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의 쇼룸이 된 공항의, 이유 있는 경로 이탈

신치토세 공항

2023.10.04

공항은 비행기를 타기 위해 꼭 거쳐야 하는 대기의 공간이에요. 일종의 경유지인 셈이에요. 사람들은 이곳에서 진짜 목적지로 이동할 준비를 하죠. 그런데 만약 공항이 역할을 바꿔서 스스로 관광지이자 목적지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홋카이도의 현관문으로 불리는 ‘신치토세 공항’처럼요.


신치토세 공항은 이미 2011년에 공항을 재정의했어요. 비행기를 타기 위한 대기 장소에서 ‘홋카이도의 쇼룸’으로 말이죠. 그러더니 일본 최초로 공항에 초콜릿 공장을 입점시키고, 공항 영화제를 주최하고, 온천까지 만드는 등 최초 투성이 공항이 됐어요. 그뿐 아니에요. 이 공항은 아이스크림 선거를 치르거나 라멘 도장을 운영하면서 도시 명물 브랜딩까지 담당해요.


전 세계 관광객들에게 새로운 여객 경험을 제공하며 홋카이도의 홍보대사 역할을 하는 신치토세 공항으로 함께 가볼까요? 공항을 재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신치토세 공항 미리보기

 #1. 브랜드 거점이 된 연결 통로

 #2. 미식 격전지에서 열리는 최강자전
• #3. 허브 공항, 문화 허브가 되다

 #4. 공항에서 만나는 홋카이도의 자연 유산
• 이틀만에 수작업으로 만든 활주로




공항은 멀리서 보면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보여요. 출발하는 사람들과 도착하는 사람들이 쉴새 없이 드나드니까요. 홋카이도의 현관문으로 불리는 신치토세 공항은 바로 사람들의 ‘이동’에 집중해서 상업 공간으로도 성공한 공항이에요. 사람들이 움직이는 흐름과 방향을 설계해서 공항을 관광지로 만들었죠. 안 그래도 여행할 시간이 빠듯한데 공항에서 무슨 관광을 하느냐고요? 이 공항에서는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치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으니, 오히려 시간을 아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신치토세 공항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어요.


이를 이해하려면 우선 신치토세 공항의 구조를 알아야 해요. 신치토세 공항은 국제 공항으로, 국내선 터미널과 국제선 터미널이 분리되어 있는데요. 아래 사진을 보면 오른쪽에 반원 형태로 되어 있는 빌딩이 국내선 터미널이에요. 왼쪽에 직사각형 형태의 건물이 국제선 터미널이고요. 2010년에 국제선 터미널 빌딩을 오픈하면서 지금 모습의 뼈대를 갖추게 됐죠. 그리고 두 터미널 사이에 다리 형태의 연결 통로가 있어서 양쪽을 오갈 수 있게 만들었어요.



ⓒ北海道新聞


다음 해인 2011년에 신치토세 공항은 또 한번의 전환기를 맞이해요. 기존 시설의 약 10%가 넘는 3만 제곱 미터를 증축하면서 홋카이도의 음식과 상품, 엔터테인먼트를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는 쇼룸으로 거듭나거든요. 일본에 있는 공항 최초로 영화관, 온천 등을 입점시켰을 뿐만 아니라 매장 수도 106개에서 180개로 늘어났어요. 흥미로운 점은 이 거대한 홋카이도의 쇼룸이 작동하는데 있어서 사람들의 이동 경로가 큰 몫을 차지했다는 거예요.


