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나는 두리안에서 돈 냄새를 맡다

99 올드 트리스

2022.12.06

채소에 고수가 있다면, 과일엔 두리안이 있어요. 둘 다 호불호가 갈리죠. 향 때문에요. 그나마 고수는 향이라고 표현이라도 하는데, 두리안에서 향이 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두리안 ‘냄새’죠. 두리안에 있는 황 성분 때문에 두리안에서는 달걀이나 양파가 썩은 냄새가 나요. 세계에서 가장 악취가 나는 과일로도 불리죠. 이 과일을 누가 먹냐고요?


냄새는 나지만, 맛은 끝내줘요. 그래서 은근히 ‘호’인 사람들이 꽤 있어요. 어느 정도냐면요. 2020년 두리안 시장은 약 200억 달러(약 26조 원) 규모이고, 2025년까지 280억 달러(약 37조 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돼요. 이는 우리나라 게임 시장의 전체 규모와 맞먹어요. 수요 대비 공급이 적어 가격도 과일 중에 비싼 축에 속하고요.


이처럼 냄새나는 과일 두리안에서 돈 냄새를 맡은 브랜드가 있어요. 길거리에서 두리안을 파는 작은 노점상에서 시작해, F&B 브랜드로 성장한 ‘99 올드 트리스(99 Old Trees)’예요. 그들은 어떻게 두리안 냄새에서 향기로운 기회를 찾았을까요?


99 올드 트리스 미리보기

 #1. 수입산 과일을 국내산 과일처럼 판매하는 방법

 #2. 불편함과 특별함 사이에서 발견한 B2B 시장

 #3. 제철 과일의 숙명인 비수확기를 극복하는 지혜

 냄새를 향기로 바꾸는 진심




싱가포르에는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벌금을 내는 과일이 있어요. 바로 두리안이에요. 두리안은 열대 과일의 한 종류인데 지하철, 택시, 공항, 식당 등의 공공장소에도 반입이 금지되어 있어요. 이를 어겼을 경우에는 최대 SGD 500 (약 48만 원)이라는 벌금을 내야 할 수도 있죠.


ⓒThe Guardian


물론 싱가포르는 엄격한 벌금으로 유명한 나라에요. 길거리에서 흡연을 하거나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리면 SGD 1,000(약 96만 원),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버리다 걸리면 SGD 300(약 29만 원)의 벌금이 나와요. 우리나라 기준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도 벌금의 대상이에요. 화장실에서 물을 내리지 않으면 SGD 500(약 48만 원), 집에서 옷을 입고 있지 않고 걸어다니면 무려 SGD 2,000(약 200만 원)이라는 벌금을 내죠. 그렇다고 하더라도 과일 하나 가지고 있을 뿐인데 벌금 48만 원이라뇨?


허나 두리안의 냄새를 맡아보면 이해가 가요. 두리안에 있는 황 성분 때문에 두리안에서는 달걀이나 양파가 썩은 냄새가 나죠. 그래서 세계에서 과장 악취가 나는 과일로도 불려요. 2018년에는 화물칸에 실린 두리안의 냄새 때문에 인도네시아 여객기가 출발하지 못하기도 했고, 같은 해 호주 멜버른의 어느 대학교에서는 두리안 냄새를 가스 누출로 착각해 600여명이 대피하기도 했어요. 악명 높은 두리안이지만, 맛은 끝내줘요. 크리미한 식감과 고소한 맛이 일품이라 동남아에서는 ‘과일의 왕’이라고 불리며 인기를 자랑하니까요.


ⓒFreepik

이런 두리안을 키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 하죠. 연평균 기온은 27-30도, 연 강수량은 1,500~2,500mm, 상대 습도 75-80% 등 여러 제약 조건이 있어 대부분이 말레이시아의 3개 주에서 수확될 뿐이에요. 거기에 1년에 2번만 수확할 수 있는 소중한 과일이죠. 그래서 과일 중에서도 비싼 편에 속해요. 두리안 한 통은 약 5만원 정도인데, 껍질을 벗기면 과육은 1kg정도 나와요. 수박이 1kg당 5,000원, 비싸다는 샤인머스캣도 1kg당 2만 원을 넘지 않으니 두리안의 가격이 얼마나 비싼지 알 수 있어요.


