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만든 오리지널 콘텐츠, 열 브랜드 안 부럽습니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토대로 세계관을 펼쳐 나갈 수도 있고, 다양한 형태로 멀티 유즈(Multi-use)하면서 사업을 확장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제대로 된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기 어려울 경우는 어떻게 해야하죠?
라이센싱을 해서 누군가가 만든 오리지널 콘텐츠의 캐릭터나 스토리 등을 활용할 수 있어요. 물론 그만큼 비용이 들죠. 하지만 이 마저도 어려운 경우가 있어요. 저작권료를 낼 만큼 자본력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럴 땐 과거의 콘텐츠를 활용해 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저작권자가 사망한 후 70년이 지나면 저작권료를 내지 않고도 오리지널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죠.
70년이 넘은 콘텐츠를 누가 보냐고요? ‘앤소포스’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예요.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누구도 본 적 없게 만들었거든요. 고객들이 줄을 서는 건 물론이고요.
앤소포스 미리보기
•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누구도 본 적 없는 방법으로
• Scene#1. 스토리와 ‘공간’의 함수
• Scene#2. 스토리와 ‘참여’의 함수
• Scene#3. 스토리와 ‘식사’의 함수
• 런던으로 간 시티호퍼스, 자기만의 함수를 만들다
이런 내기라면 도전하실 건가요? 80일 동안 전 세계를 한 바퀴 돌고 돌아오는 거에 전 재산의 절반을 거는 내기죠. 그리고 스스로가 그 여행의 당사자가 되어 나머지 절반의 재산을 여행 경비로 쓰고요. 단, 비행기를 타서는 안 되고 기차와 배만 탈 수 있어요.
성공해야 본전이고 성공하지 못하면 전 재산을 잃는 이 내기에 도전한 갑부가 있었어요. 1872년, 영국 런던에 사는 ‘필리어스 포그(Phileas Fogg)’라는 인물이에요. 그는 영국 상류사회 인사들의 모임인 ‘개혁 클럽(Reform Club)’의 멤버로, 클럽 멤버들과 세계 일주에 걸리는 시간에 대한 논쟁 끝에 이 내기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세달이면 세계 일주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누군가 미심쩍다는 발언을 하자, 필리어스 포그는 80일이면 된다며 전 재산의 절반인 2만 파운드를 걸어 버린 거죠.
필리어스 포그는 큰 부자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인물이었어요. 무엇으로 돈을 벌었는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아무 것도 알 수 없었어요. 다만 특이한 점은, 런던 새빌로(Savile Row)에 위치한 저택에서 혼자 살면서 계획적이고 규칙적인 일상을 보낸다는 거였죠. 매일 같은 시간에 개혁 클럽에 방문해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자정이면 집에 들어와 자는 패턴이었어요. 한편 그는 전 세계 곳곳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 사람들은 그가 전 세계에 안 가 본 곳이 없는, 적어도 머릿속으로는 전 세계를 다 다녀본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필리어스 포그가 진짜로 세계 여행을 해 봤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이번 내기에 참여한 데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었어요. 신문에서 인도 반도를 관통하는 철도가 개통되어 80일이면 세계 일주를 할 수 있다는 기사를 보았기 때문이죠.
클럽에서 집으로 돌아온 그는 하인 ‘장 파스파르투(Jean Passepartout)’와 함께 세계 일주를 떠나요. 영국 런던을 출발해 프랑스 파리, 이집트 수에즈, 인도 뭄바이와 캘커타, 홍콩, 일본 요코하마,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등을 거쳐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는 긴 여행이었죠. 그렇게 계획적이고 규칙적이던 필리어스 포그도 세계 여행을 하며 예상치 못한 사건 사고에 부딪혀요. 여행 중 만난 픽스(Fix) 형사에게 은행 절도범으로 몰리기도 하고, 요코하마로 가는 배를 놓치기도 해요. 가장 큰 난관은 인도에서 맞닥뜨려요. 현장에 가보니 횡단 철도가 아직 완공 전이였어요. 여행의 시작이자, 내기의 근거가 되었던 기사가 오보였던 거예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코끼리를 타고 인도 정글을 지나기도 하죠.
