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까지 치료해, 약국의 통념을 뒤흔든다

퍼스트 에이드 키스 카페 앤 바

2022.09.15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갑니다. 처방전을 받고 약을 사러 약국에 가죠. 혹은 처방전이 없어도 되는 약이라면 바로 약국으로 가기도 하고요. 약국은 그런 곳입니다. 아플 때 찾는. 그래서 약국은 꼭 필요하고 가까이에 있어야 하지만 멀리할 수록 더 좋습니다. 건강하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방콕에는 아프지 않아도 가고 싶은 약국이 있습니다. 아프지 않은데 약국에 갈 이유가 있냐고요? 4층짜리 약국 건물에서 몸뿐만 아니라 마음을 그리고 기분을 치료해주니까요. 몸이 아픈 경우보다 기분이 아픈 경우가 더 많으니 어쩌면 더 필요한 곳일지도 모르죠. 


방콕에서 ‘미리보는 약국의 미래’를 함께 경험해 보실까요? 



퍼스트 에이드 키스 미리보기

 아프지 않아도 약국에 갑니다

 ‘드링크 테라피’로 기분을 치료합니다

 약이 없는 약국을 디자인합니다






이 카페에서는 사탕을 무료로 가져갈 수 있어요. 그런데 식사나 음료를 마친 고객에게 디저트 개념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에요. 15가지의 사탕, 캐러멜, 초콜릿 등을 원하는 만큼 마음껏 가져갈 수 있도록 진열해 놓았어요. 그것도 ‘기분’이나 ‘분위기’에 따라서요.


‘오늘 기분이 어때요?(How do you feel today?)’라고 쓰인 문구 아래에는 15칸의 약장(Medicine cabinet)이 있어요. 각 칸은 약 대신 각기 다른 종류의 사탕으로 채워져 있어요. 그리고 각 칸에는 ‘행복(Bliss)’, ‘사랑(Love)’, ‘외로움(Lonely)’, ‘공허함(Emptiness)’ 등 하루의 기분이나 분위기를 대변하는 이름들이 붙어 있죠.
이곳을 방문한 고객들은 마음 상태에 따라 원하는 캔디를 골라 먹으면 돼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방문한 고객의 마음까지 살피는 이 카페는 방콕 통로(Thong Lo) 지역에 위치한 ‘퍼스트 에이드 키스 카페 앤 바(First Aid Kiss Cafe & Bar, 이하 퍼스트 에이드 키스)’예요. 퍼스트 에이드 키스는 ‘응급 처치 뽀뽀’라는 이름의 의미처럼 고객에게 필요한 응급처치를 다정하게 해줘요. 마음까지 지친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건 처방전에 적혀 있는 약뿐만이 아니니까요.



ⓒ시티호퍼스


퍼스트 에이드 키스는 건물의 3층과 4층에 걸쳐 위치해 있어요. 그리고 퍼스트 에이드 키스의 공짜 캔디를 먹으려면 카페의 3층을 거쳐 4층으로 올라가야 해요. 그런데 카페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두 가지가 있어요. 건물 외부에서 바로 3층까지 갈 수도 있고, 1층과 2층에 있는 다른 매장을 통해 3층에 도착할 수도 있죠.



건물 밖에서 3층으로 바로 향하는 계단이에요. ⓒ시티호퍼스


그리 큰 공간도 아닌데, 이렇게 카페의 입구를 두 개나 마련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1, 2층 매장이 퍼스트 에이드 키스와는 다른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는 공간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1, 2층이 3, 4층과 연관성이 없는 건 아니에요. 내부 계단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걸 보면요. 다만 영업 시간에 차이가 있어 1, 2층 매장이 문을 닫아도 고객이 3, 4층으로 바로 갈 수 있도록 단독 통로를 만들어 둔 거죠. 


그렇다면 1층과 2층은 퍼스트 에이드 키스와 어떤 관계인 걸까요? 1층과 2층의 정체를 알고 나면 다친 마음을 다정하게 치유하는 ’퍼스트 에이드 키스’의 컨셉에 더 공감이 갈 지 몰라요.



