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은 움직이는 거야, 공간으로 세상의 벽을 넘는 법

클리오 어워드 #2.공간

2023.12.19

세계 3대 광고제라고 불리는 대회가 있어요. 칸 광고제, 뉴욕 페스티벌, 클리오 어워드. 이 중에서 아직 한국에선 덜 주목받고 있지만, ‘광고계의 오스카’ 상이라 불릴 정도로 권위 있는 대회가 클리오 어워드예요. 1959년부터 시작했을 만큼 역사도 깊죠.


클리오 어워드의 목적은 광고 산업을 발전시키는 것. 그래서 시장에 영감을 주고, 크리에이티브 커뮤니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창의적인 광고나 캠페인을 수상해요. 2023년도 어김없이 다양한 작품을 선정했는데요. 클리오 어워드 CEO인 니콜 퍼셀(Nicole Purcell)은 총평을 하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미디어를 창의적으로 활용하여 비즈니스를 추진하거나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래 지향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등 대담한 아이디어가 세상의 작동 방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래서 시티호퍼스가 대담한 아이디어로 세상의 작동 방식을 바꾼다는 관점으로 수상작들을 정리해 봤어요. 어떤 수단으로 세상의 작동 방식을 바꿨는지에 초점을 맞춰 이벤트, 공간, 제품, 가상세계, SNS 등 5가지로 살펴보았죠. 그중에서 오늘 만나볼 수상작은 ‘공간’으로 세상의 작동 방식을 바꾼 크리에이티브예요.


[클리오 어워드 #2.공간] 미리보기

 #1. 바다에 만든 4평의 유토피아 - 모닝 애프터 아일랜드

 #2. 랜드마크 공항의 일주일 개명 프로젝트 - 안 드 골

 #3. ‘90년대에서 온 집’에 갇힌 Gen Z - 90년대에 갇혔다

 공간의 유연함이 생각의 유연함을 낳는다




모두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눈에 띄려할 때, 나 홀로 ‘사라지기’를 택한 브랜드가 있어요. 그것도 정체성을 담은 화려한 이미지로 승부하는 럭셔리 브랜드 업계에서 말이죠. 이처럼 대담한 역행을 보여준 브랜드는 ‘보테가 베네타’예요. 보테가 베네타는 2021년 1월에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X까지 SNS 계정을 삭제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어요. 새로운 컬렉션이 발표될 때 소셜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화제성을 높이는 업계의 관행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 거죠.


이같은 조짐은 이미 2020년에 오픈한 팝업 스토어에서 엿볼 수 있었어요. 보테가 베네타는 상하이의 플라자 66 몰 한가운데에 매장을 열었는데요. 이 매장은 ‘인비저블 스토어(The invisible store)’예요. 말 그대로 눈앞에 있어도 눈에 띄지 않는 매장이었죠. 외관이 전부 거울로 둘러싸인 데다가 브랜드 로고까지 투명해서 쉽게 알아채기가 어려웠어요. 게다가 거울이 주변에 있는 타 럭셔리 브랜드의 매장과 로고를 반사하는 바람에, 마치 다른 브랜드로 변장을 한 것처럼 보일 정도였죠. 



ⓒBottega Veneta


하지만 의도적으로 눈에 띄지 않으려던 매장은 오히려 사람들의 이목을 더욱 집중시켰어요. 이 팝업 스토어는 보테가 베네타가 한결같이 유지해 온 신념과 가치관을 떠올리게 했거든요. 1960년대 말, 보테가 베네타의 광고 문구는 ‘당신의 이니셜만으로 충분할 때(When Your Own Initials Are Enough)’였어요. 수석 디자이너였던 토마스 마이어는 이 문구를 바탕으로 브랜드 로고를 없애기도 했죠. 브랜드가 지니고 있는 가치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러한 철학을 바탕에 두고 쇼핑몰에 등장한 ‘보이지 않는 매장’은 오히려 보테가 베네타의 자신감과 우아한 존재감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켰어요. 눈에 띄지 않는 공간이 그 어떤 화려한 공간보다 강한 메시지를 발산한 거죠. 이 매장은 2020년에 클리오 어워드에서 브론즈상을 수상하면서 아이디어의 참신함을 인정받게 돼요. 브랜드의 정체성과 본질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드러내지 않고도 드러나는 방법이 있다는 걸 몸소 증명했죠.


