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식료품으로 맥주를? 푸드 업사이클링의 정석

크러스트 그룹

2022.12.07

푸드 업사이클링도 진화하고 있어요. 시작은 인식을 바꾸는 것이었어요. 맛과 영양분에는 문제가 없지만 못생겼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어글리 푸드(Ugly food)를 먹을 수 있게 한 거죠. 가격 할인이라는 당근을 통해서요. 2014년에 프랑스의 대형마트인 인터마르쉐에서 최초로 어글리 푸드 캠페인을 진행한 것을 시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번져 나갔죠. 


이제 여기서 한 단계 더 레벨업된 푸드 업사이클링의 물결이 시작됐어요. 음식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재활용하는 거예요. 기술 개발이라는 연구를 통해서요. 버려지는 식료품으로 맥주를 만드는 ‘크러스트 그룹’도 그중 하나죠. 2019년에 출범한 크러스트 그룹은 식당, 호텔 등에서 판매되지 않고 남은 밥, 빵, 과일 등을 모아 맥주를 만들어요. 


그런데 이건 출발점일 뿐이에요. 크러스트 그룹은 ‘크러스트 유니버스’를 구축해 나가면서 ‘푸드 업사이클링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는 정석을 보여주고 있어요. 푸드 업사이클링에서 유니버스를 구축하는 건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뜻일까요?


크러스트 그룹 미리보기

 맛없는 지속가능성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파트너와의 연결고리를 찾아 영향력을 키운다

 맥주 대신 ‘업사이클링’을 중심에 두면 시장이 달라진다

 ‘유니버스’를 구축해 지속가능한 삶의 대중화를 꿈꾸다




미국 유기농 식료품 매장 ‘홀 푸드 마켓(Whole Foods Market)’은 매년 말, 다음 해의 식료품 트렌드를 발표해요. 홀 푸드 마켓의 로컬 및 글로벌 바이어, 요리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50여 명의 ‘홀 푸드 마켓 트렌드 협의회(Whole Foods Market Trend Council)’가 신중하게 선정하는 결과이니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죠.


올해 10월에도 어김없이 ‘2023년 푸드 트렌드 Top 10’을 발표했어요. 이번 2023년 10가지 트렌드에는 지속 가능성, 동물복지, 식물성 식품 등 환경을 의식하는 식료품들이 포함돼 있어요. 그 중에서도 홀 푸드 마켓은 버려지는 식료품을 새로운 음식으로 재탄생시키는 ‘푸드 업사이클링(Food upcylcing)’이 미래 트렌드로 자리잡을 거라고 예측했어요.


푸드 업사이클링은 방법적으로 크게 2가지로 나뉘어요. 먼저 외관상 상품가치가 없어 판매되지 못하는 식료품을 상품화하는 방법이 있어요. 맛과 영양분에는 문제가 없지만 못생겼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어글리 푸드(Ugly food)를 모아 더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거죠.


2014년에 프랑스의 대형마트 체인인 인터마르쉐(Intermarche)가 최초로 어글리 푸드 캠페인을 런칭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에서는 임퍼펙트 푸드(Imperfect Foods), 미스핏츠 마켓(Misfits Market), 헝그리 하베스트(Hungry Harvest) 등 어글리 푸드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회사들이 생겨났어요. 우리나라에도 못난이 채소를 정기적으로 배송해주는 어글리어스(Uglyus)가 있고요.


푸드 업사이클링의 두 번째 방법은 음식 가공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재활용하는 것이에요. 보다 고차원적이고 개성을 드러낼 수 있죠. 이 방식은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들도 눈독을 들이며 연구하는 분야이기도 해요.


버드와이저, 스텔라 아르투아, 호가든 등으로 유명한 벨기에 맥주 회사 ‘앤하이저부시인베브(AB인베브)’도 이 흐름에 동참했어요. ‘에버그레인(Evergrain)’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맥주를 제조하고 남은 부산물인 ‘맥주박’을 업사이클링해요. 원료는 연간 140만 톤의 보리를 소비하는 AB인베브로부터 공급받죠. 단백질 파우더인 ‘에버프로(Everpro)’를 시작으로 맥주박 제품 다각화를 연구 중이에요.



