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의 5성급 호텔 루프탑 바에서 K-POP 댄스 대회가 열리는 이유

안주

2024.01.29

방콕에는 매일 밤 K-팝 디제잉 파티가 열리는 루프탑 바가 있어요. 그냥 높은 곳에 있는 클럽이 아니라 5성급 호텔인 신돈 미드타운 호텔의 31층에 위치해 있죠. 이곳에서는 뉴진스, 블랙핑크 등의 K-POP 음악이 흘러나와요. 이름마저도 한글을 그대로 따온 ‘안주(Anju)’예요. 이곳에 들어서면 네온사인의 ‘안녕하세요’ 글자가 손님을 반겨요. 여기에다가 K-POP 음악이 흘러나와 한국의 바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들죠. 그냥 노래를 틀어 놓는 정도가 아니라 디제잉을 하면서 흥을 돋우고요. 또한 이곳에서는 K-POP 댄스 대회까지 열어요. 


메뉴는 또 어떻고요. 식사 메뉴는 아직까지는 평범하지만, 칵테일 메뉴가 독창적이에요. 안주에는 ‘번데기’, ‘김밥’, ‘약과’ 같은 도저히 칵테일과는 어울리지 않을 거 같은 이름의 시그니처 칵테일이 있거든요. 여기에다가 아롱사태만 딱 썰어서 젤리처럼 입 안에서 녹는 수육을 준비하고 있어요. 


도대체 이 루프탑 바 ‘안주’는 어떤 생각으로 이런 일을 벌이는 걸까요? 시티호퍼스는 5성급 호텔이 K-루프탑 바를 오픈한 이유, 방콕 현지에서 바라보는 K-푸드 열풍이 궁금했어요. 그래서 직접 신돈 미드타운으로 찾아가 찬룻 타야츠완(Chanrutt Thayartsuwan)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심영대 총괄 셰프와 대화를 나눴어요. 그들은 K-푸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이야기를 들려줬죠. 


안주 미리보기

 #1. 루프탑 바를 대중으로, 한식을 럭셔리로

 #2. 문화를 만들어 쌓아 올린 유대감

 #3. 한국의 오리지널리티와 태국의 독창성이 만나다

 #4. 한국인이 찾아야 진짜 한식당이다

 ‘호텔 셰프’라는 한계를 벗어던지다




방콕의 어느 쇼핑몰에 한국 라면의 향이 뽀글뽀글하게 퍼졌어요.
2023년 6월부터 7월까지 두 달 동안, 방콕의 시암 디스커버리에서 한국 라면 팝업 스토어를 열었거든요. 현대차그룹의 광고 계열사 이노션(Innocean)이 농심, 오뚜기, 삼양, 팔도와 협업해 선보인 ‘보글보글 K-라면 팝업스토어’예요. 아시아 최대 규모의 한국 라면 팝업 스토어였죠.


시암 디스커버리 3층의 105평 공간에서, 한국의 라면 제품 약 7,500개가 전시됐어요. 뿐만 아니라 다양한 라면을 직접 맛볼 수 있었어요. 치즈 틈새라면, 옥수수 짜파구리, 쏨땀 비빔면 등 새로운 레시피의 메뉴도 있었죠. 공간 컨셉은 ‘힙지로 포차’였어요. 마치 을지로 골목길에 있는 술집처럼 화려한 네온사인과 포스터들이 내부를 꾸몄어요. 진짜 포차처럼 매장 벽과 천장은 빨간색 천막으로 꾸며졌고요.


이노션의 시도에는 이유가 있어요. 방콕의 K-푸드 열풍은 생각보다 더 뜨겁거든요. ‘불닭볶음면 챌린지’, ‘라면 먹방’ 등으로 MZ 세대의 트렌드가 된 것은 물론, 수치로도 성장이 증명되고 있어요. 2022년 기준, 한국 라면의 수입액은 3,407만 달러(약 455억원)로, 라면 수입 시장의 약 80%를 점유했죠. 태국에 들어오는 해외 라면 중 한국 라면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죠. 