우선 국제선 터미널과 국내선 터미널을 연결하는 통로 자체를 활용했어요. ‘스마일 로드(Smile Road)’라는 이름을 붙이고 도라에몽, 헬로 키티 등이 활약하는 캐릭터 스트리트와 로이스 초콜릿 공장을 들여놓았죠.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내선 터미널과 국제선 터미널 중 하나만 사용하기 때문에 굳이 이 연결 통로를 지나갈 일이 없어 보이거든요. 그렇다면 유휴 공간에 상업 시설을 설치한들 효과가 있을까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여기에는 한 가지 숨은 동선이 있어요. 국제선을 통해 입국한 승객들도 결국은 연결 통로를 걸어가서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해야 하거든요. 국내선 터미널에 있는 JR 전철을 타고 공항을 빠져나가기 위해서예요. 지금이야 익숙한 개념이지만 신치토세 공항은 1992년에 일본 최초로 공항에 JR 전철역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국내선이 이동의 중심지가 됐죠. 출국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국제선을 이용하고자 하는 여행객이라면 일단 JR 신치토세 공항에 내려서 연결 통로를 통해 국제선 터미널로 이동해야 하죠.


물론 공항 리무진을 이용해서 각 터미널 빌딩을 곧장 빠져나가는 고객도 있어요. 하지만 많은 여행객들이 삿포로 도심까지 40분이면 도착하는 JR 전철을 이용하죠. 배차 간격도 짧고 더 빠르게 도심까지 들어갈 수 있고, 좌석도 공항 리무진 대비 상대적으로 많으니 말이죠. 그렇다면 꼭 지나갈 수밖에 없는, 그러면서도 지나가고 싶은 연결 통로는 어떤 모습일까요?



#1. 브랜드 거점이 된 연결 통로

연결 통로에서 존재감을 크게 드러내는 건 바로 ‘로이스 초콜릿 월드’예요. 로이스는 홋카이도에서 시작한 초콜릿 브랜드인데요. 여행의 기념품이나 선물로도 인기가 많아요. 면세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로이스는 신치토세 공항에 그저 매장 하나를 더 오픈한 게 아니에요. 초콜릿 팩토리, 뮤지엄, 숍과 베이커리 등을 통해 로이스의 세계관을 선보이고 있죠. 누구나 무료로, 그저 이 통로를 걸어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시설을 즐길 수 있어요.



ⓒ시티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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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서도 초콜릿 팩토리는 일본 최초로 공항에 입점한 초콜릿 공장이에요. 사람들은 걸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유리창 너머로 초콜릿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견학할 수 있어요. 제품을 만드는 과정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며 관광 상품이 되었죠. 기계와 사람이 각자 역할을 분담해서 제품을 완성시키는 섬세한 공정을 보고 있으면 제품에 대한 이해도가 저절로 올라가요.


초콜릿 팩토리 맞은 편에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쉽게 초콜릿의 역사를 배울 수 있도록 뮤지엄을 만들었어요. 카카오 열매가 초콜릿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해설하는 한편, 세계 각국의 초콜릿 상품 패키지를 전시하죠. 뮤지엄에서 초콜릿의 과거를, 팩토리에서 초콜릿의 현재를 만난 사람들의 다음 발길은 베이커리와 숍으로 향해요. 보고, 배우고, 즐긴 후에 도착한 가게에서는 공항 한정 상품을 100여종이나 판매하고 있어요. 오직 이 곳에서만 살 수 있는 상품은 신치토세 공항에 방문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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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 아니에요. 스마일 로드에는 만화 캐릭터를 주제로 한 어트랙션 시설들이 만화 팬들의 발길을 이끄는 역할을 맡고 있어요. 일본의 대표 캐릭터인 도라에몽을 테마로 한 시설, ‘도라에몽 두근두근 스카이 파크’가 그 중 하나예요. 세계 최초로 공항에 입점한 도라에몽 어트랙션에는 정글짐, 라이브러리, 워크숍, 카페, 숍, 게임 센터까지 총 6개의 구역으로 나눠지는데요. 피규어뿐만 아니라 판매 상품, 음식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도라에몽이 등장해요. 특히 라이브러리에서는 누구나 무료로 14개국 언어로 번역된 도라에몽 만화책과 관련 서적을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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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아예 캐릭터와 함께 세계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헬로 키티 해피 플라이트’도 있어요. 이 곳에서는 헬로 키티뿐만 아니라 일본의 캐릭터 전문 기업 산리오(Sanrio)의 다른 캐릭터들도 만나볼 수 있어요.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 등의 관광 명소를 만화로 그려 놓은 배경 앞에서 사진을 찍는 건 국적을 막론하고 모든 아이가 좋아하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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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일 로드에 있는 로이스 초콜렛 월드와 도라에몽 두근두근 스카이 파크, 헬로 키티 해피 플라이트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단순히 지나가는 길이었던 연결 통로를 경유의 공간이 아니라 목적지로 만들었다는 거예요. 게다가 흔히 볼 수 있는 매장이 아니라 플래그십 매장으로 구성해서 여행객이 아니더라도 지역 주민들이 가족 단위로 방문하는 경우도 많아요.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기 직전 신치토세 공항의 연간 이용객은 2,459만 명이었어요. 필연적으로 지나가게 되는 이 연결 통로로 매일 약 7만 명에게 브랜드를 노출시키는 효과를 만든 거예요. 유휴 공간을 브랜드의 거점으로 전환시키며 신치토세 공항은 관광객과 주민의 사랑을 받는 시설로 거듭나고 있어요. 이 시설들은 있으면 좋은 ‘선호의 영역’에서 꼭 가봐야 하는 ‘필요의 영역’으로 자리를 옮겨가는 중이죠.



