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의 역할을 겸하는 프라이팬, 실용적 아름다움을 완성하다

후지타 금속

2024.02.23

이 프라이팬 공장의 작업복은 일반인들도 입고 다녀요. 올블랙 컬러의 옷에 흰색으로 회사 이름이 프린팅되어 있죠. 일반인들도 사 입을 정도로 실용적이고 세련된 이 작업복은 오사카 기반의 ‘후지타 금속’을 위해 도쿄의 패션 브랜드 F/CE.가 디자인한 워크웨어예요. 옷에 써 있는 이름만 보고도 후지타 금속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도록 현대적 감각으로 디자인한 것이 특징이죠.


패션 브랜드와 협업해 작업복을 개발하고, 이 작업복으로 브랜딩을 할 만큼의 감각을 가진 후지타 금속은 어떤 곳일까요? 후지타 금속은 철제 프라이팬을 주력으로 만들어요. 19명이 근무하는 작은 공장이죠.


그런데 만드는 프라이팬의 디자인이 평범하면서도 범상치 않아요. 언뜻 보기에는 전형적인 프라이팬을 닮았지만, 손잡이와 프라이팬 본체를 쉽게 분리할 수 있거든요. 프라이팬을 이렇게 디자인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가벼운 이유가 아니에요. 프라이팬의 본질에 대해 고민한 결과죠.


후지타 금속 미리보기

 니치한 타깃을 공략해 가격지상주의에서 벗어나다

 프라이팬에서 손잡이를 분리하자 생기는 일

 프라이팬 회사가 주방 밖으로 영역을 확장한 이유

 공장에 패션을 더해 젊은이들을 모으다

 약 20명의 작은 공장이 세계로 뻗어나가기까지




‘용(用)의 아름다움’이란 말을 들어본 적 있나요? 일본 민예 운동의 창시자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철학이에요. 알려지지 않은 장인들이 일상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든, 평범하고 실용적인 물건이야 말로 진짜 아름다운 물건이라는 철학이죠. 물건의 아름다움은 화려한 겉치장보다, 생활 속 ‘쓸모’에서 나온다는 말이에요.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 사상은 지금까지도 일본의 산업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일본의 미니멀하고 심플한 산업 디자인 철학이, 야나기 무네요시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의 철학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어요. 무인양품 매장에 들어가면 냄비부터 옷까지 단순하고 실용적인 물건들을 만나볼 수 있어요. 무인양품의 아트 디렉터이자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深澤直人)는 ‘슈퍼 노멀(Super normal)’이란 디자인 철학을 전세계에 퍼트리고 있어요.


‘슈퍼 노멀’은 실용성과 평범함 극대화한 디자인이에요. 예를 들어 볼게요. ‘냄비’ 하면 머릿속에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슈퍼 노멀은 머릿속에 떠오른 모습 그 이상으로 다른 디자인 요소를 넣지 않아요. ‘쓸모’ 이상의 장식 없이 최대로 절제된 디자인을 추구하죠. 즉, 일상 속 물건의 본질을 디자인하는 거예요. 환풍기를 닮은 CD 플레이어나 누가 봐도 상징적인 외양새를 갖고 있는 벽시계. 무인양품에서 ‘슈퍼 노멀’을 담은 후카사와 나오토의 대표 제품을 볼 수 있죠.



ⓒMUJI



ⓒMUJI


생활용품계의 슈퍼 노멀이 무인양품이라면, 일본 오사카에는 주방용품계의 슈퍼 노멀이 있어요. ‘후지타 금속(이하 후지타)’이 그 주인공인데요. 후지타의 프라이팬은 야나기 무네요시의 용의 아름다움과 후카사와 나오토의 슈퍼 노멀을 모두 담고 있는 듯해요. ‘프라이팬’ 하면 떠오르는 단순한 외양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프라이팬의 ‘본질’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디자인이에요.



ⓒ후지타 금속


후지타의 대표 제품인 ‘프라이팬 쥬(フライパンジュウ)’ 시리즈는 도쿄의 디자인 회사 ‘텐트(TENT)’와 협업해 개발한 제품이에요. 텐트는 ‘눈을 즐겁게 하고, 더 많이 사용할수록, 더 사랑하게 된다(Pleasing the eyes and the more you use, the more you love.)’는 컨셉으로 제품을 디자인하는 회사죠. 후지타 금속은 과연 텐트와 어떤 프라이팬을 개발했을까요?



