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계의 오스카상을 휩쓰는, 패키지 디자이너의 발상법

프롬프트 디자인

2024.02.13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어요. 라벨 없는 플라스틱 물병의 디자인을 하기 위해 ‘프롬프트 디자인’ 에이전시가 소비자 조사를 했는데요. 사람들이 라벨 없는 플라스틱 물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라벨 없는 플라스틱 물병은, 재활용을 할 때 라벨을 떼어야 하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게 한 친환경적인 시도인데, 태국의 소비자들은 왜 이걸 안 좋게 보는 걸까요? 


사람들은 라벨 없는 물병이 재활용에 용이해서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이런 유형의 제품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어요. 제조사에서 라벨을 없애면 품질에 덜 신경 쓸뿐더러 제조 원가를 낮춰서 경제적 이득만 취할 거라고 여긴 거죠. 가뜩이나 물 브랜드 입장에서는 라벨을 떼면 브랜드의 정체성이나 차별성을 보여주기 어려운 점이 있어서 딜레마가 있었는데, 이러한 소비자 인식까지 있다면 라벨을 떼는 시도가 무색해질 수밖에요. 


그렇다고 라벨 없는 플라스틱 물병 디자인을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프롬프트 디자인은 기발한 방법으로 라벨 없는 플라스틱 물병의 딜레마와 소비자의 부정적인 인식을 해결했죠. 물병뿐만 아니에요. 브랜딩 스튜디오이자 패키징 디자인 팀인 프롬프트 디자인은 남다른 디자인을 선보이며, 다양한 국가에서 개최하는 글로벌 디자인 대회에 참여해 상을 휩쓸고 있어요. 지금까지 139개나 받았죠. 대체 뭐가 어떻게 다른 걸까요?


프롬프트 디자인 미리보기

 #1. 슈퍼마켓을 갤러리로 만든다 - 예술화

 #2. 물건은 말이 없지만 포장은 말을 한다 - 암시화

 #3. 버려질 숙명을 거스른다 - 다용도화

 디자인과 스포츠의 공통점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동화 <백설공주>에서 왕비가 거울에게 물었던 질문이에요. 만약 지금 거울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거울은 어떤 대답을 할까요? 아마 직접 대답을 하는 대신 조용히 리모컨을 집어 들어 TV 속 뷰티 광고 모델들을 보여줬을지도 몰라요. 광고에는 지금 대중이 선망하는 아름다운 모델들이 줄줄이 등장하니까요. 


그렇다고 뷰티 브랜드에서 모델을 선정할 때 ‘아름다움’만 척도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화제성과 스타성뿐만 아니라 브랜드가 지향하는 이미지와 얼마나 일치하는지, 브랜드의 컨셉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죠. 이렇게 다양한 선발 기준을 거쳐 발탁한 광고 모델은 곧 브랜드의 호감도로 이어지기 때문에 캐스팅 디렉터의 역할은 막중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몇 년 전, 전례 없는 광고 모델을 캐스팅해서 화제를 모은 브랜드가 있어요. 얼마나 대단했는지 다수의 디자인 어워드에서 상을 받을 정도였죠. 인기가 고공행진 중인 연예인이나 건강미를 자랑하는 운동선수, 혹은 트렌드를 선도하는 인플루언서라도 섭외한 걸까요? 놀랍게도 전부 아니었어요. 이 브랜드는 모델을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찾아 데려왔거든요.  


