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목은 귀한 재능이에요. 좋은 안목만 있다면 몇 년 뒤 트렌드가 될 비즈니스 아이템을 선점할 수도 있고, 오래된 중고 물품 속에서 가치 있는 골동품을 찾아낼 수 있죠. 복을 넝쿨째 가져다주는 인연을 알아볼 수도 있고요.
태국의 한 사업가 차난야는 매일 오가던 출퇴근 길이 문득 새롭게 보였어요. 운전하면서 보던 숲이 그녀의 눈에 반짝거렸거든요. 그래서 땅을 사기로 마음먹고 실행에 옮겼어요. 그런데 이 땅, 어딘가 이상해요. 오랫동안 사람의 관리를 받지 않아서 나무와 식물들로 뒤덮여 있어요. 알고 보니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방치되어 있던 땅이었어요.
이 사업가의 안목에 문제라도 있는 걸까요? 그렇지 않아요. 겉만 보면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는 이 숲속에 보물이 들어있었죠. 과연 숲속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그리고 이 사업가는 어떻게 그 숲속 보물을 알아봤던 걸까요?
아락사 티 룸 미리보기
• #1. 숲속에 숨어있던 맥락을 발견하다
• #2. 차를 소비하는 맥락을 바꾸다
• #3. 매장에 지역적 맥락을 조성하다
• 뒤처진 선두주자가 앞서가는 법
지금 여러분은 육상 트랙 경기의 출발선에 서 있어요. 그런데 신호탄이 울리자마자 바로 옆에 서 있던 선수가 선두를 치며 달려 나가죠. 저만치 앞서 있는 선수를 따라잡으려고 애써 보지만 선두주자는 벌써 트랙 한 바퀴를 다 돌았어요. 앞에 있는 줄 알았던 선두주자는 이미 한 바퀴를 다 돌고 어느새 뒤에서 여러분을 따라잡고 있죠.
여기서 잠깐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 볼게요. 화면을 멈춘 후 지금 상황만 보면 마치 선두주자는 여러분인 것처럼 보여요. 실제로는 옆 선수보다 한 바퀴가 뒤처진 상태인데도 말이죠. ‘한 바퀴 뒤처진 선두주자’가 된 거예요. 실제로는 뒤처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선 것처럼 보이는 착시를 의미하죠. 반대로 말하면 관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순식간에 선두주자가 될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하고요.
일본에는 ‘한 바퀴 뒤처진 선두주자’의 대표적인 예시가 있어요. 육상 선수가 아니라 오이타 현 시골에 있는 작은 료칸 ‘야마시로야’죠. 야마시로야가 위치하고 있는 유노히라 온천은 한때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1980년대 이후로 쇠퇴를 거듭해요. 그것도 40년 가까이 말이죠. 근처에 있는 유후인 온천에 밀리면서도, 딱히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시설 투자를 하거나 변화의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것이 주된 원인이었어요. 유노히라 온천에 발길이 끊기자 료칸을 찾아오는 손님도 줄어들었죠.
그런데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된 것처럼 보였던 료칸 야마시로야가 갑자기 이변을 일으켜요. 2017년에 전국 3위의 료칸으로 등극하죠. 트립 어드바이저에서 진행한 ‘일본 료칸 부문 2017’의 숙박 시설 만족도에서 3위를 차지한 것인데요. 가족 경영으로 운영되는 작은 료칸에서 무슨 수를 쓴 걸까요? 마음을 고쳐 대규모 리노베이션이라도 시행한 걸까요?
야마시로야는 료칸의 시설을 바꾼 게 아니에요. 대신 관점을 바꿨죠. 쇠퇴를 거듭하는 동안 옛 모습에 머물러 있던 지역을 풍토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장소로 포지셔닝하고, 아날로그식 운영 방식을 야마시로야만의 오리지널리티로 만들었어요. 이렇게 했더니 사람들이 야마시로야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어요. 시대에 뒤처져 있는 것처럼 보였던 료칸이 시대의 정취를 간직한 보기 드문 공간으로 느껴진 거죠. 40년간 앞서가는 다른 료칸의 뒷모습만 바라보던 야마시로야가 순식간에 선두주자가 된 거예요.