비싸고 맛있는 두리안에 사람들이 점차 빠지면서, 관련 시장과 산업도 덩달아 커지고 있어요. 2020년 두리안 시장은 약 200억 달러 (약 26조 원) 규모이고, 2025년까지 280억 달러 (약 37조 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돼요. 이는 우리나라 게임시장의 전체 규모와 맞먹어요. 두리안 수입국 1위인 중국에서 진행한 어느 두리안 행사에서는 1시간도 채 안되어 무려 300,000개의 두리안이 판매되는 진풍경도 벌어졌어요. DHL은 두리안을 하루만에 배송해주는 두리안 전문 배송서비스 DHL Durian Express도 런칭 했을 정도죠.



ⓒDHL


이처럼 황금 빛의 냄새나는 과일 두리안을 가지고, 황금같은 돈 냄새를 맡은 브랜드가 있어요. 길거리에서 두리안을 파는 작은 노점상에서 시작해, F&B 브랜드로 확장한 ‘99 올드 트리스(99 Old Trees)’예요.



#1. 수입산 과일을 국내산 과일처럼 판매하는 방법

싱가포르는 섬나라예요. 4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 있죠. 거기에 면적도 작아요. 싱가포르 전체 면적은 약 740km2 정도로 서울보다 조금 더 큰 정도고, 인구는 서울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죠.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연결고리의 역할을 하며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로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지만 농업을 하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에요. 그런데 99 올드 트리스는 싱가포르의 한복판에 있으면서 두리안의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을 시도해요.


그 비결은 농장의 위치에 있어요. 99 올드 트리스가 두리안을 수입하는 농장은 싱가포르에 있지 않아요. 싱가포르에서 차로 6시간 거리에 있는 말레이시아 파항(Pahang) 지역에 있죠. 이곳은 두리안을 키우기 위한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어요. 온도와 습도도 적당하고, 강수량도 충분하죠. 두리안은 나무에서 자연적으로 땅에 떨어질 때가 익었을 시점이고, 땅에 떨어진 시점부터 24시간 내에 먹어야 가장 맛있어요. 그래서 이곳에서 수확한 두리안을 농장 근처의 시설에서 포장해 12시간 내에 고객에게 배달하죠. 지리적 접근성을 이용해 수입 과일을 국내산 과일의 유통 속도로 판매하는 셈이에요.



ⓒThe Star


이렇게 농장과 직접 거래하고, 중간 상인 없이 유통과 판매까지 직접 담당하니 두리안의 가격은 물론이고 품질 관리도 확실해요. 모든 두리안은 99 올드 트리스가 자체적으로 구분하는 체계에 따라 분류돼요. 총 3가지 단계로 구분이 되는데, 높은 품질의 두리안은 싱가포르에서 비싸게 판매되고 상대적으로 낮은 품질의 두리안은 말레이시아 현지에서 저렴하게 판매돼요. 브랜드의 퀄리티를 지키면서도, 두리안을 남지 않게 처리할 수 있는 전략이에요.



ⓒ99 Old Trees


그런데 농장에서 직접 두리안을 배송하다 보니 생각치 못한 문제가 생겨요. 바로 배송이에요. 말레이시아에서 수확한 두리안은 저녁에 소비자가 맛볼 수 있도록 7시에서 9시 사이에 도착하게 되어있어요. 그런데 배달을 하는 과정에서 현지 도로 사정과 교통 상황에 따라 딜레이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죠. 새벽에 배송이 되거나, 지나치게 배송이 늦어져 주문이 취소되는 경우도 생겼어요. 그렇다고 시간을 맞추기 위해 항공을 이용하자니 비용이 문제였고요.



#2. 불편함과 특별함 사이에서 발견한 B2B 시장

그래서 99 올드 트리스는 싱가포르에 허브의 역할을 하는 공간을 만들었어요. 기존에는 말레이시아 농장에서 고객의 집으로 바로 배송했다면, 이제는 싱가포르에 있는 센터에 입고한 후 여기서 다시 고객의 집으로 배송을 해주는 시스템으로 바꾼 거예요. 두리안 물류창고 같은 역할이죠. 두리안의 생산부터 유통까지의 과정을 직접 관리하니 배송 사고도 줄어들었어요. 특히 자체 자량을 보유하고 두리안 재고를 미리 확보해 놓으니 오늘 주문하면 내일 바로 받아볼 수 있게 됐어요.  



