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를 겨냥한 쇼핑몰에 ‘목욕탕’이? 하라주쿠의 시대 정신이 부활한다

하라카도

2024.10.11



2024년 4월, Z세대 문화의 발상지 도쿄 하라주쿠에 ‘하라카도’라는 쇼핑몰이 문을 열었어요. 위치가 위치인만큼 Z세대의 젊은 고객들을 타깃하고 있어요. 그런데 매장 구성이 예상과 달라요. 타깃 고객들이 좋아할 만한 브랜드의 매장들로 쇼핑몰이 가득 차 있을 것 같았는데, 이런 상상을 보기 좋게 벗어났거든요.


일본 기성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대중 목욕탕부터 무료 잡지 도서관, 영상을 찍거나 팟캐스트를 녹음할 수 있는 스튜디오 등이 입점해 있어요. 심지어 4층에는 매장 하나 없이 전 층을 비워 실내 녹지 공간까지 있어요.


하라카도는 왜 이렇게 쇼핑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공간을 만든 것일까요? 하라카도는 제품을 파는 쇼핑몰을 넘어 하라주쿠의 지역적 맥락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인데요. 하라주쿠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한 하라카도는 어떻게 Z세대를 겨냥하고 있을까요?


하라카도 미리보기

 #1. 누구를 불러 들일 것인가? ‘크리에이터’에 주목한 이유

 #2. ‘목욕탕’과 ‘전통주’로 Z세대를 겨냥하는 방법

 #3. 의외의 장소성으로 기분 좋은 변화를 추구한다

 건물 속을 비추고, 거리를 반사하는 외관의 비밀




‘일본의 패션 중심지’ 하라주쿠에는 젊은 세대를 겨냥한 쇼핑몰이 유독 많아요. 그중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는 대표 쇼핑몰이 2곳 있는데요. 바로 ‘하라카도(Harakado)’와 ‘오모카도(Omokado)’예요. 심지어 두 쇼핑몰은 교차로를 사이에 두고 대각선에 위치해 있어요. 횡단보도를 두 번만 건너면 하라카도에서 오모카도로, 혹은 오모카도에서 하라카도로 이동할 수 있죠. 


이름도 비슷한 데다 가까이에 있으니, 치열하게 경쟁하겠다 싶어요. 그런데 알고 보면 두 쇼핑몰은 모두 일본의 부동산 개발 회사인 도큐(Tokyu) 그룹이 운영하고 있어요. 참 이상하죠? 쇼핑몰이 하나일 때 오히려 더 수익성이 높을 텐데, 왜 고작 몇 걸음 거리에 쇼핑몰 하나를 더 열었을까요? 


ⓒharakado


하라카도 테라스에서 보이는 오모카도 ⓒharakado


그 이유는 하라카도와 오모카도의 타깃 고객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하라주쿠의 주류 패션은 크게 트렌디한 스트릿 패션과 명품 브랜드 중심의 럭셔리 패션으로 나뉘는데요. 스트릿 패션을 취급하는 매장은 다케시타 도리(Takeshita dori)와 캣 스트리트(Cat Street)에 많고, 명품 브랜드 매장은 오모테산도에 많아요. 그런 캣 스트리트와 오모테산도를 가르는 곳이 바로 하라카도와 오모카도 사이에 있는 교차로예요. 고작 몇 건널목 하나를 두고도 타깃 고객이 완전히 다른 이유죠.


그래서 하라카도는 트렌디한 패션을 추구하는 고객을, 하라카도는 럭셔리 패션을 추구하는 고객을 타깃으로 운영되는 건데요. 입점 브랜드나 쇼핑몰 분위기가 달라 고객층이 다른 만큼, 카니발리제이션(Cannibalization)보다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어요. 


두 쇼핑몰은 연차에도 차이가 있는데요. 오모카도는 2012년 도큐 플라자 오모테산도로 문을 연 13년차 쇼핑몰이에요. 반면 하라카도는 2024년 4월 영업을 시작한 따끈따끈한 신상 쇼핑몰이에요. 하라주쿠의 뉴 쇼핑몰인 만큼 하라카도는 젊은 세대들의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하라주쿠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하라카도는 과연 어떤 공간일까요?



#1. 누구를 불러 들일 것인가? ‘크리에이터’에 주목한 이유


하라주쿠는 패션 중심지이기 전 크리에이터들의 성지였어요. 1960년대 하라주쿠 지역의 아파트 임대료가 저렴해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예술가들이 하라주쿠에 모였기 때문이에요. 그중에서도 특히 ‘하라주쿠 센트럴 아파트(Harajuku Central Apartment)’가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유명했어요. 향후 하라주쿠가 패션의 중심지로 거듭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죠.


