림의 컨디션이 변할 수 있어요. 그래서 자이트 린크는 개방된 디스플레이의 시각적 효과를 과감히 포기했어요. 대신 젤라토의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이탈리아 정통 방식대로 ‘포제티(Pozzetti)’라고 불리는 젤라토 전용 캐비닛을 사용해요.
스테인리스로 된 포제티는 뚜껑이 있어서 내용물이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젤라토가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최소화해 젤라토의 신선함을 유지시켜요. 젤라토를 뜰 때를 제외하고는 젤라토를 밀폐할 수 있죠. 또한 각 젤라토를 개별 포제티에 보관할 수 있기도 하고요. 자이트 린크는 디저트에 대한 틀은 깰지라도 근간이 되는 품질에 대해서는 선을 넘지 않아요. 품질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태도는 낯선 디저트를 신선한 자극으로 만드는 기본이기도 해요.
젤라토와 함께 녹는 마음
자이트 린크가 선보이는 디저트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전통과 현대, 서양과 동양을 넘나 들어요. 무경계의 디저트를 지향하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파괴적이지 않고 조화롭죠. 그런데 왜 하필 젤라토였을까요? 자이트 린크가 젤라토를 선택한 데에 영감을 준 영화가 있다고 해요. 바로 픽사에서 2007년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라따뚜이(Ratatoulle)>예요. 그 중에서도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음식, 라따뚜이가 중요한 단서가 되었어요.
영화 <라따뚜이>의 마지막 장면에서 생쥐인 레미가 만든 라따뚜이가 매우 비평적인 음식 평론가 안톤 이고의 마음을 녹여요. 안톤은 원래 까다롭고 냉철한 음식 평론가로, 레미가 일하는 구스토 레스토랑을 혹평한 장본인이기도 하죠. 그런데 대단한 음식도 아닌, 그저 야채를 큼직하게 썰어 익힌 가정식 채소 요리인 라따뚜이가 어렸을 적에 엄마가 해주던 음식의 맛을 소환해 내요. 단출한 채소 요리 한 접시로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 그는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식사를 마치죠. 자이트 린크는 이처럼 소박하고 평범한 음식이 가장 감동적일 수 있다고 믿어요. 이탈리아의 국민 디저트인 젤라토가 라따뚜이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거고요.
그래서인지 자이트 린크의 매장에 가면 친절한 접객 그 이상의 서비스를 느낄 수 있어요. 직원들이 젤라토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자신들이 만든 디저트를 사람들이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다소 낯설 수 있는 와인포가토나 아포쇼토를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먹는 방법을 단계별로 알려 주기도 하고, 판매하는 젤라토와 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기도 하고요. 고객을 대하는 태도에서 ‘맛있는’ 젤라토를 넘어 ‘감동적인’ 젤라토를 만들고 싶은 자이트 린크의 마음이 전해져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의 마지막 단계는 만든 사람의 손을 떠날 때가 아니라, 고객에게 닿을 때라는 것을 자이트 린크는 알고 있는 듯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