니치한 타깃을 공략해 가격지상주의에서 벗어나다

후지타 금속은 1951년부터 철제 주방용품을 만들어 왔어요. 그런데 2000년대 초부터 철제 주방용품 산업이 경쟁은 치열해지고, 수요는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거시적인 경기 침체에다가 저렴한 가격으로 승부 보는 저가 브랜드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거든요.


현재 4대 대표를 맡고 있는 후지타 세이이치로(이하 후지타)는 2003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후지타 금속에 입사했어요. 그는 무너져가던 후지타 금속을 부활시킨 장본인이죠. 처음 입사했을 때, 후지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가업의 녹록지 않은 상황을 직시하는 거였어요.


“어디를 가도 ‘가격’만 보였어요. 팔리는 상품을 만들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저렴한 중국제 유사품이 나왔죠. 점점 소비자들의 희망 가격이 무너져갔어요. 할아버지에게 ‘네가 이 회사의 사장이 되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사장이 되면 사업을 확장해 높은 빌딩을 세우는 상상을 해왔죠. 하지만 업계 상황을 알고 다시 생각해야 했어요.”

- 후지타, 오사카진 


당시 후지타의 나이 22세. 어려운 상황을 몸소 알게 된 후지타는, 타사가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후지타 금속의 4대 대표 후지타 세이이치로. ⓒ후지타 금속


그렇게 2015년 탄생한 게 ‘프라이팬 이야기’ 시리즈예요. 쉽게 말해 소재부터 손잡이까지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프라이팬을 만들었죠.


“이 아이디어는 2015년 5월, 화장실에 갔다가 떠올랐습니다. 오랜 세월 프라이팬을 제조하면서 ‘손잡이를 나무로 만들어달라’, ‘철이 아닌 알루미늄으로 만들어달라’ 등과 같은 요구사항들을 많이 받았어요. 그 요구를 패턴화해 상품으로 만든 것이 ‘프라이팬 이야기’입니다.”

- 후지타, 토모야스 타임즈


‘프라이팬 이야기’의 포인트는 ‘고객 관점에서 생각한다’는 거예요. 후지타 금속은 ‘프라이팬 이야기’ 이전에도 고객들의 요구 사항을 최대한 들어줬거든요. 손님 한 명만을 위해 소재며 디자인을 바꾸는 게 쉽지 않았지만요. 후지타는 조금 힘들더라도 고객의 요구를 들어줬을 때, 다음 기회가 찾아온다고 말해요.


“처음에 거절하는 건 쉬워요. 하지만 거절하면, 그 고객과 다음에 다시 얘기할 기회가 사라지죠. 고객의 요구는 이 다음의 기회, 심지어 새로운 발견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 후지타, 토모야스 타임즈


‘프라이팬 이야기’ 홈페이지 들어가면, 어울리는 요리에 따라 소재를 추천하거나, 가족 수에 따라 크기를 추천해줘요. 손잡이와 색상은 물론, 손잡이에 들어가는 문구까지 커스터마이징할 수 있죠. 손님의 요구로 시작된 제품인 만큼, 손님의 요구가 늘어갈수록 맞춤화도 더 다양해져요. 처음 약 200개의 베리에이션으로 시작했던 것이, 지금은 1,000개가 넘어요.



ⓒ후지타 금속



ⓒ후지타 금속



ⓒ후지타 금속


후지타 금속의 또 다른 차별점은 ‘철제 프라이팬’이 주력 상품이란 거예요. 후지타에 따르면, 프라이팬 시장은 대부분 알루미늄제의 가볍고 저렴한 프라이팬이 차지하고 있어요. 그에 비해 철제 프라이팬의 점유율은 5% 미만이죠.


후지타 금속은 이 ‘5%’를 노렸어요. 니치한 타깃을 공략해, 철제 프라이팬의 가치를 높인 거죠. 이 5%의 타깃은 알루미늄 프라이팬을 사용하는 고객보다 더 맛에 민감하고, 높은 퀄리티의 요리를 원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 프라이팬이 이들에게는 고관여 제품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런 점에서 ‘맞춤화 프라이팬’은 이들의 까다로운 입맛까지 품을 수 있었어요.


