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에 양말이 흠뻑 젖었거나, 출장지에서 갈아입을 속옷이 필요할 때 어디로 가야 하나요? 패션 매장이 문을 닫은 시간이라면요? 아마 24시간 편의점에 갈 거예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도 갈아입을 의류를 쉽게 구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편의점에서의 의류 판매는 금요일과 토요일 심야 시간에 가장 높은 매출을 올려요.
물론 수요가 명확하다는 건 좋은 일이에요. 하지만 패밀리마트는 여기서 탈피하고 싶었어요. 임시방편으로 어쩔 수 없이 급히 사게 되는 옷이 아니라, 패션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러서 사고 싶어지는 옷을 판매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패션 의류를 출시하게 되죠.
그렇게 탄생한 패밀리마트표 의류 브랜드는 ‘컨비니언스 웨어(이하 컨비니웨어)’. 단순히 옷 몇 종류만 팔면서 패션 하우스 흉내 내는 수준이 아니에요. 편의점 최초로 패션쇼를 열고,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직접 옷을 디자인하죠. 결국 2023년에 처음으로 매출 100억 엔(약 1,000억 원)을 넘어서며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는데요. 대체 디자인을 어떻게 했길래 편의점에 대한 편견을 깨고 새 판을 짤 수 있었을까요?
컨비니언스 웨어 미리보기
• #1. 오니기리, 갓 내린 커피, 그다음 차례는?
• #2. 편의점 점원을 패션회사 직원으로 만드는 법
• #3. 사족을 달지 않는 정직함으로 승부하다
• 패션 라인업에 문구류를 출시한 이유
새 시즌에 맞춰 옷을 입고 런웨이를 누비는 모델들과 그 모습을 촬영하며 박수 치는 관객들, 쇼장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까지. 2023년 11월 30일, 도쿄 시부야에서 패션쇼가 한창 진행 중이었어요. 주로 가수들의 라이브 콘서트장으로 쓰이는 국립 요요기 경기장에서 스페셜 밴드의 라이브 연주를 배경으로 94명의 모델들이 워킹을 선보이고 있었죠.
이러한 패션쇼는 패션 위크가 다가오면 전 세계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이번에 열린 패션쇼는 뭔가 달랐어요. 워킹 중인 모델 뒤편으로 원형 편의점이 있었거든요. 이 편의점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었어요. 모델들은 입구와 출구가 딱히 나뉘지 않은 편의점을 가로질러 걸어 다니고, 심지어 일부 모델들은 매장을 둘러보다가 물건을 고르기도 했죠. 편의점 위에 배치된 전광판이 이 모습을 실시간으로 송출하고 있었고요.
ⓒFamilyM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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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컨셉의 패션쇼를 연 것은 명품 패션 브랜드도, 신진 디자이너도 아니었어요. 누구에게나 친숙한 편의점 ‘패밀리마트’였죠. 편의점 업계 최초로 패션쇼를 연 패밀리마트는 패션계로의 본격적인 진출을 공표했는데요. 기본 아이템 몇 벌로 패션 하우스 흉내만 낸 게 아니에요. 총 80세트의 컬러풀한 룩을 선보였죠.
지금까지 편의점이 판매하는 의류는 주로 ‘긴급 수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갑자기 내린 폭우로 양말이 젖었을 때, 출장지나 여행지에서 급히 갈아입을 속옷이 필요할 때 사람들은 편의점을 찾았죠.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패밀리마트가 프라이빗 브랜드인 ‘컨비니언스 웨어(이하 컨비니웨어)’를 만든 거예요. 2021년 3월, 컨비니웨어는 일본 패밀리마트 매장 약 16,500여 곳에서 전국 판매를 시작했죠.
결과는 어땠냐고요? 컨비니웨어는 2023년에 처음으로 매출 100억 엔(약 1,000억 원)을 넘어섰어요. 2024년에도 전년 동기 대비 30% 이상의 매출 신장률을 보이고 있죠. 인기 제품인 양말은 2024년 5월 기준 2,000만 켤레 판매를 돌파했고, 청재킷, 치노팬츠 등 신제품이 출시되면 곧장 매진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예요. 어느덧 편리의 영역에서 취향의 영역으로 자리를 옮긴 편의점 의류. 대체 어떤 디자인이길래 편의점의 판을 바꾼 걸까요?
#1. 오니기리, 갓 내린 커피, 그다음 차례는?
‘좋은 소재, 좋은 기술, 좋은 디자인.’