놀라운 캐스팅 능력을 보여준 브랜드는 프리미엄 헤어 케어 액세서리를 만드는 ‘뷰티 클래식(Beauty Classic)’이었어요. 뷰티 클래식은 신제품으로 헤어 롤을 출시하면서 사람이 아닌 고대 조각상을 광고 모델로 발탁했죠. 그도 그럴 것이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조각상은 3,0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상징해 왔어요. 특히 풍성한 머리칼을 자랑하는 헤어스타일은 부와 권력을 나타내죠. 뷰티 클래식은 브랜드의 슬로건인 ‘시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기에 고대 조각상만큼 적격인 모델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Prompt Design



Prompt Design


고대 조각상은 클래식한 아름다움의 전형이 되기를 바라는 뷰티 클래식의 간판이 되기에 충분했어요. 헤어 롤을 사용하고 있는 조각상은 그들의 헤어스타일이 뷰티 클래식의 헤어 롤로 만든 것이라는 유머스러운 메시지를 전달했죠. 동시에 이 풍성한 컬은 아무리 긴 시간이 지나도 처음 상태 그대로 지속된다는 것도 각인시켰고요.


이렇게 기발한 캐스팅 실력으로 화제를 이끈 장본인은 방콕에 본사를 두고 있는 브랜딩 스튜디오이자 패키징 디자인 팀 ‘프롬프트 디자인(Prompt Design)’이에요. 태국 패키징 디자인의 선구자로서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영국, 호주 등 다양한 국가에서 진행하는 글로벌 디자인 어워드에서 139개의 상을 받았죠. 그뿐 아니라 디자인계의 오스카상으로 여겨지는 펜타워즈(Pentawards)에서도 상을 휩쓸었고요. 대체 어떤 크리에이티브로 제품을 포장하길래 이토록 세계적인 인정을 받는 걸까요?



#1. 슈퍼마켓을 갤러리로 만든다 - 예술화

프롬프트 디자인의 창립자이자 대표는 솜차나 캉와라짓(Somchana Kangwarajit, 이하 솜차나)이에요. 태국에서 아무도 패키징 디자인에 대해 신경 쓰지 않던 수십 년 전부터 이 분야를 개척해 온 디자이너죠. 솜차나의 작품들을 만나보고 싶다면 슈퍼마켓으로 가면 되는데요. 디자이너의 작품이 갤러리도 뮤지엄도 아닌 슈퍼마켓에 있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요? 


프롬프트 디자인의 클라이언트는 소규모 브랜드부터 네슬레, 메이지, 화이자 등 대기업까지 다양해요. 100개 이상의 고객사들은 주로 소비재 디자인을 의뢰하죠. 그래서 슈퍼마켓 선반에서 손쉽게 솜차나의 디자인을 만날 수 있어요. 취급하는 물건이 수백, 수천 가지인 슈퍼마켓에서 그의 작품을 잘 알아볼 수나 있냐고요? 걱정할 필요 없어요. 슈퍼마켓에서 활약하는 디자이너인 솜차나는 장소의 제약에 굴하지 않고 제품을 한 조각의 예술품처럼 디자인하거든요. 그래서 슈퍼마켓을 갤러리로 만들어 버리죠.


대표적인 조각상부터 만나 볼게요. 이 조각상에는 쌀을 생산하는 농부의 작업 과정이 단계별로 새겨져 있어요. 물소는 땅을 고르게 만들고, 농부들은 손으로 벼를 베어 줍거나 찧고 있죠. 태국에서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통 농법을 따르고 있는 것인데요. 이 농법은 대량 생산에 적합하지는 않지만 재스민 쌀의 향미를 보존하기에는 제격이에요.