‘프라이팬 이야기’는 판매 3개월 만에 1만개 단위의 주문이 들어올 정도로 대성공이었어요. 후지타 금속이 적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큰 계기였죠.


그런데 1,000개가 넘는 프라이팬을 매번 새로 제작하는 게 어렵지는 않을까요? 후지타 금속의 직원들 역시 처음에는 모든 주문을 하나하나 제작하는 데에 의문을 품었죠.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공장에선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후지타 금속의 ‘일관 생산 체제’ 덕분이었어요. 후지타 금속은 금형부터 제품 가공까지 모든 생산을 후지타의 공장에서 직접 진행하거든요. 덕분에 각 담당마다 협업이 원활하고, 가격도 쉽게 제어할 수 있죠.


반면 일본 대부분의 공장에서는 제품 가공만 해요. 나머지 공정은 외주를 맡기죠. 금형제작은 공형공장에, 프레스 공정은 금속 프레스 공장에 맡기는 식이에요. 물론 생산 효율성은 높아질 수 있지만, ‘프라이팬 이야기’처럼 세상에 없던 제품을 만드는 경우는 달라요.


“존재하지 않는 제품을 만드는 경우, 실제로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깔려 있습니다. 때문에 아웃소싱을 통한 작업은 이상적이지 않죠. 여기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생산 속도가 아니라, 각 부서를 오가며 시도하고 수정하고 실험을 반복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 후지타 금속 공식 홈페이지 


후지타 금속 공장에서는 2대 대표 후지타 슌스케가 금형을 담당하고 그의 둘째 아들 후지타 신지로가 금속 방적 공정을 담당해요. 그리고 영업과 전체적인 운영을 첫째인 후지타 세이이치로가 맡고 있죠. 긴밀한 협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후지타만의 독자적인 기술을 만들기도 해요. 소재의 무게를 줄이는 기술인 ‘헤라 조리개 가공법’, 사전 열처리 기술 ‘하드 템퍼 가공법’ 등은 후지타 가문을 포함한 17명의 공장 장인들이 머리를 합쳐 만든 자체 기술이에요.



ⓒ후지타 금속



ⓒ후지타 금속


모든 일을 자신들의 공장에서 해결하는 모습이 비효율적으로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이런 프로세스가 아니었다면, ‘프라이팬 이야기’ 같은 새로운 시도가 불가능했겠죠. 어느 날, 가족들이 함께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아버지에게 금형을 배우고 있는 막내 아들 후지타 고사부로가 이렇게 말했대요.


“우리는 일론 머스크와 똑같고, 테슬라와 똑같습니다! 테슬라뿐만 아니라 애플도 자체적으로 첨단 가공 기계를 보유하고, 수백 개의 프로토타입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이 작은 마을 공장은 비효율적인 생산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새롭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습니다.”

- 후지타 금속 공식 홈페이지



ⓒ후지타 금속



프라이팬에서 손잡이를 분리하자 생기는 일

2018년, 후지타 금속은 ‘프라이팬 쥬’를 출시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게 돼요. 프라이팬에 ‘디자인’을 가미하기 시작했거든요. 후지타 금속이 단순한 프라이팬 공장이 아닌, 브랜드로 거듭난 순간이죠.


‘프라이팬 이야기’의 성공 이후, 후지타 금속은 넥스트 스텝을 고민하고 있었어요. ‘프라이팬 이야기’의 맞춤화 서비스로 니치한 고객들을 타깃했다면, 그 이후에는 프라이팬에 또 어떤 차별화 포인트를 공략할 수 있을지 고민했죠.


그러던 중 신상품 개발 파트너를 찾고 있던 도쿄의 작은 디자인 회사 텐트와 만나게 돼요. 텐트는 2011년 산업 디자이너 마사유키 하루타와 료사쿠 아오키가 만든 조직이에요. 일자형 물품 보관 걸이 ‘Draw a line’, 아이폰 충전기와 스피커가 내장된 일체형 LED 스탠드 조명 ‘NuAns CONE Speaker Light’ 등으로 총 9번의 iF 디자인 어워드를 수상한 실력 있는 팀이죠.