ⓒEvergrain



맛없는 지속가능성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에버그레인처럼 맥주 부산물로 새로운 식료품을 만드는가 하면, 버려지는 식료품으로 맥주를 만드는 기업도 있어요. 싱가포르의 ‘크러스트 그룹(Crust Group)’이 대표적이에요. 2019년에 출범한 크러스트 그룹은 식당, 호텔 등에서 판매되지 않은 밥, 빵, 과일 등을 모아 맥주를 만들어요.


크러스트 그룹의 대표 제품 라인인 ‘크러스트’는 파트너사로부터 받은 잉여 재료로 만든 수제 맥주 라인이에요. 맥주의 주원료인 보리와 맥아를 대체하기 위해 빵을 사용하고, 빵에서 설탕을 추출하여 알콜을 생산해요. 특히 빵 껍질은 맥주에 캐라멜 같은 단맛을 더하며 풍미를 완성하죠.


어떤 빵으로 맥주를 만드느냐에 따라서 맛도 달라져요. ‘Toasted Lager’, ‘Breaking Bread Ale’, ‘I Knead An Easy IPA’는 크러스트 그룹을 대표하는 3가지 시그니처 제품인데요. Toasted Lager는 라거답게 가볍고 토스티한 풍미를, Breaking Bread Ale은 에일답게 과일향과 단 맛을, I Knead An Easy IPA는 IPA답게 홉의 쓴 맛과 트로피컬 과일 풍미를 느낄 수 있어요.



ⓒCrust Group Facebook


크러스트 그룹은 ‘업사이클링 맥주’라는 신선한 개념으로 맥주를 접근하면서도, 맛 만큼은 너무 이질적이지 않도록 균형점을 찾아요. 컨셉이 새로운 건 제품 선택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지만, 맛까지 이질적이라면 구매 욕구를 저하시킬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일반 맥주와 비슷한 맛을 목표로 시그니처 맥주를 개발했어요.


이처럼 플래그십 맥주 3종으로는 익숙한 맥주를 만들되, 한정판 맥주로는 실험적인 맛을 시도하기도 해요. 싱가포르 스페셜 에디션으로 남은 두리안 크림을 사용해 독특한 풍미를 내는 ‘Stink’ O Cream Ale’, 싱가포르의 전통 간식 카야 토스트의 맛을 낸 ‘Kaya Toast Stout’ 등이 대표적이에요.



ⓒCrust Group Facebook



파트너와의 연결고리를 찾아 영향력을 키운다

크러스트 그룹의 목표는 명확해요. 식품 기업들이 음식물 쓰레기와 잉여 생산물을 손실로 인식하지 않고 부가가치가 있는 제품으로 업사이클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다시 말해, 크러스트 그룹과 함께 하는 파트너사들은 기존에는 폐기 처분하는 데에 비용이 들었던 식재료들을 활용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어요. 파트너사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방법은 다양한데요, 하나씩 살펴볼게요.


먼저 가장 기본적이고 단순한 방법은 파트너사의 남은 음식물을 매입해 업사이클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크러스트 그룹은 레드마트(RedMart)와 같은 온라인 식료품점이나 베이커리들로부터 팔고 남은 빵을 조달해요. 매주 파트너사들에게 얼만큼의 빵이 필요한지 미리 알려 주고, 그만큼만 남은 빵을 받아오죠.


단순히 버려질 식료품을 공급받는 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방법도 있어요. ‘크러스트 SUL(Crust Sustainable Unique Label)’ 제품을 함께 개발하는 거예요. 잉여 생산물이나 부산물을 활용해 공동 브랜드 음료를 출시하는 방법이에요. 식료품 폐기물의 가치를 높이고, 추가 수익을 얻을 수 있죠. 크러스트 SUL은 브랜딩에도 도움이 돼요. 브랜드 정체성을 살린 독특한 맥주를 개발할 수 있고, 앞으로도 지지 않을 화두인 지속가능성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베이커리 중 하나인 ‘티옹바루 베이커리(Tiong Bahru Bakery)’의 ‘비어게트(Beerguette)’가 대표적이에요.



