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멋지다는 카페나 갤러리를 가보면, 많은 건물이 노출 콘크리트로 되어 있어요. ‘공사 하다가 만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죠. 그만큼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은 우리에게 친숙해요.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을 유명하게 만든 건, 세계적인 건축 구루(Guru)인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예요. ‘빛의 교회’, ‘오모테산도 힐즈’ 등을 통해 콘크리트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전세계에 알린 장본인이죠.
그런데 만약 콘크리트로 건축물이 아닌 일상의 생활용품을 만든다면 어떨까요? 안도 다다오에 영감을 받은 한 디자인 스튜디오는 콘크리트로 시계를, 펜을, 꽃병을 만들어요. 크고 무겁고 차가운 건축 소재로 여겨지던 콘크리트를 작고 가볍고 따뜻한 공예 소재로써 재발견했죠. 이 대담한 일을 해낸 스튜디오는 타이베이의 ‘22스튜디오(22STUDIO)’예요.
단순히 소재만 콘크리트를 쓰는 게 아니에요. 그랬다면 그저 콘크리트를 좋아하는 작은 공방에 머물렀을 거예요. 22스튜디오는 미학적 관점에서, 실용적 관점에서 시장 수요를 만들어 내며 20년 가까이 사업을 이어 온 어엿한 브랜드이자 회사예요. 22스튜디오는 어떻게 콘크리트를 소재로 공예와 사업 사이에서 균형감을 찾고 설 자리를 만들었을까요?
22스튜디오 미리보기
• 같은 소재, 다른 쓰임, 기회를 발견하다
• 정직한 공방의 진화, 브랜드가 되다
• 장인 정신은 나이가 아니라 진정성에서 나온다
• 공예와 고객을 연결하는 열쇠, ‘디자인’
‘차이순젠(Tsai Shun-jen)’이라는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대만의 유명 미술 복원가예요. 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 등 거장들의 미술 작품을 10년 넘게 복원해왔죠. 사실 그의 미션은 서양 미술보다 대만의 전통 있는 종교 예술 복원에 있어요. 그래서 2012년, 대만에 자신의 이름을 딴 회사 ‘TSJ Art Restoration’을 설립하고, 대만 사찰 곳곳을 돌아다니며 종교 예술을 복원하고 있죠. 사원 정문에 그려진 수호신, 내부의 그림 기법 등을 되살려요.
차이순젠은 종교 예술을 되살리고자 대대적인 프로젝트도 시작했어요. ‘백문 프로젝트(百廟門企劃)’예요. 대만에는 15,175개의 사찰 문화재가 있어요. 하지만 대만인들에게 사찰은 너무 일상적인 공간이라, 오히려 잘 관리되지 않고 있죠. 차이순젠은 경각심을 가지고 사찰이 가진 문화적 자산을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야 한다고 주장해요. 대중에게 대만 종교 예술의 의의를 알릴 ‘100개의 문’이 필요하다는 거죠.
2023년, 차이순젠은 백문 프로젝트의 두 번째 복원 사례로 타이난에 있는 푸지 사원(普濟殿)의 수호신 작품을 복원했어요. 푸지 사원은 서기 1668년 지어진 대만 최초의 왕실 사원이에요. 푸지 사원의 정문에는 마치 장군 같은 수호신이 그려진 작품이 있는데, 대만의 국보급 사찰 화가 판리수이 선생(潘麗水 1914~1995)의 작품이죠.
미술 복원가 차이순젠. ⓒ22STUDIO
푸지 사원에 있는 판리수이 선생의 문신 작품(1978). ⓒ22STUDIO
그런데 이 작품을 다른 것도 아닌 ‘시계’로 만든다면 어떨까요? 대만의 한 공예 브랜드는 차이순젠의 복원품을 시계로 만들며, ‘백문 프로젝트’에 뜻을 모았어요. 푸지 사원 작품 속의 용 문양을 따와서 2024년 용의 해를 맞아 한정 시계를 출시했죠.
평범한 시계가 아니에요. 이 시계는 건축 자재로 쓰이는 ‘콘크리트’로 만들었거든요. 시계 판은 마치 계단처럼 입체적이에요. 그 구조 위에 구름에 둘러싸인 용이 용 구슬을 뿜어내고 있죠. 시계를 넘어 조각 작품처럼 보이기까지 해요.
