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에는 유년 시절의 추억을 테마로 여성복을 만드는 브랜드가 있어요. ‘스레시스(Sretsis)’죠. 스레시스는 ‘시스터즈(Sisters)’를 뒤집은 이름이에요. 스레시스는 이름 말고도 많은 것들을 뒤집어요. 사랑스러움을 뒤집어 강인한 여성성을 강조하고, 유치함을 뒤집어 타임리스한 디자인을 만들어 내죠.
방콕에서 시작한 이 패션 브랜드는, 이러한 뒤집기를 주특기로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 나갔죠. 케이트 페리, 블랙핑크 등 다수의 셀럽들에게도 사랑받고 있고요. 그리고는 이제 패션을 넘어 F&B,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되고 있어요. 전영역에 걸쳐 스레시스만의 판타지를 ‘스레시스 유니버스’로 만드는 중이죠.
한때 방콕에서 시작했다는 이유로 무시당했던 스레시스. 이 아방가르드한 패션 브랜드는 어떻게 다수의 카피캣이 따라하는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스레시스 미리보기
• #1. 사랑스러움이 아니라 ‘자기 인식’이다 - 여성성의 재해석
• #2. 애같음이 아니라 ‘한결같음’이다 - 추억의 재해석
• #3. 스타일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이다 - 패션의 재해석
• 태국 1세대 디자이너 브랜드라는 도전을 넘어
태국 논타부리 지역에 있는 406 제곱미터(약 122평)의 한 저택. 내부로 들어가면 마치 적도 근방에 있을 법한 휴양지가 연상됩니다. 저택 주변에는 수많은 초록색 식물이 심어져 있고, 거실 역시 열대 화분으로 꽉 채워져 있죠. 거실 구석에는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어 럭셔리한 분위기를 자아내고요.
다이닝 룸은 동화 속에서 봤던 식당 같아요. 꽃이 수놓아진 바닥 타일과 천장, 수채화 꽃 프린팅으로 뒤덮인 쿠션들. 테이블 위에는 해바라기 화분이 놓여 있어요. 아이들 방은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라요. 공룡 인형, 표범 인형, 버섯 인형까지. 정글을 탐험하는 느낌이죠. 하이라이트는 드레스 룸입니다. 분홍빛 벽지와 천장으로 꾸며진 이 곳, 마치 어떤 브랜드의 쇼룸처럼 보여요. 태국의 대표하는 1세대 디자이너 브랜드 ‘스레시스(Sretsis)’의 사랑스럽고 러블리한 옷들로 옷장이 가득 차 있죠.
이곳은 논타부리 지역에 ‘니차다 타니’ 속 임대 주택 ‘프리미어 플레이스 3(Premier Place III)’예요. 트로피컬 리조트 스타일로, ‘트로피컬 매직 빌라’라고 불리는데요. 니차다 타니 단지는 태국 상류층이 거주하는 주거 단지로, 내부에 해외 커뮤니티, 대학교, 국제 학교, 레스토랑 등 인프라를 갖췄죠. 완공까지 30여 년이 걸린 니차다 타니는 여전히 태국 내에서 가장 혁신적인 부동산 프로젝트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어요. 2020년에는 ‘Dot Property’ 동남아시아 어워드에서 베스트 라이프스타일 개발 부문을 수상했고요.
‘트로피컬 매직 빌라’는 니차다 타니 속에서 트렌드를 담당하고 있는 주거 공간이에요. 독특한 건, 이 공간의 인테리어를 맡은 업체가 건축이나 인테리어 전문가가 아니라, 패션 브랜드란 거예요. 그렇다면 왜 주택의 실내 디자인을 패션 브랜드에게 맡겼을까요? ‘트로피컬 매직 빌라’를 맡은 ‘스레시스(Sretsis)’는 2002년 설립돼, 20년이 넘은 태국 대표 1세대 디자이너 브랜드예요. 케이트 페리, 블랙핑크 등 다수의 셀럽들에게 사랑받고 있어요.
우선 스레시스를 선택한 니차다 타니 그룹의 평가를 들어볼까요?
“인테리어 회사 대신 20년 된 패션 하우스를 골랐어요. 집에 들어가는 순간, 스레시스의 탈의실에 들어가는 것 같죠. 그들은 옷 디자인뿐 아니라 인테리어 디자인 작업도 훌륭하게 해내는 그룹이에요. 스레시스 매장에 가보신 분들이라면, 독특한 판타지 분위기를 떠올리실 겁니다.”