태국에도 야마시로야처럼 한 바퀴 뒤처진 선두주자가 있어요. 그런데 이번 선두주자는 실제 육상 선수도, 료칸도 아닌 ‘땅’이에요. 이 땅은 15년 넘게 관리가 되지 않은 바람에 버려진 것이나 다름없었어요. 그런데 한 사업가가 이 땅에 감춰져 있던 보물을 발견한 뒤부터, 새로운 비즈니스가 시작되죠. 대체 이곳에 어떤 보물이 숨겨져 있었냐고요?
#1. 숲속에 숨어있던 맥락을 발견하다
차난야 파타라프라싯(Chananya Phattharaprasit, 이하 차난야)의 눈에 버려진 땅이 들어온 것은 우연이었어요. 평소 차를 타고 매일 오가던 길에 있던 땅이었죠. 이 땅은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나무와 식물들로 뒤덮여 있었어요. 사람들의 눈에는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땅으로 보였겠지만 차난야는 이 땅의 아름다움에 매료됐어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15년간 땅이 방치되어 있던 덕분에, 자연 그대로의 상태가 보존되어 있었거든요.
이 버려진 땅의 진가는 위치가 아니라 나무와 땅 자체에 있었어요. 알고 보니 이 땅은 차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차 밭이었거든요. 비록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깔끔하지 않은 상태였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 차 밭은 화학 비료도, 농약도 닿지 않은 땅이었어요.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 버려진 땅의 잠재력을 알아본 차난야 땅을 구입하기로 결정했어요. 그리고 이 차 밭을 유기농 차를 생산하는 데 활용하기로 하죠.
ⓒAsian Oasis facebook
남들은 알지 못하는 땅의 가치를 차난야가 알아볼 수 있었던 비결을 알기 위해서는 그녀의 본업을 알아야 해요. 차난야는 지속 가능한 관광을 추구하는 아시안 오아시스(Asian Oasis)의 전무 이사로, 30년 넘게 치앙마이에서 관광업에 종사해왔어요. 아시안 오아시스는 생태 관광 업계에서 수많은 상을 받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죠. 태국 북부 지역에서 2곳의 친환경 산장을 운영하는데 이 산장은 숙박 그 이상의 경험을 제공해요. 치앙라이와 치앙마이의 고산 부족 마을에 위치한 각각의 산장에서는 소수 민족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거든요.
각 산장을 운영하거나 투어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것은 소수 민족 마을 주민들이에요. 호스트로서 직접 마을을 투어시켜주기도 하고, 트레킹이나 래프팅 등 액티비티도 담당하죠. 음식도 현지 주민들로부터 공급받고요. 이처럼 로컬 커뮤니티와의 협력은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부터 시작됐어요. 산장을 지을 때도 산악 부족 공동체의 전통을 건축 디자인에 반영했고, 환경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천연 재료를 사용했어요. 이 산장의 목표는 그저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었어요. 진짜 목표는 소수 민족의 자연 유산과 문화를 보존하는 것이었죠.
ⓒAsian Oasis facebook
ⓒAsian Oasis facebook
차난야는 때묻지 않은 자연에는 사람의 영혼을 달래주고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번잡한 도시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힘이죠. 따라서 관광업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은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관광지를 훼손시키지 않는 것이었어요. 물론 여행지의 문화유산과 지역 커뮤니티를 지키는 것도 포함됐죠. 그래서 산장의 숙박 프로그램으로 발생되는 수입의 일부는 마을 기금으로 사용하고 있어요. 로컬 커뮤니티가 관광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든 거예요. 이처럼 아시안 오아시스는 여행지의 생태계(Ecology)와 경제(Economy)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어요.
그러니 30년 넘게 자연과 사람을 지키고 보존하는 일을 해 온 차난야에게 버려진 차밭의 진가를 알아보는 안목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차난야는 이 차 밭에 산스크리트어로 ‘보존하고 지키다’라는 뜻을 지닌 ‘아락사(Araksa)’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그리고 이곳에서 자연 그대로의 매력이 담은 유기농 차 농장을 운영하기로 하죠. 어떻게냐고요?