#2. 미식 격전지에서 열리는 최강자전

공항 관광은 스마일 로드에서 끝나지 않아요. 신치토세 공항의 국내선 터미널이야말로 관광 필수 코스예요. 이곳에 신치토세 공항의 정수가 담겨있거든요. 국내선 터미널은 통째로 홋카이도 편집숍인 것이나 다름 없어요. 홋카이도의 매력이 담겨있을 뿐만 아니라 미식의 압축판이라고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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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공간으로서의 위력을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표적인 행사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신치토세 공항 소프트 아이스크림 총선거’예요. 우수 사원이나 1등 항공사를 뽑는 것도 아니고 공항 주최로 아이스크림 선거를 하겠다니 의아하죠. 하지만 2023년으로 벌써 4회 째를 맞이하는 이 선거가 생겨난 데는 이유가 있어요.


낙농업이 발달한 홋카이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는 디저트예요. 우유, 계란 등 홋카이도산 원재료가 쿠키, 케이크, 요구르트, 치즈 등 디저트의 경계를 가리지 않고 맛을 내는데 맹활약을 하고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경쟁이 치열한 건 바로 아이스크림이에요. 특히 소프트 아이스크림은 겉보기에는 다 비슷해 보여도 가게마다 서로 다른 개성을 살려 맛이 천지차이죠.




신치토세 공항에 입점한 브랜드도 마찬가지예요. 제과업체, 유제품업체, 카페 등 약 30여 개의 매장에서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판매하지만 매장별로 각각 독특한 맛을 자랑해요. 그래서 신치토세 공항에서는 공항 이용자를 대상으로 최고의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뽑는 투표를 진행하고 있어요. 올해부터는 선거 부문도 ‘농후’, ‘깔끔’, ‘개성파’ 맛이라는 3개로 나누어 진행했죠.


올해는 총 33개 매장의 아이스크림이 후보로 올랐는데요. 이중 ‘농후’ 부문에서 1등을 차지한 건 ‘키노토야’의 극상 우유 소프트예요. 키노토야는 과거 선거에서도 3번의 우승 전력이 있어 올해 4연패를 달성했죠. 이 선거 결과 덕분에 공항을 찾은 사람들은 누구나 쉽게 자신의 입맛이나 선호에 따라 최고의 아이스크림을 골라서 구매할 수 있어요. 입점한 디저트 브랜드끼리는 선의의 경쟁이 펼쳐지고요. 그야말로 공항과 브랜드, 고객 모두가 행복해지는 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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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에 왔다면 꼭 먹어야하는 버킷리스트 중에는 디저트 말고 하나가 더 있어요. 바로 라멘이에요. 특히 홋카이도는 지역별로 국물을 내는 방식과 간을 맞추는 방법이 조금씩 달라서 하코다테 라멘, 삿포로 라멘, 아사히카와 라멘이라는 ‘3대 라멘’이 있어요. 삿포로는 돼지 뼈 육수에 된장을 넣은 미소 라멘, 하코다테는 돼지 뼈와 닭 뼈를 우려 소금으로 간을 한 라멘, 아사히카와는 돼지 뼈와 어패류로 만든 국물에 간장을 더한 라멘이죠.


