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의 마음으로 오리지널을 베껴, 스스로가 오리지널이 된 청바지

에비수

2023.02.02

어떤 모방은 환영을 받습니다. 오리지널은 사라졌지만 팬층이 여전할 때 등장한 모방이요. 대표적인 예를 일본의 청바지 업계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청바지는 원래 미국에서 만들어진 바지예요. 최초의 청바지 브랜드인 ‘리바이스(Levi’s)’도 미국 브랜드죠.


특히 1960년대 리바이스의 셀비지(Selvedge) 데님은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였어요. 거칠고 빳빳한 원단 탓에 입고 다닐 수록 닳아가며 유니크한 스타일을 완성했거든요.


그런데 1970년대부터 청바지 대량 생산 시대가 열리며 셀비지 데님은 자취를 감췄어요. 더 빠르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신형 방직기가 등장하며 셀비지 데님 원단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았거든요.


이에 리바이스 셀비지 데님을 모방해 등장한 것이 바로 일본 청바지 브랜드 ‘에비수(Evisu)’예요. 에비수는 과거의 셀비지 데님을 완벽하게 구현하면서도 카피캣으로만 남지 않았어요. 오히려 또 하나의 오리지널이 되었죠. 오리지널을 모방해 또 하나의 오리지널이 된 에비수, 그 비법이 궁금하다고요?


에비수 미리보기

 존경하는 마음으로 리바이스를 베낀 청바지

 진짜보다 더 뛰어난 재현, 레플리카 진

 반항의 아이콘, 장인정신을 담다

 일본에서만 구할 수 있는 청바지, 미국을 휩쓸다

 카피캣을 거느린 레플리카 브랜드





ⓒVetements


프랑스의 럭셔리 스트릿 브랜드 베트멍(Vetements)은 재기발랄한 패러디로 유명합니다. 글로벌 물류회사 DHL의 로고가 고스란히 찍힌 330달러짜리 티셔츠, 대중적인 인지가 있는 브랜드 ‘챔피온’의 로고를 재해석한 후드티 등 만드는 족족 불티 나게 팔려 나가죠. 심지어 DHL 티셔츠는 협의 없이 제작된 것이었는데, 인기가 치솟자 공식 콜라보를 하기도 했을 정도예요. 베트멍의 이런 프로젝트들은 ‘패션계의 마르셸 뒤샹’이라는 별칭까지 얻어가며 사랑받아 왔어요.



베트멍 레인코트 ⓒVetements



베트멍 레인코트 ⓒVetements


그런데 웬걸, 뉴욕에 ‘베트멍을 패러디하는’ 브랜드가 나타났습니다. 22살 청년 데빌 트랜의 패기어린 반항에서 시작된 브랜드, ‘베트밈(Vetememes)’인데요. 이름부터 심상치 않아요. 베트멍에 인터넷과 SNS에서 유행하는 생각이나 콘텐츠를 뜻하는 ‘밈(memes)’을 합친 장난기 어린 작명이에요. 베트밈의 대표 제품은 베트멍의 초히트작을 모방한 레인코트예요. 재질과 디자인이 베트멍 제품과 거의 흡사한데, 다른 것이 딱 두 개 있어요. 바로 상표, 그리고 가격입니다. 베트밈 레인코트의 가격은 59달러로, 베트멍의 10분의 1이거든요.


베트밈의 대표 데빌 트랜은 패션 리셀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럭셔리 제품의 말도 안 되게 높은 가격에 불만을 가져왔어요. 그래서 좋은 옷을 싼 값에 구매할 수 없는 현실에 항변하고자 카피 제품을 선보였던 거죠. 처음에 사람들은 베트밈을 짝퉁이라며 손가락질했어요. 하지만, 정작 베트멍의 반응은 ‘쿨함’ 그 자체였습니다. 베트멍의 대표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가 짝퉁이든 패러디든 상관하지 않으며, 소송 제기도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거든요. 패러디로 이름난 브랜드를 패러디한 재치 덕에 베트밈도 명성을 얻었어요. 이후 데빌 트랜은 발렌시아가를 패러디한 불렌시아가 또한 런칭했죠.