이 드래곤 콘크리트 시계를 만든 공예 브랜드는 ‘22스튜디오(22STUDIO)’예요. 22스튜디오는 이번 드래곤 시계 말고도 모든 제품을 콘크리트로 만들어요. 시멘트에 물, 골재, 첨가제 등을 합성해 만드는 자재가 바로 콘크리트인데요. 보통 건축에서 많이 쓰이는 소재예요. 그런데 22스튜디오는 콘크리트로 건물을 짓는 대신, 우리 삶에 가까운 일상품을 만들죠. 시계부터 스피커까지, 품목도 다양해요.
ⓒ22STUDIO
ⓒ22STUDIO
같은 소재, 다른 쓰임, 기회를 발견하다
왜 하필 콘크리트일까요? 22스튜디오의 공동 창업자 션유(Sean Yu)는 국립청쿵대학교(成功大學)의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했어요. 특히 그가 좋아하는 분야는 건축이었죠. 건축학도였던 그가 정신적 지주로 삼았던 거장이 있는데, 바로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였어요.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은 노출 콘크리트와 유리를 통해, 자연과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게 특징이죠. 안도 다다오의 콘크리트 건축물은 단순하면서도 숭고한 도시 건축을 상징해요. 션유는 도쿄에서 안도 다다오의 대표작 ‘오모테산도 힐즈’를 보고, 콘크리트라는 소재에 더 관심을 갖게 돼요.
ⓒOMOTESANDO HILLS
때마침, 션유는 시장을 배회하다가 시멘트로 만든 꽃병을 발견해요. 머리가 울렸죠. 차갑고 단단한 건축 자재인 콘크리트가 건물이 아닌 일상품의 소재가 된다면 새로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더군다나 시멘트는 원자재 가격도 저렴하니 금상첨화였어요.
션유는 이 아이디어를 실현하기로 해요. 2005년, 현재 와이프인 이팅청(Yi-Ting Cheng)을 포함해, 함께 졸업 작품을 준비하던 친구들과 디자인 스튜디오를 만들었죠. 당시 나이 22살, 그 나이의 초심과 대담함을 잃지 말자는 의미에서 이름은 ‘22스튜디오’라고 지었어요.
첫 제품은 콘크리트 반지였어요. 션유의 목표는 거대한 건축에 쓰이는 자재를, 작은 일상품으로 옮겨오는 거였죠. 션유는 마침 자신이 갖고 싶었던 특별하지만 심플한 반지를 콘크리트로 직접 만들기로 해요.
처음에는 어렵지 않을 거란 생각에 이웃집에서 남는 시멘트를 받아 썼어요. 시멘트를 실리콘 몰드에 붓고, 말리는 게 전부였죠. 완성된 반지는 노점상을 차려서 팔았어요. 그제서야 문제를 발견했어요. 콘크리트가 갈라지고, 벗겨지기 시작했죠. 션유는 콘크리트가 얼마나 다루기 까다로운 재료인지 실감해요.
“시멘트 자체는 저렴합니다. 가격이 저렴하면 불안정하기 쉬워요. 온도, 습도 등의 환경적 요인은 물론, 시멘트 배치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배합을 조정하는 수밖에 없어요.”
- 션유, 쇼핑디자인
션유는 시멘트와 콘크리트에 대해 먼저 제대로 이해하기로 해요. 토목 기술이 있는 친구들, 철물점 주인, 건축 교수 등을 찾아가 의견을 물어가며 연구를 시작했죠. 감수제를 사용하고, 모래를 첨가하는 등 연구 개발에 약 1년 반의 시간을 보낸 뒤에야 안정적인 콘크리트 반지가 완성됐어요.
제품에 자신감이 생긴 22스튜디오는 다시 노점상을 차리고, 전시회에 참가하는 등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2007년 말,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디자인 전시회 ‘100% 디자인 도쿄(100% Design Tokyo)’에 참여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해요. 해외 바이어들에게도 콘크리트 반지는 듣도 보도 못 한 독특한 제품이었죠.