필리어스 포그와 장 파스파르투는 무사히 80일 안에 세계 여행을 마칠 수 있었을까요? 결말은 진작에 나왔지만, 공개하지는 않을게요. 사실 필리어스 포그의 여행기는 허구에 바탕한 <80일간의 세계 일주>라는 소설에 나오는 내용으로, 아직 책을 못 본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요. 과학 소설 분야를 개척한 프랑스 작가 ‘쥘 베른(Jules Verne)’의 이 작품은 발간된 1873년 당시, 획기적인 설정에다가 이국적인 배경을 생생하게 묘사한 덕분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어요. 오늘날에도 쥘 베른의 소설 중 명작으로 손꼽히고 수차례 영화화되기도 했죠. 하지만 이미 항공이나 지상 교통의 발달로 더 짧은 기간 동안 세계 일주가 가능해진 지금, 쥘 베른 소설을 더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여러 차례 드라마, 연극, 영화 등으로 제작되었어요.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누구도 본 적 없는 방법으로
싱가포르 최초이자, 유일한 이머시브(Immersive) 극장 회사, ‘앤소포스(Andsoforth)’는 그 방법을 알고 있는 듯 해요. 바로 연극과 다이닝(Dining)을 결합해서죠. 앤소포스는 다이닝과 스토리를 결합한 ‘책 분석 워크숍(Book Analysis Workshop)’을 통해 쥘 베른의 소설과 같은 클래식한 이야기나 소재를 재해석해 왔어요. 이전에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호두까기 인형, 스파이 등 모두가 아는 이야기도 새롭게, 혹은 한 번쯤 제목은 들어 봤지만 내용을 모르는 이야기도 인상깊게 즐길 수 있도록 스토리를 다이닝 경험으로 재구성했죠. 마치 공연을 관람하듯, 때로는 공연에 참여하듯 스토리 라인을 따라 식사가 진행돼요. 이럴 때는 오히려 낯설고 새로운 플롯보다는 누구나 알고 있는 고전 소설이 유리하죠.
앤소포스의 책 분석 워크숍의 가격은 요일마다 다르지만 1인당 128~168 싱가포르 달러(약 12만~16만 원)정도예요. 여기에 예약 1건당 예약비 5 싱가포르 달러(약 5천 원)가 추가돼요. 만만치 않은 가격이죠. 게다가 장소도 비공개로, 참가자들한테 식사하기 바로 전날 정확한 위치를 알려줘요. 원래는 팝업 형식으로 장소를 옮겨 다니며 진행했었는데, 2016년부터 고정적인 장소에서 진행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위치도 대중교통으로 가기 어렵고 도심의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죠. 막상 알려준 장소에 도착하면 10만 원이 넘는 돈을 내고 식사를 하러 왔다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의 허름한 건물이 보일 거예요. 심지어 엘레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꼭대기 층에 위치해 있죠.
앤소포스 극장의 입구예요. 이렇다할 간판도 없이 숨어 있어요. ⓒ시티호퍼스
건물 꼭대기층의 불이 켜진 곳이 앤소포스의 이머시브 다이닝이 펼쳐지는 공간이에요. ⓒ시티호퍼스
반신반의하며 앤소포스의 공연장이자 식사가 시작되는 공간으로 들어가는 순간, 의구심과 실망의 마음은 단숨에 사라져요. 2시간 반 동안의 식사가 마무리 될 때쯤에는 허름한 건물의 외관이 오히려 반전 매력의 요소로 작용하죠. 그래서일까요? 가격과 위치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30분 마다 10명 단위로 예약을 받는 책 분석 워크숍은 늘 일찍이 예약이 마감돼요. 지금부터 연극과 식사, 관람과 참여, 현실과 허구를 넘나 들며 창의력으로 무장한 다이닝 세계를 파헤쳐 볼게요.
Scene#1. 스토리와 ‘공간’의 함수
이머시브 다이닝 경험을 구현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공간’이에요. 식사 시작부터 끝까지 컨셉에 충실하게 꾸며진 공간 덕분에 스토리에 더 몰입할 수 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죠. 공간이 주는 압도감과 시각적 자극만으로도 참가자들의 몰입이 자연스럽게 시작되는 거예요. 고전적인 소재를 다루는 만큼 앤소포스가 공간을 디자인하고 장면을 전환하는 방식은 꽤 아날로그적이에요. 이머시브 다이닝에 짝궁처럼 등장하는 미디어 아트 없이, 물리적으로 공간 이동을 연출해요. 식사 중간 중간 코스마다 고객을 움직이죠. 그것도 귀찮지 않고 아주 흥미로운 방법으로요.