컨비니웨어의 컨셉이에요. 패밀리마트 매장에서는 이 컨셉에 맞는 의류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어요. 속옷류는 물론이고 양말, 손수건, 티셔츠, 쇼트 팬츠, 패딩까지 제품군이 각양각색이죠. 의류 카테고리에서 발생하는 매출만 100억 원(약 1,000억 원, 2023년 기준) 이상. 편의점 전체 매출액이 3조 엔(약 30조 원)인 점을 감안하면 아직 미미하지만, 의류 업계와 비교해 보면 이제 중견 회사 못지않아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니코 앤드’의 1/3 수준이니까요.
그렇다면 패밀리마트는 어쩌다 컨비니웨어를 만들기로 한 걸까요? 초창기 편의점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상상도 못할 일이에요. 원래 편의점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물건들만 구비해두었으니까요. 그런데 편의점도 시간이 지나며 진화를 거듭했어요. 오니기리나 갓 내린 커피를 팔며 먹거리 종류를 늘리기 시작하더니, 공공요금을 납부하거나 ATM기에서 돈을 인출할 수 있는 기능을 더하며 사회 인프라로 자리 잡았죠. 이제 그다음 진화는 어떤 모습일까요? 패밀리마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어요.
‘급하게 필요한 물건이어서가 아니라, 갖고 싶은 것을 팔고 있어서 편의점에 가는 것. 그곳에 편의점의 새로운 혁명이 있다’.
당시 패밀리마트 부회장을 역임했던 사와다 타카시는 편의점의 과거를 회상하며 미래를 다짐했어요. 편의점에서 오니기리를 팔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다들 부정적이었지만 어느 순간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거든요. 갓 내린 커피도 마찬가지예요. 우려 섞인 시선과는 달리 이제는 사람들이 아침마다 편의점에 들러 사가는 필수템이 됐죠. 편의점에서 오니기리와 커피를 사는 일이 일상이 된 것처럼, 앞으로는 의류를 구매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싶었어요.
물론 이전에도 편의점에서 의류를 판매하긴 했어요. 하지만 대다수의 구매가 긴급 수요에서 비롯된 만큼, 별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구매하는 소비자가 많았죠. 물론 명확한 수요가 있다는 게 나쁜 건 아니에요. 하지만 패밀리마트는 임시방편이 아니라 오래 입을 용도로 사게 되는 의류를 만들어 또 한 번의 혁명을 일으키고 싶었어요.
게다가 편의점은 의류 사업을 펼치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어요. 전국 매장이 약 16,500곳인데다가 일일 고객 수가 총 1,500만 명에 달했으니까요. 유니클로의 일본 매장 수가 약 800곳(2023년 8월 기준) 정도이니, 패밀리마트가 의류 제품을 판매한다면 단번에 일본 최대급으로 올라서는 거였죠. 패밀리마트는 소비자가 가까운 편의점에서 질좋은 의류를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면 시간도 아낄 수 있고, 사회에도 공헌한다고 생각했죠.
이렇게 패션사에 남을 도전이 시작됐어요. 이미 연간 50억 명 이상의 이용자가 방문하는 플랫폼이 있으니, 패션 디자인을 할 차례였죠. 패밀리마트는 유리한 고지에서 시작했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디자인을 맡기지 않았어요. 패션 브랜드 ‘파세타즘(FACETASM)’의 디자이너 ‘오치아이 히로미치’를 파트너로 택했죠. 오치아이는 2015년에 아르마니에 영입되어 맨즈 컬렉션을 발표하고, 2016년에 LVMH 영 패션 디자이너 수상(Young Fashion Designer Prize)에서 일본인 최초 파이널리스트로 선정되는 등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디자이너였어요.
다만 오치아이는 지금까지 주로 글로벌 패션 피플들을 사로잡는 엣지 있는 디자인을 선보여 왔어요. 그런데 이제 남녀노소가 방문하는 편의점에서 판매할 의류를 디자인하게 된 거죠. 지금까지의 커리어와 정반대의 길을 걷는 듯한 모습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는데요. 오치아이는 왜 패밀리마트의 제안을 받아들였던 걸까요?
“패션업계가 힘든 상황 속에서 다음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연간 50억 명 이상의 이용자가 있는 패밀리마트를 통해 패션 디자이너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패밀리 마트는 전국에 약 16,500개 매장이 있는데, 그런 규모감으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것은 패션 브랜드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죠. 그렇기 때문에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치아이 히로미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패션스냅 인터뷰 중에서
오치아이는 브랜드 네이밍부터 패키지 디자인, 소재 개발, 브랜딩 등 프로젝트 전 분야를 총괄했어요. 이때 정해진 이름이 ‘컨비니웨어’죠. 여러 후보가 있었지만 직설적인 동시에 중립적인 이미지를 지닌 이름이 적격이라고 판단했죠. 그리고 컨비니웨어라는 이름에 걸맞은 편의점다운 옷을 디자인하기 시작했어요.