- 니차다 2세, 더 클라우드 중
니차다의 말대로, 스레시스는 ‘소녀들의 판타지’를 테마로 한 여성복 브랜드예요. 그들은 옷을 통해 ‘소녀 시절의 꿈과 판타지가 현대 여성들의 원동력이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죠. 이 메시지로 패션 영역을 넘어서 공간 디자인까지하고, 태국을 넘어서 세계적인 브랜드가 된 스레시스. 이 브랜드를 더 알아보기 위해선 이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어요.
혹시 스레시스(Sretsis)가 어떤 의미인지 눈치채셨나요? ‘자매들(Sisters)’을 뒤집은 글자예요. 스레시스는 클리두안, 핌다오, 마티나 등 세 자매로부터 시작된 브랜드거든요. 그렇다면 이들은 왜 ‘소녀 시절의 판타지’를 브랜드 컨셉으로 전면에 내세우게 된 걸까요? 이들의 소녀 시절 이야기부터 들여다 볼게요.
ⓒNichada Th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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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스러움이 아니라 ‘자기 인식’이다 - 여성성의 재해석
세 자매는 어린 시절부터 옷을 가지고 노는 게 가장 즐거운 놀이였어요. 그들의 어머니는 패션에 관심이 많고, 옷 입는 것 하나하나도 까다로웠던 분이죠. 기성복을 사 입지 않고, 직접 직물과 디자이너를 골라 맞춤복을 제작해 입을 정도였어요.
세 자매는 어머니의 패션 잡지를 함께 읽고, 자기들끼리 옷, 액세서리, 소품을 만들어 패션 촬영을 했어요. 특히 핌다오는 그 때부터 화장지로 드레스를 만드는 등, 옷 만드는 데에 재주가 있었죠. 둘째 핌다오가 옷을 만들면, 그 옷을 막내 동생 마티나가 입고 모델 역할을 했어요. 첫째 클리두안과 핌다오는 마티나를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죠.
“핌다오는 스타일리스트였고, 마티나는 모델이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진지했어요. 필름 카메라로 우리들만의 화보를 찍고, 사진을 고르며 매우 즐거워했어요. 지금도 수많은 앨범을 가지고 있죠. 초기 컬렉션 룩북을 작업할 때, 우리의 이 놀이가 현실이 됐어요. 믿을 수 없는 일이죠. 마티나는 사진을 찍었고 핌다오는 스타일리스트였어요. 우리의 어린 소녀 시절 추억이 떠올랐어요.”
- 클리두안, 방콕 포스트 중
이런 어린 시절을 보낸 세 자매는, 뉴욕으로 건너가서 공부를 시작해요. 클리두안은 뉴욕에서 경제 및 출판 경영학을, 핌다오는 패션을, 마티나는 보석을 공부했죠. 그러던 2002년, 그들의 어머니가 방콕 게이손 지역의 임대 공간을 보고 세 자매에게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해보라”고 제안해요. 어머니는 늘 세 자매가 함께 일하는 모습을 꿈꿨거든요.
핌다오는 결심했어요. 나만의 패션 브랜드를 만들어보자! 마침, 태국 정부에서는 패션 산업을 부흥시키고자 했어요. 2000년대 초, 태국 정부는 ‘방콕 패션 시티’, ‘방콕 패션 소사이어티’ 같은 다수의 패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죠. 세 자매는 정부의 지원까지 받아 타이밍 좋게 브랜드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옷을 만들고 싶었을까요? 이때 자매들의 마음 속에 떠오른 게 유년 시절의 판타지스러운 추억이었어요. 세 자매는 어린 소녀가 입을 것 같은 동화 같은 옷들을 성인이 된 후에도 입고 싶었지만, 시장에는 그런 옷이 없었죠. 그래서 스레시스라고 이름을 짓고, 옷을 팔기 시작했어요.
이름을 ‘스레시스’라고 지은 건 막내 동생 마티나의 아이디어였어요. 마티나는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에 나오는 ‘The Mirror of Erised(소망의 거울)’에서 영감을 받아, ‘자매들(Sisters)’를 뒤집은 글자를 생각해냈죠.
자매를 뒤집은 네이밍은 단순히 재미를 위한 게 아니었어요. ‘여성의 반항’을 상징하기도 해요. 태국인의 50% 이상이 스레시스의 여성스럽고 귀여운 디자인을 보고, 스레시스를 그저 ‘사랑스러운 브랜드’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자매들은 “사랑스러운 옷을 입는다고 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여성성이 ‘사랑스러움’에 그치지는 않는다”고 말해요.