Prompt Design


마치 박물관에 있을 법한 이 작품은 사실 진짜 조각상이 아니에요. 프롬프트 디자인이 태국의 전통 방식 그대로 쌀을 생산하는 브랜드 ‘헬시 푸드 헬시 라이프(Healthy Food Healthy Life)’를 위해 제작한 쌀 패키징 디자인이죠. 솜차나는 조각가들과 협력해서 쌀알 모양의 나무토막에 벼 재배 과정을 꼼꼼히 그려 넣었어요. 그 후 다른 설명 없이 이 조각 이미지를 패키지 전면에 인쇄했죠. 이 디자인은 영양가가 높은 유기농 쌀을 찾고자 하는 소비 트렌드를 적중시켰어요. 고객들은 이전에 본 적 없는 쌀 포장지의 화법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제품은 1주일 만에 전부 매진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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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프롬프트 디자인의 손을 거치면 평범한 식료품도 구매의 대상에서 감상의 대상이 되는데요. 실제 예술품처럼 사람의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끼쳐요. 100%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C2 물병(C2 Water No Label) 디자인을 예로 들어 볼게요. 솜차나는 라벨 없는 물병을 디자인하기로 결정하고 나서 제일 먼저 소비자 심리부터 분석했어요.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죠. 사람들은 라벨 없는 물병이 재활용에 용이해서 친환경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이런 유형의 제품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어요. 제조사에서 라벨을 없애면 품질에 덜 신경 쓸뿐더러 제조 원가를 낮춰서 경제적 이득만 취할 거라고 여긴 거죠. 



ⓒiF DESIGN AWARD


솜차나는 소비자가 느끼는 괴리감을 디자인으로 풀어내기로 했어요. 그래서 라벨을 없애는 대신 양각으로 새기는 방법을 택하죠. 우선 병 표면에 숲속 사슴, 눈 위의 북극곰, 하늘 위의 새처럼 자연 속 동물들을 새겨 브랜드가 얼마나 환경에 관심이 많은지 표현했어요. 영양 성분이나 제조 정보처럼 법적으로 요구되는 사항도 새겼고요. 단, 문제가 하나 있었어요. 결제 시에 필요한 바코드까지 양각으로 새기면 스캔이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 바코드는 물병이 아닌 병뚜껑에 인쇄하는 기지를 발휘했어요. 이는 전 세계 그 어떤 브랜드에서도 한 적 없던 시도였죠.



ⓒiF DESIGN AWARD


결과는 어땠을까요? 라벨이 있을 때는 정작 자세히 보지 않던 소비자들이 라벨을 없애자 주의 깊게 병에 새겨진 제품 정보를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더불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은 캔버스 같은 물병을 보면서 노 라벨 브랜드에 대한 인식도 점차 나아졌죠. 솜차나는 소비자의 마음과 친환경, 아름다움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전부 잡는데 성공했어요.


제품과 예술품의 경계를 오가며 메시지를 전하는 프롬프트 디자인의 작업은 또 있어요. 도이창 커피 오리지널(Doi Chaang Coffee Original)에서 ‘4Life 미네랄 워터(4Life Mineral Water)’를 출시할 때였죠. 이번에는 라벨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렸어요. 줄무늬를 사용해서 만든 물결 위에서는 동물들이 헤엄을 쳐요. 움직임은 그대로 물 표면에 파장을 만들고요. 이 그림은 청정한 수원이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전달해요. 사람들은 이 제품을 볼 때마다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과 환경을 떠올릴 수밖에 없죠. 패키징 디자인이 소비자와 자연을 연결하는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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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는 예술 작품이 전시되는 장소인 반면, 슈퍼마켓 선반은 포장 디자인이 전시되는 장소예요.”

- muse.world 인터뷰 중


솜차나에게 슈퍼마켓은 그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에요.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갤러리와 다름없는 장소죠. 이곳에서 솜차나는 평범한 제품에 패키징 디자인이라는 옷을 입혀 놓았어요. 그래서 제품의 가치를 증폭시키는 동시에 메시지를 전달하죠. 때로는 전통 농법의 가치를 전파하고, 친환경 제품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자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처럼요. 게다가 소비자는 장을 보러 슈퍼마켓에 올 때마다 이 제품들을 감상할 수 있으니, 갤러리 속 예술품보다 효과도 더 좋고요.