우선 자연 그대로의 매력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볼게요. 아락사 차 농장에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색이 있어요. 이곳에서는 최대한 나무와 꽃을 인위적인 관리 없이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벌이나 각종 곤충이 꽃가루를 가지고 날아와 차 나무에 달라붙어요. 그래서 차에 독특한 향이 생기죠. 사람의 관리를 받지 않는 대신 자연의 혜택을 누리는 거예요.
이를 바탕으로 2018년에는 2년간에 걸쳐 차 밭에 ‘아락사 티 하우스(Araksa Tea House)’를 만들었어요. 흙으로 만든 벽, 나무를 재사용해서 세운 기둥처럼 지속 가능한 소재로 만든 건축물이었죠. 아락사 티 하우스는 관광객들이 직접 찻잎을 따거나 전통 방식 그대로 로스팅 하는 체험을 제공하는데요. 이곳에서도 다른 관광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로컬 커뮤니티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소수 민족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여행 프로그램이 곧 이들의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지도록 했죠. 아락사 티 하우스는 지역 관광을 재생시킨 점을 인정받아 ATTIA(아시아 여행 기술 산업 협회)가 지원하는 여행 체인지메이커 어워드 2023년의 우승자로 선정됐어요.
ⓒSimple Architecture
ⓒSimple Architecture
#2. 차를 소비하는 맥락을 바꾸다
아락사 차 농장을 찾아오는 고객의 90%는 치앙마이로 여행을 온 해외 관광객이었어요. 이 농장은 태국에서 가장 오래된 차 농장 중 하나로서 전통차는 물론 로컬 커뮤니티와 문화를 보존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죠. 차난야는 이미 차에 관심을 가지고 치앙마이에 찾아온 고객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도시 한복판에서 더 폭넓은 고객군을 만나 차 문화를 전파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락사 차 농장으로부터 750km나 떨어져 있는 방콕에 ‘아락사 티 룸(Araksa Tea Room)’을 열기로 하죠.
ⓒ시티호퍼스
하지만 무작정 도시에 지점 하나를 더 늘린다고 해서 사람들이 찾아올 리가 없어요. 방콕에 있는 차 애호가에게 의존하기보다는 대중 전반의 시선을 끌어당길만한 유인책이 필요했죠. 차난야는 아락사 티 룸이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찻집으로 들어가는 진입장벽부터 낮추기 위한 시도를 하죠. 전형적인 찻집에서 벗어나기로 한 거예요.
그래서 아락사 티 룸은 전통차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공간이지만 일반 찻집과는 달라요. 차뿐만 아니라 태국식 식사를 함께 판매하죠. 만약 아락사 티 룸이 평범한 차 전문점이었다면 한정된 고객군만 찾아왔을 거예요. 하지만 아락사 티 룸은 과감하게 이곳을 슬로푸드(Slow food) 식당으로도 포지셔닝 했어요. 이렇게 하면 더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게 되고, 그들이 우연히 차의 매력을 발견하게 될 확률도 커질 테니까요.
고객을 만나는 입구를 넓힌 아락사 티 룸은 그다음 순서로 사람들이 차를 소비하는 맥락을 바꿨어요. 역사가 깊은 전통차 문화를 다루면서도 자신만의 유니크한 관점을 블렌딩하기로 했죠. 첫째로, 차 마시는 순서부터 변화를 줬어요. 보통 사람들이 식사를 마치고 난 후에 차나 커피를 마시는 것과는 달리, 아락사 티 룸에서는 식사와 티를 동시에 내줘요. 메뉴판에서도 메인 식사와 차와의 페어링을 강조하죠. 예를 들어 신맛이 강한 음식에는 진한 홍차를 함께 마셔서 맛의 균형을 맞추는 것을 추천하는 식이에요. 마치 식사에 술 한 잔을 곁들이는 반주(飯酒) 대신 반차(飯茶)를 즐기는 셈이죠.