보테가 베네타의 ‘보이지 않는 매장’처럼 공간의 사용법에도 창의력이 필요해요. 시야각을 조금만 넓히면 공간을 새롭게 할 수 있죠. 그뿐 아니에요. 공간 하나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사회의 관행, 관습까지도 바꿔나갈 수 있어요. 오늘 만나볼 2023년의 클리오 어워드 수상작들은 세상의 메커니즘을 변화시킨 공간들이에요. 4평 남짓한 뗏목부터 한 국가의 랜드마크, 과거에서 불러온 집까지 종류도 다양하죠. 이 공간들이 어떻게 세상이 세운 벽을 뛰어넘는지 지금부터 알아볼게요.



#1. 바다에 만든 4평의 유토피아 - 모닝 애프터 아일랜드

온두라스에서 살짝 벗어난 공공 해역에는 어디의 땅도 아닌 작은 섬이 하나 있어요. 정확히는 섬이 아니라 4평 남짓한 크기의 뗏목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망망대해에 떠 있는 뗏목에서 막막함보다는 희망을 느껴요. 천국같은 섬도, 화려한 크루즈도 아닌 고작 작은 뗏목 위에서 사람들이 무슨 희망을 느낀다는 걸까요?   



ⓒGrupo Estratégico PAE


섬의 이름은 ‘모닝 애프터 아일랜드(Morning After Island)’. 온두라스의 국민들이 약을 복용하기 위해서 찾아오는 곳이죠. 물론 약 한 알을 먹자고 먼바다까지 떠나오는 일이 무모하게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약은 지금 이 순간, 이 섬에서 먹지 않으면 안 돼요. 사람들이 이곳에서 먹는 약이 ‘응급피임약(Morning after pill)’이거든요. 말 그대로 응급 상황 시 찾게 되는 이 약은 온두라스 국경 내에서는 구매도, 복용도 금지되어 있어요. 약을 먹으면 최대 6년까지 징역형을 받을 수도 있죠. 라틴 아메리카 국가 중 유일해요.



ⓒGrupo Estratégico PAE


온두라스에서 2009년에 도입된 응급피임약 복용 금지령은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어요. 온두라스 여성 4명 중 1명이 18세 이전에 아이를 낳았는데, 그중 절반가량이 강간으로 인한 출산이었죠. 2009년 이후 출산을 한 미성년자의 숫자는 약 33만 명에 달했고요. 물론 사회에서 이들을 지켜만 봤던 것은 아니에요. 여성 권리 단체인 그루포 에스트라테기코(Grupo Estratégico PAE)는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위나 농성, 유료 캠페인 등을 진행했었죠. 


하지만 민간 부문의 부족한 지원과 예산으로 인해 이들은 효과적인 도움을 제공하지는 못했어요. 도움이 간절한 사람들을 위해 실효성이 있는 대책이 필요했죠. 그래서 광고 대행사인 오길비 온두라스와 그루포 에스트라테기코는 이번엔 이전과는 다른 시도를 하게 돼요. 심플하면서도 허를 찌르는 접근 방식으로 말이죠. 국가에서 기본적인 권리를 허락하지 않으니, 정부나 기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공공 해역에서 해법을 찾기로 한 거예요.


이들은 온두라스 정부의 사법권이 닿지 않는 바다 위에 작은 뗏목을 띄워 ‘모닝 애프터 아일랜드’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응급피임약을 복용해야 하는 사람들을 배에 태워 정기적으로 섬에 데려다주었죠. 이곳에서라면 약을 먹어도 국가의 법을 어기지 않는 셈이었으니까요. 또 동시에 이 섬에 관한 영상을 제작해서 대중의 참여와 서명을 유도했어요. 단기적인 목표는 온두라스 내 8개의 도시들을 정기적으로 오가며 많은 사람들을 돕는 것이었지만 꿈은 더 컸어요. 사회에도 경종을 울리고 싶었죠.



ⓒGrupo Estratégico PAE


제작된 영상은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어요.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전 세계에 있는 8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서명에 참여했죠. 14개 국에 있는 수백 개의 언론사가 캠페인에 관한 글을 기고했고요. 결국 온두라스의 시오마라 카스트로 대통령 또한 이런 목소리를 모른 척할 수 없었고, 세계 여성의 날을 맞이해 그루포 에스트라테기코를 회의에 초대했어요. 이는 결국 대통령이 약 복용 금지 조치를 해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결과로 이어졌고요.