ⓒInnoc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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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만 인기가 아니에요. 에그드랍, 설빙, BHC 등 프랜차이즈가 진출해 있는 건 물론이고 최근에는 MZ 세대 사이에서 한국식 포차가 유행하고 있어요. 이렇게 뜨거운 K-푸드 유행에 한국 브랜드뿐 아니라 현지 기업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어요. 럭셔리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는 기업마저 K-트렌드에 올라탔죠. 대표적인 예시가 방콕의 5성급 호텔 신돈 미드타운이에요. 2023년 7월, 신돈 미드타운의 루프탑에는 태국 최초 K-루프탑 바 ‘안주’가 오픈했어요. 오픈 직후부터 BK, 방콕 포스트 등 각종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죠.


시티호퍼스는 5성급 호텔이 K-루프탑 바를 오픈한 이유, 현지에서 바라보는 K-푸드 열풍이 궁금했어요. 그래서 직접 신돈 미드타운으로 찾아가
찬룻 타야츠완(Chanrutt Thayartsuwan)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심영대 총괄 셰프와 대화를 나눴어요.



#1. 루프탑 바를 대중으로, 한식을 럭셔리로

방콕을 기점으로 K-푸드와 K-포차 유행이 시작된 이 시점에, 신돈 미드타운 호텔은 발 빠르게 트렌드에 탑승했어요. 신돈 미드타운은 393개 객실을 가진 5성급 호텔이에요. 식스 센스, 인터컨티넨탈, 킴튼 등의 럭셔리 호텔부터 홀리데이 인 등의 캐주얼 호텔까지 보유하고 있는 대규모 호텔 그룹, IHG의 브랜드이기도 하죠. 위치는 방콕 랑수안 지역에 있는데요. 지하철을 타고 1분이면 방콕의 대표 쇼핑몰 시암 파라곤과 센트럴 월드에 갈 수 있는 도심이에요.



ⓒsindhorn mid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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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HG Hotels&Resorts


신돈 미드타운이 안주를 오픈하게 된 사연이 있어요. 보통 호텔은 객실 판매 매출뿐 아니라, 레스토랑이나 바를 통해 나오는 F&B 매출도 상당해요. 글로벌 호텔 컨설팅 회사 Hotstats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호텔에서 F&B는 2019년 기준으로 총 수익의 약 25%를 차지하죠. 다만, 신돈 미드타운은 F&B의 매출 비중이 이에 미치지 못했어요. 그래서 매출을 키울 새로운 F&B 전략이 필요했던 거예요. 그 새로운 전략이 바로 2023년 7월, 약 1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오픈한 K-루프탑 바 ‘안주’예요.


그런데, 왜 굳이 ‘K-루프탑 바’를 연 걸까요? 보통 럭셔리 호텔의 루프탑 바를 상상하면 이탈리안이나 프렌치 스타일의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떠오르잖아요. 한식이 태국에서는 그만큼 고급 음식인 걸까요? 그건 아니에요. 대부분의 태국 한식당은 여전히 삼겹살이나 분식을 판매하고, 고급 식당보다는 대중적인 포지션이에요.


신돈 미드타운은 이 ‘대중성’을 오히려 가능성으로 봤어요. 진입 장벽이 낮으니, 기존 호텔 고객보다 더 많은 타깃을 품을 수 있다고 봤어요. K-푸드는 2010년 중반부터 K-팝, K-드라마 열풍과 함께 대중에게 알려져 왔으니까요. 이 대중적이면서도 트렌디한 카테고리를 루프탑에 올리면 ‘최초’ 타이틀이 붙은 바를 만들 수 있겠다고 판단한 거예요.