ⓒ시티호퍼스
차의 소비 맥락을 바꾸는 두 번째 방법은 차를 반찬으로 만드는 거예요. 아락사 티 룸의 대표적인 애피타이저는 ‘튀긴 찻잎’이에요. 치앙마이에 있는 차 농장에서 공수한 찻잎을 바삭바삭하게 튀긴 후 매콤한 캐슈너트와 다진 치킨이 들어간 드레싱과 함께 제공하죠. 이는 지금까지 찻잎의 쓰임을 따뜻한 물에 우리는 용도로만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발상의 전환을 일으켜요. 반찬이나 요리로 탄생한 튀긴 찻잎을 맛보며 차의 새로운 맛을 발견하죠.
ⓒ시티호퍼스
마지막으로, 밤이 되면 아락사 티 룸의 차들은 칵테일로 변신해요. 아락사 티 룸이 술 한 잔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밤에 마실 수 있는 ‘티 칵테일’을 개발했거든요. 그중에서도 ‘시그니처 티 칵테일 시리즈’의 컨셉은 치앙마이를 떠나 방콕까지 이어지는 찻잎의 여행으로 정했어요. 치앙마이부터 방콕에 이르기까지 거치게 되는 9개 도시의 이름을 따서 티 칵테일을 개발했는데, 그 안에 태국산 술과 재료들을 넣었죠.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예를 들어 볼게요. ‘아유타야’라는 이름의 보라색 칵테일은 나비콩 차와 레몬그라스 차를 넣어 만들었어요. 칵테일 잔 위에 올려진 금박은 사원만 1,000곳이 넘는 고도인 아유타야의 번영을 나타내죠. 한편 ‘방콕’이라는 티 칵테일은 얼그레이 차와 진을 섞은 후 화이트 초콜릿 시럽과 레몬, 복숭아 거품 등을 섞었어요. 방콕이라는 도시가 지닌 다양성을 상징하는 한 잔이죠.
이처럼 아락사 티 룸은 찻집, 슬로푸드 레스토랑, 칵테일 바를 오가며 변신을 거듭해요. 그 과정에서 식재료를 태국 북부 현지에서 직접 공수하고, 치앙마이 식당의 셰프와 협업하는 등 로컬 커뮤니티와의 협력도 잊지 않죠. 정체성과 가치는 보존하면서도 맥락에 변화를 준 덕분에 방콕에서의 기반은 점점 더 넓어지는 중이에요.
#3. 매장에 지역적 맥락을 조성하다
이쯤에서 시선을 매장으로 돌려 볼게요. 아락사 티 룸은 치앙마이에서 생산된 찻잎 중심의 F&B 메뉴를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아요. 식음료뿐만 아니라 매장 환경에 있어서도 치앙마이 및 태국 북부와의 동기화를 시도하죠. 마치 치앙마이라는 맥락 위에 아락사 티 룸을 얹어놓은 것과 마찬가지인데요. 브랜드의 컨셉과 철학을 매장 인테리어로도 표현하는 동시에, 공간으로 고객의 감각을 자극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어요.
ⓒ시티호퍼스
매장을 채우는 재료부터 살펴볼까요? 대부분의 재료는 방콕이 아니라 태국 북부에서 가져온 거예요. 오래된 건물의 내벽은 페인트로 칠하는 대신 우타라딧 지역에서 가져온 흙으로 덮었죠. 차난야가 아락사 티 룸을 화학 물질로 뒤덮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또 이곳에서 사용되는 테이블과 의자는 아라사 차 농장에 쓰러져있던 나무들로 제작한 것들이에요. 버려질 운명에 처해 있었던 자연 재료도 이곳에서는 앤티크 한 매력이 있는 가구로 재생되죠.
한편 로컬 커뮤니티와 교류한 흔적들도 곳곳에서 볼 수 있어요. 매장에 놓여 있는 직물들은 모두 현지의 장인들이 만들었어요. 매장 정 중앙에 있는 액자 속에는 치앙라이 몽족의 작품을 넣고, 인테리어 소품으로는 현지 장인이 만든 도자기를 선택했죠. 벽 한편에 걸어놓은 바구니들은 실제로 아락사 차 농장에서 찻잎을 따서 넣는 데 쓰였던 것이고요.
