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브랜디 하이볼 좋아해." 이 말 한 마디는 화자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요. 고도수의 술보다는 도수가 낮고 청량한 술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아 주당은 아닐 거예요. 그렇다고 초보도 아니에요. 위스키, 브랜디, 버번 등 다양한 하이볼의 베이스를 이해하고, 그 중에서도 포도로 만들어 화사한 과실향이 돋보이는 브랜디의 특성을 알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이처럼 술은 단순한 음료라기 보다는 그 사람의 취향을 드러내는 수단이자 취향 그 자체예요. 하지만 처음부터 누구나 쉽게 취향을 가지기가 어렵죠. 백사장 모래알보다 많은 게 술의 종류니까요. 술의 세계란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조차 모를 만큼 방대하기에, 친절한 가이드가 되기를 자처하는 건 비즈니스가 되기도 해요. 초심자들이 길을 잃지 않고 기꺼이 취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 사업 기회를 만든 사례들을 소개할게요. 1️⃣ 와인앳에비스 이 와인 매장 내공이 보통이 아니에요. 와인을 사간 사람들이 와인을 마실 장소까지 신경을 써요. 그래서 이 와인 매장에서 구입한 와인을 주변의 1,100여개 레스토랑에서 마실 수 있게 레스토랑들과 제휴를 맺었어요. 유럽이나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BYO(Bring Your Own) 구조를 활용하는 거예요. 심지어 제휴된 레스토랑에는 손님이 와인을 사서 직접 들고가도 되지만 예약된 시간에 맞춰 레스토랑으로 보내주기도 해요. 이렇게 하니 고객이야 좋을 수 밖에요. 코르크 차지를 감안하더라도 비싼 와인을 싸게 마실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레스토랑은 그만큼 손해 아닐까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코로나로 고객 수 변동폭이 커져 와인 재고를 떠안는 것이 부담스럽거든요. 게다가 와인을 팔지 않는 레스토랑의 경우 이 와인 매장과의 제휴로 고객의 방문을 유도할 수 있기도 하고요. 도쿄 에비스 지역에 있는 ‘와인앳에비스(Wine@Ebisu)’ 이야기예요. 그런데 이 와인 매장이 이런 방식까지 도입한 데는 이유가 있어요. 바로 와인 입문자를 타깃했기 때문이에요. 이들을 타깃하면 와인 매장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 걸까요? 2️⃣ 카오리움 눈에 보이지 않고 표현하기도 힘든 향을 객관화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센토마틱(SCENTMATIC)’이라는 스타트업이 감성적이자 주관적인 ‘향’을 과학적이자 객관적인 영역으로 만들어 눈으로 볼 수 있게 했어요. 향을 단어로 변환하는 AI 시스템 ‘카오리움(Kaorium)’을 통해서죠. 향을 언어로 표현해주는 카오리움은 신박한 기술이에요. 하지만 쓸모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실 거예요. 카오리움을 개발한 센토마틱은 그 쓸모를 일본 전통주인 사케에서 찾았어요. 사케 맛의 90%는 향이 좌우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는 ‘카오리움 포 사케(Kaorium for Sake)’를 런칭했죠. 효과가 있었을까요? 슈퍼마켓에 적용했는데 매출이 50% 이상 올랐어요. 카오리움을 통한 사케 추천은 시작일 뿐이었어요. 센토마틱은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어요. 기술이 쓸모없는 게 아니라 기술을 쓰는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죠. 센토마틱과 함께 향의 세계로 들어가 볼까요? 3️⃣ 바인박스 이게 와인병이라고요? ‘바인박스(Vinebox)’의 와인병을 본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이에요. 긴 원통형 모양으로 보통의 와인병과 형태적으로 달라요. 감각적인 건 물론이고요. 이런 디자인이 가능한 건, 용량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에요. 보통의 경우 750ml 단위로 와인을 담는 반면, 바인박스는 100ml 단위로 와인을 담았어요. 이처럼 바인박스는 와인을 1병이 아니라 1잔 단위로 판매하면서 와인 테이스팅의 시대를 열었어요. 고객은 어떤 맛일지 모르는 와인을 맛보기 위해서 750ml의 부담을 질 필요가 없어졌죠. 반대로 바인박스 입장에서는 이렇게 100ml 단위로 판매하니 큐레이션 경쟁력을 내세울 수 있어요. 큐레이션 테마 하에 3, 6, 9, 12개입 등 더 입체적으로 구성할 수 있으니까요. 와인이라는 ‘제품’ 대신 다양한 와인을 맛보는 ‘경험’을 파는 바인박스. 지금부터 바인박스를 언박싱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