하라주쿠 센트럴 아파트 ⓒTokyu land


이에 도큐 그룹은 하라카도를 제2의 하라주쿠 센트럴 아파트로 만들기로 해요.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으니 그 문법은 달라야 했죠. 저렴한 임대료 혹은 거주 공간으로 크리에이터들을 모으기 보다는,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플랫폼이 되기로 했어요. 과거에 비해 다소 흐려진 ‘창작자의 성지’라는 명성을 다시 드높이고자 하라카도를 ‘새로운 하라주쿠 문화를 창조하고 체험하는 공간’으로 기획했죠. 판매자가 방문객에게 일방적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쇼핑몰에 그치지 않고, 방문객들이 서로 영감을 주고받을 수 있는 ‘만남의 장’을 열고자 한 거예요.


도큐 그룹이 운영하는 여느 쇼핑몰처럼 ‘도큐 플라자’라는 이름을 쓰지 않고 ‘하라카도’라는 이름을 지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어요. 하라카도는 ‘하라주쿠’와 모서리라는 뜻의 ‘카도’를 합친 말인데요. ‘ㄱ’ 모양과 ‘ㄴ’ 모양의 모서리 두 개를 겹치면 교차로 모양이 되는 것처럼, 사람을 연결하는 교차로가 되겠다는 뜻을 반영한 거예요. 이를 위해 도큐 그룹은 ‘만남’과 ‘연결’을 하라카도의 주요 테마로 정하고, 지하 1층부터 옥상까지 자연스럽게 만남과 연결이 이뤄지는 공간으로 구성했어요. 


ⓒTokyu Land


하라카도 내부 공간 구성 중에서도 창작자의 성지가 되겠다는 기획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은 3층에 위치한 ‘크리에이터 플랫폼(Creator’s Platform)’이에요. 말 그대로 크리에이터에 의한, 크리에이터를 공간인 이곳은 크게 세 개로 나눠볼 수 있어요. 


첫 번째는 영감을 얻는 공간이에요. 2층과 3층에 위치한 종이 잡지 도서관 ‘커버(COVER)’가 대표적인데요. 이곳에서는 1960년대 빈티지 잡지부터 최근 발행된 잡지까지 3,000개 넘는 종이 잡지를 무료로 볼 수 있어요. 


ⓒCOVER


ⓒCOVER


ⓒCOVER


잡지는 시대의 트렌드를 빠르고 감각적으로 전하는 매체예요. 시대에 맞는 테마를 정하고, 그와 관련된 비주얼 콘텐츠부터 취재 및 기획 콘텐츠, 칼럼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큐레이션해 제공하죠. 이런 잡지들이 놓인 커버에서 크리에이터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른 트렌드의 변화와 고품질 정보를 접하며 영감을 충전할 수 있는 거예요. 


크리에이터끼리 의견을 나누면서 영감을 얻는 커뮤니티, 베이비 더 커피 브루 클럽(BABY THE COFFEE BREW CLUB)도 있어요. 이 커뮤니티는 유명 프로듀서 오기 히데아키(大木秀晃)와 시로모토 쿠츠미(城本久嗣)가 운영하는 회원제 라운지예요. 맛있는 커피와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긴다는 컨셉 아래 회원들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죠. 


이 클럽에서 크리에이터들은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다양한 배경을 가진 크리에이터와 교류하며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고요. 정기적으로 열리는 이벤트나 전시 등을 보고 의견을 나눌 수도 있어요. 유명 프로듀서가 운영하는 만큼, 경험 있는 크리에이터들의 조언을 기대해 볼 수도 있죠. 


ⓒBABY THE COFFEE BREW CLUB


ⓒBABY THE COFFEE BREW CLUB


두 번째 공간은 창작물을 만드는 공간이에요. 요즘은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같은 플랫폼의 등장으로 누구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세상이에요. 하지만 문제는 촬영 장비와 환경이에요. 개인이 스튜디오를 빌리거나 필요한 장비를 모두 구비하기에는 부담스럽죠. 특히 초보 크리에이터라면 더욱이요. 게다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도 있고요. 


하라카도의 크리에이터 플랫폼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크리에이터가 보다 원활하게 창작할 수 있도록 도와줘요.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을 의뢰할 수 있는 디자인 사무소, ‘레몬 라이프 오피스(Lemon Life Office)’가 있는가 하면 숏폼 영상 전문 스튜디오인 ‘스팀 스튜디오(STEAM STUDIO)’, 팟캐스트 스튜디오인’ 제이웨이브 아트사이드 캐스트(J-WAVE ARRTSIDE CAST)’도 있고요.