ⓒGrupo Estratégico PAE


기발하고도 심플한 계획으로 허를 찌른 ‘모닝 애프터 아일랜드’는 2023년 클리오 어워드에서 3개의 그랜드 클리오를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어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바다 위의 외딴 나무 뗏목은 크기는 작아도 영향력은 거대했죠. 디스토피아를 피해서 만든 작은 유토피아 위에서 사람들은 하마터면 만나지 못했을 또 다른 미래를 꿈꿔볼 수 있었으니까요. 모닝 애프터 아일랜드는 단순히 기존의 관행을 피하고자 만들어진 임시의 공간이 아니었어요. 선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선택권조차 없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정표를 선사하는 공간이었죠.



#2. 랜드마크 공항의 일주일 개명 프로젝트 - 안 드 골

한 도시의 랜드마크나 다름없는 공간이 시민도 모르는 사이에 이름을 바꾼다면 어떨까요? 2022년 12월에 프랑스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공간이 개명을 시도했어요. 그것도 딱 일주일 동안만 말이죠. 보통 유명 관광지의 이름이 바뀌면 표지판이나 지도 표기, 팸플릿이나 온라인 정보 등을 수정하면 돼요. 그런데 이번 케이스는 좀 달랐어요. 개명을 한 주체가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이었거든요.


국제공항협회에 따르면 2022년에 샤를 드 골 공항을 이용한 국제선 승객은 약 5,176만 명이었어요. 명실상부한 프랑스의 대표적인 공항이라고 할 수 있죠. 자국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람들이 프랑스 파리로 들어서는 입구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공항이 개명을 하는 바람에 파리로 향하는 승객들은 기내 방송으로 ‘곧 있으면 안 드 골 공항에 도착합니다’라는 안내를 받게 됐어요. 그뿐 아니에요. 공항에 설치된 스크린과 TV 속 항공편 정보, 탑승권, 수하물 태그, 도로 표지판까지 전부 ‘샤를 드 골’이라는 이름 대신 ‘안 드 골’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죠.



ⓒFondation Anne de Gaulle



ⓒFondation Anne de Gaulle



ⓒFondation Anne de Gaulle


그런데 이번 개명에는 한 가지 의문점이 있어요. 국가의 아이콘이나 다름없는 인물 ‘샤를 드 골’에서 아무도 모르는 인물로 이름을 바꿨으니까요. 의도적으로 공항이 유명세를 벗어던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이와 같은 대담함을 보여준 것은 ‘안 드 골 재단’이에요. 전 프랑스 대통령 샤를 드 골이 그의 아내와 함께 1945년에 세운 재단이죠. 부부는 다운증후군을 안고 태어나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유명을 달리한 딸 ‘안(Anne)’을 위해 이 재단을 세웠어요.



ⓒFondation Anne de Gaulle



ⓒFondation Anne de Gaulle


안 드 골 재단은 설립 이후 75년 넘게 신경 발달 질환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활동해 왔어요. 수십 년간 각종 캠페인을 동원하며 돌봄과 지원을 제공했죠. 하지만 프랑스를 더 포용적인 사회로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었어요. 여전히 신경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대중교통에서 배제되어 있었고, 대중의 도움과 관심, 참여도는 미흡했으니까요. 그래서 안 드 골 재단은 장애인을 지원하는 패러다임에 큰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돼요. 선한 일은 일부의 시민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참여해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회적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안 드 골 재단은 전 사회적 주목과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수단으로 프랑스의 대표 공항인 ‘샤를 드 골’을 활용하기로 결정했어요. 세계 장애인의 날로 지정된 12월 3일에 맞춰 샤를 드 골 공항의 이름을 안 드 골 공항으로 개명했죠. 일주일이라는 기간 동안 샤를 드 골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비주얼 아이덴티티는 전부 안 드 골로 변경됐어요. 터미널 간판부터 각종 디스플레이, 도로 표지판, 탑승권까지 바뀌지 않은 것이 없었죠. 그야말로 대공사 수준이었어요.