“저희는 거침없고, 어둡고, 건방진 동시에 여성스러운 걸 좋아해요. 우리는 여성을 한 가지 유형으로만 생각하는 고정관념 속에서 자랐죠. 사실 여성에게는 사랑스러움과 거침 없는 두 가지 면이 모두 있는데 말이에요. 자신만의 생각을 명확히 갖고 있고, 자신감 있고, 나 자신이 어떤 옷을 입고 싶은지 알고 있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생각하는 여성성이에요.”
- 스레시스, 더 클라우드 중
즉, 스레시스의 옷이 사랑스럽다고 해서, 옷을 입는 여성들까지 사랑스러워야 한다는 건 편견이란 말이에요. 그들이 스레시스의 옷을 입는 이유는 단지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는다’는 자기 확신 수단이죠. 그래서 스레시스의 옷은 화려하고, 눈에 띄어요. 스레시스의 첫 컬렉션은 2003년, 엘르 패션 위크에서 선보였어요. 컬렉션의 이름은 ‘Heart’였죠. 컬렉션의 이름과 어울리게 분홍색 보라색 패턴이 화려하게 수놓인, 하트 주머니를 단 코트가 주력 상품이었어요.
스레시스의 디자인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화려해요. 그들은 특히 화려한 프린팅, 눈에 띄는 장식을 통해 자신들의 컨셉을 확고히 하죠. 가장 최신작인 2024년 S/S 컬렉션을 볼까요? 초록색 셋업 의상에 빈틈 없이 꽃 프린팅이 채워져 있는가 하면, 가슴 부분에 커다란 꽂잎 프릴이 달려 있어요. 사람들은 이러한 스레시스의 옷이 ‘너무 어렵다’고 평가하기도 해요. 하지만 스레시스는 화려함만이 자기 인식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해요.
“패턴이 있는 옷은 일상적으로 입기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기에는 최고의 선택이죠. 한 사람이 한 가지 스타일을 유지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마치 유니폼 같겠죠. 스타일을 유지하는 것은 생사의 문제는 아니지만, 내가 나임을 알릴 수 있고, 타인이 나를 볼 때 ‘딱 맞는 옷을 입고 있다’고 느낄 수 있게 하는 자기 인식 수단이에요.”
- 핌다오, 더 클라우드 중
결국, 스레시스는 화려한 ‘패션을 통해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는 여성성’을 만들고 싶었던 거예요.
“우리는 여성 패션에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냈습니다. 장난스럽고 여성스러운 의상은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에요. 우리는 여성스러운 옷을 입더라도, 여전히 똑똑하고 강합니다. 진지하고, 정교하고, 다차원적입니다. 여성들은 더 이상 옷을 차려입기 위해 특별한 날을 기다릴 필요가 없어요. 내가 입고 싶을 때 입으면, 그뿐이죠. 우리는 이 ‘유니콘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 핌다오, 타임아웃 중
ⓒSret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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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애같음이 아니라 ‘한결같음’이다 - 추억의 재해석
스레시스의 독특한 디자인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스레시스의 컨셉에서 ‘여성성’만큼 중요한 게 바로 유년 시절에 품었던 ‘판타지’와 ‘추억’이에요. 스레시스는 어린 시절 놀이터를 현대의 현실로 가져와 사업화에 성공했다고 평가 받죠. 이들 역시 자신의 브랜드가 ‘가상의 세계’라고 말해요.
예를 들어 설명해 볼게요. 2024년 리조트 컬렉션의 이름은 ‘기억의 오브제(Object of Memories)’예요. 실제로 어린 시절이 떠오르게 하는 디자인이죠. 어린 시절 갖고 놀았을 법한 곰인형, 꽃다발이 프린팅 된 청바지, 중세 유럽풍의 액자나 오브제들이 프린팅 된 레이스 원피스 등이 있어요.
“스레시스의 시그니처 스타일을 정의해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어른의 판타지, 즉 세련된 성인 여성의 관점에서 재해석된 유쾌한 상상력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 클리두안, 방콕포스트 중
ⓒSret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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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레시스의 동화 같고, 판타지스러운 테마에는 세 자매의 유년 시절이 영향을 줬어요. 세 자매는 어린 시절 비디오 게임이 없는 집에서 자랐어요. 게임을 하며 놀기보다, 주로 야외에서 뛰놀았죠. 정원에는 삼촌이 키우는 공작새, 토끼, 사슴, 표범 등이 있었어요. 그래서 스레시스의 옷들에도 동물 프린트가 자주 들어가요. 어린 시절 판타지스러운 주변 환경이 그들 마음 속 영감으로 자리 잡았던 거예요.
