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창의성에 영향을 미쳐요. 미국 미네소타 대학교의 조안 마이어스-레비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어느 정도의 높이까진 천장이 30cm 높아질 때마다 창의력이 2배씩 올라가죠. 탁 트인 공간에 가면 무언가 생각에 숨 쉴 틈이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은 느낌적인 느낌이 아니었던 거예요. 혁신의 아이콘인 ‘애플’의 스티브잡스가 이를 모를 리 없어요. 그래서 그는 일하는 공간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중간에 아주 멋진 공원이 있어요.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건물 자체가 하나의 큰 원이고, 벽의 모든 면이 굽어져 있죠. 건물을 지을 때 저렴하지 않게 짓는 방법 중 하나예요. 메인 건물에 들어가는 모든 유리는 곡선형 유리로 되어 있어요. 저희는 세계에서 가장 멋진 회사 건물을 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해요.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견학을 올 정도로요.”
일하는 공간을 중시하던 그가 그린 애플 신사옥의 방향이에요. 그는 이런 비전을 가지고 2006년부터 신사옥을 기획했으나, 안타깝게도 그는 건물이 완공되는 것을 직접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어요. 샌프란시스코에 갔을 때 그가 남긴 유작을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무작정 애플 파크로 가봤죠.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어요.
애플의 신사옥인 애플 파크는 요새처럼 거대하면서도, 벙커처럼 숨어 있었어요. 원형 건물인 애플 파크는 한 바퀴 도는데 한참 걸릴 정도로 규모가 큰데,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건물의 외관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외부인의 출입이 엄격하게 제한된 곳이라, 방문객이 갈 수 있는 곳은 애플 파크 비지터 센터(Visitor center)에 있는 애플 스토어뿐이었어요. 애플 스토어의 외관은 주요 도시 곳곳에 있는 애플 스토어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내부로 들어가자 다른 점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죠.
ⓒ시티호퍼스
우선 공간 구성이 달랐어요. 애플 제품을 판매하는 공간을 중심으로 오른쪽 옆에는 카페가, 왼쪽 옆에는 애플 파크를 소개하는 공간이, 그리고 2층에는 애플 파크를 바라보면서 쉴 수 있는 전망대가 있었어요. 기대와 달리 애플 스토어에 있는 카페에서 음료의 혁신은 만날 수 없었어요. 하지만 층고가 높은 공간에서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받으면서 커피를 마시는, 기분의 혁신은 있었죠. 전망대에도 특징적인 점은 없었어요. 굳이 찾자면, 전망대임에도 불구하고 애플 파크를 제대로 볼 수 없는 반전이 있긴 했죠.
ⓒ시티호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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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와 전망대에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긴 어려웠어요. 하지만 제품을 판매하는 공간과 애플 파크를 소개하는 공간에는 눈에 띄는 점이 있었어요.
애플 스토어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제품 판매 공간에서는 애플의 기기들 말고도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었어요. 물론 애플에서 기념품을 판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나 애플 파크까지 와서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팬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기념품을 마련해 둔 거예요. 그렇다고 일반적인 기념품에 애플 로고를 넣으면 브랜드가 손상될 수 있으니, 완벽한 원형 건물로 불리는 애플 파크의 모양을 로고처럼 만들어 티셔츠, 가방 등에 얹혔어요.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팬심을 지키려는 지혜가 돋보입니다.
판매 공간의 왼쪽 편에는 애플 파크 소개 공간이 있어요. 이곳에 가면 애플 파크의 모형물이 있죠. 하지만 보통의 모형물과 달리 애플 파크의 형태만 구현해 놓았을 뿐, 컬러를 입히거나 조경을 표현하는 등의 디테일은 표현하지 않았어요. 불필요해 보이는 부분을 제거해 유려한 디자인으로 만든 점은 애플다웠지만 디테일까지도 생략한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었죠. 이런 저의 마음을 읽었는지, 직원이 다가와 아이패드를 건네주면서 아이패드로 모형물을 들여다보라는 설명을 덧붙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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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대로 해보니, 아이패드 화면에 증강현실이 펼쳐졌어요. 모형물에 건물의 컬러와 주변의 조경이 덧입혀지는 것은 물론이고,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와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들까지도 등장했죠. 여기에다가 건물 규모, 공기 순환, 에너지 사용 등 애플 파크에 대한 세부 설명까지 아이패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고요. 지나치며 보는 사람들에게는 유려한 디자인의 모형물을, 관심 있게 보는 사람들에게는 건물의 상세한 내용을 보여주는 방식이에요. 아이패드를 매개로 했기에 더 그럴 듯한 애플 파크 소개 공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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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패드로 애플 파크를 구경한 후 이동을 하려는데, 통유리로 된 창을 회전문 돌리듯 90도로 열어 놓은 게 눈에 들어왔어요. 유리벽인 줄 알았는데, 개폐가 가능한 유리창이었어요. 열려 있는 유리창을 보고 역시 애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통의 건물에서 창문 역할을 하는 통창은 아코디언 주름 접듯이 창을 열거나 여닫이 방식으로 창을 열게 되어 있어 통창의 가로 폭이 좁아요. 아무래도 제대로 된 통창의 느낌을 내기 어렵죠. 반면 애플 스토어에서는 회전문 돌리듯 통창을 여니 접히는 부분이 필요 없어 통창의 가로 폭이 2배 넓어지는 효과가 생겨요. 별거 아닌 듯 보이지만, 이렇게 통창을 디자인한 덕분에 외벽으로써의 심미성과 창문으로써의 실용성을 동시에 갖출 수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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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을 깨는 아이디어를 기록하고자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었어요. 사진에서 피사체의 수평을 맞추는 것을 선호해 수평이 맞을 때까지 여러 차례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직원이 멀리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어요. 애플 스토어에서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건 아니었지만, 사진 찍는 모습을 보고 직원이 다가오자 괜히 ‘사진을 찍으면 안되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어 눈치껏 아이폰을 거두었죠.
사진 찍기를 갑작스레 멈추는 모습이 어색했는지, 직원은 괜찮다는 손짓을 하면서 말을 걸었어요. 사진은 찍어도 되는데 도대체 왜 아무 것도 없는 곳을 그렇게 열심히 찍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물어보러 왔다는 거예요. 위에서 설명한 내용을 직원에게 말해주자, 그는 흥미롭다는 듯이 자리로 돌아가 동료와 이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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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웠어요. 고객을 호기심 있게 관찰하다가, 고객의 행동 패턴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하자 서슴없이 다가가 이유를 물어보고 동료와 공유했기 때문이에요. 물론 직원 한 명의 사례로 업무 매뉴얼에 고객 관찰이 포함되는지 여부를 유추하기는 어려워요. 하지만 적어도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의 행동을 통해 애플이 추구하는 혁신의 DNA가 뿌리 깊이 자라잡았다는 것을 감지할 수는 있었죠. 또한 직원들이 이렇게 일하고 있다는 걸 하늘 나라에서 본다면 흐뭇한 미소를 지을 거란 생각도 들었고요.
요새이자 벙커 같은 애플 파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어요. 그럼에도, 애플 스토어에서 생긴 일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여요. 스티브 잡스의 유작으로 불리는 애플 파크에서 그의 철학과 비전에 공감하는 혁신쟁이들이 만들어낼 결과물들이 기대되는 이유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