#2. 편의점 점원을 패션회사 직원으로 만드는 법
편의점다운 옷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오치아이는 디자인에 앞서 편의점 고객층부터 살폈어요. 남녀노소가 방문하는 곳이니만큼 대다수가 쉽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옷을 만들기로 했죠. 고객층만이 아니라 위치도 고려했어요. 도시든 지방이든, 도심이든 주택가든 어디서나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것이야말로 ‘편의점다운 감각’이라 생각했죠. 그래서 깔끔하지만 고품질의 소재로 즐겨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었어요.
대표적인 예시가 면 100% 소재로 만든 아우터용 티셔츠예요. 지금까지 급히 갈아입을 용도인 이너용 티셔츠만 판매해온 것과 달리, 딱 한 장만 입고 바깥에 외출할 수 있는 티셔츠를 디자인한 것인데요. 이는 패밀리마트로서도 큰 도전이었어요.
또한 오치아이는 ‘패션’이라는 수단을 통해 편의점에 새로운 변화를 주고 싶었어요. 보통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생활용품은 일 년 내내 큰 변화가 없어요. 그래서 계절감을 느끼기가 어렵죠. 하지만 패션에는 사계절을 느끼게 하는 힘이 있으니, 시류에 맞는 의류를 판매해서 편의점에 설렘과 즐거움, 계절감을 더하기로 했어요. 이렇게 하면 편의점이 보다 매력적인 공간이 될 거라고 생각했죠.
예를 들어 볼게요. 패밀리마트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진정될 무렵 강렬한 네온 컬러의 제품들을 출시했어요. 형광 노란색 티셔츠, 핑크색과 초록색이 섞인 카디건처럼요. 또 봄을 앞둔 1월과 2월에는 핑크색과 초록색 양말들을 라인업에 더했고요. 모두 무난함과는 거리가 먼 제품들이에요. 계절이나 출시 타이밍을 따지고 계산해서 만든 디자인이니까요. 결과는 어땠냐고요? 봄을 앞두고 출시한 초록색 양말이 매출 1위를 차지하는 등 고객들도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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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상품을 통해서 표현하는 장난기나 계절감 등을 고객들이 즐겨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객의 반응을 기본으로 해서 디자인하고 있기 때문에, 컬러풀한 상품은 모두가 함께 만들고 있다는 감각이 있어요. 확실히 베이직한 컬러도 필요하고 인기도 있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가치관을 고객으로부터 배웠습니다.”
-오치아이 히로미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닛케이 크로스 트렌드 인터뷰 중에서
사람들의 구매 장벽을 낮추는 데 특별히 기여하고 있는 제품은 양말인 ‘라인 삭스’예요. 2024년 5월 기준 누계 2,000만 켤레나 판매될 정도로 인기죠. 패밀리마트의 브랜드 컬러로 디자인한 제품이 대표적인데요. 패밀리마트의 이름이나 로고를 어디에도 넣지 않았지만, 누구나 삼 색 선만 보면 패밀리마트 제품이라는 것을 연상할 수 있어요. 편의점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는 양말류는 사람들이 컨비니웨어를 한 번쯤 사보고 싶게 만드는 재치 있는 상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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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 아니라 컨비니웨어는 컬래버레이션을 통한 양말 디자인 개발에도 적극적이에요. 패밀리마트 인기 치킨 ‘파미치키’를 오마주한 라인 삭스는 위트를 보여주죠. 또 오치아이는 염원하던 컬래버레이션을 위해 먼저 넷플릭스에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어요.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 미지의 세계 4’ 포스터 디자인에서 모티브를 딴 라인 삭스는 전례 없는 판매량을 기록했죠. 일본 최대급 야외 음악 페스티벌인 ‘후지 록 페스티벌(FUJI ROCK FESTIVAL)’의 공식 서포터가 되어 호평을 받은 적도 있고요. 이를 보면 양말 한 켤레가 표현할 수 있는 세계관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알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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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컨비니웨어는 반바지, 카디건, 에코 배낭 등 라인업을 늘려가며 편의점 의류의 새 장을 써나가고 있어요. 그런데 오치아이가 담당하는 디자인은 의류 제품에 한정되지 않아요. 브랜드의 매력을 편의점이라는 공간에서 어떻게 구현해나가는지도 함께 고민해서 디자인하죠. 이는 매출 숫자만큼이나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오치아이는 컨비니웨어를 시작하기 전에 약 100여 곳의 패밀리마트 매장에 직접 찾아가 점원들을 만났어요. 점원에게 컨비니웨어의 컨셉과 방향성을 직접 설명하고, 각 매장의 요구 사항을 세심히 들었죠. 단순히 소통을 위한 과정이 아니에요. 오치아이는 연간 55억 명이 이용하는 편의점의 진열대는 ‘미디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물론 이 미디어에서 선보이는 콘텐츠는 의류 제품이고요. 그러니 콘텐츠를 직접 다루고 진열하는 점원은 중요한 존재일 수밖에 없어요.