아프지 않아도 약국에 갑니다

퍼스트 에이드 키스가 위치한 건물의 1층에는 뜻밖에도 약국이 있어요. 아픈 사람들이 약을 사러 오는 곳이죠. 이 약국은 약사 부부가 1990년부터 운영해 왔는데, 이 부부의 세 쌍둥이인 나루폰 분칫(Naruporn Boonchit), 나파손 분칫(Naphasorn Boonchit), 날랏폰 분칫(Nalatporn Boonchit)이 부모님의 오래된 약국을 리브랜딩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어요.


세 쌍둥이는 1층 약국을 보존하되, 아픈 날에만 방문하는 약국이 아니라 언제든 찾고 싶은 약국,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치유하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1층은 기존처럼 약국으로 운영하며 몸이 아픈 사람들을 위한 곳으로, 원래 약국 창고와 임직원 휴게 공간으로 쓰던 2, 3, 4층은 마음을 치유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구성했죠.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약국을 리브랜딩하면서 1층의 약국 기능은 그대로 두었지만, 내부 인테리어와 이름을 바꿨어요. 1층 내부 공간은 여느 약국처럼 딱딱하거나 빽빽한 분위기가 아니라 우드톤의 세련되면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했어요. 또한 2층을 화장품, 아로마 제품 등을 판매하는 ‘통로 헬스 앤 뷰티 스토어’로 구성했는데, 이곳과 같은 이름을 쓰면서 약국의 역할을 확장한 거예요.  



1층의 약국 내부예요. 2,3,4층 매장과 톤앤매너를 맞춰 편안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가 나요. ⓒ시티호퍼스


2층에서는 에센셜 오일이나 향초 등을 팔아요. 단순히 인테리어 제품이 아니라 정신적, 신체적 ‘테라피’ 효과가 있는 제품들이에요. 긴장 및 스트레스 완화, 피로 회복, 집중력과 기억력 향상 등에 효과가 있죠. 실제로 2층을 구경하다보면 매장 안에 퍼지는 은은한 향기를 맡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는 듯해요. 게다가 매장에서 사람의 피부톤과 유사한 핑크빛 조명과 벽지를 사용해 시각적으로도 편안하고요.



‘드링크 테라피’로 기분을 치료합니다

3층에 가면 비로소 퍼스트 에이드 키스의 모습이 드러나요. 1층과 2층을 거치니 응급처치라는 뜻이 담긴 퍼스트 에이드 키스 카페의 이름이 더 와 닿아요. 이곳은 약국과 헬스 앤 뷰티 스토어의 연장선에 있는 카페예요. 1, 2층과 연결되어 있는 공간 구성 측면에서도 그렇고, 카페에서 파는 음료 메뉴 측면에서도 그래요.


퍼스트 에이드 키스는 카페는 ‘드링크 테라피(Drink therapy)’를 지향해요. 유기농 태국 허브를 활용해 음료를 개발했죠. 그런데 그저 몸에 좋은, 혹은 정신 건강에 이로운 음료를 넘어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골라 마실 수 있도록 메뉴 이름까지 고심해서 지었어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릴렉솔(Relaxol)’: 달콤한 빌후릇(Bael Fruit), 용안(Longan) 등이 들어간 아이스 커피


‘인스피린(Inspirin)’: 자스민, 바닐라와 비슷한 향이 나는 판단(Pandan) 우유로 만든 아이스 라떼


‘행오버(Hangover)’: 새콤한 베리류와 민트, 복숭아 퓨레가 들어간 과일 음료


‘러브 포션(Love potion)’: 로맨틱한 푸른빛의 버터플라이 피 티(Butterfly pea tea)에 레몬 그라스, 유자 퓨레 등이 들어가 가볍고 산뜻한 아이스 티.


퍼스트 에이드 키스의 4가지 시그니처 음료예요. 위트 있는 이름만 보아도 어떤 음료인지 추측이 가능하죠. 릴렉솔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인스피린은 영감을 주거나 두통을 없애주고, 행오버는 술 마신 다음 날 마시고 싶고, 러브 포션은 생기를 되찾아 줄 것만 같아요. 실제로 각 음료에 들어간 재료들이 얼마간 이름값을 하는 효능이 있기도 하고요.



