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은 밥솥의 성능이 아니라 요리의 즐거움을 삽니다

푸더블 by 파나소닉

2022.07.18

드릴을 구매한 사람은 무엇을 산 것일까요?


바보같은 질문처럼 보이지만, 이 질문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 답이 달라져요. 드릴을 구매하는 사람은 드릴이라는 제품 그 자체를 사는 것이 아니라 드릴로 뚫을 수 있는 구멍에 돈을 지불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제품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제품이 가져다 주는 효용을 구매한다는 뜻이죠.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 명예교수이자 <마케팅 마이오피아> 논문으로 유명한 ‘시어도어 래빗(Theodore H. Levitt)’ 교수의 저서 <마케팅 상상력>에 나온 이야기예요. 이 책에서 그는 광고인 ‘레오 맥기니바(Leo McGinneva)’의 말을 인용하며 제품을 고객의 효용 관점에서 바라보라고 해요.


그의 설명처럼 고객이 효용을 사는 것이라면 제품을 파는 방법도 달라져야 합니다. 일본의 가전회사 파나소닉이 대표적인 예죠. 파나소닉은 ‘푸더블(Foodable)’이라는 구독 서비스와 ‘잇피크(Eatpick)’라는 커뮤니티를 선보이면서 고객 효용도, 고객 경험도, 고객 집단도 그리고 고객 관리도 다 바꾸었어요. 어떻게 했는지 한 번 살펴 볼까요?  



푸더블 by 파나소닉 미리보기

 쓸데없는 고퀄리티에서 쓸모있는 고객 경험으로

 구독 서비스를 만나 존재감을 찾은 제품의 성능

 구독자를 불러모으는 가격 체계

 구독 서비스를 너머 식문화 커뮤니티로







‘고가의 주방 가전이 잘 안 팔린다.’


가전회사 ‘파나소닉’의 고민이 시작되었어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나소닉은 고객이 조리 가전을 사용하는 신(Scene)을 그려봤어요. 




먹는 시간은 15분 남짓인데, 준비하는 과정은 꽤 길어요. 이 고객 여정에서 주방 가전은 요리 단계에서 데우거나, 굽거나, 끓이는 일부의 역할 밖에 하고 있지 않은 거죠. 상황이 이러하니 고가 가전 대신 실용적인 제품을 선택하는 거예요. 


또한 고가 가전의 경우 보통은 다양한 고사양의 성능을 갖추고 있어서 가격이 높아요. 그런데 아무리 고사양이어도 기능을 잘 쓸 줄 모르면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사용하지도 않는 기능이 잔뜩 달린 고가의 가전 보다 그냥 심플한 가전을 찾는 소비자들도 많아졌어요. 


여기에다가 소비자들의 가치관도 변했어요. ‘소유’하기보다 ‘경험’하기를 원해요. 특히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자란 2030의 젊은 세대에서 이러한 특징이 확인히 나타나요. 이들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나 의미를 구매하고,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소비를 하죠.  


고가의 가전이 잘 안 팔리는 이유가 있었어요. 그래서 파나소닉은 고가 가전이라는 틀을 깨고 나와 고객 여정 전반을 아우르는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해요. 


“고객들이 부담없이 고가의 가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쓸데없는 고퀄리티에서 쓸모있는 고객 경험으로

파나소닉은 구독 서비스에 주목했어요. 구독 서비스는 월별로 사용한만큼만 돈을 내는 방식이니 고가 가전에 대한 심리적 허들을 단숨에 낮춰주는 효과가 있어요. 이러한 구독 서비스 비즈니스 모델 자체야 다른 제품군에서도 많이 활용하고 있어 특별할 건 없죠. 하지만 파나소닉은 여기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해요. 


“소비자들이 가전 제품을 제대로 즐길 수 있도록 가전뿐만 아니라 식품도 함께 보내주자!”


물론 구독 서비스로 주방 가전 사용에 대한 가격 부담은 줄일 수 있어요. 그렇다고 해도 실제로 요리를 즐기도록 하는 촉매제가 되지는 못해요. 앞에서 그려본 고객 여정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파나소닉은 2021년 6월에 자사의 주방 가전과 식재료를 함께 보내주는, ‘푸더블 (foodable)’을 런칭했어요. 먼저 구체적으로 어떤 서비스들이 있는지 살펴 볼게요.