마냥 사랑스럽고, 동화 같은 디자인. 얼핏 보면 유치해 보일 수 있어요. 왜 스레시스는 이런 아동복 같은 디자인에 힘을 주는 걸까요? 결국 우리 마음 속에 잠재된 유년 시절의 추억이, 타임리스를 만든다고 생각해서예요.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어린 아이는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장하지 않는다는 게 아녜요.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계속 나아가게 하는 것은 마음 속 아이의 천진함, 신선함, 매력이란 뜻이죠.”
- 마티나, 방콕포스트 중
유년 시절의 추억은 시간이 지나도 결코 ‘유치함’만으로 남지 않는다는 게 스레시스가 하고 싶은 말이죠. 대신 그 천진함이 지금의 영감을 낳는다고요. 그렇기 때문에 스레시스의 디자인은 오히려 유행에서 벗어날 수 있어요. 스레시스는 ‘새로운 컬렉션에 집착하는 문화’ 역시 비판하죠.
“사람들은 항상 새로운 시즌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린 그런 걸 원하지 않습니다. 저희 고객들은 스레시스의 여러 시즌 옷을 믹스 앤 매치합니다. 한 일본 고객은 우리 옷이 단 세 벌밖에 없는데, 정말 다양한 스타일로 입었더군요. 어떤 고객은 여름 옷과 겨울 옷을 함께 입는 경우도 있어요. 우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어요.”
- 스레시스, 더 클라우드 중
스레시스의 타임리스는 유행뿐 아니라 세대를 거슬러요. 2015년 스레시스에서 론칭한 아동복 라인, ‘리틀 시스터(Little Sister)’를 보면 알 수 있죠.
리틀 시스터는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나온 아이디어예요. 스레시스의 의류를 생산하고 남은 원단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다가, 스레시스 스타일의 아동복을 만들어보기로 한 거예요. 스레시스가 유년 시절의 추억을 되살린 스타일이라면, 리틀 시스터는 유년 시절의 판타지 그 자체예요. 캐릭터와 무지개들이 넘치도록 프린팅 된 백팩, 패브릭으로 거대한 꽃을 만든 머리띠, 꽃밭에서 놀고 있는 토끼가 프린팅 된 프릴 셔츠 등.
리틀 시스터의 판타지는 추억을 담은 스타일이 세월을 타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해요. 엄마들은 아이에게 리틀 시스터의 옷을 입히며, 자신이 어린 시절 입었던 추억의 옷을 떠올리죠.
“리틀 시스터는 스레시스의 사랑스러운 부산물입니다. 이 옷을 아이에게 사주는 엄마들은, 한때 자신이 입었던 낡은 옷을 떠올립니다. 그저 ‘낡은 옷’으로 남기지 않고, 그 시절의 스타일을 다시 가져와 자신의 자식들에게 입히죠. 같은 스타일이 세대를 거슬러, 여전히 생명력과 의미를 갖게 됩니다.”
- 마티나, 더 클라우드 중
ⓒSret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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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과 세대를 거스르는 스레시스의 타임리스는, 낮과 밤의 시간까지 거스르고자 시도했어요. 2014년 론칭한 라운지 웨어 라인 ‘신시어리 유어스(Sincerely Yours)’가 대표적이죠.
신시어리 유어스는 스레시스에서 만든 럭셔리 라운지 웨어 브랜드예요. 대표 제품인 벨벳 로브는 24,000바트(한화 약 88만원)로 고가죠. 신시어리 유어스는 라운지 웨어를 럭셔리 카테고리로 끌어올림과 동시에, ‘라운지 웨어’의 정의를 새롭게 뒤집었어요.
시작은 2014년. 아직 ‘원 마일 웨어’ 트렌드가 생기지도 않았을 때예요. 이 때부터 스레시스는 ‘집 밖에서도 가운 같은 라운지 웨어를 입도록 하면 어떨까’ 생각했죠. 동시에, ‘집에서 휴식을 취할 때도 스타일을 포기하지 말자’는 의미도 전달하고 싶었어요.