퍼스트 에이드 키스의 4가지 시그니처 음료 중 하나인 인스피린이에요. 판단 잎을 꽂아 서빙해 주어 은은한 판단 향을 즐길 수 있어요. ⓒ시티호퍼스


상시 판매하는 시그니처 메뉴뿐만 아니라 프로모션 메뉴로도 기분을 새롭게 해줘요. 2022년 7월에는 ‘혈액형에 맞는 음료를 마셔요(Drink Right for Blood Type)’라는 컨셉으로 혈액형별 음료를 출시하기도 했어요. 각 혈액형에 맞는 음료가 있다는 건 과학적 근거가 없지만, 신선한 재미를 주기에는 충분해요.



ⓒFirst Aid Kiss


예를 들어 A형 음료를 주문하면 코코넛, 야자수 쥬스, 버터플라이 티 우유 등을 넣은 음료와 함께 콜드 브루 커피가 들어있는 주사기를 함께 서빙해 줘요. 같은 혈액형끼리 수혈을 하듯, 주사기에 담긴 커피를 컵에 있는 음료에 주입해 메뉴를 완성한 후 마시면 돼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약이 없는 약국을 디자인합니다

매장 컨셉과 구성은 리브랜딩에 가장 중요한 요소지만, 리브랜딩을 완성하는 건 디자인과 디테일이에요. 헤리티지를 잘 반영하면서도 세련된 무드로 무장한 매장 디자인은 이 곳을 자꾸 찾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예요. 이 공간 디자인을 방콕의 디자인 스튜디오, ‘AIM(Atelier of Imaginarists)’이 맡았죠.


AIM은 매장 곳곳에 약국의 요소를 녹여 냈어요. 약국, 헬스 앤 뷰티 스토어, 카페가 한 건물에 위치해 있다 보니, 정체성이 흐려지거나 연관성이 무뎌질 수 있기 때문이에요. 먼저 약국을 상징하는 녹색으로 외벽을 칠하고, 건물을 비스듬한 각도에서 보면 2~4층에 걸친 창문이 커다란 알약처럼 보이기도 해요.



ⓒJinnawat Borihankijanan, Dsign Something


그뿐 아니라 1층부터 4층 매장 곳곳에 캡슐, 더하기 기호 등 약국을 상징하는 다양한 오브제를 디자인 요소로 활용했어요. 매대, 조명, 서랍장, 벽, 손잡이 등 예상치 못한 디테일까지도 캡슐과 더하기 기호를 모티브로 디자인했죠. 약국의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되, 직접적인 묘사 대신 은유적으로 표현하자 창의적이면서도 편안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어요.



ⓒ시티호퍼스



ⓒ시티호퍼스


동시에 AIM은 사람들이 아프지 않아도 일상적으로 이 약국을 찾아주길 바라는 클라이언트의 뜻을 디자인에 반영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편하게 찾아올 수 있고, 또 찾아오고 싶도록 인테리어를 디자인했죠. 전체적으로 심플하고 깔끔한 선형 디자인과 최소한의 장식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채도가 낮은 포인트 컬러를 활용하는 ‘미드 센추리 모던’ 무드를 지향하고 있어요. 특히 퍼스트 에이드 키스는 우드와 메탈 소재, 그리고 주황색과 청록색이 어우러져 따뜻하면서도 모던한 느낌이 공존해요.


이처럼 퍼스트 에이드 키스의 공간은 인스타그래머블하고 트렌디해요.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에요. 그 안에 브랜드로서 뿌리를 가지고 있죠. 약국의 연장선에서 아프지 않아도 방문할 수 있는 약국이라는 컨셉을 가지고 있고, 기분이나 마음까지 치료해주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덕분에 퍼스트 에이드 키스에 있노라면 더 건강해진 느낌이 들죠.


처방전을 받을 만큼은 아니지만 몸에도, 기분에도 응급처치가 필요할 때 퍼스트 에이드 키스를 방문해 보세요. 특별한 약을 먹지 않아도 나아지는 것만 같은 마법을 경험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처음에 설명드렸듯이 4층에서 사탕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건 덤이고요.






Reference

 퍼스트 에이드 키스 페이스북

 Saovapak Ayasanond, ครว่าร้านขายยาต้องป่วยถึงจะได้มา?ว่าด้วย everyday space ที่เป็นทั้งร้านขายยา คาเฟ่ และบาร์สุดเก๋, Dsign Some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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