2007년 당시 전시회에 참여 중인 콘크리트 반지. ⓒ22STUDIO
“콘크리트는 원래 거대한 건축물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소재예요. 그렇기 때문에 심플한 형태를 가지고 있죠. 큰 건축물 소재를, 작은 일상품으로 옮겨올 때에도 그 심플한 컨셉을 유지하고 싶었어요.”
- 션유, 시티호퍼스와의 인터뷰 중
22스튜디오의 콘크리트 반지는 콘크리트의 질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디자인이에요. 건축물에 쓰일 시멘트를 잘못 쓴 것처럼 딱딱해 보이고, 각져 있어요. 곡선과 직선, 굴곡 외에 큰 디자인 변형도 없고요. 션유는 일부러 콘크리트의 특징을 제품에 그대로 옮겨오고 싶었다고 해요. 관건은 ‘심플함’이었어요.
ⓒ22STUDIO
반지의 완성도도 높아졌고, 해외시장에서 주목도 받았어요.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여전히 22스튜디오의 인지도는 제자리였고, 하나의 기업이나 브랜드로 인정받기 보다는 작은 공방에 머물러 있던 거예요. 사업적 관점에서 22스튜디오는 정체되어 있었죠. 션유는 22스튜디오를 설립한 지 4년 차 되던 해 사업을 잠시 멈추기로 해요. 그리고 22스튜디오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결심을 하죠.
션유는 더 넓은 세상에서 영감을 얻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영국에서 션유는 전시회도 관람하고, 디자인 도안도 그리고, 굿즈도 제작하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디자인을 공부했어요. 수많은 영국의 디자이너들을 보며 깨달은 것은, ‘자신을 위한 디자인’이 아니라 ‘브랜드를 위한 디자인’을 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즉, 22스튜디오에 필요한 건 다름 아닌 ‘브랜딩’이었죠.
2011년, 대만으로 다시 돌아온 션유는 22스튜디오의 컨셉부터 다시 다져요. 브랜드 포지셔닝은 ‘도시형 부티크’로 정했죠. 콘크리트를 통해 미니멀한 생활 용품을 만든다는 의미에서요. 이후 정부 보조금을 신청하고, 재무 관리를 시작하고, 아티스트들과 사무실을 공유하며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등 사업적 면모를 갖춰가기 시작했어요.
정직한 공방의 진화, 브랜드가 되다
회사의 포지셔닝을 다듬은 것과 동시에, 제품에도 변화를 줬어요. 션유는 디자인 제품은 디자인에서 나아가 제품 기획, 연구 개발, 제조, 판매가 함께 이루어질 때에야 빛을 발한다고 생각했죠. 이 모든 게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제품이 가지고 있는 일관된 미션이 있어야 해요. 션유는 공통된 미션을 가진 ‘시리즈’ 제품을 기획하기로 결심하죠.
22스튜디오는 제품에 어떤 미션을 심었을까요? 22스튜디오가 생각하는 콘크리트의 미학은 ‘정직함’이었어요.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진 건물을 떠올려 볼까요? 페인트나 벽지 없이 자신의 속살을 그대로 내보이고 있는 모습이죠. 갈라진 틈, 마모된 흔적을 숨기지 않아요.
22스튜디오에겐 콘크리트의 이 솔직한 미학을 제대로 담고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게 중요했어요. 그래서 22스튜디오의 브랜드 철학 역시 ‘Be Concrete’예요. 직역하면 ‘구체적’이라는 뜻이지만, 22스튜디오에겐 ‘직접적이고, 정직하며, 개방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예요.
“시멘트는 참 정직한 재료입니다. 잘못 만들어도 고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태도, 우리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 션유, 화샨1914
정직한 재료로 만든 솔직한 제품이라니, 어떤 디자인의, 어떤 제품을 출시했을까요? 2011년, 새롭게 출시한 첫 시리즈 제품은 필기 도구였어요. 콘크리트 만년필, 볼펜, 샤프를 만들었죠. 펜 몸체는 플랫한 선을 여러 개 쌓아서 곡선으로 보이게 만들었어요. 지형도의 등고선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이죠. 22스튜디오에서 콘크리트는 ‘건축, 공간’을 의미해요. 그리고 그 공간감을 제품 디자인에 늘 포함시키죠. 필기도구 시리즈에서는 ‘등고선’이라는 소재를 통해 공간을 담은 펜을 만든 거예요.