#2. 물건은 말이 없지만 포장은 말을 한다 - 암시화

지금은 전 세계의 디자인 어워드에서 독창적인 패키징 디자인을 만나볼 수 있지만, 약 20년 전만 해도 업계 상황은 딴판이었어요. 태국에서 패키지는 제품을 감싸는 껍데기에 불과했죠. 인쇄소에서 무료로 패키징 디자인을 해 줄 정도였으니까요. 그러니 솜차나가 프롬프트 디자인을 창업한 뒤 한동안 일거리가 없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어요. 시장에 수요조차 없었죠. 그래서 솜차나는 디자인 대회에 참여하며 패키징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일단 기업과 소비자의 사고방식부터 바꿔나가기로 한 거예요. 


솜차나는 패키지가 내용물을 보호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안에 든 내용물의 핵심을 흥미롭게 표현하는 것이 패키지의 진정한 역할이고, 디자이너는 그것을 눈에 띄게 만들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솜차나가 디자인한 패키지들은 내용물을 가리지 않아요. 오히려 드러내죠.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하기 전부터 제품의 속성과 성능을 미리 체감할 수 있게 패키지가 일종의 미리보기 역할을 하는 거예요.


프롬프트 디자인이 만든 건강 보조 식품 패키지부터 살펴볼게요. 건강 보조 식품은 소비자가 이해하기 쉽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이 중요해요. 동시에 제품의 효능과 품질을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하고요. 그래서 프롬프트 디자인은 B.O.CAL 칼슘 보충제(’B.O.CAL Calcium Supplement’)의 패키지를 디자인하면서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그 결과 척추뼈를 닮은 패키지를 개발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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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패키지의 진가는 여러 개를 쌓아둘 때 비로소 발휘돼요. 칼슘 보충제 통을 쌓다 보면 곧은 수직선이 아니라 S자 곡선이 만들어지거든요. 사람의 척추뼈 형상처럼요. 이처럼 솜차나는 척추를 모티브로 개별 통을 디자인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개의 병을 연결해서 척추 구조와 움직임까지 구현했어요. 복잡한 설명 없이도 누구나 이 제품이 뼈 건강에 관련한 제품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게 만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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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대신 패키지가 말하도록 한 디자인은 또 있어요. B.O.CAL 칼슘 보충제 패키지가 척추의 움직임까지 만들어냈다면, ‘B-ING 플라워 드링크(FLOWER DRINK)’라는 음료 패키지는 실시간으로 꽃이 피는 모습을 보여줘요. 평범해 보이는 이 병을 자세히 보면 입구의 겉면을 감싸고 있는 필름 포장지에 절취선이 인쇄되어 있어요. 이 절취선을 따라 포장지를 하나씩 벗기다 보면 필름이 하나하나의 꽃잎으로 변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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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런 음료수는 필름 포장지의 바깥 면만 인쇄해요. 그런데 이 제품의 패키지는 양면으로 이중 인쇄를 해서 안쪽 면을 꽃잎이 되도록 만들었죠. 여기서 포장지를 벗기는 정도를 조절하면 꽃의 개화 속도까지 조절할 수 있어요. 또 이 패키지는 소비자에게 음료수의 맛을 직관적으로 설명해요. 소비자들은 직접 껍질을 벗겨 난초, 국화꽃, 연꽃이 핀 모습을 바라보며 미리 맛을 예측할 수 있죠. 참신한 패키지로 제품의 원재료를 직접 보여주는 동시에 고객과의 상호작용을 시도한 사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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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로 전달하는 것은 제품의 효능이나 원재료뿐만이 아니에요. 제품의 제조 과정도 보여줄 수 있죠. 어떻게 결과가 아닌 과정을 패키지로 표현할 수 있냐고요? 실내 농업 브랜드 ‘버티그린스(Vertigreens)’의 제품 패키지를 보면 바로 알 수 있어요. 베티그린은 수직 농업 방식으로 야채를 재배해요. 수직 농업은 지속 가능한 농업의 일환으로 단위 면적당 생산량이 1,000% 늘어나고, 물 생산량은 최대 95% 절약할 수 있어요. 무엇보다 기후 변화의 영향을 최소화해서 일관된 수확량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고요.