ⓒ시티호퍼스
지역적 맥락을 살려 분위기를 조성하는 전략은 2층에서도 계속 이어져요. 아락사 티 룸 1층은 고객들의 식사 공간으로 쓰이는 반면, 2층에서는 각종 차 관련 제품들을 구매할 수 있는데요. 특히 여기 있는 수공예품들은 모두 로컬 커뮤니티에서 제작한 것들이에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제품과는 달리 다기 하나하나마다 특색이 있죠. 이처럼 차난야가 아락사 티 룸에 태국 북부의 문화를 옮겨 놓은 덕분에, 고객들은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소수 민족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아락사 티 룸에서 판매하고 있는 찻잎들도 살펴볼게요. 주력 판매 상품인 찻잎은 이름부터 독특해요. 평소에 차 생활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이 자주 들어봤을 법한 익숙한 이름 대신, 아락사 티 룸 만의 이름을 지어줬죠. 예를 들어 진한 맛의 홍차인 ‘잉글리시 브렉퍼스트(English Breakfast)’는 이곳에서 태국어로 ‘아침’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요. 차 나무의 어린잎을 말려서 만든 ‘백차(white tea)’ 2종 세트는 태국어로 ‘새벽’과 ‘황혼’이라고 부르고요.
이처럼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제품명을 사용하는 대신 개명을 시도한 데는 이유가 있어요. 아락사 티 룸만의 이름을 붙여줌으로써 찻잎의 특성을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예를 들어 ‘새벽’과 ‘황혼’이라는 제품은 같은 찻잎에서 탄생한 제품이지만, 찻잎을 따는 시간이 언제인지에 따라 서로 다른 이름을 붙였어요. 찻잎을 해가 뜨기 전에 따야 하는지, 햇볕을 충분히 쬔 후 저녁 무렵에 따야 하는지에 따라 이름을 나눈 거죠. 여기서도 맥락을 중시하는 아락사의 태도를 엿볼 수 있어요.
ⓒ시티호퍼스
아락사 티 룸의 차 제품들은 이름뿐만 아니라 원재료도 태국다움을 품고 있어요. 차난야는 새로운 맛을 낼 수 있는 태국만의 천연 재료들을 계속해서 찾고 있죠. 그 결과 프랑스의 농산물 가치 평가 기관인 AVPA에서 주최하는 세계 티 콘테스트(Teas of the World)에서 수상한 아락사의 차 종류만 5개나 돼요. 이쯤 되면 차 한 잔이 태국다움을 세계에 선보이는 매개라고 봐도 무방하죠.
뒤처진 선두주자가 앞서가는 법
아락사 티 룸에서는 20종 이상의 차를 제공하고 있어요. 전부 치앙마이에 있는 아락사 차 농장에서 재배한 찻잎으로 생산된 고유의 유기농 차들이죠. 차난야는 15년 이상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던 땅을 봤을 때, 무심코 지나치지 않았어요. 그 안에 새로운 비즈니스의 씨앗이 심어져 있을 거라고 상상했죠.
그렇게 차난야는 이 땅에 잠들어 있던 잠재력을 차 한 잔으로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어요. 이 차 한 잔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한 결과이자, 로컬 커뮤니티를 돕는 수단이자, 태국의 차 문화를 키우는 계기가 되었죠. 이와 같은 일석삼조의 효과 뒤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땅의 진가를 알아보는 차난야의 안목이 있어요. 그뿐 아니라 고유의 가치는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맥락은 응용하는 능력도 있죠. 덕분에 아락사 티 룸에 들어가면 누구나 쉽게 차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어요. 더불어 태국 북부의 로컬 커뮤니티에 대한 이해도도 올라가고요.
“아락사는 자연과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브랜드예요.”
- The Cloud 인터뷰 중
누군가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려면 기술이나 자본이 필수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아락사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돼요. 진화는 무조건적인 개발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가치를 지키고 보존하면서도 가능하다는 것을요. 모두가 한 방향으로 움직일 때는 오히려 스스로 서 있는 영역부터 지켜보세요. 어느 순간 선두주자가 되어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을 테니까요.
Reference
• Araksa Tea Room, Read the Cloud
• ARAKSA TEA GARDEN won The Travel Changemakers Awards 2023, Asian Oas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