왼쪽부터 텐트의 창업자인 료사쿠 아오키와 마사유키 하루타. ⓒTENT



ⓒTENT



ⓒTENT


협업을 시작한 후지타 금속과 텐트는, 우선 ‘어떤 새로움’을 창출해 낼지부터 정하기로 해요. 다만 형태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효용이 없다고 느꼈죠.


“프라이팬은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되어 온 주방 도구이기 때문에, 형태를 바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코팅과 색상만 바꿔서는 옳지 않은 것 같았죠. 무작위로 브레인스토밍을 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기보다 먼저 명확한 목표를 찾기로 했습니다.”

- 아오키, 공식 홈페이지


그러다 아오키는 ‘프라이팬의 본질’, 즉 일상 속에서 프라이팬이 실제로 쓰이는 모습에 대해 생각해요. 프라이팬은 당연히 요리에 쓰이지만, 이와 동시에 ‘그릇’처럼 쓰일 때도 있죠. 아오키의 아내와 아이들은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볶음밥이나 볶음면을 프라이팬으로 요리해서 접시에 담지 않고 프라이팬 째로 먹고는 했거든요. 아오키 가족 뿐만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 그런 경험은 있을 거예요.


“프라이팬을 사용하는 목적은 말할 필요도 없이 요리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주요 타깃은 주부 또는 요리사죠. 우리는 ‘셰프를 위해 특별해 제작된 최고의 요리 도구’, ‘주부나 남편을 위한 최고의 파트너’라는 판매 문구를 자주 봅니다. 즉, 대부분의 프라이팬은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위해 요리해주는 목적으로 생산됩니다. ‘요리하는 사람’, ‘먹는 사람’, ‘요리하는 곳’, ‘먹는 곳’이 모두 분리되어 있죠.”

- 아오키, 공식 홈페이지


텐트는 프라이팬의 이 분리된 개념들을 하나로 합치기로 해요. 즉, 요리하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일치하고, 요리하는 곳과 먹는 곳이 일치하는 프라이팬을 만들기로 한 거죠.


“이렇게 효율성만 추구하면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저녁 식사 모습이 될 거예요. 하지만 효율성을 위한 노력은 멋지고 쿨한 일입니다. 오히려 그 모습을 숨겨야 한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에요.”

- 아오키, 공식 홈페이지


프라이팬을 그릇처럼 쓰는 일을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멋진 일로 만들고자 했던 아오키. ‘요리하다’와 ‘먹다’의 개념이 합쳐진 프라이팬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손잡이를 분리해야 했어요. 손잡이를 붙여서 요리를 한 뒤, 손잡이를 떼어내고 접시처럼 사용할 수 있는 프라이팬을 만들고자 했죠.


‘프라이팬 쥬’는 프라이팬 가장자리에 후크로 손잡이를 탈부착할 수 있게 설계되었어요. 후크로 손잡이 아랫부분을 프라이팬 몸체에 걸고, 손잡이 윗부분을 슬라이드처럼 밀어 손잡이를 프라이팬 몸체에 고정하는 구조예요.



ⓒ후지타 금속




ⓒ후지타 금속



ⓒ후지타 금속


떼어 놓은 손잡이와 프라이팬 몸체의 모습이 숫자 10을 닮아, 이름도 일본어로 ‘10’을 뜻하는 ‘쥬’로 지었어요. 이 슬라이딩 손잡이 구조를 만들기 위해 텐트와 후지타 금속은 매일 수백 장의 스케치를 그리고, 구조를 0.5mm 단위로 조정했어요. 손잡이를 만드는 데에만 몇 달이, 총 제작 기간은 2년이 걸렸어요.


요리하는 것과, 먹는 것. 프라이팬의 두 본질을 하나로 합친 ‘프라이팬 쥬’는 단 한 건의 보도자료를 릴리즈한 것만으로 여러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어요. 지금은 매월 1,500개 이상의 주문을 받는 후지타 금속의 대표 제품이 되었죠.