“이미 사람들은 한국 음식을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태국 최초의 K-루프탑 바이지만, 대중에게 새로 교육할 필요가 없었죠. 그냥 열기만 하면 됐어요. 한식이 마치 프랑스 요리처럼 럭셔리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한식을 ‘독특한 경험’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고객들이 한식을 단순히 맛보는 게 아니라, 즐기고 만지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요.”

- 찬룻 타야츠완,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디렉터, 시티호퍼스 인터뷰 중 (이하 찬룻 디렉터)


안주는 루프탑의 럭셔리함, 한식의 대중성이 만나 ‘대중적인 럭셔리함’을 만들어냈어요. 안주의 초기 컨셉은 ‘한국의 음식과 음주 문화가 합쳐진 도심 꼭대기의 바’였어요. 그래서 이름도 ‘안주’로 지었죠.


“좋은 뷰와 호텔의 라이프스타일이 만나 한식을 더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접근성의 측면에서, 한식은 쉽고 호텔 음식은 어렵죠. 사람들은 호텔 음식이 매우 비싸고 일상생활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안주에서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친근한 한식을 제공하면서, 장벽의 조화를 이룹니다.”

- 찬룻 타야츠완 디렉터


실제로 안주의 메뉴는 친근해요. 김치찌개, 보쌈, 라면 등 외국인이 ‘한식’ 하면 떠올릴 수 있는 메뉴들로 채워졌죠. 가격도 김치찌개 290바트(약 1만원), 보쌈 290바트, 비빔밥 220바트(약 8,000원)로 다른 루프탑 바와 비교했을 때 저렴한 편이에요. 방콕의 3대 루프탑 바 중 한 곳인 옥타브의 경우, 음식 가격이 최소 300바트대에서 최대 500바트대죠. 한식이라는 키워드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대로 인해, 안주의 고객층은 실제로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까지 비교적 젊은 세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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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역시 K 스타일이어야겠죠? 안주는 강남의 포차를 연상케 해요. 출입문으로 들어가자마자 ‘안녕하세요’ 네온 사인과 기와집이 그려진 벽화가 보여요. 소주와 맥주로 ‘소맥’을 말고 있는 네온 사인으로 한국의 술문화도 표현했고요. 군데군데 한국 술집 같은 소품도 눈에 띄어요. 카운터 뒤편에는 항아리가 가득 놓여 있고, 전체적으로 보랏빛 조명을 넣어서 한국의 밤거리를 재현했죠. 도시 전경이 펼쳐진 31층의 스카이 뷰는 화룡정점이에요. 신돈 미드타운은 음식뿐 아니라 공간 역시 카메라에 담기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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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음식 사진뿐 아니라 레스토랑의 안이나 앞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스팟을 만들고 싶었어요. 밤이든 낮이든 사람들이 사진 찍어 온라인 소셜 미디어에 올릴 수 있는 공간을요. 루프탑은 이 요소를 충족하죠. 낮에는 화장한 빛이 조명을 만들고, 밤에는 화려한 야경이 조명이 돼요.”

- 찬룻 타야츠완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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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화를 만들어 쌓아 올린 유대감

저녁 6시가 넘어 해가 지기 시작하자, 특이한 공간이 눈에 띄었어요. 바 한 쪽에서 디제이가 디제잉을 시작했죠. 바에서는 블랙핑크의 핑크 베놈, 뉴진스의 OMG, 세븐틴의 손오공 등 핫한 K-팝 메들리가 들려왔어요. 음식을 먹던 손님들이 디제잉 바 앞에서 사진도 찍고, 춤도 췄고요. 알고 보니 단순히 한국식 바이기 때문에 한국 노래가 나오는 게 아니었어요. 안주는 음식 외에도 한국의 문화를 넣어서, 한국을 재현하고자 했어요. 그래서 안주는 K-팝이 메인이 되는 바예요.


“한국의 K-팝과 문화는 태국에 굉장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이 영향을 받아, 음식, 음악, 그리고 패션 등을 태국 내 시선으로 번역하는 건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죠.”