필기도구 시리즈는 ‘시간의 흐름’을 통해 콘크리트의 솔직함을 느낄 수 있어요. 몸체에 90도로 꺾이는 날카로운 엣지가 쌓여 있는데, 사용자가 펜을 쥐고 사용할수록 이 엣지는 점점 마모되어 부드러워지죠.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담아, 시간이 흐를수록 사용자에 맞는 유니크한 펜이 되는 거예요.
ⓒ22STUDIO
ⓒ시티호퍼스
펜이 시간의 흐름을 통해 공간의 변화를 느끼게 하는 제품이었다면, 22스튜디오의 히어로 제품 4D 시계는 공간을 통해 시간의 무한성을 표현한 제품이에요. 4D 시계의 풀 네임은 ‘4th dimension clock’이에요. 4차원 시계라는 뜻이죠. 디자인을 보면 어떤 의미인지 예감이 돼요. 뫼비우스의 띠가 생각나기도 하고, 계단이 떠오르기도 하는 시계판이에요. 1시부터 12시까지 한 칸 씩 계단을 오르다가, 12시에서 1시로 지날 때 다시 지하 층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에요.
ⓒ시티호퍼스
ⓒ22STUDIO
“12시간을 12층의 계단으로 형상화했어요. 12시 정각에서 1시로 넘어가는 순간이 마치 지하로 이어지는 것 같죠. 시간의 무한성, 영원한 시공간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공간을 만드는 데 쓰이는 콘크리트로, 시간에 공간감을 준 거예요.”
- 션유, 시티호퍼스와의 인터뷰 중
2010년 벽시계로 시작한 4D 시계 시리즈는, 이후 대량 생산을 고려해 작은 테이블 시계와 손목 시계로 발전했어요. 현재는 4D 손목 시계가 베스트셀러죠. 손목 시계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출시됐는데, 불과 한 달 반 만에 600만 대만달러(약 2억 5,300만원)를 달성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어요.
ⓒ시티호퍼스
ⓒ22STUDIO
ⓒ22STUDIO
4D 시계는 22스튜디오의 아이덴티티로 자리잡았어요.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으로 상징성을 더 단단히 해요. 매년 그 해의 십이지신을 따서 리미티드 에디션을 제작하기도 하고, 스타워즈처럼 유명 IP와 협업하기도 해요. 2024년에는 미술 복원가 차이순젠과 함께 용의 해 에디션을 제작했죠.
4D WATCH 용의 해 에디션 ⓒ22STUDIO
4D WATCH 토끼의 해 에디션 ⓒ22STUDIO
4D WATCH 스타워즈 컬래버레이션 ⓒ22STUDIO
‘정직함’만큼이나 22스튜디오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제품의 가치가 하나 더 있어요. 바로 ‘친밀감’이에요. 콘크리트가 일상품과 만났을 때, 거대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콘크리트라는 소재에 친밀감이 생기죠. 22스튜디오는 물질적 친밀함이 있어야만 아름다운 디자인이 완성된다고 생각해요. 22스튜디오는 그 기준을 바탕으로 일상과 더 가까운 제품들로 품목을 늘리고 있어요. 반지, 펜으로 시작해 지금은 시멘트 화분과 스피커도 제작 중이죠.
품목이 늘어나도 콘크리트의 정직함을 담는 디자인은 잃지 않아요. 2021년 출시한 타원형 시멘트 화분(Super Oval Cement Flower Vase)은 부드러운 곡선 형태로 만들어, 콘크리트의 부드러움과 직접성을 반영했죠.
“시멘트의 직접성이란, 표면에 남아 있는 작은 기포 등 완제품에서 제조 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려운 모델링 구조 대신, 공간과 소재의 변화를 활용했죠.”
- 션유, 쇼핑디자인
ⓒ22STUDIO
ⓒ22STUDIO
“저희는 늘 콘크리트라는 소재를 어떻게 새로운 것, 일상적인 것에 접목 시킬지 고민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제품에 대한 시도라면 늘 가능성을 열어두죠. 이제는 콘크리트 스피커까지 만들게 되었어요.”