세 번째 공간은 크리에이터와 팬이 만나는 공간이에요. 하라카도 3층에는 ‘오시 베이스 스토어(OSHI BASE Store)’가 있어요. 여기서 오시란 ‘오시카츠(推し活)’에서 비롯된 단어에요. 오시카츠는 ‘덕질’을 뜻하는 일본어로, 좋아하는 캐릭터나 아이돌, 만화 등을 추천하고 응원하는 활동을 의미하죠.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시 베이스 스토어는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등의 창작에 참여한 크리에이터의 한정 아이템을 판매해요. 뿐만 아니라 크리에이터의 작품을 전시하거나 사인회를 개최하는 등, 크리에이터와 팬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죠. 덕분에 크리에이터는 팬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기부여를 얻는 동시에 하라카도에 방문하는 대중들에게도 본인의 작품을 알릴 수 있고요. 팬의 경우 크리에이터는 물론,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친목을 다질 수 있어요.


ⓒOSHI BASE 공식 X



#2. ‘목욕탕’과 ‘전통주’로 Z세대를 겨냥하는 방법


한편 2030 소비자들의 거시적 트렌드에 착안해 기획한 공간들도 눈에 띄는데요. 요즘 젊은 세대들은 경험하지 않는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 ‘아네모이아’를 느끼는 세대예요. 필름 카메라와 카세트테이프, 레코드판(LP) 등이 Z세대에게 소구된 이유죠. 그런데 왜 이런 현상이 생긴 것일까요? 오히려 경험해 본 적이 없으니 힙하게 느껴지고, 재미를 찾는 거예요. 과거의 패션이나 음식, 문화가 젊은 세대에겐 새로운 유행이 되기도 해요.


하라카도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과거의 문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과거와 현 세대의 간극을 더 좁혔어요. 지하 1층에 위치한 센토(대중 목욕탕), ‘고스기유 하라주쿠(小杉湯原宿)’가 대표적인데요. 아무리 옛 것에 반응하는 Z세대라지만, 새로운 쇼핑몰 지하에 사우나라니 다소 의아해요. 하지만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요.


최근 일본의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사우나가 유행이에요. 그 중심에는 타나카 카츠키(タナカカツキ)의 만화 <사도(サ道)>가 있었어요. 이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사도>가 2019년, 2021년에 방영되며 큰 인기를 끌었거든요. 이를 계기로 젊은 사람들이 사우나를 찾기 시작한 거예요. 이에 하라카도는 1933년 설립돼 9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센토 브랜드, 고스키유의 하라주쿠 지점을 열기로 한 거예요. 


ⓒ小杉湯


Z세대 사이의 트렌드에 더해 센토는 만남과 연결을 추구하는 하라카도의 목적에도 부합해요. 과거 목욕을 하러 센토에 모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친해지며 지역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곤 했어요.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아직도 센토가 단순한 목욕탕이 아닌, 만남의 장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요. 고스기유 하라주쿠에도 센토의 이런 의미를 담았어요. 


바셀린과 밀랍, 미네랄 오일 등 세 가지의 보습 성분이 들어있는 ‘우유탕’은 고스기유의 시그니처인데요. 이와 더불어 요즘의 라이프스타일을 접목한 구성이 눈에 띄어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스트레칭 공간을 비롯해 다양한 책이 꽂혀 있는 작은 서재, 우유부터 콜라, 맥주까지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벤치를 마련했어요. 근처에서 러닝을 즐기는 사람들이 편히 오고 갈 수 있도록 물품보관함이 있는 러닝 스테이션도 준비해 뒀고요.


한편 하라카도에는 일본의 전통 술, ‘사케’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매장도 있는데요. 1층에 위치한 ‘히네모스(HINEMOS)’예요. 히네모스는 사케를 젊은 세대가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인 브랜드예요. 사케는 센토와 달리 아직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즐겨 찾는 분위기는 아니에요. 실제로 일본 내 사케 출하량은 1973년 약 170만 kL(킬로리터)에서 2020년 약 42만 kL로, 47년 사이 약 75%나 줄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더 사명감을 갖고 있죠.


ⓒHINEMOS


특히 젊은 세대는 도수가 낮고 종류가 다양한 맥주나 와인, 칵테일 등을 선호해요. 그렇다보니 도수가 높고 맛이 다양하지 않은 사케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건데요. 히네모스는 사케의 부족한 점을 개선해 도수도, 맛도 다양한 12가지 사케를 제안해요.