존경하는 마음으로 리바이스를 베낀 청바지



에비수의 Lot.2001 ⓒEvisu



리바이스의 501 ⓒLevi’s


베트밈이 대범한 반항정신에서 베트멍을 패러디하며 시작되었다면, 일본에는 정성을 다해 리바이스 청바지에 경의를 표하며 패러디를 한 브랜드가 있어요. 빈티지 옷가게에서 사 입은 듯한 펑퍼짐한 핏, 엉덩이 부분에 그려 넣은 경쾌한 흰색 페인트. 바로 1991년에 오사카에서 시작돼 젊은 세대를 휩쓸었던 빈티지 데님 브랜드 ‘에비수(Evisu)’예요. 


에비수의 대표 모델인 Lot.2001은 원단의 직조 방식부터 재단, 스티치 하나하나까지 리바이스의 501과 닮아 있어요. 에비수는 전설적인 데님 브랜드인 리바이스의 청바지를 그대로 복제해 생산한 대표적인 ‘레플리카 진’ 브랜드거든요.



진짜보다 더 뛰어 재현, 레플리카 진

레플리카(Replica)는 ‘모작’이나 ‘복제품’을 뜻하는 영어 단어예요. 그러나 1980년대부터 미국제 청바지를 흉내 냈던 일본의 레플리카 진은 ‘단순한 모방’보다는 ‘완벽한 재현’이라고 표현하고 싶네요. 더 이상 미국에서도 생산하지 못하는 미국산 청바지를 일본에서 만들어 냈거든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라고나 할까요?


미국제 청바지가 유행한 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본에 주둔하던 미군 때문이었어요. 리바이스를 비롯해 미군 PX(영내 매점)에서 납품되던 미제 청바지가 암시장으로 흘러나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거든요. 1960년대부터는 아이비리그 스타일 또는 데님 아메리칸 캐주얼을 말하는 ‘아메카지’ 스타일이 자유분방함의 상징으로서 유행하기 시작했죠. 아메카지가 얼마나 인기였는지, 일본에서 만든 청바지보다 비싼 미제 중고 청바지가 불티나게 팔려나갈 정도였어요.



1978년 아메카지 룩을 다룬 패션 잡지 뽀빠이 ⓒFashion Fan


하지만 1970년대부터 아메카지 애호가들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집니다. 미제 청바지가 점점 바뀌어 갔거든요. 구형 직조방식은 실을 교차하며 직접 짜서 만드니 천이 거칠고 빳빳했어요. 그런데 이런 점이 오히려 입고 다닐수록 닳아가며 자신만의 유니크한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게 해주었죠. 그리고 마감에 사용되었던 빨간색 스티치도 매니아들에게는 대단한 매력 포인트였어요. 이 방식으로 만든 청바지를 셀비지(Selvedge) 데님이라고도 불러요.


하지만 이 셀비지 데님은 곧 멸종하고 맙니다. 빠르게 대량생산이 가능한 신형 기계에 구형 방직기가 밀려 원단이 달라졌고, 비용절감을 위해 다른 요소들도 생략되거나 바뀌었거든요. 매력과 개성이 사라진 새로운 청바지의 등장에 중고 데님 가격만 천정부지로 올랐어요.



야마네 히데히코 ⓒEvisu


에비수의 창업자이자 디자이너인 야마네 히데히코 또한 절망에 빠진 청바지 광 중 하나였어요. 그는 리바이스 청바지 재고를 판매하는 오사카 청바지 매니아들의 성지, ‘라피네’라는 가게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는데요. 바뀌어 버린 리바이스 데님을 누구보다 가까이 목격했던 그는 데님의 디테일을 잃어버린 리바이스를 용납할 수 없었고, 고민과 연구 끝에 직접 본인이 영광스러웠던 과거의 빈티지 데님을 구현하고자 했어요. 그렇게 1991년, 에비수가 탄생했습니다.