물론 지역별 맛집을 찾아가 다양한 라멘을 종류별로 맛보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에요. 넓은 땅덩이에 맛집들이 모두 떨어져 있어서 찾아가기가 쉽지 않거든요. 홋카이도에 사는 지역 주민에게도 난이도가 높은 일이니 타 지역이나 국가에서 찾아온 관광객에게는 더더욱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죠. 그런데 신치토세 공항이 사람들이 가진 아쉬움과 고충을 단번에 해결했어요. ‘홋카이도 라멘 도장’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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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토세 공항 국내선 터미널 3층에는 라멘 스트리트처럼 보이는 통로에 홋카이도에서 유명한 라멘 맛집 10곳의 매장이 줄지어 있어요. 입구에서는 ‘홋카이도 라멘 도장’이라고 쓰여 있는 커다란 간판과 라멘 그릇들로 홋카이도의 지도를 만들어 놓은 설치물로 이 거리의 정체성을 단번에 설명해요. 국물의 색깔도, 토핑도 각기 다른 라멘의 모형처럼 입점한 라멘 맛집의 대표 메뉴도 전부 다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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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직접 찾으러 가려면 며칠이 걸렸을 가게들이 한 곳에 모여 있으니 비행기를 타러 온 여행객뿐 아니라 지역 주민도 애용하는 공간이 돼요. 게다가 삿포로 시내에서 전철로 40분이면 올 수 있는 접근성은 라멘 도장을 관광지로 만들죠. 사람들은 공항에 온 목적, 그리고 국적에 관계없이 이곳에서 홋카이도산 라멘들을 취향에 맞게 선택해서 먹을 수 있어요.


특히 이곳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맛의 즐거움이 또 있어요. 홋카이도 3대 라멘을 제외한 지역의 라멘과 공항 한정 메뉴죠. 리시리 지역의 다시마를 듬뿍 사용한 ‘리시리 라멘’이나 노보리베츠를 대표하는 ‘지옥 라멘’처럼 홋카이도 라멘 도장에서 시도할 수 있는 도장깨기의 대상은 충분해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홋카이도 라멘의 실력자도 만날 수 있죠.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곳은 라멘의 격전지인 홋카이도에서 어떤 라멘 맛집이 수련과 대결을 통해 최강자가 되는지 볼 수 있는 도장(道場)이에요. 그야말로 지역 공항이 주도하는 라멘 브랜딩이죠.



#3. 허브 공항, 문화 허브가 되다

이렇게 홋카이도의 매력을 품은 쇼룸은 공항을 찾아온 여행객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까지 환영하는 장소예요. 하지만 이 공항은 수동적으로 누군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지 않아요.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며 초대하죠. 그중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신치토세 공항만의 대표 행사가 있어요. 바로 ‘신치토세 공항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예요.


세계 최초 공항 영화제를 가능하게 만든 건 공항에 있는 극장이에요. 신치토세 공항은 2011년 7월에 국내선 터미널 빌딩을 대규모로 증축하며 영화관을 선보였는데요. 시간을 때우는 대기 공간이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공간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일본 최초로 구상한 아이디어였어요. 3관 규모의 영화관은 2014년에 처음으로 개최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를 계기로 전 세계 감독의 모임 장소가 됐죠.



ⓒ시티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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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참가자들의 언어와 문화, 국적은 전부 다르지만 이곳에서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돼요. ‘애니메이션’이라는 그들만의 공통 언어가 있으니까요. 감독들은 영화제에서 영화 시사를 할 뿐만 아니라 인맥을 쌓기도,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는데요. 특히 공항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모든 걸 할 수 있는 환경이 이들을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줘요. 어떻게냐고요?