“점포분들이 컨비니웨어 제품을 선택하거나 선반에 진열하는 일이 즐겁다고 생각되는, 그런 브랜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본부는 물론 상품을 개발하는 저희가 신뢰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치아이 히로미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닛케이 크로스 트렌드 인터뷰 중에서
오치아이는 일단 패밀리마트 점원들과 ‘동료’가 된 후에 컨비니웨어를 시작하고 싶었어요. 이런 노력 덕분일까요? 오치아이가 찾아간 사람들은 편의점 점원이지만 동시에 패션회사 직원과 같은 시선과 마인드로 컨비니웨어를 바라봐 주었어요. 제품 디자인만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디자인까지 해낸 거죠.
#3. 사족을 달지 않는 정직함으로 승부하다
컨비니웨어가 고객의 마음을 파고들 수 있었던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의류 제품을 담고 있는 패키지 디자인이에요. 오치아이는 패키지 디자인을 아트 디렉터인 야스다 타카히로에게 맡겼어요. 그는 세계를 무대로 활약 중인 크리에이터 그룹 ‘세카이(CEKAI)’의 일원이었죠. 야스다는 컨비니웨어의 패키지 디자인이야말로 매력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패키지를 보고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고객의 장바구니 안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컨비니웨어만의 패키지 디자인은 어떤 특징은 가지고 있을까요? 야스다는 이를 ‘솔직하고, 거짓 없는 디자인’이라고 정의해요. 마치 군더더기 없는 컨비니웨어 옷처럼 부가적인 장식은 빼고, 패키지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한 패키지를 선택했죠. 단 상품명, 카테고리, 사이즈, 소재 등의 필수 정보만큼은 빠뜨리지 않고 담았어요. 덕분에 누구나 살짝 스쳐보기만 하더라도 제품 특성과 세부 정보를 빠르게 파악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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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눈에 띄는 것이 심플하고 간결한 폰트인데요. 처음부터 이런 폰트를 고집했던 건 아니에요. 디자인을 하는 과정에서 개성 넘치는 다양한 폰트들을 써보기도 했죠. 하지만 이렇게 하면 상품군이 늘어났을 때 진열이 복잡해 보이는 문제가 있었어요. 이때 야스다는 대학 시절에 배웠던 ‘디자인의 기본’을 다시 떠올렸죠. ‘하고 싶은 말을 큰 문자로 표현한다’는 것이었어요.
또 패키지 겉면에 있는 정보는 일본어뿐만이 아니라 영어로도 함께 병기하고 있는데요. 여기에는 이유가 있어요. 일본에는 전 세계의 관광객이 찾아오기 때문에 이들이 실수 없이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또한 컨비니웨어를 진열하는 패밀리마트 점원들도 배려한 건데요. 일본에서 일하고 있는 패밀리마트 점원들은 약 20만 명인데요. 국적과 연령대가 다양해요. 그래서 필요한 정보만 담되, 영어 단어를 병행 표기하면 이들의 일이 한결 수월해질 거라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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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해서 속이 들여다보이는 패키지는 직관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정보 전달이 핵심이에요. 물론 환경적인 측면을 고려하면 옷을 패키지 없이 판매하는 것이 더 나아요. 하지만 일반 의류 매장과는 달리 24시간 내내 여러 사람들이 오가는 편의점에서는 의류 제품이 금방 더러워지기 십상이죠. 그래서 제품은 최소한으로 보호하되, 누구나 내용물을 파악할 수 있는 투명 패키지를 선택했어요.
단, 패키지를 꼭 써야 한다면 시대에 맞는 것으로 만들기로 했어요. 소재와 디자인에 있어서 신중을 기했죠. 바이오매스 소재를 활용하고, 제품 개봉 부분에는 열고 닫을 수 있는 플라스틱 지퍼를 부착했어요. 그리고 ‘Easy Open’이라는 글자를 인쇄했죠. 고객들이 이 글을 읽고 무의식적으로 패키지를 찢어서 열지 않도록 디자인한 거예요. 패키지를 다른 용도로 재사용하게끔 유도하고 싶었죠.