- 찬룻 타야츠완 디렉터


안주는 목요일부터 토요일, 오후 6시부터 자정까지 디제잉 파티를 열어요. DJ Scissors, DJ Dumrong Lee, DJ Pegg 등 디제잉 씬에서 활약하고 있는 디제이들을 초청하죠. K-팝을 활용한다는 아이디어 역시 대중성을 타깃했어요. K-팝은 이미 태국에서 가장 뜨거운 카테고리 중 하나이니, 이미 형성된 시장을 잘 활용하기만 하면 고객을 모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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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어떤 그룹이 잘나가는지 알고 있어요. 트렌디한 톱스타들의 곡들로 운영 팀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면, 디제이가 그 곡들을 이용해 디제잉하죠.” 

- 찬룻 타야츠완 디렉터


음악을 틀고, 디제잉하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문화를 만들려면 고객의 참여가 있어야 하죠. 그래서 안주는 K-팝을 매개로 다양한 행사를 주최해요. 2023년 10월에는 ‘어떻게 페스티벌(Ottoke fesrival)’을 열었어요. 옥토버(October)와 비슷한 네이밍에, ‘내가 뭘 해야 해?’라는 질문에 ‘함께 춤추자!’는 대답의 의미를 가진 K-팝 댄스 경연대회였어요. K-팝을 좋아하는 청소년들을 모집해, 커버 댄스 대회를 열었죠. 1등에겐 상금 1만바트(약 37만원)를, 2등과 3등에겐 각각 6,000바트와 4,000바트를 수여했어요. 그 외 안주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음식 및 음료 쿠폰을 제공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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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에는 페스티벌 외에도 한 달 내내 특별한 디제잉 파티가 열렸어요. 걸그룹 데이, K-힙합 데이, YG 나이트 등 다양한 기획을 통해 K-팝에 부쩍 힘을 줬죠. 안주가 한국 음식과 술을 먹을 수 있는 바에서 나아가, 한국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커뮤니티로 여겨지길 원했던 거예요. 또한 2023년 12월 31일에 열렸던 카운트다운 파티에서는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음악을 듣고, 한국어로 카운트다운을 하며 마치 진짜 한국에서 새해를 맞는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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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는 계속해서 새로운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어요. 안주는 루프탑 바일 뿐인데, 왜 문화를 만들려는 걸까요? 바에 문화가 필요한 이유를 물었어요.


“우리는 고객들이 실제로 한국에 있다고 느끼게 만들고 싶어요. 사람들은 한국의 문화를 즐기고 싶어하죠. 소속감과 현장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가 바로 문화입니다.”

- 찬룻 타야츠완 디렉터


즉, 문화를 만들어야 고객이 매장에 유대감을 느낀단 의미예요. 이에 더해, 고객이 직접 ‘즐길 수 있을 때’ 문화는 완성되죠.


“호텔의 트렌드는 태국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방향이 되고 있어요. 모든 사람들이 라이프스탈이란 뭔지, 경험이란 뭔지 고민하죠.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일어나서 함께 춤추고 파티를 즐기는 게 더 트렌디한 경험에 가까워요.”

- 찬룻 타야츠완 디렉터


안주가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엔조이풀(enjoyful)’이에요. 안주는 ‘엔조이풀’이야말로 SNS 시대에 가장 중요하고 기본인 문화라고 말해요.


“지금 시대는 소셜 미디어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어요. 대부분의 호텔은 지금 ‘포토제닉’하고 ‘인스타그래머블’한 스타일을 좇고 있죠. 모든 고객이 소셜 미디어에 자신의 삶을 공유하고 싶어하니까요. 저희는 이 심리를 K-트렌드와 함께 해석했어요. 너무 중요하고, 너무 기본적인 요소죠(Too big and too basic).”