감독과 참가자는 아침부터 밤까지 모든 일정을 공항 한 곳에서 소화할 수 있어요. 영화관이 있는 국내선 터미널 4층에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한 층만 내려가면 홋카이도의 맛집과 명물만을 모아놓은 식당이 나와요. 영화제 기간 동안 다양한 맛집을 골라가며 식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념품 쇼핑도 가능하죠. 그러다 밤이 되면 이들은 공항 내 호텔에서 숙박을 하며 호텔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잠을 청해요. 굳이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한 자리에서 홋카이도의 다양한 매력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거예요.


이처럼 공항에서 모든 경험을 완결시키는 의도적인 설계 덕분에 공항 영화제의 인기는 나날이 고공행진 중이에요. 10주년을 맞이한 2023년에는 영화제의 메인인 단편 부문에 93개 국가/지역에서 2,157개의 작품을 접수받아 그중 58개의 작품을 입선작으로 선정했죠. 10년 전 32개 국가/지역에서 출품한 것에 비하면 참여도가 3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에요. 2022년만 해도 3만 3천여 명이 영화제에 참석했으니 이제는 영화계의 손꼽히는 행사가 됐죠.


신치토세 공항 극장은 위치만 출중한 게 아니에요. 4K 영상 레이저 프로젝터, 디지털 스피커 등 영화의 현장감을 극대화시키는 최신 시설들을 고집하고 있어요. 또 공항 극장답게 통칭 ‘영화관 퍼스트 클래스’ 좌석을 마련했죠. 사람들은 이곳에서 별도의 추가 비용 없이 일등석 같은 특별석에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어요. 덕분에 평소 관람객의 80%가 지역 주민일 정도로 인기가 많죠. 이처럼 신치토세 공항은 영화계의 플레이그라운드이자 지역 주민의 문화 공간이 되면서, 허브 공항에서 문화 허브로 거듭났어요.



#4. 공항에서 만나는 홋카이도의 자연 유산

홋카이도의 관문이자 문화 허브라고 해서 신치토세 공항 전체가 북적이기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터미널과 매장에서는 활력과 역동성이 넘치지만, 다른 한 켠에는 조용히 휴식을 취하며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반전의 공간 ‘오아시스 파크’가 있거든요. 그 중에서도 가장 이색적인 곳은 바로 ‘천연 온천’이에요.


국내선 터미널 4층에 있는 ‘신치토세 공항 온천’은 일본에서 최초로 도입된 공항 내 천연 온천 시설이에요. 일본 전통 숙박 시설인 료칸을 닮은 입구로 들어가면 노천탕, 대욕장, 사우나, 에스테틱 코너들이 펼쳐져요. 노천탕의 물은 약 10km 떨어져 있는 ‘삼치토세 도미니오 온천’에서 매일 탱크로리로 끌어오고 있는데요. 이 남다른 노력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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홋카이도의 유산으로 지정된 이 식물성 온천물은 세계적으로 흔치 않아요. 식물성 유기물을 다량 포함하고 있어서 피부가 좋아진다는 미인탕으로도 알려져 있죠.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자 하는 지역의 자산을 공항에 데려와 선보인 거예요. 많으면 하루 900명 가량이 방문하는 이 공항 온천은 헤키운도 호텔 & 리조트에서 운영하고 있어요. 온천뿐만 아니라 공항 국내선과 직결되어 있는 ‘에어 터미널 호텔’도 함께 관리하고 있어서, 호텔 숙박객이라면 온천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요.


이 에어 터미널 호텔은 비행기 활주로에서 5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요. 덕분에 활주로 측 객실에서 커튼을 열면 비행기 기장실이 들여다보일 정도죠. 이곳에서는 비행기가 뜨고 지는 순간뿐만 아니라 정비를 하거나 급유를 하는 등 비행 뒷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24시간 바라볼 수 있어요. 항공기 덕후들에게는 카메라를 들고 꼭 방문해야 하는 필수 관광지가 됐죠. 어떤 덕후들은 방마다 미세하게 달라지는 창밖 풍경을 전부 누리기 위해서 하루마다 객실을 바꿀 정도니까요.