“예를 들면, 주먹밥의 포장 필름 같은 경우, 뜯고 나면 바로 버리잖아요.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찢어버리는 감각을 주저하게 만드는 것, ‘이것이 뭔가에 쓰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순간 포장지를 버리지 않는 판단을 하게 만든다든가, 다른 데 쓸 수 있을 것 같으니 보관해 두자고 생각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지속가능성 아닐까요? 패키지는 영수증 정리, 문구나 충전 케이블 보관, 여행지에서 더러운 속옷을 담아두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어요.”
-야스다 타카히로 아트 디렉터, 쿼테이션(Quatation) 인터뷰 중에서
이 패키지 디자인은 컨비니웨어 출시 이후 큰 변화 없이 계속 지속해오고 있어요. 주먹밥 신제품이 출시되면 투명 필름에 새로운 디자인을 인쇄해서 홍보하는 것과 다른 양상이죠. 컨비니웨어는 왜 같은 전략을 사용하지 않느냐고요? 야스다는 컨비니웨어의 패키지가 아니라 내용물이 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내용물을 돋보이게 하는 패키지 디자인을 고수하는 거예요.
이러한 컨비니웨어는 2021년 굿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했어요. 연령, 직종,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바로 이해할 수 있게 상품 정보를 정리한 디자인이 브랜드의 본질을 강화시켰다는 평을 받았죠. 컨비니웨어는 패키지 디자인에 사족을 달지 않았어요. 불필요한 표현은 전부 배제했지만, 이는 오히려 브랜드의 긍정적인 매력을 부각시켰어요. 결국 패키지는 ‘의류는 패밀리마트에서 산다’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정착하는데 크게 기여했죠.
패션 라인업에 문구류를 출시한 이유
컨비니웨어의 성장세는 파죽지세예요. 소재와 카테고리를 다양화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중이죠. 아예 편의점 바깥을 나와 컨비니웨어 의류 전문점을 오픈하는 것도 검토 중이고요. 그러던 중 패밀리마트는 2024년 4월에 예상 밖의 발표를 했어요. 컨비니웨어의 새로운 라인으로 ‘문구’를 출시하기로 한 거예요. 물론 편의점에서 문구류를 판매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문구류를 ‘컨비니웨어’의 일종으로 출시하기로 한 것은 다소 어색하죠.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의류와 문구류의 공통점에서 비롯됐어요. 컨비니웨어가 출시되기 전, 편의점에서 의류는 어쩔 수 없이 급해서 사게 되는 존재였어요. 그런데 이는 문구류도 별반 다르지 않아요. 깜빡 잊고 물건을 챙기지 못했을 때, 혹은 잃어버렸을 때 편의점에서 사는 경우가 많았죠. 만약 이와 같은 문구류의 포지션을 ‘선호품’으로 바꿀 수 있다면 의류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가 창출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문구류는 일본의 유서깊은 문구 브랜드 ‘고쿠요(KOKUYO)’와 함께 공동 개발했는데요. 디자인을 담당한 것은 컨비니웨어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오치아이였어요. 컨비니웨어와 마찬가지로 좀 더 폭넓은 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친숙한 디자인으로 문구류를 디자인했죠. 이때, 패밀리마트의 정체성을 재치 있게 표현하는 것도 잊지 않았어요. 현재는 패밀리마트 라인 삭스를 꼭 닮은 ‘라인 삭스 지우개’, 패밀리마트의 상징색을 활용한 ‘삼색 캠퍼스 노트’ 등이 의류 제품 옆에서 함께 판매되는 중이에요.
©FamilyMart
“패밀리마트에서 옷을 사는 문화가 정착되면 24시간 언제든지 구입할 수 있고, 그야말로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서 가족과의 대화나 다른 일에 시간을 사용할 수 있어 생활이 더욱 풍요로워지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로서, 패밀리마트와 함께 지금까지의 상식을 뒤집는 일을 해 나가고 싶습니다.”
-오치아이 히로미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패션스냅 인터뷰 중에서
디자인의 대상을 가리지 않고 도전을 이어나가는 오치아이의 설명이에요. 누군가는 오치아이가 제품 디자인만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을 넘어 시간의 디자인까지 함께 해나가는 중이죠. 패밀리마트가 선보이는 컨비니웨어가 진화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일상은 얼마나 바뀔지, 벌써부터 기대되지 않나요?
Reference
知らぬ間に「エコ」や「サスティナブル」を実践、 画期的な新ブランド「Convenience Wear」の デザイナー・落合宏理さんインタビュー。1回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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