<80일간의 세계 일주>가 전 세계 여러 도시를 돌며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을 로드 무비 형식으로 다룬 소설인 만큼, 그에 따라 책 분석 워크숍도 전혀 다른 7개 방을 이동하면서 진행돼요. 각 공간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도시 혹은 특정 장소를 테마로 꾸며져 있고 조명, 장식, 무드 등 디테일의 레벨이 몰입감을 주기에 충분해요. 각 공간은 문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문조차 인테리어처럼 각 공간에 맞게 디자인되어 있거나 숨겨져 있어 다른 공간으로 향하는 문임을 눈치 채기가 힘들어요. 한 공간에서 다음 방으로 이동할 때마다 마치 장면이 전환되는 듯 하죠.
첫 번째 장소인 게이어티 극장의 문을 열면 두 번째 공간인 몽골리아 호가 나와요. ⓒ시티호퍼스
홍콩에서 중국으로 가는 열차 한 켠에 있는 서랍장은 다음 장소인 일본 요코하마의 탄광으로 향하는 통로예요. ⓒ시티호퍼스
이런 공간의 분위기를 살리고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건, 각 방의 컨셉에 어울리는 복장을 한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들이에요. 연극 배우처럼 보이는 이들은 자기가 담당하는 도시나 역할에 맞는 코스튬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도시에 따라 인종 또는 국적이 다르기도 해요. 예를 들어 인도 캘커타 정글은 인도계 연극 배우가, 일본 요코하마의 탄광이 배경인 방에서는 일본계 연극 배우가 퍼실리테이터를 담당하는 식이죠. 퍼실리테이터들은 자기가 담당한 도시 또는 장소가 책에서 어떤 배경인지, 이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연극을 하듯 재미있게 스토리를 이어 나가요. 덕분에 책 내용을 잘 모르는 참가자들이라도 소설 속 줄거리를 이해하며 전체 워크숍을 즐길 수 있죠.
인도 캘거타 정글이에요. ⓒ시티호퍼스
현장감을 전달하기 위해 몇 가지 예시를 들어 볼게요. 극이 시작된 후 세 번째 공간은 인도 캘커타의 정글인데 풍성하게 우거진 수풀 데코는 기본이고, 소설 속에서 필리어스 포그가 코끼리를 타고 정글을 지났다는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커다란 코끼리 머리 장식이 등장하기도 하죠. 사파리 룩을 한 인도계 퍼실리테이터가 ‘진짜 코끼리를 사기에는 돈이 부족해서 머리만 가져왔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해요. 네 번째 공간은 홍콩에서 중국으로 갈 때 필리어스 포그가 탔던 열차인데요, 창 밖 풍경을 영상으로 틀어 정말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듯한 기분이 들죠. 다섯 번째 방은 일본 요코하마의 탄광으로 이 곳에서 여섯 번째 공간으로 넘어갈 때는 광부들이 탔을 법한 카트를 타고 밧줄을 당기며 이동해요. 몰입감을 조성하는 공간의 디테일이 예상을 뛰어 넘죠.
홍콩에서 중국으로 가는 열차의 창 밖 풍경을 재현했어요. ⓒ시티호퍼스
요코하마 탄광에서 다음 공간으로 이동할 때에는 광부들이 타는 카트를 타요. ⓒ시티호퍼스
Scene#2. 스토리와 ‘참여’의 함수
소설 속 내용을 생생히 구현한 공간과 퍼실리테이터가 몰입감의 트리거가 되었다면, 몰입감을 완성하는 건 몰입의 주체인 관객이에요. 그래서 앤소포스는 고객들이 스토리에 충분히 참여하고 즐길 수 있도록 도와요. 먼저 책 분석 워크숍을 신청하면 주문 확인서를 이메일로 보내주는데, 여기에 전체 워크숍의 대략적인 흐름, 주의 사항 등과 함께 드레스 코드를 알려 줘요. 드레스 코드는 ‘1890년대 영국 비즈니스 캐주얼’로, 예약 날짜 바로 전날 문자로 보내주는 사전 안내서에도 ‘드레스 코드는 적극 추천이나 강제 사항은 아니며, 편한 신발을 신고 오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죠. 드레스 코드에 대한 톤앤매너에서 고객 참여는 권장하지만 부담은 갖지 않기를 바라는 의도가 드러나는 듯 해요.