편안함과 스타일리시를 동시에 잡아야 했죠. 그래서 신시어리 유어스 제품은 겉감과 안감이 모두 100% 벨벳 원단이에요. 디자인은 스레시스의 모토에서 벗어나지 않게 패턴이 주력이지만, 라운지 웨어답게 심플함도 갖추고 있죠. 산뜻한 컬러와 동양적인 느낌이 어우러진 오리엔탈 블라썸 컬렉션, 레오파드 패턴을 가진 크리스마스 컬렉션 등이 있어요.
ⓒSiwilai
#3. 스타일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이다 - 패션의 재해석
스레시스는 패션뿐 아니라, F&B, 라이프스타일로 자신들의 세계를 넓히고 있어요. 이를 ‘스레시스 유니버스’라고 부르죠. 스레시스 유니버스는 한 마디로 ‘스레시스의 판타지를 전 영역으로 넓히는 과정’이에요.
“우리 머리 속에는 많은 판타지가 자리하죠. 하지만 스레시스는 우리가 품고 있는 수많은 의미를 구태여 설명하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스레시스’만의 향기만 남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성공이에요. (중략) 우리의 이야기를 굳이 우리 고객들에게 설명하지 않고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우리 목표입니다. 마치 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마음이죠. 감독은 어떤 의도로 이 이야기를 만들었는지 설명하지 않으니까요.”
- 마티나, 더 클라우드 중
스레시스만의 판타지를 설명하지 않고, 경험하게 하는 것. 그 첫 번째 시도는 2017년 여름에 열렸던 팝업, ‘머메이드 바 앤 숍’이에요. 스레시스는 태국의 유명 휴양지 후아힌에 있는 쇼핑몰 ‘신스페이스(Seenspace)’에 팝업을 열었죠.
스레시스의 2015년 S/S 컬렉션 ‘알로하 머메이드’를 모티브로 한, 휴양지 컨셉의 공간이었어요. 목조 테이블, 의자 등으로 트로피컬 스타일의 인테리어에, 한쪽에서는 스레시스의 해변 복장과 로고 티셔츠, 특제 코코넛 오일 등을 팔았어요. 열대 과일로 만든 칵테일을 풀장 의자에 앉아 마실 수 있었고요. 무료 풀 파티에서는 독특한 경험이 가능했어요. ‘머메이드 키스’ 같은 시그니처 과일 칵테일을 판매하고, 고객들에게 인어 꼬리를 제공해 입고 다닐 수 있게 했거든요.
ⓒSret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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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메이드 바를 통해 ‘스레시스 유니버스’의 첫 단추를 꿴 스레시스는, 2017년 12월 본격적으로 F&B 업계에 진출해요. 방콕의 백화점 센트럴 엠버시 2층에 카페 ‘스레시스 팔러(Sretsis Parlour)’를 오픈했죠. 스레시스 팔러는 스레시스 소녀들이 모여서 떠들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기획했어요.
“팔러(Parlor)라는 단어는 ‘대화’를 의미하는 고대 프랑스어 ‘parloir’ 또는 ‘parler’에서 유래했습니다. 우리는 스레시스의 고객들이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스레시스 소녀들이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 핌다오, 비전타이 중
스레시스 팔러의 인테리어는 그야말로 ‘스레시스 유니버스’를 공간으로 구현한 모습이에요. 커다란 핑크색 문 뒤, 하늘과 별 무늬가 있는 천장은 판타지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주죠. 4면이 핑크색으로 둘러싸여 있는 스완 룸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개인 드레스 룸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해요.
특히, 스레시스 팔러는 영국의 유명 디자인 브랜드 ‘하우스 오브 해크니(House of Hackney)’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유명해요. 하우스 오브 해크니는 보태니컬 패턴을 대표하는 디자인 하우스인데요. 스레시스와 하우스 오브 해크니는 과거의 스타일을 현재의 디자인으로 되살린다는 공통점이 있죠.
“스레시스와 함께 일하게 됐을 때, 우리는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우리의 공통점은 과거의 좋은 것을 가져와 현대적으로 재창조한다는 데에 있죠. 색상 및 인쇄물, 모든 디저트와 음료 메뉴까지 장인 정신으로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 프리다 곰리, 자비 로일 하우스 오브 해크니 공동 대표, thairath 중
메뉴 역시 동화책을 옮겨 놓은 듯해요. 디저트와 차로 구성된 세트 메뉴의 이름은 ‘유니콘과 함께 하는 티 타임’, ‘숲의 요정’ 등 동심을 자극하죠. 티 세트에 100바트(약 3,600원)를 추가하면 ‘매직 라떼 아트’를 받을 수 있어요. 유니콘, 사자, 꽃이 그려진 라떼 아트가 추가되죠. 또한 ‘서프라이즈 케이크’라는 메뉴는 재미와 환상의 자극해요. 케이크를 먹다 보면 피규어가 나타나거든요. 스레시스의 옷에도 자주 등장하는 유니콘, 토끼 등 시그니처 캐릭터가 케이크 속에 숨어 있어요.