ⓒGrailed


당시 아메카지와 빈티지 패션의 메카였던 오사카에는 야마네와 같이 오리지널 데님을 복각하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들이 차린 다섯 개의 레플리카 진 브랜드 스튜디오 다치산, 드님, 에비수, 풀카운트, 그리고 웨어하우스는 일명 오사카 파이브(Osaka Five)로 불리며 지금까지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데요. 이들은 모두 1920년대에 출시된 구형 방직기를 사들여 원단부터 디테일까지 과거의 미제 청바지와 흡사한, 퀄리티 높은 데님을 생산했어요. 


대량생산으로 전환했던 미국에서는 더 이상 만들지 못하는 종류의 청바지였고, 심지어 미제 방직기를 이들이 모두 사가서 원단조차 생산할 수 없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어요. 결국 원본이 사라진 지금, 미국의 프리미엄 데님 브랜드도 일본에서 생산한 데님을 사용할 정도로 원본을 모방한 레플리카 진이 그 진정성을 더 높이 평가받고 있어요. 디테일을 향한 오사카 패션 피플들의 집념이 그 빛을 발한 거죠.


그 중에서도 에비수를 특별하게 만들었던 건 바로 빛나는 유머감각이었어요. 빈티지 리바이스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담은 오마주로 시작한 만큼, ‘에비수’라는 브랜드 네이밍부터가 위트 있어요. 에비수라는 이름은 낚시 광인 야마네가 일본 민간신앙의 칠복신 중 하나이자 어부들의 신인 에비스의 이름에서 따온 거예요. 하지만 에비수가 처음 런칭했을 때의 브랜드 네임은 에비수(Evisu)가 아닌 에비스(Evis)였어요. 이제 감이 오시나요? 리바이스(Levi’s)에서 L만 뺀 이름이었죠. 곧 법률적 문제를 피하고자 u를 붙여 에비수로 바꿨지만 창업주의 장난기가 고스란히 느껴져요.



ⓒLevi’s



ⓒHeddels / ⓒLong John


에비수의 시그니처인 백 포켓의 갈매기 모양에도 재미있는 사연이 있는데요. 지금은 에비수 청바지에서 빠져서는 안 될 부분이지만, 사실 개구진 야마네가 반쯤 장난으로 리바이스 청바지 백 포켓의 스티치를 따라 그린 것이었어요. 생산한 청바지의 반은 페인팅을 하고, 반은 그대로 두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 지금까지 에비수의 상징으로 굳어졌죠.


그 밖에도 백 포켓에 달린 리바이스만의 상표 ‘레드 탭’을 붉은 페인트로 그려 넣는다든지, ‘랭글러’ 데님의 백 포켓 포인트인 가죽 패치를 갈색 페인트로 그려 넣기도 했어요. 모방으로 시작했지만, 섬세한 재현에 유머러스한 변주를 더해 원본보다 더 매력 있는 브랜드가 된 거죠.



반항의 아이콘, 장인정신을 담다

젊은이들의 자유분방함을 나타내며 한때 반항의 아이콘이기도 했던 청바지. 개성적인 에비수의 데님에서도 젊은 활기가 느껴지는데요. 하지만 에비수 청바지에는 반전 매력이 있어요. 물건 하나를 만들더라도 온 힘을 쏟는 일본의 장인정신을 담아냈거든요.


에비수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한동안 하루에 14벌만 생산하는 방식을 고집했어요. 야마네 히데히코가 꿈꾸던 극강의 디테일을 지닌 청바지를 만들기 위한 공정에는 품이 많이 들어갔으니, 퀄리티를 위한 선택이었죠. 또 백포켓의 갈매기 로고는 꼭 야마네 본인이 직접 그려 넣었어요. 처음에는 예상치 못했지만, 이런 희소성이 엄청난 인기의 비결 중 하나가 되었죠.