공항 활주로를 호텔 객실 뷰로 만들 만큼, 신치토세 공항은 스스로의 매력 포인트가 뭔지 잘 알고 또 잘 살려요. 그러면서도 동시에 홋카이도의 유산으로 지정된 온천물을 끌어들여 홋카이도를 알리기 위한 본분도 잊지 않죠. 브랜드 쇼룸, 먹거리 최강자전, 공항 영화제, 그리고 온천과 호텔까지. 이처럼 홋카이도는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그들에게 홋카이도를 경험시키는 데 귀재예요.



이틀만에 수작업으로 만든 활주로

신치토세 공항의 탑승객 수는 2019년에 역대 최다인 2,459만 명을 기록했어요. 아래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2011년 이후 매년 비약적인 성장을 보여줬죠. 비록 2019년에 코로나19 펜데믹이 발생하면서 타격을 받기는 했지만, 2023년 8월에는 국내선 여객수가 4년 만에 200만명을 돌파하며 또 한번의 도약을 준비하는 중이에요.



ⓒ北海道新聞


이렇게 명실상부한 홋카이도의 현관문이 된 신치토세 공항의 뒷편에는 치토세 주민의 노력이 있었어요. 약 100년 전인 1926년 10월에 처음 착륙장을 만든 게 바로 마을 주민들이었거든요. 100명이 넘는 당시 치토세 주민들이 이틀만에 수작업으로 200m 길이의 활주로를 만들었어요. 단순히 비행기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에서 시작된 거였죠.


손수 활주로를 만든 치토세 주민들의 바람은 그해 10월 두 눈으로 복엽기(biplane)인 ‘북해 1호기’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았어요. 아예 이 곳을 앞으로도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착륙장으로 만들기로 다짐했죠. 결국 3번의 시도 끝에 1939년 해군 항공대 기지를 세울 수 있었어요. 이때 활주로가 제대로 정비되고 공항이 확장됐고요. 종전 후 1951년에는 치토세 공항이 개항하며 처음으로 민간 항공기가 취항했어요. 도쿄 하네다 간 정기 노선이 개설됐죠.


그 후 치토세 공항은 자위대와 민간의 ‘군민 공용’ 공항으로 발전하다가 이용객 수가 늘어나며 변화의 계기를 맞게 돼요. 1988년에 항공 자위대와 활주로를 분리하기 위해 민항기 전용 활주로를 새로 만들어 신치토세 공항을 세운 거죠. 이렇게 3번의 단계를 거쳐 신치토세 공항이 만들어지는 동안 치토세도 함께 발전했어요. 도시와 공항이 그 역사와 운명을 함께해 온 거예요. 홋카이도 지역이 섬으로 되어 있어 더 그럴 수밖에요.  


신치토세(新千歳)를 이름 그대로 풀이하면 ‘새로운 천년’이라는 뜻이 돼요. 도시의 역사 속에서 성장한 공항이 앞으로의 천년을 새롭게 만들어가겠다는 의미를 담기에 충분하죠. 첫 활주로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100여년 전 100여 명의 주민이었지만, 이제 신치토세 공항은 치토세를 넘어 삿포로, 홋카이도를 순환시키고 있어요. 탑승 직전까지 홋카이도의 장점이자 정점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약하면서요. 그러니 신치토세 공항이 보여주는 새로운 천년의 모습, 기대해봐도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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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2021年の日本の国際線航空輸送:乗降客数大幅減の249万人―成田が空港別シェア約6割に, Nippon.com

 <ディープに歩こう 新千歳空港>① 国内線乗降客数2位! 飛行機に乗らなくても遊びに行きたいテーマパーク, The Hokkaido Shimbun Press

 8月の新千歳旅客数 国内線4年ぶり200万人超え, The Hokkaido Shimbun Press

 < AsiaNet>리모델링 후 홋카이도를 선보이는 상업 단지로 거듭난 신치토세공항,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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