- 찬룻 타야츠완 디렉터



#3. 한국의 오리지널리티와 태국의 독창성이 만나다

안주는 2023년 12월, 새로운 변화를 맞았어요. 새로운 총괄 셰프로 1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심영대 셰프를 영입했죠. 그는 2009년 플로리다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그러다 2016년 쇼핑몰 셰프로 종목을 옮겼다가, 다시 2020년부터 호텔 셰프로 요리를 하고 있죠. 심 셰프는 레스토랑의 종류에 따라서 주요 미션도 달라진다고 말해요.


“개인 레스토랑은 음식에 집중한다면, 호텔은 많은 규율을 따라야 합니다. 반면, 쇼핑몰은 트래픽을 끌어들이는 게 가장 큰 목표이기 때문에 가격에 집중해야 하죠.”

- 심영대 셰프, 시티호퍼스 인터뷰 중 (이하 심영대 셰프)


심 셰프가 쇼핑몰 레스토랑을 운영하다가 다시 호텔로 돌아온 이유는 피로감 때문이었어요. 쇼핑몰에서 9개의 레스토랑을 총괄하며 치열한 경쟁에 몸과 마음이 지쳐갔죠.


“호텔의 고객은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러 오지만, 쇼핑몰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른 볼일로 와요. 은행 일이라든가, 장을 보러 오죠. 그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제한된 공간에서 수많은 레스토랑과 경쟁해야 해요. 제겐 그게 큰 문제였습니다. 라이프스타일과 더 가까운 일을 하고 싶었고, 호텔로 돌아왔죠. 지금까지 경력의 80%를 호텔에서 보냈어요.”

- 심영대 셰프


안주에서 심영대 셰프의 미션은 메뉴를 개편해, 안주에 개성을 넣는 일이에요. 이해를 돕기 위해 기존 안주의 메뉴를 한 번 살펴볼게요. 참치 김밥, 제육볶음, 김치볶음밥 등. 대중적이긴 해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메뉴예요. 안주의 개성은 오히려 디쉬보다 칵테일에 있어요. 안주에는 ‘번데기’, ‘김밥’, ‘약과’ 같은 이름의 시그니처 칵테일이 있는데요. ‘번데기’는 산토리 가쿠빈 위스키에 대추, 유주 시럽으로 맛을 냈죠. 익힌 번데기 꼬치가 함께 나와요. ‘김밥’은 화요 소주에 수비드 미역, 오이 시럽, 막걸리 거품을 블렌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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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안주의 칵테일은 한국인이 아닌 태국인 바텐더 벤야파(Benyapa Gongrum)의 작품이에요. 즉, 안주의 칵테일은 태국인의 시선으로 한국의 음식을 재해석한 거죠.


“처음에 주방으로 ‘번데기’ 주문이 들어왔길래 되게 놀랐어요. ‘너네 번데기로 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고?’ 싶었죠. 그런데 오히려, 한국인이 아니기에 만들어낼 수 있는 독창성이었어요. 한국인은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미친 것 같은’ 새로움이잖아요.”

- 심 셰프 


안주의 칵테일이 한국 문화에 태국의 창의력이 더해진 결과라면, 심 셰프는 안주의 디쉬에 한국인의 오리지널리티를 더할 예정이에요.


“기존의 메뉴는 아주 일반적이죠. 사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메뉴예요. 김치찌개, 치킨, 떡볶이, 라면… 레시피가 나쁘진 않지만 특별함이 없어요. 사람들은 이 곳에 ‘음식’ 때문에 오지 않아요. 저는 ‘음식을 먹으러’ 오는 루프탑 바로 안주를 리노베이션하고 싶습니다.”

- 심 셰프


심 셰프는 한식 본연의 맛을 살리되, 자신의 주특기인 서양식 스킬을 활용할 예정이에요. 다만, 낯선 한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서양과 동양의 조화로 새로움을 창출해낸다는 거죠.