ⓒ99 Old Trees


또한 완성된 두리안 밸류체인을 바탕으로 더 많은 시도를 할 수 있게 됐어요. 기업 고객으로 고객층을 확대한 거예요. 기업 고객과 두리안 배달이라니, 언뜻 보면 관계가 없어 보여요. 하지만 두리안 파티(Durian Party)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기업 고객 시장을 두드렸죠. 두리안 파티는 기업에서 직원들을 위한 워크샵이나 클라이언트를 위한 모임을 할 때 두리안을 배달해주는 서비스예요. 그렇다고 단순히 배달만 해주는 서비스는 아니에요. 가장 맛있을 때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처리해주죠.


두리안을 먹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두리안은 ‘가시가 있는 과일’이라는 뜻처럼 외피는 가시로 둘러 쌓여 있고, 개 당 무게가 무거워 운반이 어려워요. 껍질 자체도 두꺼워 과육을 먹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손질이 필요하죠. 게다가 두리안의 3/4 정도는 먹을 수 없는 껍질이고, 과육 안에 있는 씨도 큰 편이라 먹고 나서 부산물을 처리하는 것도 번거로워요.


99 올드 트리스의 기업 서비스는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줘요. 이벤트 날짜와 먹고 싶은 두리안의 양만 지정하면 끝. 예산에 맞게 두리안을 공수해오고, 함께 온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신선한 두리안을 먹기 좋게 손질해요. 먹고 남는 쓰레기도 수거해가니 걱정 없이 즐기기만 하면 되죠.


99 올드 트리스 입장에서는 두리안을 대량으로 판매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기업에서는 고급 과일인 두리안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이색적인 경험을 할 수 있어요. 투자기관 테마섹(Temasek), IT 회사 시스코(Cisco), 화학 회사 린데 가스(Linde Gas) 등의 대기업은 물론이고 일반 커뮤니티 모임에서도 두리안 파티를 벌이는 이유죠.


기업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1회에 160명 정도의 규모로, 1인당 2kg의 두리안을 소비하니 1번 파티가 열리면 평균적으로 320kg의 두리안이 판매되는 셈이죠. 인기있는 품종인 마오 샨 왕을 기준으로 1kg에 SGD 82(약 8만 원)으로 대략적으로 계산해보면 1회에 무려 2,560만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어요. 심지어 1회에 500명씩 이벤트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할인을 고려하더라도 꽤 큰 액수에요. 하지만 파티도 언젠가 끝나는 것처럼 두리안 파티도 1년 내내 지속되지는 않아요.



#3. 제철 과일의 숙명인 비수확기를 극복하는 지혜

두리안은 계절성이 뚜렷한 과일이에요. 3월과 9월에 두 번 꽃이 피고, 최대 2번 수확이 가능해요. 이때는 행복한 비명을 질러요. 하루에 무려 500~800kg 정도의 두리안을 판매하니까요. 두리안의 품종에 따라 다르지만 마오 샨 왕을 기준으로 1kg 당 SGD 82(약 8만원)으로 계산하면, 무려 하루에 4,000만원에서 6,400만원가량, 3달간 최대 58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죠.


문제는 두리안의 수확이 어려운 나머지 기간이에요. 무려 1년의 3/4를 차지하죠. 이 시기에는 두리안의 수확 자체가 감소해 수요가 줄거나 그나마 있는 두리안도 저온 상태로 보관해 상대적으로 맛이 떨어질 수 밖에 없어요. 수요와 공급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고용을 줄일 수는 없어요. 비수기에 두리안이 팔리지 않는다고 인원을 감축하면 성수기 특수를 누릴 수 없으니까요. 특히 두리안 전문가의 경우는 그 수가 많지 않아 대체하기도 쉽지 않고요. 인건비 부담이 생기죠.  


제철이 아닌 시기까지 제철로 만들기 위해 99 올드 트리스는 오프라인 매장을 오픈했어요. 2021년 7월에 싱가포르의 문화 중심지 탄종파가르에 두리안 관련 메뉴를 파는 20석 남짓한 카페를 연 거예요. 이곳에서는 두리안이 맛있지 않은 시기에도 두리안을 맛있게 즐길 수 있도록, 생두리안뿐만 아니라 두리안을 가지고 만든 디저트까지 선보여요.