ⓒ후지타 금속



프라이팬 회사가 주방 밖으로 영역을 확장한 이유

이후 후지타는 후지타 금속의 ‘장인 기술’에 ‘디자인력’이 더해지면 새로움을 창출해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아요. 그 믿음 하나로 후지타 금속은 텐트와 함께 카테고리를 늘려갔어요. 그렇게 탄생한 제품들이 철제 화분 ‘플랜트 팟 하치(Plant Pot 8, 이하 하치)’와 ‘테이블 램프 이치(Table Lamp 1, 이하 이치)’예요.


주방용품만 만들던 후지타가 화분과 램프라니. 지나치게 새로운 시도 아닌가요? 하지만 여기에는 이유가 있어요. 후지타는 코로나를 겪으며 느꼈던 위기 의식과 제품의 개발 과정에는 설득력이 있어요.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프라이팬의 매출이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무서웠어요. 예를 들어 갑자기 지금 당장 가스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프라이팬은 순식간에 불필요해지겠죠. 누구나 상상하지 못할 일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단 걸 팬데믹으로 알게 됐어요. 주방용품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 후지타, OBDA


팬데믹이 시작된 2019년부터 후지타 금속은 텐트와 함께 신상품을 준비했어요. 첫 번째 결과물이 플랜트 팟 하치였죠. 하치는 텐트의 하루타가 집에 있는 화분을 보고 떠올린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어요. 그는 집에서 식물을 키우는 취미가 있었는데, 일반적인 화분은 실외용으로 디자인되어 바닥에 물이 빠질 수 있는 구멍이 뚫려 있죠. 실내에서 식물을 키우려면 물이 고일 수 있는 접시를 화분 밑에 따로 깔아야 해요.


하루타는 보기 싫은 접시 받침이 필요 없는 실내용 화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때 떠오른 게 컵을 만들 때 보온을 위해 흔히 사용하는 ‘이중벽 구조’였죠. 화분의 겉을 감싸는 이중벽을 만들면, 벽과 벽 사이에 물이 고이면서 자연스러운 형태의 화분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내벽과 외벽을 분리해놓은 모양이 마치 숫자 8과 같아서 이름은 ‘하치’로 지었어요.


하치는 디자인도 실내용에 적합하게 만들었어요. 하루타는 사무용 책상에 올려놔도 위화감이 들지 않는 화분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러다 노트북 옆에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가 눈에 띄었죠. 그래서 하치는 블루투스 스피커처럼 컴팩트하고 둥근 모양을 하고 있어요. 위화감없는 비주얼을 구현했으면서도 동시에 플랜트 팟 하치만의 개성도 갖추었어요. 보통의 화분이 도자기나 유리로 만들어지는 데에 반해 하치는 후지타 금속의 주종목인 ‘철제’로 만들어져 독특한 매력이 있거든요.



ⓒ후지타 금속



ⓒ후지타 금속



ⓒ후지타 금속


한편 이치는 때와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램프가 ‘불을 밝히는’ 제 할일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어요. 이치는 텐트 창업자들의 자녀들이 숙제하는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렸어요. 아오키는 거실에서 숙제하는 아이에게 테이블 램프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침대 옆 탁자에서 램프를 옮겨 썼죠. 하지만 매번 전원 플러그를 뽑았다 꽂았다 하는 것이 번거로웠어요. 그렇다고 휴대용 램프를 장만하자니 대부분 전문가들을 타깃한 작업용 램프여서 불필요한 기능이 너무 많았죠.


이치는 집안의 어느 곳에서든 플러그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조명, 기둥, 받침 부분이 모두 분해가 가능하죠. 상단 조명 부분을 손으로 누르면 온오프가 되는 ‘클릭 스위치’를 사용해요. 케이블이 필요한 충전식이 아닌 건전지형이고요. ‘플라스틱이 아닌 철제, 배터리가 아닌 건전지’ 같은 아날로그한 특성은 ‘오래 쓸 수 있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전자 제품의 수명은 몇 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충전지의 수명이나 사용되는 재료의 특성에 영향을 받죠. 그러나 이치는 철로 만들어졌고, 건전지로 구동돼요. 평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습니다.”