ⓒEATPICK


1) 100만원이 넘는 가격의 전기 밥솥을 빌려주면서, 동시에 쌀 소믈리에가 엄선한 브랜드 쌀을 정기적으로 보내줘요. 이 밥솥에는 무려 63개 쌀 브랜드별로 밥을 가장 맛있게 지을 수 있는 조리법이 내장되어 있어요.


2) 스무디를 만들 수 있는 믹서를 빌려주면서 정기적으로 스무디의 재료가 되는 유기농 과일을 보내줘요.


3) 홈베이커리 가전을 빌려주면서 39종류의 빵을 만들수 있는 믹스 세트를 보내줘요. 


4) 토스터기를 빌려주면서 국산밀을 사용한 냉동 빵을 함께 보내줘요.


5) 커피 메이커를 빌려주고 매달 엄선한 커피 원두를 보내줘요. 


6) 오븐 레인지를 빌려주면서 밀키트와 냉동식품 세트를 보내줘요. 


7) 집에서 과일 칵테일을 만들 수 있는 착즙기를 빌려주면서 엄선한 과일 세트를 보내줘요. 


8) 글램핑 체험이 가능한 스모크 로스터를 빌려주면서 고급 소세지와 어패류 세트를 보내줘요.


서비스 출시 당시에는 밥솥, 스무디 키트, 홈 베이커리 3종만 출시하였는데, 구독자가 몰리면서 인기가 많아지자 2021년 12월에 추가로 5개 코스를 선보였어요. 이후에 출시한 서비스들은 장기화된 코로나19 팬데믹을 고려해 홈바, 홈캠핑 등을 하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구성했죠.



구독 서비스를 만나 존재감을 찾은 제품의 성능

8개의 서비스 중 가장 인기가 많았던 서비스는 밥솥 구독 서비스예요. 애초에 파나소닉의 밥솥은 일본에서 유명한 63개의 브랜드 쌀에 맞는 최적의 조리법을 미리 프로그래밍 해 놓았어요. 하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은 드물었죠. 2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하나는 용량이에요. 슈퍼마켓 등에서 쌀을 kg 단위로 판매하다보니 다양한 쌀을 구매하기가 어려워요. 다양한 종류의 쌀을 경험한다고 집에 쌀을 수십 kg 쌓아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또 다른 하나는 어떤 쌀을 사야할지 모른다는 거예요. 모처럼 좋은 밥솥을 들였으니 제대로 밥을 즐겨보고 싶어도, 63가지 쌀 중 어떤 쌀을 골라야 하는지 머뭇거리게 되죠.



ⓒEATPICK


파나소닉은 이 두 가지 페인 포인트(Pain point)를 해결했어요. 2홉(1홉은 180리터로 2홉이면 대략 2공기의 밥이 나와요.) 단위로 포장된 쌀을 매달 큐레이션 해서 보내주면서 말이죠. 보다 구체적으로는 2홉의 쌀 X 3팩이 1세트로, 한 달에 2세트를 보내줘요.


소믈리에가 엄선한 브랜드의 쌀을 받아 볼 수 있어 어떤 쌀을 골라야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돼요. 그리고 파나소닉의 밥솥이 쌀 브랜드별로 알아서 알맞게 밥을 지어주니 최신 고급 가전의 실력을 제대로 실감하게 되는 거죠. 페인 포인트를 확실하게 해결했지만 여전히 걱정이 됐어요. 파나소닉의 주방 공간 사업부 이토씨는 닛케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고백하죠.


“금액이 10만엔이 넘는 제품을 2년 계약의 구독 서비스로 만들다보니 어떤 고객이 올지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솔직히 계약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했을 정도예요. 지금까지 고급 밥솥의 주 구매층은 아이들이 독립하고 고가의 브랜드 쌀을 즐기고 싶은 고령 세대 혹은 부유층이었습니다.”


이러한 고민이 있었지만, 실제로 서비스를 런칭하자 파나소닉이 예상하지 못했던 젊은 고객들의 구매가 쇄도했어요. 구독을 신청한 대다수의 고객이 평범한 중산층의 30대의 젊은층이었죠. 파나소닉은 구독을 신청한 사람의 숫자를 정확히 밝히지는 않고 있지만, 계획 대비 3배 이상의 구독자가 몰렸다고 해요. 



구독자를 불러모으는 가격 체계

파나소닉의 구독 서비스에서 또 한 가지 눈여겨 볼 점이 있어요. 바로 월 3,980엔(약 3만 8천원)이라는 가격 체계예요. 푸더블을 출시하기 전에 파나소닉은 테스트 마케팅을 진행했는데, 이 때 잠재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낸 의견 중 하나는 요금 체계가 복잡하다는 것이었어요.