“예를 들어, 우리는 갈비찜을 그냥 쪄서 먹어요. 제 방식은 갈비를 진공 백에 넣어서 요리하는 겁니다. 12시간 동안 진공백에서 물을 빼죠. 하지만 맛은 우리가 아는 갈비찜이에요. 더 좋은 퀄리티를 만들 뿐입니다.”

- 심 셰프


15년 넘게 해외 레스토랑에서 일한 만큼, 로컬라이징(Localizing, 현지화)에 대한 심 셰프의 노하우도 놓칠 수 없죠.


“로컬라이징은 두 가지예요. 현지 재료를 통해 얼마나 오리지널의 맛을 재현하느냐, 현지 사람들이 좋아할 만큼 얼마나 맛을 변형하느냐. 같은 배를 써도 태국 배는 한국 것보다 당도가 낮아서 설탕을 더 넣어야 돼요. 반대로, 현지 재료를 통해 새로운 맛을 만들 수도 있죠. 태국에서는 파파야를 많이 쓰니까 무생태 같은 식감의 파파야로 김치를 만들어요.”

- 심 셰프


한국인이 알고 있는 오리지널한 맛, 심 셰프의 갈고닦은 서양식 조리법, 그리고 로컬라이징 노하우. 마지막으로 새로운 안주 메뉴에는 ‘안주’에 대한 심 셰프의 철학이 추가될 거예요.


“외국 사람들은 안주를 특별한 음식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안주는 최고의 요리가 아니어도 되죠. 어떤 음식이든 술과 함께 메인 디쉬처럼 먹으면 안주가 될 뿐이에요.”

- 심 셰프


다만, 심 셰프는 안주에는 꼭 ‘방금 막 나온 것 같은 따뜻한 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해요.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들르는 고깃집에서 반찬으로 나오는 새우전을 예로 들죠. 메인 요리가 아닌데도 늘 푸짐하고 큼지막한 새우가 들어간, 방금 막 부친 새우전이야 말로 최고의 안주가 된다고요. 실제로 심 셰프는 팟타이 스타일의 작은 새우전을 개발하고 있어요. 한국인에게 익숙한 새우전을, 인스타그래머블한 모습으로 스타일링한 거예요. 새우전을 포함한 안주의 새 메뉴는 2024년 3월 초에 개시 예정이에요.



ⓒ시티호퍼스



#4. 한국인이 찾아야 진짜 한식당이다

심 셰프는 오랜 기간 해외에서 K-푸드의 성장을 지켜봐왔어요. 그런 심 셰프에게 의외의 말을 들었어요. “K-푸드에는 아직 한계가 많다”고요. 


심 셰프가 플로리다에서 처음 커리어를 시작한 2009년만 해도, 심 셰프가 일터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백인이었어요. 한식에 대해서도 물론 많이 알려지지 않았죠. ‘스시’와 ‘김밥’의 차이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K-푸드가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건 2010년 중반, K-드라마 열풍이 시작되면서예요. 찬룻 디렉터는 문화의 확장에 있어서 콘텐츠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얘기하죠.


“문화는 콘텐츠에서 시작돼요. 사람들은 드라마에서 나오는 음식을 따라해 보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젊은 사람뿐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요. 그게 방콕에 한국 음식이 자리 잡게 된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해요.”

- 찬룻 타야츠완 디렉터


그러나 심 셰프는 “여전히 멀었다”고 말해요. 현재 해외에서 볼 수 있는 한식당은 ‘전문점’이 없다는 게 문제죠. 마치 분식집처럼 삼겹살도 팔고 떡볶이도 파는 식당이 많아요.


“비교해 보면, 일본 음식은 거의 요식업계의 태풍과 같아요. 반면 한식은 이제야 막 수출되기 시작한 정도죠. 외국인들이 한식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건 ‘코리안 바베큐’예요. 그런데 진짜 한국 사람은 어떤가요? 한국의 정통 음식에 ‘바베큐’라는 이름은 어울리지 않아요. ‘전문점’이 없다는 것도 큰 문제예요. 해외에는 현지처럼 ‘24시 설렁탕집’, ‘곰탕집’ 같은 전문점이 없어요. 그런데 일본 라멘집은 엄청 많잖아요.”