그런데 그 방식이 좀 독특해요. 쌀의 품종이나 지역 등과 같은 전형적인 방식에 따라 사케를 구분하고 추천하는 것이 아니라, 사케를 ‘마시는 시간대’에 따라 추천하고 있거든요. 애초에 히네모스라는 브랜드 이름도 ‘하루종일’을 의미해요. 오후 6시부터 새벽 5시까지 시간대별로 술을 추천하고 있는 거죠.


ⓒHINEMOS


예를 들어 갓 퇴근하고 자유롭게 저녁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오후 6시에는 라임, 허브 같은 상쾌한 풍미가 있는 스파클링 사케 ‘로쿠지(ROKUJI)’를 추천해요. 도수도 11도로 적당히 기분 좋게 즐길 수 있는 수준이죠. 반면 하루를 마치고 편안히 릴렉스하며 하루를 돌아보는 밤 12시에는 가볍고 달콤한 ‘레이주(REIJU)’를 권해요. 도수는 5도로, 흔히 가볍게 마시는 맥주와 비슷해요. 자기 전에 마셔도 숙면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정신적인 피로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죠. 


(좌) ROKUJI ⓒHINEMOS   (우) REIJI ⓒHINEMOS


히네모스는 단순히 사케를 추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케를 제조하기도 하는데요. 가벼운 술을 선호하는 젊은 세대의 음주 트렌드를 반영해, 도수가 15도 전후인 기존 사케보다 가벼운 사케를 만들어요. 스파클링 사케나 디저트 와인처럼 꽃과 꿀 향이 나는 사케, 과일 향기가 나는 사케 등 맛의 다양성을 넓히기도 하고요. 고리타분한 옛날 술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젊은 세대도 눈길을 줄 만큼 세련된 디자인을 적용하고 있는 건 기본이에요.



#3. 의외의 장소성으로 기분 좋은 변화를 추구한다


세대가 다르면 인식도 달라져요. 하라카도에는 남다른 젊은 세대의 인식을 반영한 공간도 있어요. 먼저, 2층에 위치한 ‘텐가랜드(TENGA LAND)’가 대표적이에요. 텐가랜드는 일본의 성인용품 기업인 ‘텐가’의 플래그십 스토어예요. 성인용품점이 새로 오픈한 쇼핑몰에, 그것도 어디 구석진 곳도 아니고 2층에 떡 하니 등장하다니, 다소 파격적이에요.


일반적으로 ‘성인용품점’하면 그리 자랑스럽게 방문하는 곳은 아니에요. 보통 은밀하게, 남들 모르게 가는 게 불문율이죠. 오프라인 매장 방문보다 온라인 주문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이기도 해요. 하지만 하라카도의 텐가랜드는 이런 편견과 이미지를 완전히 깨 부숴요.


그도 그럴 것이, 텐가랜드를 운영하는 텐가는 성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성인용품을 양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하는 브랜드거든요. ‘성을 대상화한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감성적이고 미니멀한 디자인의 성인용품을 선보여 젊은 세대의 지지를 얻고 있죠.


텐가랜드는 텐가의 철학을 바탕으로 ‘사랑과 자유의 원더랜드’라는 컨셉을 갖고 있어요. 성을 건강하게, 나답게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죠. 먼저 공간 분위기부터 기존의 성인용품 매장과는 사뭇 다른데요. 문을 꼭 닫고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라 쇼핑몰의 여타 매장들처럼 개방적인 공간으로 사람들을 맞이해요. 마치 옷을 사러 의류 매장에 들어가고, 책을 보러 서점에 들어가는 것처럼 방문이 자연스러워요. 성에 대해 보다 개방적이고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젊은 세대의 인식 변화가 반영된 공간인 셈이에요.


ⓒTENGA


“텐가랜드는 이름부터 숍도, 스토어도 아닌 ‘랜드’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성에 대한 긍정을 표방하는 공간이 되길 바랐거든요. 혼자 오는 사람, 연인, 부부 등 이곳에 방문하는 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 마츠모토 코이치 텐가 대표, 코스모폴리탄 중


이곳에서는 텐가의 제품을 보거나 체험할 수 있는 건 물론이에요. 스토어 중앙에 인조 나무가 아닌 실제 나무가 심어져 있는가 하면, 나무 주위에는 깔린 7m 길이의 레일이 텐가 제품을 얹고 돌아가고 있죠. 텐가 제품으로 몬스터를 물리치는 슈팅 게임도 즐길 수 있고, 유명 디자이너와 컬래버레이션한 텐가 컵도 구경할 수 있어요.