- 션유, 시티호퍼스와의 인터뷰 중
ⓒ22STUDIO
ⓒ22STUDIO
ⓒ22STUDIO
장인 정신은 나이가 아니라 진정성에서 나온다
2017년, 22스튜디오는 데뷔 10주년을 맞이해 ‘22워크/숍(22work/shop)’을 오픈했어요. 타이베이 중정구(中正區)의 한적한 골목에 위치해 있는 이 곳은 사무실 겸 쇼룸이자 작업실이죠. 사무실겸 쇼룸인 1층에는 각종 콘크리트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지하에서는 이 제품들을 만드는 공방이 돌아가고 있어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지하에 있는 작업실은 공방 그대로의 모습이에요. 공장처럼 포대에 시멘트 조각들이 쌓여 있고, 시멘트 소재들은 종류별로 구분되어 책장을 꽉 채우고 있죠. 이 작업실에서 22스튜디오의 모든 제품이 수작업으로 생산돼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공방 직원의 평균 연령은 약 30세 미만이에요. 왠지 나이 많은 숙련자들이 가득할 것만 같은 전형적인 ‘공방’의 분위기와 사뭇 다르죠. 젊은 나이만큼 콘크리트 소재에 대한 열정은 대단해요. 젊은 장인들은 ‘콘크리트를 일상품으로 만든다’는 챌린지를 위해 늘 다양한 실험과 연구를 이 작업실에서 반복한다고 해요. 지금까지 10년 넘게 형태, 질감, 냄새까지, 콘크리트의 모든 것에 집착하는 중이죠. 시멘트 제조업체와 협력해 다양한 제작 공식을 실험하기도 하면서 콘크리트 공예의 정점에 도달하고자 해요.
22스튜디오가 처음 콘크리트 반지를 만들 때 느꼈듯, 콘크리트는 세밀하고 정교한 재료예요. 그래서 22스튜디오는 생산 과정에서 정교함을 가장 신경 써요. 시계를 만들 땐 각 개체마다 다이얼의 치수 오차를 0.1mm 이내로 줄이죠. 제품마다 20개 이상의 단계를 거쳐야 하고요. 또, 시멘트는 반응이 느린 재료이기 때문에 최소 3~4번의 품질 검사가 필요해요.
시티호퍼스 팀에게 제작 과정을 설명해주는 션유 대표.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팀에게 제작 과정을 설명해주는 션유 대표. ⓒ시티호퍼스
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간략하게 알아볼까요? 우선, 물과 시멘트의 비율을 저울로 조정해요. 그런 다음 믹서를 사용해 섞은 뒤 실리콘 몰드에 붓죠. 22스튜디오의 몰드는 반투명하게 되어 있어서, 기포의 유무를 쉽게 관찰할 수 있어요. 이 과정에서 도구를 사용해 몰드 안의 기포를 제거하죠. 2시간 동안 콘크리트를 굳힌 뒤 몰드에서 빼내어 탈형해요. 탈형된 콘크리트는 강도가 낮기 때문에 가공이 쉬워요. 이때, 형태를 다듬어야 해요. 마지막으로, 외부 부품을 조립하고 14일 동안 숙성실에 넣어 콘크리트가 최고의 강도를 가지게 되는 순간까지 기다리죠.
ⓒ22STUDIO
ⓒ22STUDIO
ⓒ22STUDIO
ⓒ22STUDIO
ⓒ22STUDIO
22워크/숍은 작업실에서 나아가, 교실이 되기도 해요. 이따금 클래스를 열어 고객들이 직접 장인이 되어보도록 하죠. 고객들은 클래스를 통해 직접 시멘트를 만져보고,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요. 2021년 화분을 출시했을 땐 자신만의 시멘트 화분을 만들고, 플로리스트에게 꽃꽂이까지 배우는 이벤트를 열었죠.