- 아오키, 공식 홈페이지 



ⓒ후지타 금속



ⓒ후지타 금속


후지타 금속과 텐트의 협업 제품들은 모두 직관적이고, 단순해요. 제품 모양을 따른 숫자형 이름에서부터 심플하죠. 후지타 금속과 텐트는 단순함이야말로 가정 용품에 딱 들어맞는 디자인 요소라고 생각해요. 단순함이 극대화될 때, 효율성 역시 커진다고 믿거든요.



왼쪽부터 ‘플랜트 팟 하치’, ‘프라이팬 쥬’, ‘테이블 램프 이치’를 들고 있는 텐트 디자이너들과 후지타 세이이치로 대표. ⓒ후지타 금속



공장에 패션을 더해 젊은이들을 모으다

후지타 금속의 제품은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졌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어요. 바로 인재 채용이에요. ‘공장’이라는 일터에는 젊은 인력이 잘 모이지 않으니까요. 후지타 금속은 이 문제를 어떻게 현명하게 해결했을까요?


2021년 2월, 후지타 금속은 창립 70주년에 신사옥 ‘프라이팬 빌리지’를 오픈했어요. 콘셉트는 ‘쇼잉(Showing)’이었죠. 2층 직영 숍에서는 1층 공장의 모습이 한눈에 보였어요. 쇼핑하러 온 고객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기술자들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게 했죠.


뿐만 아니라 공장 상황을 24시간 유튜브 스트리밍을 통해 내보냈어요. 기술자들이 일하는 모습을 하나의 퍼포먼스라고 생각하고, 공장은 이들이 일하는 일터를 넘어서 무대라고 정의한 거예요.



후지타 금속의 구사옥 ⓒ후지타 금속



후지타 금속의 신사옥 ⓒ후지타 금속


퍼포먼스를 위해서는 무대 의상도 갖춰 입어야겠죠. 후지타 금속은 패션 브랜드 F/CE.와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작업복을 만들었어요. 2010년 설립된 도쿄 브랜드 F/CE.는 매 시즌 전 세계의 한 나라를 선택해 그 나라를 방문하고, 옷을 통해 그 나라의 라이프스타일과 문화를 구현하는 여행 패션 브랜드예요. 특히 여행 가방이 유명하죠. 컨버스, 빔즈, 그라미치 등 다수의 패션 브랜드와 협업할 정도로 패셔니스타들에게 인지도 있는 브랜드이고요.


이런 브랜드와 협업했다는 것은, 그만큼 후지타 금속이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고 노력한다는 증거예요. 후지타 금속은 패션을 통해 후지타 금속의 브랜딩을 외부에 알리고자 했죠. 이번엔 ‘제품’이 아닌 ‘일하는 사람’에 주목하게 하는 브랜딩이었어요.


“'프라이팬 쥬' 등으로 높은 평가를 받게 되고, 후지타 금속의 인지도는 높일 수 있었지만 ‘후지타 금속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늘리거나 사원의 동기 부여를 높이는 건 또 다른 고민이었습니다. (…) F/CE.라는 브랜드가 다루고 있는 멋진 웨어를 입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지원의 동기 부여로 연결되고, 공장을 견학한 사람들에게도 후지타의 멋을 알릴 수 있는 기회였죠.”

- 후지타, 덴츠호


F/CE.와 협업한 워크웨어는 어떤 모습일까요? F/CE. 디자이너 야마네 토시시는 ‘기능성’과 ‘패션성’이 공존하는 워크웨어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작업하는 기술자들을 위해 무릎 굽힘이 쉬워지도록 무릎 부분에 택을 붙이고, 공구를 들고 다니는 작업자들을 위해 티셔츠에도 포켓을 넣었죠. 또 신축성과 회복성이 뛰어난 특수 소재 ‘솔로텍스’를 사용했어요.


그보다 중요한 게 ‘패셔너블함’이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도 ‘후지타가 뭐하는 곳이지?’ 궁금해지는 스타일이 필요했어요. 올블랙에 로고가 박힌 티셔츠로 후지타의 정체성에 현대적 감각을 입혔어요. 후지타 금속의 워크웨어는 세련된 스타일 덕분에 평상복으로도 손색이 없어요. 한정 수량으로 일반인에게도 판매했을 정도예요.