- 심 셰프


어떻게 하면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심 셰프는 결국, 한국인이 해외로 더 많이 진출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해요. 일본대사관에 따르면, 2022년 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약 78,000명 이상이에요. 반면 한국인은 약 2만명에 불과하죠. 그래서 안주의 새로운 목표는 여행객뿐 아니라, 현지인과 한인들까지 안주의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거예요.


“교민들이 와서 먹고, 놀라고, 한인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야 시장의 파이가 커져요. 그 맥락에서 한국인 역시 안주의 타깃이 돼야 하죠. 방콕에 있는 한국인들은 한식에 매우 세심해요. 저 역시 8년 넘게 방콕에 있으면서 매일같이 한국인들과 음식 얘기를 해요. 저는 안주에서 그들에게까지 매력적으로 느껴질 음식을 만들고 싶습니다.”

- 심 셰프



‘안주’에서 바라본 도시 전망을 뒤로 한 심영대 셰프. ⓒ시티호퍼스



‘호텔 셰프’라는 한계를 벗어던지다

호텔 셰프는 요리사 이전에 ‘직장인’이라는 말이 있어요. 심 셰프 역시는 호텔 셰프의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해요.


“호텔은 수많은 규칙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엄청나게 창조적인 음식을 만들 수는 없어요. 승인을 받기 위해 많은 절차가 필요하죠. 뿐만 아니라 호텔에서 일한다면 반은 주방에 있지만, 나머지 반은 사무실에 있어야 해요. 수많은 미팅을 하고, 수많은 결재를 받아야 해요.”

- 심 셰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 셰프는 호텔 셰프라는 제약을 넘어서 자신만의 철학을 곁들인 요리를 만들고자 해요. 심 셰프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인심 있는 안주’와, 루프탑에서 즐길 수 있는 ‘럭셔리한 플레이팅’을 조합하고 싶은 거예요. 그가 상상하고 있는 미래의 풍경을 들어볼게요.


“안주에서는 제가 좋아하는 걸 하고 싶었어요. 비유를 하자면, 설렁탕 집에 가서 시키면 나오는 뻣뻣한 수육이 아니라, 아롱사태만 딱 썰어서 젤리처럼 입 안에서 녹는 수육을 인스타그래머블하게 만들고 싶어요.”

- 심 셰프


안주는 이미 방콕의 원 앤 온리 K-루프탑 바로 조명받고 있어요. 시티호퍼스가 방문했을 땐 대부분의 고객이 현지인이나 해외 여행객이었죠. 그들은 인종과 나이의 구별 없이 K-팝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며 한국 요리를 먹고 있었어요. 과연 앞으로는 안주의 바람처럼 현지인과 해외 여행객뿐 아니라 한국 교민들까지 만날 수 있게 될까요? 또, 한국의 문화인 술자리에서의 ‘따뜻함’까지 현지인과 해외 여행객들에게 알릴 수 있을까요? 안주하지 않고 ‘안주’다움을 추구한다면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요? 기대해 볼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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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이노션, 아시아 최대 한식 팝업스토어 오픈, Innocean

 K-푸드, 태국서 10년 내 일본 식품 추월 예상, 식품음료신문, 배경호

 New Korean rooftop bar in town!, Bangkok Post

 เปิดตี้สายเกา! ชวนแฮงก์เอ้าต์ที่ ANJU รูฟท็อปสไตล์เกาหลีแห่งแรกในกรุงเทพฯ, ELLE

 Anju is the Korean rooftop bar and restaurant Bangkok needs, BK

 Catch the Vibe of Seoul at the Newest Korean Rooftop Bar in Bangkok, the BEAT

 Food & Beverage Department and Operating Metrics, HotSt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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