ⓒFondation Anne de Gaulle



ⓒFondation Anne de Gaulle



ⓒFondation Anne de Gaulle


그런데 이들이 바꾼 것은 공항의 이름표라는 하드웨어만이 아니었어요. 장애인 승객들이 공항에서 겪게 될 총체적인 경험까지 통째로 재설계해서 소프트웨어까지 업그레이드했죠. 안 드 골 재단은 승객 관리를 담당하는 파리 공항의 지상직 직원을 대상으로 보완대체의사소통(AAC)* 교육부터 제공했어요. 더불어 개명 첫째 날인 12월 3일에는 ‘듀오데이+1(DuoDay+1)'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장애인을 초대해서 직원과 함께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했고요. 이는 지금껏 샤를 드 골 공항을 이용하며 관심의 부족으로 소외되어 온 900만 명(연간 기준)의 장애인 승객에게 전하는 새로운 환대였어요. 동시에 평범한 시민에게도 그 중요성을 알리는 전례 없는 한 획이었죠.

*보완대체 의사소통(Augmentative and Alterative Communication): 의사를 언어로 표현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말을 그림, 수어, 몸짓 등으로 보완, 대체하는 것을 뜻해요.



ⓒFondation Anne de Gaulle


물론 7일간의 개명 끝에 샤를 드 골 공항은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어요. 하지만 안 드 골 재단은 2024년 파리 패럴림픽을 앞두고 여전히 포용적인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노력 중이죠.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사람의 숫자가 장애인이 살아가는 세상의 크기를 결정하니까요. 2023년에 2년 연속 유럽 최고의 공항으로 선정된 샤를 드 골 공항도 바꿨으니, 다음으로는 프랑스 사회를 바꿀 날도 머지않았어요. 



#3. ‘90년대에서 온 집’에 갇힌 Gen Z - 90년대에 갇혔다

과학 기술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타임머신은 아직 미개척의 영역으로 남아 있어요. 과거로 돌아갈 길도, 앞서 미래로 가볼 길도 없죠. 하지만 우리가 직접 이동할 수 없다고 해서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에요. 사람이 움직이는 대신 공간을 불러오면 되거든요. 얼핏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실제로 구현한 것은 과학자가 아니라 글로벌 홈퍼니싱 기업 이케아였어요. 과거의 시공간을 현재로 소환했죠.


이케아가 불러오고 싶었던 과거는 1990년대의 스페인이었어요. 그래서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 스튜디오에 90년대의 스페인 가정집을 그대로 구현한 집을 만들었죠. 이 시기에 이케아의 미래를 바꿀 법한 결정적인 단초라도 들어 있나 싶은데 현실은 정반대였어요. 이 집의 시계추는 이케아가 아직 스페인에 진출조차 하지 않았던 시기를 가리키고 있거든요. 그렇다면 이케아는 왜 하필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시공간을 불러온 걸까요?



ⓒIKEA



ⓒIKEA



ⓒIKEA


사실 이 집은 이케아가 제작하기로 한 리얼리티 쇼 ‘90년대에 갇히다(Trapped in the 90s)’의 촬영장이에요. 1996년에 스페인에 진출한 이케아는 창립 25주년을 기념해서 가구를 만드는 대신 리얼리티 쇼를 제작하기로 했죠. 이케아는 몇 주에 걸쳐 이 리얼리티의 주인공이 될 사람들을 찾았어요. 그 결과 6명의 Z세대를 캐스팅했어요. 이들은 성향도, 배경도 제각각이었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어요. 모두 1996년 이후에 태어난 인플루언서였죠.


한 마디로 이들은 ‘이케아 네이티브’였어요. 태어날 때부터 이미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있었던 ‘디지털 네이티브’처럼, 이들의 삶에는 늘 이케아가 있었어요. 부모님이 하나둘씩 집에 채워 넣은 이케아의 가구와 소품들은 이들에게는 마치 컴퓨터 배경화면 같은 존재였죠. 그랬던 이들이 한날한시에 이케아가 없는 세상으로 뚝 떨어져 생활하게 된 거예요.