ⓒTENGA


하라카도에는 의외의 장소성을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이 하나 더 있어요. 4층에 위치한 ‘하라파(Harappa)’인데요. 하라파는 자연을 좋아하는 젊은 세대를 위한 공간이에요. 이름도 ‘잔디밭’이라는 뜻으로, 도심 속에서도 자연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졌죠.


ⓒParty


ⓒParty


자연의 광활함을 구현하기 위해 4층에 그 어떤 매장도 들이지 않고, 전 층을 하라파에 할애했어요. 매장을 하나라도 더 입점시켜 매출을 높여도 모자랄 판에, 한두개 매장 자리도 아니고 1개 층 전부를 비상업적인 ‘자연’으로 채우다니요. 무슨 사연일까요?


도시에서 나고 자란 MZ세대는 자연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자연을 안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자연과 교감하고 싶어하고, 등산, 캠핑 등 자연친화적인 취미를 갖고 있죠. 일본의 MZ도 마찬가지에요. 쇼핑을 하다가 쉬고 싶거나, 도심 생활에 치여 자연을 찾고 싶을 때 하라파가 대안이 될 수 있죠. 여기에 단순히 자연을 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태양과 빗방울을 상징하는 예술작품을 설치해 포토 스팟도 만들었어요.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MZ세대의 특성을 겨냥한 포인트죠. 


도쿄 내에서도 인구 밀도가 높기로 손꼽히는 하라주쿠에서, 그것도 쇼핑몰 안에 펼쳐진 자연이라니, 이 의외의 장소성은 이 곳으로 하라주쿠의 젊은이들을 이끌고 있어요.



건물 속을 비추고, 거리를 반사하는 외관의 비밀


ⓒHarakado


하라카도는 내부 공간뿐 아니라 외부 디자인도 독특해요. 누구나 한 번쯤은 호기심을 가질 법한, 아름다운 비주얼을 자랑하죠. 하라카도를 보면 가장 눈에 띄는 두 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는 내부와 외부가 연결된 정원이고, 하나는 외부를 장식하는 불규칙한 모양의 유리 조각들이에요.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한 정원부터 살펴보면요. 하라카도는 건물과 자연의 조화를 주장하는 건축가 아키히사 히라타(平田晃久)가 도심 속 정원을 모티브로 삼아 만든 건물이에요. 아카히사 히라타는 도로와 정원, 생활 공간이 연결된 채로 산처럼 우뚝 솟은 건물을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을 하라카도에 투영했죠. 하라카도는 누구에게나 도심 속 정원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의도가 잘 반영된 건물이라는 평가를 받아요.


 ⓒTokyu land


다음으로 하라카도의 겉면에 불규칙하게 배치된 유리는 어떤 의미일까요? 하라카도의 겉면은 우미(Umi)와 시마(Shima), 두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요. 우미는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거리의 풍경, 하늘, 사람들의 움직임, 나무 등을 반사해요. 시마는 건물 내부의 활기찬 상점과 창작 및 체험 공간을 외부에 비춰요. 이렇듯 하라카도의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반사함으로써, 사람과 자연, 거리 등 다양한 요소들이 조화를 이룬 하라주쿠를 표현한 거예요. 


겉면에 붙은 유리는 친환경적이기도 해요. 건물은 열을 많이 받으면 자재가 손상되거나 변형돼 수명이 짧아질 수 있어요. 더 나아가 도시에 열섬 현상을 유발해 기후 온난화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요. 반면 하라카도는 유리로 열을 반사시키는 만큼 온도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어서, 고온에 따른 부작용 또한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해요. 


하라카도는 내부 공간은 물론, 외부 디자인까지 하라주쿠의 지역적 맥락과 하라카도의 의도를 반영했어요. 단순히 하라주쿠에 새로 문을 연 쇼핑몰 이상의 의미를 가지죠. 오픈과 동시에 하라주쿠의 랜드마크로 떠오를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고요.





Reference

하라카도 공식 웹 사이트

도큐그룹 공식 웹 사이트

고스기유 하라주쿠 공식 웹 사이트

오시 베이스 스토어 공식 웹 사이트

오시베이스 공식 X

Stefania Sabia, Harajuku Fashion According to 3 Top Japanese Fashion Artists, Tsunagu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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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홍, 도쿄 한복판에 나타난 텐가 랜드 탐방기, COSMOPOLI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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