“통근할 때 집에서부터 입고 가거나, 휴일에도 가족과 쇼핑을 나갈 때 입고 갈 수 있는 옷을 만들어야 했어요. 밖에서 후지타 금속의 로고가 들어간 옷을 보고 사람들이 ‘후지타 금속이 뭘까?’ 신경 쓰여 조사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죠.”

- 야마네 토시시 F/CE. 디자이너, 덴츠호



ⓒ후지타 금속



ⓒ후지타 금속


후지타 금속의 쇼잉은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에서도 이루어져요.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 후지타의 프라이팬으로 만들 수 있는 ‘1분 요리 레시피’를 공개하죠. 레시피에 들어가면 이 요리를 만들기에 적합한 후지타의 프라이팬을 추천해줘요.


심지어 2024년에 들어서는 후지타 세이이치로 대표가 출연자로 유튜브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어요. ‘최고의 사원 식당을 만든다’는 프로그램인데, 요리 경험이 없는 회사 대표가 직접 후지타 금속의 조리 기구로 요리 레슨을 받아가며 사원 식당 메뉴를 개발하는 내용이죠.



ⓒ후지타 금속



ⓒ후지타 금속


온오프라인을 따지지는 않은 후지타 금속의 쇼잉은 정말로 공장에 젊은 인력이 모이도록 만들었어요. 2022년 기준, 후지타 금속의 평균 직원 연령은 약 35세예요.


“구사옥 시절에는 채용을 할 때 50~60대의 기술자들만 모였어요. 지금은 10대부터 30대까지 젊은 세대가 주로 오죠. 이번 봄에는 한 학생으로부터 ‘부모님의 반대로 다시 생각해봐도, 후지타에 입사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대기업에서는 모든 일이 전문직이 되어버리지만, 후지타에서 일하면 개발부터 영업, 홍보까지 모두 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말하더군요.”

- 후지타, OBDA



약 20명의 작은 공장이 세계로 뻗어나가기까지

후지타 세이이치로는 2020년 11월, 정식으로 대표로 취임했어요. 그는 입사 이래 무너져가던 후지타 금속을 젊은 세대들이 입사를 꿈꾸는 트렌디한 회사로 바꾸었죠. 2022년 기준, 19명이 일하는 마을 공장은 이제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어요. 코로나 전부터 꾸준히 해외 전시회에 출전해, 런던의 숍에서도 후지타 금속의 제품이 판매되고 있죠. ‘프라이팬 쥬’는 레드닷 디자인상, iF 디자인상 등을 수상하며 입지를 다졌고요.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후지타 대표는 이렇게 말해요.


“눈앞의 위기에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이 지금에 이르게 했습니다.”

- 후지타, OBDA


위기 대응에 대한 절실한 의지가 지금의 후지타 금속을 만들었어요. 한 때 직원 수가 9명까지 줄었었지만, 오히려 직원들이 몇 명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화도 많이 하고 하는 일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어요. 위기를 넘기는 것 이상으로 회사를 부활시킨 그는 이제 19명의 기업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도전하고 싶다고 해요.


“지금은 소규모 사업자로 세계에 도전한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세계보다 더 넓은, 우주로도 뻗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2년 전 요양 시설에 들어간 할아버지에게 지금의 회사를 보여주는 거예요. 할아버지와 함께 새로워진 회사에서 사진을 찍고 싶어요.”

- 후지타, 오사카진


가업과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젊고 트렌디한 프라이팬 회사를 만드는 단단한 기반이었어요. 무너지지도 사라지지도 않을 가족애가 있기에 후지타 금속은 앞으로도 단단한 미래를 꿈꿀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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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

 후지타 금속 공식 홈페이지

 프라이팬 쥬 공식 홈페이지

 프라이팬 빌리지 공식 홈페이지

 未来を切り開いたフライパンの物語 価格競争から価値独創へ, 오사카진

 売り方を変え、デザインを取り入れ、商品の幅を広げた4代目の挑戦, O.B.D.A.

 【気になる八尾のあの工場】 藤田金属さん, tomoyasu times

 F/CE.×藤田金属。町工場のブランド力を高める「ワークウエア」のチカラ, dentsu-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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