사업 규모가 커진 지금은 하루에 14벌만 생산할 수도 없고, 성공적인 해외 진출로 소비자층이 넓어지면서 많이 대중화됐어요. 하지만 장인정신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에요. 에비수는 현재 인터내셔널 라인과 제팬 라인으로 나뉘어져있는데, 인터내셔널 라인도 퀄리티 있는 제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재팬 라인은 아직도 처음 설립될 당시의 철저한 장인정신을 고수하고 있답니다.



ⓒEvisu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브랜드임에 비해 에비수의 일본 직영 매장은 전국에 단 7개 뿐인데요. 에비수 재팬의 특별한 제품 생산 방식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어요. 에비수 청바지 중 가장 중요한 부분 중의 하나가 갈매기 페인팅인데, 이제는 창립자 야마네 히데히코가 직접 그리지는 못하지만 매장에서 구입하면 숙련된 점주들이 직접 페인팅을 해주고 있거든요. 게다가 모든 청바지에 그려지는 천편일률적인 페인팅이 아니라, 고객의 요구에 따라 세상에 단 한 벌 밖에 없는 특별한 청바지로 만들어 주죠.



ⓒEvisu


먼저 크림, 블랙, 레드, 옐로우, 블루, 핑크 중 원하는 페인트 색상을 고를 수 있어요. 또 갈매기 모양 페인팅이 가장 유명하기는 하지만 그것만 있는 건 아니에요. 갈매기 모양, 흘러내리는 갈매기 모양, 에비스 신을 나타내는 한자 모양 페인팅 등 다섯 가지 형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죠. 더 인기 있는 건 기간 한정 페인팅이에요. 2023년에는 토끼 해를 맞아 에비수의 시그니처 갈매기 문양을 토끼 귀처럼 길게 늘인 페인팅, ‘토끼 묘’ 자를 응용한 토끼 모양 페인팅 등을 받을 수 있어요.



ⓒEvisu


일본에서 에비수 오프라인 매장을 꼭 방문해야 하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에요. 일곱 개의 매장은 도쿄, 오사카, 삿포로, 후쿠오카 등 전국에 퍼져 있는데 매장 별로 지역적 특성이나 점주의 기호를 반영해 특별한 한정 페인팅을 받을 수 있거든요. 어떤 매장에 방문해도 그 매장에서만 그려주는 특별한 페인트 컬러와 모양이 존재하죠. 


매장 한정 컬러 중 눈에 띄는 건 후쿠오카점의 ‘멘타이코(명란젓) 핑크’예요. 후쿠오카는 일본 최고의 명란젓 특산지로 유명하거든요. 유니크한 페인팅 모양들도 많아요. 도쿄의 우에노점에서는 유명한 우에노 동물원의 팬더 페인팅을 받을 수 있어요. 에비수라는 브랜드가 시작된 오사카 신사이바시점에서는 도깨비처럼 생긴 에비스 신의 얼굴을 그려 주죠.


어디에서 구매하는지, 누구에게 구매하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상상하는 데님의 모습에 따라 살 수 있는 청바지가 달라져요. 입는 사람의 습관에 따라 닳아가는 셀비지 데님의 특성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유일무이한 청바지가 되죠. 브랜드가 커지고 나서도 이런 형태의 영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건 에비수가 점주들을 단순한 직원이나 사업 파트너로 여기기보다, 브랜드의 가치를 공유하는 데님 애호가이자 사명감을 지니고 에비수의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장인으로 바라보기 때문이에요.



(좌)오사카 미도스지점 ⓒEvisu / (우)다자이후 후쿠오카점 ⓒEvisu


실제로 매장의 모습도 획일화되어 있기보다는 철저히 점주의 개성과 취향을 따르고 있답니다. 점주를 장인으로서 존경하니 점주마다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다르고, 이 점이 희소성을 만들어 내죠. 이상적인 데님에 대한 브랜드의 철학을 고수하고, 고객의 소망을 이뤄주고자 하는 섬세함도 그 희소성에 한 몫 하고요. 일본에서만 파는 가격이 비싼 재팬 라인을 일본을 넘어 전 세계의 셀렙들과 패션 피플들이 찾아 입는 이유예요.