각 방의 퍼실리테이터들이 고객 참여를 이끌어 내는 방법에서도 배려와 지혜가 돋보여요. 퍼실리테이터들은 소설 속 배경, 내용 등을 연극을 하듯 설명을 하는데, 이 때 독백이 아니라 적절한 타이밍에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참여를 이끌어 내죠. 만약 관객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는 것 같으면 모두가 들을 수 있지만 속삭이듯 답을 알려주어 그조차도 코미디로 승화해요. 여기에 더해 퍼실리테이터들의 역할이 한 가지 더 있어요. 각 방 테마에 또는 책의 내용에 어울리는 워크샵을 진행하는 것이죠. 워크샵의 난이도는 누구나 시도하고 성공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만, 신선한 경험으로 구성해 관객이 소설에 몰입하는 데에 도움을 줘요. 워크숍의 종류와 난이도를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대목이에요.
게이어티 극장의 퍼실리테이터예요. ⓒ시티호퍼스
예를 들어 첫 번째 공간인 영국 런던의 게이어티 극장(The Gaiety Theatre)에서는 ‘칵테일 워크숍’을 진행해요. 당시 소설 속 배경인 1890년대 런던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진(Gin)’을 소재로 레몬 플라워 진을 직접 만들어 보는 워크숍이에요. 이벤트 초반에 가볍고 맛있는 칵테일을 직접 만들어 마시는 워크숍을 배치함으로써 전체적인 분위기를 흥겹게 만들고자 하는 의도를 읽을 수 있죠. 한편 두 번째 방은 필리어스 포그가 이집트 수에즈에서 인도 뭄바이로 이동할 때 탔던 ‘몽골리아 호(The Mongolia)’를 배경으로 하는데, ‘매듭 묶기 워크숍’에 참여할 수 있어요. 모두에게 배에서 쓰는 밧줄을 제공하고, 이 밧줄을 활용해 물에 빠진 누군가를 구할 때 쓸 수 있는 매듭을 묶어 보는 시간이에요. 참가자들은 소설 속 서사를 따라갈 뿐만 아니라, 워크숍 참여를 통해 더 적극적으로 서사에 몰입하죠.
모든 칵테일 재료가 1인분씩 소분되어 있어요. ⓒ시티호퍼스
직접 만든 칵테일이에요. ⓒ시티호퍼스
몽골리아 호 안에서는 매듭 묶기 워크숍이 준비되어 있어요. ⓒ시티호퍼스
Scene#3. 스토리와 ‘식사’의 함수
재구성한 스토리를 따라 관객 참여까지 적절히 이끌어 내 극에 대한 몰입을 높였다면, 식사는 언제, 어떻게 제공하는 걸까요? 2시간 반 동안 7개 공간을 이동하며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5가지 코스의 요리가 서빙돼요. 처음과 마지막 방을 제외하고 2~5번째 방에서 요리가 1가지씩 제공되죠. 그런데 앤소포스의 이머시브 다이닝에서는 식사 시간이 몰입을 해치기는 커녕 오히려 몰입도를 높이는 역할을 해요. 소설의 배경 및 내용과 다이닝 경험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식사는 식사대로, 공연은 공연대로라면 ‘이머시브’라는 표현을 함부로 붙일 수 없죠.
각 방에서는 방의 테마, 즉 소설의 배경과 연관된 음식을 제공해요. 몽골리아 호를 배경으로 한 두 번째 방에서는 해산물 수프, 인도 캘커타 정글에서는 인도식 버터 치킨 커리, 홍콩에서 중국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는 중국식 딤섬과 누들, 일본 후쿠오카의 탄광에서는 광부들이 즐겨 마시던 사케와 함께 일본식 덮밥, 마지막으로 뉴욕을 배경으로 한 공간에서는 질소 팝콘이 나오는 식이죠. 각 방마다 연극, 식사, 워크숍의 순서로 서사가 진행되는데, 이야기를 이해하는 연극과 서사에 참여하는 워크숍 사이에 식사가 배치되니 몰입이 깨지지 않죠. 특히나 소설 속 인물들이 각 도시에서 한 번쯤은 먹었을 법한 음식이 제공되니 오히려 스토리의 주인공이 된 듯 한 기분마저 들어요.