ⓒTiong Bahru Facebook


빵집뿐만 아니라 식료품을 취급하는 회사라면 누구든 크러스트 그룹의 파트너가 될 수 있어요. 싱가포르 커피 브랜드인 ‘베터 커피(Bettr Coffee)’는 크러스트 그룹과 함께 커피를 내리고 남은 가루에서 추출한 콜드 브루 추출액으로 만든 ‘It’d Bettr be beer!’를 만들었어요. 채식 식료품 전문점인 ‘굿푸드피플(GoodFoodPeople)’은 호박과 퀴노아가 들어간 ‘Harvest Ale’을 개발하기도 했고요.



ⓒCrust Group Facebook


또한 버리는 원재료가 없더라도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자 하는 크러스트 그룹의 뜻에 동참할 수 있어요. 크러스트 그룹의 맥주를 도매로 구매하거나, ‘화이트 라벨(White Label)’ 방식을 선택하면 돼요. 화이트 라벨 방식은 기존 크러스트 그룹의 맥주에 파트너사의 브랜드 라벨을 부착해 판매하는 방법이에요. 배달 업체인 ‘딜리버루(Deliveroo)’는 ‘아버지의 날(Father’s Day)’를 맞이해 크러스트 그룹의 Toasted Lager에 딜리버루의 단독 라벨을 부착한 제품을 출시했어요. 아빠들을 위한 시원한 맥주로 라거만한 것이 없으니까요.



ⓒCrust Group Facebook



맥주가 아니라 업사이클링을 중심에 두면 시장이 달라진다

크러스트 그룹은 버리는 빵과 맥주의 원료인 보리 사이의 공통점을 찾아 업사이클링 맥주를 개발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크러스트 그룹이 구현하는 푸드 업사이클링이 꼭 맥주에 국한될 필요가 있을까요?


이번에 크러스트 그룹이 주목한 건 과일과 채소예요. 폐기되는 과일이나 채소, 과일 껍질, 찻잎 등을 활용해 스파클링 과일 워터와 같은 무알콜 음료인 ‘크롭(Crop)’을 런칭했어요. 2022년 초 ‘파인애플 타르트’, ‘멀버리 라임에이드’, ‘로즈 레몬에이드’ 등 3가지 맛을 출시하는 것으로 알콜 음료에서 무알콜 음료로 저변을 확대한 거예요. 장 건강에 도움이 되는 프로바이오틱스까지 첨가해 기능성 음료로도 손색이 없죠.



ⓒCrust Group Facebook


크러스트 그룹의 업사이클링 맥주가 반응을 얻자, 비즈니스 모델도 확장이 가능해졌어요. 크러스트 그룹은 원래 싱가포르 내에 있는 레스토랑이나 마트 등에 맥주를 유통하는 B2B 비즈니스로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2020년부터 코로나19 팬데믹이 유행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고객들이 줄어들었죠. 이에 따라 크러스트 그룹도 도매업에 한계를 느꼈고요.


크러스트 그룹은 지난 1년 간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D2C로 전환하기 시작했어요. 이에 자체 배달 서비스를 만들고 최종 소비자가 직접 크러스트 그룹 홈페이지에서 업사이클링 맥주를 구매할 수 있도록 온라인 스토어를 구축했죠. 그리고 크러스트 그룹의 창업자인 트래빈 싱(Travin Singh)은 푸드네비게이터 아시아(FoodNavigator Asia)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어요.


“코로나19 기간 동안 우리는 푸드 테크 회사로 피봇팅했어요. 하나의 브랜드로서 단지 빵과 맥주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During Covid-19, we pivoted into a food tech company because we felt as a brand, we could do so much more than just bread and beer.)”


주조 회사가 아니라 푸드 테크 기업으로 스스로를 정의한 크러스트 그룹은 온라인 쇼핑몰을 런칭한 그 해 12월, 눈길을 해외로 돌려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싱가포르 사업에 타격을 입기도 했거니와, 푸드 테크 기업이라면 시장이 싱가포르에 국한될 필요도 없기 때문이었어요.