ⓒ99 Old trees


시그니처는 스팅키(Stinky) 시리즈예요. 스팅키 시리즈는 99 올드 트리스에서 판매하는 두리안 디저트의 브랜드명인데, 이름에서부터 두리안 특유의 향을 연상시키는 재미가 있어요. 스팅키 슈는 슈 형태의 패스트리로 두리안 슈크림이 가득 차 있어 한입 베어물면 두리안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워요. 스팅키 롤은 롤 케익 가운데 두리안 크림을 넣어 빵의 폭신함과 두리안의 맛이 조화로워요. 또한 두리안 펄프를 올린 두리안 아이스크림도 인기죠.



ⓒ99 Old trees


이렇게 과일이 아니라 디저트로 두리안을 접근하니 제철이 아니어도 1년 내내 고객을 맞이할 수 있어요. 생 두리안만을 팔았다면 1년 중 1/4만 판매가 가능했겠지만 디저트로 가공하자 빈 시기 없이 매출이 일어나요. 특히 디저트의 경우 과숙성된 두리안 과육을 이용하여 만드니 재고를 처리하기에 좋고, 비수기 때의 유휴 인력을 활용하면 되니 추가 인건비도 적게 들어가죠. 이렇게 만든 두리안 디저트는 자체 매장뿐 아니라 근처 호텔에서도 판매하며 매출에 도움을 줘요.


손님 입장에서는 낯선 경험을 익숙하게 즐길 수 있어요. 두리안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손님들에게는 익숙한 디저트의 형태로 진입장벽을 낮춰주죠. 프랑스에서 수련한 파티셰의 능숙한 솜씨 덕분에 디저트 자체만으로도 이미 퀄리티가 높아요. 반대로 익숙한 경험을 낯설게도 제공한다고 볼 수도 있어요. 두리안이 친숙한 고객들에게는 디저트라는 새로운 형태로 두리안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니까요.


그뿐 아니에요. 두리안으로 오마카세를 만들기도 해요. 오마카세는 셰프가 그날의 재료에 따라 내어주는 일본 요리의 방식이에요. 오마카세라는 뜻도 셰프에게 맡기다라는 의미죠. 그래서 두리안 오마카세도 그날 들어온 두리안의 상태에 따라 각기 다른 6가지의 두리안을 맛볼 수 있어요. 1인당 SGD 60으로 디저트치고는 비싼편이지만, 제공되는 두리안의 양과 가격을 고려하면 남는 장사에요. 두리안을 비교해보면서 경험할 수 있는 재미는 덤이고요.



냄새를 향기로 바꾸는 진심

99 Old Trees는 말 그대로 99개의 늙은 나무라는 뜻이에요. 두리안을 가져오는 말레이시아 농장에는 25년 이상된 오래된 두리안 나무가 정확히 99개가 있는데, 이를 기리기 위해 브랜드 이름을 정한 것이죠. 가게 이름뿐만 아니라 대표 본인의 직함도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직함인 CEO가 아니라, CDO Chief Durian Officer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죠.


ⓒ99 Old Trees

또한 가게 입구에도 두리안을 끌어들여요. ‘HOLD YOUR BREATH’라는 메시지를 적어두었는데,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매장에 들어올 때 숨을 참으라는 뜻이죠. 매장 내 가득한 두리안의 냄새를 조심하라는 위트있는 문구예요. 하지만 단순히 경고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99 올드 트리스가 보여줄 새로운 두리안의 세계를 숨을 참고 기다리라는 의미도 동시에 가지고 있어요.


두리안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하는 것으로 모자라, 이름, 메시지 등까지 두리안을 모티브로 할만큼 99 올드 트리스는 두리안에 진심이에요. 그들이 진심을 바탕으로 두리안에서 발견한 비즈니스 기회를 차근히 키워 가는 것을 알게 되면, 그 동안 맡았던 두리안의 향이 냄새가 아닌 향기로 다가올 지 몰라요.




Reference

 99 Old Trees 홈페이지

 Don't Make These Expensive Mistakes: Common Fines in Singapore To Avoid in 2022, Seedly

 lllegal Durians: How Much Trouble Will You Really Get In?, Year of the Durian

 Durian Fruit Market Size, Grand View Research

 Durian Express, DHL

 Bearing the fruits of 99 Old Trees: They invested S$60K to build a durian business in S’pore, Public News

 Southeast Asia celebrates durian at parties, festivals and buffets, Nikkei Asia

 주요 열대 아열대 과수 소개 _두리안, 농사로

 호주 대학, 가스 누출 의심으로 학생들 대피... 범인은 두리안,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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