일본에서만 구할 수 있는 청바지, 미국을 휩쓸다

1994년, 에비수는 아시아 패션 무역 박람회 더 헙(The Hub)을 개최한 영국의 기업가 피터 캐플로우와 파트너십을 맺고 첫 해외 진출에 도전했어요. 일본에서 건너온 이름 모를 브랜드였지만, 에비수는 90년대 중반 런던 클러빙/힙합 씬의 청바지 붐에 힘입어 금세 핫한 아이템이 되었죠.


특히 데님이 인기였던 런던 문화계에서 셀럽들과 함께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친 것이 효과적이었어요. 제 2의 슈프림이라고도 불리는 스트릿 패션 브랜드 ‘팔라스 스케이트보드’와 콜라보를 펼치며 런던의 전설적인 디제이 MC 스키바디(MC Skibadee)를 모델로 썼고,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데이비드 베컴이 에비수가 특별 제작한 청바지를 입고 있는 것이 목격돼 아이코닉한 브랜드의 반열에 올라섰죠.



에비수 청바지를 입은 비욘세 ⓒDestiny’s Child


이후 에비수는 영국뿐만이 아니라 미국 스트릿 패션 씬에서도 컬트를 일으키게 돼요. 개성 강한 에비수는 특히 많은 래퍼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인데, 노래 가사에도 여러 번 등장한 것만 봐도 그 인기를 체감할 수 있죠.


미국에서 가장 돈 많은 래퍼라는 제이-지(JAY-Z)는 본인의 노래 <Show Me How>에서 ***‘이건 디젤 청바지가 아니라 에비수다 이 XX아’***라며 에비수를 언급했는데요. 에비수를 유명하지만 흔한 이탈리아산 데님 브랜드 디젤와 비교하며 뽐내는 내용이니 에비수가 얼마나 힙하고 쿨한 이미지였는지를 알 수 있죠.


힙합의 전설 릴 웨인도 <I Call It Whateva>라는 곡에서 ‘얘 좀 봐! 에비수 입었잖아. 미국에선 팔지도 않는 건데’라며 에비수 청바지에 대한 엄청난 애정을 드러냈고, 비욘세마저 데스티니 차일드의 뮤비에서 노란 페인트의 에비수를 입고 등장했어요.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였습니다.


에비수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스트릿 브랜드의 사각지대를 공략한 니치 마케팅이었어요. 슈프림, 베이프, 스투시… 90년대 후반 다양한 스트릿 브랜드들이 티셔츠, 후드티, 스니커즈 등의 분야를 장악하는 동안 데님만은 마땅한 경쟁자가 없었죠. 리바이스나 리, 디젤 같은 브랜드는 오랜 스테디셀러였지만 다른 스트릿 브랜드처럼 트렌디한 이미지는 아니었고 이후 엄청나게 유행했던 트루릴리젼도 2002년에야 런칭했으니까요. 유니크한 센스를 갖춘 에비수는 비어 있던 하이 퀄리티 데님 부문을 커버하며 영미권에서도 인정받는 스트릿 브랜드로 자리잡을 수 있었어요.


두 번째는 희소성을 통해 획득한 럭셔리 브랜드로서의 지위예요. 에비수의 해외 진출 당시 미국 패션 산업은 일본의 정밀하고 우수한 제조기술에 대한 선망을 지니고 있었어요. 게다가 에비수의 레플리카 진은 원조였던 미국에서도 더 이상 만들지 않는 빈티지 셀비지 데님을 재현한 것이었죠. 에비수만의 특별한 페인팅은 말할 것도 없고요. 당시는 지금처럼 스트릿 패션이 하이패션과 명품의 영역으로 침투하기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에비수는 위와 같은 희소성을 통해 힙합 씬이 사랑하는 럭셔리의 반열에 들게 되었어요.