ⓒSret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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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레시스 팔러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이어졌어요. 스레시스 팔러가 구현해놓은 환상적인 스타일을 접시, 병, 식탁보 등으로 제작해 판매하기 시작했죠. 이는 스레시스의 라이프스타일 레이블 ‘스레시스 테이블’의 론칭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됐어요.
스레시스 테이블의 대표 제품은 프랑스 작가 나탈리 레테와의 컬래버레이션이에요. 나탈리 레테는 프랑스 작가로, 동화 같은 일러스트를 그리면서 여러 브랜드와 협업하고 있어요. 스레시스가 나탈리 레테와 협업하는 이유는 자명해요. 그 역시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부터 꿈꿔온 영감을 그리는 작가이기 때문이죠.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찾아보세요. 굳이 현대적인 일에 매몰되지 마세요. 그저 인기가 있단 이유로 소비를 하지 마세요. 당신이 왜 그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이야기가 당신을 꿈꾸게 만드는지 알아보세요. 당신을 당신만의 세계로 탈출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 나탈리 레테, 더 클라우드 중
ⓒSretsis
ⓒSretsis
태국 1세대 디자이너 브랜드라는 도전을 넘어
스레시스는 이제 태국을 넘어선 글로벌 브랜드예요. 브랜드 설립 초기, 정부의 지원으로 2005년부터 미국, 호주에 쇼룸을 열었고, 2014년에는 럭셔리 부티크들이 모여 있는 일본의 아오야마에 스레시스 인(Sretsis Inn)을 론칭했죠. 다만, 처음에는 ‘태국 브랜드’라는 수식에 선입견이 따라붙었어요.
“우리가 금발의 세 자매가 아니어서 실망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예전에 무역 박람회에 갔을 때, 우리 컬렉션에 흥미를 느꼈던 바이어들도 우리가 태국인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태도가 바뀌었죠. 태국 제품은 품질이 안 좋고, 값싸다는 선입견이 있었어요. 우리는 이게 항상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뿌리가 자랑스러워요. 우리에게 중요한 건 다른 브랜드와의 경쟁보다, 우리의 이야기를 전하는 거예요.”
- 마티나, 더 클라우드 중
이제 스레시스는 수많은 카피 제품이 생길 정도로 유명한 브랜드가 됐어요. 그렇다면 카피 제품에 의해 시장이 잠식당하는 게 아닐까요? 스레시스는 카피 제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는 태국 디자이너 1세대예요. 당시 다들 스레시스의 옷이 너무 아방가르드하고 어렵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지금은 우리 옷을 입은 사람들이 전세계에 있어요. 카피 제품을 보면, 사실 기뻐요. 카피 제품이 나오지 않는 컬렉션이 오히려 걱정되죠. 인기가 없단 뜻이니까요. 카피 제품을 입는 사람들도, 그게 스레시스의 디자인이란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그들이 정품을 살 여유가 없을지라도, 미래에는 우리 옷을 살 수 있는 잠재고객이니까요.”
- 핌다오, 비전타이 중
이처럼 스레시스 자매는 카피 제품이 늘어나는 것을 부정적인 현상이 아니라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칭찬으로 받아들여요. 그러고는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카피 제품을 사는 고객이 잠재고객이라고 봤죠. 자매를 뒤집어 이름을 짓고, 추억을 뒤집어 아방가르드한 컨셉을 만들며, 카피 제품에 대한 인식을 뒤집어 미래를 내다보는 스레시스. 이들은 다음에 또 무엇을 뒤집을까요? 스레시스가 앞으로가 기대되는 이유예요.
Reference
• The Sisterhood of the Traveling Dress, The Cloud
• SRETSIS GOES BEYOND GIRLIE, NationThailand
• An Interview with Pimdao Sukhahuta, Hypezine
• 從SISTERS到SRETSIS,姊妹翻轉時尚打造泰國設計師品牌, VisionThai
• Homegrown Thai fashion brand Sretsis eyes the world stage, GLOBE
• Sibling reverie, Bangkok Post
• The Sretsis sisters on fashion, Thai silk and how to deal with copycats, Time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