크러스트 그룹의 첫 번째 해외 시장은 일본이었어요. 일본 또한 푸드 업사이클링 트렌드나 지속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고, 다채로운 일본의 농수산물 시장에 잠재력이 있다고 판단해서죠. 일본 오사카에 별도 법인으로 자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일본 비즈니스를 개척하기 시작한 거예요.


크러스트 그룹은 싱가포르에서 판매하는 동일한 제품을 유통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맛을 가미한 새로운 음료들을 개발했어요. 일본인의 입맛에 맞는 업사이클링 라거, 필스너 등을 만드는 것을 시작으로 귤로 유명한 에히메 현에서 버려지는 감귤 껍질을 업사이클링해 크롭 음료로 출시하기도 했어요. 현지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선보이면서 현지에 맞는 푸드 업사이클링을 실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Crust Group Japan



ⓒCrust Group Japan



‘유니버스’를 구축해 지속가능한 삶의 대중화를 꿈꾸다

크러스트 그룹은 푸드 업사이클링이 트렌드이기 때문에 동참한 것이 아니에요. 환경과 미래를 생각하는 그들의 비전이 트렌드와 맞닿아 있을 뿐이죠. 고객과 파트너사의 공감을 사는 비전 덕분에 비즈니스의 성장과 확장이 가능했던 것이고요. 크러스트 그룹은 ‘업사이클링 맥주를 사세요’라는 메시지 대신 이렇게 말해요.


“2030년까지 전 세계 식량 손실을 1% 줄이겠다는 우리의 미션에 동참하세요! #saveacrust (Join us on our mission to reduce global food loss by 1% by 2030! #saveacrust)”


폐기되는 식료품은 지구온난화와 직결되는 문제예요. 버려지는 식품 3kg당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이 23kg에 달하거든요. 크러스트 그룹의 푸드 업사이클링은 지구온난화를 늦추는 효과적인 방식이고요. 크러스트 그룹은 2019년 설립 이래로 2022년 3분기까지 2,536kg의 식료품 손실을 줄였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약 3,880kg 줄였어요.


한편 크러스트 그룹은 맥주를 생산하는 과정에서도 지속가능성을 고려해요. 업사이클링 맥주를 생산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드는 데에 궁극적인 뜻이 있기 때문이죠. 2021년에는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녹지 공간이자 대형 정원인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와 함께 맥주의 주재료인 홉을 현지 식물로 대체하는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어요.


홉은 주로 해외에서 수입하기 마련인데, 수입산 홉을 대신할 원료를 현지에서 조달할 수 있다면 홉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 있거든요. 예를 들면 홉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홉 손실을 방지할 수 있고, 운송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발자국도 줄일 수 있어요.


더 나아가 크러스트 그룹은 음료뿐만 아니라 식품 및 포장 분야에서도 지속가능한 솔루션을 개발해요. 일명 ‘크러스트 유니버스(Crust Universe)’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죠. 그 일환으로 현재는 맥주 제조에 사용된 곡물을 팬케이크 믹스로 바꾸는 것을 연구하고 있어요.


“지속가능성이 트렌드가 된 것은 좋지만 아직 표준이 아니라는 점은 아쉽습니다. 맛있는 제품을 적절한 가격에 제공함으로써 우리는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고, 대중이 더 쉽게 지속가능한 삶을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트래빈 싱 대표가 ‘싱가포르 글로벌 네트워크(Singapore Global Network)’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에요. 크러스트 그룹의 세상에서는 누구나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누릴 수 있을 거예요. 의식을 하지 않아도, 돈이 많지 않아도 말이죠.




Reference

 크러스트 그룹 공식 웹사이트

 Maggie Jaqua, Whole Foods Market’s Top 10 Food Trends for 2023, Whole Foods Magazine

 디트로이트무역관 김지윤, 미국 어글리푸드 캠페인으로 식품 자원의 낭비를 예방하다, 코트라

 Guan Yu Lim, Upcycled appeal: CRUST Group develops non-alcoholic beverage from fruit peels, outlines Japan expansion plan, FoodNavigator-Asia

 Fighting Food Waste One Crust at a Time, Singapore Global Netw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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