가격 체계가 복잡하면 구독 서비스의 본질과 상충되는 지점이 생겨요. 구독 서비스의 장점 중 하나가 나 대신 좋은 상품을 골라서 필요할 때 알아서 보내주는 ‘편리함’인데, 가격이 달라 선택이 복잡해지면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니까요. 그래서 가전의 가격과 보내주는 식품의 가격이 다 다르기에 플랜별로 가격을 다르게 설정하는 것이 합리적이지만, 파나소닉은 고객의 목소리를 듣고 과감히 요금을 통일해요.



ⓒEATPICK


이처럼 파나소닉은 푸더블을 통해 고객층 확대에 성공했어요. 하지만 효과는 그뿐 아니었어요. 제조사인 파나소닉은 주로 가전 양판점과 같은 소매점을 통해 제품을 판매해 왔는데, 구독 서비스를 통해 고객과 직접 만날 수 있게 되었어요. 고객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게 된 거죠. 고객 변화를 파악하는 게 큰 의미가 있냐고요? 파나소닉의 이토씨 설명을 들어 볼게요.


“가전의 판매 데이터야 확보할 수 있다해도 구입 후 주소 변경이나 결혼과 이사 등 고객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는 파악이 불가능했습니다. 구독 서비스를 통해 사용자에게 정기적으로 물건을 전달하므로 고객의 라이프스타일 변화 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죠. 또 고객의 반응을 보다 빨리 알 수 있으므로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 사이클의 스피드가 높아졌어요. 고객의 피드백을 통해 아니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바로 개선할 수 있게 되었죠.”


구독 서비스의 장점이 분명하지만, 태생적인 문제도 있어요. 바로 ‘해약’이라는 문제와 싸워야할 운명이라는 거죠. 파나소닉 또한 어떻게 하면 해약률을 낮출 수 있을지를 고민해요. 고객들이 지속적으로 파나소닉의 밥솥으로 밥을 지어 먹게 하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장치가 필요했어요.


보통의 가전 구독 서비스처럼 파나소닉 가전도 12~24개월까지 다양한 구독 서비스 이용기간이 끝나면 사용하던 가전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어요. 그러나 파나소닉은 가전을 소유하는 것보다 이용자들이 가전을 제대로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해약률을 낮추기 위해 파나소닉은 고객들이 모이는 장을 만들었어요.



구독 서비스를 너머 식문화 커뮤니티로

파나소닉의 푸더블 서비스를 구독해서 식재료를 받으려면 ‘잇피크(Eatpick)’에서 신청해야 해요. 잇피크는 파나소닉에서 운영하는 음식에 특화된 SNS 사이트로 2021년말 기준, 회원수 30만명을 자랑하는 커다란 커뮤니티예요. 꼭 파나소닉 구독 서비스의 유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신이 만든 요리와 레시피를 공유할 수 있어요. 물론 파나소닉의 가전 제품이나 구독 서비스를 활용한 레시피도 소개하고 있고요.



ⓒEATPICK


그렇다면 가전 회사인 파나소닉은 왜 음식 전용 SNS를 운영하는 걸까요? 음식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면 더 재미있다는 점, 요리를 잘 못하던 사람이 조리 가전을 사용하여 맛있는 요리를 만들었을 때 그 기쁨을 나누고 싶어한다는 점을 포착했기 때문이에요. 이처럼 파나소닉은 ‘관계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파나소닉의 이토씨는 이렇게 강조하죠.


“이제 고기능 및 다기능을 추구하며 경쟁하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앞으로 가전 업체들은 가전만 만들어 파는 것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정보 플랫폼, 서비스 등과 연계하여 사업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죠. 이 때 중요한 것은 사용자가 다른 사람과 정서적인 가치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파나소닉의 구독 서비스를 보면 단순히 조리 가전을 제공하는 것을 너머 소비자들이 매일의 일상에서 식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고민한 흔적이 엿보여요. 이렇게까지 고민할 필요가 있냐고요? 깊이 있게 설계된 서비스에는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걸 파나소닉이 증명하고 있어요.






Reference

「食というジョブ」をモノとコトで全面支援 パナソニックの戦略から見る調理家電の未来

Eat Pick 공식 홈페이지

Panasonic News

 パナソニックの家電×食サブスク 計画比3倍、絶好調のワ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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