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항의 본질은 도시와 도시를 잇는 교통 허브예요. 하지만 공항을 교통의 허브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공항은 하나의 도시를 떠나기 전, 무조건 머물러야 하는 공간이자, 도시의 경계라는 특수성을 가져요. 덕분에 설렘, 아쉬움 등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고, 때로는 도시와 도시를 이동한다는 진짜 목적을 압도하기도 해요.
이러한 공항의 특수성은 여행자에게만 의미를 가지는 게 아니에요. '공항 경제'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도 특수죠. 연간 수천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머물러야 하는 공간이라는 것은, 비즈니스의 시작점이자 난제인 '모객'을 해결해요. 여기에 국제 공항의 경우, 국가 간 경계라는 점에서 '면세'라는 혜택까지 더해져 소비 심리를 자극하죠.
이에 공항은 일찌감치 교통 허브를 넘어 리테일 허브로 거듭났는데요. 그런데 여행이 보편화되고, 해외 여행객 수가 점차 많아지면서 공항도 면세라는 경제적인 요인 외의 경쟁력을 갖추기 시작했어요. 여행의 시작이자 끝을 함께 하는, 도시의 첫 인상이자 마지막 인상으로서 지역의 쇼룸이 되고, 엔터테인먼트 허브로 진화 중이죠. 오늘은 그 중에서도 남다른 보법으로 공항의 미래를 설계하는 공항들을 살펴 볼 거예요. 올 여름 휴가 때는 여행의 시작점인 공항에서 미래를 위한 인사이트를 배워보는 건 어떨까요?
1️⃣ 하네다 미래 종합 연구소
일본 쇼핑 센터 중 최대 매출을 올리는 곳은 어디일까요? 뜻밖에도 하네다 공항이에요. 하네다 공항의 제 1 터미널부터 3 터미널까지의 제품·음식 판매 매출 합계액은 약 1668억엔(약 1조 4,600억원, 2020년 3월 연결 기준). 이 규모는 일본의 쇼핑센터와 비교해도 최대예요. 백화점으로 치면 매출 탑 5 안에 들어가는 수준이고요.
성과를 이끌어낸 주인공은 일본 공항 빌딩 그룹. 하네다 공항 제 1~3 터미널의 운영, 관리를 맡고 있는 회사예요. 그런데 이 일본 공항 빌딩 그룹이 2018년, 새로운 계열사를 설립했어요. 그 이름은 하네다 미래 종합 연구소(미래 총연).
아니, 공항에 웬 미래 연구소냐고요? 그리고 미래 연구소와 하네다 공항 리테일 판매와는 무슨 관계냐고요? 자세한 사연을 들어봅시다.
2️⃣ 신치토세 공항
공항은 비행기를 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대기의 공간이에요. 일종의 경유지인 셈이에요. 사람들은 이곳에서 진짜 목적지로 이동할 준비를 하죠. 그런데 만약 공항이 역할을 바꿔서 스스로 관광지이자 목적지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홋카이도의 현관문으로 불리는 ‘신치토세 공항’처럼요.
신치토세 공항은 이미 2011년에 공항을 재정의했어요. 비행기를 타기 위한 대기 장소에서 ‘홋카이도의 쇼룸’으로 말이죠. 그러더니 일본 최초로 공항에 초콜릿 공장을 입점시키고, 공항 영화제를 주최하고, 온천까지 만드는 등 최초 투성이 공항이 됐어요. 그뿐 아니에요. 이 공항은 아이스크림 선거를 치르거나 라멘 도장을 운영하면서 도시 명물 브랜딩까지 담당해요.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여객 경험을 제공하며 홋카이도의 홍보대사 역할을 하는 신치토세 공항으로 함께 가볼까요? 공항을 재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3️⃣ 포틀랜드 국제공항
공항은 설렘과 긴장, 그리고 바쁨이 뒤섞인 공간이에요. 여행을 앞두고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바삐 움직여야 하는 곳이죠. 게다가 공항은 여행이라는 목적을 위해 거쳐가는 장소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특별한 의미를 갖기 어렵기도 해요.
하지만 ‘포틀랜드 국제공항(Portland International Airport)’에 가면 생각이 달라질 거예요. 이 공항은 우리가 생각하는 전형적인 공항의 이미지를 가볍게 비껴 가거든요. 20억 달러(약 2조 8천억 원)를 들여 10여 년 간 리노베이션을 했는데, 규모는 커졌지만 길은 더 찾기 쉬워지고, 분위기는 더 친근해졌어요. 무엇보다 포틀랜드라는 도시의 감성을 공항에서부터 느낄 수 있죠.
포틀랜드의 작은 축소판이 된 포틀랜드 국제공항은 어떻게 지역 주민들의 자부심을 키우고, 여행객들의 긴장을 풀어주고 있는 걸까요? 바닥 카펫부터 매장, 천장 하나하나까지 전략적으로 설계한 포틀랜드 국제공항으로 떠나볼게요.
4️⃣ 주얼 창이 공항
2019년에 1년 동안 싱가포르 창이 공항을 들락날락한 비행기 탑승자수는 6,830만명. 그렇다면 2019년 10월에 창이 공항 옆에 오픈한 ‘주얼 창이 공항’을 찾은 사람의 수는 몇명일까요? 참고로 주얼 창이 공항은 싱가포르 창이 공항과 연계된 시설로, 레스토랑, 쇼핑몰, 호텔, 심지어 테마파크까지 갖춘 곳이에요. 멀티플렉스 공간을 지향하죠.
공항 옆에 있는 시설이니 공항 방문객수와 엇비슷해야 할 거 같지만, 오픈 후 6개월 동안만 5,000만명이 방문했어요. 연간으로 환산하면 1억명이 찾은 셈이죠. 여행객이 아니라 여행갈 목적이 없는 사람들도 방문했다는 뜻이에요. 싱가포르 국민수가 550만명 정도임을 감안하면 여행을 가지 않는 사람이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방문했다고 볼 수 있어요.
물론 주얼 창이 공항도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을 피해갈 수는 없었어요. 여행객이 급감하고 내국인의 야외활동도 줄었으니까요. 그래도 주얼 창이 공항은 싱가포르 국민들이 즐겨찾는 명소로 자리매김했죠. 도대체 어떻게 꾸며 놓았길래 여행을 가지 않는 사람들을 공항까지 오게 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