이런 상업적 성공 이후 에비수는 해외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중국에 생산라인을 신설하게 되었고, 대중화를 위해 가격을 200달러 선으로 낮춰 온라인 중심으로 판매를 하고 있어요. 대중화가 되면서 중국 시장에서의 인기가 대단해져 현재는 아시아 시장을 중점적으로 공략하고 있고요. 그렇지만 여전히 에비수의 대표 모델인 프리미엄 셀비지 데님을 구할 수 있는 길은 일본 판매 웹사이트나, 일본의 직영 매장뿐이에요.



(좌)에비수 청바지를 입은 래퍼 트래비스 스캇 ⓒGQ / (우)트래비스 스캇과 에비수의 콜라보 제품 ⓒCactus Jack


럭셔리 셀비지 데님을 미국에서 판매하지 않는 에비수이지만, 패션 애호가들은 에비수의 재팬 라인을 꾸준히 찾습니다. 래퍼 트래비스 스캇도 에비수의 오랜 팬으로 유명한데요. 일상에서도 공식 석상에서도 에비수 제품을 애용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어요. 결국 2020년 트래비스 스캇과의 콜라보 제품을 내 놓아 다시 한번 미국에서 이목을 집중시켰죠. 지금은 젊은 감성의 스트릿웨어와 스니커즈가 하이패션에 침투하고, 나아가 하이패션 그 자체가 된 ‘뉴 럭셔리’의 시대예요. 게다가 트루릴리젼 등 데님의 재부흥기인 만큼 미국에서는 누구보다도 유니크한 데님 브랜드인 에비수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죠.



카피캣을 거느린 레플리카 브랜드

데자뷰일까요? ‘DHL을 패러디한 베트멍을 패러디한’ 베트밈이 있었던 것처럼, 리바이스를 오마주한 브랜드 에비수에도 카피캣이 생겨났습니다. 그것도 바로 한국에서요. 2010년 무렵 한국의 월비통상이라는 기업이 에비수라는 브랜드 네임과 시그니처 갈매기 문양을 모방해 한국의 새로운 ‘에비수’를 런칭한 일이 있었거든요.



ⓒ에비수 코리아


사실 이름과 로고만 같을 뿐이지, 가격대부터 제품 라인, 퀄리티까지 완전히 다른 별개의 브랜드예요. 이 사건은 법적 다툼으로 이어졌지만, ‘에비수’라는 이름도 일본의 전통신에서 따온 것이고 갈매기 문양도 고유하다고 볼 수 없어서 국내에서 먼저 상표를 등록한 한국 에비수가 계속 영업을 하게 되었어요.


빈티지 리바이스에 대한 집념으로 시작해 이름도 리바이스에 대한 존경을 담아 지었던 에비수에게도 카피캣이 생겼다는 것이 참 재미있는 일이죠? 레플리카 브랜드가 이제는 어느덧 또 다른 카피캣을 거느리게 되었다는 것은 에비수가 그만큼 어엿한 프리미엄 브랜드로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줘요. 진짜를 따라잡기 위한 가짜로 시작했지만, 결국 에비수만의 진정성과 독창성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 아닐까요?




References

 국민일보 <명품 ‘베트멍’의 짝퉁 ‘베트밈’, 발렌시아가 패러디한 ‘불렌시아가’ 런칭>

 에비수 재팬 공식 홈페이지

 Heddels <Evisu, Behind The Outsider of the Osaka 5>

 한겨레 <복원된 핏, 다시 입는 개성>

 무신사 <레플리카, 그 본연의 의미에 대해>

 Grailed, <Japanese Selvedge: The History of the Osaka 5>

 NSS Megazine <Evisu and the story of how Japanese denim conquered the world>

 파이낸셜 뉴스 <‘갈매기 문양’ 韓·日 의류업체 저작권 소송..“한국 판정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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