20대가 넘는 카메라는 여섯 명의 Z세대가 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24시간 내내 촬영했어요. 촬영분만 100시간이 넘었죠. 초반에 느끼던 생소한 즐거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촬영자들은 좌충우돌을 겪어요. 침구는 너무 무거운 데다가 거칠어서 가려웠고, 좁은 부엌에는 주방 도구가 널려있었어요. 제대로 된 수납장 하나 없는 화장대에서는 화장품을 찾기도 어려웠고요. 심지어 스마트폰을 반납한 출연자들이 전화를 사용하려면 회전식 다이얼 전화기를 사용해야 했는데, 이용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IKEA



ⓒIKEA


그야말로 혼란 그 자체였지만 제작진이 이 모습을 지켜보기만 본 건 아니에요. 미션을 제대로 수행한 사람에게는 ‘서바이벌 키트’를 줬거든요. 바로 이케아 제품이었죠. 단 한 번도 이케아 없는 삶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출연자들에게 이는 한 줄기 희망과도 같았어요. 총 8부작으로 구성된 리얼리티 쇼를 보면서 사람들은 이케아가 없었던 삶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새삼 다시 깨닫게 됐죠.



ⓒIKEA


이케아의 제품들은 각 나라에 진출 후 수십 년 간 가정집에 침투해 왔어요. 그 결과 이케아의 존재감은 어느 순간 당연한 것이 됐고요. 다시 한번 이케아를 고객에게 매력적으로 인지시키는 신선한 시선과 관점이 필요했어요. 이때 이케아는 자신들이 ‘가구를 통한 디자인의 민주화’를 이뤄냈다며 같은 문구를 반복해서 말하고 주입하는 대신, 그저 보여주기를 택했어요. 현시대에 끼친 영향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과거의 시공간을 활용하면서 말이죠. 180만 분이라는 시청 기록을 세운 이케아는 2023년에 클리오 어워드 금상을 수상하며 아이디어의 저력을 인정받게 돼요.



ⓒIKEA



공간의 유연함이 생각의 유연함을 낳는다

섬, 공항, 집. 모두 각기 다른 성격을 지녔지만, 2023년에 클리오 어워드에서 수상한 공간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어요. 기존에 존재하던 세상의 벽을 공간으로 넘었다는 거예요. ‘모닝 애프터 아일랜드’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선택권을 제시함으로써 개인의 인생을 바꾸는 동시에 국가의 법안까지 바꿨어요. ‘안 드 골 공항’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장애인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켰고, ‘이케아의 90년대 집’은 브랜드를 신선하고도 새롭게 바라보는 법을 알려줬죠.


물론 이전부터 존재해온 관행이나 관습처럼 오랜 시간 굳어진 벽을 넘는 것은 쉽지 않아요. 하지만 클리오 어워드 수상작 속 공간들은 거대한 벽에 순응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히는 돌파력을 보여줬죠. 그렇다면 공간이 가진 돌파력은 원천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로, 올해의 수상작을 기획한 이들은 공간을 고정 불변한 것으로 바라보지 않았어요. 그보다는 공간의 유연함에 초점을 맞춰 성격과 이름 등을 변주시켰죠. 이 공간들은 상호작용하는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켰고요. 공간의 유연함이 생각의 유연함을 낳은 거예요. 


둘째로, 이들은 공간을 결과가 아닌 원인으로 바라봤어요. 기획과 컨셉에 따라 만든 최종 결과물이 아니라 새로운 현상을 촉발시킬 수 있는 매체로 활용했죠. 이처럼 공간이 변화의 씨앗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섬, 공항, 집으로 세상의 작동 원리를 조금씩 변화시켜나갈 수 있었죠.


공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화하고 있어요. 앞으로 수많은 공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시대의 벽을 넘어 확장된다면 세상의 크기는 더 커지고 또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2024년의 클리오 어워드에서는 얼마나 더 넓고, 나은 세계를 볼 수 있을지 벌써부터 궁금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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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The Invisible Store, Clio awards

 Anne de Gaulle, Clio awards

 국제선 이용객 숫자 세계 1위 공항은, 안중현, 조선일보

 GROUPE ADP AND THE ANNE DE GAULLE FOUNDATION KEEP ON COLLABORATION FOR ACCESSIBILITY AND INCLUSIVENESS IN PARIS AIRPORTS, GROUPE ADP

 2023 스카이트랙스 선정, 세계 10대 공항은?, 이문숙, 초이스 경제

 Trapped in the 90s, Clio awards

 Morning After Island, Clio awa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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