프롬프트 디자인은 수직 농업 방식으로 생산된 제품의 차별성을 표현하기 위해 패키지 자체를 투명한 수직 온실로 만들었어요. 실제 온실을 닮은 오각형 모양의 패키지는 온실에서 자라는 야채의 제조 과정을 보여주는 동시에, 농산물이 외부 환경으로부터 어떻게 보호받으며 자랐는지 상징적으로 드러내죠. 야채들이 각종 오염이나 해충의 영향을 받지 않고 키워졌다는 메시지를 패키지가 대신 전달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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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차나는 패키지를 활용해서 제품의 가치를 미리 예고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당겨요. 덕분에 소비자는 제품을 직접 먹어보거나 뜯어 열어보기 전부터 내용물을 먼저 경험할 수 있죠. 어느덧 패키지는 제품의 일부로서 차별화를 만들어내는 역할까지 맡게 됐어요. 수십 년 전과는 위상이 확연히 달라졌죠.



#3. 버려질 숙명을 거스른다 - 다용도화

아무리 패키지의 위상이 올라갔다고 한들 ‘결국 버려지는 존재’라는 본래의 숙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솜차나는 패키지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디자인하는 특별한 재능이 있었지만, ‘모든 포장재는 결국 쓰레기’라는 본질에서 벗어날 수 없었어요. 그가 디자인한 모든 포장 디자인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렇다고 포기할 솜차나가 아니에요. 자신이 디자인한 패키지의 생명력을 연장시키는 방법을 찾아냈어요. 두 번째 삶을 선사해서 말이죠. 


대표적인 예가 ‘스리상다오 쌀(SRISANGDAO RICE)’ 패키지예요. 스리상다오는 태국에서 벼를 재배하기에 가장 좋은 지역에서 유기농으로 쌀을 생산해요. 그래서 패키징 디자인을 할 때는 스리상다오의 친환경적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었죠. 솜차나는 이를 위해서 패키지의 소재부터 친환경적인 것으로 골랐어요. 공장에서 쌀을 도정할 때 발생하는 쌀 껍질인 왕겨를 활용하기로 한 거죠.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폐기물로 형태를 만들고 난 후에는 브랜드명을 넣을 차례였는데요. 이때도 추가적인 소재를 덧대는 것이 아니라 태워서 색만 입히는 기술을 더했어요. 최종 개발까지 1년 반이나 걸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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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벼를 감싸는 껍질이었던 왕겨는 이제 쌀을 감싸는 포장지가 됐어요. 그런데 솜차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아요. 이 패키지에 새로운 쓸모를 찾아줬죠. 쌀 포대가 비어지면 나면 패키지를 휴지 상자로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한 건데요. 처음부터 쌀 패키지의 윗면과 아랫면을 서로 바꾸어주기만 하면 크기가 딱 들어맞게 설계했어요. 수차례나 폐기물에 생명을 불어넣은 이 패키지는 전 세계 디자인 어워드에서 무려 16개 이상의 디자인상을 수상하며 새로운 역사를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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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솜차나는 패키지의 범위를 제품을 감싸는 케이스로 한정하지 않았어요. 물건을 구매하고 나면 담아주는 쇼핑백까지 확장시켰죠. 일반적으로 쇼핑백은 구매한 물건을 운반하는 역할을 해요. 하지만 솜차나는 쇼핑백을 구매자의 생각과 기분까지 담아서 운반해 주는 메신저로 만들었죠.


태국 초콜릿 브랜드 ‘코코아 헛(Kokoa Hut)’을 위해 솜차나가 디자인한 쇼핑백을 살펴볼게요. 민무늬의 심플한 검은색 쇼핑백은 사람의 손길이 닿는 순간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메시지 보드로 변해요. 쇼핑백에 있는 작은 정사각형 모양의 종이들을 사선으로 접으면 이미지나 문자를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있거든요. 만약 이 쇼핑백에 담긴 초콜릿을 선물로 받았다면 쇼핑백을 쉽게 버릴 수 있을까요? 아마 그러기 쉽지 않을 거예요. 이미 쇼핑백 또한 선물의 일부가 되어버렸으니까요. 