클래스를 연다는 건, 장인 정신을 추구하면서도 자신들의 기술을 숨기고 감추기보다, 나누려는 마음이 큰 거죠. 감추는 대신 나누는 것을 선택한 결과는 더 큰 친밀감이에요. 22스튜디오는 제품에 친밀감을 넣듯, 고객들과의 관계에도 친밀감을 담아 22워크/숍이 단순한 공장이 아닌 친근한 동네 공방처럼 보이길 원하죠.
ⓒ22STUDIO
ⓒ22STUDIO
ⓒ22STUDIO
“저희 스튜디오는 공장입니다. 디자인과 생산은 하나입니다. 우리는 컴팩트한 규모를 최대한 활용해, 컨셉부터 생산까지 각 제품의 모든 과정에 참여하죠. 이게 가능한 이유는 장인 정신입니다. 작은 부분 하나하나 개선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합니다. 공예가 얼마나 큰 헌신과 진정성을 가진 분야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여정에 동참하고 우리와 사랑을 나눌 수 있을 겁니다.”
- 22스튜디오
ⓒ22STUDIO
2024년 3월 현재, 22스튜디오의 보금자리인 22워크/숍은 디화제(迪化街)로 자리를 옮겼어요. 디화제는 타이베이 구시가인 다다오청(大稻埕)의 중심 거리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활력이 넘치는 곳이에요. 22스튜디오의 장인정신과 콘크리트라는 현대적 소재가 꽃을 피우기에 최적이죠. 새로운 동네에서 이어나갈 22스튜디오의 이야기가 궁금해져요.
공예와 고객을 연결하는 열쇠, ‘디자인’
22스튜디오의 컨셉에 귀감이 된 안도 다다오가 콘크리트라는 소재로 주목을 받았던 건, 기존의 상식을 깨뜨렸기 때문이에요. 원래 콘크리트는 감춰야 하는 대상이었어요. 도색을 하고 도배를 해서 어떻게든 콘크리트의 맨살을 감췄죠. 하지만 안도 다다오는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로 콘크리트는 그 자체로 아름다운 마감재임을 세상에 확인시켰죠.
22스튜디오 역시, 콘크리트가 건축 자재에서 나아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공예 소재임을 세상에 확인시키고 있어요. 그리고 션유는 말해요. 제작을 위한 장인 정신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제품의 수준을 결정하고 제품에 영혼을 부여하는 건 ‘디자인’이라고요.
“장인의 매력은 수많은 수작업과 시간, 정신적인 경험의 축적에서 나와요. 하지만 거기에 그치면 재미가 덜해집니다. 공예와 디자인 제품의 가장 큰 차이점은 컨셉의 변신을 볼 수 있느냐는 거예요. 22스튜디오의 제품은 눈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시멘트라는 컨셉 측면에서도 도시 생활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죠.”
- 션유, 쇼핑디자인
현대적 라이프스타일과 위화감 없는 22스튜디오의 제품들은 전체 구매의 80%가 온라인에서 이루어져요. 수십만원이 훌쩍 넘는 시계를 실제로 보지도 않고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사람들이 누구일까요? 유명한 대형 브랜드보다 진정성과 스토리를 가진 브랜드에 관심이 많은 테크 가이(Tech guy)들이 주 고객층이라고 해요. 실용성, 디자인, 컨셉, 스토리 등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그들의 마음에 든거죠.
22스튜디오의 또 다른 주요 고객들은 ‘기업’이에요. 매출의 30%가 기업 고객으로부터 나와요. 건축 회사, 콘크리트 회사 등 기존에 콘크리트를 소재로 한 사업을 하던 회사들이 선물용 굿즈를 제작할 때 22스튜디오를 많이 찾는다고 해요.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인 ‘기아(Kia)’의 대만 법인도 22스튜디오의 고객사죠.
ⓒ시티호퍼스
22스튜디오의 디자인은 대만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어요. 뉴욕의 모마(MoMa), 런던의 V&A, 런던 디자인 뮤지엄(London design museum) 등의 디자인 숍에 입점해 있죠. 단순히 공예 기법, 생산 기술에서 그치지 않고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컨셉과 디자인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에요. 22스튜디오는 공예 브랜드에 머무르지 않고, 브랜드로서 성장해 왔어요. 미래에는 더 넓은 시장에서, 더 많은 고객과 공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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