각 공간과 지역색을 반영한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어요. ⓒ시티호퍼스
앤소포스의 다이닝은 높은 몰입감만큼이나 고객의 안전함과 편안함도 고려했어요. 첫 번째 방에 입장하기 전, 모든 고객들은 고유한 숫자를 부여 받아요. 모든 방의 좌석에는 숫자가 크게 적혀 있는데, 자기 숫자가 적힌 자리에 착석하면 돼요. 이는 사전에 제출한 식사 관련 요청 사항, 예를 들면 알레르기, 채식주의 등을 반영한 맞춤 식사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에요. 물론 전형적이지 않은 식사 공간에서 자리를 찾는 데 발생할 수 있는 혼선을 막기 위함이기도 하고요. 식사가 제공된 뒤에는 퍼실리테이터는 잠시 퇴장해 고객들이 보다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요. 이머시브 다이닝에서 ‘이머시브’ 뿐만 아니라 ‘다이닝’도 충분히 고민한 결과물이죠.
런던으로 간 시티호퍼스, 자기만의 함수를 만들다
창의적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이머시브 다이닝 회사, 앤소포스는 싱가포르에서 2014년에 문을 열었어요. 앤소포스의 창업자 ‘스튜어트 위(Stuart Wee)’와 ‘에밀리 픙(Emily Png)’이 이머시브 다이닝 회사를 처음 꿈꾸기 시작한 건, 스튜어트 위가 전 회사에서 런던으로 출장을 갔을 때였어요. 당시 에밀리도 스튜어트를 따라 런던으로 가 업무 외 시간에 함께 여행을 하기로 했죠. 새로운 경험에 관심과 호기심이 많은 에밀리는 당시 런던에서 막 인기를 끌기 시작한 몰입형 극장을 많이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 중 런던의 ‘진저라인(Gingerline)’은 스튜어트와 에밀리에게 이머시브 다이닝에 대한 개념을 일깨워 주었죠.
런던에서 사업적 영감을 받고 싱가포르로 돌아온 스튜어트와 에밀리는 싱가포르에도 진저라인과 같은 회사가 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싱가포르에서도 비슷한 시도는 있었으나 결국 모두 실패했다는 것을 알게 됐죠. 그래서 그들은 싱가포르에도 제대로 된 이머시브 다이닝 회사를 만들고자 지식과 경험을 쌓기 시작했어요. 다시 런던으로 건너 가 진저라인에서 한 달 동안 일하기도 하고, 런던과 에든버러를 중심으로 가능한 한 많은 몰입형 극장을 경험하며 데이터를 쌓았죠. 그들은 수많은 몰입형 극장들을 경험하고, 사례들을 디코딩하여 앤소포스라는 자신들만의 함수를 만들었어요.
“진저라인이 스토리보다는 퍼포먼스에 중심을 두고 있다면, 앤소포스는 모든 쇼에 스토리라인이 깔려 있는 일련의 멀티 룸 경험을 제공해 퍼포먼스가 아니라 내러티브를 제공하고 있어요.”
스튜어트가 진저라인과의 차별점을 설명한 말이에요. 그야말로 청출어람이죠. 물론 처음부터 앤소포스가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에요. 팝업 형식으로 진행했던 첫 공연은 그야말로 재앙이었고, 회사 설립 후 6년 동안은 적자를 면치 못했죠. 이머시브 다이닝이 생소한 개념인 데다가, 싱가포르에 전에 없던 비즈니스 영역을 개척하려니 수익이 나는대로 다음 단계를 위해 투자를 해야 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해외에서 벤치마킹한 사례를 차별화된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포기를 모르는 노력 끝에 앤소포스는 이제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이머시브 다이닝 회사로 거듭났어요.
앤소포스는 2021년 말, 또 다른 새로움을 만들기 위해 부조리, 모순이라는 의미의 ‘앱서더티(Absurdities)’ 레스토랑을 열었어요. 책 분석 워크숍이 클래식한 고전을 캐주얼한 식사와 결합해 선보인다면, 앱서더티는 다중감각을 자극하는 고급스럽고 모던한 식사에 중점을 둔 오마카세 레스토랑이에요. 마찬가지로 여러 개의 방을 옮겨 다니며 다양한 리얼리티를 경험하는데, 책 내용이 중심이 되는 책 분석 워크숍과는 다른 재미와 경험이 기다리고 있죠. 앤소포스에게는 이머시브 다이닝의 원리를 이해하고, 여기에 창의력을 더해 자기만의 결과물로 재구성하는 힘이 있기에 앱서더티를 비롯해 앞으로의 시도도 인기를 끌 걸로 보여요. 스튜어트의 말처럼 ‘참신한 컨셉이 티켓을 판매하는 영업 사원(The novelty of our concepts sold tickets.)’이니까요.
Re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