Prompt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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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솜차나는 형태의 일부를 변형시켜 패키지의 수명을 연장시켜왔는데요. 아예 기존의 형태를 전부 바꿔서 고객들에게 놀라움을 주기도 했어요. ‘다이아몬드 그레인(Diamond Grains)’에서 크리스마스 한정판으로 출시한 크랜베리 초콜릿 상자를 디자인했을 때가 대표적이죠. 겉보기에 단순한 모양의 박스에 불과했던 상자는 크리스마스 장식에 제격인 트리로 바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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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세트를 열어 본 고객들은 상자 속에 든 사용 설명서를 발견했어요. 이 설명서에는 상자를 크리스마스 트리로 바꾸는 방법이 쓰여 있었죠. 안내에 따라 소비자들이 직접 완성한 트리는 크리스마스에 받은 예상치 못한 선물이나 다름없었고, 이 한정판 선물 세트는 15분 만에 전부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어요. 하마터면 버려질 뻔했던 상자들은 사람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이자 집안을 꾸미는 장식품으로 다시 태어난 거예요.



디자인과 스포츠의 공통점

솜차나는 대학 시절부터 끊임없이 디자인 대회에 출전하며 세계 무대에 도전해 왔어요. 이는 자신의 실력을 알리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지만, 아직 여물지 않은 태국의 패키징 디자인을 성숙시키는 과정이기도 했죠. 그 결과 지금까지 프롬프트 디자인이 출품한 작품들은 전 세계 139개 이상의 디자인상을 수상했어요. 2020년에는 세계 최고 권위의 패키징 디자인 대회인 펜타워즈(Pentawards)에서 15위를 차지하기도 했고요. 약 3,000곳의 디자인 회사 중에 상위 20위 안에 든 유일한 태국 기업이었어요. 그렇다면 그에게 패키지는 어떤 의미일까요?


“패키지는 각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칼과 같아요. 이 칼은 고객의 마음을 찌르는 데 사용되죠. 하지만 제가 만든 칼은 평범한 칼이 아니에요. 이 안에는 아이디어의 바이러스가 있죠. 고객 한 사람의 마음을 찌르고 나서 다른 사람들까지 전염시켜요.”

- longtungirl 인터뷰 중


솜차나가 바라보는 패키지는 내용물을 보호하는 방어 기능과 사람들의 마음을 저격하는 공격 기능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요. 그가 이끄는 프롬프트 디자인은 이 두 가지 기능을 모두 살려 계속해서 대회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이미 각종 수상 기록을 통해 충분히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솜차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대회에 참여할 생각이에요. 그에게는 태국이 좋은 디자인을 만든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겠다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죠.


솜차나는 디자인 업계 내에서의 순위 경쟁을 스포츠계의 경쟁과 비교했어요. 스포츠 대회에 참여한 선수들은 스스로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도 있지만 동시에 국가의 명예를 드높이고자 하죠. 그러니 ‘태국’이라는 국가의 명성을 알리겠다는 각오로 임하는 프롬프트 디자인은 이미 태국의 국가대표 선수나 다름없어요. 올해는 프롬프트 디자인이 어떤 순위 경쟁을 펼칠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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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프롬프트 디자인 공식 홈페이지

 Prompt Design, Packaging of the World

 C2 WATER NO LABEL, GOOD DESIGN

 Interview with Somchana Kangwarnjit, Executive Creative Director of Prompt Design, THB, Muse dot World

 แกะวิธีคิด Prompt Design สตูดิโอสร้างแบรนด์และออกแบบบรรจุภัณฑ์คนไทย ที่ติดอันดับ 15 ของโลก, Longtungirl

 The power of good design, SUWITCHA CHAIYONG, Bangkok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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